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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이해의 차이 (살전4:13-18)

본문

아마 세상에서 생각하기 싫고, 설명이 어려운 것은 죽음의 문제 일 것 입니다. 그 이유는 죽음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죽음이라는 문제를 속시원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풀어서 설명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병원에서 환자들이 치료를 받다가 죽어가는 모습을 매일 보는 의사들도 죽음에 대하여 속 시원한 해답을 주지 못합니다. 죽음에 대한 해답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 죽음의 문제는 생각하기 조차 싫어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까, 데살로니가 교회에 잠자는 자가 있었습니다. 이 잠자는 자란 예수 믿다가 죽은자들을 말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여 살것을 믿기 때문에 죽음을 잠시 잠자고 있는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던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죽음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큰 슬픔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렇게 믿음이 좋고 훌륭한 자의 죽음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커다란 두려움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죽음의 문제는 학문적인 문제나, 이론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아주 실제적인 문제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곧, 당하게 될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문제를 속히 해결을 해야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이 죽음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는 자가 없습니다. 이 죽음의 문제를 속시원하게 풀어 줄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이 문제의 해답을 알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죽어서 가게될 하늘나라에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죽음 너머에는 무엇이 있고, 죽음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죽음의 문제로 두려움과 슬픔에 빠져 있는데도 그들을 도와 줄 수가 없어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죽음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령님의 가르치심과 도우심으로 이 죽음의 문제를 데살로니가 교회에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죽음에 대하여 설명을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죽음의 문제를
첫째 죽은 자의 부활의 문제와 예수님의 재림의 문제를 가지고 풀었습니다. 죽음의 문제의 해답은 예수님의 부활과 재림에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문제를 풀때, 믿는 자의 죽음과 믿지 않는 자의 죽음을 비교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간 믿는 자의 죽음과 믿지 않는 자의 죽음을 비교하며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이 비교를 통하여 우리 인류의 가장 중요한 문제, 온 인류가 풀 수 없어 두려움과 슬픔속에 빠져야만 했던 이 죽음의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하려고 합니다.
1. 믿는 자는 죽음에도 소망이 있으나, 믿지 않는 자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모든 것의 끝 입니다.
그런데 믿는 자들에게는 죽음에도 소망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지만, 믿는 자들에게는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게는 죽음에서도 바랄 것이 있습니다.(살전4:13) 그러면 믿는 자들이 죽음에서도 바라는 소망은 무엇일까요 내 자신이 죽어 이 땅에서 완전히 썩어 없어지고, 지금까지 죽었다가 다시 살아 온 자는 한 사람도 없으니, 다시는 이 땅에 돌아 오지 못할 것인데, 그런 죽음에서 바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사랑하는 자가 죽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믿는 자들이 바라는 소망이란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 문제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대답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1) 우리의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갔는지를 알고 계시는 성령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성령님은 천국에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우리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거기에 가서는 무엇을 하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그 성령님이 사랑을 하는 자를 먼저 보내고 슬퍼하는 자들에게 그들이 이러한 곳에 갔으며, 그곳에서 앞으로 이런 삶을 살 것이고 가르쳐 주십니다. 또 죽음 앞에서 불안해 하고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장차 그들이 가게 될 죽음 너머의 세계를 가르쳐 줍니다. 그곳은 어디에 있으며, 그곳의 생활은 어떠한지를 자세히 가르쳐 줍니다.
(2) 하나님의 약속의 위로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죽은 자들은 다 천국에 데려 간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가 천국에 갔다는 믿음으로 위로를 받습니다. 제주도를 三多 三無의 섬이라고 합니다. 제주도에는 바람과 돌과 여자가 많습니다. 그리고 대문이 없고, 거지가 없고, 도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천국도 三無의 나라입니다. (계21:4) 말씀을 보면 천국에는 사망이 없고, 슬픔이 없고, 아픈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자가 이렇게 좋은 나라에 갔는데 우리가 더 슬퍼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고후5:8) 말씀을 보면 믿는 자들은 죽어서 천국에 가서 살고 있다고 삼층천을 다녀온 바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그들을 더 좋은 곳에서 만나게 됩니다. 이런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자가 죽었어도, 그들에 대한 이런 소망이 있습니다. 이 소망의 약속은 확실하고 분명합니다. 성경에 있는 다른 약속들이 다 이루어 졌습니다. 하나도 거짓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약속도 성취가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하는 자가 죽어도 소망을 갖습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죽음의 길을 가도 두렵지가 않습니다. 해질 무렵에 어린 소녀가 혼자 공동묘지로 들어 오고 있었습니다. 공동묘지 입구 문에 앉아 있던 노인이 그 어린 소녀에게 "이렇게 어두운데 공동묘지를 혼자 지나가기가 무섭지 않니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어린 소녀는 "아니요. 우리 집은 이 공동묘지 건너편에 있어요"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내 집을 찾아 가는데, 공동묘지를 지나가면 어떻고, 화장터를 지나가면 어떴습니까 우리 믿는 자들의 집은 죽음 너머 천국에 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은 죽음에서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자들은 사랑하는 자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위로받을 곳이 없습니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고통을 당할 때 위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죽어갈 때에 영안이 열렸는데 악령들이 자기를 데리려온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따라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다가 죽었는데 그의 아들이 자기 아버지의 주검의 모습이 도저히 다시쳐다 볼 수 없는 발악을 하는 악마의 못습으로 보여졌다고 합니다. 이것이 믿지않는 자들의 죽음의 모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의 죽음은 마치 평온히 잠자는 것 과 같은 모습으로 보여지며 그 주검의 모습은 천사의 미소짓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2.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나, 믿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합니다. 초대교회 때 사도들이 성령님 충만함을 받고 나가서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셨다"였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이 부활의 신앙을 가진 자들이 바로 기독교인들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은 이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과 믿지 않는 자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들은
(1) 하나님께는 부활의 능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부활시키셨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는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는 부활의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들은 이 능력을 믿습니다.
(2) 예수님이 이 부활을 믿는 자들도 부활한다고 (요11:25-26)에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부활한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지 않는 자들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들은 자기도 부활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삽니다. 독실한 신앙인이며, 과학자인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떤 잡지기자가 패러데이에게 죽음 후의 삶에 대한 그의 생각(speculation)을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패러데이는 "나는 아무런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확실성에 근거합니다. 나는 나의 구세주가 살아 계시고, 그리고 그가 살아 계시기 때문에, 나도 또한 살 것이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신앙인들은 이렇게 자기의 부활을 확신합니다. 전쟁에 참전한 병사가 심한 상처를 입고는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마음에 위로를 얻기 위하여 포켓주머니에게 성경을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요11:25)을 그의 손가락으로 가르치며 읽었습니다. 그때 그의 손가락을 타고 피가 흘러 내렸습니다. 그는 그 피로 이 성경구절에 빨간 막대 줄을 치고는 죽었습니다. 이 (요11:25)은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는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부활을 믿었습니다. 자기는 지금 죽어도 다시 부활한다는 것을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찾아 상처난 곳에서 흘러 내리는 피로 그 말씀을 막대표를 했습니다. 이 부활의 믿음은 지식적인 머리의 믿음이 아닙니다. 이 믿음은 마음의 믿음입니다. 마음으로 믿는 믿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10:10)에서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머리의 믿음 즉 지적인 믿음은 생명력이 약합니다. 그러나 마음의 믿음은 산 믿음이며, 생명력이 강 합니다. 지적인 머리의 믿음은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믿음은 능력이 있습니다. 지적인 머리의 믿음은 운동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믿음에는 운동력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죽어도 다시 산다는 마음의 믿음은 죽음에 대해서도 소망을 갖게 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몰아 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사도 바울이 (고전15:54-57)에서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죽음 다음에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이런 믿음과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자들은 죽음의 두려움과 슬픔을 극복할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믿는 자와 믿지 못하는 자들의 죽음에 대한 차이입니다.
3.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믿으나, 믿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믿지 아니합니다.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인정 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성경의 모든 약속은 다 들어 맞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의 약속도 이루어 질 것을 믿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기에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 자들에게 죽음에서도 소망과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요
(1) 예수님이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 즉 예수를 믿고 죽은 자들은 부활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 자들은 죽음에서도 소망을 갖게 됩니다.
(2) 그리고 구름속으로(구름속으로란 말은-'영광중에란 말입니다.) 불려 올라 가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여 만납니다. 그리고 거기서 주님과 같이 삽니다.
그런데 이때 우리의 몸은 영화된 새로운 몸으로 변화됩니다. (고전15:42-47)에서 사도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한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이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일3:2)에서 그때 우리의 몸은 예수님의 몸과 같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몸이 새로운 몸으로 변화되어 주님과 같이 살게 되니, 죽어 우리 몸이 썩어 없어져도 두렵지 않고 위로와 소망을 갖게 됩니다. 오히려 더욱더 기쁜일입니다. 이것이 첫번째 부활입니다.(계20:6)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 자들은 이 첫번째 부활에 참여하는 복되고 거룩한 자들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도 부활을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두번재 부활을 합니다.(계20:7-15) 이 부활은 첫번째 부활 후 천년 뒤에 일어납니다. 이 부활은 첫번째 부활과는 달리 크고 흰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는 부활입니다.
그런데 이 부활을 피할 수 없습니다. 바다 가운데서 빠져 죽어 고기 밥이 된지 오래 된 자들도 심판을 받습니다. 이미 죽어 지옥에 간 자도 이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부활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 불못에 던지웁니다. 이런 두번째 부활을 당하는 자는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는 자들입니다. 즉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죽음 후에 아무런 소망이나 위로가 없습니다. 루이지애나(Rousiana)에 살고 있는 독실한 기독교인이 非기독교인인 친구를 만났다.
그런데 그의 차 멈퍼에 "마라나타"(Maranatha)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너 저거 무슨 뜻이줄 아느냐 "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신앙인인 친구는 "저것은 '주님이 오신다'는 뜻이다"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그러자 비기독교인인 친구는 "나는 그것을 믿지 않는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맞아 예수님은 너 같이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는 재림하지 않으신다"라고 대답을 했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재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휴거하여 공중에서 영광 중에 주님을 만나는 첫번째 부활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영원한 불못에 들어가는 두번째 부활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을 믿지 못하는 자들은 죽음이 두렵고, 죽음의 슬픔을 위로 받을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믿는 자들의 죽음과 믿지 않는 자들의 죽음의 차이 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믿지 못하는 자들은 죽음 후에 영생의 부활을 얻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 자들은 죽음 후에도 영생의 부활을 얻습니다. 우리에게 이 영생의 부활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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