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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데살로니가 교회 (살전1:1-8)

본문

사도 바울은 많은 교회를 개척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자랑스럽게 여긴 교회가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였다. A.D 51년 2차 전도 여행 때 이 교회를 세웠는데 바울이 두 번째로 세운 교회였다. 처음으로 세운 교회는빌립보 교회였다. 바울 자신은 아시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지만 어느 날 꿈에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하는 희한한 꿈을 꾸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사도 바울은 유럽에 복음을 들고 나아가서 교회를 세웠다. 대 도시였던 데살로니가에 들어가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에 대해서 증거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지만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데살로니가에 오래 있지 못하고 아덴으로 피신하였다. 그리고 고린도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유대인들에게 말할 수 없는 핍박과 고난을 당하면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신앙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에 바울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이러한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은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소망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살전 전체에 주님의 강림이라는 말이 5번 나오고 있는데 (살전5:23)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 끝까지 싸워 이기라는 사도 바울의 간곡한 부탁의 말이었다. 사도 바울이 불과 3주정도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지만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너무나 아름다운 신앙과 뜨거운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주님의 교회도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끝까지 싸워 이기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고 재림 신앙으로 무장되어서 조금도 악한 세력에 물러서지 않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첫 번째: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있는 교회. (살전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 함이니 " 데살로니가 교회는 가장 중요한 3가지를 가지고 있는 교회였다 (고전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 " 우리가 신앙 생활하면서 갖추어야 할 것이 여러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게 바로 이 3가지이다. 우리의 신앙은 믿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에게 소망이 없다면 우리는 예수를 믿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을 주지 못하고 할 줄 모른다면 과연 예수를 믿고 있는 자인가
 "믿음의 역사" = 역사는 일을 의미한다 믿음의 일을 했다는 것이다. 즉 교회를 위해서 많은 일들을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사랑의 수고" = "아가페" 사랑을 뜻한다 즉 교회를 위해서 희생적인 사랑을 보였다는 것이다. "소망의 인내" = 예수님의 재림에 소망을 의미한다 즉 주님의 재림을 소망 삼고 있기에 어떤 고난도 핍박도 참고 견디었다는 것이다. "믿음, 소망, 사랑" 이 3가지를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은 믿음 있는 자들이 얼마나 있느냐 에 달려있다. 아무리 성도가 많다 할지라도 믿음 있는 자가 적다면 그 교회는 아름다운 교회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한 사람 한사람 믿음을 보시고 모든 것을 평가하신다. 교회도 얼마나 믿음 있는 자들이 있느냐에 따라서 그 교회를평가하신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자랑스럽게 아름답게 여긴 것은 믿음의 일군들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믿음이 있노라 하고 교회를 위해서 아무 일도 안 한다면 그 믿음은 믿음 있는 자가 아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신앙 생활 하는데 3가지 과정이 있어야 한다
1.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좋은 믿음을 갖는 것이다
2. 그 믿음의 결과로 교회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
3. 믿음의 일 한대로 천국 가서 상급을 받는 것이다. (딤후2:15)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 (롬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 믿음 안에서 순종하고 일할 때 의에 이른다고 말씀하고 있다. 교회의 자랑은 교회의 오랜 역사나 아름다운 건물이 자랑이 될 수 없다 교회의 자랑은 많은 성도가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 얼마나 믿음의 일군들이 많은가 가 자랑거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한 믿음의 일군들이 많을 때 교회는 사랑의 교회가 될 것이다 우리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예수님도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모욕과 천대와 수모와 멸시를 다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온 몸의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죽으셨다 기독교의 사랑은 희생적인 수고가 반드시 뒤따른다. 입술로만 "사랑해요!" 가 아니다. 예수를 사랑하십니까 교회를 사랑하십니까 사랑한다면 사랑의 수고를 보여야 한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교회를 위해서 사랑의 수고를 했기 때문에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로 칭송을 받은 것이다. 성도는 있는데 교회를 위해서 사랑의 수고를 하는 자가 없다면 그 교회는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없다. 여러분들이 교회를 위해서 하는 수고 절대로 헛된지 아니한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 세상에서 하는 수고는 다 헛된 것들이 많지만 교회에서 하는 수고는 하나도 헛되지 아니하고 주님이 모두 기억하신다. 그 수고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도 주님이 기억하시고 반드시 축복하여 주신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교회를 위해서 이러한 믿음과 사랑의 수고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들에게 재림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 이시대 성도들의 신앙에 뜨거움이 없는가 재림 신앙이 없기 때문이다. 직장인은 회사에서 승진을 소망한다. 사업가는 회사가 성공하길 소망한다 부모는 자녀가 잘 되길 소망한다 농부는 풍년을 기다리는 소망을 가진다. 어부는 만선을 소망한다 작가는 자신의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기를 소망한다. 소망은 살아있다는 중거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재림의 소망이 있는 교회였다. 신부는 신랑을 기다리는게 최대의 소망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소망 속에서 살아갈 때 우리의 믿음의 역사가 나타날 것이고 사랑의 수고가 나타날 것이다 교회는 다니고 있는데 왜 우리가 믿음의 일들은 하지 않고 내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사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관심도 없고 소망도 없기 때문이다. 예수를 사랑하면서 왜 교회를 위해서 사랑을 보이지 못하는가 예수 그리스도 재림이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초대 교회 때 성도들 간의 인사가 "마라나다" 였다. 즉 "주께서임하시느니라" 였다. 초대교회는 이 시대 모든 교회의 모델이다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운 교회가 될 수 있었는가 재림 신앙이 뜨겁게 임했기 때문이다. 재림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모든 성도가 하나가 되었고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고 그 결과 기적과 이적이 나타났고 구원받는 수가 날마다 더했다. 무디는 항상 "오늘 오시렵니까 " 하면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렸다. 루터는 "주님은 어제 죽으셨고 오늘 부활 하셨고 내일 오실 것이다" 손양원목사는 이상한 구름만 보아도 주님이 오시는가 하고 살았다, 오늘날 교회는 많은데 왜 교회가 힘을 잃고 있는가 목사들에게서 주님의 재림의 신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성도들의 신앙에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이 없다. 아름다운 교회는 재림 신앙으로 무장된 성도들이 믿음으로 교회를 위해서 일을 할 때 아름다운 교회가 되는 것이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 오고 있다. 이제 교회는 아름답게 단장한 신부의 모습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어떤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인지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어떤 성도가 아름다운 성도인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성도 여러분 ! 교회를 위해서 믿음의 일을 하자 ! 교회를 위해서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말자 ! 우리의 마음속에 주님의 재림 소망이 날마다 함께 하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주님을 본 받은 교회. (살전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님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많은 환난을 겪으면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사도 바울의 일행과 주님을 본 받으며 이겨 나갔다. 다시 말해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고난과 예수님의 당하신 고난과 핍박을 생각하면서 견디어 나갔다.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인가 여러분들이 고난 당할 때 주의 종들의 고난을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의 고난과 핍박을 생각하십니까
 "환난" = 헬라어로 "트리보" 이다 "고통을 주다괴롭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당했다. "성령님과 기쁨으로" = 환난을 성령님의 주시는 기쁨으로 이겼다 "도를 받아" = 말씀의 가르침이다 "우리와 주를 본 받은자" = 우리는 바울의 일행들이다. 즉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다.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즉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본 받아야 하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본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할 때 아름다운 교회와 성도가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기독교는 고난과 환난의 종교이다. 반드시 고난과 아픔이 동반한다. 우리가 신앙 생활 하는데 환난은 반드시 찾아 오는데 크게 두 가지로 찾아온다.
1. 외부적 환난.2. 내부적 환난.1. 외부적 환난은 밖에서 나를 괴롭히는 아픔이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유대인들의 협박과 받았다.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다. 초대 교회가 로마 황제의 핍박을 받았다. 생명을 빼앗기고 재산을 빼앗기고 죽임을 당하는 핍박을 받았다. 그래서 환난을 피해서 지하 카타콤으로 숨어들어 간 것이다. 우리 나라의 초기에 복음을 전하는 자들과 예수를 믿었던 자들이 이루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았다. 오늘날도 우리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생명의 위협은 느끼지는 않지만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아픔을 겪고 있다. 예를 들면 교회 다닌다고 남편에게 가족에게 핍박을 당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2. 내부적 환난은 내 속에서 일어나는 고통이다. 주일날 교회를 가야 하느냐 안가야 하느냐 주일 밤 예배를 가야 하느냐 안 가야 하느냐 수요 예배를 가야 하느냐 안 가야 하느냐 새벽 예배를 가야 하느냐 안가야 하느냐 이 고통을 이기고 우리는 예배에 나와야 한다. 이러한 고통 마져도 없다면 죽은 신앙이다. 물론 성숙한 신앙으로 예배에 다 참석하는 자라면 이런 고통은 없다. 그러나 예배에 참석도 안 하는데도 내 마음에 아무런 내적 고통도 그 신앙은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 외에도 우리에게 내적 고통은 많이 있다. 세상 것을 즐기지 않으려는 고통. 돈을 좋아하지 않으려는 고통 왜 우리에게 이런 환난이 오는가 좀 편하게 신앙 생활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환난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계속 될 것이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환난은 계속 온다 성도들은 환난을 당하면 하나님을 찾게 되고 기도하게 되고 . 교회에 달려오게 된다.
그러므로 고난이 하나도 없고 환난이 하나도 없는 것은 축복이 아니다. 이 시대 사람들이 너무 편하다 또 환난이 와도 믿음으로 해결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교회에 나오려고도 하지 않는다. 기도 없이도하나님 없이도 교회 없이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 환난이 올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복음 전하는 자들을 생각했고 주님을 생각했다. 주의 종들과 예수님이 당한 고난과 아픔을 생각 한 것이다.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내가 당한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고 생각 한 것이다 그리고 주님처럼 고난을 받기를 원한 것이다. 본 받았다는 것은 고난을 무서워하고 피한 모습이 아니다. 똑같은 고난 속에 동참하기를 바란 것이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유대인들의 핍박과 고난을 오히려 기쁨으로 받아 들였다. 이런 교회가 어찌 주님께 아름다운 교회라고 칭함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요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 아름다운 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주님을 본 받으시기 바란다. 영광만 받기 원하는 성도는 아름다운 교회 성도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롬8:17)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 세 번째:믿는 자의 본이 되는 교회. (살전1:7-8)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 데살로니가 교회의 아름다운 신앙의 소문은 이방인에게 뿐만 아니라 같은 믿음의 형제들 교회들에게도 알려졌다 교회는 세상에도 본이 되어야 하지만 다른 교회에도 본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이 저 세상 사람들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신앙이 다른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어서 소문이 퍼져야 한다. 그러할 때 교회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어 가는 것이다. 교회의 자랑은 곧 예수님 자랑이다. 성도를 자랑할 수 있다는 것은 곧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다.
 "믿는 자의 본이" =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하여야 옳은 것인지 보여 준 것이다. "소문이 각 처에 퍼졌다" = 데살로니가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 영광이 나타난 것이다. 아름다운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교회가 되자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교회는 좋은 소문이 나야한다. 좋은 소문은 누가 낼 수 있는 것인가 목사가 내는 것입니까 성도들이 교회 소문을 내야 한다. 그렇다고 여기 저기 다니면서 "우리 교회를 자랑하라는 것이 아니다" 성도들이 처해있는 곳에서 각 자의 삶을 통해서 저 불신자들이 보고 "아! 저 사람은 진짜 예수 믿는 자다" 라고 인정을 받어야 한다. 그 인정만 받으면 그 다음은 "저 사람 어느 교회 나가지 " 궁금해 할 것이다. 교회 소문이 잘 나고 못 나고는 성도들이 얼마나 올바른 신앙의 삶을 사느냐 못 사느냐 에 달려있다. 오늘날 성도들이 교회에서의 삶과 사회에서의 삶이 다르기 때문에 저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불신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목사까지 불신하고 있다. 목사가 조금 부족해도 여러분들이 세상에서 바르게 살면 "아! 그 교회 목사 훌륭하다" 고 소문나고 교회는 자연히 소문나게 된다. 자식이 사회에서 성공하면 그 부모가 좀 부족하고 못 배웠어도 그 부모는 훌륭한 부모로 칭함을 받듯이 교회도 마찬가지다 여러분들이 말씀을 깊이 있게 알고 잘 알면 "아 ! 그 교회는 말씀을 잘 가르치구나" 소문나게 될 것이다. 여러분들이 기도도 뜨겁게 하고 잘 하면 "아! 그 교회는 기도도 뜨겁게 하는 교회구나" 소문나게 된다. 여러분들이 이웃에 전도하고 영혼을 사랑하면 "아! 그 교회는 사랑이 있고 뜨거운 교회구나" 소문 날 것이다. 광고를 내는 회사들을 보면 우리가 놀랠 정도로 수억의 광고비를 내고 자기 회사 상품을 알리고 있다. 왜 그렇게 많은 돈을 버리고 광고를 내는가 소문나게 해서 상품이 잘 팔리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 주님의 교회가 이 지역에서 좋은 소문이 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이 바른 삶이 되어야 한다. 신앙인 다운 모습이 우리에게 나타나야 한다. 영적인 자가 되어야만 한다. 저 세상사람들하고 똑같이 육적인 자가 되어서는 우리는 저들의 본이 될 수 없다. ' 예 화 ' 시카고에 대 화재가 나서 온 시가지가 불바다를 이루었을 때의 일이다. 각 신문사의 기자들이 화재현장에 도착해보니 건물들이 모두 불타고 있었고, 더욱이 시가지 한복판에 있던 무디 목사의 교회도 모두 불타버리는 것을 보게 되었다. 기자들이 무디 목사 곁으로 다가가 "목사님 항상 살아계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무엇이든지 원하기만 하면 이루어 주신다고 설교 하셨지요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성전인 교회가 불이 타 없어지는 것을 가만 두십니까" 라고 빈정거리며 말하자, 무디 목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벌써부터 하나님께 큰 교회를 달라고 기도해 왔소. 그 기도의 응답으로 지금 교회가 불탄 것입니다. 우리가 큰 교회를 헐고 다시 세워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불에 태워서 건물을 허는 비용이 들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에 기자들은 어이 없어 했다.
왜냐하면 무디 목사는 밤중에 화재를 당하여 잠옷 바람으로 겨우 목숨만 건진 빈주먹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자들은 다시 "그럼, 그 큰 교회를 세울 돈은 가지고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무디 목사는 옆구리에 끼고 있던 낡은 성경책을 내놓으면서 대답했다. "나는 수표와 돈을 가지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써도 바닥이 나지 않는 하나님의 금고인 성경책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얼마 안 가서 불에 탄 교회보다 더 크고 훌륭한 교회를 볼것입니다." 무디 목사는 그 화재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전 영국을 뒤흔드는 부흥을 일으켰고, 영국에서는 교회건축을 위해 많은 헌금을 했다. 이렇게 해서 무디 목사는 영국 국민이 바친 헌금으로 화재가 난 자리에 옛날 교회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운 교회를 지을 수가 있었다.-11-' 예 화 ' 에릭 리들은 영국 대표로서 1924년 제 8 회 파리 올림픽 경기의 금메달 후보였다. 그러나 100 m 경기일정이 발표되었는데 첫 예선 일자가 7월 6일 주일 오후 3시와 5시였다. 그는 일정표를 보자 마자 "저는 주일에는 안 뜀니다"라고 단호한 결정을 알렸다. 그의 그런 결정은 그의 주일 성수를 위한 자기 희생적 결단이었으며 주일은 주님의 날이므로 주님을 위한 일만을 해야 한다는 신앙의 표현이었다. 에릭 리들의 100m 출전 포기를 들은 영국 전체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그를 가르켜 "편협하고 옹졸한 신앙인", " 신앙을 소매 끝에 달고 다니는 신앙심 깊은 척하는 위선자", "조국의 명예를 버린 위선자" 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에릭 리들은 100m 예선 경기를 하던 7월 6일 주일에는 스코츠 커크 장로교회의 간증설교를 하였다. 그날 에릭 리들은 경기장에 나가 동료들을 위로하지도 않고, 평소처럼 주일을 교회에서, 성도들을 위해서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다. 100m 경기는 영국의 헤롤드가 금메달을 땄다. 그의 기록은 에릭 리들보다 약간 뒤졌었다. 에릭 리들은 기쁜 마음으로 헤롤드의 우승을 축하해 주었다. 하나님은 에릭 리들을 버리시지 않으셨다. 에릭 리들은 자신의 주 종목이 아닌 200m에서 동메달을 땄고 400m에도 출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400m는 다른 선수들의 들러리였다. 예선에서 만도 스위스의 임바흐, 미국의 피치 같은 선수들은 세계 신기록을 세우면서 우승 후보로 각광을 받았다. 드디어 결승전이 왔다. 에릭 리들은 신들린 사람과 같이 무서운 속도로 첫 코너를 돌았다. 경기를 지켜보던 전문가들은 "에릭이 저런 속도를 유지하다가는 도중에 쓰러져 죽을 지도 모른다". 고 불안감을 표현하였다. 에릭 리들은 임바흐, 피치 등의 우승 후보를 제치고 47초 6이라는 세계 신기록까지 세우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가 결승전을 출전할때 담당 안마사가 쥐어준 쪽지가 응답되었던 것이다. '구약에 이런 글이 있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나도 존중하리라'-최선의 영광이 있길 빌면서. 그는 400m우승 비결을 묻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답하였다. "처음 200m는 제힘으로 최선을 다했고 나머지 200 m는 하나님의 도우심 으로 빨리 달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주일이 자기를 위한 날이 아니고 주님을 위한 날이라는 사실을 삶으로 설교한 위대한 신앙인 이었다. '결론'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서 신앙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에게 전해진 복음을 믿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한 자들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코리아 갤럽에서 천국을 믿느냐 내세를 믿느냐 라는 질문으로 기독교인과 불신자 1000명 상대로 조사를 했는데 놀랍게도 기독교인 41%과 천국을 안 믿는다고 했다. 비 기독교인은 천국을 66%가 천국을 안 믿는다고 했다. 그러면 34%는 천국을 믿는다는 것이다. 무엇을 뜻합니까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교회는 많다 믿는 자들은 많다. 종교인들이 너무 많다 십자가는 흔하다 . 그러나 예수의 피가 흐르는 십자가는 보기 힘든 시대가 아닌가 생각 해 본다. 아름다운 교회들의 십자가가 빛나야 할 것이다.  성도들이 일어나야 할 때이다. 어떤 아픔과 고난이 있더라도 아름다운 교회는 참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것이다 오직 예수님을 본 받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진주는 고통 가운데서 생겨난다. 다이아몬드는 시커먼 석탄 속에서 생겨난다. 아름다운 봄을 알리는 꽃은 정원에서 피어나는 장미 꽃 백합이 아니라 들에서 비바람과 추운 겨울 이기고 피어나는 노란 개나리 꽃과 붉은 진달래 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교회는 결코 조용하고 편안한 곳에서 만들어 질 수 없다. 아름다운 성도 역시  주님을 위해 살고 주님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성도는 편안하고 따뜻한 아랫목 같은 자리에서 태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아름다운 교회 !우리의 꿈이 아닌가 아름다운 성도 ! 우리의 소망이 아닌가 이 꿈과 소망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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