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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처에 믿음의 소문이 난 교회 (살전1:1-10)

본문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칭찬은 우리 인생의 가장 위대한 자산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러한 말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 질문하자 그는 에디슨의 칭찬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가 새로운 자동차 엔진개발을 추진할 때 수많은 전문가들이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식사 모임에 참석했던 에디슨이 포드의 설명을 듣고 개인적으로 만나 책상을 치며 "젊은이, 이것은 걸작이야. 자네는 벌써 해낸거나 마찬가질세." 라고 격려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에 포드는 에디슨의 예견대로 자동차 엔진을 만들었습니다. 포드는 감격의 순간 과거 에디슨으로부터 칭찬을 들었던 그 순간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시 에디슨이 책상을 치는 순간 나는 세상을 모두 얻은 기분이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로 좋은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정말로 살 맛 나는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천국같은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새해를 맞이한 우리는 어떠한 세상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어떤 세상을 만들기를 원합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칭찬 아닙니까 칭찬할 때, 칭찬 받을 때, 가장 기쁘지 않습니까 칭찬하는 세상, 칭찬 받는 세상이 가장 밝고 아름다운 것 아닙니까 칭찬 받는 사람, 칭찬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우연히 본 TV 프로그램 가운데 "칭찬합시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퍽 감동을 받았습니다. 각계각층의 숨어있는 우리 시대의 천사들, 정말 칭찬 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을 찾아서 시상하는 프로그램인데 비판과 반목과 질시가 난무하는 우리의 시대에 정말로 필요한 프로그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금년도 우리 교회 목표를 생각하며 기도하는 중 주님으로부터 응답 받은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그래서 금년도 교회 표어를 "21세기 새 시대를 준비하는 교회"라고 정하고 부제로 오늘 본문 말씀을 근거로 해서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칭찬 듣는 교회였습니다. 각처에 믿음의 소문이 난 교회였습니다. 성도들은 주님을 본받음으로 모든 믿는 자들의 본이 되었습니다. 말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리고 마음까지 성령님으로 아름답게 단장한 모범적인 교회였습니다. 물론 하늘 나라의 성전과 같이 완전한 교회는 아닙니다. 잘못된 종말론 등 교회문제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랑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행동하는 교회였습니다. 역동적으로 일하는 교회였습니다. 소망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인내하는 교회였습니다. 기쁨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의 편지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나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데살로니가 교회 여러분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깃들기를 빕니다. 우리는 언제나 여러분 모두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할 때마다 여러분의 믿음의 활동과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꾸준한 희망을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해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이 그저 말만으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님과 굳은 확신으로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여러분을 위해서 어떻게 살았는지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많은 환난 중에서도 성령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가지고 말씀을 받아들여 우리뿐만 아니라 주님까지 본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신도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으로부터 마케도냐와 아가야 지방에 두루 펴져 나갔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는 이야기가 사방에 널리 펴져 나갔으니, 그 이야기는 더 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갔을 때 여러분이 우리를 어떻게 받아 들였으며 또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려서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는지는 오히려 그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다시 오실 날을 여러분이 고대하게 되었다는 것도 그들이 널리 전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장차 닥쳐 올 하나님의 진노에서 우리를 건져 내 주실 분입니다.> 구구절절 칭찬의 말로 가득 차 있습니다. 편지를 쓰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 다 행복감에 깊이 젖어있는 말씀입니다. 목회자와 성도인 바울과 데살로니가 교회는 정말로 사랑하고, 사모하고, 아끼는 관계였습니다.
사실 신학적으로, 또 바울 개인적으로 데살로니가 전서는 매우 의미 있는 책입니다. 바울이 쓴 서신서 중에 가장 첫 번째로 쓴 편지가 바로 데살로니가 전서입니다. 편지는 어떻습니까 아무에게나 씁니까 그것도 첫 번째 쓴 편지 말입니다. 편지자체가 우리 마음의 깊은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도 총각 때는 지금 집사람에게 편지를 많이 썼습니다. 어떤 때는 하루에 3통도 보냈습니다. 연애 기간 중에 썼던 편지가 한 150통 이상은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다행히 다 분실되었지만. 결혼하면 잘해준다고 서약을 많이 했거든요. 신혼 때는 고이 잘 간직하던데, 이사 몇 번 하니까 다 없어졌습니다. 아무튼 바울이 첫 번째로 편지를 보냈던 교회가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였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바울의 마음속에 데살로니가 교회가 얼마나 크게 자리 잡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데살로니가 교회에 자신을 소개할 때 바울은 간단하게 자기 이름만 썼습니다. 다른 서신과 비교할 때 이것은 매우 획기적인 일입니다. 바울은 편지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자랑스러운 교회의 직함을 썼습니다. 대표적으로 로마서를 보십시다. 바울은 로마서를 쓸 때 자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 바울은 자신을 3가지로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사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은 사람, 참으로 자신을 당당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데살로니가 전서에서는 어떻게 말합니까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 여기에는 아무 직함도 없습니다. 그 이름만 언급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분명하게 깨닫습니다. 바울과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가 얼마나 친숙한가 얼마나 격의 없는가 그러면서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가 사랑하는 사이 직함이 필요없습니다. 직함, 자리 따지는 것 자체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제가 집에 전화할 때, 아들입니다. 하지 유목사하지 않습니다. 집사람도 저를 부를 때, 목사님 하지 않습니다. 클린턴, 르윈스키, 불매스러운 관계였지만, 좋아했던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클린턴을 보고, 미스터 핸섬이라나요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목회자로서 다가간 것이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가까이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 다가 간 것입니다.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서 목회자로서 가까이 한 것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뜨겁게 사랑했기에 그리스도의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애정을 가지고 그들에게 다가선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 아닙니까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고, 믿어주고, 아끼고 사랑하는 관계, 무슨 일을 하는가 감시가 아닌 그저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관계, 견제가 아닌 모든 일에 전적으로 협력하고 헌신하는 관계가 바로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입니다. 바로 이런 목회자와 성도가 만나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는 일을 하는 교회가 가장 힘있고, 아름다운 교회가 아니겠습니까 이런 기본적인 관계가 구축되어 있기에 바울의 마음과 입에서는 칭찬이 끊이질 않는 것입니다. 2절 말씀을 주의 깊게 보십시오.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 고백입니까 생각할 때에 늘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하루도 빼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이 진정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상대방을 감동시키는 사랑 고백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아내에게 남편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나는 당신 때문에 행복합니다.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당신 덕분에 삽니다. 이렇게 말합니까 아니면 눈꺼풀이 씌었지, 뭐가 좋아서 그때 결혼했지 후회된다. 후회되. 아이고 내 팔자야! 그러면 상대방의 마음이 얼마나 싸늘해지겠습니까 자식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키우면서 아무리 힘들었다 할지라도 말은 이렇게 해야합니다. 얘야! 너를 키우면서 힘들었지만 나는 참 행복했다. 기뻤다. 보람이 있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 이래야 아이들이 감동을 하고, 부모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를 앞에 놓고 그래, 너는 안 낳았어야 하는건데, 너 키우면서 너무 힘들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한이 맺힌다. 치가 떨린다. 억울하다. 분하다. 이렇게 말하면 자식의 장래는 끝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칭찬 이상 좋은 말이 없습니다. 칭찬보다 더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칭찬보다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강력한 무기가 없습니다. 칭찬보다 능력있는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선조들은 새해를 맞이하면 상대방을 칭찬하고 축복하는 덕담을 했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칭찬합니다.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因)하여 항상(恒常) 하나님께 감사(感謝)하고 기도(祈禱)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役事)와 사랑의 수고(受苦)와 우리 주(主)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所望)의 인내(忍耐)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記憶)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兄弟)들아 너희를 택(擇)하심을 아노라> 데살로니가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믿음 안에서 큰 일을 하셨습니다. 사랑의 수고를 하셨습니다. 소망 가운데서 잘 참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정말로 사랑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이 칭찬이 성도들을 얼마나 감격하게 만들었겠습니까 사실, 칭찬을 많이 듣는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봅니다. 세상을 밝게 봅니다. 웬만한 문제, 병은 칭찬 몇 마디로 다 해결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에디슨은 어렸을 때 저능아 취급을 받았습니다. 따돌림 받았습니다. 학교 선생님도 교육시킬 수 없는 문제아로 취급하고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나 에디슨의 어머니는 자기 아이를 끝까지 믿어주었습니다. 칭찬했습니다. 너는 큰 일을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되려고 그러지 말고 독창적인 너 자신이 되어라. 결국 에디슨은 인류 문명의 큰 이기를 남기는 발명왕이 되었습니다. 금년에는 거창한 꿈, 거창한 계획보다는 작고 소박한 이 일 하나만 잘 했으면 좋겠습니다. 칭찬 많이 하십시다. 부족하고 허물이 있더라도 칭찬부터 하십시다. 이런 사람에게 칭찬이 필요합니다. 잘한다. 열심히 한다. 소망이 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다.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보고 칭찬을 많이 하게 될 때 우리 복음교회의 모습은 아주 달라질 것입니다. 또 오늘 말씀에 의하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정말로 칭찬 받을 만한 교회였습니다. 본문 5절 말씀에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님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데살로니가 교회는 말뿐만이 아닌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는 교회였습니다. 성령님 충만한 교회, 믿음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또한 6절, 7절 말씀에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님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복음을 받아들여 기쁨 마음으로 믿음 생활하였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을 본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다른 지역인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믿는 자의 본이 되었습니다. 8절 말씀에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결국 데살로니가 교회의 아름다운 믿음의 소문은 각처에 퍼져서 선교적 사명을 다하는 교회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바울 일행이 곳곳에 가서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아름다운 소문을 듣고 교회를 찾아온 무리들이 많았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진짜 선교요, 전도입니다. 우리가 일대일로 만나서 복음을 전하는 것,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의 좋은 소문을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소문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섬길 때, 사랑할 때, 희생할 때, 베풀 때 비로소 멀리 멀리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복음교회가 선교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소문이 나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며, 우리의 힘을 결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증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였고, 어떻게 변화되었으며, 어떻게 섬기고 있으며, 무엇을 소망하며 살고 있는지 분명하게 증거하였습니다. 9절, 10절 말씀에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모습에 절도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인 모습이 분명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삶속에 분명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상을 확실히 버렸습니다. 세상적인 삶을 청산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참되신 하나님을 바르게 섬겼습니다. 그리고 장차 있을 주님의 재림을 생각하며, 우리 주님께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물론 잘못된 종말론으로 인해서 교회가 시끄러운 것 사실이었지만,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하고, 준비하며 사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지혜롭습니다. 우리들이 본받을 점입니다. 사실 기독교의 생명력은 종말신앙에 있습니다. 종말이 있다고 믿고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늘로 올라가진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우리에게 수없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종말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길 때 가장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의 생명은 다합니다. 돈도, 명예도, 부귀영화도, 권력도, 지식도 끝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분복을 그 분을 위해서 멋있게 써야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돈도 사실 내 돈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곧 회수해 가실 것입니다. 건강도, 생명도, 재능도, 시간도 내 것이 아닙니다. 곧 하나님 앞에 서서 셈을 해야 할 때가 곧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엄숙하게 서서 평가받는 우리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 입니다마는 믿음 생활을 시원치 않던 한 성도가 몸이 좋지 못해서 병원에 가서 진단을 해보니 암 말기였습니다. 의사선생님 말씀으로는 한달 이상 살기가 힘들다 했습니다. 이 엄청난 말을 듣고 하루종일 울었습니다. 절망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이성을 되찾고, 가만히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한달 동안 어떻게 살 것인가 진지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자기는 일생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베푼 것이 없었습니다. 그저 자기 돈을 모으기만 열심히 했지 쓸 줄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큰 결단을 했습니다. 자기가 한 달 살 것 조금 남겨두고 나머지 재산을 처분했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이웃, 친지, 어려운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죽는 날만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한달이 지나도 안 죽습니다. 이상하다 해서 병원에 가보니 병이 다 나았습니다.
그렇다면 자기 돈 다 나누어 준 것은 어떡하지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 갈 것입니까
그런데 이 사람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자신은 자기 전 재산을 처분해서 나누어 준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에게 베풀면서 산 그 한달이 자기에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를 맞이하여 여러분 나름대로 계획이 있고, 꿈이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도 소망이 있습니다. 큰 꿈이 아닌 소박한 꿈입니다. 저는 복음교회가 큰 교회가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세상적으로 큰 일을 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또한 제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받는 유명한 목사가 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저 제가 바라기는 우리 복음교회 성도들이 행복한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스도 은혜 안에서 참 자유와 기쁨을 누리시기를 원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처럼 칭찬 받는 교회인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와 은사대로 서로 나누며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어쩌면 이 소원이 가장 큰 소원일지 모르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금년에는 열심히 칭찬하십시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십시다. 각처에 우리 복음교회 좋은 소문을 내며 사십시다. 우리 주님께만 소망을 두고 주신 은사대로 베풀며 사십시다. 좋으신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것이며,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과 기쁨과 축복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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