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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채점표 (고전13: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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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채점방식인 ABCDEF로 표기하는 성적평가제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점수를 그대로 통지표에 기재했고 한때는 갑을병정으로 표기하기도 했습니다.그러다가 수우미양가로 표기한 때도 있었습니다. 점수나 학점은 노력과 시험에 대한 결과입니다.노력하고 공부한데 비례해서 성적은 올라가는 것입니다.그러나 성적과 인생은 동일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대학입학 성적이 350점이라고 해서 인생도 350점은 아닙니다.성적이 180점이라고 해서 인생도 180점은 아닙니다.-성적은 350점이지만 사람됨이나 그의 사는 모양은 180점짜리도 있고,비록 성적은 180점이지만 그의 인격과 삶은 350점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미국 대학의 경우를 보면 입학생을 선발할 때 종합적인 선발기준을 적용시킵니다.고등학교 시절의 성적,특별활동,특기 등을 종합 평가합니다.운동을 잘한다든지,특별 서클 활동을 했다든지,봉사활동의 리더였다든지 하는 것들이 입학전형에 결정적 영향을 줍니다.거기 비해 우리나라는 오직 성적입니다.반사회적 품성을 가졌든,이중인격을 가졌든 오로지 성적만 좋으면 들어갑니다. 미국식 전형방법이 인격인을 양성하는데는 더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앙을 채점하는 것도 비슷합니다.어느 한가지만을 잘했다고 신앙점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신앙생활은 전인격적 사건이기 때문에 한가지만으로 평가하거나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예를들면 교회 안에서의 신앙생활은 만점인 사람이 있습니다.예배출석 잘하고 기도도 열심으로 하고 성가대도 빠지지 않고 십일조도 부지런히 합니다.
그런데 교회 밖으로 나가면 세상 사람과 다를게 없습니다.할짓 다하고 마실 것 다마시고 갈곳 다 갑니다.이런 경우 교회안에서의 신앙생활만으로 만점을 매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모든 크리스찬들의 신앙생활은 크게 네가지로 분류됩니다.
첫째는 개인의 신앙생활입니다.자기 자신의 영성을 개발하고 믿음을 지켜나가는 개인적 신앙생활이 있습니다.
둘째는 가정신앙생활입니다.개인의 신앙관리를 제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가정신앙 생활에 실패하면 무의미합니다. 가정은 신앙의 보금자리입니다.가정 안에 주님이 늘 계시도록 가정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셋째는 교회 신앙생활입니다.교회는 성경에 비추러 교인들의 신앙규범과 방향을 수시로 제시합니다.그 규범을 따르고 순종해야 바른 신앙생활이 유지되고 지속됩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가 하라는 것은 해야 합니다.하지 말라는 것은 안해야 합니다.가자는 곳은 따라가고,가지말라는 곳은 가지 말아야 합니다. 먹어도 된다는 것은 먹고 먹지 말라는 것은 먹지 않아야 합니다.그것이 교회 신앙생활이며 바른 신앙인 것입니다.
넷째는 사회 신앙생활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가정에서는 모범적인 것 같고 교회에서는 착실한 교인인 것 같지만 일단 사회 속으로 끌려 들어가면 도저히 구분하기 어려운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어느 직장인한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5년정도 함께 일한 직장인이었는데 어느날 그가 교인이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는 것입니다.이유는 교인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리고 교인으로서의 품위나 모범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대기업 영업부장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다른 부서에서 일하던 사원이 영업부로 전임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그는 언제나 다른 직원들보다 15분120분을 먼저 출근하는가 하면 사무실을 정돈하곤 하더라는 것입니다 .태도며 언사들이 다른 사람과 다르기에 주목하며 지켜보았더니 늘 그 태도가 한결 같더라는 것입니다. 어느날 직원모임에서 본인이 기독교 신자라고 밝히더라는 것입니다. 천재도 만점은 없다고 합니다만 신앙생활을 평가해서 만점을 받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그러나 가장 좋은 점수의 신앙 생활은 개인,가정,교회,사회 안에서 일관되고 한결같은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12월은 점수의 계절입니다. 고등학교 입학이 점수로 결정됩니다.대학 입학이 점수로 판가름 됩니다. 대통령 선거가 표차로 결판날 것입니다.그리고 금년 일년동안 있었던 우리들의 신앙생활도 채점되고 마무리 해야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우리들이 채점해야 될 네 가지 사실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1.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신가 5절 하반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5절 앞부분에서 “너희가 믿음이 있는가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했고 뒷부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너희 안에 계신가”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믿음이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계시다는 것과 그분이 구주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계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셨고 지금도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최상의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내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부모와 함께 집안에 있는 아이들은 겁날 것이 없습니다.그러나 부모가 외출한 집에 혼자 남아있는 아이는 두렵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가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서울 어느 곳에서 일하거나 볼일을 보고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부모가 집에 없으면 두렵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주님은 온 우주 어느 곳에나 계십니다.우주는 하나님이 지으셨고 땅도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그러나 그 주님이 내안에 계시고 내가 주님안에 있다는 믿음이 없으면 불안합니다. 소유가 있어도 불안하고 없어도 불안한 것은,지위가 높아도 불안하고 낮아져도 불안한 것은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신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2.내가 바로 살고 있는가 7절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리운자 같을찌라도 너희로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고 했습니다. 7절은 세 가지를 교훈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우리로 악을 행하지 않도록 도와 주시고 힘을 주셔야 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 누구도 자기가 옳다는 것을 자랑하고 나타낼 수는 없다는 것이고
셋째는 선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7절은 바로 사는 사람이 지녀야 할 태도를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바로 산다는 것,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종이 위에 붓으로 선을 그어 보십시오.아무렇게나 선을 긋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그러나 바르게 곧게 선을 긋는 것은 어렵습니다. 인생을 아무렇게나 살고 신앙생활이나 교회 생활을 아무렇게나 하는 것은 쉽습니다.그러나 바로 믿고 바로 사는 것은 종이에 일직선을 긋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입니다.그러기에 성경은 선을 행함으로 의로워지거나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조건은 믿음입니다.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거기에 합당한 생활이 요구되는 것입니다.바로 그것이 행함인 것입니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그 학교의 학칙을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그러나 일단 입학하고 학생이 되고나면 학칙을 철저하게 지켜야 합니다. 젊은이가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는 제멋대로 살아도 되지만 일단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고 나면 어림도 없습니다.정한 시간에 일어나고 자야 합니다.정한 시간에 먹고 모이고 쉬어야 합니다. 예수를 안믿고 지옥갈 사람들은 성경대로 살 필요도 없고,교회법을 따를 필요도 없습니다.그러나 예수믿고 예수의 군사가 된 사람은 그 법을 따르지 않으면 안됩니다.바로 살고 선을 행해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3.진리를 위해 살았는가 8절을 보면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라고 했습니다. 8절은 두 가지 교훈합니다.
첫째는 진리를 거스리면 아무 것도 되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역하는 것은 진리에 대한 도전입니다.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거역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은 몇천만개의 달걀을 던져야 남산을 무너뜨릴 수 있느냐는 질문보다 더 어리석은 것입니다.도전이 불가능한 것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충주호나 팔당호 그리고 미국의 미시간 호수나 온타리오 호수의 물을 다퍼내고 바닥이 드러나게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태평양이나 대서양의 물을 다 퍼내고 바닥을 드러나게 할 수는 없습니다.이유는 육지보다 바다가 더 넓고 크기 때문입니다. 누가 진리를 거스릴 수 있습니까. 누가 예수님에게 싸움을 걸 수 있습니까 싸움을 걸었던 구약의 모든 열국들이 한결같이 무너졌습니다.공산주의의 태조인 칼마르크스나 레닌도 죽었습니다.무신론자 볼테르도 죽었습니다.천황이라고 자칭하던 일본의 국왕도 죽었습니다.진리는 거스리면 안됩니다.
둘째는 진리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위해 산다는 것은 예수님을 위해 산다는 것입니다.예수님을 위해 산다는 것은 예수님을 높이고 섬기고 순종하고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좋다는 것은 나보다 예수님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내일보다 주님의 일쪽에 우선권을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뜻보다 주님의 뜻을 더 받들고 순종하는 것이 진리를 위하여 사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생활이 점수 높은 생활인 것입니다.
4.평안한가 11절을 보면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 하며 평안할찌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고 했습니다. 11절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결과를 설명하고 있습니다.한마디로 그것은 기쁘고 즐겁고 위로가 있고 그리고 평안하다는 것입니다. 나의 신앙이 몇점이나 되는가 하는 것은 신앙생활의 결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다시 말하면 답안지를 놓고 채점표를 만든다는 말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평안한 것입니다. 믿지 못하면 불안합니다. 믿지 못하면 안심이 되질 않습니다.내가 예수 믿고난 후 마음이 평안해졌다면 그것은 점수가 올라갔다는 증거입니다.그러나 믿기 전이나 믿고 있는 지금이나 매한가지라면 아직도 내 믿음이 합격점 이하를 밑돌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신앙생활은 종합적 사건이기 때문에 점수 역시 평균점수를 내야 합니다. 기도를 잘하는데 교회 봉사가 약하다든지,헌금은 잘하는데 기도를 안한다든지,봉사는 하는데 예배출석을 안한다든지 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종합평가에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우린 지금 12월의 중반에 서있습니다.각자 스스로 자신의 신앙과 삶을 채점해 보십시다. 몇점이나 될 것 같습니까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자동차의 엔진을 점검하듯 우리의 믿음과 생활도 수시로 점검해야 합니다. 때때로 피아노를 조율하듯 우리의 신앙도 조율해야 합니다. 내 믿음은 몇점이나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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