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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벧전3: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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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들을 손꼽으라 하면 여러가지 단어들을 생각해 낼 수 있습니다. 사랑, 복, 평안, 명예 등등 우리는 흔히 듣기 좋아하는 몇몇단어들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중 특히 모든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을 저에게 하나만 뽑으라 한다면 아마 성공이라는 단어를 꼽을 것이며 이에 대해 이견이 있는 분은 아마도 거의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성공이라는 단어는 언제, 어디서, 또한 누구에게 들어도 항상 기분 좋은 말입니다. 또한 우리모두 그 성공을 위하여 항상 그 많은 땀과 수고를 기울여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살고있는 모든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세운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 갑니다. 또한 그 목표가 성공하는 그 시간까지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또한 열심히 실행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역시 나름대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여러 모범적인 삶의 목표를 가지고 성공하는 삶을 살기 위하여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얼마나 성공된 삶을 살았는가 하는 평가는 그 보는 관점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혹 어떤이들은 그정도면 성공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말하는가 하면 다른이들은 그 정도를 어디 성고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그 성공의 정도는 엄청나게 차이가나는 평가의 차이를 나타내게 마련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하여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특히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대단한 성공으로 비쳐질 수 있는 일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완전한 실패로 평가되기도 하며, 또한 인간적인 측면에서 볼 때 완전히 실패한 것으로 보여질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보면 100%성공으로 인정해주시는 그런일이 또한 많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상삶이 바로 그런 삶이 아니었습니까 갈보리언덕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그 처참한 죽음을 당하신 그 예수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의 평가는 바로 완전한 실패자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완전한 실패의 죽음을 통하셔서 당신의 구원계획을 100% 이루셨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그 죽음을 완전한 성공으로 돌려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타인의 혹은 자신의 삶의 성공도를 평가한다는 것은 메우 힘든일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평가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쉬운 평가방법중의 하나입니다. 목회자들의 목회생활이 성공적인가 실패한 것인가하는 것은 다음의 한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면 알 수있다고들 합니다. 내 자녀는 과연 나의 삶을 보고 나도 아버지와 똑같은 목회의 길을 가겠다고 생각하는가, 또한 내 부인은 나의 설교를 들으면서 진정 눈물을흘리며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아멘을 할 수 있는가하는 질문입니다. 즉 내 자녀가 나를 본받을 가치가 없는 목회자로 본다면 또한 내 부인이 설교를 들으며 당신이나 먼저그렇게 하슈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게 한다면 나는 결단코 성공한 목회자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수천 수만의 교우들을 교인으로 가지고 목회를 한다고 해서 성공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 내 자녀가 나는 반드시 아버지를 본받는 목사가 되겠어 하고 결단할 수 있는 삶을, 내 부인이 내 설교를 들으면서 그렇지요,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나의 목회 생활은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의 삶역시 똑같은 평가 방법에의 해서 그 성공의 정도를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나의 자녀가 가장 존경하고 본받고 싶은 사람들의 서열 속에 내가 앞자리에 서지 못한다면 이미 나의 삶의 많은 부분은 실패로 돌아갔다고 보아 마땅할 것이며, 우리교회의 교우들이 가장 본받고 싶은 신앙인의 서열 속에 내가 앞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그 이름조차 기억되지 못한다면 바로 나의 믿음생활이 성공적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모진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모든 물과 피를 다 쏟으며 죽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삶을 성공된 삶으로 담대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분은 삶의 모범을 보이셨고 당신의 말씀에 항상 실천하는 삶을 사셨으며 오늘날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그분의 사랑과 은혜와 그 삶을 본받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그것 자체가 이미 그분의 성공적인 삶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과연 우리는 무엇으로 성공된 삶을 사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까요 그것은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것을 옳게 구분하고 올바로 실천함으로 내 자녀들에게 우리교회 아니 모든 교우들에게 본받고 싶은 분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우리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것을 구분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악으로 악을, 욕으로 욕을 갚지 말 것이며 오히려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 줄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근본적인 성품은 평안하거나 일이 잘 되어져 나아갈 때에는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일이 잘 안되고 어려움이 닥치고 나에게 악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나를 비방하고 욕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비로서 나의 속에 숨어있던 근본적인 성품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진가는 어려움에 닥쳤을 때 나타나게 된다고들 합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악하게 대해주는 사람에게 같이 악하게 대해주고, 나를 욕하는 사람을 향해 같이 욕하는 일은 보통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나게 되는 성품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사람들과는 다른 가치와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욕하고 침뱉고, 저주하는 그 사람들을 향하여 용서를 베푸시고 복을 빌어주셨던것처럼 우리도 우리를 욕하고 악하게 대하는 그들을 향해 악으로, 욕으로 갚지말고 오히려 복을 빌어 줌으로 말미암아 당사자에게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회개의 기회를 제공해주고 주위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삶을 보여주고 그들로 하여금 본받고 싶어하는 마음을 갖게 함으로 말미암아 참된 성공자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셨드시 우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복을 빌어주면 그로인해 만은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될 것이며 혹 그들중 몇 명이 복음 받을 처지가 되지 못한다면 내가 빌어준 그 복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내개 갚아주리라 약속하신 믿음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은 자신의 목자들과 조카 롯의 목자들이 서로 싸우는 모습을 바라보고는 롯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원하는 곳을 택하라 나는 그 반대편으로 가리라. 비옥한 소돔과 고모라지역을 택한 롯을 뒤로하고 아브라함은 척박한 광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롯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았으며, 또한 비옥한 땅을 선택하여 삼촌인 자신을 광야로 가게만든 그 처사에 대하여 서운한마음도 갖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기 위해 가고있는 천사들을 향해 자신의 것을 극진히 대접하여 롯의 안전을 간구하는 오히려 복을 빌어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로인해 아브라함은 영원한 믿음의 조상이되었고 엄청난 부를 누리게 되었으며 100세에 얻은 아들로 백사장의 모래알과 같은 크고 위대한 민족을 이루었으며, 그 가계에서 그리스도가 탄생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다윗 역시 자신을 끝없이 죽이려하는 장인 사울을 향해 끝없은 용서와 충성을 이어나가며 오히려 복을 빌어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한없이 쫒기고 수많은 죽음의 위협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자신을 죽이려 대드는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절대절명의 기회역시 여러번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끝까지 신하의 도리를 지키고 위해 복빌어 주었으며 사울왕의 비참한 죽음을 옷을 찢고 눈물로써 슬퍼하고 그 손자 므비보셋을 거두어 정성을 다해 살핀 모습을 찾아보게 됩니다. 이로인해 다윗은 아직까지도 이스라엘 백성의 정신속에 살아있는 영원한 왕으로 간직되어 있습니다. 또한 스데반 역시 자신에게 돌을 던져 죽이고 있는 그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복을 빌어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우리는 그들을 믿음의 성공자로 인정하고 그 삶의 모습을 본받으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습니까 두번째로 악한 말과 입술의 궤휼을 금하고 선을 행하며 화명의 말만을 전할 것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우리의 삶에 아주 커다란 영향을 주는 것이 바로 말입니다. 우리속담에도 발없는 말이 천리간다라든가 우리 몸에서 가장 무거운 부분이 세치 혀라는 말도 있고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이란 우리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한번 내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잠언18장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씀하시며, 또한 야고보서1장26절에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는 말에 따라서 우리는 많은 덕을 세울 수 있는가 하면 또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돌이킬 수 없는 갈등과 반목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듭니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 말들을 하고 있습니까 덕을 세우는 말들을 많이 합니까 혹 상처를 주는 말들을 많이 합니까 애석하게도 덕을세우고 남에게 기쁨을 주는 말 보다는 속이는 말, 거짓된 말, 상스러운 말, 남을 비판하는 말, 깎아내리는 말이 아름다운 말보다 더욱 많음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의 주위를 돌아보아도 한마디 말의 실수로 인하여 서로 갈등하고 반목하고 원수처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한 먼저 내가 잘못했어 하는 한마디를 하지 못해 아직까지도 서먹서먹하고 불편한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얼마나 우리의 한마디 말이 듣는이의 마음을 찌르는 비수로 둔갑하곤 합니까 시편 140편3절에 있는대로 뱀 같이 그 혀를 날카롭게 하여 그 입술 아래는 독사의 독을 얼마나 내뿜으며 살고 있습니까 그들의 혀는 죽이는 살이라 거짓을 말하며 입으로는 그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나 중심에는 해를 도모하는도다고 예레미야9장8절은 말해주고 있으며, 야고보서3장8절에는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고 오늘 우리의 혀와 입술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나의 입술로 나의 혀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상하게하고 그들의 심령을 죽이는 일을 아무 거리낌없이 행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이제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의 입술과 혀를 재갈먹여 항상 평화를 심고 영혼을 살리며 덕을 세우는 말을 하도록 노력하여야만 합니다. 시편 120편2절을 보면 성전으로 올라가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궤사한 혀에서 내 생명을 건지소서하고 찬양하고 있으며, 오늘 본문 10절말씀에서도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라고 우리를 권면합니다. 부드러운 말은 뼈를 꺾습니다.(잠15:4) 온량한 혀는 생명나무입니다.(잠25:15)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지만 거짓 된 혀는 눈 깜짝일 동안만 있을 뿐입니다.(잠12:19)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시139:4)
그러므로 항상 의를세우고 덕을세우는 말, 칭찬하느 말, 화평을 이루는 말, 진실되고 부드러운 말만을 하도록 노력합시다.
셋째로 악한 생각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믿음의 삶이 되기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악한길 편한길을 가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올바른길 선한 길을 가기는 매우 힘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좁은길로 들어가라 생명에 이르는 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사람이 적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일의 대부분이 선함 보다는 악한일과 악한 생각에 더 앞장서고 의롭고 선하게 살려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바보취급하고 이용하여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선한일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을 하면 오히려 선한일을 했다고 시끄럽게 떠들어 대고 오히려 악한일은 아무렇지도 않게생각하던 시대입니다. 어디서 살인 사건이 나기만 하면 머릿기사에 싯던 신문들이 이제는 오히려 왠만한 살인 사건들은 기사의 가치도 잃어버린 채 한구석 서너줄 채우기도 아까와 하고 오히려 지극히 당연한 일 아무개가 길거리에서 돈 얼마를 줏어 주인을 찾아주었다는, 아무개가 도망가는 뺑소니차를 따라가 붙잡았다는등의 기사들이 오히려 대서특필되고 마치 사회의 영웅인양 미화되어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는 신문지상이나 T.V뉴스시간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준법투쟁이라는 단어가 왠지 저의 마음을 허전하게 만들곤 합니다. 지금까지 불법이 당연한 것이었고 오히려 준법행동을 하는 것이 투쟁이 되어버리고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속에서 진정 우리가 성공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주로 삼고 본받기로 결단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스스로를 거룩하게 가꾸는 성도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이제 악한 생각과 생활에서 벗어나서 선한일을 행하는 성도들이 되도록 노력합니다. 그길은 오히려 악한세상에 휩쓸려 사는 것 보다 힘들고, 무시당하고, 핍박받는 생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참 소망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힘입어 사는 우리들은 그 소망을 힘입어 이 땅에 그리스도의 시절을 꽃피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역사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이루어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공된 삶을 살아가려는 목적 역시 어떤 복을 받아 누리겠다는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여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혹 우리가 악으로 악을 욕으로 욕을갚지 않고 오히려 복을 빌어 줄 때, 악한 입술을 제어하고 선하고 덕스러운말만이 우리의 삶을 온통 장식할 때, 악한 생각에서 떠나 항상 선한일을 도모할 때 누군가 그 이유에대해서 묻는다면 그 때 나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영원하 소망을 주신 하나님과 그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해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욕하고 비방하고 핍박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우리의 삶을 참된 성공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지금 이시간 나에게 참 소망을 주신 분은 누구입니까 또 나를 참된 성공의 삶으로 이끌어 주고 계신 분은 누구십니까 나를 해하려는 자들을 위해 복을 비는 성공자가 됩시다. 덕을 세우고 화평을 심는 말로 우리의 삶을 채워가는 성공자가 됩시다. 악한 생각을 떠나 항상 선을 도모하는 성공자가 됩시다. 그리고 누군가 그 이유를 물어 보면 내게 참 생명과 참소망을 주신 예수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 성공자가 됩시다. 내 자녀에게 너는 누구를 가장 존경하며 어떤사람이 될테냐고 물어 볼 때 그들의 입에서 나는 평생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성공된 삶을 살아가신 아버지,어머니를 존경하고 또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사람이 될래요. 하는 고백을 받을 수 있는 참된 성공자가 됩시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나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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