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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하라 (벧전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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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개역 성경에는 없습니다. 원문에는 "그르므로"라는 접속사가 첨가되 어 있습니다. "그러므로"라는 말은 앞에 상황에 따른 권면의 이유를 앞 문장과 뒷 문장을 연결할 때 쓰이는 단어올시다. 지난주에 여호와 하나님의 심 판이 교회 곧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면 불순종하는 자의 최후의 비참함을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을 이야기했고 의인이 겨우 구원 을 얻는다고 한다면 경건치 못한 사람이야 최후의 심판 때에 모습은 생각하기도 끔찍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어서 곧 하나님 의 심판이 시작되기 때문에 상급을 얻기 위해 경건한 생활을 이어나가야 하겠는데 그 중에 교회 모두들에게 즉 지도자적인 입장에 있는 성도나 그 지도를 받는 입장에 있는 성도나 모두다 겸손을 덕을 세워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자고 베드로는 이 아침에 강조하고 있습니다.
1.권면하는 베드로의 자세부터가 겸손한 태도로 우리에게 말합니다. 베드로는 오늘 우리에게 권면하면서 자신의 신분을 다음 세 가지로 말하 고 있습니다. 먼저 본문 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 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겸손한 사람 사람은 먼저 자신의 신분을 밟힙니다. 1>자신도 여러분과 함께 동료 장로로서 한 마디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라는 말은 선배가 후배를 말하는 동기 장로다 그런 뜻이 아니고 동료 장로 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성령님의 충만을 입 기 전에는 다른 사도들과 차별성에 대해 신경을 썼습니다. 그래서 노중 에서 다툰 적이 여러 차례가 있었습니다.그러나 베드로는 지금 겸손히 나도 장로고 여러분도 교회의 지도자적인 입장의 사람이 아니냐고 동료 인 것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지금 수석 장로의 세력이 대단합니다. 베드 로는 우리의 대 선배 장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겸손하게 우리와 동역 자로서 권면하겠다고 자신을 밝히고 있습니다. 베드로도 성령님 을 충만이 받기 전에는 자신을 내세우기에 바빴습니다. 지금 교회도 마 찬 가지 입니다. 많은 일군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예수 이름 앞에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일군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베드로는 동료로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동료로서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도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의 일군은 서열이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심부름꾼이요 종일 따름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후서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 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여러분 바울 선배 베드로 선배가 동무라고 말하고 동료라고 말함에 부끄 럽지 않은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2>베드로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고난의 종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증인이라는 말은 목격자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정말 고통을 당하실 때는 베드로는 자기 생명의 위험을 느껴 도피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는 거리낌없이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 라고 담대하게 큰소리 치 고 있습니다. 고난의 증인이라는 말은 십자가의 사건에 대해서 목격자라는 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당하신 수모 전체를 가르켜 말합니다. 지금도 성령님이 여러분에게 충만히 임하시면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 됩니다. 주님 이 종을 당신의 고난의 종으로 삼아 주소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예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의지가 대단한 사람이겠거니 생각하지 마십 시오 우리와 성정이 꼭 같은 사람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성령님 충만한 사람이 였을 뿐입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성령님이 충만하다면 예수 그리스도 의 고난의 증인으로 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성령님은 이 일을 감당할 일군을 찾으십니다. 마태복음 16:24-25절에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 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25]누구든지 제 목 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 면 찾으리라" 자기 목숨을 부지하려고 바퉁 애쓰지 않고 예수의 새생명을 위하여 기꺼 이 자기 목숨을 버리면 찾는다고 성경은 약속하고 있습니다. 바로 현재 의 베드로의 각오를 읽을 수 있습니다. 3>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 할 자라고 확신에 찬 자신을 밝 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현재보다 장차 도래할 영광 족히 비교가 안돼는 소망 가운 데 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권면하고 계시는 베드로는 장차 참예 할 영광에 대한 소망이 넘치는 기쁨의 소리로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가졌던 이 소망 여러분도 가지고 있습니까 로마서 8:18절에 장차 우리의 소망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2.목자적 사명을 가진 교인은 즐거운 뜻으로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양무리를 치고 먹이고 보살피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제 목자적 사명을 가진 사람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반에서는 반사가 그 반에 목자적 사명을 가진 사람입니다. 성경 공부 조에서는 조장이 작 은 목자적 사명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받은 양무리가 작든지 크든지 그 것을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했는가 나태하고 물욕에 눈이 어 두워서 그 일을 하는가 권력 욕심 때문에 그 일을 하고 있는가 목자의 대장 되시는 예수께서 살피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즐거움을 감당할 수 있는가 본문 2절에서3절까지를 읽어보 겠습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 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3]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 즐거운 마음으로 목자적 사명을 감당하는 방법 세 가지를 말씀하고 하고 있습니다. 1>부득이함으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부득이 억지로라도 목자적 사명을 감당하면 안하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그러나 상급은 없습니다. 헌금도 마찬가지며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못해서 하지 마십시오 코에 끌 려가는 신앙이 되지 마십시오 주께서 내게 장차 영광을 허락하시기 위해 서 맡기 우신 것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린 도 전서 9:16절에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어차피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한다면 기쁨으로 감당하라는 말씀입니다. 2>자원하는 마음으로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요즘 자원 봉사자라는 말이 제법 널이 알려 져 있습니다만 자원 봉사라는 말이 본래 성경에서 나왔습니다. 물욕,명예욕,권력등 아무런 보상이 없습니다. 누가 시키고 명령하는 사람 없어도 감당하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속에 은혜를 생각하면 이제 남은 생애를 주를 위하여 어떻게 보답 할꼬하는 심령으로 사명을 감당할 때 기쁨이 있습니다. 교회의 일은 누 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마태 복음 10:8,10절 을 읽어보겠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 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우리가 목숨을 바쳐 주의 일을 한다고 할지라도 상급이 한없는 은혜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러라 고하신 말씀을 이루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을 얻기 위하여 땀을 흘리신 분 있습니까우리가 교회를 위해 힘쓰는 것은 거저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만 분의 일이라도 보답하는 것입니다. 그러 니 자원하는 마음으로 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그저 받았으니 그저 일하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의 일군 을 하나님이 보살핍니다. 3>양무리의 본이 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완벽한 본이 되지못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 나의 부족한 부 분의 본이 될 만한 본이 있습니다. 우리의 완벽한 본은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요한 복음13장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발을 씻겼습니다. 다 씻으시고 제자들에 겸손을 본을 보였으니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복음 13:15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좀 더딘 것같아도 본을 보이는 방법이 가장 확실한 행동의 변화를 일으 키게 하는 방법입니다.
3.이러한 모습으로 목자적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결과를 받 게 됩니까 1>목자장 되시는 우리 주님이 나타나실 때에 영광의 면류관을 얻게 됩니다. 담임 목사가 교회마다 있습니다. 그리고 부목사가 있습니다. 담임 목사와 부목사의 차이는 담임 목사는 별 유고 없으면 퇴임 때까지 그 교회를 담 임합니다. 부목사는 1년에 한 차례씩 신임을 받아서 시무 하는 한정직입니다. 담임 목사라고 해도 죽어서도 그 교회를 담임하지 못합니다. 어떤 면에서 담임 목사도 유한한 한정직임니다. 일개의 목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영원한 목자 장이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께서 즐거운 뜻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한 목자에게 상급을 주 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리하면 목자 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시들지 않는 면류관 항상 싱싱하고 썩지 않는 면류관을 약 속하셨습니다. 세상의 상은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곧 시들해집니다. 그러나 목자 장되시는 주님께서 준비하신 면류관은 영광의 면류관은 시 들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위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충성 봉사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4.젊은 자들에게 부탁합니다. 여기에 젊은이들이라고 하는 것은 상대적입니다. 요즘은 어느 분야고 꾸 지람이 없는 시대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순복이 사라진 시대입니다. 선배가 후배에게 사랑의 꾸지람이 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꾸지람할 것 이 없는 개선된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꾸지람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꾸중하는 사람이 꾸지람은 하면 순복하고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개선 하려고 하는 태도를 보일 때에 꾸지람을 주고받는 사람이 보람을 느낄 것인데 오해합니다. 저 사람이 나를 미워 꾸지람한다고 순복은 커녕 아 예 반발을 합니다. 우리 모두는 젊은이의 입장에서 이 말씀을 받읍시다.
본문 5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 시느니라"
1>순복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위정자의 주는 고통도 순복 함으로 고난의 역경을 극복할 것을 말씀하셨고 까다로운 주인의 고통도 오히려 순복함으로 승리 할 것을 말씀하셨고 불신 남편이나 불신 아내의 핍박을 순복함으로 역경을 견딜 것 을 일러주었는데 교회에서도 장로들에게 순복의 덕을 보일 것을 말씀하 고 있습니다. 신앙의 선배나 신앙의 지도자에 대하여 순복함으로 아름다 운 관계를 이루워 나갈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3:12절에는 이 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어두움을 벗자고 했는데 이 어두움의 일이 무엇입니까 어 두운 일은 불순종하는 일입니다. 빛의 갑옷은 무엇입니까 순종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나는 바른 길로 인도하는 신앙에 지도자의 말을 순복으로 받아 드립니 까 아니면 오해하고 곡해의 담을 쌓고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는 삶을 살 고는 있지 않습니까 2>겸손한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주십니다. 겸손은 순복의 복스러운 아들입니다. 에베소서 4: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겸손은 그리스도를 닮는 최고의 미덕입니다. 예수님도 나는 마음이 온유 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그러므로 장로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나 젊은이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 나 모두에게 권면하기를 겸손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가르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나 배우는 입장에 있는 사람 모두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 해야 합니다. 거듭 강조해도 지 날 칠 것은 없습니다. 본문 6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 시리라" 목자적입장에 놓인 사람이 겸손하게 묵묵히 솔선 수범할 때에 괴롭고 힘 들 때도 므構然가르침을 받고 있는 사람은 속 사정을 모르 고 너무 억울합니다. 그러나 겸손하면 때가 되면 주님께서 높이실 때가 옵니다. 한글 개역 성경에는" 너희를 ."이라고 복수인지 단수인지 예매 모호합니다만 원어에는 분명히 "너희 들을 높여 주시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남을 가르치기에 내가 없고 멸시를 당하고 꺼꾸림을 당하였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보처럼 순복만 하다 보니까 내 입장을 몰라준다고 생각 하니까 억울합니까 그러나 오늘 결론은 때가 되면 그런 자들을 높여 주 신다는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4:7절 말씀에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 교만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두다 예수 안에서 평등하 게 구원하여 주신 것뿐입니다. 나를 높여 영원히 마르지 않는 영과의 면 류관을 주신다면 그것조차도 은혜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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