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남은때를 어떻게 살까? (벧전4:1-8)
본문
할렐루야!! 오늘도 은혜를 사모하여 이시간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은총이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벌써 7월이 다가고 7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옛말에 7월은 빨리간다고 해서 '어정7월' 이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세월이 빠릅니다. 그래서 욥은 말하기를 욥 기7:2절 말씀에 "종은 저물기를 심히 기다리고 품군은 그 삯을 바라나니,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소망없이 보내는구나" 라고 하였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국내외적으로 심각한 상황들이 쉴새없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천재지변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계곳곳에서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천재지변들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지난 20일 파푸아뉴기니에서는 진도 7.0의 강 한 지진과 10m 높이의 해일로 인하여 10개 마을이 모두 쓸려나갔고 이로 인하 여 3천명이 사망을 하였으며 1만5천여명의 이재민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현상들을 보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생각하여야 합니까 바로 주님의 재림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분명히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때가 되면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눅21:10-11)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 고,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 들이 있으리라" (벧후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 로다" 실로 주님의 심판이 문 밖에 이르렀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본문 2절의 말씀 대로 육체의 남은때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설교 제 목을 육체의 남은 때 라고 정했습니다. 오늘 본문 1-2절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고 하였고 7절 말씀에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고 하였습니다. 또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마16: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 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 느냐" 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지혜는 바로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그 뜻대 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대를 직시하면서 자기 자신의 남은 인생을 어 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수 있을가를 생각하여 자신의 인생을 슬기롭고 지혜롭게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남은 인생이 점 점 짧아지고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천년 만년 살 수 있을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말씀은 우리 주님이 재림 하시는 우주적인 종말을 뜻하기도 하지만 인생의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것을 뜻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다"(딤후 4:6) 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언제나 자신의 끝날이 올 것을 생각하면서 하루 하루를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고 고백하기도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리 건강하여도 언젠가는 병들어 죽을 날이 있고, 아무리 재산 을 모아 움켜쥐어도 언젠가는 내어 놓을 날이 있습니다. 진(秦)나라의 시황제 (始皇帝)는 늙지 않고 죽지 않으려고 불노초(不老草)를 구하려고 하였어도 결국 에는 그도 늙고 병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우리 육체의 남은 때를 잘 선용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였습니다. 어차피 죽어 없어 질 인생이라면 살아 있는 동안 남을 도와주고 믿음으로 살면 복된 인생이요. 죽은 다음에 남의 것이 되면 어리석은 자가 될 것입니다. 인생의 종착점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차피 가야할 인생 들입니다. 우리 인생의 시작도 내 마음대로 된 것이 아니기에 끝나는 것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릴레이 코스를 달리는 경주 자에 불과 합니다. 그래서 종착점에 다달으면 미련없이 우리의 인생은 끝이 나 야 합니다. 모세는 말하기를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 라고 기도 하였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사는 날을 계 산할 줄 알아야 합니다. 미물의 짐승들도 자신이 죽을 때를 압니다. 그래서 코 끼리는 죽을때에 아무도 모르는 자신들만이 아는 죽는 곳으로 가서 죽고, 호랑 이는 자기가 태어난 굴에 가서 죽는다고 합니다. 강원도 동해안의 남대천에서 태어난 연어들은 태평양에서 몇 년동안 살다가 죽을때가 되면 태어난 남대천에 와서 알을 낳고 죽습니다. 미물의 짐승들도 자신의 죽을 때를 알고 있는데 만 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남은 때를 알지 못하고 허랑방탕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짧은 인생의 삶을 깨달아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찾아서 성실한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의 제목처럼 우리들의 육체의 남은때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 가를 생각해 보면서 함께 은혜받기를 바랍니다.'아멘'
1. 우리들의 육체의 남은때는 믿음을 지켜서 살아야 합니다. 본문 7절에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은 바른 믿음을 가지 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도들이 정신을 차린다는 것은 어떻한 환경과 어떻한 경 우라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믿음을 잃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생각지 못하고 믿음을 잃어버린다면 그가 바로 정신나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 때문에 믿음의 정신을 못차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 몇푼 벌겠다고 주일 지키지 못하는 사람도 정신차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구약 창세기의 에서는 팟죽 한그릇에 정신차리지 못하고 장자의 명분을 팔았 습니다. 그래서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하나님의 축복권에서 밀려나 저주받은 민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롯유다는 돈 때문에 은 30냥에 자신의 선생이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인 예수를 팔았습니다. 오늘날의 신자들도 돈 때문에 신앙양심을 팔아먹고 하나님께 욕을 돌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또 어떤 사람들은 정욕 때문에 정신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세움받은 사사인데도 들릴라의 유혹에 빠져서 탈선하여 비 참한 종말을 맞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잠시 정신 차리지 못하고 범한 죄악이 평생에 한이 되어 눈물로 회개 를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요셉이란 청년은 보디발의 아내의 끈질긴 유혹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득죄하리요" 하면서 정신을 차렸기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 던짐을 당하여도 믿음을 잃지 않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7배나 뜨겁게 달군 풀무불 속에 던지워져도 믿음 을 잃지 않았습니다. 말세가 되면 죄악이 관영하고 모든 사람의 심령이 타락해서 육신의 정욕을 쫏고 안목의 정욕과 자랑만 생각하고(요1서 2:16)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이 없는 시대가(딤후3:5) 될 것임으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언제 나 자신도 죄악 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될지 모릅니다. 초대교회 집사인 스데반은 유대인의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 켰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 옆에 자신의 자리 가 예비되어 있는것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영혼을 주님께 부탁하였습니다. 원수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도 하였습니다. 숨이 끊어질때까지 믿음 을 잃지 않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 정신을 차리고 주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는 사람은 근신합니다. 근신한다는 말은 조심한다는 말입니다. (고전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항상 조심을 하여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선 사탄의 유혹에 해와가 넘어지고 아담도 넘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나올 때 수 많은 사람들이 사탄에게 넘어져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지금은 사탄들이 더욱 악랄하고 간교하고 끈질기게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 하여 성도들을 미혹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 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하여 저를 대적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정신을 차릴때입니다. 근신할때입니다. 우리의 남은 육체의 때를 정신 을 차리고 믿음을 지킬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신을 차라고 근신한다 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바르게 합니다. 기도 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바른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사탄은 1차적으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을 공격대상으로 삼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사탄의 공격대 상이 되지 않고 사탄의 이용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밤새워 철야기도 하셨고, 날이 밝기전 새벽미명에 새벽기도 하셨습니다. 40일씩 금식기도도 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계속 기도하므로 십자가의 구속사업을 승리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더욱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믿음으로 말씀을 지키는 성도가 되어서, 여러분의 남은 생애가 진정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 복된 생애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2. 육체의 남은때는 뜨겁게 서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 8절 말씀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 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를 완전케 하는 것이 기도라면 수평적으로 완전케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의 가장 올바른 의미와 감정은 사랑하는 순간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뜨겁게 사랑하기 바랍니다. 뜨거운 사랑은 상대방의 허물이 보이 지 않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큰 사랑이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고 있으며 그 큰 사랑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시32:1)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예수님의 사랑은 허물을 가리워 주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우리들도 상대방의 허물을 노출시키는 것보다는 가리워 줄줄 아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람들은 자신의 허물을 깨닫지 못하고 상대방의 허 물을 들춰내서 노출 시키는 일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마7:3)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 닫지 못하느냐" 고 하였습니다. 창9:20절 에는 노아가 포도주에 취하여 수치를 보였을 때 함은 아비의 수치 를 공개하였지만 셈과 야벳은 아비의 수치를 가리워 주었습니다. 그 결과 함은 저주를 받아 대대로 저주받은 민족이 되었고 셈과 야벳 족속은 창대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의인들의 모임이 아니라 허물 많은 죄인들이 서로 가려주고 덮어주고 용서해 주고 또 용서받은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우리 서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가려주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일방적으로 받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내가 상대방을 뜨겁게 사랑할 때 그 사랑은 메아리가 되어서 내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사람들은 먼저 받은 다음에 보낼려고 합니다. 순서가 잘못되 었습니다. (마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고 하였습니다. 사랑을 받 고 싶으면 먼저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고전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 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 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 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입으로는 사랑을 외치면서 불신앙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말세가 가까 울수록 우리가 받은 사랑을 갚을 날도 짧아집니다. 우리 인생의 종말이 가까이 닥아오는 이때에 우리 성도들은 육체의 남은때를 더욱 더 뜨겁고 진실된 사랑 을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아멘!'3. 육체의 남은때는 선한 청지기로 충성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봉사하고 충성할 수 있도록 받은 은사가 있습니다. 목사는 목사대로, 장로나 권사 집사 모두가 주님의 청지기 입니다.
그러므로 청지기는 오직 주인의 뜻을 따라서 봉사하고 충성스럽게 일하는 것이 바로 청지기의 본분입니다. 불의한 청지기라고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지 않도 록 앞으로 우리의 육체의 남은 때를 충성스러운 청지기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2:20절 말씀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 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 여러분의 육체의 남은 때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또 남은 때를 어떻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예' 19세기 유명한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1821-188
1)는 28세때에 사건에 연류되어 체포되어서 사형선고를 받고 영하 50℃의 추운 날에 사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는 자기가 살아있는 시간이 앞으로 5분밖에 남지 안은 것을 알고 그 5분을 어떻게 쓸까를 생각하였 습니다. 2분은 아는 사람들에게 최후의 인사를 하고, 2분은 지금까지 살아온 자 신의 생애를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1분은 지금까지 살아온 아름다운 자연을 돌 아보는데 쓰자고 생각하였습니다. 가족과 친지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니 2분이 지났습니다. 자기 자신을 생각하 려고 하니까 문득 "3분후면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눈앞이 아찔하였습니다. 그리고 28년이란 세월을 한 순간도 아껴쓰지 못한 것이 후회 가 되었습니다. 만약 다시 한 번 살 수 있다면 순간 순간을 아주 값지게 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사형집행하는 군인들의 총알 장진하는 소리가 '철컥' 하고 들려왔습니다. 견딜 수 없는 죽음의 고통이 몰려왔습니다. 이때 왁자지껄 하는 소리가 들려와서 눈 을 떠보니 멀리서 한 병사가 흰 수건을 흔들며 말을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병 사는 황제의 특사령을 가지고 달려온 것입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도스토에프 스키는 그후 4년반동안 시베리아에서 감옥생활을 하였지만 그는 60세에 죽을때 까지 언제나 그때 일을 생각하면서 한순간 한순간을 의미 있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후 그는 불후의 명작이라고 하는 '까라마죠프의 형제들' 과 '백치'(白痴) 그리고 '죄와벌' 등 유명한 명작을 남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육체의 남은 때를 어떻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로 주님을 위해서 육체의 남은때를 봉사하며 충성하는 청지 기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아멘'
결론: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인도의 시성(詩聖)이라고 불리우는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1861-1941) 은 말하기를 "나는 나이가 점점 많아지므로 내가 젓는 노를 의지하지 아니 하고 이제는 돛을 높이 달고 바람을 의지하노라" 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 인생의 남은 세월을 우리의 육신을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돈과 명예와 지식을 의지해서도 안됩니다. 인간의 모든 일은 한계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24절 이하의 말씀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 다를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잠시 예수님은 피곤한 몸을 누이시고 잠이 드셨는 데 풍랑이 몰아쳐 배가 곧 뒤집히거나 파선할 것 같아서 제자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애써보았지만 속수무책 이었습니다. 할 수 없어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 웠습니다. 예수님이 일어나 "바람아 잔하고 고요하라" 고 하시자 바람이 멋고 물결은 잔잔해 졌습니다. 이때 제자들의 노젓는 솜씨가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기술이 모라는 것도 아닙니다. 힘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힘과 기슬보다는 주님께 맡길때에 바람과 파도가 잔잔해 졌습니다. 할렐루야!!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에 돛을 높이 달고,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님의 바람 에 여러분의 인생을 맡기고,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가 되어서 이 목숨 다하도록 충성을 다 하다가 하나님 앞에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육체의 남은 때를 어떻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1 근신하여 청신을 차리고 믿음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2 뜨겁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3 선한 청지기가 되어서 죽도록 충성하는 성도가 되어서 우리 주님께서 심판하시는 날 심판대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 이라 칭찬듣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벌써 7월이 다가고 7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옛말에 7월은 빨리간다고 해서 '어정7월' 이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세월이 빠릅니다. 그래서 욥은 말하기를 욥 기7:2절 말씀에 "종은 저물기를 심히 기다리고 품군은 그 삯을 바라나니,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소망없이 보내는구나" 라고 하였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국내외적으로 심각한 상황들이 쉴새없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천재지변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계곳곳에서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천재지변들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지난 20일 파푸아뉴기니에서는 진도 7.0의 강 한 지진과 10m 높이의 해일로 인하여 10개 마을이 모두 쓸려나갔고 이로 인하 여 3천명이 사망을 하였으며 1만5천여명의 이재민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현상들을 보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생각하여야 합니까 바로 주님의 재림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분명히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때가 되면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눅21:10-11)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 고,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 들이 있으리라" (벧후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 로다" 실로 주님의 심판이 문 밖에 이르렀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본문 2절의 말씀 대로 육체의 남은때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설교 제 목을 육체의 남은 때 라고 정했습니다. 오늘 본문 1-2절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고 하였고 7절 말씀에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고 하였습니다. 또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마16: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 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 느냐" 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지혜는 바로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그 뜻대 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대를 직시하면서 자기 자신의 남은 인생을 어 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수 있을가를 생각하여 자신의 인생을 슬기롭고 지혜롭게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남은 인생이 점 점 짧아지고 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천년 만년 살 수 있을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말씀은 우리 주님이 재림 하시는 우주적인 종말을 뜻하기도 하지만 인생의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것을 뜻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다"(딤후 4:6) 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언제나 자신의 끝날이 올 것을 생각하면서 하루 하루를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고 고백하기도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리 건강하여도 언젠가는 병들어 죽을 날이 있고, 아무리 재산 을 모아 움켜쥐어도 언젠가는 내어 놓을 날이 있습니다. 진(秦)나라의 시황제 (始皇帝)는 늙지 않고 죽지 않으려고 불노초(不老草)를 구하려고 하였어도 결국 에는 그도 늙고 병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우리 육체의 남은 때를 잘 선용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였습니다. 어차피 죽어 없어 질 인생이라면 살아 있는 동안 남을 도와주고 믿음으로 살면 복된 인생이요. 죽은 다음에 남의 것이 되면 어리석은 자가 될 것입니다. 인생의 종착점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어차피 가야할 인생 들입니다. 우리 인생의 시작도 내 마음대로 된 것이 아니기에 끝나는 것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릴레이 코스를 달리는 경주 자에 불과 합니다. 그래서 종착점에 다달으면 미련없이 우리의 인생은 끝이 나 야 합니다. 모세는 말하기를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 라고 기도 하였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사는 날을 계 산할 줄 알아야 합니다. 미물의 짐승들도 자신이 죽을 때를 압니다. 그래서 코 끼리는 죽을때에 아무도 모르는 자신들만이 아는 죽는 곳으로 가서 죽고, 호랑 이는 자기가 태어난 굴에 가서 죽는다고 합니다. 강원도 동해안의 남대천에서 태어난 연어들은 태평양에서 몇 년동안 살다가 죽을때가 되면 태어난 남대천에 와서 알을 낳고 죽습니다. 미물의 짐승들도 자신의 죽을 때를 알고 있는데 만 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남은 때를 알지 못하고 허랑방탕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짧은 인생의 삶을 깨달아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찾아서 성실한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의 제목처럼 우리들의 육체의 남은때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 가를 생각해 보면서 함께 은혜받기를 바랍니다.'아멘'
1. 우리들의 육체의 남은때는 믿음을 지켜서 살아야 합니다. 본문 7절에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은 바른 믿음을 가지 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도들이 정신을 차린다는 것은 어떻한 환경과 어떻한 경 우라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믿음을 잃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생각지 못하고 믿음을 잃어버린다면 그가 바로 정신나간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 때문에 믿음의 정신을 못차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 몇푼 벌겠다고 주일 지키지 못하는 사람도 정신차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구약 창세기의 에서는 팟죽 한그릇에 정신차리지 못하고 장자의 명분을 팔았 습니다. 그래서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하나님의 축복권에서 밀려나 저주받은 민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롯유다는 돈 때문에 은 30냥에 자신의 선생이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인 예수를 팔았습니다. 오늘날의 신자들도 돈 때문에 신앙양심을 팔아먹고 하나님께 욕을 돌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또 어떤 사람들은 정욕 때문에 정신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세움받은 사사인데도 들릴라의 유혹에 빠져서 탈선하여 비 참한 종말을 맞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잠시 정신 차리지 못하고 범한 죄악이 평생에 한이 되어 눈물로 회개 를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요셉이란 청년은 보디발의 아내의 끈질긴 유혹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득죄하리요" 하면서 정신을 차렸기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 던짐을 당하여도 믿음을 잃지 않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7배나 뜨겁게 달군 풀무불 속에 던지워져도 믿음 을 잃지 않았습니다. 말세가 되면 죄악이 관영하고 모든 사람의 심령이 타락해서 육신의 정욕을 쫏고 안목의 정욕과 자랑만 생각하고(요1서 2:16)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이 없는 시대가(딤후3:5) 될 것임으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언제 나 자신도 죄악 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될지 모릅니다. 초대교회 집사인 스데반은 유대인의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 켰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 옆에 자신의 자리 가 예비되어 있는것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영혼을 주님께 부탁하였습니다. 원수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도 하였습니다. 숨이 끊어질때까지 믿음 을 잃지 않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 정신을 차리고 주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는 사람은 근신합니다. 근신한다는 말은 조심한다는 말입니다. (고전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항상 조심을 하여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선 사탄의 유혹에 해와가 넘어지고 아담도 넘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나올 때 수 많은 사람들이 사탄에게 넘어져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지금은 사탄들이 더욱 악랄하고 간교하고 끈질기게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 하여 성도들을 미혹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 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하여 저를 대적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정신을 차릴때입니다. 근신할때입니다. 우리의 남은 육체의 때를 정신 을 차리고 믿음을 지킬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신을 차라고 근신한다 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바르게 합니다. 기도 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바른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사탄은 1차적으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을 공격대상으로 삼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사탄의 공격대 상이 되지 않고 사탄의 이용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밤새워 철야기도 하셨고, 날이 밝기전 새벽미명에 새벽기도 하셨습니다. 40일씩 금식기도도 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계속 기도하므로 십자가의 구속사업을 승리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더욱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믿음으로 말씀을 지키는 성도가 되어서, 여러분의 남은 생애가 진정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는 복된 생애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2. 육체의 남은때는 뜨겁게 서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 8절 말씀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 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를 완전케 하는 것이 기도라면 수평적으로 완전케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의 가장 올바른 의미와 감정은 사랑하는 순간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뜨겁게 사랑하기 바랍니다. 뜨거운 사랑은 상대방의 허물이 보이 지 않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큰 사랑이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고 있으며 그 큰 사랑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시32:1)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예수님의 사랑은 허물을 가리워 주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우리들도 상대방의 허물을 노출시키는 것보다는 가리워 줄줄 아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람들은 자신의 허물을 깨닫지 못하고 상대방의 허 물을 들춰내서 노출 시키는 일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마7:3)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 닫지 못하느냐" 고 하였습니다. 창9:20절 에는 노아가 포도주에 취하여 수치를 보였을 때 함은 아비의 수치 를 공개하였지만 셈과 야벳은 아비의 수치를 가리워 주었습니다. 그 결과 함은 저주를 받아 대대로 저주받은 민족이 되었고 셈과 야벳 족속은 창대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의인들의 모임이 아니라 허물 많은 죄인들이 서로 가려주고 덮어주고 용서해 주고 또 용서받은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우리 서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가려주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일방적으로 받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내가 상대방을 뜨겁게 사랑할 때 그 사랑은 메아리가 되어서 내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사람들은 먼저 받은 다음에 보낼려고 합니다. 순서가 잘못되 었습니다. (마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고 하였습니다. 사랑을 받 고 싶으면 먼저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고전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 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 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 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입으로는 사랑을 외치면서 불신앙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말세가 가까 울수록 우리가 받은 사랑을 갚을 날도 짧아집니다. 우리 인생의 종말이 가까이 닥아오는 이때에 우리 성도들은 육체의 남은때를 더욱 더 뜨겁고 진실된 사랑 을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아멘!'3. 육체의 남은때는 선한 청지기로 충성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봉사하고 충성할 수 있도록 받은 은사가 있습니다. 목사는 목사대로, 장로나 권사 집사 모두가 주님의 청지기 입니다.
그러므로 청지기는 오직 주인의 뜻을 따라서 봉사하고 충성스럽게 일하는 것이 바로 청지기의 본분입니다. 불의한 청지기라고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지 않도 록 앞으로 우리의 육체의 남은 때를 충성스러운 청지기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2:20절 말씀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 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 여러분의 육체의 남은 때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또 남은 때를 어떻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예' 19세기 유명한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1821-188
1)는 28세때에 사건에 연류되어 체포되어서 사형선고를 받고 영하 50℃의 추운 날에 사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는 자기가 살아있는 시간이 앞으로 5분밖에 남지 안은 것을 알고 그 5분을 어떻게 쓸까를 생각하였 습니다. 2분은 아는 사람들에게 최후의 인사를 하고, 2분은 지금까지 살아온 자 신의 생애를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1분은 지금까지 살아온 아름다운 자연을 돌 아보는데 쓰자고 생각하였습니다. 가족과 친지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니 2분이 지났습니다. 자기 자신을 생각하 려고 하니까 문득 "3분후면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눈앞이 아찔하였습니다. 그리고 28년이란 세월을 한 순간도 아껴쓰지 못한 것이 후회 가 되었습니다. 만약 다시 한 번 살 수 있다면 순간 순간을 아주 값지게 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사형집행하는 군인들의 총알 장진하는 소리가 '철컥' 하고 들려왔습니다. 견딜 수 없는 죽음의 고통이 몰려왔습니다. 이때 왁자지껄 하는 소리가 들려와서 눈 을 떠보니 멀리서 한 병사가 흰 수건을 흔들며 말을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병 사는 황제의 특사령을 가지고 달려온 것입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도스토에프 스키는 그후 4년반동안 시베리아에서 감옥생활을 하였지만 그는 60세에 죽을때 까지 언제나 그때 일을 생각하면서 한순간 한순간을 의미 있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후 그는 불후의 명작이라고 하는 '까라마죠프의 형제들' 과 '백치'(白痴) 그리고 '죄와벌' 등 유명한 명작을 남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육체의 남은 때를 어떻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로 주님을 위해서 육체의 남은때를 봉사하며 충성하는 청지 기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아멘'
결론: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인도의 시성(詩聖)이라고 불리우는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1861-1941) 은 말하기를 "나는 나이가 점점 많아지므로 내가 젓는 노를 의지하지 아니 하고 이제는 돛을 높이 달고 바람을 의지하노라" 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 인생의 남은 세월을 우리의 육신을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돈과 명예와 지식을 의지해서도 안됩니다. 인간의 모든 일은 한계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24절 이하의 말씀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 다를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잠시 예수님은 피곤한 몸을 누이시고 잠이 드셨는 데 풍랑이 몰아쳐 배가 곧 뒤집히거나 파선할 것 같아서 제자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애써보았지만 속수무책 이었습니다. 할 수 없어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 웠습니다. 예수님이 일어나 "바람아 잔하고 고요하라" 고 하시자 바람이 멋고 물결은 잔잔해 졌습니다. 이때 제자들의 노젓는 솜씨가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기술이 모라는 것도 아닙니다. 힘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힘과 기슬보다는 주님께 맡길때에 바람과 파도가 잔잔해 졌습니다. 할렐루야!!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에 돛을 높이 달고,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님의 바람 에 여러분의 인생을 맡기고,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가 되어서 이 목숨 다하도록 충성을 다 하다가 하나님 앞에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육체의 남은 때를 어떻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1 근신하여 청신을 차리고 믿음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2 뜨겁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3 선한 청지기가 되어서 죽도록 충성하는 성도가 되어서 우리 주님께서 심판하시는 날 심판대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 이라 칭찬듣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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