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세상을 기쁘게 (살전5:16-18)
본문
우리를 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있으십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계시는바와 같이 항상 기뻐하고 늘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우리가 행복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기뻐야 기쁘시고 우리가 행복해야만 행복해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복하게 기쁘게 사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지나가는 100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 뭐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았겠습니까 그럭저럭 삽니다. 마지 못해 삽니다. 죽지 못해 삽니다 정도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요즈음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여러분들도 비슷한 대답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경제위기 때문이십니까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힘든 일입니다. 얼마든지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경제위기만 회복된다면 여러분들은 기쁘게 행복하게 사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십니까 얼마전 대통령의 말씀에 의하면 3-4년 정도후면 경제위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시던데 과연 그때가 되면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될까요 불과 1년전 우리는 경제위기 이전의 삶을 살고 있었는데 그때는 과연 여러분들 행복하셨습니까 세상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행복과 기쁨은 세상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삶의 기쁨과 행복은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그것을 배설물이라고 까지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잃어 버린 것은 세상이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의 진정한 삶의 기쁨과 행복은 세상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좀 잃어 버렸다고 기쁨과 행복까지 잃어 버리고 산다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세상을 좀 잃어 버렸다고 할지라도 그것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오늘 설교의 제목을 '힘든 세상을 기쁘게'라고 잡았습니다. 세상은 비록 힘들지만 그래도 우리는 얼마든지 기쁘게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힘든 세상을 기쁘게 사는 법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힘든 세상을 기쁘게 살려면
첫째, 잃어 버린것만 바라보지 말고 아직도 자신에게 주어져 있는 것들을 바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누리고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힘든 세상도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파푸아뉴기니라는 나라에는 비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물처럼 된 자루인데 사람들은 그곳에 물건을 담아가지고 다니기도 하고 여인들은 그곳에 아이를 넣어 메고 다니기도 합니다. 또 아이들을 잠 재우는 해먹처럼 사용하기도 합니다. 얼마전에 저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책을 한권 출판하였습니다. 함철훈이라고 하는 분의 사진이 너무 좋아서 그 사진에 글을 붙여 출판한 책입니다. 함철훈 선생의 사진중에 파푸아뉴기니의 어떤 아기 엄마가 잠든 아이를 비룸속에 넣고 그것을 나무에 걸어 둔 사진이 있습니다. 아이는 그속에서 아주 편안히 잠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에 감동을 준 것은 그 아이 엄마가 아이가 잠들어 있는 허름한 비룸에 하얀 꽃 한 송이를 꺽어 꼽아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진이었습니다. 저는 그 사진을 보면서 행복은 바로 그와같은 여유있는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 엄마는 별로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그에게는 지천에 피어있는 꽃 한송이 꺽어 허룸한 비룸을 장식할 수 있는 여유있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 여유있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절대 불행한 사람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잃어 버린 것들은 소중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린 것은 아닙니다. 얼마든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이 우리 주위에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린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축복까지도 다 스스로 내어 버린채 불행한 삶을 자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찬송중에 '세상 풍파 약한 너를 눌러서 낙심할 맘 네게 일어날 때에 주가 주신 복을 세어라 주가 주신 복을 네가 알리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린 사람이 아닙니다. 아직도 여러분에게는 잃어 버린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잃어 버린것과 바라보고 불행해 하지 말고 여러분들에게 허락된 아름다운 사람과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보면서 기뻐하며 행복해 하는 삶을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그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힘든 세상도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힘든 세상을 기쁘게 살아가려면
둘째, 잃어 버린 것에 대한 과감한 포기가 있어야만 합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책에는 '운동화와 아이스크림'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함철훈 선생의 사진중에 아프리카 아이 하나가 운동화를 신지 않고 목에 걸고 있는 모습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친구 몇 아이는 그 운동화를 부러워하고 있고 그 운동화를 목에 걸고 있는 아이는 그것을 뽐내며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의 사진이었습니다. 저희들도 어렸을 때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사진을 보면서 저는 아이가 아이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아이라고 하여도 운동화와는 비교도 되지 않으리만큼 귀한 존재들인데 그 운동화를 목에 걸므로 아이가 운동화보다 초라해 보인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사진의 아이를 보면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신고 다니라고 주신 신발을 목에 메고 다니는 초라한 모습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것도 아닌 것을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다녔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신주단지처럼 소중히 여기며 다니는 것들도 훗날 하나님 나라에서 보면 바로 그와같은 별것도 아닌것들이 아니겠습니까 페루의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어린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그만 그것을 땅에 떨어트리고 말았습니다. 아이는 그것이 너무 속상해서 울려고 했습니다. 그때 사진을 찍던 함철훈 선생이 아이에게 울지 말고 그것을 한 번 발로 밟아보라고 하였답니다. 아이는 맨발로 그 아이스크림을 밟았습니다. 그랬더니 아이스크림이 발가락 사이로 삐죽 삐죽 올라왔습니다. 아이는 그것이 재미있어서 울려던 것도 잊어 버리고 활짝 웃으며 장난질을 쳤습니다. 함선생이 새로운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주었더니 너무 좋아서 함박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 천진난많나 모습이 사진에 찍혔습니다. 저는 그 사진을 보고 '밟아 버려'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 제목이 좀 과격했던지 출판사에서 '운동화와 아이스크림'이라는 제목으로 바꾸어 출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좀 과격한 것 같기는 하지만 '밟아 버려'라는 제목이 좋습니다. 물론 아이스크림은 먹는 것이지 발로 밟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혹 실수로 떨어 트렸을 때 그것 가지고 울고 불고 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입니다. 아이스크림을 떨어트려 먹지 못하게 되었을 때는 그것을 붙들고 울려고만 하지말고 과감히 발로 밟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아이스크림을 먹을때와는 또다름 맛과 재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무엇을 떨어 트리셨습니다. 얼마나 떨어 트리셨습니다. 이왕 떨어진 것이라면 그것을 붙들고 울고 불고 하지 말고 밟아 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아이스크림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냥 밟아 버리고 활짝 한 번 웃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처럼 아이스크림 하나에 목을 매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밟아 버려!. 말만 들어도 좀 시원해지지 않으십니까!. 이왕 떨어진 것이라면 밟아 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힘든 세상을 기쁘게 사시려면
셋째,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를 바라보면 됩니다. 함철훈 선생의 사진에 '먼지도 아름답다'라는 제목의 사진이 있습니다. 하루일을 마치고 사람들이 나귀를 몰고 돌아오는 길인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흙먼지가 폴폴 잃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먼지에 석양 햇빛이 비취었습니다. 그 모습이 사진에 찍혔는데 햇빛을 받은 흙먼지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사진의 제목을 '먼지도 아름답다'라고 붙였습니다. 저는 그 사진을 보면서 찬송가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주 영광 찬란해 이 세상 어떤 빛보다 그 빛 더 빛나네 주의 영광 빛난 그 빛 내게 비춰 주시옵소서 그 밝은 얼굴 뵈올 때 나의 영혼 기쁘다' 예수 그리스도는 빛이십니다. 이 세상 어떤 빛보다 아름다운 빛이십니다. 그 빛이 우리의 영혼에 비취게 되면 우리의 삶은 먼저도 아름답게 될 것입니다. 정말 아름다워 질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잃은 것은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아닙니다. 세상은 요동하여도 하나님은 요동치 아니하시며 세상은 변하여도 하나님은 영원히 변치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의 음성에 귀 기우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우리실 때 하나님의 빛이 우리의 삶을 비추시게 될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시는 참 기쁨이 무엇인가를 깨달으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빛으로 힘든 세상을 기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인중에 최상호라는 분이 있습니다. 미션 계통의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시는 선생님이신데 그의 시중에 '다짐'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대학 시험에 불합격하고 풀이 죽어서 졸업식장 한 구석에 웅크리고 숨어있는 제자가 안스럽고 속상해서 쓴 시입니다. 선생의 마음을 참으로 잘 표현한 시라서 제가 참으로 좋아하는 시입니다. 다짐 정호야 그리고 날라리라 불리던 동방불패 4인방아! 당당히 고개들고 선생님하고 외쳐라. 불합격이란 말은 너희를 단죄하는 칼날 아니다 교실모퉁이에서 졸업식장의 구석에서 풀죽은 얼굴로 숨어 있는 너희들 이리 나오지 못하겠니 아침이슬에 저녁별 보던 만리동 언덕 눈물고개의 귀신 바람 부는소리 듣던 겨울 저녁 밤에 웃고사는 놈만 빛나는 인생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니 저는 이 시를 생각하며 하나님이 오늘 경제위기로 풀이 죽어 숨어있는 우리를 향하여 그같은 마음을 가지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개야 고개들고 하나님하고 외쳐라. 경제위기 실패란 말은 너희를 단죄하는 칼날 아니다. 세상 모퉁이에서 풀죽은 얼굴로 숨어 있는 너희들 이리 썩 나오지 못하겠니 말씀은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고 사시는 분들이십니까 아니면 세상을 믿고 사시는 분들이십니까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을 믿고 사시는 분이시라면 세상 좀 힘들어졌다고 그렇게 낙심하고 절망하며 죽을 상을 하고 살 필요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 죄송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경제위기 끝난 후에 얼굴을 펴시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뭐하러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경제위기 중에도 얼굴 펴고 웃고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힘든 세상이지만 주와 함께 기쁘게 사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경제위기 때문이십니까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힘든 일입니다. 얼마든지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경제위기만 회복된다면 여러분들은 기쁘게 행복하게 사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십니까 얼마전 대통령의 말씀에 의하면 3-4년 정도후면 경제위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시던데 과연 그때가 되면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될까요 불과 1년전 우리는 경제위기 이전의 삶을 살고 있었는데 그때는 과연 여러분들 행복하셨습니까 세상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행복과 기쁨은 세상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삶의 기쁨과 행복은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그것을 배설물이라고 까지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잃어 버린 것은 세상이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의 진정한 삶의 기쁨과 행복은 세상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좀 잃어 버렸다고 기쁨과 행복까지 잃어 버리고 산다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세상을 좀 잃어 버렸다고 할지라도 그것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오늘 설교의 제목을 '힘든 세상을 기쁘게'라고 잡았습니다. 세상은 비록 힘들지만 그래도 우리는 얼마든지 기쁘게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힘든 세상을 기쁘게 사는 법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힘든 세상을 기쁘게 살려면
첫째, 잃어 버린것만 바라보지 말고 아직도 자신에게 주어져 있는 것들을 바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누리고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힘든 세상도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파푸아뉴기니라는 나라에는 비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물처럼 된 자루인데 사람들은 그곳에 물건을 담아가지고 다니기도 하고 여인들은 그곳에 아이를 넣어 메고 다니기도 합니다. 또 아이들을 잠 재우는 해먹처럼 사용하기도 합니다. 얼마전에 저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책을 한권 출판하였습니다. 함철훈이라고 하는 분의 사진이 너무 좋아서 그 사진에 글을 붙여 출판한 책입니다. 함철훈 선생의 사진중에 파푸아뉴기니의 어떤 아기 엄마가 잠든 아이를 비룸속에 넣고 그것을 나무에 걸어 둔 사진이 있습니다. 아이는 그속에서 아주 편안히 잠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에 감동을 준 것은 그 아이 엄마가 아이가 잠들어 있는 허름한 비룸에 하얀 꽃 한 송이를 꺽어 꼽아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진이었습니다. 저는 그 사진을 보면서 행복은 바로 그와같은 여유있는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 엄마는 별로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그에게는 지천에 피어있는 꽃 한송이 꺽어 허룸한 비룸을 장식할 수 있는 여유있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 여유있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절대 불행한 사람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잃어 버린 것들은 소중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린 것은 아닙니다. 얼마든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이 우리 주위에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린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축복까지도 다 스스로 내어 버린채 불행한 삶을 자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찬송중에 '세상 풍파 약한 너를 눌러서 낙심할 맘 네게 일어날 때에 주가 주신 복을 세어라 주가 주신 복을 네가 알리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린 사람이 아닙니다. 아직도 여러분에게는 잃어 버린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잃어 버린것과 바라보고 불행해 하지 말고 여러분들에게 허락된 아름다운 사람과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보면서 기뻐하며 행복해 하는 삶을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그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힘든 세상도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힘든 세상을 기쁘게 살아가려면
둘째, 잃어 버린 것에 대한 과감한 포기가 있어야만 합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책에는 '운동화와 아이스크림'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함철훈 선생의 사진중에 아프리카 아이 하나가 운동화를 신지 않고 목에 걸고 있는 모습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친구 몇 아이는 그 운동화를 부러워하고 있고 그 운동화를 목에 걸고 있는 아이는 그것을 뽐내며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의 사진이었습니다. 저희들도 어렸을 때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사진을 보면서 저는 아이가 아이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아이라고 하여도 운동화와는 비교도 되지 않으리만큼 귀한 존재들인데 그 운동화를 목에 걸므로 아이가 운동화보다 초라해 보인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사진의 아이를 보면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신고 다니라고 주신 신발을 목에 메고 다니는 초라한 모습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것도 아닌 것을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다녔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신주단지처럼 소중히 여기며 다니는 것들도 훗날 하나님 나라에서 보면 바로 그와같은 별것도 아닌것들이 아니겠습니까 페루의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어린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그만 그것을 땅에 떨어트리고 말았습니다. 아이는 그것이 너무 속상해서 울려고 했습니다. 그때 사진을 찍던 함철훈 선생이 아이에게 울지 말고 그것을 한 번 발로 밟아보라고 하였답니다. 아이는 맨발로 그 아이스크림을 밟았습니다. 그랬더니 아이스크림이 발가락 사이로 삐죽 삐죽 올라왔습니다. 아이는 그것이 재미있어서 울려던 것도 잊어 버리고 활짝 웃으며 장난질을 쳤습니다. 함선생이 새로운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주었더니 너무 좋아서 함박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 천진난많나 모습이 사진에 찍혔습니다. 저는 그 사진을 보고 '밟아 버려'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 제목이 좀 과격했던지 출판사에서 '운동화와 아이스크림'이라는 제목으로 바꾸어 출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좀 과격한 것 같기는 하지만 '밟아 버려'라는 제목이 좋습니다. 물론 아이스크림은 먹는 것이지 발로 밟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혹 실수로 떨어 트렸을 때 그것 가지고 울고 불고 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입니다. 아이스크림을 떨어트려 먹지 못하게 되었을 때는 그것을 붙들고 울려고만 하지말고 과감히 발로 밟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아이스크림을 먹을때와는 또다름 맛과 재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무엇을 떨어 트리셨습니다. 얼마나 떨어 트리셨습니다. 이왕 떨어진 것이라면 그것을 붙들고 울고 불고 하지 말고 밟아 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아이스크림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냥 밟아 버리고 활짝 한 번 웃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처럼 아이스크림 하나에 목을 매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밟아 버려!. 말만 들어도 좀 시원해지지 않으십니까!. 이왕 떨어진 것이라면 밟아 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힘든 세상을 기쁘게 사시려면
셋째,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를 바라보면 됩니다. 함철훈 선생의 사진에 '먼지도 아름답다'라는 제목의 사진이 있습니다. 하루일을 마치고 사람들이 나귀를 몰고 돌아오는 길인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흙먼지가 폴폴 잃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먼지에 석양 햇빛이 비취었습니다. 그 모습이 사진에 찍혔는데 햇빛을 받은 흙먼지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사진의 제목을 '먼지도 아름답다'라고 붙였습니다. 저는 그 사진을 보면서 찬송가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주 영광 찬란해 이 세상 어떤 빛보다 그 빛 더 빛나네 주의 영광 빛난 그 빛 내게 비춰 주시옵소서 그 밝은 얼굴 뵈올 때 나의 영혼 기쁘다' 예수 그리스도는 빛이십니다. 이 세상 어떤 빛보다 아름다운 빛이십니다. 그 빛이 우리의 영혼에 비취게 되면 우리의 삶은 먼저도 아름답게 될 것입니다. 정말 아름다워 질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잃은 것은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아닙니다. 세상은 요동하여도 하나님은 요동치 아니하시며 세상은 변하여도 하나님은 영원히 변치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의 음성에 귀 기우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우리실 때 하나님의 빛이 우리의 삶을 비추시게 될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시는 참 기쁨이 무엇인가를 깨달으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빛으로 힘든 세상을 기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인중에 최상호라는 분이 있습니다. 미션 계통의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시는 선생님이신데 그의 시중에 '다짐'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대학 시험에 불합격하고 풀이 죽어서 졸업식장 한 구석에 웅크리고 숨어있는 제자가 안스럽고 속상해서 쓴 시입니다. 선생의 마음을 참으로 잘 표현한 시라서 제가 참으로 좋아하는 시입니다. 다짐 정호야 그리고 날라리라 불리던 동방불패 4인방아! 당당히 고개들고 선생님하고 외쳐라. 불합격이란 말은 너희를 단죄하는 칼날 아니다 교실모퉁이에서 졸업식장의 구석에서 풀죽은 얼굴로 숨어 있는 너희들 이리 나오지 못하겠니 아침이슬에 저녁별 보던 만리동 언덕 눈물고개의 귀신 바람 부는소리 듣던 겨울 저녁 밤에 웃고사는 놈만 빛나는 인생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니 저는 이 시를 생각하며 하나님이 오늘 경제위기로 풀이 죽어 숨어있는 우리를 향하여 그같은 마음을 가지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개야 고개들고 하나님하고 외쳐라. 경제위기 실패란 말은 너희를 단죄하는 칼날 아니다. 세상 모퉁이에서 풀죽은 얼굴로 숨어 있는 너희들 이리 썩 나오지 못하겠니 말씀은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고 사시는 분들이십니까 아니면 세상을 믿고 사시는 분들이십니까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을 믿고 사시는 분이시라면 세상 좀 힘들어졌다고 그렇게 낙심하고 절망하며 죽을 상을 하고 살 필요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 죄송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경제위기 끝난 후에 얼굴을 펴시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뭐하러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경제위기 중에도 얼굴 펴고 웃고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힘든 세상이지만 주와 함께 기쁘게 사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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