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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때문에 (고후11: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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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사순절의 계절을 맞이했습니다. 사순절은 기독교의 절기 중에서 절정을 이루는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40일이 지나면 부활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부활절은 기독교에 있어서는 핵심이고 중심이고 뼈대입니다. 기독교가 기독교 될 수 있는 것은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40일간의 사순절 기간은 기독교에 있어서는 가장 소중한 절기에 속합니다. 이 기간은 주님을 깊이 묵상하면서 보내는 기간입니다. 이 땅에 오신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의 가르침을 생각하고 고난받으신 주님을 깊이 마음으로 되새기고 묵상하며 살아가는 기간입니다. 목적이 아주 뚜렷한 사람은 우선 살아가는 모습이 힘이 있고 활기가 있고 적극적입니다. 그리고 삶의 태도가 분명하며 하는 일에 주저함이나 망설임이 없고 확신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삶 가운데 즐거움이 있고 만족감이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 만족해 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들이 사도 바울을 자꾸만 거론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 점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삶의 목적이 아주 분명하고 뚜렷했던 사람입니다. 확신이 있었고 주저함이나 망설임 같은 것은 그의 생활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는 오직 예수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예수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위해서 살았고 예수 때문에 일했고 예수 때문에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생활을 만족해 하였고, 기뻐하였고, 즐거워하였고, 감격해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평생을 결혼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결혼하는 데 결점이 있어서가 아니고 외모에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고 여자가 없어서도 아닙니다. 또 결혼할 마음이 없어서 혼자 살아가는 독신주의자도 아니었고 돈이 없어서 결혼 못할 처지라서도 아닙니다. 그것은 순전히 예수 때문입니다. 예수에 미치고 그 예수를 전하는 일에 전념하다 보니까 결혼 같은 것에는 마음 쓸 여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오직 예수에게만 관심을 갖고 살았습니다. 예수께 마음을 두고 예수를 전하는 일에만 골몰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개인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일이나 가정을 이루어 아들딸 낳고 단란하게 살아가는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분주하게 살았습니다. 사람이 성장해서 이성을 만나 서로 사랑하는 일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끼리 결혼하여 부부가 되는 일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행복한 선물일 것입니다. 나아가 아들딸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 나가는 삶은 인간에게 부여된 작은 천국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가 강제하지 않아도 스스로 기쁘게 서로 이성을 만나서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런 가정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는 평생을 혼자서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그에게는 뚜렷한 삶의 목표와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살면서도 누구보다도 만족해 하였고, 좋아하였고, 기뻐하였습니다. 예수 때문에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위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 때문에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가는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사람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라면 몰라도 예수 때문에 스스로 독신이 되어 일평생을 혼자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개신교에서는 목회자가 되겠다고 지망하는 학생들이 넘쳐 나는데 가톨릭에서는 신부가 되겠다고 지망하는 학생이 없어 고민이라고 합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야 하는 신부의 생활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신부도 결혼을 하도록 해주자는 이야기가 자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학생들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희망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여론을 조사해 보았더니 신자들이 반대를 했다고 합니다. 자기들이야 세속에서 살아가니까 결혼도 하고 재미도 보고 가정도 이루고 살지만 신부는 성직을 위해서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야 한다고 우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누가 독신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요해서도 아니고 제도가 그래서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스스로 예수를 위해서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예수 때문입니다. 그렇게 독신으로 예수만을 위해서 살았고 예수만을 위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번도 독신으로 사는 일에 대해 후회를 한다거나 아쉬움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할 수만 있으면 혼자 사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행복한 삶의 조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결혼도 포기할 만큼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그래서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되 내 인생을 다 바쳐서 사랑할 수 있을 정도의 사랑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연애는 참 좋은 것입니다. 사람이 연애를 하면 달라집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마음 쓰는 것이 달라집니다. 세상이 즐겁고 기쁘고 아름답습니다. 사람이 연애를 하면 아까운 것이 없고 비밀이 없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용기가 생깁니다. 그 사랑의 기간이 짧아서 그렇지 그 사랑하는 마음이 평생 유지만 된다면 그 삶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예수를 그렇게 사랑했습니다. 일시적이 아니고 평생 동안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위해서 자신의 개인적인 행복은 모두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평생 그 한 사람 예수를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러니 그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입니까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여 자신의 인생을 다 바쳤다면 그 사람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때문에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또한 일평생을 아주 분주하게 살았습니다. 오늘은 갈라디아로, 내일은 에베소로, 모레는 빌립보로, 고린도로 매일같이 동쪽으로 서쪽으로 분주하게 돌아다녔습니다. 차가 있습니까, 교통편이 좋기를 했습니까 순전히 걸어서 돌아다녔습니다. 1차 전도여행 때는 2천㎞를 걸어 다녔습니다. 2차 전도여행 때는 3천㎞를 걸어 다녔습니다. 어느 한 날 마음 편히 잠잘 수 있는 잠자리도 없이 그렇게 분주하게 돌아다니면서 예수만 전하며 살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집이 없어서도 아니고 고향이 없어서도 아니고 순전히 예수 때문입니다. 예수를 전하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그 인생이 얼마나 고달팠겠습니까 오직 예수 때문에 하루도 안정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살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안정을 희구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나이가 들면 모두 노후 대책에 집착을 하게 됩니다. 좀더 편안하고 좀더 안정되고 좀더 풍성하게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은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살았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분주하게 살았지만 그것은 사업을 위해서도, 돈을 벌기 위해서도, 노년을 준비하기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순전히 예수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때문에 하루도 쉬지 못하고 평생을 바쁘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산 것입니다. 또 사도 바울은 평생 초라하게 살았습니다. 원래 바울은 초라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당시 부유한 명사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공부도 많이 하였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학문이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입신하기에 아주 좋은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조용히 살기만 했어도 얼마든지 큰 학자로 지도자로 설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를 만나면서부터 그런 학문이나 배경 그리고 평안과 일신상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스스로 초라한 전도자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의 평안이나 일신상의 안일들을 모두 벗어 버리고 스스로 굶고 헐벗고 하루라도 마음놓고 잠잘 수 있는 잠자리 하나 없는 그런 나그네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무능해서가 아니고 돈이 없어서가 아니고 방랑벽이 있어서가 아니고 순전히 예수 때문입니다. 예수를 전하는 일에 전념하다보니 하루도 안정된 삶을 살 수 없었습니다. 예수를 전하다 보니 자신을 가꿀 시간이 없었고 자신을 돌볼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평생 집 한 칸 장만할 여유도 없이 초라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니 그 인생이 얼마나 고달픈 일생입니까
그런데도 사도 바울은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지금 너무나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이 잠을 자고,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즐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저 자신이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너무 안주하는 것 같아서 부끄럽고 너무 평안한 것 같아서 부끄럽습니다. 사도 바울은 평생을 그렇게 초라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런 삶을 무엇보다도 행복해 했습니다. 그뿐 아니고 사도 바울은 곤욕을 치르며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인생은 한마디로 말하면 곤욕 인생입니다. 그 곤욕스런 인생의 단면이 본문에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고후11:23)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고후11: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고후11: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고후11:26)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고후11: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다메섹에서 아레다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새(고후11:33)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 났노라 ” 이것이 사도 바울의 전도 역정이고 인생 역정입니다.
한마디로 사도 바울은 곤욕스러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잘못해서도 아니고 실수해서도 아니며 죄를 지어서도 아닙니다. 그것은 순전히 예수 때문입니다. 예수를 전하다가 그런 곤욕을 당했습니다. 예수 때문에 수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단 한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고 원망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곤욕을 당하고 매를 맞으면서도 그는 만족해 했고 기뻐했습니다. 그것은 모두 예수 때문에 당하는 아픔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인생을 누가 건드릴 수 있습니까 누가 그를 실망시킬 수가 있고 누가 그를 넘어트릴 수가 있습니까 저주받으면 받을수록 좋아했고, 곤욕을 당하면 당할수록 더 만족해 했고, 옥에 가두면 그곳에서 찬송을 불렀고, 물에 빠지면 하늘이 그를 구원해 주었고, 법정에 세워 놓고 심문을 하면 일장연설로 복음을 전하니 누가 그를 당해 낼 수가 있습니까 그러니 그가 가는 길에 무엇이 거칠 것이 있고 누가 길을 막을 수 있으며 어떤 운명이, 어떤 사단이 그의 앞에 와서 그를 가로막고 방해를 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들이 정말 예수를 앞세우고 살아간다면 이런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내가 앞서가니까 장애물도 많고 함정도 많고 방해도 많은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를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언제나 혼자서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을 살아가기가 그렇게 힘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듯이 언제나 내 앞에 예수를 앞세우고 살아야 합니다. 얼마나 자신 있는 생활입니까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옥중에 앉아 있으면서도 밖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든지 살든지 나는 예수만을 위해서 산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확신에 찬 인생입니까 거기 어디에 원망이 자리잡고 탄식이 스며들며 후회의 소리가 나오겠습니까 참 멋있는 생활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멋이고 위력이고 힘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사도 바울은 자기에게도 한 가지 근심이 있노라고 고백합니다. “(고후11: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후11:29)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 여기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마음을 근심되게 하고 애타게 만드는 것은 먹을 것이나 자손이 없는 것이 아니고 인생이 기구해서도 아니며 바로 자기 동족 이스라엘이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 동족이 예수를 믿지 않고 불신해서 멸망당할 것을 생각하면 근심이 되고 애가 탄다는 말입니다. 로마서 “(롬9: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님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롬9:2)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님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롬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골육지친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나라 사랑은 이런 것입니다. 나라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원래 내용 있는 사람들은 말이 없는 법입니다. 그리고 정말 신앙이 있는 사람들은 시끄럽지 않습니다. 나타내지도 않습니다.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언제나 보면 조용합니다. 조용하면서도 자기의 할 일을 다합니다. 그리고 진정신앙이 깊은 사람은 용기도 있고 중심도 있고 예수에 대한 일편단심의 애정도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도 바울의 그와 같은 “오직 신앙”을 보게됩니다. 이제 우리는 또다시 사순절을 맞이했습니다. 사순절은 주님을 생각하고 그 주님을 깊이 마음으로 묵상하는 기간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 때문에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주님 때문에 새 생명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그 예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우리도 “예수 때문에”, “예수를 위하여”, “예수와 함께” 살며 함께 동행하고 일하며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 인생도 참 행복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이 사순절에 주님과 함께 살아가면서 주님을 깊이 묵상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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