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겸손 (벧전5:5-9)
본문
여호와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겸손과 교만)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시느니라 은혜를 베푼다 말은 중보자 예수님 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그 모든 완전한 것을 값없이 주신다 말입니다. 은혜 베푼다 말은 값을 안 받고 공짜로 우리에게 약속한 것을 다 준다는 말입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대적해 싸운다 말입니다. 그러면 겸손한 자는 어떤 자가 겸손한 자입니까 사람 앞에 굽신거리는 것이 겸손한 자입니까 아니오. 사람 좋도록만 하려고 인화주의로 날뛰는 것이 겸손입니까 아 니오. 겸손은 간단하게 말하면 주와 연결이 바로 되어 있는 그것이 겸손입니다. 주는 우리의 생명이시오. 닭이 그 머리와 몸이 붙어 있으면 생명이 있고 그 목이 끊 기면 생명이 없습니다. 인간이나 피조물은 창조주와 자기가 가진 연결을 바로 가지 면 그것이 산 것이고, 연결만 바로 가지면 하나님의 충만을 그에게 공짜로 다 줄 수 있습니다. 교만한 자는 대적하신다 말은, 하나님과 끊겨진 자는 하나님이 절단 나든지 제가 절 단이 나든지 기어코라도 시비하고 투쟁해 가지고 약자가 절단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보다 강한 자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마치 머리와 몸이 목이 끊기면 이미 있는 힘 가지고 그 닭이 힘이 없을 때까지는 뛰는 것처럼, 인간이 하나님과 연결을 가짐으로 인하여서 움직이지 않고 저 혼자 혹은 , 어떤 민족으로, 국가로, 과학으로 움직이던, 어쨌건 인생이 원형인 하나님과 연결 을 끊고 무엇하고 움직여도 움직인 것은 머리 끊긴 닭과 같습니다. 날뛰어봐야 잠깐 있으면 뻐드러지요. 그걸 말하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는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 주신다 이것 하나만 배워도 오늘 주일날 충분합니다. 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허리 동인다 말은 허리를 동이면 힘이 세지고 튼튼해지는 것을 가르칩니다. 네가 무 슨 과학을 준비함으로, 세상 지식을 준비함으로, 너를 인정하는 사람들의 그 인성을 만듦으로 너를 튼튼케 하려는 그런 썩은 방법 버려라. 겸손으로 허리 동이라 하나님과 너와의 연결되는 그것만이 너를 든든케 하지 딴 것은 너를 든든케 하는 것이 없다. 목이 끊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결 없이 무신론자들이 아무리 주장하고 세상 과학자들이 떠들어도 저 가 머리 끊긴 몸뚱이처럼 훌훌 뛰니까 힘있게 뛰고, 있는 대로 힘을 다 내서 뛴다만 좀 있으면 쭉 뻗어 죽겠구나 이것을 보는 눈이 성령님의 눈입니다. 하나님의 안약 사서 바른 자요. 안약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안약입니다. 말씀의 지식대로 견해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능하신 분이시니 그의 손 아래서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그에게 속 해 가지고 그와 연결된 네가 되도록 노력해라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네게 줘서 네가 복되게 가질 만하면 주는 것이야 돈이고 권세고 주는 것은 문제가 없다. 옥 중에 있는 죄수를 당장에 총리대신 만들었는데. 포로를 총총리를 만들었는데! 모 든 것을 당신이 전능으로 주권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줘서 복되게 활용될 수 있고 이용될 수만 있으면 주시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감당할 수 있는 실력 이 있나 없나 그 자격을 만드는 데에 시간이 걸려요.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오늘은 맡겨 버리는 데 대해서 간단하게 증거 하고 그치겠습니다. (염려의 종류) 너희 염려를 다 맡겨 버리라 염려는 잘되게 하려는 염려, 잘못되면 어쩔까하는 염려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잘되기를 원하는 염려, 잘못되면 큰일났다 하는 잘못된 그것을 피하 려는 염려, 이렇게 두 가지 면을 가집니다. 그러면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 리라 했으니까 우리가 어떤 것이 잘되고 못되기를 원하는 염려할 대상의 종류를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종류가 얼마나 됩니까 염려하는 종류를 간추려서 생각한다고 하면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잘못되면 안 되니까 그 염려가 제일 크겠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잘 봐 주셔야 되겠는데. 나를 기뻐하셔야 되겠는데. 내게 잘해 주셔야 되겠는데. 내가 하나님 앞에 잘못됨이 없어야 되겠는데.이렇게 자기 와 하나님의 관계 그 염려가 제일 큰 염려가 될 것입니다. 물론 이런 염려는 염려 중에도 제일 큰 염려인데 무신론자들은 하나도 가지지 않는 염려입니다. 그들은 인생이 가져야 될 제일 큰 염려를 하나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 그러면 그 결과가 무엇이 되겠습니까
첫째 하나님과 나와에 대한 그 염려점이 제일 큽니다.
둘째는 나와 가까운 사람 먼 사람, 친한 사람 원수, 모든 사람과 나와의 관계점이 둘재 염려가 되겠습니다.
셋째 염려는 자신에 대한 염려겠습니다. 자신이 자신 망치는 일이 세상에 가득 찼기 때문에 내가 내게 대해서 어떤 잘못을 저지를까, 기회를 놓칠까, 어떻게 하면 내가 내게 대해서 흠이 없이 할까 자기 자체에 대해서, 또 자기의 모든 소유에 대해서, 행동에 대해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대한 염려,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염려, 무궁세계 가서 살 염려, 그것이 영과 육의 염려가 되겠습니다. 자신 에 대한 염려가 세 번째쯤 되겠습니다. 그다음에는 모든 사건에 대한 염려겠습니다. 그 사건이 뭐 백도 될 수 있고 천도 될 수 있고 만도 될 수 있습니다. 수는 다 헤아리지 못하지만 사건에 대한 염려만 해도 별별 사건들이 있지요. 인인 사건, 무슨 물리 사건, 무슨 시비 사건, 뭐 국제사건 꽉 찼지 않겠습니까 또 모든 물질에 대한 염려, 내가 어떻게 뭣을 경영할까 경영에 대한 염려, 뭐 그런 염려들이 대충 우리의 염려입니다. 또 사람이 마음 하나 잘못 가지면 일생을 망치고 도 안 되고 몇 대를 망쳐야 되는 건데 염려 안 할 수가 있습니까 이 염려도 있겠습니다. 이렇게 염려들을 분류하고 분석한다면 염려의 종류가 심히 많습니다. (사람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음)
그런데, 이렇게 많은 종류의 염려를 가진 것이 우리들인데, 그 염려 중에 한 가지라 도 인간으로서 원만히 해결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거 알아야 됩니다. 인간들이 자기들에 대한 염려를 척척 해결해 나간다며 40, 50까지는 솜씨 있게 떠들 지만 나중에 가서 보면 전부가 다 저질러 놓은 것뿐이지 그 염려를 바로 해결 지우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요것을 볼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일사천리로 만사형통으로 나가면 염려되는 것을 자기 인간 힘으로 다 잘 해결 지운 것으로 알겠지만 실은 알고 보면 해결한 전부가 일을 오히려 다 절단 내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론에 인간이 해 아래서 수고한 것이 다 자기에게 유익 된 것 하 나도 없다 염려 그것을 해결 지우면 자기에게 유익 되게 해결되어야 되지 해되게 해결된 그까짓 거야 해결 되나마나이지 그게 해결입니까 또 모두가 다 심판거리나 마련하지 인간이 하나도 해결 못 하도록 하나님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 대해서는 지위 위치를 그렇게 정해 주셨습니다. 인간 염려는 하나님이 해결하고 모든 물질에 대한 것들은 인간들이 주권을 가지도록 그렇게 해 놓은 것입니다. 이런데도 이렇게 많은 염려를 모두 다 자기가 거머쥐고 자기가 해 보겠다고 하는 것 을 가리켜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네가 필요 없는 수고 필요 없는 짐을 졌다. 네가 책임 못 질 것을 책임지고, 암만 해 봤자 잘못 저지르 기만 저지렀지 하나도 좋게 하지는 못하는데 네가 그런 짓을 했다. 내게로 오라 인생의 중보자 예수님에게 와서 그와 연결이 되면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모든 것 을 은혜로 주시는데 너희들이 교만한 자들이라 하는 말입니다. (염려 해결해 주심을 받는 준비)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라 염려가 이렇게 많은데 주님이 하나도 남김 없이 다 맡기라. 다 내게 맡기라. 모든 염려에 대한 것을 내가 다 잘해 주겠다.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라고 하십니다. 권고라는 말은 책임진다는 말입니다. 뜻이 애매하게 되어 있지만 그렇게 애매 한 것 아니오. 권고하심이라 말은 너를 책임지신다 말입니다. 맡기면 책임지신다 말 입니다.
참고로, 성경 해석에서 원어 사용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나라 말은 더 미개국 말이라서 단어가 적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선진국 말을 우리 나라 말로 번역하려고 하면 단어의 종류가 없는 것들이 많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더구나 히브리어 헬라어는 옛날 말이기 때문에 그 한 마디 가운데에 수많은 말이 내포되어 있는데 헬라어를 알아야 뜻을 바로 안다는 것은 무식한 사람을 위협 주고 자기 어학 실력을 자랑하는 소리입니다. 원어 가지고 되는 것 아닙니다. 그런 주장에 눌리면 안 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저가 너를 책임지시느니라. 네가 믿음에 굳게 서서 대적해라. 너를 삼킬 자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는다. 네가 믿음으로 그것을 대적해라 네가 이런 일을 할 때에 예수 믿기 까다롭다 생각하나, 세상 일도 승리를 바라는 데 에 투쟁 없는 일이 없고, 투쟁이란 실력 다툼이기 때문에 연단 연성이 없을 수 없고 , 또 거기에는 모든 준비가 없을 수 없습니다. 잠깐 있다 없어질 이 세상 썩음에 속한 것도 성공을 하려고 하면 거기에 대한 상당 한 자본인 애로와 노고가 있는데, 영원을 마련하는데 네가 그것 없으리라고 생각하 느냐는 말입니다. 은혜로 주신다고 했지 않느냐!' 반문하겠지만 영원한 것은 그 가치가 너무 커서 우리들에게는 댓가가 없기 때문에 은혜로 준다는 것입니다. 실은 우리들은 받을 자 격도 없기 때문에 은혜로 주는 것을 받으려고 하면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뜻 다하고, 힘 다하고, 성품 다하고 네게 있는 것을 다해야 적어도 공짜로 줄 때 주는 것이라도 받을 수 있는 네가 된다. 네 자격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 보배로운 것을 우리에게 주실 때 우리가 지나가는 마음으로나 받고 우리 마음은 다른 데 욕망 다 가지고, 그까짓 거 예수님의 은혜는 그저 열흘에 한번, 하루 한번, 자기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나머지기 찌꺼기 가지고 한번 생각하는 정도일 때는 하나님이 주시지 않습니다. 네가 자격은 없어도 있는 걸 다 기울여 받으려고 할 때에 네 전부를 해도 자격의 댓 가에는 억만분의 일도 안 되는 그 큰 것을 너에게 공짜로 주시는데, 싸고 가치 없어 서 공으로 주는 것 아니다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께 받는 은혜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 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우리 전부를 다해야 됩니다.
또 말하기를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아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지 아니했습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주 를 따르라 하지 아니했습니까 자기보다, 자기 목숨보다, 자기 가정보다, 세상 무엇 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 된다고 하지 아니했습니까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말은 주님 명령 순종하는 데에 죽는 그 고통 죽음까지 각오하 고 거기까지 따라와야 된다 말입니다. 성경은 전부 총 이치가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디에 주님이 달리 준다 말이 어디 있습니까, 있기를! 어리석소. (맡김에 대해서) 이제 하나님이 이렇게 다 은혜로 주실 터인데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주님이 책임지신다. 하신 그 맡기는 것이 어떤 것인가 거기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 하고 그치겠습니다. 맡기는 것은 우선 자신을 맡기는 것이 있습니다. 내 자신에 대해 염려가 있습니다 . 자신에, 내 자체에 대해서 이것을 맡아서 좀 잘해 주십시오. 자체에 대해서 그 분에게 맡기는 것 있고, 내 자체는 맡길 수 없습니다. 내가 사건 하나 닥쳤으니까 이 사건만 좀 담당해 주십시오. 사건 위임도 있겠고, 이 사건도 다 맡기지 못 합니다. 다만 이 일에 대해서 내게 필요한 잠언이나 좀 주십시오. 필요 있는 그런 요긴한 그런 참고될 것을 좀 나에게 알려 주십시오.하는 경우도 있겠습니다. 자체를 맡기는 경우, 자체는 못 맡기지만 자기가 하는 사업을 맡기는 것도 있겠고, 또 사업을 다 못 맡기고 예를 들면 집뜯는 것 하나만 맡기는 것이 있겠습니다. 집 뜯는 이것만 맡으십시오. 파괴만 맡기는 것도 있겠고, 또 건설만 맡기는 것도 있 겠고, 며칠 동안만 맡기는 것도 있겠고, 영원히 맡기는 것도 있겠고 이렇게 맡기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
병원에 가서 환자들을 보니까 그것은 자기 육체에 대한 어떤 종목의 병 치료를 맡기는 사람도 있고, 또 자기의 전신을 맡기는 사람도 있어요, 전신. 모르니까 종합 친찰 해 가지고 어쨌든지 내 건강을 책임져 주십시오.하는 것입니다. 책임질 수가 없지만 책임질 줄 알고 맡기면 그다음에 그 사람 할 일이 뭐입니까 의 사가 굶으라면 굶어야 될 것이고, 먹으라면 먹어야 될 것이고, 뛰라면 뛰어야 될 것 이고, 가만히 누워 자라면 자야 될 것이고, 많이 먹으라면 많이 먹어야 될 것이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 하다가도 아무래도 옆에 사람이 말하기를 네가 이 의사한테 맡겼다가는 네 신세는 간다. 네 몸은 절단난다. 봐라, 현재 지금 병이 악화되어 나가고 있지 않느 냐 그럴 때에 네 말을 들으니까 과연 그렇다. 의사한테 `이제껏 내가 맡겼지 만 내가 지금부터 못 맡기겠습니다. 맡긴 그 계약을 다시 해약하겠습니다. 이거는 안 맡기겠습니다. 다 해약하는 수 있고, 옆에 사람이 암만 말해도 네 말 안 듣는다. 나는 맡겼는데 맡겼으니까 좀 몸이 나 빠져도 맡긴다. 이 등신아. 몸이 더 악화돼도 맡긴다, 숨 끊어지는 시간까 지 맡긴다.' 이렇게 맡기는 정도가 각각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맡길 데가 하나도 없습니다. 맡기는 법이 그렇다 그거요. (주님에게 맡긴 자의 할 일) 그러나 주님은 완전자시요, 없는 가운데 우리를 지은 분이시요, 십자가 대속의 공로 를 베푸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에게 우리를 맡겼으면, 그분에게 맡겨 놓은 것은 그분 만 자유해야 합니다. 내 자체를 맡겼으면 내 자체에 대해서 아무도 자유하지 못해야 됩니다. 내 자체에 대해서는 맡은 그분만 이렇게 저렇게 할 권리를 가졌습니다. 또 내가 어떤 사건에 대해서 맡겼으면 거기 대해서는 그분이 주권하고 그분이 하라는 대로 하고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이러면 안 되겠는데요 하면 `아 무 말 말고 맡겼으면 견뎌 봐라.' 아무래도 염려가 돼서 안 되겠습니다. 이거 아 무래도 못 맡기겠습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해약되는 것입니다. 이와 꼭 같은 것이 오. 주님에게 맡긴다는 것은 어떤 종류에 대해서 자신이 간섭을 안 하고 책임을 안 지고 주권을 가지지 않아야 맡긴 것이 됩니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와서 많이 말할 때 아무래도 좀 염려스러운데 하면 그 맡긴 것이 전적 맡긴 것 아닙니다. 옆에 사람들이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니까 그 말 듣 고 그래 염려가 되네. 맡겨서는 안 되겠다. 하고 거기 대해서 그분의 처행을 따 르지 아니하고 거부하는 것은 그때부터 맡긴 것은 해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맡기는 것은, 자기의 무엇이든지 맡겼으면 맡긴 거기 대해서는 주님에게 주권을 드려 주님이 주장하는 그 주장이 제재를 받으면 다 맡긴 것 못 됩니다. 반대 를 하면 그 맡긴 것은 도로 다 찾은 것입니다. 만일 맡길 때 한정을 해서 어느 정도까지 맡기지 않고 다 맡겨 버렸는데 결과는 맡 긴 것이 바싹 뿌숴져서 없어지고 절단나 버렸다면 어떻게 될까요 절단났으면 절단 난 그것은 맡은 그분이 책임져야 될 것입니다. 맡기는 것도 시간이 있고 정도가 있습니다. 맡겼다면 참고 기다려야 되는데 기다리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인간 보기에는 완전히 뿌서지고 다 없어지는 정도까지 맡기 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절단나는 거기까지 당신에게 맡겨 인간 보기에는 완전히 절단났는데 그분이 책임지고 완전케 해 내는 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맡긴 데 대해서는 그분이 주권하고 자기가 간섭 안 해야 됩니다. 또 맡긴 데 대해서는 천인 만인이 와 가지고 틀렸다고 이래도 흔들려서는 안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 의 말을 듣고 내가 맡긴 그분 말과 비교해서 중론을 크게 여긴다면 맡긴 것을 도로 찾게 되겠습니다. 그러나 천하 인간이 다 틀렸다 해도 천하 인간보다 그분을 더 인 정하고 크다 생각하면 맡긴 그것을 요동시키지를 못할 것입니다. 또 자기가 사건을 맡겼다면 그 사건에 대해서 너는 이렇게 대답해라. 이래라. 저 래라. 할 때에 내가 꼭 해야 될 부분이 있고 양이 있는데, 그걸 나한테 시킬 때에 내가 응하지 아니하고 순종치 아니하면, 그 일을 아무리 맡겨도 그분이 일 못 합니다. 주여 주여 하면서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니까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 말씀 을 했습니다. (주님에게 맡기는 정도) 그러기에 이 세상은 우리에게 닥친 모든 현실과 생활이 맡겼느냐 안 맡겼느냐 하는 요 시비를 판정하고, 어느 정도 맡겼느냐 하는 그 도수와 강약을 시험하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분에게 다 맡기되 인간이 다 달라 들어서 맡긴 것을 의심하도록 해도 의심하지 않고 맡긴 것이 요동치 아니하는 것, 마귀와 인간들의 유혹에 맡긴 것이 요동치 않는 것, 그것을 삼키기 위해서 세상이 요동합니다. 여기 우는 사자와 같 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말했습니다. 인간에게 충격 받아 맡긴 것이 요동할 수 있으나 그것을 이길 신앙이 필요합니다. 충격 주는 모든 인간의 수많은 미혹이 달라 듭니다. 맡기지 말라고, 도로 찾으라고 , 요것만큼은 요래 해야 된다 이렇게 맡기지 말라고 해도 그 말을 듣지 않고 주 님에게 맡겨서 주님이 하라 하신 대로 또박또박, 불로 들어가라그래도 들어갑니다. 불에 들어가라 할 때 불에 들어가면 타 죽는 건데, 야, 이 등신아. 불에 들 어가면 타 죽는데 불에 들어가느냐 불에 들어가 타 죽어 재가 되어도 잘해 주 시는 능력이 있다.
이럴 때 불을 초월한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이래서, 우리의 세상살이는 당신을 알고 맡기는지 어느 정도 아는지 어느 정도 인 정을 하는지 그 권능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지 그 지혜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지 그 약속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지 그 신실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지 그 사랑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지 요 맡긴 요것에 대해서 환경과 주위의 이 모든 것이 바꾸어질 때마다, 맡기나 도 로 찾나 이래도 맡기나 또 이래도 맡기나 이래도 맡기나 맡기면 맡기지 못할 만한 그 이유보다 그분을 크게 여기는 것이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맡긴 것이 의심나고 해약될 만한 그런 이유가 있어서 맡겼던 것을 중단하면 그 사람은 내가 맡긴 주님보다도 맡긴 것을 해약할 만한 인간들의 유혹이나 그 자체 를 크게 여기는 것이고 믿는 것입니다. 모든 사업이 악화된 것이나, 모든 건설이 악화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파괴를 맡겼는데 파괴시키기는커녕 도로 건설되네. 거기서, 맡기고 안 맡기는 데에서 주 님보다 어느 것을 믿으며 바라며 의지하며 크다 인정하느냐 하는 것이 나타납니다. 우리의 전 생애는 내가 모든 것을 맡기고 내가 바라보는 주님과 나와 사이에서 맡기 느냐는 문제입니다. 내 주관으로 보이고 접하고 들려지는 내 지식의 견해에 이제는 절단났다 성패에 대하여 내 지식에 모든 것을 부인하고 주님을 믿느냐 믿으면 맡기는 것이 믿는 증거, 맡기지 못하면 안 믿는 증거, 이래서, 우리의 일생 생애는 주님과 나와 모든 피조물 사이에서, 피조물과 주님과 중량을 달고 비중을 달아서 보다 어느 것이냐 보다 어느 것을 믿느냐 바 라보느냐 의지하느냐 이것으로 그의 사랑을 어느 정도, 그의 지능을 어느 정도, 그의 약속을 어느 정도로 바라보느냐는 것이 결정됩니다. 요것 결정지우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자기 혼자 있을 때는 맡겼지만 다른 사람이 와서 말할 때에는 맡긴 것이 변동됩니다. 또 나와 인간들이 뭐라고 해도 그것으로는 변동 없지만 그 자체가 악화 될 때에는 변동됩니다. 그 자체가, 모든 여론들이, 형편과 사정의 그것이 잘못될 때는 변동될 수 있는 4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눈으로 보기에, 자기 모든 지식으로 볼 때는 이분에게 맡겨서 안 되겠다 이럴 때에 맡기는 그것이 맡기는 도수가 올 라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부인하고 맡기는 것, 일 부인하고 맡기는 것, 20세기 문화 부인하고 맡기는 것, 수천 년 역사 통계 부인하고 맡기는 것, 자기 지식 부인하는 것 이것을 당신이 찾습니다.
내 눈에는 완전히 파괴가 됐는데, 파괴가 됐지만 이 파괴된 것 보다도 그분의 사랑과 그분의 신실과 그분의 약속과 그분의 능력은 이런 것을 능히 구출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그분에 대해서 맡긴 것 변동 없다! 이것을 당신이 찾습니다. 자, 보자. 요 정도에서는. 그래도 맡기는구나. 그래. 또 요 면 맡기느냐 안 맡기느냐 어느 면을 맡기느냐 맡긴 그 범위를, 그 정도를, 그 장단을. 맡기면 당신이 뭐 시간 걸리는 것이 아닙니다. 맡기면 다 됐어요. 맡기면 그가 옳고 참되게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게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당신이 하는 것은 시 간 걸리지 아니해요. 문제가 없어요. 그분이 엿새 동안에 전 인류를 지었는데 그 솜 씨에 맡기면 문제가 없어요. 그러나 맡기느냐 안 맡기느냐!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말은 보자, 네가 맡기느냐 안 맡기느 냐 맡겼으면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자기가 도로 찾지 않지. 맡기는 것은 그 맡긴 그것에 대해서 그분 마음대로 하고 그분 주권대로 하고 그분이 혼자 하는 대 로 하지 간섭하지 않는 것이 맡기는 것입니다. 맡기다가도 그래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고 가다가 인간 생각대로, 과학대로, 제 주관대로 할 때는 하나님에게 맡긴 것은 그때 해약이 되고 무엇이든지 그자가 책임 져야 됩니다. 이러니까, 주님에게 또 요 면으로 내가 맡기나 안 맡기나 여기에서도 맡긴 것이 변동되나 안 되나 요거 시험하는 것이로구나. 주여! 의심 없이 맡깁니다. 내 모든 자체 완전도, 내가 인류에 대해서 가까운 사람 먼 사람 원수 거기 대해서도, 내가 주님에게 다 맡깁니다. 가족에 대해서도 맡깁니다.이렇게 나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맡깁니까 당신이 잘해 줄 것을 내가 믿고 맡기기 때문에 내가 할 것은 당신이 이래라 저래라 할 때, 예를 들면 야, 네가 지금 치료하려고 하니까 이 약을 먹어라. 그러면 써도 마십니다. 이 원수에게 대해 어째야 됩니까' ` 네가 나한테 맡기지 안았느냐 맡겼으니까 너는 거기 대해 이래저래 생각지 말아라. 다만 거기에 대해서 내가 이래라 저래라 나 시키는 대로만 할 것뿐이지 네가 책임 지지 말아라. 아이구 이라면 그 사람하고 나하고 원수가 십 배나 더 될 건데 내가 맡았어! 나 시키는 대로만 해!' 또 자체에 대해서, 인류에 대해서, 만유의 대주재이신 하나님에게 대해서 어떻게 되 어지나 그것도 나한테 맡겨라!
그렇습니까 거기에 대해서 그러면 당신 시키는 대로 하면 됩니까' `된다. 그래만 해라. 이렇게 당신이 모든 염려를 다 맡겨 주기를 원하시고, 맡기고 도로 찾지 않는, 맡긴 거기에 대해서 내가 간섭하지 않고 주장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분 마음대로 주장대로 하도록 하고, 다만 거기에 대해서 내가 할 것은 주님이 시 킨 그대로만 할 일이지 나 보기에 잘되어 간다 못되어 간다 해서는 안됩니다. 잘되 어 간다 해도 그 과정이 수만 가지이기 때문에 망했다가 잘됐다가 이렇게 변동이 되 니까 내 눈에 잘되어 간다고 거기에 만족하면 뒤에 가서 안되면 또 미혹 받을 것입니다. 잘되어 간다고 하더라도 잘되어 가는 것 아닙니다. 어쨌든지 종말로 그분이 완전을 이루어 줄 것이기 때문에 내게 보이는 것, 들리는 것, 현재 형편 되어 가는 것 그런 것 하나도 거기에 대해서 이러니까 되는가 보다해서는 안됩니다. 그분만을 믿 으므로 그분이 해 줄 것을 확정해 놓아야 합니다. '이렇게 되는 것 보니다 되어 갑니다.' '다 되어 간다고 다 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바짝 뿌셔져서 안 될 것 같아도 그분은 할 수 있어!' 다 되어 가는 것만 보고 하나님께 맡긴 것이 잘되어 가는가보 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다 되어 가는 것도 상관없고 다 깨져가는 것도 상관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을 능가하 시는 그분이 맡았기 때문에 그분이 최종으로 잘해 줄 것을 자기가 확실히 인정하고 맡기는 것을 변동 안 하면 그분이 책임집니다. (우리 현실은 맡김에 대한 현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모든 세상살이는 그분에게 맡기라고 권고하는 현실이요, 또 맡 겼느냐 시험하는 현실이요, 맡긴 것을 도로 찾으라는 현실입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모든 것들이 맡긴 것을 도로 찾으라고, 믿고 맡길 수 없다고 도로 찾으라고 발동을 합니다. 내 속에도 그놈이 발동하고 내 밖에도 발동할 때에 나는 맡긴 이것을 되 찾지 않고 그분에게 전적 맡겨 놓는 것, 이것만 하나 지켜 행하면 그분이 쉽게 빨리 다 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닥치는 현실은, 요것은 나를 맡기라 하는 것이다. 내가 맡기지 않고 공연히 들고 이래서 헛수고했구나. 요 현실은 맡기라는 현실이로구나. 또 요 현실은 네가 그전에 맡겼는데 정말로 맡겼나 안 맡겼나 나를 시험하는 현실이다. 요 현실은 맡긴 것을 도로 되찾으라고 피조물들이 이렇게 유혹 주는 현실이다. 또 맡긴 것이 나 보기에 바싹 뿌tu져 버려서 희망이 없어졌는데, 그것도 그것보다 주님을 더 인정하고 그분의 신실과 사랑을 인정하고 맡기느냐 그것을 능가한 맡김 이냐' 이런 것을 확정짓는 현실입니다. 요것은 나를 맡긴 것을 부인케 하려는 현실을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이 시험하시는 구나. 요것은 그 자체에 대해서 이래도 맡기느냐 하는 것이로구나. 요것은 맡겼으니 네가 시키는 대로 요거 해라 조거 해라 하시는 것이로구나.이렇게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맡김에 관계되는 현실에서 우리는 맡김에 대한 해약이냐 계약에 의심 없이 다시 날인을 하는 결성이냐 요것을 결정 지우는 현실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절대자 그분과 나와의 관계, 바로 여기에서 모든 것이 영원히 다 결정되는 데 거기에는 상관도 없이 피조물 저거끼리 뭉쳐서 많이 뭉치면 뭐할 것인가! 크면 뭐할 것인가! 너무도 외식이요 허무한 것입니다. 주님 오시면 이런 것은 다 불타지 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오늘이라는 시기가 지나기 전에 빨리 모든 것을 다 맡기고, 맡긴 그 정도가 어느 정 도인지! 어느 정도, 맡김을 도로 찾고 안 찾고 하는 거기에서 그분을 내가 알고 모르는, 인 정하는 그 도수 바로 그게 그겁니다. 이러니까 자기보다 피조물보다 주님을 크다 참되다 인정하는 거기에서만 모든 것을 영원에 결성지우려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나는 정말로 맡기는지… 믿는다는 이름만 가졌지 실상은 그렇지 않은지 살펴봅시다. 그분은 거짓말장이요, 그분은 신실치 못하고, 그분은 능력 없고, 그분은 허무하니 여기에 대해서는 내가 해야 되겠다, 어떤 사람 시키는 대로 해야 되겠다. 이런 우리가 되어있는지 않습 니까! 이래서 하나님께 하나도 맡기지 않고 자기가 하는 자, 어떤 인간에게 맡기는 자, 하나님께 맡기지만 맡겼다는 것이 조금만 무슨 일이 있으면 맡길 수 없습니다 도로 찾는 자. 우리가 어떤 자신이 되어 있는가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우리 인격도 결정, 당신과 우리와 관계에도 결정, 모든 사물과 관계 도 다 결정되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는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 주신다 이것 하나만 배워도 오늘 주일날 충분합니다. 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허리 동인다 말은 허리를 동이면 힘이 세지고 튼튼해지는 것을 가르칩니다. 네가 무 슨 과학을 준비함으로, 세상 지식을 준비함으로, 너를 인정하는 사람들의 그 인성을 만듦으로 너를 튼튼케 하려는 그런 썩은 방법 버려라. 겸손으로 허리 동이라 하나님과 너와의 연결되는 그것만이 너를 든든케 하지 딴 것은 너를 든든케 하는 것이 없다. 목이 끊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결 없이 무신론자들이 아무리 주장하고 세상 과학자들이 떠들어도 저 가 머리 끊긴 몸뚱이처럼 훌훌 뛰니까 힘있게 뛰고, 있는 대로 힘을 다 내서 뛴다만 좀 있으면 쭉 뻗어 죽겠구나 이것을 보는 눈이 성령님의 눈입니다. 하나님의 안약 사서 바른 자요. 안약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안약입니다. 말씀의 지식대로 견해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능하신 분이시니 그의 손 아래서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그에게 속 해 가지고 그와 연결된 네가 되도록 노력해라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네게 줘서 네가 복되게 가질 만하면 주는 것이야 돈이고 권세고 주는 것은 문제가 없다. 옥 중에 있는 죄수를 당장에 총리대신 만들었는데. 포로를 총총리를 만들었는데! 모 든 것을 당신이 전능으로 주권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줘서 복되게 활용될 수 있고 이용될 수만 있으면 주시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감당할 수 있는 실력 이 있나 없나 그 자격을 만드는 데에 시간이 걸려요.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오늘은 맡겨 버리는 데 대해서 간단하게 증거 하고 그치겠습니다. (염려의 종류) 너희 염려를 다 맡겨 버리라 염려는 잘되게 하려는 염려, 잘못되면 어쩔까하는 염려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잘되기를 원하는 염려, 잘못되면 큰일났다 하는 잘못된 그것을 피하 려는 염려, 이렇게 두 가지 면을 가집니다. 그러면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 리라 했으니까 우리가 어떤 것이 잘되고 못되기를 원하는 염려할 대상의 종류를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염려하는 종류가 얼마나 됩니까 염려하는 종류를 간추려서 생각한다고 하면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잘못되면 안 되니까 그 염려가 제일 크겠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잘 봐 주셔야 되겠는데. 나를 기뻐하셔야 되겠는데. 내게 잘해 주셔야 되겠는데. 내가 하나님 앞에 잘못됨이 없어야 되겠는데.이렇게 자기 와 하나님의 관계 그 염려가 제일 큰 염려가 될 것입니다. 물론 이런 염려는 염려 중에도 제일 큰 염려인데 무신론자들은 하나도 가지지 않는 염려입니다. 그들은 인생이 가져야 될 제일 큰 염려를 하나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 그러면 그 결과가 무엇이 되겠습니까
첫째 하나님과 나와에 대한 그 염려점이 제일 큽니다.
둘째는 나와 가까운 사람 먼 사람, 친한 사람 원수, 모든 사람과 나와의 관계점이 둘재 염려가 되겠습니다.
셋째 염려는 자신에 대한 염려겠습니다. 자신이 자신 망치는 일이 세상에 가득 찼기 때문에 내가 내게 대해서 어떤 잘못을 저지를까, 기회를 놓칠까, 어떻게 하면 내가 내게 대해서 흠이 없이 할까 자기 자체에 대해서, 또 자기의 모든 소유에 대해서, 행동에 대해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대한 염려,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염려, 무궁세계 가서 살 염려, 그것이 영과 육의 염려가 되겠습니다. 자신 에 대한 염려가 세 번째쯤 되겠습니다. 그다음에는 모든 사건에 대한 염려겠습니다. 그 사건이 뭐 백도 될 수 있고 천도 될 수 있고 만도 될 수 있습니다. 수는 다 헤아리지 못하지만 사건에 대한 염려만 해도 별별 사건들이 있지요. 인인 사건, 무슨 물리 사건, 무슨 시비 사건, 뭐 국제사건 꽉 찼지 않겠습니까 또 모든 물질에 대한 염려, 내가 어떻게 뭣을 경영할까 경영에 대한 염려, 뭐 그런 염려들이 대충 우리의 염려입니다. 또 사람이 마음 하나 잘못 가지면 일생을 망치고 도 안 되고 몇 대를 망쳐야 되는 건데 염려 안 할 수가 있습니까 이 염려도 있겠습니다. 이렇게 염려들을 분류하고 분석한다면 염려의 종류가 심히 많습니다. (사람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음)
그런데, 이렇게 많은 종류의 염려를 가진 것이 우리들인데, 그 염려 중에 한 가지라 도 인간으로서 원만히 해결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거 알아야 됩니다. 인간들이 자기들에 대한 염려를 척척 해결해 나간다며 40, 50까지는 솜씨 있게 떠들 지만 나중에 가서 보면 전부가 다 저질러 놓은 것뿐이지 그 염려를 바로 해결 지우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요것을 볼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일사천리로 만사형통으로 나가면 염려되는 것을 자기 인간 힘으로 다 잘 해결 지운 것으로 알겠지만 실은 알고 보면 해결한 전부가 일을 오히려 다 절단 내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론에 인간이 해 아래서 수고한 것이 다 자기에게 유익 된 것 하 나도 없다 염려 그것을 해결 지우면 자기에게 유익 되게 해결되어야 되지 해되게 해결된 그까짓 거야 해결 되나마나이지 그게 해결입니까 또 모두가 다 심판거리나 마련하지 인간이 하나도 해결 못 하도록 하나님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 대해서는 지위 위치를 그렇게 정해 주셨습니다. 인간 염려는 하나님이 해결하고 모든 물질에 대한 것들은 인간들이 주권을 가지도록 그렇게 해 놓은 것입니다. 이런데도 이렇게 많은 염려를 모두 다 자기가 거머쥐고 자기가 해 보겠다고 하는 것 을 가리켜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네가 필요 없는 수고 필요 없는 짐을 졌다. 네가 책임 못 질 것을 책임지고, 암만 해 봤자 잘못 저지르 기만 저지렀지 하나도 좋게 하지는 못하는데 네가 그런 짓을 했다. 내게로 오라 인생의 중보자 예수님에게 와서 그와 연결이 되면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모든 것 을 은혜로 주시는데 너희들이 교만한 자들이라 하는 말입니다. (염려 해결해 주심을 받는 준비)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라 염려가 이렇게 많은데 주님이 하나도 남김 없이 다 맡기라. 다 내게 맡기라. 모든 염려에 대한 것을 내가 다 잘해 주겠다.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라고 하십니다. 권고라는 말은 책임진다는 말입니다. 뜻이 애매하게 되어 있지만 그렇게 애매 한 것 아니오. 권고하심이라 말은 너를 책임지신다 말입니다. 맡기면 책임지신다 말 입니다.
참고로, 성경 해석에서 원어 사용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나라 말은 더 미개국 말이라서 단어가 적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선진국 말을 우리 나라 말로 번역하려고 하면 단어의 종류가 없는 것들이 많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더구나 히브리어 헬라어는 옛날 말이기 때문에 그 한 마디 가운데에 수많은 말이 내포되어 있는데 헬라어를 알아야 뜻을 바로 안다는 것은 무식한 사람을 위협 주고 자기 어학 실력을 자랑하는 소리입니다. 원어 가지고 되는 것 아닙니다. 그런 주장에 눌리면 안 됩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저가 너를 책임지시느니라. 네가 믿음에 굳게 서서 대적해라. 너를 삼킬 자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는다. 네가 믿음으로 그것을 대적해라 네가 이런 일을 할 때에 예수 믿기 까다롭다 생각하나, 세상 일도 승리를 바라는 데 에 투쟁 없는 일이 없고, 투쟁이란 실력 다툼이기 때문에 연단 연성이 없을 수 없고 , 또 거기에는 모든 준비가 없을 수 없습니다. 잠깐 있다 없어질 이 세상 썩음에 속한 것도 성공을 하려고 하면 거기에 대한 상당 한 자본인 애로와 노고가 있는데, 영원을 마련하는데 네가 그것 없으리라고 생각하 느냐는 말입니다. 은혜로 주신다고 했지 않느냐!' 반문하겠지만 영원한 것은 그 가치가 너무 커서 우리들에게는 댓가가 없기 때문에 은혜로 준다는 것입니다. 실은 우리들은 받을 자 격도 없기 때문에 은혜로 주는 것을 받으려고 하면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뜻 다하고, 힘 다하고, 성품 다하고 네게 있는 것을 다해야 적어도 공짜로 줄 때 주는 것이라도 받을 수 있는 네가 된다. 네 자격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 보배로운 것을 우리에게 주실 때 우리가 지나가는 마음으로나 받고 우리 마음은 다른 데 욕망 다 가지고, 그까짓 거 예수님의 은혜는 그저 열흘에 한번, 하루 한번, 자기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나머지기 찌꺼기 가지고 한번 생각하는 정도일 때는 하나님이 주시지 않습니다. 네가 자격은 없어도 있는 걸 다 기울여 받으려고 할 때에 네 전부를 해도 자격의 댓 가에는 억만분의 일도 안 되는 그 큰 것을 너에게 공짜로 주시는데, 싸고 가치 없어 서 공으로 주는 것 아니다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께 받는 은혜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 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우리 전부를 다해야 됩니다.
또 말하기를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아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지 아니했습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주 를 따르라 하지 아니했습니까 자기보다, 자기 목숨보다, 자기 가정보다, 세상 무엇 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 된다고 하지 아니했습니까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말은 주님 명령 순종하는 데에 죽는 그 고통 죽음까지 각오하 고 거기까지 따라와야 된다 말입니다. 성경은 전부 총 이치가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디에 주님이 달리 준다 말이 어디 있습니까, 있기를! 어리석소. (맡김에 대해서) 이제 하나님이 이렇게 다 은혜로 주실 터인데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주님이 책임지신다. 하신 그 맡기는 것이 어떤 것인가 거기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 하고 그치겠습니다. 맡기는 것은 우선 자신을 맡기는 것이 있습니다. 내 자신에 대해 염려가 있습니다 . 자신에, 내 자체에 대해서 이것을 맡아서 좀 잘해 주십시오. 자체에 대해서 그 분에게 맡기는 것 있고, 내 자체는 맡길 수 없습니다. 내가 사건 하나 닥쳤으니까 이 사건만 좀 담당해 주십시오. 사건 위임도 있겠고, 이 사건도 다 맡기지 못 합니다. 다만 이 일에 대해서 내게 필요한 잠언이나 좀 주십시오. 필요 있는 그런 요긴한 그런 참고될 것을 좀 나에게 알려 주십시오.하는 경우도 있겠습니다. 자체를 맡기는 경우, 자체는 못 맡기지만 자기가 하는 사업을 맡기는 것도 있겠고, 또 사업을 다 못 맡기고 예를 들면 집뜯는 것 하나만 맡기는 것이 있겠습니다. 집 뜯는 이것만 맡으십시오. 파괴만 맡기는 것도 있겠고, 또 건설만 맡기는 것도 있 겠고, 며칠 동안만 맡기는 것도 있겠고, 영원히 맡기는 것도 있겠고 이렇게 맡기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
병원에 가서 환자들을 보니까 그것은 자기 육체에 대한 어떤 종목의 병 치료를 맡기는 사람도 있고, 또 자기의 전신을 맡기는 사람도 있어요, 전신. 모르니까 종합 친찰 해 가지고 어쨌든지 내 건강을 책임져 주십시오.하는 것입니다. 책임질 수가 없지만 책임질 줄 알고 맡기면 그다음에 그 사람 할 일이 뭐입니까 의 사가 굶으라면 굶어야 될 것이고, 먹으라면 먹어야 될 것이고, 뛰라면 뛰어야 될 것 이고, 가만히 누워 자라면 자야 될 것이고, 많이 먹으라면 많이 먹어야 될 것이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 하다가도 아무래도 옆에 사람이 말하기를 네가 이 의사한테 맡겼다가는 네 신세는 간다. 네 몸은 절단난다. 봐라, 현재 지금 병이 악화되어 나가고 있지 않느 냐 그럴 때에 네 말을 들으니까 과연 그렇다. 의사한테 `이제껏 내가 맡겼지 만 내가 지금부터 못 맡기겠습니다. 맡긴 그 계약을 다시 해약하겠습니다. 이거는 안 맡기겠습니다. 다 해약하는 수 있고, 옆에 사람이 암만 말해도 네 말 안 듣는다. 나는 맡겼는데 맡겼으니까 좀 몸이 나 빠져도 맡긴다. 이 등신아. 몸이 더 악화돼도 맡긴다, 숨 끊어지는 시간까 지 맡긴다.' 이렇게 맡기는 정도가 각각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맡길 데가 하나도 없습니다. 맡기는 법이 그렇다 그거요. (주님에게 맡긴 자의 할 일) 그러나 주님은 완전자시요, 없는 가운데 우리를 지은 분이시요, 십자가 대속의 공로 를 베푸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에게 우리를 맡겼으면, 그분에게 맡겨 놓은 것은 그분 만 자유해야 합니다. 내 자체를 맡겼으면 내 자체에 대해서 아무도 자유하지 못해야 됩니다. 내 자체에 대해서는 맡은 그분만 이렇게 저렇게 할 권리를 가졌습니다. 또 내가 어떤 사건에 대해서 맡겼으면 거기 대해서는 그분이 주권하고 그분이 하라는 대로 하고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이러면 안 되겠는데요 하면 `아 무 말 말고 맡겼으면 견뎌 봐라.' 아무래도 염려가 돼서 안 되겠습니다. 이거 아 무래도 못 맡기겠습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해약되는 것입니다. 이와 꼭 같은 것이 오. 주님에게 맡긴다는 것은 어떤 종류에 대해서 자신이 간섭을 안 하고 책임을 안 지고 주권을 가지지 않아야 맡긴 것이 됩니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와서 많이 말할 때 아무래도 좀 염려스러운데 하면 그 맡긴 것이 전적 맡긴 것 아닙니다. 옆에 사람들이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니까 그 말 듣 고 그래 염려가 되네. 맡겨서는 안 되겠다. 하고 거기 대해서 그분의 처행을 따 르지 아니하고 거부하는 것은 그때부터 맡긴 것은 해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맡기는 것은, 자기의 무엇이든지 맡겼으면 맡긴 거기 대해서는 주님에게 주권을 드려 주님이 주장하는 그 주장이 제재를 받으면 다 맡긴 것 못 됩니다. 반대 를 하면 그 맡긴 것은 도로 다 찾은 것입니다. 만일 맡길 때 한정을 해서 어느 정도까지 맡기지 않고 다 맡겨 버렸는데 결과는 맡 긴 것이 바싹 뿌숴져서 없어지고 절단나 버렸다면 어떻게 될까요 절단났으면 절단 난 그것은 맡은 그분이 책임져야 될 것입니다. 맡기는 것도 시간이 있고 정도가 있습니다. 맡겼다면 참고 기다려야 되는데 기다리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인간 보기에는 완전히 뿌서지고 다 없어지는 정도까지 맡기 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절단나는 거기까지 당신에게 맡겨 인간 보기에는 완전히 절단났는데 그분이 책임지고 완전케 해 내는 것이 십자가의 도입니다. 맡긴 데 대해서는 그분이 주권하고 자기가 간섭 안 해야 됩니다. 또 맡긴 데 대해서는 천인 만인이 와 가지고 틀렸다고 이래도 흔들려서는 안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 의 말을 듣고 내가 맡긴 그분 말과 비교해서 중론을 크게 여긴다면 맡긴 것을 도로 찾게 되겠습니다. 그러나 천하 인간이 다 틀렸다 해도 천하 인간보다 그분을 더 인 정하고 크다 생각하면 맡긴 그것을 요동시키지를 못할 것입니다. 또 자기가 사건을 맡겼다면 그 사건에 대해서 너는 이렇게 대답해라. 이래라. 저 래라. 할 때에 내가 꼭 해야 될 부분이 있고 양이 있는데, 그걸 나한테 시킬 때에 내가 응하지 아니하고 순종치 아니하면, 그 일을 아무리 맡겨도 그분이 일 못 합니다. 주여 주여 하면서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니까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 말씀 을 했습니다. (주님에게 맡기는 정도) 그러기에 이 세상은 우리에게 닥친 모든 현실과 생활이 맡겼느냐 안 맡겼느냐 하는 요 시비를 판정하고, 어느 정도 맡겼느냐 하는 그 도수와 강약을 시험하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분에게 다 맡기되 인간이 다 달라 들어서 맡긴 것을 의심하도록 해도 의심하지 않고 맡긴 것이 요동치 아니하는 것, 마귀와 인간들의 유혹에 맡긴 것이 요동치 않는 것, 그것을 삼키기 위해서 세상이 요동합니다. 여기 우는 사자와 같 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말했습니다. 인간에게 충격 받아 맡긴 것이 요동할 수 있으나 그것을 이길 신앙이 필요합니다. 충격 주는 모든 인간의 수많은 미혹이 달라 듭니다. 맡기지 말라고, 도로 찾으라고 , 요것만큼은 요래 해야 된다 이렇게 맡기지 말라고 해도 그 말을 듣지 않고 주 님에게 맡겨서 주님이 하라 하신 대로 또박또박, 불로 들어가라그래도 들어갑니다. 불에 들어가라 할 때 불에 들어가면 타 죽는 건데, 야, 이 등신아. 불에 들 어가면 타 죽는데 불에 들어가느냐 불에 들어가 타 죽어 재가 되어도 잘해 주 시는 능력이 있다.
이럴 때 불을 초월한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이래서, 우리의 세상살이는 당신을 알고 맡기는지 어느 정도 아는지 어느 정도 인 정을 하는지 그 권능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지 그 지혜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지 그 약속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지 그 신실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지 그 사랑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지 요 맡긴 요것에 대해서 환경과 주위의 이 모든 것이 바꾸어질 때마다, 맡기나 도 로 찾나 이래도 맡기나 또 이래도 맡기나 이래도 맡기나 맡기면 맡기지 못할 만한 그 이유보다 그분을 크게 여기는 것이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맡긴 것이 의심나고 해약될 만한 그런 이유가 있어서 맡겼던 것을 중단하면 그 사람은 내가 맡긴 주님보다도 맡긴 것을 해약할 만한 인간들의 유혹이나 그 자체 를 크게 여기는 것이고 믿는 것입니다. 모든 사업이 악화된 것이나, 모든 건설이 악화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파괴를 맡겼는데 파괴시키기는커녕 도로 건설되네. 거기서, 맡기고 안 맡기는 데에서 주 님보다 어느 것을 믿으며 바라며 의지하며 크다 인정하느냐 하는 것이 나타납니다. 우리의 전 생애는 내가 모든 것을 맡기고 내가 바라보는 주님과 나와 사이에서 맡기 느냐는 문제입니다. 내 주관으로 보이고 접하고 들려지는 내 지식의 견해에 이제는 절단났다 성패에 대하여 내 지식에 모든 것을 부인하고 주님을 믿느냐 믿으면 맡기는 것이 믿는 증거, 맡기지 못하면 안 믿는 증거, 이래서, 우리의 일생 생애는 주님과 나와 모든 피조물 사이에서, 피조물과 주님과 중량을 달고 비중을 달아서 보다 어느 것이냐 보다 어느 것을 믿느냐 바 라보느냐 의지하느냐 이것으로 그의 사랑을 어느 정도, 그의 지능을 어느 정도, 그의 약속을 어느 정도로 바라보느냐는 것이 결정됩니다. 요것 결정지우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자기 혼자 있을 때는 맡겼지만 다른 사람이 와서 말할 때에는 맡긴 것이 변동됩니다. 또 나와 인간들이 뭐라고 해도 그것으로는 변동 없지만 그 자체가 악화 될 때에는 변동됩니다. 그 자체가, 모든 여론들이, 형편과 사정의 그것이 잘못될 때는 변동될 수 있는 4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눈으로 보기에, 자기 모든 지식으로 볼 때는 이분에게 맡겨서 안 되겠다 이럴 때에 맡기는 그것이 맡기는 도수가 올 라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부인하고 맡기는 것, 일 부인하고 맡기는 것, 20세기 문화 부인하고 맡기는 것, 수천 년 역사 통계 부인하고 맡기는 것, 자기 지식 부인하는 것 이것을 당신이 찾습니다.
내 눈에는 완전히 파괴가 됐는데, 파괴가 됐지만 이 파괴된 것 보다도 그분의 사랑과 그분의 신실과 그분의 약속과 그분의 능력은 이런 것을 능히 구출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그분에 대해서 맡긴 것 변동 없다! 이것을 당신이 찾습니다. 자, 보자. 요 정도에서는. 그래도 맡기는구나. 그래. 또 요 면 맡기느냐 안 맡기느냐 어느 면을 맡기느냐 맡긴 그 범위를, 그 정도를, 그 장단을. 맡기면 당신이 뭐 시간 걸리는 것이 아닙니다. 맡기면 다 됐어요. 맡기면 그가 옳고 참되게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게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당신이 하는 것은 시 간 걸리지 아니해요. 문제가 없어요. 그분이 엿새 동안에 전 인류를 지었는데 그 솜 씨에 맡기면 문제가 없어요. 그러나 맡기느냐 안 맡기느냐!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말은 보자, 네가 맡기느냐 안 맡기느 냐 맡겼으면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자기가 도로 찾지 않지. 맡기는 것은 그 맡긴 그것에 대해서 그분 마음대로 하고 그분 주권대로 하고 그분이 혼자 하는 대 로 하지 간섭하지 않는 것이 맡기는 것입니다. 맡기다가도 그래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고 가다가 인간 생각대로, 과학대로, 제 주관대로 할 때는 하나님에게 맡긴 것은 그때 해약이 되고 무엇이든지 그자가 책임 져야 됩니다. 이러니까, 주님에게 또 요 면으로 내가 맡기나 안 맡기나 여기에서도 맡긴 것이 변동되나 안 되나 요거 시험하는 것이로구나. 주여! 의심 없이 맡깁니다. 내 모든 자체 완전도, 내가 인류에 대해서 가까운 사람 먼 사람 원수 거기 대해서도, 내가 주님에게 다 맡깁니다. 가족에 대해서도 맡깁니다.이렇게 나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맡깁니까 당신이 잘해 줄 것을 내가 믿고 맡기기 때문에 내가 할 것은 당신이 이래라 저래라 할 때, 예를 들면 야, 네가 지금 치료하려고 하니까 이 약을 먹어라. 그러면 써도 마십니다. 이 원수에게 대해 어째야 됩니까' ` 네가 나한테 맡기지 안았느냐 맡겼으니까 너는 거기 대해 이래저래 생각지 말아라. 다만 거기에 대해서 내가 이래라 저래라 나 시키는 대로만 할 것뿐이지 네가 책임 지지 말아라. 아이구 이라면 그 사람하고 나하고 원수가 십 배나 더 될 건데 내가 맡았어! 나 시키는 대로만 해!' 또 자체에 대해서, 인류에 대해서, 만유의 대주재이신 하나님에게 대해서 어떻게 되 어지나 그것도 나한테 맡겨라!
그렇습니까 거기에 대해서 그러면 당신 시키는 대로 하면 됩니까' `된다. 그래만 해라. 이렇게 당신이 모든 염려를 다 맡겨 주기를 원하시고, 맡기고 도로 찾지 않는, 맡긴 거기에 대해서 내가 간섭하지 않고 주장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분 마음대로 주장대로 하도록 하고, 다만 거기에 대해서 내가 할 것은 주님이 시 킨 그대로만 할 일이지 나 보기에 잘되어 간다 못되어 간다 해서는 안됩니다. 잘되 어 간다 해도 그 과정이 수만 가지이기 때문에 망했다가 잘됐다가 이렇게 변동이 되 니까 내 눈에 잘되어 간다고 거기에 만족하면 뒤에 가서 안되면 또 미혹 받을 것입니다. 잘되어 간다고 하더라도 잘되어 가는 것 아닙니다. 어쨌든지 종말로 그분이 완전을 이루어 줄 것이기 때문에 내게 보이는 것, 들리는 것, 현재 형편 되어 가는 것 그런 것 하나도 거기에 대해서 이러니까 되는가 보다해서는 안됩니다. 그분만을 믿 으므로 그분이 해 줄 것을 확정해 놓아야 합니다. '이렇게 되는 것 보니다 되어 갑니다.' '다 되어 간다고 다 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바짝 뿌셔져서 안 될 것 같아도 그분은 할 수 있어!' 다 되어 가는 것만 보고 하나님께 맡긴 것이 잘되어 가는가보 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다 되어 가는 것도 상관없고 다 깨져가는 것도 상관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을 능가하 시는 그분이 맡았기 때문에 그분이 최종으로 잘해 줄 것을 자기가 확실히 인정하고 맡기는 것을 변동 안 하면 그분이 책임집니다. (우리 현실은 맡김에 대한 현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모든 세상살이는 그분에게 맡기라고 권고하는 현실이요, 또 맡 겼느냐 시험하는 현실이요, 맡긴 것을 도로 찾으라는 현실입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모든 것들이 맡긴 것을 도로 찾으라고, 믿고 맡길 수 없다고 도로 찾으라고 발동을 합니다. 내 속에도 그놈이 발동하고 내 밖에도 발동할 때에 나는 맡긴 이것을 되 찾지 않고 그분에게 전적 맡겨 놓는 것, 이것만 하나 지켜 행하면 그분이 쉽게 빨리 다 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닥치는 현실은, 요것은 나를 맡기라 하는 것이다. 내가 맡기지 않고 공연히 들고 이래서 헛수고했구나. 요 현실은 맡기라는 현실이로구나. 또 요 현실은 네가 그전에 맡겼는데 정말로 맡겼나 안 맡겼나 나를 시험하는 현실이다. 요 현실은 맡긴 것을 도로 되찾으라고 피조물들이 이렇게 유혹 주는 현실이다. 또 맡긴 것이 나 보기에 바싹 뿌tu져 버려서 희망이 없어졌는데, 그것도 그것보다 주님을 더 인정하고 그분의 신실과 사랑을 인정하고 맡기느냐 그것을 능가한 맡김 이냐' 이런 것을 확정짓는 현실입니다. 요것은 나를 맡긴 것을 부인케 하려는 현실을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이 시험하시는 구나. 요것은 그 자체에 대해서 이래도 맡기느냐 하는 것이로구나. 요것은 맡겼으니 네가 시키는 대로 요거 해라 조거 해라 하시는 것이로구나.이렇게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맡김에 관계되는 현실에서 우리는 맡김에 대한 해약이냐 계약에 의심 없이 다시 날인을 하는 결성이냐 요것을 결정 지우는 현실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절대자 그분과 나와의 관계, 바로 여기에서 모든 것이 영원히 다 결정되는 데 거기에는 상관도 없이 피조물 저거끼리 뭉쳐서 많이 뭉치면 뭐할 것인가! 크면 뭐할 것인가! 너무도 외식이요 허무한 것입니다. 주님 오시면 이런 것은 다 불타지 고 없어지는 것입니다. 오늘이라는 시기가 지나기 전에 빨리 모든 것을 다 맡기고, 맡긴 그 정도가 어느 정 도인지! 어느 정도, 맡김을 도로 찾고 안 찾고 하는 거기에서 그분을 내가 알고 모르는, 인 정하는 그 도수 바로 그게 그겁니다. 이러니까 자기보다 피조물보다 주님을 크다 참되다 인정하는 거기에서만 모든 것을 영원에 결성지우려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나는 정말로 맡기는지… 믿는다는 이름만 가졌지 실상은 그렇지 않은지 살펴봅시다. 그분은 거짓말장이요, 그분은 신실치 못하고, 그분은 능력 없고, 그분은 허무하니 여기에 대해서는 내가 해야 되겠다, 어떤 사람 시키는 대로 해야 되겠다. 이런 우리가 되어있는지 않습 니까! 이래서 하나님께 하나도 맡기지 않고 자기가 하는 자, 어떤 인간에게 맡기는 자, 하나님께 맡기지만 맡겼다는 것이 조금만 무슨 일이 있으면 맡길 수 없습니다 도로 찾는 자. 우리가 어떤 자신이 되어 있는가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우리 인격도 결정, 당신과 우리와 관계에도 결정, 모든 사물과 관계 도 다 결정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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