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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죽음은 (살전4:9-13)

본문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신앙에 아름다운 삶을 강조하면 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 할 사회적인 책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I. 거룩한 생활을 살라는 것입니다. 칼빈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성결케 하기 위함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엡1:4절 이하에 말씀하시기를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 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 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오늘 살전4:7이하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 요, 거룩케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레19:2에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 룩 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선민을 향한 지침이요, 주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권면하시기를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1:15)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지만 당시에 헬라 신전들은 부패와 향락과 음란의 소 굴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은 이 같은 색욕을 좇아 근친 상간과 불륜을 예사로 행하는 등 우상 숭배와 더불어 음란한 삶을 살았습니다. 더욱이 데살로니가 시는 헬라 신화의 본산지인 올림푸스 산이 있었고 거기에는 각종 신전들이 있어서 음란한 우상 숭배 의식이 거의 매일 행하여졌습니다. 때문에 데살로니가 주민들은 그 같은 생활을 오히려 정상적 인 생활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교회의 일부 신자들도 음란의 죄를 대수롭 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런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이니 이런 옛 생활을 벗어버리고 성결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장차 하나님께서 심판의 날에 음란함에 대해서 반드시 징벌하실 것이라고 하 셨습니다. 자심의 몸을 음란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은 결국 성령님을 주신 하나님을 저 버리는 것이며, 마침내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성결한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함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Ⅱ.사랑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9-10)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처럼 사랑하신다는 증거로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에 게 보내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게 하신 것입니다. 보혈을 흘리게 하신 것 입니다. 그 사랑으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럼으로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여 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한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성도들은 같은 형제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의 사랑을 나누고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날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도 형제사랑 인 것입니다. 특별히 여기서 사랑이라는 것은 성도 상호간에 나누는 인간적이 고 감정적인 따뜻한 사랑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형제사랑은 십자가를 앞에 두신 예수님의 새 계명입니다.(요13:34-35) 그리고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였던 사도 요한의 목회 지침의 대 주제였습니다. 주석가 데니(J. Denny)는 말하기 를 "형제사랑이야말로 교회의 참된 증표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 형제사랑에 대하여 참으로 모범적인 교회였 습니다. 얼마나 사랑하는 교회였으면 바울은 아무 할 말이 없다고까지 했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형제사랑의 삶을 실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9절, 요14:26) 궁극적으로 형제사랑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 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사랑은 해도해도 다함이 없고, 갚아 도 갚아도 못다 갚을 사랑의 빚이기 때문에 "이만하면 족하다"라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더욱 힘쓰고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더욱 더 많이 하라"고 권한 것입니다. 요일4:20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라"고 단정 하였습니다. 형제를 서로 사랑하는 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Ⅲ. 근면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11-12) 데살로니가서는 종말론적인 서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을 주재로 삼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서가 예수님의 재림을 주제로 다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에 너무나 핍박이 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나저제나 주님의 오심을 고대하게 되었고, 주님이 오시면 우리가 핍박도 끝날 것이기 때문에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핍박이 너무나 강하고 힘이 들어서 믿음이 약한 성도들이 주를 배반하고 신앙을 포기할까봐 그래서 바울은 재림 신앙을 강조하였고 특별히 주의 재림을 맞이하는 성도의 올바른 자세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의 재림을 맞이하는 성도들 의 올바른 자세를 세 가지로 교훈 하셨습니다.
첫째는 말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11절 상반 절에 "또 너희에게 명한 것같이 종용하여"라고 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종용하다"라는 말은 "침묵하다. 고요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리 저리 다니면서 쓸데없는 말을 퍼뜨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딤전5:13에 "또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 니라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 할 말을 하나니"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바로 종말을 사는 성도들의 자세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그 마음에 평안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일만 만드는 자들이요, 분 쟁만 일으키고 다니기 때문에 금한 것입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말을 아끼고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기 맡은 일을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스피노자는 말하기를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 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내일 주님이 오신다 할지라도 오늘 내가 맡은 일을 충실하게 감당하겠다는 뜻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손으로 일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땀 흘리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 야 합니다. 인생이 땀흘리는 수고는 하나님께서 주신 신성한 노동이요, 고귀 한 것입니다. 이마에 땀을 흘리며 일하는 것은 타락 이후에 모든 인간들에게 부여하신 하나님의 명령이요, 인간의 본분입니다. 때문에 이에 대해서 즐거움 으로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복종하는 복종의 도리인 것입니다.(창3:17-19) 그래서 노동은 어떤 직업이냐에 상관없이 신성하며 고귀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 자신이 힘써 복음을 전파하면서도 장막 깁는 일을 열심히 하였던 것입니다.(행18:3)
그런데 데살로니가 성도 중에는 주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것을 핑계로 자기 의 일터를 더나 일하지 않고 놀기나 하고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많은 말을 떠 벌이면서 남의 일에 참견이나 하고 불안감을 조성하는 등 쓸데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지 말고 각자 자신 의 일터에 돌아가서 땀 흘려 일하는 중에 주님을 맞이하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군대에 영장을 받은 젊은이들이 마치 죽을 데라도 가는 듯이 군대가기 몇 달전 할 일을 하 지 않고 시간을 보낸다든지! 아니면 퇴직 할 것이라는 것 때문에 미리부터 할 일을 하지 않고 눈치나 본다든지 자리를 비운다든지! 교회에서 무슨 일 때문이든지 할 일을 하지 않고 핑계만 대고 세월을 보낸다든지 하는 행동이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의 주의 재림을 오해하고 세월을 낭비하는 교우들의 모 습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데살로니가 재림 증후군이라고 할 수 있 을 것입니다. 이것은 말세를 기다리는 주의 백성들의 바른 태도라 고할 수 없는 것이며, 이런 삶을 우리 주님은 기뻐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날이 설사 내일 온다고 할지라도 오늘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마24:44-46 에 보면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 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 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일하다 주님을 맞이해야 복이 있는 성도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재림하셔서 성도들을 불러모으실 때도 각자의 일터에서 땀 흘려 열심히 일하고 있는 자 들을 불러모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칭찬하시고 알곡을 창고에 들이듯 이 아버지의 나라로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실 때에 일하는 종은 복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가 그날이 가까이 옴을 볼 수록 종용한 가운데 각자 맡은 일을 힘써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외인들에게 단정히 행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궁핍함이 없는 삶을 살게 함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종말이 가 까이 왔다고 하고, 주의 재림이 곧 올 것이라고 하면서 일은 하지 않고 빈둥 빈둥 돌아다니면서 쓸데없는 말을 한다면 불신자들이 얼마나 신자들을 조롱 하겠으며, 규모 없는 사람들이라고 놀림을 당하겠습니까! 우리는 무슨 일을 만난다고 할지라도 교회 밖에 불신자들에게도 규모 있고 예의 바른 사람으로 처신해서 신앙의 건덕을 세우는 사람들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먹고살겠습니까! 양식이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그래도 죽는 날까지는 먹어야 할텐데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쳐야 하지 않겠습니 까! 그래서 바울은 자기 맡은 일을 열심히 하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우리 살전3:8-12을 읽어보겠습니다.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함이니 우리에게 권리 가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 받 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 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하니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였노라." 형제사랑을 핑계로 형제들에게 폐를 끼치는 자들이 더러 있었다는 것입니다.(살후3:11)
그러므로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찾아 일터에서 땀 흘려 열심히 일하라고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 고 자립 생활을 살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으 름을 피우며 일하지 아니한다면 가난하게될 것이고, 이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밖에 있는 불신자들에게 생활의 본이 되어야 할 성도가 게으름 때문에 쪼들리고 남에게 폐를 끼치는 삶을 산다면 참으로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전도의 문을 다 막는 일이 되기 때문에 죄요, 부끄러움인 것입니다. 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하지 않는 사람은 도와 줄 수도 도와주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일하기 싫은 사람은 먹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이 말씀은 "죽으라!"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부지런히 일하라는 사랑의 권면으로 받아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부지런히 일하여 사랑하는 가족을 돌보아야 할 것입니다. 딤전5:8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 반한 자요 불신자 보다 더 악한 자니라."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거룩한 삶을 살고! 형제를 사랑함으로 실천의 삶을 살고! 우리의 맡은 일을 교회 안에서, 밖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함으로 불신자들에게 본이 되고, 생활의 넉넉함을 얻어 남에게 베풀면서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삶일 것입니다.
Ⅳ. 끝으로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죽음은 인간의 육체에 찾아온 죄악의 형벌입니다.(창3:19.롬6:23)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한번은 죽어야 하고, 이 죽음 앞에는 영웅도 성인도 없습니다. 그러면 죽음의 실체는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분리를 의미합니다. 이것을 세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영적인 죽음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분리를 말합니다. 영혼이 하나님께로부터 떠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에덴 동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범죄한 아담이 형벌을 받았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그래서 에덴 동산에서 그들을 내어 쫓으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 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 이후의 모든 인생들은 살았으나 실상은 죽은 인생의 삶을 치르 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하는 영혼이 다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적 사 망의 반대는 영적 생명입니다. 바로 예수의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을 가리킵니다.(요5:24)
둘째는 육체적인 죽음입니다. 이것은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됨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본래 영(생기)과 육 (흙)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인 것입니다. 영과 육이 분리되는 순 간에 육체적인 죽음의 비극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사람이라 도 그 몸에서 영혼이 분리되는 순간 무서운 시체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도 그 옆에서 단 몇 분도 있기를 두려워합니다.
셋째는 영원한 죽음입니다. 이것은 영과 육이 아울러 지옥 불에 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원한 고 통과 형벌의 시작을 의미합니다.(마25:42) 거기는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 라가는 세계입니다.(계14:11) 그래서 바울은 이 죽음을 인간의 원수라고 표현했습니다.(고전15:26) 그 이유는 죽음이 생명을 빼앗아 가고, 절단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우리에게서 모 든 것을 빼앗아 갑니다. 우리의 소유, 부모와 형제, 부부관계를 절단 냅니다. 모든 사회의 관계를 깨뜨려 버리고 모든 아름다움과 소망스러운 것들을 남김 없이 다 끊어 버립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그 죽음에게 사랑하는 딸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나인성 과부는 이 죽음에게 사랑하는 독자 아들을 빼앗기고 슬피 울었습니다. 베다 니에 살고있는 마르다와 마리아는 죽음에게 그 사랑하는 오라버니를 빼앗기 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죽음은 인류의 적이요, 원수인 것입니다. 바울은 이 죽음을 가리켜 "썩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고전15:54 이하에서 계속적으로 나옵니다. 썩는 것은 본래의 모습이 분해되고 용해되어 없어지는 과정에서 이러나는 냄세의 현상을 썩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라짐입니다. 그 아름다운 것이 썩어짐과 함께 무너져 내리고 사라져 없어집니다. 움직임이 없어지고, 창조성이나, 생산성이 없어져 버리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욕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약한 것! 유한 한 것입니다. 이 썩 음의 냄세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시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무 데도 쓸데 없어 관속에 넣어 흙속으로 묻어 버립니다. 이것을 성경은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느니라!"(창3:19)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 죽음을 바울은 "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쏜다는 말은 바늘이나 가시처럼 찌르고 쑤시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살이라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이 살이 우리인생들의 지성을 찌르고 감정을 찌르고 의지를 찌르고 양심을 찌릅니다.
이 "쏘는 것"을 행26:14에서는 "가시채"로 , 계9:10에서는 "황충의 독침"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바로 이 쏘는 것은 죄인 것입니다. 이 죄가 우리의 지성을 찌르고 우리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우리의 양심을 무디게 만들고 의지를 무력하게 합니다. 그래서 이 무서운 살에 찔려 인생을 여지없이 망하게 하고 마는 무서운 원수 인 것입니다. 결국 이 죽음은 사망이라고 합니다. 이 이 죽음의 마지막 정체는 지옥과 관 련이 되어 있습니다. 영벌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이 죽음의 원수 죄는 불꽃 중에서 영원한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부자가 이 불꽃 가운데서 영원히 고통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의 죽음은 복된 것입니다.(계14:13) 성도의 죽음은 재앙이 아니라 그것을 통과한 후에 영원한 내세의 축복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1:21에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몸이 죽음을 면할 수없지만 우리의 영혼은 영원히 죽음에 이르지 않 습니다. 요11:25,26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 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전에 미국 대통령이었던 존 퀸시 아담스(J. Q. Adames)가 80세의 고령이었 을 때에 어느 거리를 지나가고 있는데 그를 아는 어떤 분이 인사를 합니다. "아담스씨 안녕하십니까!" 그 인사를 받은 아담스는 인자하게 대답하기를 "감사합니다. 존 퀸시 아담스는 무사합니다. 아주 잘 지냅니다. 그러나 그가 사는 집은 이제 황폐하여 쓸어져 가고 있습니다. 기초는 흔들리고 있고요! 바람이 불 때마다 그 집은 흔들립니다. 그의 낡은 집은 이제 거의 쓸모가 없 어져 갑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존 퀸시 아담스는 곧 그 집에서 이사를 가 야 할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아무 일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얼마 후에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가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답니다. 여러분 쓸어져 가는 집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육체입니다. 그러나 더 은 집으로 이사 갈 것은 무엇입니까! 더 좋은 천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존 퀸시 아담스는 천국에 확신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우리 모두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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