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습관 (딤전4:6-8)
본문
신혼여행을 다녀온 Billy 라는 사람은 그의 아내가 훈제된 돼지고기인 햄을 요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내는 후라이 팬에 햄을 집어넣을 때 햄의 양쪽 끝을 자르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아내에게 왜 햄의 양쪽 끝을 자르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나도 왜 그러는지 잘 모르나, 우리 어머니가 햄을 요리할 때마다 그렇게 했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처갓집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Billy는 장모님께 물었습니다. 장모님, 햄을 후라이팬에 넣어 요리할 때 왜 햄의 좌우 모서리를 자릅니까 그러자 장모님은 대답하시기를 , 나도 왜 그렇게 하는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우리 어머니가 그렇게 하셨기 때문일세 라고 했습니다. Billy는 매우 궁금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아내의 할머니에게 장거리 전화를 했습니다. 할머니,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왜 할머니께서는 햄을 후라이 팬에 집어넣고 요리하실 때 양끝을 자르셨냐요 그러자 할머니는 대답하기를, 내가 가지고 있던 후라이팬은 매우 작아서, 햄의 좌우 양쪽을 자른 후에야 집어넣고 요리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잘 알지못한채 Billy의 장모님과 그의 아내는 할머니께서 요리하는 습관대로 햄을 자른 후에 요리를 했던 것입니다. 덴마크의 어느 루터란 교회에서는 교인들이 예배를 끝내고 출구를 향해 나아올 때, 모두가 오른쪽에 있는 어느 흰색깔의 벽을 향하여 머리를 숙이고 목례를 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수백년간 내려온 관습인데, 왜 흰색깔의 벽을 향하여 목례를 하고 나오는지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교회에서 보수확장공사를 하면서 그 흰벽을 파보니, 벽안에 성모마리아의 조각이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종교개혁이전에 그 교회가 로마 카톨릭교회였기에 벽에 성모 마리아의 조각이 색여져 있었고, 교인들은 마리아를 해 목례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종교개혁 이후, 이 교회가 개신교인 루터란 교회가 되면서, 성모 마리아의 조각을 지우기 위해, 그 위에 회를 바르고 흰 페인트로 칠해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개신교가 되 이후에도 계속하여 회를 발라 안보이는 성모 마리아를 향해 목례를 했고, 그 습관이 종교개혁이후 300년이 넘도록, 내려왔던 것입니다. 왜 목례를 하는지 아무도 이유를 알지못하면서 관습에 따라 목례를 해온것입니다.
이처럼 관습이나 습관의 힘이 강하여, 우리는 습관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행동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세일즈맨"이란 책을 쓴 Og Mandino는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들의 단 한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습관의 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가장 뛰어나게 잘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재능이나, 두뇌, 환경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의 좋은 습관에 의하여입니다. Tolstoy의 단편소설가운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야생 거위때가 겨울철을 따뜻한 곳에서 나기 위해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거위때 중에 어느 한 마리가 고개를 내리고 땅을 내려다보니 어느 농가 뒤뜰에 날 곡식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고 무리에서 이탈하여 홀로 내려와 곡식을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공중에 애써서 날아다니지 않아도 쉽게 곡식을 먹을 수가 있었기에 그는 농가에서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내년 봄철에 자기 동료들이 북쪽으로 올라갈 때 그때 친구들을 따라가기로 생각을 하고 농가에서 먹을 것을 실컷 먹으며 편히 살았습니다. 이듬해 봄철 어느날 친구 거위들이 소리를 지르며 북쪽 하늘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그는 날개를 펴서 날아가려고 했으나 몸이 뚱뚱해졌고, 운동을 몇 달 동안 안해본지라 날개가 말을 안들었습니다. 그 거위는 먹을 것도 많은 이곳에 좀더 있다가 가을철에 친구들이 남쪽으로 내려갈 때 같이 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거위는 나는 것을 잊어버리고, 농가에서 편히 주인이 주는 먹이를 먹고 살다가 자기가 하늘을 나는 거위임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는 친구들이 가을철에 남쪽으로 날아갈 때, 하늘도 쳐다보지 않고, 땅의 모이만 바라보며 다녔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얼마 안있어, 그 거위는 잡혀 농가의 식탁에 요리로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그 거위는 자기가 하늘을 높이 나르는 야생거위임을 잊어버리고, 농가에서 땅만 쳐다보며, 닭처럼 살았던 것입니다. 인간은 죄로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참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그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은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 크리스챤들은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제는 경건한 훈련, 영성훈련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을 날마다 닮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는 게을러지고 나태해지며,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항상 경건에 이르는 훈련, 영성훈련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을 날마다 닮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는 게을러지고 나태해지며,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항상 경건에 이르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27절에서 말합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도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 했습니다. 유명한 농구선수였던 Pete Maravich는 대학시절 한 게임당 평균 44.2점을 득점했으며, 직업 농구선수시절에는 매 게임당 24.2point를 득점했고5.4번이나 동료를 도와 득점하게 한 선수입니다. 그는 너무나 몸이 민첩했기에 별명이 pistol이었습니다. 그가 이처럼 탁월한 선수가 되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훈련이 있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14살까지 농구볼을 품에 안고 잠을 잤다고 합니다. 침대에서도 손가락 끝으로 공을 놀리며, 던지는 연습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8-9살 때 마을의 상점에 볼일이 있어 갈 때 5km나 되는 거리를 공을 드리볼하면서 갔다가 올 때에 한 손으로 농구공을 드리볼하면서 갔다 왔다는 것입니다. 그가 무엇을 하든지 어느곳에 가든지 농구공을 가지고 갔으며 농구공은 그의 분신이었다고 합니다. 이 정도로 끊임없이 연습과 훈련과정을 통하여 그는 탁월한 농구선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받는 사역자가 되기 위하여는 날마다 경건에 이르는 연습과 훈련을 가져야만 합니다. 좋은 신앙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자로 날마다 만들어져 가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인으로 만들어지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우리는 주님의 날을 거룩하게 예배를 드림으로 거룩하게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예배훈련을 받어야만 합니까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2장 28-30절에 보면 어느 한 사람이 예수께 물었습니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것요."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첫째되는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영과 진리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배하며 예배 드림으로서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은 예배로 표현되어야 하며, 우리는 또한 예배훈련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날 하나님께 예배와 경배를 드리며 거룩하게 지킴으로 내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며, 하나님이 나의 삶에서 최우선권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주일날 야외로 나들이 가는 일이나, 등산, 낚시 가는 일보다, 여름철 해수욕장에 가는 일보다, 집안의 일이나, 자녀의 일이나 또는 친구를 만나는 일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가장 으뜸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주일 아침에 우리가 성경과 찬송가를 들고 집앞을 나서게 되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일에 헌신되어있으며,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소원한다는 믿음의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나의 사랑 고백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훈련받게 됩니다. 주일날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0:25절에 보면:"어떤 사람들과 같이 모이는 일을 그만두지 말고, 서로 격려하여, 그날이 가까이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힘써 모입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서로 믿음을 격려하는 일을 게을리 한다면 우리의 신앙이 침체되게 됩니다.
히브리서 10:25절을 쓴 저자의 최고의 관심은 예배를 무시하는 습성을 가진 사람들의 삶속에 일어나고 있는 영적인 침체현상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것을 계속적으로 무시하는 사람들의 삶속에 영적인 퇴보가 일어날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예배출석을 무시하는 것은 영적인 퇴보의 증상이며, 신앙을 저버리고 배교하는 자들의 첫걸음이 되어왔습니다. 통계적으로 볼 때 한 달 동안 교회를 안 나가면 나중에 1년동안 교회에 나가지 않을 확률이 거의 두배가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성도들과 같이 예배를 드리지 않고, 설교말씀과 성도간의 교제를 통하여 믿음의 격려를 받지 못한다면 영적으로 침몰할 가능성이 매우 높게됩니다. 주일날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비젼과 영감, 능력과 함께 힘을 받게 됩니다. 누가복음 4:16절에 보면:"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나신 나사렛에 가셔서, 늘 하시던 대로(as was his custom),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다"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40일간의 금식기도를 끝내시고 나사렛 고향으로 돌아오신 것입니다. 그 어려운 금식기도를 끝내셨으니, 어디로 휴가를 가시거나, 아니면 골프나 낚시질을 하시며 편히 쉬고자 하실 만 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4장에 보면 안식일이 되지 예수께서는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인간을 구원하실 메시야되시는 성자 예수께서 성령님안에서 성부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사역의 비젼을 받으셨고, 예배를 통하여 성부하나님이 주시는 권능을 받으셔서 그의 구원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그 어려운 박해와 가난과 역경, 그리고 고난속에서도 예배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비젼과 권능을 받아 하나님나라 확장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유명한 조각가 로댕은 대리석으로 조작을 만들다가 의욕을 잃어버리고 낙심이 될 때마다, 파리의 루브르미술관에 달려가, 거기에 진열된 고대 희랍의 조각품들을 을 잃고 감상하였다고 한다. 그는 거기에서 용기와 영감을 얻어, 다시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 크리스챤들은 주일날 성전에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이 위에서 주시는 영적인 에너지를 공급받게 됩니다. 오늘을 어떻게 살어야 할 것인가를 비젼을 통해 받게됩니다. 19세기 영국의 유명한 정치가였던 Gladstone은 원래 성직자가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러나 정치가가 되어 대영제국의 수상직에 오르게 되었지만 목사가 되지 못한 것을 항상 안타깝게 생각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신앙이란 글래드스톤 수상에게 있어 악세사리가 아니고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는 정무에 시달려 극도로 피곤하였을 때, 잠자리에 드는것보다, 오히려 교회에 가서 조용히 묵상함으로 영적인 힘을 되찾곤 했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시간은 어떠한 시간과도 비교되거나 바꿀 수 없는, 우리에게 가장 있어야 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시편 122편의 저자가 "사람들이 나에게 '여호와의 집으로 올라가자! 하고 말할 때 나는 기뻐하였다."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와 같이 말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시편 84편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만군의 주님, 주님이 계신 곳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주의 궁전 뜰을 그리워하고 사모합니다. 내 마음도 이 몸도,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쁨의 노래 부릅니다. 주의 집 뜰 안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곳에서 지내는 천날보다 낫기에, 악인의 장막에서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집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27편의 저자는 말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성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일날 예배드림으로 예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은 할 일이 너무나 많다고 핑계를 댑니다. 그러나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우리들도 할 일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할 일들이 항상 쌓여져있습니다. 사람들이 할 일이 없어 교회에 나온다면, 매주일 교회는 텅텅 비어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항상 할 일들이 많이 있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일, 병자들을 치유해주시는 일, 마귀를 쫓아내시는 일, 예수님의 사랑과 돌봄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항상 주변에 많이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안식일날 하나님의 성전과 회당에서 예배드리는 일을 가장 중요시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예배참석을 중요시했기에 우리도 또한 그러해야만할것입니다. 주일날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는 것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일이 됩니다. 우리는 주일날이면 예수님처럼 주일날이며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는 거룩한 습관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마음도 안내키고, 몸도 피곤하여, 교회에 나가고 싶지 않을 때, 그때야말로 가장 교회에 나가 우리의 영혼과 육신이 소생함을 받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세속화 된 사회에서 우리는 세상을 닮지 말고 그리스도를 닮아 주일날이면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는 거룩한 습관이 생활화되어야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또한 기도하는 거룩한 관습을 가져야만 합니다. 우리가 왜 기도해야 합니까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이며 대화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기도하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인간의 본성이요 천성입니다. 그러하기에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독수리가 하늘을 날지 않고, 뻐꾸기가 울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하도록 지음을 받았기에 하나님과 항상 대화를 하며 교제를 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것은 기도하는 하나님이 주신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기 싫어도 기도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보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17에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명령은 싫든 좋든 해야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우리의 영성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임을 아시기에 하나님은 명령을 해서라도 우리가 기도하도록 하십니다. 또한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능력을 받기에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통로입니다. 역대하 16장 9절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즉 기도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주시는 능력으로 죄를 이기며, 귀신을 쫓아내고 결박하고, 질병을 치유하며, 저주를 물리치고, 주님의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기도는 영적인 능력을 얻는 길이요 통로입니다. 그러하기에 기도없는 인생은 무능력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도없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의 힘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기에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보기도를 원자재로 사용하셔서 그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나락 확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기도를 게을리하면 할수록, 마귀의 권세가 더욱더 든든해지게 됩니다. 기도사역에 유명한 저술가인 웨슬리 듀엘은 하나님의 종이 타락하거나 넘어지게되면 누가 중보기도를 하지 않았기에 이런 일이 생겼을꺼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자녀들, 가정식구들, 주변의 환우들, 어려움을 당하고있는 사람들, 교역자들을 위하여 항상 중보기도를 쉬지 않고 해야합니다. 중보기도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영광과 특권을 가지게 됩니다. 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삶을 살펴보면 항상 기도하시는 모습입니다. 누가복음 6:13절에 보면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35절에는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서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4:23에는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에게도 이처럼 조용한 기도시간이 필요했다면 우리에게는 얼마나 더 필요하겠습니까 어느분이 magic fifteen minutes 에 관한 글을 쓴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분주한 삶의 일정가운데 매일 15분씩 피아노를 연습하면 베토벤의 작품을 훌륭히 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독일어를 매일 15분씩 공부하면 얼마후에는 독일어 책을 잘 읽어나갈 수 있게되며, 골프를 치고 싶으면 매일 15분씩 골프를 집에서 연습하면, 얼마후에 골프를 잘 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15분 정도씩 날마다 기도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기도시간이 점점 길어지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연륜이 깊어지면 기도는 하루에 적어도 한시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겟세마네 동산에 예수께서는 잠든 제자들을 보시고 "너희가 나와 함께 한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라고 탄식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한시는 One hour 즉 1시간을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구체적으로 1시간을 말씀하셨습니다. 1시간을 성도가 깨어 기도해야 할 기본적인 기도시간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충만한 성도라면 기도의 은사가 있든 없든 하루에 1시간 기도를 목표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습니다. 기도는 나누어 해도 됩니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시간을 나누어 했습니다. 우리가 매일 신문을 한 시간씩 읽으며 성경을 단 10분도 읽지 않고 하루에 TV를 평균 1-2시간씩 시청하면서도 기도를 단 5분도 하지 않고 우리가 어찌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날마다 해야만 합니다. 혼자 집에서 개인 기도하는 시간도 은혜를 체험하지만 성도들이 교회에 함께 모여 기도할 때 더 크신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매일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여 기도 훈련을 받는 것이 가장 좋은 관습이지만, 부득이한 사정으로 나오지 못할 경우에라도 금요심야기도회에는 반드시 참석하여 성도들이 합심하여 기도하는 거룩한 관습을 우리는 가져야 할 것입니다. 60년대와 70년대 초반기 미국의 TV방송에 나오는 오렌지 쥬스 광고를 보면 오렌즈 쥬스를 마시지 않는 하루는 태양빛이 없는 하루와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 생활을 통해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날마다 가져야 할 것입니다. 거룩한 습관이 우리에게 생활화가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성령님충만함, 성령님의 기름부어주심을 날마다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충만함,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이 없는 예배와 기도는 잘못하며 바리세인들의 예배와 기도처럼 기계화하고 형식화 할 염려가 있습니다. 예배와 기도생활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으면 율법화 되거나 의무감에서 억지로 하게 될 수가 있습니다. 성령님충만함과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이 있을 때 우리의 예배와 기도는 기쁨과 감사속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성령님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기도해주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시며 깨우쳐 주십니다. 우리는 거룩한 습관을 가지면서, 항상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 그의 기름부어주심을 받으며 살아야 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처럼 세속화된 세상, 죄악으로 가득차있는 사회에서 우리가 세상에 동화되지 않고, 오히려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삶을 살 수 있는 능력과 힘이 어디에서 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성공적인 신앙인이 되는 비결은 어디에서 오비니까 그것은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통해서입니다. 거룩한 관습을 만들며, 날마다 예배와 말씀 목상, 기도생활을 통하여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배와 말씀묵상과 기도생활을 통하여 성령님충만함과 성령님의 기름부어주심을 받으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그런데 그의 아내는 후라이 팬에 햄을 집어넣을 때 햄의 양쪽 끝을 자르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아내에게 왜 햄의 양쪽 끝을 자르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나도 왜 그러는지 잘 모르나, 우리 어머니가 햄을 요리할 때마다 그렇게 했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처갓집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 Billy는 장모님께 물었습니다. 장모님, 햄을 후라이팬에 넣어 요리할 때 왜 햄의 좌우 모서리를 자릅니까 그러자 장모님은 대답하시기를 , 나도 왜 그렇게 하는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우리 어머니가 그렇게 하셨기 때문일세 라고 했습니다. Billy는 매우 궁금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아내의 할머니에게 장거리 전화를 했습니다. 할머니,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왜 할머니께서는 햄을 후라이 팬에 집어넣고 요리하실 때 양끝을 자르셨냐요 그러자 할머니는 대답하기를, 내가 가지고 있던 후라이팬은 매우 작아서, 햄의 좌우 양쪽을 자른 후에야 집어넣고 요리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잘 알지못한채 Billy의 장모님과 그의 아내는 할머니께서 요리하는 습관대로 햄을 자른 후에 요리를 했던 것입니다. 덴마크의 어느 루터란 교회에서는 교인들이 예배를 끝내고 출구를 향해 나아올 때, 모두가 오른쪽에 있는 어느 흰색깔의 벽을 향하여 머리를 숙이고 목례를 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수백년간 내려온 관습인데, 왜 흰색깔의 벽을 향하여 목례를 하고 나오는지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교회에서 보수확장공사를 하면서 그 흰벽을 파보니, 벽안에 성모마리아의 조각이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종교개혁이전에 그 교회가 로마 카톨릭교회였기에 벽에 성모 마리아의 조각이 색여져 있었고, 교인들은 마리아를 해 목례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종교개혁 이후, 이 교회가 개신교인 루터란 교회가 되면서, 성모 마리아의 조각을 지우기 위해, 그 위에 회를 바르고 흰 페인트로 칠해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개신교가 되 이후에도 계속하여 회를 발라 안보이는 성모 마리아를 향해 목례를 했고, 그 습관이 종교개혁이후 300년이 넘도록, 내려왔던 것입니다. 왜 목례를 하는지 아무도 이유를 알지못하면서 관습에 따라 목례를 해온것입니다.
이처럼 관습이나 습관의 힘이 강하여, 우리는 습관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행동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세일즈맨"이란 책을 쓴 Og Mandino는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들의 단 한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습관의 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가장 뛰어나게 잘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재능이나, 두뇌, 환경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의 좋은 습관에 의하여입니다. Tolstoy의 단편소설가운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야생 거위때가 겨울철을 따뜻한 곳에서 나기 위해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거위때 중에 어느 한 마리가 고개를 내리고 땅을 내려다보니 어느 농가 뒤뜰에 날 곡식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고 무리에서 이탈하여 홀로 내려와 곡식을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공중에 애써서 날아다니지 않아도 쉽게 곡식을 먹을 수가 있었기에 그는 농가에서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내년 봄철에 자기 동료들이 북쪽으로 올라갈 때 그때 친구들을 따라가기로 생각을 하고 농가에서 먹을 것을 실컷 먹으며 편히 살았습니다. 이듬해 봄철 어느날 친구 거위들이 소리를 지르며 북쪽 하늘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그는 날개를 펴서 날아가려고 했으나 몸이 뚱뚱해졌고, 운동을 몇 달 동안 안해본지라 날개가 말을 안들었습니다. 그 거위는 먹을 것도 많은 이곳에 좀더 있다가 가을철에 친구들이 남쪽으로 내려갈 때 같이 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거위는 나는 것을 잊어버리고, 농가에서 편히 주인이 주는 먹이를 먹고 살다가 자기가 하늘을 나는 거위임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는 친구들이 가을철에 남쪽으로 날아갈 때, 하늘도 쳐다보지 않고, 땅의 모이만 바라보며 다녔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얼마 안있어, 그 거위는 잡혀 농가의 식탁에 요리로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그 거위는 자기가 하늘을 높이 나르는 야생거위임을 잊어버리고, 농가에서 땅만 쳐다보며, 닭처럼 살았던 것입니다. 인간은 죄로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참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그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은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 크리스챤들은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제는 경건한 훈련, 영성훈련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을 날마다 닮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는 게을러지고 나태해지며,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항상 경건에 이르는 훈련, 영성훈련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을 날마다 닮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는 게을러지고 나태해지며,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항상 경건에 이르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27절에서 말합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도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 했습니다. 유명한 농구선수였던 Pete Maravich는 대학시절 한 게임당 평균 44.2점을 득점했으며, 직업 농구선수시절에는 매 게임당 24.2point를 득점했고5.4번이나 동료를 도와 득점하게 한 선수입니다. 그는 너무나 몸이 민첩했기에 별명이 pistol이었습니다. 그가 이처럼 탁월한 선수가 되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훈련이 있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14살까지 농구볼을 품에 안고 잠을 잤다고 합니다. 침대에서도 손가락 끝으로 공을 놀리며, 던지는 연습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8-9살 때 마을의 상점에 볼일이 있어 갈 때 5km나 되는 거리를 공을 드리볼하면서 갔다가 올 때에 한 손으로 농구공을 드리볼하면서 갔다 왔다는 것입니다. 그가 무엇을 하든지 어느곳에 가든지 농구공을 가지고 갔으며 농구공은 그의 분신이었다고 합니다. 이 정도로 끊임없이 연습과 훈련과정을 통하여 그는 탁월한 농구선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하나님 나라 확장에 쓰임받는 사역자가 되기 위하여는 날마다 경건에 이르는 연습과 훈련을 가져야만 합니다. 좋은 신앙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자로 날마다 만들어져 가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인으로 만들어지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우리는 주님의 날을 거룩하게 예배를 드림으로 거룩하게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예배훈련을 받어야만 합니까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2장 28-30절에 보면 어느 한 사람이 예수께 물었습니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것요."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첫째되는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영과 진리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배하며 예배 드림으로서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은 예배로 표현되어야 하며, 우리는 또한 예배훈련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날 하나님께 예배와 경배를 드리며 거룩하게 지킴으로 내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며, 하나님이 나의 삶에서 최우선권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주일날 야외로 나들이 가는 일이나, 등산, 낚시 가는 일보다, 여름철 해수욕장에 가는 일보다, 집안의 일이나, 자녀의 일이나 또는 친구를 만나는 일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가장 으뜸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주일 아침에 우리가 성경과 찬송가를 들고 집앞을 나서게 되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일에 헌신되어있으며,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소원한다는 믿음의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나의 사랑 고백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훈련받게 됩니다. 주일날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0:25절에 보면:"어떤 사람들과 같이 모이는 일을 그만두지 말고, 서로 격려하여, 그날이 가까이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힘써 모입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서로 믿음을 격려하는 일을 게을리 한다면 우리의 신앙이 침체되게 됩니다.
히브리서 10:25절을 쓴 저자의 최고의 관심은 예배를 무시하는 습성을 가진 사람들의 삶속에 일어나고 있는 영적인 침체현상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것을 계속적으로 무시하는 사람들의 삶속에 영적인 퇴보가 일어날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예배출석을 무시하는 것은 영적인 퇴보의 증상이며, 신앙을 저버리고 배교하는 자들의 첫걸음이 되어왔습니다. 통계적으로 볼 때 한 달 동안 교회를 안 나가면 나중에 1년동안 교회에 나가지 않을 확률이 거의 두배가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성도들과 같이 예배를 드리지 않고, 설교말씀과 성도간의 교제를 통하여 믿음의 격려를 받지 못한다면 영적으로 침몰할 가능성이 매우 높게됩니다. 주일날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비젼과 영감, 능력과 함께 힘을 받게 됩니다. 누가복음 4:16절에 보면:"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나신 나사렛에 가셔서, 늘 하시던 대로(as was his custom),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다"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40일간의 금식기도를 끝내시고 나사렛 고향으로 돌아오신 것입니다. 그 어려운 금식기도를 끝내셨으니, 어디로 휴가를 가시거나, 아니면 골프나 낚시질을 하시며 편히 쉬고자 하실 만 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4장에 보면 안식일이 되지 예수께서는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인간을 구원하실 메시야되시는 성자 예수께서 성령님안에서 성부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사역의 비젼을 받으셨고, 예배를 통하여 성부하나님이 주시는 권능을 받으셔서 그의 구원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그 어려운 박해와 가난과 역경, 그리고 고난속에서도 예배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비젼과 권능을 받아 하나님나라 확장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유명한 조각가 로댕은 대리석으로 조작을 만들다가 의욕을 잃어버리고 낙심이 될 때마다, 파리의 루브르미술관에 달려가, 거기에 진열된 고대 희랍의 조각품들을 을 잃고 감상하였다고 한다. 그는 거기에서 용기와 영감을 얻어, 다시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 크리스챤들은 주일날 성전에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이 위에서 주시는 영적인 에너지를 공급받게 됩니다. 오늘을 어떻게 살어야 할 것인가를 비젼을 통해 받게됩니다. 19세기 영국의 유명한 정치가였던 Gladstone은 원래 성직자가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러나 정치가가 되어 대영제국의 수상직에 오르게 되었지만 목사가 되지 못한 것을 항상 안타깝게 생각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신앙이란 글래드스톤 수상에게 있어 악세사리가 아니고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는 정무에 시달려 극도로 피곤하였을 때, 잠자리에 드는것보다, 오히려 교회에 가서 조용히 묵상함으로 영적인 힘을 되찾곤 했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시간은 어떠한 시간과도 비교되거나 바꿀 수 없는, 우리에게 가장 있어야 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시편 122편의 저자가 "사람들이 나에게 '여호와의 집으로 올라가자! 하고 말할 때 나는 기뻐하였다."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와 같이 말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시편 84편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만군의 주님, 주님이 계신 곳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주의 궁전 뜰을 그리워하고 사모합니다. 내 마음도 이 몸도,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쁨의 노래 부릅니다. 주의 집 뜰 안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곳에서 지내는 천날보다 낫기에, 악인의 장막에서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집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27편의 저자는 말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성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일날 예배드림으로 예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은 할 일이 너무나 많다고 핑계를 댑니다. 그러나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우리들도 할 일이 너무나 많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할 일들이 항상 쌓여져있습니다. 사람들이 할 일이 없어 교회에 나온다면, 매주일 교회는 텅텅 비어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항상 할 일들이 많이 있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일, 병자들을 치유해주시는 일, 마귀를 쫓아내시는 일, 예수님의 사랑과 돌봄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항상 주변에 많이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안식일날 하나님의 성전과 회당에서 예배드리는 일을 가장 중요시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예배참석을 중요시했기에 우리도 또한 그러해야만할것입니다. 주일날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는 것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일이 됩니다. 우리는 주일날이면 예수님처럼 주일날이며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는 거룩한 습관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마음도 안내키고, 몸도 피곤하여, 교회에 나가고 싶지 않을 때, 그때야말로 가장 교회에 나가 우리의 영혼과 육신이 소생함을 받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세속화 된 사회에서 우리는 세상을 닮지 말고 그리스도를 닮아 주일날이면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는 거룩한 습관이 생활화되어야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또한 기도하는 거룩한 관습을 가져야만 합니다. 우리가 왜 기도해야 합니까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이며 대화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기도하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인간의 본성이요 천성입니다. 그러하기에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독수리가 하늘을 날지 않고, 뻐꾸기가 울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하도록 지음을 받았기에 하나님과 항상 대화를 하며 교제를 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것은 기도하는 하나님이 주신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기 싫어도 기도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보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17에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명령은 싫든 좋든 해야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우리의 영성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임을 아시기에 하나님은 명령을 해서라도 우리가 기도하도록 하십니다. 또한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능력을 받기에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통로입니다. 역대하 16장 9절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즉 기도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주시는 능력으로 죄를 이기며, 귀신을 쫓아내고 결박하고, 질병을 치유하며, 저주를 물리치고, 주님의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기도는 영적인 능력을 얻는 길이요 통로입니다. 그러하기에 기도없는 인생은 무능력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도없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의 힘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기에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보기도를 원자재로 사용하셔서 그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나락 확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기도를 게을리하면 할수록, 마귀의 권세가 더욱더 든든해지게 됩니다. 기도사역에 유명한 저술가인 웨슬리 듀엘은 하나님의 종이 타락하거나 넘어지게되면 누가 중보기도를 하지 않았기에 이런 일이 생겼을꺼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자녀들, 가정식구들, 주변의 환우들, 어려움을 당하고있는 사람들, 교역자들을 위하여 항상 중보기도를 쉬지 않고 해야합니다. 중보기도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영광과 특권을 가지게 됩니다. 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삶을 살펴보면 항상 기도하시는 모습입니다. 누가복음 6:13절에 보면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35절에는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서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4:23에는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에게도 이처럼 조용한 기도시간이 필요했다면 우리에게는 얼마나 더 필요하겠습니까 어느분이 magic fifteen minutes 에 관한 글을 쓴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분주한 삶의 일정가운데 매일 15분씩 피아노를 연습하면 베토벤의 작품을 훌륭히 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독일어를 매일 15분씩 공부하면 얼마후에는 독일어 책을 잘 읽어나갈 수 있게되며, 골프를 치고 싶으면 매일 15분씩 골프를 집에서 연습하면, 얼마후에 골프를 잘 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15분 정도씩 날마다 기도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기도시간이 점점 길어지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연륜이 깊어지면 기도는 하루에 적어도 한시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겟세마네 동산에 예수께서는 잠든 제자들을 보시고 "너희가 나와 함께 한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라고 탄식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한시는 One hour 즉 1시간을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구체적으로 1시간을 말씀하셨습니다. 1시간을 성도가 깨어 기도해야 할 기본적인 기도시간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충만한 성도라면 기도의 은사가 있든 없든 하루에 1시간 기도를 목표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습니다. 기도는 나누어 해도 됩니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시간을 나누어 했습니다. 우리가 매일 신문을 한 시간씩 읽으며 성경을 단 10분도 읽지 않고 하루에 TV를 평균 1-2시간씩 시청하면서도 기도를 단 5분도 하지 않고 우리가 어찌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날마다 해야만 합니다. 혼자 집에서 개인 기도하는 시간도 은혜를 체험하지만 성도들이 교회에 함께 모여 기도할 때 더 크신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매일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여 기도 훈련을 받는 것이 가장 좋은 관습이지만, 부득이한 사정으로 나오지 못할 경우에라도 금요심야기도회에는 반드시 참석하여 성도들이 합심하여 기도하는 거룩한 관습을 우리는 가져야 할 것입니다. 60년대와 70년대 초반기 미국의 TV방송에 나오는 오렌지 쥬스 광고를 보면 오렌즈 쥬스를 마시지 않는 하루는 태양빛이 없는 하루와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 생활을 통해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날마다 가져야 할 것입니다. 거룩한 습관이 우리에게 생활화가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성령님충만함, 성령님의 기름부어주심을 날마다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충만함,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이 없는 예배와 기도는 잘못하며 바리세인들의 예배와 기도처럼 기계화하고 형식화 할 염려가 있습니다. 예배와 기도생활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으면 율법화 되거나 의무감에서 억지로 하게 될 수가 있습니다. 성령님충만함과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이 있을 때 우리의 예배와 기도는 기쁨과 감사속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성령님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기도해주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시며 깨우쳐 주십니다. 우리는 거룩한 습관을 가지면서, 항상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 그의 기름부어주심을 받으며 살아야 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처럼 세속화된 세상, 죄악으로 가득차있는 사회에서 우리가 세상에 동화되지 않고, 오히려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삶을 살 수 있는 능력과 힘이 어디에서 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성공적인 신앙인이 되는 비결은 어디에서 오비니까 그것은 경건에 이르는 연습을 통해서입니다. 거룩한 관습을 만들며, 날마다 예배와 말씀 목상, 기도생활을 통하여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배와 말씀묵상과 기도생활을 통하여 성령님충만함과 성령님의 기름부어주심을 받으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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