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뜻대로 살자 (살전5:16-18)
본문
우리는 지난 시간에 주님의 뜻에 대한 표준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로 성경적이어야 하고,
둘째로 신앙적이어야 하며,
셋째로 성령님의 인도라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성경이 말하는 구체적인 주의 뜻은 무엇인지 오늘 아침에는 이것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성경에 바로 “이것이 주의 뜻이다”라고 규정한 곳이 있는데 다름아닌 본문입니다. 본문 8절의 “이는” 이라는 단어는 지시대명사인데 어떤 것을 지시하는 단어입니까 앞의 세가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지시하는 대명사 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안에서 믿는 우리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자-이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이대로 살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죠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가 좀 못합니다. 바로 앞에 붙은 단어들 “항상”,“쉬지말고”,“범사”란 말 때문입니다. 그저 간단히 “기뻐하라”,“기도하라”,“감사하라” 만 했다면 별문제가 없었을텐데 왜 선행 부사가 붙어 있을까 이것 때문에 정말 고민이 됩니다. 어떻게 보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인데 굉장히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래서 하나씩 하나씩 연구해 보려고 합니다.
1. 항상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는 반대로 기뻐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뻐하라”고 했으니 기뻐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기뻐해야 합니다. 기뻐하지 않으면 주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죄가 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반문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원 전도사님도, 기쁜일이 있어야 기뻐하죠 한숨쉴 일만 가득한데 어떻게 항상 기뻐합니까” 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그래도 기뻐해야 합니다. 이제부터 한숨쉴 일만 있어도 왜 기뻐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쁨”의 원어의 뜻은 “늘, 언제나.”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늘 솟아나는 샘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기쁨은 “언제나”의 기쁨입니다. 항상 실실대고 웃는 사람을 보고 사람들은 허파에 바람들어갔다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믿는 자들은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야 하는데 바로 성령님의 바람입니다. 성령님이 여러분의 허파를 지배하면 항상 기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죽을 먹어도 허허, 밥을 먹어도 허허, 라면을 먹어도 허허, 심지어는 먹을 것이 없어 굶게 되었는데도 허허 합니다.
그런데 이론이야 틀림없지만 이러한 기쁨이 실생활 속에서 가능하겠습니까 이것이 고민입니다. 살다보면 하루 12번도 더 화날일이 생기는데 어떻게 기뻐하며 살 수 있단 말입니까 여러분 중 이 말씀은 확실히 우리의 현실에 맞지 않는 말씀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혹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현실성이 없는 말을 한것입니까 혹 몇번은 참는다 하더라도 전부를 참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혹 오늘은 참는다 하더라도 내일은 참을 수 없지 않습니까 혹 이번주는 참는다 하더라도 다음주는 다 참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 365일 내내 참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럼 이 말씀은 포기해야만 합니까 포기하기 전에 잠간 기다려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절대로 우리가 못할 것을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표면적으로 볼 때 본문은 불가능한 말씀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분명히 가능한 길이 있습니다. 그길이 어떤 길입니까 오늘은 그길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빌4:4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보면 바로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주 안”은 어떤 상태를 말합니까 내가 주님안에 갇혀있는 상태를 “주 안”의 상태라고 합니다. 바로 이상태에 있을 때만이 “항상 기뻐”가 가능한 것입니다.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앞길 멀고험해도 나주님만 따라가리” 주안에 있을 때에만이 비로소 그 무거운짐이 다 풀어지니 저절로 항상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천로역정의 기독도가 십자가밑에서 그 무거운 짐이 벗겨졌을때 아무리 천성길이 고달퍼도 그 고달픔 자체가 기쁨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주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내 앞길이 멀고 험해도 내 주님만 따라가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두려움이 변하여 내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변하여 내노래되었네” “내주는 자비하셔서 늘함께 하시고 내궁핌함을 아시고 늘채워주시네” “내주와 맺은 언약은 영불변하시니 그나라가기 까지는 늘보호하시네” 두려움이 변하여 감사제목이 되었고 전날의 한숨이 노래가 되었는데 어찌 기쁨이 없겠습니까 내궁핍함을 아시는 주님이 날마다 채워주시는데, 그나라 가지 까지 영원히 보호해 주시는데 어찌 그안에 기쁨이 없겠습니까 주안에 거하기만 하면 평생 기뻐하며 사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또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주님이 어디계십니까 어디계신지 알아야 그안에 거할것이 아니겠습니까 성경은 주님안에 거하는 실제적인 방법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요일 3:24절을 펴보시기 바랍니다. 그곳에 보면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주안에 거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즉 계명을 지키는 것이 곧 주안에 거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계명을 지킬때는 주안에 사는 것이요 계명을 지키지 아니할 때는 주 밖에서 사는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내가 계명을 지키는 것이 곧 주안에 사는 증거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 추석 명절때 과연 여러분이 게명대로 삶으로 주안에 거했는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주일지키는 것, 아무리 추석이라도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십일조 드리는 것, 아무리 뜻하지 않은 추석 보너스라도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는 것, 아무리 차례상을 푸짐하게 차렸어도 먹지 말아야 할 계명입니다. 말씀지키는 것은 곧 계명지키는 것이요 이는 곧 주안에 거하느냐 주 밖에 거나느냐가 결정되어집니다. 이에 따라 항상 기뻐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2. 쉬지말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도 그냥 기도하라고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쉬지말고”라는 말 때문에 지키기 어려운 말씀같습니다. 같은 말로 눅18장에는 “항상 기도하라”고 했고 엡6장에는 “무시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왜 한번도 끊이지 않고 계속이라는 뜻을 가진 “쉬지말고”라는 말을 넣어 기도하라고 했을까요 그 이유는 기도가 영적인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호흡은 숨쉬는 것입니다. 때문에 무슨일이 있어도 멀출 수 없는 것이 바로 호흡입니다. 기도가 바로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 기도 구멍이 막히면 우리의 영은 질식하게 됩니다. 때문에 기도는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명이 산소를 들여마셔야만 살 수 있듯이 영적 생명 또한 하나님으로 부터 지음받았기에 하나님을 들여마셔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 안하면 죄가 됩니다. 이 죄가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 알았던 사무엘은 결단코 기도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노라고 결심하기도 했습니다.(삼상 12:23) 누가 호흡을 쉬면서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기도도 호흡이기에 쉬지말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쉬지말라는데 있습니다. 그럼 밤낮 예배당에서 기도하며 살란 말입니까 그럼 언제 가정생활하며 언제사회생활합니까 이런 의미의 쉬지말고 기도는 불가능합니다. 그럼 성경이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했단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잠안자고 안먹고 .하루 24시간 예배당에서 무릎꿇고 앉아 있는 것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주님 자신도 그리하지 아니하셨고 말입니다. 기도에는 4종류의 기도가 있습니다. 말기도와 마음기도와 생활기도와 자체기도가 있습니다. 무시로 기도하는 것, 물론 말기도로 불가능합니다. 그럼 마음기도로는 가능합니까 역시 불가능합니다. 생활기도로도 어렸습니다. 내 자신이 바로 자체 기도의 사람이 되었을 때 비로소 무시로의 기도가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체 기도의 사람이 되는 것은 하루아침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먼저 말기도를 위해 정한 시간을 갖고 길들여 져야 합니다. 다음에 기도시간도 길게 잡고 횟수도 늘려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기도가 가능해 지며 그러다 보면 삶 전체가 기도가 되는 생활기도가 되는 것이며 생활기도가 제 2천성이 되어 습관화가 되어질 때 비로소 내 자신이 기도의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다 니엘이 하루아침에 기도의 사람이 된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무슨일이 있어도 (죽음이 온다해도) 하루에 세번 기도하는 시간은 지켰습니다. 그것이 다니엘을 자체 기도의 사람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화여대 초대 총장이셨던 김환란 박사님이 어려서 선교사의 집에 기거할 때 선교사로부터 많은 신앙훈련을 받았는데 선교사는 김환란에게 하루 세번씩 기도할 것을 명했습니다. 어느날 저녁 잠자기전 선교사는 김환란에게 하루 세번 기도했는가를 확인하려고 물었을 때 김환란은 한번밖에 안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선교사가 왜 한번밖에 안했느냐고 책망하자 김환란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예,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하기 시작해서 오늘 하루종일 기도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멈춰서는 아니됩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뭐니뭐니해도 교회는 기도로 엎드리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이 엎드리는 기도가 끊이지 않고 계속될 때 그 기도로 인하여 자체기도의 사람이 되어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자체 기도의 사람이 되어지시기를 축원드립니다.
3.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는 매사에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좋은 일뿐만 아니라 좋지 않은 일에도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대개 좋은 일에만 감사하는데 좋지 않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알아야 겠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자신의 두아들이 공산당의 손에 죽었을 때 그 장례식 답사에서 10가지 이유를 들어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자식이 둘씩이나 죽었는데 무슨 감사가 나오겠습니까 그것도 10가지씩이나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행복한 일에만 감사하지 말고 불행한 일에 대해서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어떤 불행이 닥쳤다면 그것은 더 큰 행복을 주시기 위한 발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게 주신 것만 가지고 감사하지 말고 남에게 주신 것을 가지고도 감사해야 합니다. 내것만 가지고서는 범사에 감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바울은 항상 자기가 구원받은 것뿐 아니라 그의 서신을 보면 “너희로 인하여 감사하노라”라고 반드시 써있습니다. 교회안에서 다른 사람이 감사할 일이 생기면 은근히 시기 질투가 난다면 범사에 감사는 어림없는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땅에 일만 가지고 감사할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 하나님과 관게된 일에 대해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기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오히려 이것이 복음의 진보를 가져왔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와 같이 수평적 조건과 수직적 조건 속에서 감사해 보십시오. 그러면 범사에 감사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그리고 구체적으로 알았습니다. 이 말씀대로 사시므로 말씀대로의 사람이 되어지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첫째로 성경적이어야 하고,
둘째로 신앙적이어야 하며,
셋째로 성령님의 인도라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성경이 말하는 구체적인 주의 뜻은 무엇인지 오늘 아침에는 이것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성경에 바로 “이것이 주의 뜻이다”라고 규정한 곳이 있는데 다름아닌 본문입니다. 본문 8절의 “이는” 이라는 단어는 지시대명사인데 어떤 것을 지시하는 단어입니까 앞의 세가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지시하는 대명사 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안에서 믿는 우리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자-이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이대로 살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죠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가 좀 못합니다. 바로 앞에 붙은 단어들 “항상”,“쉬지말고”,“범사”란 말 때문입니다. 그저 간단히 “기뻐하라”,“기도하라”,“감사하라” 만 했다면 별문제가 없었을텐데 왜 선행 부사가 붙어 있을까 이것 때문에 정말 고민이 됩니다. 어떻게 보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인데 굉장히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래서 하나씩 하나씩 연구해 보려고 합니다.
1. 항상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는 반대로 기뻐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뻐하라”고 했으니 기뻐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기뻐해야 합니다. 기뻐하지 않으면 주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죄가 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반문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원 전도사님도, 기쁜일이 있어야 기뻐하죠 한숨쉴 일만 가득한데 어떻게 항상 기뻐합니까” 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그래도 기뻐해야 합니다. 이제부터 한숨쉴 일만 있어도 왜 기뻐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쁨”의 원어의 뜻은 “늘, 언제나.”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늘 솟아나는 샘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기쁨은 “언제나”의 기쁨입니다. 항상 실실대고 웃는 사람을 보고 사람들은 허파에 바람들어갔다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믿는 자들은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야 하는데 바로 성령님의 바람입니다. 성령님이 여러분의 허파를 지배하면 항상 기뻐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죽을 먹어도 허허, 밥을 먹어도 허허, 라면을 먹어도 허허, 심지어는 먹을 것이 없어 굶게 되었는데도 허허 합니다.
그런데 이론이야 틀림없지만 이러한 기쁨이 실생활 속에서 가능하겠습니까 이것이 고민입니다. 살다보면 하루 12번도 더 화날일이 생기는데 어떻게 기뻐하며 살 수 있단 말입니까 여러분 중 이 말씀은 확실히 우리의 현실에 맞지 않는 말씀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혹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현실성이 없는 말을 한것입니까 혹 몇번은 참는다 하더라도 전부를 참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혹 오늘은 참는다 하더라도 내일은 참을 수 없지 않습니까 혹 이번주는 참는다 하더라도 다음주는 다 참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 365일 내내 참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럼 이 말씀은 포기해야만 합니까 포기하기 전에 잠간 기다려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절대로 우리가 못할 것을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표면적으로 볼 때 본문은 불가능한 말씀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분명히 가능한 길이 있습니다. 그길이 어떤 길입니까 오늘은 그길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빌4:4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보면 바로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주 안”은 어떤 상태를 말합니까 내가 주님안에 갇혀있는 상태를 “주 안”의 상태라고 합니다. 바로 이상태에 있을 때만이 “항상 기뻐”가 가능한 것입니다.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앞길 멀고험해도 나주님만 따라가리” 주안에 있을 때에만이 비로소 그 무거운짐이 다 풀어지니 저절로 항상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천로역정의 기독도가 십자가밑에서 그 무거운 짐이 벗겨졌을때 아무리 천성길이 고달퍼도 그 고달픔 자체가 기쁨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주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내 앞길이 멀고 험해도 내 주님만 따라가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두려움이 변하여 내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변하여 내노래되었네” “내주는 자비하셔서 늘함께 하시고 내궁핌함을 아시고 늘채워주시네” “내주와 맺은 언약은 영불변하시니 그나라가기 까지는 늘보호하시네” 두려움이 변하여 감사제목이 되었고 전날의 한숨이 노래가 되었는데 어찌 기쁨이 없겠습니까 내궁핍함을 아시는 주님이 날마다 채워주시는데, 그나라 가지 까지 영원히 보호해 주시는데 어찌 그안에 기쁨이 없겠습니까 주안에 거하기만 하면 평생 기뻐하며 사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또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주님이 어디계십니까 어디계신지 알아야 그안에 거할것이 아니겠습니까 성경은 주님안에 거하는 실제적인 방법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요일 3:24절을 펴보시기 바랍니다. 그곳에 보면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주안에 거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즉 계명을 지키는 것이 곧 주안에 거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계명을 지킬때는 주안에 사는 것이요 계명을 지키지 아니할 때는 주 밖에서 사는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내가 계명을 지키는 것이 곧 주안에 사는 증거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 추석 명절때 과연 여러분이 게명대로 삶으로 주안에 거했는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주일지키는 것, 아무리 추석이라도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십일조 드리는 것, 아무리 뜻하지 않은 추석 보너스라도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는 것, 아무리 차례상을 푸짐하게 차렸어도 먹지 말아야 할 계명입니다. 말씀지키는 것은 곧 계명지키는 것이요 이는 곧 주안에 거하느냐 주 밖에 거나느냐가 결정되어집니다. 이에 따라 항상 기뻐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2. 쉬지말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도 그냥 기도하라고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쉬지말고”라는 말 때문에 지키기 어려운 말씀같습니다. 같은 말로 눅18장에는 “항상 기도하라”고 했고 엡6장에는 “무시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왜 한번도 끊이지 않고 계속이라는 뜻을 가진 “쉬지말고”라는 말을 넣어 기도하라고 했을까요 그 이유는 기도가 영적인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호흡은 숨쉬는 것입니다. 때문에 무슨일이 있어도 멀출 수 없는 것이 바로 호흡입니다. 기도가 바로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 기도 구멍이 막히면 우리의 영은 질식하게 됩니다. 때문에 기도는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명이 산소를 들여마셔야만 살 수 있듯이 영적 생명 또한 하나님으로 부터 지음받았기에 하나님을 들여마셔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 안하면 죄가 됩니다. 이 죄가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 알았던 사무엘은 결단코 기도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노라고 결심하기도 했습니다.(삼상 12:23) 누가 호흡을 쉬면서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기도도 호흡이기에 쉬지말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쉬지말라는데 있습니다. 그럼 밤낮 예배당에서 기도하며 살란 말입니까 그럼 언제 가정생활하며 언제사회생활합니까 이런 의미의 쉬지말고 기도는 불가능합니다. 그럼 성경이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했단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잠안자고 안먹고 .하루 24시간 예배당에서 무릎꿇고 앉아 있는 것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주님 자신도 그리하지 아니하셨고 말입니다. 기도에는 4종류의 기도가 있습니다. 말기도와 마음기도와 생활기도와 자체기도가 있습니다. 무시로 기도하는 것, 물론 말기도로 불가능합니다. 그럼 마음기도로는 가능합니까 역시 불가능합니다. 생활기도로도 어렸습니다. 내 자신이 바로 자체 기도의 사람이 되었을 때 비로소 무시로의 기도가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체 기도의 사람이 되는 것은 하루아침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먼저 말기도를 위해 정한 시간을 갖고 길들여 져야 합니다. 다음에 기도시간도 길게 잡고 횟수도 늘려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기도가 가능해 지며 그러다 보면 삶 전체가 기도가 되는 생활기도가 되는 것이며 생활기도가 제 2천성이 되어 습관화가 되어질 때 비로소 내 자신이 기도의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다 니엘이 하루아침에 기도의 사람이 된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무슨일이 있어도 (죽음이 온다해도) 하루에 세번 기도하는 시간은 지켰습니다. 그것이 다니엘을 자체 기도의 사람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화여대 초대 총장이셨던 김환란 박사님이 어려서 선교사의 집에 기거할 때 선교사로부터 많은 신앙훈련을 받았는데 선교사는 김환란에게 하루 세번씩 기도할 것을 명했습니다. 어느날 저녁 잠자기전 선교사는 김환란에게 하루 세번 기도했는가를 확인하려고 물었을 때 김환란은 한번밖에 안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선교사가 왜 한번밖에 안했느냐고 책망하자 김환란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예,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하기 시작해서 오늘 하루종일 기도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멈춰서는 아니됩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뭐니뭐니해도 교회는 기도로 엎드리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이 엎드리는 기도가 끊이지 않고 계속될 때 그 기도로 인하여 자체기도의 사람이 되어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자체 기도의 사람이 되어지시기를 축원드립니다.
3.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는 매사에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좋은 일뿐만 아니라 좋지 않은 일에도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대개 좋은 일에만 감사하는데 좋지 않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알아야 겠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자신의 두아들이 공산당의 손에 죽었을 때 그 장례식 답사에서 10가지 이유를 들어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자식이 둘씩이나 죽었는데 무슨 감사가 나오겠습니까 그것도 10가지씩이나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행복한 일에만 감사하지 말고 불행한 일에 대해서도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어떤 불행이 닥쳤다면 그것은 더 큰 행복을 주시기 위한 발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게 주신 것만 가지고 감사하지 말고 남에게 주신 것을 가지고도 감사해야 합니다. 내것만 가지고서는 범사에 감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바울은 항상 자기가 구원받은 것뿐 아니라 그의 서신을 보면 “너희로 인하여 감사하노라”라고 반드시 써있습니다. 교회안에서 다른 사람이 감사할 일이 생기면 은근히 시기 질투가 난다면 범사에 감사는 어림없는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땅에 일만 가지고 감사할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 하나님과 관게된 일에 대해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기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오히려 이것이 복음의 진보를 가져왔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와 같이 수평적 조건과 수직적 조건 속에서 감사해 보십시오. 그러면 범사에 감사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그리고 구체적으로 알았습니다. 이 말씀대로 사시므로 말씀대로의 사람이 되어지시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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