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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응답 (살전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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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많은 부분에서 동물과 비슷하다. 그러나 더 많은 부분에서 그들과 차이를 보인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동물이 반응을 보이는 데 비해 인간은 응답을 한다는 것이다. 응답이란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마음에 새기며 결단하는 작업인 것이다. 감사는 이러한 응답의 결정체이다. 신약에서 감사란 뜻으로 사용된 단어는 “유카리스티아”입니다. 이 단어는 원래 “기뻐하다”라는 희랍어 동사 “카리스”에서 나왔으며, “감사하다”는 단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어원은 감사가 기쁨의 자연적인 발로임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감사는 인생이 당연히 표현해야 할 본분이다. 칼빈은 “모든 선한 것에 감사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말하고 있다. 인생의 제일 목적이 여호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면 감사는 인생의 본분이다. 또한 감사는 복의 통로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설교의 황태자라 부르는 스펄젼은 “촛대불을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면 전등을 주시고, 전등을 주심에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 주심에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 주심에 감사하면 하나님께서는 천국을 주신다.”라고 말했다. 실로 감사는 감사의 새로운 조건을 낳게 한다. 1965년도에 강원도에서 살 때 있었던 일이다. (간증) 등잔불로 밤을 밝히고 있던 우리집은 손님이 오거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호야불을 사용했다.
그런데 손님이 왔다. 형의 약혼자가 왔다. 저녁식사를 하고 설것이를 하려는 순간 호야불을 켜 건너방으로 약혼자를 데리고 가려는 순간 시집못간 누이가 호야불을 빼앗았다. 심술이 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등잔불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형은 밝은 불빛아래서 좀더 약혼자의 얼굴을 보고싶어서였으리라. 노처녀의 히스테리로 그만 무산되고 말았지만 얼마있다. 전등불이 들어왔다. 아버님은 그 휘황찬란한 전기불을 보지도 못한채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때 우리는 그 전기불이 그렇게 좋은지 몰랐다. 좋은 음식을 많이 섭취하여도 소화할 능력이 부족하여 도리어 해를 받는 연약한 사람들을 본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곤고함의 시험을 지내왔면 가나안의 세대들은 부요함의 시험을 만나야 했다. 이스라엘은 이제 성공 때문에 죄를 짓기 쉽다는 것이다. 인간은 즐거운 일이 많을수록 하나님을 더 잘 잊기 쉽다. 우리의 눈은 하나님을 놓치고 하나님처럼 보이는 다른 것을 바라보아 끝내는 우상 숭배자가 된다. 풍요만을 바라보기에 그 풍요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놓치고 만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일들을 기억하고 있었던 반면, 가나안의 세대들은 그곳의 풍요를 가져다주는 바알신을 보게 되었고, 그곳의 문란한 문화에 도취되어 하나님을 잊게 된다. 우리 민족이 어려웠을 때도 처음 성도들은 예배당 마룻바닥을 적시며 간절히 하나님을 구하고 찾았음이 교회사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오늘의 새로운 세대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모든 풍요로움은 과거 믿음의 선조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의 선물들임을 잊고 산다. 모세의 염려처럼 부요함이 우리를 교만케 하였고, 이사야의 꾸짖음처럼 은혜를 알지 못하는 자는 짐승보다 못한 깨달음 없는 존재인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풍요로운 수확을 허락하신 분은 과연 누구일까 우리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씀하신다. 김영삼 대통령이 SBS창사 6주년 기념 특별대담프로에서 한국의 쌀농사가 사상유래 없는 풍작은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고 고백했다. 일본보다도 중국보다도 더 많이 수확을 거두었는데, 농경지는 오히려 줄었고 단위 수확량은 오히려 늘었다는 것이다. 그 어떤 해보다 가장 많은 수확을 거둔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태풍이 많이 발생했지만 그때마다 우리나라를 피해갔고 일조량이 많아 쌀뿐만 아니라 과일도 대 풍작이라는 말을 했다. 작은 땅에서 세계에서도 쌀을 통해 다른나라를 도와줄 수 있을 만큼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농업인이 되었다고 하는 언어를 구사했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은 원하는 일이 성취되었을 때의 기쁨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렵거나 힘든 일에도 기뻐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러한 기쁨은 인간의 감정을 통해 나타낼 수 없는 오직 성령님께서 주시는 기쁨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은 밤낮없이 입술을 움직여 기도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 부단히 의지하는 자세를 가지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아갈 준비를 갖추는 것을 말하고 있다. “범사”란 모든 상황과 환경을 망라한 의미다. 성도는 이미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였으므로 모든 상황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구 있다.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기도의 많음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드리는 우리의 예물에 과중함에 있는 것도 아니다. 절기를 빠짐없이 지키는 것에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진정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은 범사에 하나님을 잊지 않고 마음과 영혼이 실려진 감사만을 하나님께 드린다. 여기에 연속되는 세 가지 명령형은 하나의 강력한 요절로서 독립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세 가지 명령은 삼위일체적인 특성을 지니고서 신앙의 높은 미덕의 세 측면을 제시해 준다. 즉 기쁨이 없는 기도가 있을 수 없으며, 감사가 없는 기도가 진정한 기도일 수 없으며, 기쁨이 없는 감사가 존재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모든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분명하신 뜻이다.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가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님께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부르짖었다. 그 중의 한 병자 곧 사마이라인은 병이 나은 것을 알고 돌아와 예수님의 발에 엎드려 사례하였다. 사마이라인 병자는 나은 순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리고 예수님께 돌아와 발 앞에 엎드려 깊은 감사를 드렸다. 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에는 감사의 반응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 질문하신다.
1)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않았느냐 2)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3)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온 자가 없느냐 이 세 질문은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을 가르쳐주는 강력한 경고의 질문이다. 한 수영선수가 난파당한 배의 승객 69명을 구해 주었다. 훗날 그 수영 선수에게 “그 사건을 통해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한국 대학생 선교회에서 전도활동을 나간 적이 있었다. 공원에서 전도를 하였는데 중년 남자에게 전도를 하였다. 마지막에 그는 예수를 영접하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잠깐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는 무엇을 매점에서 사가지고 왔다.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담배한갑이라고 말했다. 성의니까 받아주었으면 고맙겠다는 것이다. 받아가지고 와서 간증을 하였다. 감사야 말로 은혜입은 자가 해야 할 필수적인 의무다.
1. 하나님을 잊지 말자. 하나님은 우리가 궁핍할 때나 부요할 때나 잊어서는 안 될 분이시다. 다윗의 시편을 통하여 “(시103: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라고 하신 말씀을 배웠다. 그리기 위하여 우리는 항상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을 생각하고 묵상하므로 곤고함과 시험을 넉넉히 이길 수 있다.
2. 하나님께 헌신의 삶으로 산 제사를 드려야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셨다.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우리의 이웃을 우리의 몸과 같이 사랑함이 주께 드릴 산 제사요 헌신인 것이다. 우리에게 있는 것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에 주께서 쓰시겠다 하실 때 드릴 수 있는 청지기의 삶이 헌신과 예배의 생활인 것이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므로 주님께 먼저 내 몸을 드려 감사를 표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하여 고린도전서에서 말씀하시기를 “(고전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님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고전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신다.
3. 마땅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고 하신다. 하나님께로 돌려야 할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우상에게 돌린다면 이것은 인간이 범하는 최대의 죄악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청종했을 때 그들은 아름다운 땅에 거하고 배불리 먹으며 찬송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아니하고 살아가는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결코 멸망당하지 않는다.
4. 헌심으로 감사해야 한다. 마음은 인간의 중심이기 때문에 먼저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마음으로 드리지 않는 예배나 헌물은 모두 형식적인 것이요 위선에 빠질 염려가 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사 51:17).
5. 헌물로 감사해야 한다. 참된 감사는 물질을 통해서 온전히 표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물질과 마음을 격리시키기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루터는 “마귀의 세계에만 감사가 없다.”고 말했다. 진실로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감사의 조건이 더욱 넘치도록 해주신다. 감사는 복을 채우는 그릇이며 기적을 만드는 능력이다. 기도 감사하신 하나님,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너무나 불평과 원망으로 일관된 삶이었습니다. 간절히 원하옵나니 이후로부터는 우리의 삶을 바쳐 주님께 감사하는 심령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풍성한 감사의 조건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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