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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분의 영광과 은혜 (딤전3:1-13)

본문

우리 교회는 오늘 우리 교회를 섬기고 봉사할 교사들과 집사들, 그리고 성가대원들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오늘 임명하는 교사의 직무는 우리 교단의 헌법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주일학교를 섬기는 교사들과 구분하여 우리 교회의 새신자반과 제자훈련반과 구역의 가족들을 말씀으로 돌보고 섬기게 될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 분들은 우리 교회가 받아들이고 있는 개혁주의 신학에 기초한 성경교리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고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의 설립목적을 이해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집사의 직무는 안수를 받아 세우는 안수집사는 아니고 교회의 본질을 구현하기 위하여 한국교회에만 임시적으로 있는 직분입니다. 하지만 이 직분을 통하여 세움을 받은 사람이 믿음이 자라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또한 앞으로 안수집사나 장로로 봉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검증방법이 되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하며 찬양하는 성가대의 직분을 함께 임명하였습니다. 성가대원은 구약의 레위지파가 맡았던 일인데, 하나님의 구원사역과 우리 교회의 믿음을 찬송을 통하여 표현하는 고유하고도 영광스러운 직분입니다. 이들의 찬양봉사를 통하여 자신의 믿음이 자라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모습을 통하여 온 성도들이 예배드리는 모범을 배우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직분이든지 영광스럽고 귀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가 이렇게 사람을 세우고 외적인 조직을 갖추는 것은 단순히 어떤 외적인 조직을 갖추는 일에만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조직이든지 그 조직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목적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역시 우리 교회에 사람을 세워 조직을 갖추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목적을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 교회가 사람을 세워 조직을 가지는 것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과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을 좀 더 효과적으로 잘 감당하기 위함입니다. 만약에 이 조직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본질을 구현하는 일에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우는 직분은 교회의 본질적인 목표를 구현하기 위하여 존재한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은 교회의 직분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이며, 어떤 사람이 그 직분을 맡을 수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본문의 주제는 교회의 직분은 영광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자격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이 주제를 중심으로 첫 번째로는 직분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살펴보고, 두 번째로는 직분자의 자격, 세 번째로는 직분을 잘 감당하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들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직분의 영광 이 본문에서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직분은 오늘날 장로교에서 말하는 목사와 장로에 해당하는 감독과 집사입니다. 바울은 아주 특별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언급할 때 그의 서신에서 "미쁘다 이 말이여"라는 관용구를 사용하였습니다(딤전1:15; 4:9; 딤후2:11). 이 말의 의미하는 것은 이 말이 믿어야 할 확실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직분에 대하여 바울이 디모데전서 3:1-13까지 언급하는 내용은 확실하기 때문에 반드시 듣고 지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 내용은 무엇일까요 이 내용의 핵심은 교회에 목사와 장로를 세우는 문제와 집사를 세우는 문제에 있어서 어떤 사람을 세워야 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을 감독의 직분으로 세워야 하는지를 말하기 위하여 1절에서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말 성경이 번역된 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이 의미를 충분히 나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선한 일"이라는 말은 헬라어 성경에 단순히 도덕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그 말은 헬라어 성경에 아가소스(agathos)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카로스(kalos)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귀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헬라어 사전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전이 월터 바우어(Walter Bauer)가 쓴 사전입니다. 여기에 이 단어를 초대교회 문헌들과 비교하면서 복음을 전하여 구원하는 일과 연관된 일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의미는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고 한다면 복음을 전하여 구원을 얻게 하는 고귀한 일을 사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NIV, RSV 등의 영어 번역성경은 이 말을 "고귀한 과업"(a noble task)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원문의 의미를 잘 파악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감독의 직분을 원하면 복음을 전하여 구원을 얻게 하려는 일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교회의 감독이나 직분자가 사모해야 할 일을 왜 고귀한 과업이라고 하였을까요 여기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불러서 권면하는 말 가운데 감독을 위시한 교회의 직분이 얼마나 중요하며, 고귀한 것인지를 사도행전 20:28에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님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이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도록 하기 위하여 직분자를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양떼들을 돌보도록 하기 위하여 "성령님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았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성령님이 저들 가운데 감독자로 삼았다"고 하는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 보십시오. 바울은 하나님께서 교회의 양떼를 돌보는 일을 위하여 직분을 주신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불행하게도 양떼를 돌보는 일이 중심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고통스럽게 만들고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 사실을 지극히 불행한 일입니다. 교회의 어떤 직분도 궁극적으로는 주님의 양떼들을 돌보는 일에 있습니다. 교회의 여러 프로그램이 존재한다든지, 여러 제도들은 주님의 양떼들을 돌보기 위한 한 방법일 뿐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일은 사람에 목표가 있지 일 자체에 목표가 있지 않습니다. 이 점을 우리는 잘 명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양떼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인지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본문에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다"는 말 가운데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표현은 사실 신약성경 여기에만 나타나는 특별한 표현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교회가 어떤 존재들인지 잘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의 피로 사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교회는 단지 외형적인 건물이 아니라 부름을 받은 성도들의 모임이라고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본문에서 주님의 양떼들과 교회가 동일시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로 세우신 교회, 이러한 교회의 본래적인 존재특성을 이해한다면 교회의 직분을 소홀히 생각할 수 있을까요 교회의 직분은 하나님께서 고귀한 일을 하도록 주신 것입니다. 그 일은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과 주님의 양떼인 교회를 돌보는 일입니다. 여기에 교회의 직분의 영광이 있습니다.
2. 직분자의 자격 바울은 이러한 고귀한 일을 하게 될 직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어떤 사람을 세워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날의 목사와 장로에 해당하는 감독의 자격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헬. kosmios, 덕이 있으며, 또는 예절이 바르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고, 구타하지 아니하고(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잘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며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딤전3:2-7) 그리고 바울은 감독과 같은 기준으로 집사의 자격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간직한 자라야 할지니."(딤전3:8-9) "여자들도(그 부인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다스리는 자일지니"(딤전3:11-12) 여기에 설명하고 있는 직분자의 자격을 자세하게 보십시오. 이 자격 기준들을 보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기준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에 초점이 있다는 사실을 주의하여 보십시오. 단 한 가지 예외가 있는데 감독직에만 잘 가르치는 능력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집사직과 큰 차이점입니다. 앞으로 저희 교회에 장로를 세우게 될 때에는 이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고 받아들이는 성경의 교리 내용을 알고, 설명할 수 있고, 그 말씀에 따라 사는 사람을 장로로 세워야 합니다. 직분자의 자격 가운데 몇 가지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 자격 가운데 하나는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야 합니다. 바울이 이 말을 한 것은 당시에 이방 문화의 영향인 일부다처제의 배경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한 남편은 한 아내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직분을 받은 사람들이 자기 아내나 가정에 부도덕하거나 충실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의 양떼인 교회를 돌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남편이나 아내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부도덕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면서 교회를 섬겨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건강한 가정생활을 하는 사람이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직분을 받은 분들은 자녀들을 말씀으로 잘 양육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보면 직분을 받은 사람들이 자녀들을 주일에 과외에 보낸다든지, 학원에 보내어 신앙교육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유초등부와 중고등부의 교육이 정상적으로 시행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의 신앙과 맞지 않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자라난 자녀가 크면 하나님의 말씀과 현실이 갈등을 일으키며 충돌할 때 현실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오늘 우리 교회에서 직분을 임명받으신 분들은 아내나 남편의 관계에 있어서나, 자녀 교육에 있어서 성경적인 원리를 찾고 그 원리에 결혼생활이나 가정생활에 적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말은 반드시 결혼한 사람만이 감독이나 집사의 직분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결혼하지 않아도 감독이나 집사의 직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의 직분을 맡은 자들은 돈을 사랑하거나 부당한 이윤을 탐내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감독이나 집사들이 돈을 탐내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돈으로만 보이게 되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또한 부당한 이윤을 남겨서는 안된다는 점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아모스 선지자는 아모스 8:5-6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해서는 안될 일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바를 작게 하여 세겔을 크게 하며 거짓 저울로 속이며." 에바는 양을 측정하는 용기이고, 세겔은 무게를 측정하는 단위입니다. 그 정확한 용량이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양을 측정하는 용기를 작게 한다는 것은 정한 값보다 작은 분량을 준다는 의미이고, 세겔을 크게 한다는 것 역시 무게를 많이 나가게 하여 정한 값대로 상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요즘 사용하는 말로 바꾸면 표시용량이나 무게, 또는 상품제원을 속인다는 것입니다. 또는 포장과 내용물이나 질을 다르게 속인다는 것도 포함됩니다. 이것만이 아니라 영수증을 자기 마음대로 조작하는 일도 포함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불의한 소득을 탐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교회 직분자는 돈 문제에 있어서 깨끗해야 하고, 불의한 이윤을 탐내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교회의 직분을 맡은 자들은 아담하다든지, 단정해야 합니다. 이 말의 헬라어 뜻은 예의바른 품성을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NIV 성경에서 이 말을 "존경을 받을만한, 또는 칭찬을 들을만한"이라는 말로 번역하였는데, 잘 번역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의범절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증진시켜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과 여러 상황 속에서 서로 관계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만나서 사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 때문입니다. 내가 하는 말이나 행동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쾌감을 주지 않도록 하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삶의 태도입니다. 특히 우리 직분을 받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덕목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다음으로 교회의 직분을 맡은 사람들은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번역에는 "구타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원문의 의미는 폭력을 사용하지 아니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주먹을 휘두르거나 무례한 언행을 하면서 일을 해결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러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말끝마다 꼬리를 물고 전투적이고 싸우기를 좋아하는 정신의 소유자들이 그들입니다. 심지어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일에도 폭력을 행사하며 섬기는 사탄의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점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 외에도 많은 부분이 있습니다. 다시 한번 사도 바울이 직분자의 자격을 말하는 부분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고, 구타하지 아니하고(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잘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며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딤전3:2-7)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간직한 자라야 할지니."(딤전3:8-9) "여자들도(그 부인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다스리는 자일지니"(딤전3:11-12) 세상의 대통령이나 장관, 또는 어떤 직분이든지 바울이 감독과 집사의 직분을 세우는 자격을 말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러한 자격이 되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요 이 점을 볼 때도 교회의 직분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명예로운 일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황도훈 성도의 어버님이신 황정재 장로님과 부산에서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장로님은 저에게 아들을 어떻게 가르쳤는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가운데 장로님은 "목사님! 저는 우리 도훈이에게 세상의 박사학위나 그 어떤 것보다도 교회에서 교사의 직분을 받아 봉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는 사실 하나는 분명하게 가르쳤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지난 번 운영위원회에서 우리 교회에서 집사의 직분을 세우는 문제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제가 교회의 직분은 교회 안의 직분이기 때문에 직장에서나 밖에서 "집사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도훈 형제는 집사의 직분이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박사학위보다 더 귀하고 중요한 것인데 왜 부르지 못하는지를 반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저는 예전에 장로님을 통하여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교회의 직분을 맡아서 봉사할 사람들의 자격을 자세하게 말하고 있는 점들을 볼 때 이 직분이 세상의 직분과 분명히 다를 뿐만 아니라 높은 수준의 윤리적이고 인격적인 덕목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고귀한 일을 하는 사람은 어떤 능력을 구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직분을 잘 감당하는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 그러면 이 직분을 잘 감당하는 자들에게 어떤 은혜를 주실까요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딤전3:13) 이 말씀에 직분을 잘 감당하는 자에게 두 가지 은혜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아름다운 지위를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아름다운 지위를 주신다는 말을 해석할 때 집사직을 잘할 때 장로의 직분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해석을 전혀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것보다도 분명한 지위와 평판을 듣게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단순히 교회 내의 위치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듣는 사람이 되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이 문제는 때로는 사회에서 탁월하고 분명한 위치를 주시겠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직분을 잘 감당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첫 번째 은혜입니다. 두 번째 은혜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는다"고 말씀 가운데 표현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담력"이라고 하는 말은 헬라어 성경에 "확신"(confidence)이나 "자유"(freedom)라는 뜻을 가진 의미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성소개념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성도는 지성소(The Most Holy Place)와 성소(The Holy Place)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는 휘장이 가리워져 있었습니다. 그 휘장은 아무나 지성소 안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는 자유가 인간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휘장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세우신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마음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1년에 한번만 동물의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죄가 용서받기 전에는 결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자유가 없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권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는다는 것은 믿음생활에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직분을 잘 수행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직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중요한 방편입니다. 우리는 교회사를 공부하면서 신약 교회에 처음으로 집사의 직분을 세우게 되는 배경을 연구한 바가 있습니다. 초대 교회가 성장함으로 약간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 사이의 구제문제로 인하여 분쟁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이 문제로 인하여 교회가 시험을 당할 위기에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사도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문제를 진단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였습니다. 그것은 사도들은 말씀을 전파하는 것과 기도하는 일에 전무하고, 집사는 구제하는 일에 봉사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 때 집사의 자격을 말하면서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하며 칭찬듣는 사람"을 세워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집사직의 기원인데,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 자생적으로 조직이 생겨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이렇게 적절한 사람을 세움으로 더욱 성장하게 되었습니다(행6:1-7). 이러한 이유에서 교회가 적절한 사람을 세워 성도를 돌보는 일과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직분은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하며, 교회됨의 본질을 구현하기 위하여 필요에 따라 생긴 직분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본문을 연구하면서 교회에 주신 직분, 그것이 목사나 장로의 직분이든지, 교사나 집사의 직분이든지, 성가대의 직분이든지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감독과 집사의 직분을 가리켜 고귀한 일, 즉 구원을 얻게 하는 일에 열망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직분은 또한 하나님께서 피로 사신 교회를 치는 일이기 때문에 참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직분을 받는 사람의 자격기준을 세상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 따라 기준을 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사람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자격기준을 볼 때 완전한 자격기준을 갖춘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여 기도하고 노력할 때 이러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 직분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이 직분을 잘 감당하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들을 체험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세움을 받은 직분자들의 신실한 봉사를 통하여 우리 교회가 크게 부흥하고 성장하는 것을 함께 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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