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무기 삼아 살아가라 (벧전4:1-6)
본문
요즘 평범하게 월급을 받아서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이 살맛이 나지 않는다고 살아갈 의욕을 상실한 사람을 많이 만나 봅니다. 의욕을 상실한 사람에게 나름대로 상담도 해 보았지만 세상의 원리로서는 살맛을 되찾아 줄 수가 없었습니다. 나라안을 떠들썩하게 한 "전 대통령의 전모를 알려면 신문을 보면 대강 알 수가 있다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도 속시원히 해 결해 주지 못한다. 결론은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소상히 밝혀질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있습디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 육체의 남은 때를 살까 하는 문제가 저마 다 남아 있는 문제올시다. 사람의 욕심을 따라 생애를 마치는 사람 도 있고 오직 남은 때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교회라는 공동체는 육체의 남은 때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목적을 정해 사는 무리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디모데 전서 6:7절에 우리는 더러운 세상 재물에 우리의 소망이 있지 아니합니다.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 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가 소망이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비록 빈 궁해도 깨끗함을 지켜 갑니다. 요한 일서 3: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1.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려는 이유는 무엇 입니까 본문에서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1'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은 적으로부터 전신을 무장하는 갑옷이 됩니다. 본문 1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 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실 때 심정이 어떤 마음이 였을까요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던 잔을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도 있지 만 죄를 미워하고 인간 속에 죄가 퍼져서 인간의 고통을 덜어 주겠 다는 심령으로 예수님은 고난의 십자가 지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동일한 고통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그러나 고통을 당할 때에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을 품을 때에 그 고통,고난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방 어하는 무장이 된다는 말씀입니다.고난을 당하지 않고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고난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태도로 받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고난이 앞에 닥아 왔 을 때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기도할 때에 가능하면 이 잔을 내게서 멀리하소서 기도했을 뿐이 였습니다. 유대인 군중도 로 마 군병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어려운 일을 피해 보려고 핑계를 되지만 핑계는 자기를 매장하는 무덤을 팔뿐 아무 도움도 되 지 않습니다.고난을 당할 때에 예수그리스도와 같은 태도로 감당하 면 영광스로운 결과를 맞이할 수가 있습니다. 고난 그것이 오히려 사단의 방해를 막는 갑옷이 됩니다.지금 당하는 고난 때문에 원망하 면 더 큰 불행을 자초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와 같은 태도로 그 고난을 감당하면 고난이 쉽 습니다. 예수님은"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히브리서 2:14-15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1
5'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 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예수님의 고난은 마귀의 일을 막는 좋은 방패입니다. 요는 어떤 태 도로 고난을 감당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크든지 작든지 누구에게나 그에게 맞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 십자가를 감당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앞에 놓인 고난을 어떤 태도로 감당하시렵니 까 원망과 불평으로 고난을 바라보시겠습니까
2'죄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현재,미래,과거의 죄를 해결하셨다니까내가 능히 해결할 수 있고 보상이 가능한 죄까지 주님께 미루는 얌체들이 많습니다. 죄를 무서워하지도 않습니다.삭개오도 주님께서 죄 용서 해 주 셨을 때에도 자기의 과거 지은 죄-착취,횡령의 죄에 대해서는 보상 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인간 힘으로 보상할 수 없는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에 있을 죄를 용서 해주시겠다는 것이지 예수님께서 죄 문제를 해결했다니까 죄에 대해서 사구려 면죄부를 낭발하는 것 으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아무튼 나의 의로 죄를 원상 복귀를 시키 려고 애쓰고 애써도 원상 복귀가 안돼는 죄가 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군에 있을 때에 군종 병 하나가 매우 밉게 놀았습니다. 이상 하게 그만 보면 미운 마음이 생겨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속으로 "너만 예수 믿느냐 나도 장로 아들이다"알게 모르게 괴롭혔던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수소문 끝에 그는 목사가 되어 하와이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 그의 주소도 그의 전화번호도 모릅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눈물을 흘리며 뉘우쳤습니다. 그 뉘우침의 눈물이 하와이에서 목회 하는 목사님에게 무슨 보상이 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죄를 회개하면 깨끗하게 해주신다는 말입니다.본문에 "육체의 고난을 받으신 이가 죄를 그쳤음이니"라는 말씀은 예수가 죄 문제를 끝장냈다는 말입니다. 우리 사람은 죄 문제를 해 결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 홀로 그 문제를 해결하셨다는 말입니다.예수님의 고난은 우리의 죄 를 해결하시기 위한 고난입니다. 우리의 고난과 예수님의 고난의 차 이가 있다면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난이 이고 우리의 고난은 죄인이고 연약한 인간임을 깨닫기 위한 고난입니다. 때문에 시편 119:70절에 말씀하시기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 게 되었나이다" 고난을 통하여 주께로 나아가고 자기의 연약성을 발 견하게 되고 율법의 필요성을 알게 되기 때문에 유익한 것입니다. 로마서 6:6절 말씀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 이니" 예수그리스도가 죄 문제를 해결하심으로 우리가 죄의 종노릇하지 않 고 죄로부터 해방되었음을 믿습니까
3'이 후로는 사람의 정욕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 받기 전에는 사람의 정욕을 따라 살았습니다. 아니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고 죄인 것도 모르고 살아 왔습니다. 우리 몸에 구습을 따라 사는 것이 관습이 되었습니다. 본문 2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구원 그후는 무엇인가 달라 져 야 합니다.음란과 방탕과 술취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구원 전후가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머슴을 구원 하기 위하여 즉 술취함과 방탕 하는 머슴을 구하기 위하여 주인의 아들이 칼에 찔림을 받아 죽었다면 그 후로는 술은 보기도 싫을 것 입니다. 방탕한 생활 생각하기도 싫을 것입니다. 주인의 아들이 그 아들대신에 종을 양자 삼았다고 한다면 그 머슴은 술을 멀리하고 방 탕과 음란한 생각을 머리에서 생각하기도 싫을 것입니다.여러분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었다고 말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왜 나를 위해 죽으셨는지를 까맣게 잊고 살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3:13 절에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 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영생은 어쩌면 시간 속의 생명이 아닐 것입니다. 영원한 영원 속에 생명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이라 일컽는 현재의 시간을 성결하게 살려는 의지를 가지고 유한한 현재의 시간을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2.과거의 방탕한 생활은 과거의 지나간 일로 족합니다.
1'이방인의 뜻을 좇아 살던 과거는 과거로 덮어 주고 더 이상 들 추지 마십시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과거의 방탕하게 살았던 것을 들추었습니다. 나 도 너를 정죄치 않겠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과거를 문제 삼지 않습니다. 앞으로 남은 때를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본문 3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별로 어려운 말이 없습니다. 과거의 음란하고 방탕한 것 술취하고 방탕하고 연락한 것 회개합니다. 원상 복귀시키려고 애를 습니다. 원 상 복귀가 가능한 것도 있고 불가능한 것도 있습니다. 원상 복귀가 불가능하다고 걱정만 하지 마시고 주님께 맡기십시오. 그분은 기억 도 아니하시고 말끔히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마귀는 과거를 들춥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성령님의 역사는 회개하면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우상 숭배 앞에 무법한 자라는 말은 계명이 없는 자 우상을 말 합니다. 불신자는 우상을 섬기고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릅니다. 건 강, 출세, 재물, 자녀들을 예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왜 그렇습니다. 복음이라는 법이 없기 때문에 잘못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빌립보서 3:13절 말씀을 귀기울여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과거의 잘 못에 빠져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는 성도는 없습니까 앞으로 중요한 할 일이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2'불신자의 비난의 유혹에 넘어지지 마십시오. 과거에 이방인의 뜻을 따라 살 때는 경쟁 적으로 방탕에 경쟁했습니다.그러나 구원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이상히 여길 것이 틀 림없습니다. 그리고 비난합니다. 견디다 못해 본래대로 원대 복귀하는 아쉬운 영혼들은 없습니까 본문 4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마치 전과자가 전과 동료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서 재범3범이 되는 것과 똑같습니다. 같이 범죄자를 구출하던지 단호히 연결 고리를 끊어 버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처지를 한번 봅시다. 바울 역시 이 연결 고리에 메여 있었다면 율법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빌립보서 3:14절 에 이렇게 간증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 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옆에서 유혹하는 소리에 귀를 막고 위에서 부르는 상급의 소리 복된 소리에만 귀기울이고 앞으로 좇아갔다는 것입니다.
3'마침내 악한 그 행동이 심판주 앞에 변명 없이 들어 납니다. 누가 소송을 하지 않더라도 악한 행동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본문 5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 낱낱이 숨김없이 행동이 드러난다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이 세상에 서 완전 범죄가 있어 잊혀 지지만 하나님의 밝은 빛 앞에 밝히 들어 날 때가 옵니다. 이야기하지 않아도 자기의 행동이 밝게 들어 납니다. 죽음의 길을 걸어온 사람은 멸망의 구렁텅이가 기다리고 있고 생명의 길로 걸어 온 사람은 비록 육체적으로 갖은 고난을 당하였다 하더라도 아버지 하나님,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는 거지 나사로 와 홍포입은 부자의 죽음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세상에 살 동안에는 부자와 거지 나 되었겠습니까그러나 엉뚱 한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이 세상의 삶이 그대로 죽음 이후에도 반 영되리라는 착각을 던져 버리십시오. 지금까지 육체의 남은 때를 이방인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의 모습과 구원 이후에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을 살펴보았 습니다. 이제 이들을 결말을 살펴보겠습니다. 결론 영의 사람이 되어 항상 하나님처럼 거룩하게 살아갑시다. 우선 본문 6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오해를 낳을 수 있는 구절이올시다.죽은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로 오해될 수 있고 육체와 영혼을 살아 있을 때 분리할 수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구절입니다. 결코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육체와 영혼을 분 리해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육체로는 사람처럼 살고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사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월요일부터 내내 묵상하였지만 풀어지지 않았습니다. 주석과 여러 설교 집을 보 아도 명쾌한 대답을 하는 참고서는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 류의 사람이 있다. 육체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인정만 받으면 끝나는 그런 사람이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인정하실 때 까지 거룩을 지키다가 마침내 영화로운 안식처를 기업으로 받는 두 종류의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육체에 관심 을 두는 육체의 사람입니까 아니면 영에 속한 하나님의 사람입니 까 혹시 영의 사람이 지만 영적 침체 빠져 여러분의 몸에서 하나님 의 사람의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백화점에서 고운 포장지에 물건을 싸 왔습니다. 그 포장지의 냄새를 맡아보면 무엇을 싸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비누를 싸 온 포장지에서는 향내가 나고 고기를 싸 온 포 장지에서는 썩은 냄새가 진동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에 속해 하나님처럼 산다면 여러분에 삶이 육체의 속한 사람과 똑 같이 밥먹고 같은 평수의 아파트에 살고 있더라도 풍기는 냄새가 다를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2:14절에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 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각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고난을 이기며 그리스도 냄새를 나타내는 영에 속한 사람의 본분을 다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려는 이유는 무엇 입니까 본문에서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1'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은 적으로부터 전신을 무장하는 갑옷이 됩니다. 본문 1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 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실 때 심정이 어떤 마음이 였을까요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던 잔을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도 있지 만 죄를 미워하고 인간 속에 죄가 퍼져서 인간의 고통을 덜어 주겠 다는 심령으로 예수님은 고난의 십자가 지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동일한 고통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그러나 고통을 당할 때에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을 품을 때에 그 고통,고난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방 어하는 무장이 된다는 말씀입니다.고난을 당하지 않고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고난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태도로 받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고난이 앞에 닥아 왔 을 때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기도할 때에 가능하면 이 잔을 내게서 멀리하소서 기도했을 뿐이 였습니다. 유대인 군중도 로 마 군병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어려운 일을 피해 보려고 핑계를 되지만 핑계는 자기를 매장하는 무덤을 팔뿐 아무 도움도 되 지 않습니다.고난을 당할 때에 예수그리스도와 같은 태도로 감당하 면 영광스로운 결과를 맞이할 수가 있습니다. 고난 그것이 오히려 사단의 방해를 막는 갑옷이 됩니다.지금 당하는 고난 때문에 원망하 면 더 큰 불행을 자초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와 같은 태도로 그 고난을 감당하면 고난이 쉽 습니다. 예수님은"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히브리서 2:14-15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1
5'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 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예수님의 고난은 마귀의 일을 막는 좋은 방패입니다. 요는 어떤 태 도로 고난을 감당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크든지 작든지 누구에게나 그에게 맞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 십자가를 감당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앞에 놓인 고난을 어떤 태도로 감당하시렵니 까 원망과 불평으로 고난을 바라보시겠습니까
2'죄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현재,미래,과거의 죄를 해결하셨다니까내가 능히 해결할 수 있고 보상이 가능한 죄까지 주님께 미루는 얌체들이 많습니다. 죄를 무서워하지도 않습니다.삭개오도 주님께서 죄 용서 해 주 셨을 때에도 자기의 과거 지은 죄-착취,횡령의 죄에 대해서는 보상 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인간 힘으로 보상할 수 없는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에 있을 죄를 용서 해주시겠다는 것이지 예수님께서 죄 문제를 해결했다니까 죄에 대해서 사구려 면죄부를 낭발하는 것 으로 착각하지 마십시오. 아무튼 나의 의로 죄를 원상 복귀를 시키 려고 애쓰고 애써도 원상 복귀가 안돼는 죄가 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군에 있을 때에 군종 병 하나가 매우 밉게 놀았습니다. 이상 하게 그만 보면 미운 마음이 생겨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속으로 "너만 예수 믿느냐 나도 장로 아들이다"알게 모르게 괴롭혔던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수소문 끝에 그는 목사가 되어 하와이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 그의 주소도 그의 전화번호도 모릅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눈물을 흘리며 뉘우쳤습니다. 그 뉘우침의 눈물이 하와이에서 목회 하는 목사님에게 무슨 보상이 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죄를 회개하면 깨끗하게 해주신다는 말입니다.본문에 "육체의 고난을 받으신 이가 죄를 그쳤음이니"라는 말씀은 예수가 죄 문제를 끝장냈다는 말입니다. 우리 사람은 죄 문제를 해 결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 홀로 그 문제를 해결하셨다는 말입니다.예수님의 고난은 우리의 죄 를 해결하시기 위한 고난입니다. 우리의 고난과 예수님의 고난의 차 이가 있다면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난이 이고 우리의 고난은 죄인이고 연약한 인간임을 깨닫기 위한 고난입니다. 때문에 시편 119:70절에 말씀하시기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 게 되었나이다" 고난을 통하여 주께로 나아가고 자기의 연약성을 발 견하게 되고 율법의 필요성을 알게 되기 때문에 유익한 것입니다. 로마서 6:6절 말씀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 이니" 예수그리스도가 죄 문제를 해결하심으로 우리가 죄의 종노릇하지 않 고 죄로부터 해방되었음을 믿습니까
3'이 후로는 사람의 정욕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 받기 전에는 사람의 정욕을 따라 살았습니다. 아니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고 죄인 것도 모르고 살아 왔습니다. 우리 몸에 구습을 따라 사는 것이 관습이 되었습니다. 본문 2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구원 그후는 무엇인가 달라 져 야 합니다.음란과 방탕과 술취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구원 전후가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머슴을 구원 하기 위하여 즉 술취함과 방탕 하는 머슴을 구하기 위하여 주인의 아들이 칼에 찔림을 받아 죽었다면 그 후로는 술은 보기도 싫을 것 입니다. 방탕한 생활 생각하기도 싫을 것입니다. 주인의 아들이 그 아들대신에 종을 양자 삼았다고 한다면 그 머슴은 술을 멀리하고 방 탕과 음란한 생각을 머리에서 생각하기도 싫을 것입니다.여러분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었다고 말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왜 나를 위해 죽으셨는지를 까맣게 잊고 살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3:13 절에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 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영생은 어쩌면 시간 속의 생명이 아닐 것입니다. 영원한 영원 속에 생명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이라 일컽는 현재의 시간을 성결하게 살려는 의지를 가지고 유한한 현재의 시간을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2.과거의 방탕한 생활은 과거의 지나간 일로 족합니다.
1'이방인의 뜻을 좇아 살던 과거는 과거로 덮어 주고 더 이상 들 추지 마십시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과거의 방탕하게 살았던 것을 들추었습니다. 나 도 너를 정죄치 않겠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과거를 문제 삼지 않습니다. 앞으로 남은 때를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본문 3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별로 어려운 말이 없습니다. 과거의 음란하고 방탕한 것 술취하고 방탕하고 연락한 것 회개합니다. 원상 복귀시키려고 애를 습니다. 원 상 복귀가 가능한 것도 있고 불가능한 것도 있습니다. 원상 복귀가 불가능하다고 걱정만 하지 마시고 주님께 맡기십시오. 그분은 기억 도 아니하시고 말끔히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마귀는 과거를 들춥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성령님의 역사는 회개하면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우상 숭배 앞에 무법한 자라는 말은 계명이 없는 자 우상을 말 합니다. 불신자는 우상을 섬기고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릅니다. 건 강, 출세, 재물, 자녀들을 예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왜 그렇습니다. 복음이라는 법이 없기 때문에 잘못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빌립보서 3:13절 말씀을 귀기울여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과거의 잘 못에 빠져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는 성도는 없습니까 앞으로 중요한 할 일이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2'불신자의 비난의 유혹에 넘어지지 마십시오. 과거에 이방인의 뜻을 따라 살 때는 경쟁 적으로 방탕에 경쟁했습니다.그러나 구원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이상히 여길 것이 틀 림없습니다. 그리고 비난합니다. 견디다 못해 본래대로 원대 복귀하는 아쉬운 영혼들은 없습니까 본문 4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마치 전과자가 전과 동료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서 재범3범이 되는 것과 똑같습니다. 같이 범죄자를 구출하던지 단호히 연결 고리를 끊어 버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처지를 한번 봅시다. 바울 역시 이 연결 고리에 메여 있었다면 율법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빌립보서 3:14절 에 이렇게 간증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 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옆에서 유혹하는 소리에 귀를 막고 위에서 부르는 상급의 소리 복된 소리에만 귀기울이고 앞으로 좇아갔다는 것입니다.
3'마침내 악한 그 행동이 심판주 앞에 변명 없이 들어 납니다. 누가 소송을 하지 않더라도 악한 행동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본문 5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 낱낱이 숨김없이 행동이 드러난다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이 세상에 서 완전 범죄가 있어 잊혀 지지만 하나님의 밝은 빛 앞에 밝히 들어 날 때가 옵니다. 이야기하지 않아도 자기의 행동이 밝게 들어 납니다. 죽음의 길을 걸어온 사람은 멸망의 구렁텅이가 기다리고 있고 생명의 길로 걸어 온 사람은 비록 육체적으로 갖은 고난을 당하였다 하더라도 아버지 하나님,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는 거지 나사로 와 홍포입은 부자의 죽음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세상에 살 동안에는 부자와 거지 나 되었겠습니까그러나 엉뚱 한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이 세상의 삶이 그대로 죽음 이후에도 반 영되리라는 착각을 던져 버리십시오. 지금까지 육체의 남은 때를 이방인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의 모습과 구원 이후에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을 살펴보았 습니다. 이제 이들을 결말을 살펴보겠습니다. 결론 영의 사람이 되어 항상 하나님처럼 거룩하게 살아갑시다. 우선 본문 6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오해를 낳을 수 있는 구절이올시다.죽은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로 오해될 수 있고 육체와 영혼을 살아 있을 때 분리할 수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 구절입니다. 결코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육체와 영혼을 분 리해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육체로는 사람처럼 살고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사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월요일부터 내내 묵상하였지만 풀어지지 않았습니다. 주석과 여러 설교 집을 보 아도 명쾌한 대답을 하는 참고서는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 류의 사람이 있다. 육체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인정만 받으면 끝나는 그런 사람이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인정하실 때 까지 거룩을 지키다가 마침내 영화로운 안식처를 기업으로 받는 두 종류의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육체에 관심 을 두는 육체의 사람입니까 아니면 영에 속한 하나님의 사람입니 까 혹시 영의 사람이 지만 영적 침체 빠져 여러분의 몸에서 하나님 의 사람의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백화점에서 고운 포장지에 물건을 싸 왔습니다. 그 포장지의 냄새를 맡아보면 무엇을 싸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비누를 싸 온 포장지에서는 향내가 나고 고기를 싸 온 포 장지에서는 썩은 냄새가 진동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에 속해 하나님처럼 산다면 여러분에 삶이 육체의 속한 사람과 똑 같이 밥먹고 같은 평수의 아파트에 살고 있더라도 풍기는 냄새가 다를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2:14절에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 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각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고난을 이기며 그리스도 냄새를 나타내는 영에 속한 사람의 본분을 다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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