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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가? (고전9: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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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일이 추수 감사절이다. 온전한 추수 감사절이 되기 위해서 추수 감사절을 일주일 앞두고 우리는 과연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자. 우리가 매일 하나님께 감사해야 되지만 추수 감사절은 일년 동안 우리를 지켜 주시고 돌보아 주신 하나님께 전체적으로 감사를 드리는 절기이다. 추수 감사절은 미국의 신앙을 본 받아 우리가 지키는 절기다 17세기 영국 교회가 타락하자 신앙적 투쟁을 일으킨 청교도인 들이 영국 교회로부터 핍박을 받자 청교도인 들은 신앙을 찾아 조국을 떠나 신대륙으로 건너갔다. 1620년 9월 6일 두척의 배는 신대륙을 향해 떠나갔지만 스피드월러호 배는 추위와 배고픔과 질병 때문에 영국으로 되돌아 가버렸고 메이플라워호 배는 그 고통을 잘 참고 106일 만에 그 해 12월2일 미국 항구 보스턴 옆 프리모스에 도착했다. 처음 출발할 때는 153명이 승선했지만 50명이 죽고 103명만 생존했다. 그러나 이들의 고통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신대륙에 도착하고 더욱 고통은 심했다. 12월달에 도착했으니 얼마나 추웠겠는가 추위와 배고픔.질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그들은 먼저 교회부터 지었다. 추위를 이기고 다음해 봄 그들은옥수수를 심었다. 가을에 옥수수는 대풍년을 이루었다. 옥수수를 들고 그들은 울면서 교회에 모여서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다. 미국은 1941년 국회에서 11월
넷째 목요일을 국경일로 정했다. 이 날이 추수 감사절이다. 미국의 최대 명절이다. 한국 교회도 이러한 신앙을 본 받기 위해서 11월
셋째 주일을 주일 감사절로 드리고 있는 것이다. (시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나님께 나와 올 때마다 우리는 마땅히 감사해야 되지만 추수 감사절은 일년 동안 모든 감사를 종합적으로 드리는 감사 절기이다. 일년 동안 우리가 하나님께 별로 감사하지 못했다면 추수 감사절날 만큼은 감사로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가 고린도 교회가 어떻게 감사했는가 살펴보면서 우리도 다가오는 추수 감사절날 온전한 감사를 드리기를 축원합니다.

첫째:하나님께 감사하자. 11절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 우리의 감사 대상은 먼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감사의 원천이시다. 사회 속에서 사람들끼리도 감사가 있어야 되지만 무엇보다도 맨 먼저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께 먼저다. 철저하게 이 순서가 지켜져야 한다. 그 누구도 하나님보다 감사를 먼저 받어서도 안되고 받을 수 없다.
 감사 헬라어로 "안토모로 게오마이" 뜻은 "고백하다. 자신을 내보이다 " 감사 은혜를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다. 아무나 감사를 드릴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감사는 인간에게만 주어졌다. 이것은바로 하나님은 인간만을 통해서 감사를 받고자 하시겠다는 의미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일년 동안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 보았습니까 불신자들은 하나님을 몰라서 감사를 못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는 자들 아닙니까 믿는 자들이 하나님께 감사가 인색하면 안된다. 여러분 짐승에게 감사가 있는 것 보았습니까 짐승에게 잘해주면 여러분에게 "감사해요" 하던가요 짐승이 하나님께 "감사해요" 하던가요 감사는 우리 인간에게만 주어졌다. 하나님께 감사를 모르는 인간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인간들끼리도 감사를 모르면 버릇이 없다고 한다 자식들이 부모에게 감사를 모르면 그 자식은 불효자식이다. 학생이 스승에게 감사를 모르면 버릇없는 제자이다. 직장인이 감사를 모르면 직장 생활하기 힘들다. 남편이 아내에게 감사를 모르면 사랑이 없다. 아내도 남편에게 감사를 모르면 사랑이 없다. 국민이 나라의 감사를 모르면 매국노다. 군대가면 밥 먹을 때 소리치는 것이 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감사가 없는 인간은 무엇이 있는가 원망과 불평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감사가 없다는 것은 바로 악인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롬1:2
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감사는 조용히 입 다물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 다 아시겠지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내 마음을 내보이는 것이다. 내 마음의 고백이 감사다. 다시 말씀드린다 감사의 원어는 헬라어로"안토모로 게오마이" 이다 고백이다는 뜻이다. 감사는 고백해야만 한다. 고백을 입 다물고 하는 고백이 있습니까 고백을 가만히 있으면서 하는 고백이 있습니까 고백을 하려면 내보일 수밖에 없다. 고백은 내마음을 내보이는 것이다. '예화' 짝사랑은 고백을 못하고 혼자서만 벙어리 냉가슴 않고 하는 것이다. "네가 너를 사랑한다" 말하면 그 사랑이 이루어 질터인데 결국은 고백을 못하고 평생을 기억 속에 놓아두고 살아간다. 왜 그렇게 됐는가 고백을 못했기 때문이다. 또 어디 압니까 사랑을 고백하면 저 쪽에서도 "저도 사랑해요" 했을지도 모르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를 고백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감사를 표현해야만 한다. 감사는 모든 믿음 생활의 기초다. 감사가 없고. 감사가 인색하면 갖가지 사단의 역사가 우리를 괴롭힌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감사가 없으면 우리 마음속에 불안이 생기고 공포가 몰려오고 혈기가 생기고. 질투와 탐욕이 생긴다. 사람들끼리도 감사가 없으면 미움이 생기고 불평이 생긴다. 남편이 아내에게 감사가 없으면 아내를 미워하게 된다. 아내도 남편에게 감사가 없으면 "아이구 저 웬수" 자식도 부모에게 감사가 없으면 말도 잘 안하고 가끔 말하면 툭툭 쏘아대기만 한다. 마지막 때에 사람들은 감사치 아니한다고(딤후3:2) 했다. 감사를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 더구나 하나님께 감사를 모르면 악한자라고 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하나님께 감사하라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저도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평생을 하나님께 감사만 하면서 살아가는 성도가 되길 축원합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하나님께 수없이 감사를 드리고 있다 '시95:2'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 '시100:4'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때 하늘 문이 열리게 될 것이다. 98년도 추수 감사절은 그 어느 해보다 더 감사하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왜 감사해야 하는가 15절 " 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당시에 고린도 도시는 로마 식민지 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고린도 교회는 날로 성장했다.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회에 많은 은사로 축복해 주셨다. 교회가 축복 받았다 하는 것은 성도들의 삶도 축복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에 많은 은사를 주셨다는 것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많은 은사를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린도전서12장에 은사에 대한 것이 나온다. 고린도 교회는 영적으로 육적으로 축복 받은 교회였다.
 은사 헬라어로 "카리스" 뜻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 왜 감사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주시는 많은 선물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일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 많이 받았습니까 우리가 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만가지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 만 가지를 다 살펴 볼 수 없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분명히 알고 넘어가야 한다. 구원의 감사이다. 죄악으로 죽을 수밖에 없던 우리들을 예수를 믿고 해주셔서 구원해 주신 은혜이다. 지옥 갈 수밖에 없던 우리들을 구원해 주신 것이다. 믿습니까 이 구원에 은혜를 진정으로 깨닫는 자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아니할 수 없다. 솔직히 왜 우리에게 감사가 인색한가 성도들이 구원에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구원이 어떤 것인지 실감이 안 나기 때문이다. 내가 예수로 인해 구원받았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 순간 우리는 만 볼트 전기에 감전 된 듯한 충격을 받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닫게 될 것이다. 감사가 생활에 성도가 인색하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다. 여러분은 부모님 은혜 다 알고 계시죠 나를 이제껏 키워 주시고 이모저모로 돌보아 주시고 그 은혜를 알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감사하는 것이다 그 부모님 은혜는 알면서 하나님 은혜를 모른다면 말이 되는가 내 영혼을 돌보아 주시고 지켜 주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된다.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교통사고 제 2위이다. 그런 교통 지옥에서 금년도 우리를 지켜 주셨다. 한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통사고로 죽고 장애자가 되는지 알 수 없다.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몸이 아파서 병원에 누워 있는가. 우리에게 이 시간까지 건강을 주셔서 우리는 지금 이렇게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 드리고 있다. 올 한해도 내 가족. 내 형제 친척들 건강을 주셨다. 어려운
경제위기 시대 속에서도 먹을 것 먹게 해주시고 편히 잠자게 해주셨다. 감사합니까 진정 감사합니까 '다같이' 감사해요- 감사해요- (찬양) '예 화' 시집가는 가는 딸이 엄마에게 청구서를 내밀었다. 청구서를 보니까 대학 졸업하고 2년간 빨래. 청소. 심부름. 1달에 10만원씩 계산해서 2년간 240만원 청구했다. 엄마가 기가 막혔다. 엄마도 딸에게 청구서를 냈다. 임신 10개월 동안 고생한 것 계산해서 월 50만원씩 500만원. 3년간 유모 생활. 고생. 2천만원. 16년간 교육비 . 5천만원. 25년간 병원 치료비 1200만원 25년간 용돈 3천만원 숙박비 1일 1만원씩 × 365만원 25년간 9,125만원 밥값 1끼
2,000 씩 3끼 1년 219만원 25년간 5,475만원 . 학용품비 200만원. 학교 수확 여행비 30만원 생일잔치 친구 초청비 100만원. 남의 집 유리창 깬 것 24만원 딸이 고만 ! 고만 ! 소리를 질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고린도 교회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다. 우리도 이 시간 까지 하나님이 지켜 주셨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받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앞으로도 그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함께 하여 주실 것이다 믿으십니까 그런 하나님을 우리가 어찌 감사 안할 수 있겠는가 만가지 은혜를 받은 우리들이다. '찬양' 만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내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이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늘 살겠네. 세 번째:어떻게 감사해야 하는가 11절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 13절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는 고백이라고 했다. 고백은 내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감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늘 본문은 헌금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내 물질로 내 마음을 보이라는 것이다.
 연보 헬라어로 "레이투루기아스" 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을 의미한다 감사하는 방법은 찬송으로 기도로 마음으로 감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더욱 확실한 감사는 물질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아무리 찬송으로 기도로 마음으로 감사를 잘 드린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드리는 물질에 인색하면 그 모든 감사는 형식적인 감사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은 분명히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딤전6:10) 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배를 드리는데 2가지 특성이 있다.
첫째: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찬송을 드리고 기도들 드리고 헌금을 드린다.
둘째: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것이다. 말씀을 받고.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는다 헌금을 드리는데 있어서 깊은 뜻은 그 물질 속에 우리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마6:2
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 " 재물과 물질은 항상 우리 마음과 함께 한다. 하나님께 물질을 많이 드리고 적게 드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인색한 마음으로 물질을 드리면 하나님께 인색한 마음을 드리는 자가 되어 버린다. 하나님께 감사로 드리는 물질이 아니고 그냥 형식적인 물질이 된다면 형식으로 드리는 내 마음이 되어 버린다 우리가 물질이 없어서 못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다 아신다. 물질이 정말 없어서 못 드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미안하면 하나님은 그 안타까운 마음 그대로 받으신다. 그러나 반드시 우리가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나에 쓸 것을 다 쓰고도 하나님께 드릴 물질이 없다면 정말 물질이 없어서 드리지 못하는 그런 마음이 아니다. 교회 다니다가 이 헌금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 버린다.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이다. 물론 교회들이 너무 헌금을 강조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헌금에 대해서 전혀 말하지 않은 것도 안된다. 성도들을 축복 받게 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헌금에 대해 잘 가르쳐 주어야 한다. 하나님께 온전한 헌금을 드릴 때 그 성도의 삶 속에 반드시 하나님이 물질로 축복 해주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먼저 내가 드리는 헌금이 누구한테 드리는 것인가를 분명하게 깨달아야 한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 복을 받기를 원한다. 여러분이 오늘 드리는 이 헌금 누구한테 드린 것입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물질은 우리의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우리의 마음이라고 마6:21에서 분명히 말씀했죠 우리의 마음인데 그 드리는 마음이 온전한 마음이 아니라면 차라리 그 물질 드리지 않은 게 좋다. '예를 하나 들어봅시다.' 여러분 부모에게 용돈을 주는데 그 용돈 드릴 때마다 돈이 아까워서 드리는 마음을 그 부모님이 안다면 그 부모님이 그 용돈 받고 싶어하겠습니까 아마 그럴 것이다. "치사하고 더럽다. 내가 그 용돈 안 받고 말지 내가 나가서 품팔이를 할망정 그런 돈 안 받은다" 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마지막 때에 두드러진 특징 중에 하나가 사람들이 돈을 사랑할 것이라고 (딤후 3:2) 에서 말씀했다.
그런데 (딤전6:10) 돈을 사랑함이 뭐라고 했습니까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다. 성도 여러분 악이 일만 가지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 만가지 악의 뿌리가 무엇이라고요 돈 ! 왜 우리가 교회를 다니다가 이 헌금 때문에 시험을 받고 교회를 떠나 버리느냐 사실은 우리에게 돈을 사랑하는 악의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왜 우리가 물질로 하나님께 내 마음을 보여주지 못하는가 우리에게 돈을 사랑하는 악의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성도 여러분 ! 우리 한 번 솔직히 내마음을들여다보자. 예수보다 돈을 더 좋아하죠 아닙니까 돈 보다 예수를 더 좋아합니까
' 예 화 ' 선배 목사님 교회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그 집안에 자손이 귀했는데 손자가 태어났다. 그 할머니 집사가 그 손자 이름은 짓기 위해서 작명소를 찾아갔다. 작명소 가니까 장수하게 짖는데 100만원. 출세하게 짖는데 100만원. 물질 복 많게 짖는데 100만원 이라는 것이다. 이 할머니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세 개를 합해서 다 지어 달라고 했다. 얼마 들었습니까 300만원을 들여서이름을 짓고 그 다음 주일날 교회에 와서 목사님에게 자기 손자 기도를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름을 작명소 가서 지었다고 자랑을 하는데 목사님이 어이가 없어서 그냥 기도를 해주었다. 그 손자가 그 후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6개월도 못 살고 죽어 버렸다.
그런데 그 뒤를 이어서 며느리가 바로 또 아이를 가졌다. 또 아들이 태어났다. 할머니 집사가 또 작명소 갔을까요 이번에는 작명소를 안가고 아이를 데리고 목사님에게 와서 이름을 지어 달라고 했다. 목사님이 기도 끝에 충만 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러면서 그 다음 주일날 감사헌금을 내었는데 "손자 이름을 지어 주어서 감사합니다" 얼마 내었을까요 작명소처럼 300만원 내었을까요 여러분 놀래지 마세요 5만원을 내었답니다. 귀신을 섬기는 자한테는 300만원을 아낌없이 바치고 하나님께는 인색하기 짝이 없이 드리는 그 마음 하나님이 기뻐하겠습니까 그 충만이라는 아이가 지금까지도 비실비실 병원 신세만 지면서 자라고 있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하나님께 인색하지 마시기를 바란다. '갈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 " 심은대로 거둔다고 했다. 하나님께 인색하게 심으면 하나님도 인색하게 주신다. 하나님께 드리는 게 아까우면 하나님도 우리에게 주는 것을 아까워하신다. 스스로 자신을 속이지 말라고 하셨다. 나 자신을 속이면서 까지 하나님께 드리면 우리가 누구에게 반드시 속임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을 만홀히 여겨서는 안된다. 하나님을 가볍게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고 헌금을 드리면 하나님도 우리를 가볍게 여기실 것이다. 하나님께 우리가 내 마음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바로 물질이다. 이것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면 하나님도 우리 마음 믿지 못한다. 가장 빨리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고 가장 빨리 내 마음을 하나님께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물질이다 또 가장 빨리 신앙이 자랄 수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물질을 온전히 드릴 때 급속히 자라난다. 교회의 관심도 물질을 내가 많이 심을 때 자연히 교회에 관심이 가고 교회 일에 적극적이 된다. 왜 그런가 너희 물질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했다. 교회에 왜 무관심 하는가 그 만큼 내가 교회에 드린게 없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에는 후한 연보를 교회를 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했다. 여러분도 그러한 성도들이 되어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복을 마음껏 누리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다음주일은 추수 감사절이다. 금년도에는 여러분의 진정한 감사의 마음을하나님께 보이시기를 바란다. 형식적인 감사가 아니라. 인색한 감사가 아니라. 진정으로 내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그런 감사를 드릴 때 하나님은 금년에 여러분에게 주지 못한 복 까지 내년에 부어 주실 줄 믿는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했다. (시50:14) 온전한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우리의 소원을 갚아 주신다고 하셨다 우리 교회에서 여러분이 온전한 감사를 드릴 때 우리 교회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그러한 여러분의 감사가 있을 때 주님은 기뻐하실 것이고 주님의 종인 저는 목회에 하는데 큰 힘을 얻고 더욱 사명감에 불타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이번 추수 감사절을 그냥 흘러 보내는 그러한 절기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우리가 어찌 말로만 하고 끝맺을 수 있습니까 감사는 우리 인간에게만 주어진 유일한 특권이다. 감사는 고백이 뒤따라야 진정한 감사이다. 고백은 내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마음껏 열어서 보여 드리는 자들이 모두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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