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천사의 시중과 마귀의 시험 (창9:8-17,벧전3:18-22,막1:9-15)

본문

옛날, 충청도 어느 작은 시골의 현감에게는, 자식이라곤 딸 하나뿐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무남독녀 외동딸이었습니다. 지금은 외딸을 둔 사람들이 많지만, 그 당시는 참으로 드문 일 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딸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귀여웠을까 요 저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 딸은 얼굴도 굉장히 예쁘고 심성도 착해서, 현감 내외는 딸을 더욱 사랑스 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이 딸에게는 못된 버릇이 하나 있었습니다. 손버릇 이 나빴던 것입니다. 어디를 가던지 마음에 드는 물건만 있으 면, 자기 것으로 삼았습니다. 물론, 주인 허락도 없이 자기 품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주인에게 발각이 될 때마다, 현감 내외는 말할 수 없는 곤혹을 치러야만 했습니다. 현감이라는 신분과 체면이 구겨지는 것도 견디어내기 힘든 고통이었지만, 하필이면 자신의 예쁘고 사랑스러운 딸에게 그 못된 버릇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별 수단을 다해서 그 버릇을 고쳐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또다시 그런 일이 생기자, 현감은 딸의 종 아리를 회초리로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세게 때린 나머지, 딸의 종아리에는 흉터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현 감은 가슴이 아팠습니다. 비록 딸의 버릇을 고치고자 한 노릇 이지만, 흉터가 생기도록 사정없이 때린, 자신의 처사가 너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현감은 딸과 약속했습니다. 다시는 매를 들지 않겠노라 고 말입니다. 하지만, 딸의 그 손버릇은 여전했습니다. 그러나, 딸과 약속을 했으니, 더 이상 매를 들 수는 없었 습니다. 딸의 그 도벽은, 점점 그 규모가 커지고 횟수가 많아졌습니다. 도저히,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현감은 고민하고 또 고민하던 나머지, 사랑하는 딸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오른 손을 도끼로 절단했습니다. 더 이상 다 른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딸과의 약속도 약속이려니와, 사랑하는 딸에게 매를 댈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차 라리 자신의 손을 자르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후에도, 딸의 그 버릇은 좀처럼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손버릇 때문에 잘라버린 아버지의 오른 손목 을 볼 때마다, 딸은 마음속으로 '다시는 그런 짓을 않겠노라!' 다짐을 거듭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인지는 몰라 도, 딸의 손버릇은 드디어 사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오늘의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도록 이야기로 꾸며본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 있을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백성들이 바르게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노아 시대 사람들은 정말 엉망진창으로 살았습니다.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은 엄청난 죄 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의 여덟 식구들만 남겨두고, 세상을 홍수로 쓸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냥 내버려둘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큰 죄를 지어서, 그들을 멸망시키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몹시 괴롭고 아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남은 사람들과 약속을 했습니다. 다시는, 사람들을 물로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그 약속의 표시로, 무지개를 걸어두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죄를 짓고 살았습니다. 날이 갈수 록, 사람들이 짓는 죄의 모양은 다양해지고, 더욱 사악해졌 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백성들을 타국으로 귀양보내어 종살이를 시켰습니다. 그 고통이 심하자, 백성들은 살려달라고 호소했 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고국으로 데려 왔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 은혜에 보답하기는커녕, 또다 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제멋대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시금 타국의 지배를 받아 살도록, 백성들을 징 계하셨습니다. 그 고통 또한,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 지만 백성들은, 하나님만 원망할 뿐이지, 자신들의 지은 죄를 깨달을 줄 몰랐습니다. 할 수 없이, 하나님은 마지막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당신 이 직접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오셨던 예수님은,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사람들에게 가 르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말씀으로 가르쳐주고, 또한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주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사람들에게 외 쳤습니다. 그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은, '예수만 믿으면 된다' 고 하는 것을 분명히 가르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들은 예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 지은 죄 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 오라'고 간절히 말했지만, 사람들 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기껏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병 고침 받는 일과 기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셔야만 했습니다. 백성들 이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지은 죗값으로 백성들은 멸망할 위기에 처해 있으니, 예수께서는 그 백성들을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백성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기로 하셨던 것입니다. 조금 전의 이야기에서, 현감이 딸의 손버릇을 고치기 위해 자기 손을 잘랐던 것처럼, 예수님은 백성들의 죄를 벗겨내기 위하여, 당신 자신이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베드로 선생은, 그의 편지에서 예수님은 죄를 지은 일이 없지만, 우리 죄 때문에 죽으셨다(벧전3:18)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심으로써,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 다(벧전3:18)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이러한 은혜로 말미암아, 주 앞에 나아와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하늘의 신령한 양식을 공급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은 과거의 죄를 보나, 지금 우리 속에 있는 죄성(罪性)을 생각하면, 우리는 도무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부끄러운 죄인들입니다. 우리는, 이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순간에, 또 죄를 지을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주의 말씀을 거역하고 내 맘대로 행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다른 사람이 지은 죄를 비판하며 흉볼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 깊은 곳에 있는 죄까지도 다 알면서도, 그 죄를 드러내고 벌주려 하기보 다는, 그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건만, 우리는 어줍잖게도 심판자의 위치에 언제나 서 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와 같이,
1.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헛되게 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의 죄를 드러내거나 심판하려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허물이나 잘못을, 자 신이 대신 짊어지는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먼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예수를 믿음으로써, 그 죄를 용서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타인의 죄에 대해서는, 그 죄를 심판하거나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 죄까지 도 내 잘못이요 허물인 양, 그 죄를 놓고 주께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우리의 태도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1무지개와 십자가를 보면서도,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지개나 십자가는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나타내주는 상징입니다. 인간의 죄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죄를 심판하시기보다는, 그 죄에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십자가와 무지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와 무지개를 볼 때마다 부끄러워 해야 합니다. 자기 죄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노력은 엄청나건만, 우리는 죄에 대해서 너무나 태만하다는 사실을, 무지개와 십자가를 볼 때마다 깨 달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십자가를 바라보면서도, 아니 십자가를 언제나 목에 매달고 다니면서도, 우리는
2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거나, 그 사랑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우리 곁에는, 항상 두 존재가 가까이 있습니다. 하나는 천 사요, 다른 하나는 마귀 사탄입니다. 천사는, 우리가 주의 뜻 대로 살려고 할 때에, 우리를 시중들어 준다고 했습니다. 한 편 마귀 사탄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로 하여금 죄에 빠 지도록 유혹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천사의 음성을 열심히 듣기보다는, 사탄의 소리에 귀를 더 잘 기울일 때가 많 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합니다. 주님의 마음에 드는 생활을 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비위 맞추 기에 급급하고 있습니다.
3그러니, 더욱 깊은 죄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광야와도 같습니다. 우리에게 유익을 주고 도 움을 주는 것들보다는, 우리를 괴롭히고 해롭게 하는 존재가 더 많은 듯 싶습니다. 그런고로, 세상 탓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거친 세상을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주님을 더욱 의 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의 바다에 깊이 빠져 죽어가게 될 것입니다. 죄가 되는 줄도 모르고 죄를 짓 고 살다가, 죄 중에서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릅니다. 정신 바 짝 차리고, 자신이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혹시, 지금 사탄의 시험에 빠져 죄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닙 니까 멸망이 코앞에 닥쳤건만, 태평세월 콧노래만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어느 날 무지개를 보게 되거든,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늘 바라보 게 되는 십자가를 보면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어 가 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오늘 우리에게서 헛되지 않기를 기도하십시오. 지난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기간입니다. 누구 때문에,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셨는지 그리고, 그 십자가의 의미는 무엇인지 오늘,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신 예수님을 바라보 면서, 우리 인생을 바르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헛되지 않도 록,
2.주님 앞에서 바르고 깨끗하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어저께, 조선일보〈작은 이야기〉에는, 서울대병원 안에 있는 움막에 살면서, 병원 시간급 직원으로 일했던 오치관 씨에 대한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이 분은, 지난 해 연말, 노환으로 사망했습니다. 14후퇴 때, 홀홀 단신 월남했던 그는, 블록을 세워 만든 가건물에서 혼자 20년을 기거했다고 합니다. 오씨는 78년도에 정년 퇴직한 뒤, 의무기록실에서 시간급 직원으로 일했습니다. 월급은 80만원 정도. 혼자 움막에서 지 내는 오씨에겐 결코 적지 않은 돈이지만, 그가 돈 쓰는 것을 본 직원은 거의 없었습니다. 오씨는, 지난 연말, 자신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알고는, 의 무기록실 직원들을 불러 2천 9백여 만원이 든 통장을 내밀 었습니다. 그는 이와 함께, '그 동안 도움 받은 곳이 많았으 니, 대신 신세를 갚아달라'며, 액수가 적힌 쪽지를 건넸습니다. 쪽지에는 '서울의 어느 교회 3백만 원, 병원교회 1백만 원, 의대기숙사 1백만 원, 의무기록실 2백만 원, 사회사업실 50만원'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직원들은 오씨의 장례를 치른 뒤, 메모대로 돈을 처리했습니다. 그리고, 통장에 남은 2천여 만원은, 오씨가 말년에 만났 다는, 중국의 조카에게 보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오치관씨는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움막 에서 평생을 혼자 살았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 앞 에서 깨끗하게 살다가 간 사람입니다. 죽을 때에는, 도움 받 은 사람들과 교회들을 잊지 않고서, 그 신세를 갚고 있습니다. 그렇게 빛나는 인생을 산 것은 아니지만, 바르고 성실하 게 살다가 간 사람이라 여겨집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과연, 우리 인생 의 방향이 천국을 향하여 가고 있는지, 아니면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인생을 마감했을 때,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갈 수 있을는지 혹시, 죄만 남기고 가는 슬픈 인생이 되어, 주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삶의 방향이 잘못되었으면, 지금 바로 잡아야 합니다. 어떻 게 말입니까
1진심으로 회개하고 세례 받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바로 볼 수 있으면,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될 것 입니다. 나를위해 돌아가신 예수의 공로를, 어찌 외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제, 주님께 진심으로 돌아와서, 그 명령대 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대개, 물세례는 받 았을 것이니, 이제 받아야 할 것은 성령님 세례입니다. 세례는,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죄에서 깨끗해지기를 간구하고, 또한 그렇게 살겠다고 약속드리는 것(벧전3:21)이라고 했습니다.
2올바른 삶을 살려면,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죄의 길로 유혹하는, 세상 소리를 멀리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고 바로 살기 위해서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욕먹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천사가 우리를 시중들어 줄 것입니다. 주님 뜻대로 살겠노라고 다짐을 하면, 하늘의 신령한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할 수가 있습니다.
3올바른 삶을 살아서, 주님의 고난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 면, 주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세겜에 불러 모아놓고 말하기를, 하나님을 성실하게 바로 섬기면서 살 것인지, 아니면세상 신을 섬길 것인지, 선택하라(수24:14)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결정을 해야 합니다. 주님 마음에 드는 인생 을 살 것인지, 세상 사람의 마음에 들도록 살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합니다. 둘 다 잘 섬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 까 그러나, 그럴 수는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이루어 사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르고 깨끗하게 사는 길입니다. 아무쪼록,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헛되지 않도록,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 절히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719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