진정 부요한 사람 (고전8:61-15)
본문
얼마 전 텔레비전을 보면서 우리 사회를 밝게 빛내는 사람들의 참 모습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천에서 포장마차를 하면서 달동네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 유기수라는 여인은 자기 살기도 어려운 형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벌써 20년째 독거 노인과 치매환자 시설, 보육원 등을 찾아다니면서 이발, 목욕, 음식 제공 등 아름다운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아예 자기 집 방 한 칸을 오고 갈데 없는 무연고 노인에게 제공하고서, 그 분을 시아버지처럼 모시면서 살고 있습니다. 또 89세 고령의 김순이 할머니는 36 년째 병원에서 약솜 만드는 자원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년이면 나이가 자그만치 90세입니다. 노인 중에 상노인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제자식들의 도움으로 여생을 그저 편안하게 손자들의 재롱을 보면서 보내야 할 시기 아닙니까 그러나 이 할머니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지하철을 타며, 매주 이틀 씩 꼬박꼬박 병원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봉사의 일을 오늘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 목동에서 자장면 야식 집을 하는 강희종 씨는 재활원을 찾아다니며 20년이 넘게 장애아들에게 자장면을 만들어 주는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이일을 하게 된 동기는 아주 간단합니다. 지금부터 20년 전 불의의 사고로 한 쪽 다리를 못쓰게 되면서부터 장애 아동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다리를 못쓰게 되었다고 원망하고, 불평할텐데 이 사람은 오히려 봉사할 생각을 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입니까
그런데 이 사람의 요즈음 걱정거리는 불경기 탓에 야식집 운영이 어려워 그 전보다 봉사활동을 절반으로 줄여야 할 형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타고 다니는 이 봉고차가 너무 오래 되었고, 낡아서 언제 서게 될지 걱정하고 있습니다. 차가 아까워서가 아닙니다. 그 동안 자신의 발이 되어준 이 차가 움직이지 않으면 이 봉사도 차를 새로 장만할 때까지 못할 것을 안타까워하며 염려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선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사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지만, 그러나 이 사람들의 사회적 영향력은 아주 미약한 것처럼 보입니다. 텔레비젼이나 대중 매체의 주목을 받는 사람들과 비교할 때는 이 사람들의 행적은 너무나도 초라하게 보입니다. 거의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작년 말, 모 기관에서, 한국을 빛낸 사람들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니까 10위 안에 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세상 사람들에게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10걸 중에 3등이 김대중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리고 2등은 야구선수 박찬호, 그리고 1등은 골프선수 박세리였습니다. 스포츠의 위력을 실감하는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십시다. 이것이 과연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정확한 평가입니까 무언가 입맛이 씁쓸하지 않습니까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이와 같은 평가를 내리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우리 나라를 정말로 빛낸 사람들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한번 물어 보십시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부요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가장 의미 있는 삶을 산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 나라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입니까 이 땅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한마디로 오늘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자신이 처해있는 삶의 현장속에서 묵묵히 성실하게 섬김의 삶을 사는 사람 아닙니까 그리스도의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며, 베푸는 사람 아닙니까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나라가 파산직전의 위기 가운데서도 망하지 않은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 때문에 오늘 우리의 경제가 이만큼 빨리 회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베풀며, 섬기며 사는 숨은 봉사자야 말로 우리 사회의 버팀목이요, 최후의 보루요, 마지막 희망처요, 가장 귀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습니다마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인도 캘커다의 어머니 테레사 수녀에게 한번은 어떤 기자가 다음과 같은 당돌한 질문을 했습니다. "수고라고 하는 것은 그래도 가망이 있는 사람을 위해 하는 것 아닙니까 재활 의욕과 능력을 갖춘 사람을 위해서 수고해야 수고한 가치가 있는 것이지, 아무 소망도 없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왜 그렇게 맹목적으로 당신의 전부를 바치고 있습니까" 그러자 테레사 수녀는 아주 의미 있는 대답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평생 개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돕는 이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자신들은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단 한 사람에게라도 그들이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이것이 그들에게는 가장 큰 소망입니다. 비록 가난하고 보잘 것 없지만 이 사람들도 천사처럼 죽어갈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는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삶입니까 소위 말해서 복받은 사람의 삶은 과연 어떠한 삶입니까 그리고 새해를 맞이한 우리의 각오는 어떻습니까 금년 한 해 그리고 우리의 남은 삶을 어떻게 사시렵니까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믿는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분명한 자신의 뜻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
그러므로 우리가 디도에게 권하기를 그가 전에 시작하였으니, 이 은혜를 너희안에서도 완성시키도록 하였노라. 따라서 너희가 매사에 넘친 것 같이 믿음과 언어와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너희가 우리를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도 이 은혜에서와 같이 넘치기를 바라노라. 나는 명령에 따라 말하지 않으며 다만 다른 사람들의 열정을 통하여 너희 사랑의 진지함을 증명하려는 것이라. 너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거니와 부요하신 분이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것은 그 가난함으로 인하여 너희를 부요하게 되도록 하심이라. 이 점에 있어서 나의 의견을 표하노니 일 년 전부터 시작한 행동이었을 뿐만 아니라 원하던 것이니 너희에게 유익한 것이라. 그러나 이제는 그 행동을 실천하라. 그리하여 마음에 준비했던 대로 너희가 가진 것에서 그렇게 실천하라. 할 마음만 있다면 사람이 가진 대로 받으실 것이며 없는 것을 받지는 않으실 것이라. 이는 다른 사람들을 평안하게 만들고 너희에게 부담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균등하게 하려는 것이니 지금은 너희의 풍족함으로 그들의 부족함을 보충함으로써 후에 그들의 풍족함으로 너희의 부족함을 보충하여 균등함이 있게 하려는 것이라. 기록된 바와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는 것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하지 아니하였도다." 라고 하였느니라.'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들에게 진정한 복지생활이 무엇인지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부요한 사람의 삶이 무엇인지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로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는 어떠할 때 잘산다고 합니까 어떤 사람이 진정 부자입니까 물질을 많이 소유한 사람입니까 돈을 많이 가진 사람입니까 은행잔고가 늘어가고, 소득이 향상되며, 땅을 많이 소유하면 잘사는 것입니까 성경은 부요한 삶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의하면 정말로 잘 산다는 것은 단순히 돈이 많은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부요한 삶이란 그저 물질적인 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뿐만이 아닌 우리의 삶의 전부를 가지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요하다는 것은 단순히 많이 가진 양의 문제가 아니고 질의 문제입니다.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요, 삶의 자세입니다.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니고 얼마나 베풀며, 섬기며 살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물질적인 면만 따진다면 마게도냐 교회나, 고린도 교회는 부요한 교회가 될 수 없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1절 이하의 말씀에 의하면 이들 교회의 형편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수많은 환난과 시련이 있었습니다. 여기에다가 물질적으로도 아주 가난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남을 돌아볼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오히려 도움을 받아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갖지 못한 엄청난 자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쁨이 있었습니다. 믿음이 있었습니다. 섬기려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사랑이 있었습니다. 진리에 기초한 말과 지식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넘치는 연보를 해서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돕고, 섬겼던 것입니다. 여러분! 돈많다고 헌금많이 하는 것 아니고, 넉넉하다고 남을 돕고 사는 것 아닙니다. 형편이 좋아야 섬기는 것아닙니다. 오늘도 순수하게 좋은 일하는 사람 물질적으로 넉넉한 사람이 아닙니다. 은혜를 받아야, 은혜가 넘쳐야, 사랑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본문 7절 말씀에,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知識)과 모든 간절(懇切)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豊盛)한 것같이 이 은혜(恩惠)에도 풍성(豊盛)하게 할지니라' 그리고 9절의 예수님의 삶이 진정 그러하셨지 않습니까 '우리 주(主)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恩惠)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富饒)하신 자(者)로서 너희를 위(爲)하여 가난하게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因)하여 너희로 부요(富饒)케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이 부요한 자의 삶입니다. 부요한 사람이란 많이 가진 자가 아니라 베푸는 사람입니다. 빼앗는 사람이 아니라 주는 사람입니다. 대접받는 사람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입니다. 높아지는 사람이 아니라 낮아지는 사람입니다. 우리 주님의 삶이 그러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들을 위해서 하늘 영광을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철저하게 가난해 지셨고, 약한 자가 되셨고, 멸시받는 자가 되셨고, 끝내는 생명까지 내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 내어 주신 우리 주님의 마지막은 어떠했습니까 빌립보서 2장 말씀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至極)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者)들과 땅에 있는 자(者)들과 땅 아래 있는 자(者)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라 시인(是認)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榮光)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렇습니다. 베풀어야 얻습니다. 낮아져야 높아집니다. 고난을 받아야 영광을 얻습니다. 죽어야 삽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법칙이요, 복받는 비결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섬기는 삶이, 베푸는 삶이 우리 자신들에게 결코 손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유익을 줍니다.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이 다같이 잘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 사실을 우리들에게 아주 분명한 어조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 말씀에 '이 일에 내가 뜻만 보이노니 이것은 너희에게 유익(有益)함이라 너희가 일년(一年) 전(前)에 행(行)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願)하기도 하였은즉 이제는 행(行)하기를 성취(成就)할지니 마음에 원(願)하던 것과 같이 성취(成就)하되 있는 대로 하라 ' 그렇습니다. 섬기는 삶이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1년 전부터 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사랑의 삶을 실천에 옮기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13절 말씀에도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平安)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困苦)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平均)케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유여(裕餘)한 것으로 저희 부족(不足)한 것을 보충(補充)함은 후(後)에 저희 유여(裕餘)한 것으로 너희 부족(不足)한 것을 보충(補充)하여 평균(平均)하게 하려 함이라' 남을 돕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만 평안하게 하고, 돕는 우리는 정작 곤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평균케 하는 역사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런데 평균이란, 사실 모든 사람들이 다 잘 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것은 결국 상대방 뿐만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에게도 아주 유익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조금 여유 있을 때 어려운 사람을 도움으로 그들이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혹 다음에 내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면 과거에 나에게 도움을 받았던 사람이 역으로 이제는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들에게 가르친 부요한 삶의 진정한 뜻입니다. 몇 년전 미국 로스안젤레스에서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켰을 때 제일 피해를 많이 입었던 민족이 우리 교포였습니다. 물론 우리 교포들이 흑인 거주지 가까이 살았기 때문에 피해를 많이 입은 것 사실입니다. 그러나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교포들이 미국사회에 특별히 흑인들에게 덕을 못세웠기 때문에 피해를 많이 입었습니다.
그런데 교포 가운데 한 사람은 슈퍼마켓을 경영하고 있는데, 폭동기간에 피해는커녕 오히려 더 큰 돈을 벌었다는 것입니다. 이유인즉 이 사람은 평상시에 흑인 덕분에 장사를 잘해서 기회만 되면 흑인 사회에 구제를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흑인들이 폭동기간에도 서로 이 가게는 지켜주고, 폭동으로 인해서 물건이 달리게 되자 오히려 더 많은 수입까지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지혜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는 네 식물(食物)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날 후(後)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줄지어다 무슨 재앙(災殃)이 땅에 임(臨)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난 1년동안 경제위기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겸손을 배웠고,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것을 배웠으며, 우리가 서로 돕지 않고서는 우리들이 결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새해를 시작하는 이 순간 한 해를 마감하는 연말을 생각하고, 더 나아가 우리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하면서 진정 부요한 자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절 말씀을 주목해 보십시다. 바로 이것이 우리 인생의 결론입니다. '기록(記錄)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者)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者)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지금 돈을 많이 웅켜 쥐고 있다고 남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적게 소유하고 있다고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지금 내가 얼마를 가지고 있는 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을 우리들이 어떻게 사용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우리는 분명히 이것에 대해서 셈을 해야 할 것입니다. 교육자의 상징인 페스탈로치는 신앙과 사랑을 바탕으로 교육에 헌신 하다 1827년 81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1846년 사람들은페스탈로치 탄생 1백주년을 맞아 묘비를 세우고 그의 아름다운 삶을 기렸습니다. "노이호프에서는 가난한 자의 구조자, 슈탄스에서는 고아의 아버지, 부르크돌프와 뮌헨 부후제에서는 국민학교의 창시자, 이벨돈에서는 인류의 교육자. 인간! 크리스천! 시민! 자신의 모든 것을 남을 위해 바치고,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그 이름에 은혜가 있기를" 우리들도 죽게되면 우리의 무덤 앞에 묘비를 세우게 될터인데 우리들의 묘비에는 어떤 글귀가 씌여지겠습니까 우리의 남은 생은 어떤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이제 너희의 유여(裕餘)한 것으로 저희 부족(不足)한 것을 보충(補充)함은 후(後)에 저희 유여(裕餘)한 것으로 너희 부족(不足)한 것을 보충(補充)하여 평균(平均)하게 하려 함이라 기록(記錄)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者)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者)도 모자라지 아니 하였느니라'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벌써 20년째 독거 노인과 치매환자 시설, 보육원 등을 찾아다니면서 이발, 목욕, 음식 제공 등 아름다운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아예 자기 집 방 한 칸을 오고 갈데 없는 무연고 노인에게 제공하고서, 그 분을 시아버지처럼 모시면서 살고 있습니다. 또 89세 고령의 김순이 할머니는 36 년째 병원에서 약솜 만드는 자원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년이면 나이가 자그만치 90세입니다. 노인 중에 상노인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제자식들의 도움으로 여생을 그저 편안하게 손자들의 재롱을 보면서 보내야 할 시기 아닙니까 그러나 이 할머니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지하철을 타며, 매주 이틀 씩 꼬박꼬박 병원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봉사의 일을 오늘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 목동에서 자장면 야식 집을 하는 강희종 씨는 재활원을 찾아다니며 20년이 넘게 장애아들에게 자장면을 만들어 주는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이일을 하게 된 동기는 아주 간단합니다. 지금부터 20년 전 불의의 사고로 한 쪽 다리를 못쓰게 되면서부터 장애 아동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다리를 못쓰게 되었다고 원망하고, 불평할텐데 이 사람은 오히려 봉사할 생각을 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입니까
그런데 이 사람의 요즈음 걱정거리는 불경기 탓에 야식집 운영이 어려워 그 전보다 봉사활동을 절반으로 줄여야 할 형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타고 다니는 이 봉고차가 너무 오래 되었고, 낡아서 언제 서게 될지 걱정하고 있습니다. 차가 아까워서가 아닙니다. 그 동안 자신의 발이 되어준 이 차가 움직이지 않으면 이 봉사도 차를 새로 장만할 때까지 못할 것을 안타까워하며 염려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선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사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지만, 그러나 이 사람들의 사회적 영향력은 아주 미약한 것처럼 보입니다. 텔레비젼이나 대중 매체의 주목을 받는 사람들과 비교할 때는 이 사람들의 행적은 너무나도 초라하게 보입니다. 거의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작년 말, 모 기관에서, 한국을 빛낸 사람들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니까 10위 안에 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세상 사람들에게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10걸 중에 3등이 김대중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리고 2등은 야구선수 박찬호, 그리고 1등은 골프선수 박세리였습니다. 스포츠의 위력을 실감하는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십시다. 이것이 과연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정확한 평가입니까 무언가 입맛이 씁쓸하지 않습니까 전지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이와 같은 평가를 내리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우리 나라를 정말로 빛낸 사람들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한번 물어 보십시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부요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가장 의미 있는 삶을 산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 나라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입니까 이 땅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한마디로 오늘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자신이 처해있는 삶의 현장속에서 묵묵히 성실하게 섬김의 삶을 사는 사람 아닙니까 그리스도의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며, 베푸는 사람 아닙니까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나라가 파산직전의 위기 가운데서도 망하지 않은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 때문에 오늘 우리의 경제가 이만큼 빨리 회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베풀며, 섬기며 사는 숨은 봉사자야 말로 우리 사회의 버팀목이요, 최후의 보루요, 마지막 희망처요, 가장 귀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습니다마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인도 캘커다의 어머니 테레사 수녀에게 한번은 어떤 기자가 다음과 같은 당돌한 질문을 했습니다. "수고라고 하는 것은 그래도 가망이 있는 사람을 위해 하는 것 아닙니까 재활 의욕과 능력을 갖춘 사람을 위해서 수고해야 수고한 가치가 있는 것이지, 아무 소망도 없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왜 그렇게 맹목적으로 당신의 전부를 바치고 있습니까" 그러자 테레사 수녀는 아주 의미 있는 대답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평생 개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돕는 이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자신들은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단 한 사람에게라도 그들이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이것이 그들에게는 가장 큰 소망입니다. 비록 가난하고 보잘 것 없지만 이 사람들도 천사처럼 죽어갈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는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삶입니까 소위 말해서 복받은 사람의 삶은 과연 어떠한 삶입니까 그리고 새해를 맞이한 우리의 각오는 어떻습니까 금년 한 해 그리고 우리의 남은 삶을 어떻게 사시렵니까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믿는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분명한 자신의 뜻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
그러므로 우리가 디도에게 권하기를 그가 전에 시작하였으니, 이 은혜를 너희안에서도 완성시키도록 하였노라. 따라서 너희가 매사에 넘친 것 같이 믿음과 언어와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너희가 우리를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도 이 은혜에서와 같이 넘치기를 바라노라. 나는 명령에 따라 말하지 않으며 다만 다른 사람들의 열정을 통하여 너희 사랑의 진지함을 증명하려는 것이라. 너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거니와 부요하신 분이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것은 그 가난함으로 인하여 너희를 부요하게 되도록 하심이라. 이 점에 있어서 나의 의견을 표하노니 일 년 전부터 시작한 행동이었을 뿐만 아니라 원하던 것이니 너희에게 유익한 것이라. 그러나 이제는 그 행동을 실천하라. 그리하여 마음에 준비했던 대로 너희가 가진 것에서 그렇게 실천하라. 할 마음만 있다면 사람이 가진 대로 받으실 것이며 없는 것을 받지는 않으실 것이라. 이는 다른 사람들을 평안하게 만들고 너희에게 부담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균등하게 하려는 것이니 지금은 너희의 풍족함으로 그들의 부족함을 보충함으로써 후에 그들의 풍족함으로 너희의 부족함을 보충하여 균등함이 있게 하려는 것이라. 기록된 바와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는 것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하지 아니하였도다." 라고 하였느니라.'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들에게 진정한 복지생활이 무엇인지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부요한 사람의 삶이 무엇인지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로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는 어떠할 때 잘산다고 합니까 어떤 사람이 진정 부자입니까 물질을 많이 소유한 사람입니까 돈을 많이 가진 사람입니까 은행잔고가 늘어가고, 소득이 향상되며, 땅을 많이 소유하면 잘사는 것입니까 성경은 부요한 삶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의하면 정말로 잘 산다는 것은 단순히 돈이 많은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부요한 삶이란 그저 물질적인 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뿐만이 아닌 우리의 삶의 전부를 가지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요하다는 것은 단순히 많이 가진 양의 문제가 아니고 질의 문제입니다.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요, 삶의 자세입니다.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니고 얼마나 베풀며, 섬기며 살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물질적인 면만 따진다면 마게도냐 교회나, 고린도 교회는 부요한 교회가 될 수 없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1절 이하의 말씀에 의하면 이들 교회의 형편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수많은 환난과 시련이 있었습니다. 여기에다가 물질적으로도 아주 가난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남을 돌아볼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오히려 도움을 받아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갖지 못한 엄청난 자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쁨이 있었습니다. 믿음이 있었습니다. 섬기려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사랑이 있었습니다. 진리에 기초한 말과 지식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넘치는 연보를 해서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돕고, 섬겼던 것입니다. 여러분! 돈많다고 헌금많이 하는 것 아니고, 넉넉하다고 남을 돕고 사는 것 아닙니다. 형편이 좋아야 섬기는 것아닙니다. 오늘도 순수하게 좋은 일하는 사람 물질적으로 넉넉한 사람이 아닙니다. 은혜를 받아야, 은혜가 넘쳐야, 사랑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본문 7절 말씀에,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知識)과 모든 간절(懇切)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豊盛)한 것같이 이 은혜(恩惠)에도 풍성(豊盛)하게 할지니라' 그리고 9절의 예수님의 삶이 진정 그러하셨지 않습니까 '우리 주(主)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恩惠)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富饒)하신 자(者)로서 너희를 위(爲)하여 가난하게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因)하여 너희로 부요(富饒)케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이 부요한 자의 삶입니다. 부요한 사람이란 많이 가진 자가 아니라 베푸는 사람입니다. 빼앗는 사람이 아니라 주는 사람입니다. 대접받는 사람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입니다. 높아지는 사람이 아니라 낮아지는 사람입니다. 우리 주님의 삶이 그러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들을 위해서 하늘 영광을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철저하게 가난해 지셨고, 약한 자가 되셨고, 멸시받는 자가 되셨고, 끝내는 생명까지 내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 내어 주신 우리 주님의 마지막은 어떠했습니까 빌립보서 2장 말씀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至極)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者)들과 땅에 있는 자(者)들과 땅 아래 있는 자(者)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라 시인(是認)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榮光)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렇습니다. 베풀어야 얻습니다. 낮아져야 높아집니다. 고난을 받아야 영광을 얻습니다. 죽어야 삽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법칙이요, 복받는 비결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섬기는 삶이, 베푸는 삶이 우리 자신들에게 결코 손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손해가 아니라 오히려 유익을 줍니다.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이 다같이 잘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 사실을 우리들에게 아주 분명한 어조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 말씀에 '이 일에 내가 뜻만 보이노니 이것은 너희에게 유익(有益)함이라 너희가 일년(一年) 전(前)에 행(行)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願)하기도 하였은즉 이제는 행(行)하기를 성취(成就)할지니 마음에 원(願)하던 것과 같이 성취(成就)하되 있는 대로 하라 ' 그렇습니다. 섬기는 삶이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1년 전부터 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사랑의 삶을 실천에 옮기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13절 말씀에도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平安)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困苦)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平均)케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유여(裕餘)한 것으로 저희 부족(不足)한 것을 보충(補充)함은 후(後)에 저희 유여(裕餘)한 것으로 너희 부족(不足)한 것을 보충(補充)하여 평균(平均)하게 하려 함이라' 남을 돕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만 평안하게 하고, 돕는 우리는 정작 곤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평균케 하는 역사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런데 평균이란, 사실 모든 사람들이 다 잘 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것은 결국 상대방 뿐만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에게도 아주 유익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조금 여유 있을 때 어려운 사람을 도움으로 그들이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혹 다음에 내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면 과거에 나에게 도움을 받았던 사람이 역으로 이제는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들에게 가르친 부요한 삶의 진정한 뜻입니다. 몇 년전 미국 로스안젤레스에서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켰을 때 제일 피해를 많이 입었던 민족이 우리 교포였습니다. 물론 우리 교포들이 흑인 거주지 가까이 살았기 때문에 피해를 많이 입은 것 사실입니다. 그러나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교포들이 미국사회에 특별히 흑인들에게 덕을 못세웠기 때문에 피해를 많이 입었습니다.
그런데 교포 가운데 한 사람은 슈퍼마켓을 경영하고 있는데, 폭동기간에 피해는커녕 오히려 더 큰 돈을 벌었다는 것입니다. 이유인즉 이 사람은 평상시에 흑인 덕분에 장사를 잘해서 기회만 되면 흑인 사회에 구제를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흑인들이 폭동기간에도 서로 이 가게는 지켜주고, 폭동으로 인해서 물건이 달리게 되자 오히려 더 많은 수입까지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지혜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는 네 식물(食物)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날 후(後)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줄지어다 무슨 재앙(災殃)이 땅에 임(臨)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난 1년동안 경제위기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겸손을 배웠고,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것을 배웠으며, 우리가 서로 돕지 않고서는 우리들이 결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새해를 시작하는 이 순간 한 해를 마감하는 연말을 생각하고, 더 나아가 우리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하면서 진정 부요한 자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절 말씀을 주목해 보십시다. 바로 이것이 우리 인생의 결론입니다. '기록(記錄)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者)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者)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지금 돈을 많이 웅켜 쥐고 있다고 남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적게 소유하고 있다고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지금 내가 얼마를 가지고 있는 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을 우리들이 어떻게 사용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우리는 분명히 이것에 대해서 셈을 해야 할 것입니다. 교육자의 상징인 페스탈로치는 신앙과 사랑을 바탕으로 교육에 헌신 하다 1827년 81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1846년 사람들은페스탈로치 탄생 1백주년을 맞아 묘비를 세우고 그의 아름다운 삶을 기렸습니다. "노이호프에서는 가난한 자의 구조자, 슈탄스에서는 고아의 아버지, 부르크돌프와 뮌헨 부후제에서는 국민학교의 창시자, 이벨돈에서는 인류의 교육자. 인간! 크리스천! 시민! 자신의 모든 것을 남을 위해 바치고,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그 이름에 은혜가 있기를" 우리들도 죽게되면 우리의 무덤 앞에 묘비를 세우게 될터인데 우리들의 묘비에는 어떤 글귀가 씌여지겠습니까 우리의 남은 생은 어떤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이제 너희의 유여(裕餘)한 것으로 저희 부족(不足)한 것을 보충(補充)함은 후(後)에 저희 유여(裕餘)한 것으로 너희 부족(不足)한 것을 보충(補充)하여 평균(平均)하게 하려 함이라 기록(記錄)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者)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者)도 모자라지 아니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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