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을 선으로 (벧전3:8-22)
본문
손자병법이라는 책을 아십니까 손자병법은 지금부터
2,500년 전에 쓰여진 책이라고 하는데 굉장히 재미가 있었습니다. 이 책은 전쟁의 심리를 묘사한 병법서입니다. 그래서 삼국지의 영웅인 조조는 이 책을 탐독했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도 이 책을 항상 곁에 두어 읽었다고 전해지며, 독일의 황제였던 빌헬름 2세는 1차대전 때 전쟁에서 패한 다음에 “만일 내가 20년 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전쟁에서 패하지 않았을 것이다”하고 탄식했다고 합니다. 거기 보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가장 인상 깊은 말은 모공편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백 번 싸워서 백 번 이기는 것이 최상은 아니다. 오히려 한 발의 포탄도 쏘지 않고 상대방을 국복시키는 것이 가장 큰 승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소위 병법이라는 것입니다. 또 시계편에 보면 그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전쟁은 가급적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부득이 해야 할 때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리고 허실편에 보면 “천리 길을 가도 피곤하지 않은 것은 적이 없는 곳을 가려서 가기 때문이며, 공격하면 반드시 이기는 것은 적이 지키지 않는 곳을 찾아서 공격하기 때문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참 재미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이 손자병법이라는 책은 지금부터 3천년 전 춘추 전국시대 때 제나라에서 태어난 손자라는 사람이 썼다고 해서 손자병법입니다. 이 책을 읽어 보니까 오늘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가 말씀한 내용과 아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도 베드로는 여기서 병법으로 따지자면 상당히 일가견이 있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살면서 호신술이라고 할까, 세상을 이기는 비버이라고나 할까 하는 그런 지혜로운 처신의 방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로마라고 하는 거대한 나라에 살면서 숱한 박해와 수난 그리고 내일의 삶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살벌한 세상에서 나 자신을 지키고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살아가는 하나의 비결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여기서 제시한 몇 가지 방법을 보면 손자병법에 나오는 이야기를 능가하고 있습니다.
1. 악을 선으로 갚으라는 것입니다. “(벧전3:9) 악을 악으로,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병법적인 방법입니까 악을 악으로 갚기는 쉽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악을 악으로 갚으면 그 악은 끊어질 날이 없습니다. 원수는 또 다른 원수를 만들고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낳습니다. 피는 피를 부르고, 눈물은 또 다른 눈물을 만들어 내고, 사움은 또 다른 싸움을 불러옵니다. 그래서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르고 칼을 쓰는 사람은 결국 칼로 망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손자병법에서는 백 번 싸워서 백 번 이기는 것보다 싸우지 않고 상대방을 정복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원수를 갚지 않고 원수를 제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방법이겠습니까 그것을 베드로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복을 빌라고 했습니다. 이 방법은 말하자면 상당히 고단위 처세술입니다.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살면서 이 같은 고단위 처세술을 사용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싸워야 할 때마다 싸워야 하고, 사람이 미울 때마다 미워하고, 사람이 싫을 때마다 싫어해야 한다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아예 싸우지 않고도 상대를 이길 수 있는 고단위 삶의 지혜를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복을 빌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영국의 수상이었던 처칠이 청년 때 공부도 하지 않고 한동안 깡패 노릇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정신을 차리게 된 동기를 자서전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어느 날 길을 가는데 옥스퍼드 대학생이 단정하게 교복을 입고 책을 읽으며 가고 있었습니다. 건달인 처칠이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속이 몹시 뒤틀렸습니다. 그래서 그 학생을 건방지다고 쳐서 시궁창에 처넣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얼마나 화날 일입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대학생이 시궁창에서 옷을 털고 나오더니 “실례했습니다.”하고 다시 책을 보고 가더랍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처칠이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아찔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처칠이 그 길로 서점으로 가서 수십 권의 책을 사 가지고 와서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 동기가 되어 나중에 한 나라의 수상까지 되었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복을 빌라”고 했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미운 사람에게 떡 하나 더 주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굉장히 무서운 말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미운 사람에게는 다 뺏고 싶은 것이 보통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하나를 더 줌으로써 싸우지도 않고 상대를 이기라는 말입니다. 얼마나 고단위 처세술입니까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이 방법을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시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참 매력은 외모의 아름다움이나 외모가 주는 고상함이 아니고 한 차원 더 높은 매력은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외모의 매력에 이끌렸던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곧 싫증을 느끼고 권태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보여지는 매력은 생명이 길지가 않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방 땅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복을 빌라” 우리는 세상을 살되 한 차원 높은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2. 선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벧전3:13) 또 너희가 열심히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고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세련되고 지혜로운 처세술은 베푸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베푸는 삶을 살면 절대로 낭패를 당하거나 화를 당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적당히 나누고 베풀고 선을 행하고 살면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사고 무시를 당하고 원망을 듣는 일은 없습니다. 가끔 사람들로부터 원망을 듣고 원성을 듣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그런 사람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베푸는 삶이 없다는 점입니다. 사람이 그렇게 살면 그 사회에서 욕을 먹고 비난을 받고 때로는 불이익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어려움을 당할 때 찾아가 주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이웃이 상을 당했을 때 찾아가 위로해 주고 힘이 되어 주는 것도 가장 좋은 선입니다. 그래야 내가 그렇게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또 사람들이 찾아와서 위로를 해줍니다. 그렇지 않고 사람이 자기 중심적으로 살면 내가 곤란에 처하게 되어도 어느 누구 하나 도움이 되어 주지 않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살면 외롭습니다.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선을 베풀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여기서 이 점을 행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하나의 삶의 지혜일 것입니다. 베드로가 여기서 이 말씀을 강하게 제시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는 로마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어려움을 당하면서 살아갈 때입니다. 그때는 그리스도인들이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핍박을 당하고 때로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그런 세상을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으로 이 방법을 권했던 것입니다. “너희가 열심히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욕하고 해하겠느냐” 사람이 열심히 선을 행하고 살면 화를 당하는 일이 없습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비난을 받고 수모를 당하고 무시를 당하고 사는 데는 그런 만한 원인이 있습니다. 모 대기업 회장님이 장로님인데 그 분은 어느 기관에서 하는 성경공부에 열심이었습니다. 일년 동안 한번도 빠지는 일 없이 개근을 하고 성경도 가장 많이 읽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누구냐 하면 구로공단에서 공원들에게 월급을 제일 적게 주기로 이름난 분입니다. 그래서 공단내에서 지탄의 대상입니다. 그러니까 공단에서 무슨 문제가 생기면 그 공장이 제일 시끄럽습니다. 직원들이 협력을 하지 않습니다.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도 없고 애착도 없습니다. 그러니 결국 누가 손해입니까 평소에 사람이 인색하면 당장 지출은 적고 그래서 수입은 많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반드시 이익은 아닙니다. 유사시가 되면 사람들이 외면을 합니다. 사라이 어떻게 세상을 나 혼자서 살아갈 수가 있습니까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떻게 평안만 할 수 있습니까 평소에 심지 않은 사람은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외로워집니다. 누구 하나 힘이 되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몇 년 전에 미국 LA에서 폭동이 일어났을 때 평소에 틈틈히 가난한 흑인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고 번 만큼 베풀기도 한 사람들은 그 파동속에서도 그들의 보호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극한적인 환난 속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삶의 모습입니까 그래서 베드로가 강조한 것입니다. “너희가 열심히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겠느냐”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관계적인 존재입니다. 사람의 능력은 고작해서 쌀 한 가마니 들 수 있는 능력밖에 없습니다. 하루 100리밖에 걸어갈 수가 없고,
IQ,120 안에서만 생각하고 궁리할 수 있는 능력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 이상의 것은 모두 누군가의 힘이 필요하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서로 선을 행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의 모습입니다. 이 같은 지혜를 사도 베드로는 여기서 강력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열심히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겠느냐 선을 행하라.”
3. 양심적이 되는 것입니다. “(벧전3: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은 아무리 속임이 많고 거짓이 많고 진실과 양심적인 것이 없어도 진정 양심적인 사람은 인정받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세상을 보십시오. 진실이 어디 있습니까 물건 하나를 사 보십시오. 어느 것 하나 진실 그대로 만들어진 것이 있습니까 양이 제대로 들어 있습니까 품질을 제대로 믿을 수가 있습니까 모두 거짓되고 가짜입니다. 믿고 살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거짓되고 속이고 사기를 치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에서 혼자서 양심적으로 살면 손해를 보고 무시를 당합니다.
그런데 그런 세상이라고 할지라도 진정 양심적인 것은 인정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진리입니다. 그것이 바로 진리의 힘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가 강조하기를 “너희가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살면 너를 비방하던 사람으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제가 아는 장로님 중에 그런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어느 회사 사장인데 사업을 하는 분인데도 술이고 담배고 뇌물이고 협잡이고 전혀 할 줄을 모릅니다. 요즘 사업을 하자면 술 안할 수 없고 적당히 비자금도 쓸줄 알아야 한다고들 하는데 그분은 그런 것하고는 거리가 먼 분입니다. 대신 그분은 말 한마디가 보증 수표입니다. 말 한마디를 하면 어김없이 지켜집니다. 물건 하나를 만들어도 말 그대로 100% 진실을 담아 만듭니다. 확인하고 점검하고 조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부수적인 수단이 없어도 오늘 같은 사회에서 누구보다도 힘있게 기반이 닦이고 사업을 건실하게 운영해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 같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발휘해야 하는 가장 큰 힘이고 위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세상을 살면서 가장 기본적으로 양심적인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보태지도 말고 빼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그래야 바로 그런 삶의 모습에 힘이 실리고 신뢰가 쌓여서 거짓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도 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나 과장이 많은 시대입니다. 진실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내용은 아주 빈약한데 겉으로 포장된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말하지 않습니다. 진실은 보태거나 과장하는 것이 아니고 있는 그대로를 말할 때 그것이 진실이고 진리입니다. 아무리 좋은 진실이라고 할지라도 포장되고 과장되면 진실성이 상실됩니다. 진정 진리나 진실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진실은 감추거나 가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는 것은 그 말씀 안에 진실이 있고 진리의 힘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꾸밈이 없고 가식이 없는 살아 있고 움직이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말씀을 대할 때 모두 변화를 받게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전도자 선다 싱이라는 사람이 인도에서 전도를 했습니다. 열차 안에서 쪽복음을 들고 다니면서 전도를 하는데 어떤 사람이 쪽복음을 받아 들더니 찢어서 창밖에 던져 버렸습니다. 이 성경의 쪽지들이 창밖에 버려지니까 바람에 날려서 철로 위에 떨어졌습니다. 그때 마침 어느 청년이 세상을 비관하다가 죽으려고 철로를 베고 누워 있는데 지나가는 기차 안에서 쪽지들이 휘날려 왔습니다. 쪽지 한 장을 받아 보니까 그곳에 생명의 양식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지금 죽으려고 하는데 생명의 양식이라는 말을 읽는 순간 이 청년이 강한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때 길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그 사람은 힌두교인이었습니다. 그 힌두교인이 쪽지를 보니까 성경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당신, 이것을 읽으면 죽습니다. 그러니 읽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 청년이 생각하기를 기왕 죽을 바에는 읽어나 보고 죽자 하고 읽는 순간 진리의 힘이 작용을 해서 그 청년의 영혼을 변화시켜 놓았습니다. 이것이 진리의 힘입니다. 진실과 진리와 선은 나름대로 사람들에게 필요 적절하게 적용만 되면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니가 사도 베드로는 거대한 세속 도시 로마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승리의 비법을 가르친 것입니다. 언제 고난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름대로 승리하며 살아가는 방법으로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복을 빌라, 그리고 선을 행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무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같이 거짓이 난무하고 부조화가 많은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진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다가 때로 손해를 보고 속기도 하고 낭패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삶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 그런 불이익을 당하는 한이 있어도 그런 삶이 주께서 원하시는 삶이라고 한다면 그 불이익을 감수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다만 우리의 하나님은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늘 손해만 보도록 놓아 두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언젠가 때가 되고 하나님의 적절한 시간이 되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이 땅에서 하고자 하시는 일을 하시고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2,500년 전에 쓰여진 책이라고 하는데 굉장히 재미가 있었습니다. 이 책은 전쟁의 심리를 묘사한 병법서입니다. 그래서 삼국지의 영웅인 조조는 이 책을 탐독했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도 이 책을 항상 곁에 두어 읽었다고 전해지며, 독일의 황제였던 빌헬름 2세는 1차대전 때 전쟁에서 패한 다음에 “만일 내가 20년 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전쟁에서 패하지 않았을 것이다”하고 탄식했다고 합니다. 거기 보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가장 인상 깊은 말은 모공편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백 번 싸워서 백 번 이기는 것이 최상은 아니다. 오히려 한 발의 포탄도 쏘지 않고 상대방을 국복시키는 것이 가장 큰 승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소위 병법이라는 것입니다. 또 시계편에 보면 그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전쟁은 가급적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부득이 해야 할 때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리고 허실편에 보면 “천리 길을 가도 피곤하지 않은 것은 적이 없는 곳을 가려서 가기 때문이며, 공격하면 반드시 이기는 것은 적이 지키지 않는 곳을 찾아서 공격하기 때문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참 재미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이 손자병법이라는 책은 지금부터 3천년 전 춘추 전국시대 때 제나라에서 태어난 손자라는 사람이 썼다고 해서 손자병법입니다. 이 책을 읽어 보니까 오늘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가 말씀한 내용과 아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도 베드로는 여기서 병법으로 따지자면 상당히 일가견이 있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살면서 호신술이라고 할까, 세상을 이기는 비버이라고나 할까 하는 그런 지혜로운 처신의 방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로마라고 하는 거대한 나라에 살면서 숱한 박해와 수난 그리고 내일의 삶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살벌한 세상에서 나 자신을 지키고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살아가는 하나의 비결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여기서 제시한 몇 가지 방법을 보면 손자병법에 나오는 이야기를 능가하고 있습니다.
1. 악을 선으로 갚으라는 것입니다. “(벧전3:9) 악을 악으로,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병법적인 방법입니까 악을 악으로 갚기는 쉽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악을 악으로 갚으면 그 악은 끊어질 날이 없습니다. 원수는 또 다른 원수를 만들고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낳습니다. 피는 피를 부르고, 눈물은 또 다른 눈물을 만들어 내고, 사움은 또 다른 싸움을 불러옵니다. 그래서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르고 칼을 쓰는 사람은 결국 칼로 망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손자병법에서는 백 번 싸워서 백 번 이기는 것보다 싸우지 않고 상대방을 정복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원수를 갚지 않고 원수를 제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방법이겠습니까 그것을 베드로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복을 빌라고 했습니다. 이 방법은 말하자면 상당히 고단위 처세술입니다.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살면서 이 같은 고단위 처세술을 사용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싸워야 할 때마다 싸워야 하고, 사람이 미울 때마다 미워하고, 사람이 싫을 때마다 싫어해야 한다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아예 싸우지 않고도 상대를 이길 수 있는 고단위 삶의 지혜를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복을 빌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영국의 수상이었던 처칠이 청년 때 공부도 하지 않고 한동안 깡패 노릇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정신을 차리게 된 동기를 자서전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어느 날 길을 가는데 옥스퍼드 대학생이 단정하게 교복을 입고 책을 읽으며 가고 있었습니다. 건달인 처칠이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속이 몹시 뒤틀렸습니다. 그래서 그 학생을 건방지다고 쳐서 시궁창에 처넣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얼마나 화날 일입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대학생이 시궁창에서 옷을 털고 나오더니 “실례했습니다.”하고 다시 책을 보고 가더랍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처칠이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아찔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처칠이 그 길로 서점으로 가서 수십 권의 책을 사 가지고 와서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 동기가 되어 나중에 한 나라의 수상까지 되었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복을 빌라”고 했습니다. 우리 속담에도 “미운 사람에게 떡 하나 더 주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굉장히 무서운 말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미운 사람에게는 다 뺏고 싶은 것이 보통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하나를 더 줌으로써 싸우지도 않고 상대를 이기라는 말입니다. 얼마나 고단위 처세술입니까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이 방법을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시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참 매력은 외모의 아름다움이나 외모가 주는 고상함이 아니고 한 차원 더 높은 매력은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외모의 매력에 이끌렸던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곧 싫증을 느끼고 권태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보여지는 매력은 생명이 길지가 않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방 땅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복을 빌라” 우리는 세상을 살되 한 차원 높은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2. 선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벧전3:13) 또 너희가 열심히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고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세련되고 지혜로운 처세술은 베푸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베푸는 삶을 살면 절대로 낭패를 당하거나 화를 당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적당히 나누고 베풀고 선을 행하고 살면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사고 무시를 당하고 원망을 듣는 일은 없습니다. 가끔 사람들로부터 원망을 듣고 원성을 듣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그런 사람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베푸는 삶이 없다는 점입니다. 사람이 그렇게 살면 그 사회에서 욕을 먹고 비난을 받고 때로는 불이익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어려움을 당할 때 찾아가 주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이웃이 상을 당했을 때 찾아가 위로해 주고 힘이 되어 주는 것도 가장 좋은 선입니다. 그래야 내가 그렇게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또 사람들이 찾아와서 위로를 해줍니다. 그렇지 않고 사람이 자기 중심적으로 살면 내가 곤란에 처하게 되어도 어느 누구 하나 도움이 되어 주지 않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살면 외롭습니다.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선을 베풀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여기서 이 점을 행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하나의 삶의 지혜일 것입니다. 베드로가 여기서 이 말씀을 강하게 제시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는 로마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어려움을 당하면서 살아갈 때입니다. 그때는 그리스도인들이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핍박을 당하고 때로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그런 세상을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으로 이 방법을 권했던 것입니다. “너희가 열심히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욕하고 해하겠느냐” 사람이 열심히 선을 행하고 살면 화를 당하는 일이 없습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비난을 받고 수모를 당하고 무시를 당하고 사는 데는 그런 만한 원인이 있습니다. 모 대기업 회장님이 장로님인데 그 분은 어느 기관에서 하는 성경공부에 열심이었습니다. 일년 동안 한번도 빠지는 일 없이 개근을 하고 성경도 가장 많이 읽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누구냐 하면 구로공단에서 공원들에게 월급을 제일 적게 주기로 이름난 분입니다. 그래서 공단내에서 지탄의 대상입니다. 그러니까 공단에서 무슨 문제가 생기면 그 공장이 제일 시끄럽습니다. 직원들이 협력을 하지 않습니다.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도 없고 애착도 없습니다. 그러니 결국 누가 손해입니까 평소에 사람이 인색하면 당장 지출은 적고 그래서 수입은 많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반드시 이익은 아닙니다. 유사시가 되면 사람들이 외면을 합니다. 사라이 어떻게 세상을 나 혼자서 살아갈 수가 있습니까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떻게 평안만 할 수 있습니까 평소에 심지 않은 사람은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외로워집니다. 누구 하나 힘이 되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몇 년 전에 미국 LA에서 폭동이 일어났을 때 평소에 틈틈히 가난한 흑인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고 번 만큼 베풀기도 한 사람들은 그 파동속에서도 그들의 보호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극한적인 환난 속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삶의 모습입니까 그래서 베드로가 강조한 것입니다. “너희가 열심히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겠느냐”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관계적인 존재입니다. 사람의 능력은 고작해서 쌀 한 가마니 들 수 있는 능력밖에 없습니다. 하루 100리밖에 걸어갈 수가 없고,
IQ,120 안에서만 생각하고 궁리할 수 있는 능력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 이상의 것은 모두 누군가의 힘이 필요하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서로 선을 행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의 모습입니다. 이 같은 지혜를 사도 베드로는 여기서 강력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열심히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겠느냐 선을 행하라.”
3. 양심적이 되는 것입니다. “(벧전3: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은 아무리 속임이 많고 거짓이 많고 진실과 양심적인 것이 없어도 진정 양심적인 사람은 인정받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세상을 보십시오. 진실이 어디 있습니까 물건 하나를 사 보십시오. 어느 것 하나 진실 그대로 만들어진 것이 있습니까 양이 제대로 들어 있습니까 품질을 제대로 믿을 수가 있습니까 모두 거짓되고 가짜입니다. 믿고 살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거짓되고 속이고 사기를 치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에서 혼자서 양심적으로 살면 손해를 보고 무시를 당합니다.
그런데 그런 세상이라고 할지라도 진정 양심적인 것은 인정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진리입니다. 그것이 바로 진리의 힘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가 강조하기를 “너희가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살면 너를 비방하던 사람으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제가 아는 장로님 중에 그런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어느 회사 사장인데 사업을 하는 분인데도 술이고 담배고 뇌물이고 협잡이고 전혀 할 줄을 모릅니다. 요즘 사업을 하자면 술 안할 수 없고 적당히 비자금도 쓸줄 알아야 한다고들 하는데 그분은 그런 것하고는 거리가 먼 분입니다. 대신 그분은 말 한마디가 보증 수표입니다. 말 한마디를 하면 어김없이 지켜집니다. 물건 하나를 만들어도 말 그대로 100% 진실을 담아 만듭니다. 확인하고 점검하고 조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부수적인 수단이 없어도 오늘 같은 사회에서 누구보다도 힘있게 기반이 닦이고 사업을 건실하게 운영해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 같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발휘해야 하는 가장 큰 힘이고 위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세상을 살면서 가장 기본적으로 양심적인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보태지도 말고 빼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그래야 바로 그런 삶의 모습에 힘이 실리고 신뢰가 쌓여서 거짓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도 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나 과장이 많은 시대입니다. 진실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내용은 아주 빈약한데 겉으로 포장된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말하지 않습니다. 진실은 보태거나 과장하는 것이 아니고 있는 그대로를 말할 때 그것이 진실이고 진리입니다. 아무리 좋은 진실이라고 할지라도 포장되고 과장되면 진실성이 상실됩니다. 진정 진리나 진실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진실은 감추거나 가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는 것은 그 말씀 안에 진실이 있고 진리의 힘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꾸밈이 없고 가식이 없는 살아 있고 움직이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말씀을 대할 때 모두 변화를 받게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전도자 선다 싱이라는 사람이 인도에서 전도를 했습니다. 열차 안에서 쪽복음을 들고 다니면서 전도를 하는데 어떤 사람이 쪽복음을 받아 들더니 찢어서 창밖에 던져 버렸습니다. 이 성경의 쪽지들이 창밖에 버려지니까 바람에 날려서 철로 위에 떨어졌습니다. 그때 마침 어느 청년이 세상을 비관하다가 죽으려고 철로를 베고 누워 있는데 지나가는 기차 안에서 쪽지들이 휘날려 왔습니다. 쪽지 한 장을 받아 보니까 그곳에 생명의 양식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지금 죽으려고 하는데 생명의 양식이라는 말을 읽는 순간 이 청년이 강한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때 길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그 사람은 힌두교인이었습니다. 그 힌두교인이 쪽지를 보니까 성경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당신, 이것을 읽으면 죽습니다. 그러니 읽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 청년이 생각하기를 기왕 죽을 바에는 읽어나 보고 죽자 하고 읽는 순간 진리의 힘이 작용을 해서 그 청년의 영혼을 변화시켜 놓았습니다. 이것이 진리의 힘입니다. 진실과 진리와 선은 나름대로 사람들에게 필요 적절하게 적용만 되면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니가 사도 베드로는 거대한 세속 도시 로마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승리의 비법을 가르친 것입니다. 언제 고난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름대로 승리하며 살아가는 방법으로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복을 빌라, 그리고 선을 행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무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같이 거짓이 난무하고 부조화가 많은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진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다가 때로 손해를 보고 속기도 하고 낭패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삶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 그런 불이익을 당하는 한이 있어도 그런 삶이 주께서 원하시는 삶이라고 한다면 그 불이익을 감수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다만 우리의 하나님은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늘 손해만 보도록 놓아 두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언젠가 때가 되고 하나님의 적절한 시간이 되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이 땅에서 하고자 하시는 일을 하시고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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