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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를 생활화하는 믿음 (살전5: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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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사(凡事)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많이 배우고 많이 들었던 말씀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깊이 음미해 보면 감사를 생활화하라는 말씀입니다.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모든 경우에 감사한다는 뜻이요 행복하던 불행하던 관계없이 감사한다는 뜻이요 사업이 잘되는지 못되는지 관계없이 감사한다는 뜻이요 몸에 병이 들었던지 건강하던지 관계없이 항상 감사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범사에 감사한 사람이란 바로 감사를 생활화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기독교는 감사와 축복의 종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는 복이란 말과 감사란 말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창1:1절의 “태초에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말씀 그 자체가 바로 축복이 말씀이며 창 1:28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라고 하신 말씀도 모두 인간을 향한 복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의인들의 생활과 역사는 모두 감사의 생활과 역사였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되어 있는 아벨의 제단을 비롯하여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선지자, 제사장, 왕들의 역사도 한마디로 요약하면 감사의 생활을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1. 감사의 조건 현대인들은 옛날 사람들에 비해 수천 수만배 더 많은 문명의 혜택을 받고 살기 때문에 감사의 조건도 그만큼 많고 커야 합니다.
1) 생활수준의 향상과 지식의 팽창으로 사람들이 유식해 졌습니다. 오늘날의 지식지수는 매 6년마다 배로 증가하고 전자 과학의 발달은 매3년마다 배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유식한 사람이라 해도 6년동안 공부하지 않으면 6년 후에는 무식한 사람이 되며 아무리 첨단 과학 기계라 해도 3년간 개발하지 아니하면 노폐물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많은 지식으로 인하여 더 많이 감사해야 합니다.
2) 과학의 발전으로 생활이 얼마나 편리해 졌는지 모릅니다. 19세기 이후 과학의 발달은 우주를 왕복하리 만큼 발달되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인간들의 생활도 말로 할 수 없이 편리해졌습니다. 옛날에는 배로 한달 두달 걸리던 거리가 지금은 12시간 정도면 됩니다. 한가지 사건도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볼 수 있을 정도로 통신이 발달되었습니다. 생필품과 전자제품도 얼마나 편리한지 알 수 없습니다. 30년, 50년, 70년, 100년전에 비해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에 살았던 사람들보다 지금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감사해야 합니다.
3) 자연자원의 개발로 물질적 풍요도 말할 수 없이 풍성해 졌습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식량이 부족하고 의식주 문제가 심각하다고는 하지만 세상에서 생산된 물자들을 균형있게 분배해서 사용한다면 세계 인구가 생존하는데는 아무런 불편이 없습니다. 6.25때 한국의 G.N.P가 1인당 60불 이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80불이었던 것이 지금은 1만불을 육박하고 있으니 우리 한국인의 경제도 그 때 당시에 비하면 100배 이상 성장한 것입니다. 불과 30-40년 사이에 어마어마한 성장을 했으니 이 얼마나 하나님의 축복입니까 미국에 있는 고양이가 먹는 식사와 아프리카 전 인구가 먹는 식량이 맞먹는 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미국 사람이 먹고 버린 음식을 절약한다면 인도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미국 사람이 한 끼니씩만 굶으면 르완다의 인구 100만명을 살릴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 미국의 인구는 세계 인구의 1/20밖에 되지 않지만 석유 사용량은 세계 사용량의 60%나 된다고 합니다. 우리 집 앞에 혼자 사는 할머니는 일년에 두번씩 쓸만한 물건을 거리에서 내다 팝니다. 우리도 계절이 바뀌어질 때마다 많은 물건들과 옷가지들을 처분합니다. 미국이 얼마나 풍유한 나라이며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감사의 조건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옛날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감사할 줄 모르며 살고 있습니다. 현대인에게는 감사할 수 없는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2. 현대인이 감사하지 않는 이유
1)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욕심이 감사를 생활화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감사를 생활화하려면 무엇보다 욕심의 적을 사람들의 마음에서 제거해 버려야 합니다. 탐욕스런 사람의 마음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성경은 전도서 1:7-8절입니다. “모든 강물은 바다로 흐르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이 말씀은 인간의 마음을 가장 잘 묘사하는 시입니다. 실로 사람의 마음은 밑이 뚫어진 시루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욕심을 부려도 일생동안 쌀 80가마도 못 먹고 죽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그마한 창자 하나 채우지 못해 공중에 나는 새보다 더 허덕이고 돼지 우리에 있는 돼지보다 더 욕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어떤 기자가 연수입이 13.000불인 월급쟁이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연수입이 얼마입니까 13.000불입니다. 얼마쯤 받으면 만족하겠습니까 약 3만불 정도면 만족하겠습니다. 그 기자가 다시 3만불 받는 월급쟁이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의 연수입이 얼마나 됩니까 약 3만불입니다. 그럼 당신은 연수입이 얼마나 되면 만족하겠습니까 5만불 정도면 되겠습니다. 다시 기자는 연수입이 5만불인 사람에게 가서 물었더니 그 사람은 12만불 정도면 되겠다는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실로 인간의 마음은 밑이 뚫어진 시루와 같습니다. 눈은 일생을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우리의 지체중 가장 작은 부분이지만 일생을 들어도 차지 않는다는 말이 과연 옳은 말씀입니다. 사람은 이처럼 탐욕스런 욕심 때문에 감사를 생활화하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가진 것 없이 가난해도 내가 세상에 태어날 때보다는 부자입니다. 6.25사변 때에 비하면 100배 1.000배 더 부자입니다. 감사를 생활화합시다.
2) 개인적 이기주의 때문에 감사를 생활화하지 못합니다. 인간이 욕심과 함께 개인적 이기주의를 추방하면 감사를 생활화할 수 있습니다. 산업 사회에 있어서 가장 큰 두 가지 폐단은 개인적 이기주의와 상호 경쟁주의 입니다. 개인적 이기주의란 나만은 살아야 한다, 나만 살면 된다는 심리 때문에 다른 사람은 돌아보지도 않는 사회를 말합니다. 공익 사회가 죽어 버리고 사회의 도의가 땅에 떨어지고 만 사회입니다. 개인적 이기주의에서 오히려 상호협력주의가 없어지게 되고 상호경쟁주의가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제일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최고, 제일이란 말입니다. 선전할 때 보십시오. 자동차를 선전할 때 보면 자동차를 선전할 때는 최고의 효과, 최고의 만족을 드리는 차라고 선전합니다. 또 제일 싸고 제일 좋은 화장품이라고 선전합니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효과가 좋은 한약이라고 선전합니다. 이와 같은 경쟁 속에서 사회는 점점 암울해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이기주의, 경쟁주의 때문에 감사를 생활화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3) 자족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감사를 생활화하지 못합니다.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는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沈淪)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 6:6-9). 거머리에게 두 딸이 있어 족한 줄 알지 못하여 다고 다고(Give! Give!)한다고 했습니다(잠 30:15). 거머리의 다고 다고 하는 두 딸은 인간의 무한한 욕심을 의미하는 바 자족할 줄 모르는 탐심은 결코 감사를 생활화할 수 없게 만듭니다.
4) 감사를 생활화할 수 없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는 바로 사탄의 방해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감사를 방해합니다. 사탄은 모든 것을 다하라, 그러나 감사하다란 말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탄은 성도가 감사하다라는 말을 하는 것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입니다.
3. 감사를 생활화합시다. 감사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고귀하고 가장 성숙한 도덕적 표현입니다. 세상에서 감사하다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입니다. 감사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수평적 감사입니다. 청교도들이 첫 해 농사를 짓고 인디언들과 더불어 감사했습니다. 우리도 수평적인 감사를 합니다. 부모에게 감사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감사합니다. 형제와 형제끼리 감사하며 이웃과 이웃끼리 감사합니다. 문화인들이 가장 먼저 배운 말은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실례합니다”였습니다. 또 “좋은 날이 되십시오”(Have a nice day!)라는 말은 얼마나 기분이 좋은 말입니까
둘째로 수직적 감사입니다. 수직적 감사란 위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을 뜻합니다. 시편 136편은 감사의 시입니다. 감사의 달에 우리는 시편 136편을 암송합시다. 시편 136편은 감사의 조건 26가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성경을 읽고 감사의 달에 감사를 생활화하시길 바랍니다. 수직적 감사와 수평적 감사가 잘 조화될 때 거기에 십자가의 감사가 있게 됩니다. 감사를 생활화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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