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모델,예수그리스도 (벧전3:18-22)
본문
디모데 후서 3:1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마지막 때가 고통스러운 것은 예수 믿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말입니다. 현실적으로 세상 사람들이 편하게 예수를 믿으려고 하지 예수 믿고 고난 이 계속된다든지 고난에서 제외되지 않고 계속된다면 누가 예수를 믿겠 습니까 고통에 뜻이 있다는 책에서 풍랑 이는 세상을 예수님과 함께 힘 들게 노를 저어 가고 있다 힘들면 예수를 깨워서 도움을 요청하라 예수님은 그 고통을 제거하여 주시든지 고난 중에서 감사와 찬송이 나올 능 력을 알맞게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라가 고통을 줍니다. 주인이 핍 박을 가해 옵니다. 심지어 남편까지도 압박을 가해 옵니다. 그럴지라도 순복하고 오히려 사랑으로 대하라는 것이 베드로 사도의 지금까지 요지 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고통이 있지요 괴로움이 있지요 이 목사가 해결 해 줄 수 없는 그런 고통을 다 간직하고 계실 줄 압니다. 베드로는 지난 주간 우리에게 예수 때문에 고난 당하면 애매하고 억울한 것 같아도 복 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에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따져 들 때 베드로는 가장 좋은 예로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을 예로 듭니다. 고난을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누구도 그렇단다 하는 말이 큰 위로가 됩니다. 그래서 18절 초두에 "그리스도께서도."라는 말로 위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우리 그리스도인이 고난이 똑같겠습니까 마는 애매히 고난을 당한다는 면에서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다시 한번 살펴봄으로 우리가 당한 고난에 어려운 짐 을 벗어지는 놀라운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1.예수님의 고난은 우리를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한 고난 였습니다. 본문 18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 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 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을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중요한 세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1>예수님의 고난은 한번에 당하신 고난이 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제사장이 일년에 양을 잡아 제사 드리는 것이 매년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는 영원히 유효하며 지금 도 유효하기에 오늘도 예수 공로 의지하여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장소 이 예배 드릴 장소를 마련하신 것입니다. 짐승은 날마다 드렸다는 것은 한정적으로 유효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피는 어제 오늘 내일까지도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해해서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심으로 모든 죄가 용서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를 한번 믿으면 죄로부터 완전히 무관하다고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를 용서 하셨다 함은 정확히 말해서 내가 그 죄에 대하여 어찌 할 수 없는 죄를 언제까지나 속죄하신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해결할 수 있는 죄는 언제나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면 언제든지 회개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죄의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는 것 같지만 무능력해서 죄를 완전 무결하게 해결할 수 없습니다. 원죄가 그렇고 자범죄 중에도 죄를 지을 때는 생각이 나지 않다가 나중에 깨닫게 됩니다.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 지만 죄책을 벗을 길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한꺼번에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십자가 지셨습니다. 히브리서 9:26-2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 되 이제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 나셨느니라[27]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 이 있으리니" 우리가 아무리 완벽하게 살았다고 할지라도 죽은 후에 우리의 잘못이 환 하게 들어 날것입니다. 그러면 나를 다시 살려 주십시오. 그 때 내가 잘 못한 것을 고치겠습니다 가 불가능합니다. 탁구나 정구는 다시 게임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사는 것은 다시 인생을 시작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단번에 제사를 드림으로 이 문제까지 다 해결하셨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속죄함을 받았는데 다른 사람의 실수를 단번에 지우지 못해서 앙금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예수님은 단번에 드린 제사로 우리의 죄를 대속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에 다른 사람이 지은 죄에 대해서는 또 생각나고 또 기억이 납니까 오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도 고난을 당하셨다고 우리의 고난에 위로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0:10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 라" 예수님의 단번에 드린 제사를 우리 생활 속에서 시인하며 살아갑시다.원 망스럽고 불평스러운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마음 속에 두고 몇 번인가를 셈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른 사람을 용서 해줄 때에 그 때 단번에 용서가 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예수님의 고난은 인생의 최고의 고난인 죽음을 통과하신 고난 이였 습니다. 인생은 뭐니뭐니 해도 최고의 두려움의 대상은 죽음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최대의 고난이요 위기 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인생 의 최고의 고난인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셔서 죽음에 메여 종노릇하는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습니다.높은 보좌에서 낮고 낮은 인생을 체험하시며 인생의 최고의 난관인 죽음의 관문을 넘어 우리에게 부활을 주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결코 인생의 교양이 아닙니다. 죽음 선택 하느냐 삶을 선택하느냐 하는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빌립보서 2:7-8절에 예수그리스도의 순종이 어디까지인가를 보여줍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우리의 고통이 아무리 극심해도 신자의 고통,고민,고난 을 호소 해 오지만 예수님은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느 주교가 목회 하기가 너무나 힘들어서 주교회의에 나가 선배 주교님께 사직서를 내밀었습니다. 그 때 선배 주교는 사직서를 내미는 목사님께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침을 얼굴에 뱉습디까아닙니다교인들이 옷을 빼앗고 뺨을 칩디까아닙니다아니면 교인들이 죽이려고 합니까" 사직을 내밀었던 목사님이 대답할 말을 잊은 채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 임지로 돌아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시련이라고 할지라 도 예수님의 곤욕과 죽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고 저주했다고 오해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겠습니까 고대 에피쿠루스 학파의 예피쿠르스는 하나님은 무능하시든지 아니면 매정하시든지 둘 중에 하나라고 공박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인간에게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그걸 막지 못하 신다면 하나님은 무능하신 하나님이고 알면서도 고난을 인생에게 닥치도 록 하셨다면 그 하나님은 몰인정하신 하나님이라고 공박했습니다. 사상 가의 논쟁에 휘둘려 가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생물학자가 고치에서 가날픈 나방이 나오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 보이고 애처러워서 가위로 고 치를 뚫어 주었습니다. 쉽게 나방은 고치를 벗어 날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방은 날지도 못하고 몇 번 퍼덕되더니 결국은 영광스럽게 날아 보지도 못한 채 죽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고난에는 반드시 하나님은 중 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우둔해서 그 메시지를 쉬게 읽지 못합니다. 3>예수님의 고난은 대신 당하신 고난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은혜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하나님의 언약은 행위 언약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 하는 율법의 일점일획의 에누리도 없이 우리 주님께서 대신 그 크신 고난을 당하시므로 말미암아 얻어낸 행위 언약으로 얻어낸 속죄의 언약을 저와 여러분에게 은혜로 그 저 주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 하기 위하여 대신 채찍에 맞으시고 고난을 당하신 것을 믿습니까 이사야 53:3-6절까지를 읽어보겠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 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6)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 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 도다[4]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 노라[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 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 다" 여러분의 죄악,그리고 저의 허물을 그에게, 곧 예수께 담당시켜셨도다는 것입니다. 억울해서 분을 참지 못할 일이 있는 성도 있습니까 예수님의 억울과 한번 비교 해보십시오.자랑스럽고 칭찬 받을 만한 일은 남 대신 잘합니다.그러나 억울 한일은 한치도 여유가 없습니다. 나는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이 억울합니까하나님께 기도 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짐을 가 볍게 해주시든지 기쁨과 감사로 감당하실 능력을 주시든지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 구체적인 양태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어 서 예수님의 고난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2.예수님의 고난은 구원과 심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고난이 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베드로를 만나 보기 전에는 어려운 문제를 남겨 놓는 어려 운 난해한 절을 만났습니다. 어려운 문제가 되는 성경을 만나면 억지로 그 뜻을 알려고 하면 멸망합니다. 성경에 어려운 구절도 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성숙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베드로 후서 3:1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 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 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우선 문제의 본문 19-2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20]그들은 전에 노 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 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우선 다른 성경과 맞지 않는 것이 발견되는데 예수님이 3일간 죽음에 머 물고 있을 때 지옥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도했다는 것인데 전도란 이 땅에 있을 때 가능하고 죽은 후에는 영혼이 천국이든지 지옥이 결정되면 다시 이곳에서 저곳으로 갈 수 없고 저곳에서도 이곳으로 올 수도 없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인데 지옥에 가셔서 예수님께서 전도하셨다니 납 득이 않가는 말씀입니다.신학자들이 본문을 해석한 것이 150종류가 있다 고 하는데 속 시원한 해석해 주는 자가없고 빠져 나오려고 하면 또다른 오류에 말려들기 마련입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습니다. 천국에 가면 베드로 사도에게 직접 물어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에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시기 위한 고난 이였다는 것입니다. 1>하나는 선택한 사람을 예수 안에서 구원하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과 사람이 사람의 잘못으로 틀어졌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중보가 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 로 인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지금 예배를 드립니다. 구약 때 같으면 짐 승을 복잡한 절차 가운데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겠지요 그러나 지금 우리는 단 예수그리스도의 피공로를 의지하고서 이곳에서 하나님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놀라운 구원의 증표를 저와 여러분이 마음에 가지고 를 드립니다. 로마서 8:1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 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우리는 육신이 언제 가는 죽는 것을 확실한 사실로 받아 드립니다. 또한 육신은 썩어지지만 우리 안에 예수 영이 있어서 반드시 다시 살 것을 믿 습니다. 오늘도 부활의 능력이 연약한 내게도 이루워 질 것을 믿습니다. 2>선택받지 못한 사람의 무서운 심판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노아 홍수 때에 방주에 있던 사람들은 많은 홍수 가운데서 구원을 얻었 습니다. 8명만이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다른 면으로 말하면 8명을 제외하고 나머 지 사람들은 물로 심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의 고난의 표시인 십자가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구원 의 십자가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볼 때 불택자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같이 너의 육체와 영혼의 죽음이 도래한다는 경고된다는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1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 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예수님의 고난이 고통으로 끝나는가 아니 그리스도인의 고난의 괴로움 으로 마감하는가 하는 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그 대답은
3.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은 영광으로 마치는 고난입니다. 먼저 본문 21절-2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 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 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22]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 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1>그리스도인의 고난은 구원의 표시입니다. 이 구원의 표가 당장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거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약속이 남아 있다는 증표올시다. 바울은 자신을 향하여 괴롭히는 자들에 게 담대히 말했습니다. 갈라디아서 6:1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 졌노라" 이 예수의 흔적이 무엇이겠습니까 고난의 흔적이겠지요 고난을 단순한 고통으로 보는 사람에게는 고통으로 끝나는 정지요 절망입니다. 그러나 고난은 생명이요 성장의 과정입니다. 바울은 예수의 흔적을 자랑했습니다. 2>마침내 모든 능력이 예수 앞에 굴복하는 날이 도래하듯이 그리스도 인의 고난 뒤에는 영광의 빛이 찾아옵니다. 이 땅에서 영광을 누립니다. 그러나 더 큰 영광이 저와 여러분에게 남아 있습니다. 고난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십니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영광으로 모든 능력들이 순복하게 하신 것같이 그리스도인의 고난 의 짐을 들어주시든지 아니면 고난 속에서 기쁜 찬송할 수 있는 힘을 주 실 것입니다.
1.예수님의 고난은 우리를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한 고난 였습니다. 본문 18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 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 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을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중요한 세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1>예수님의 고난은 한번에 당하신 고난이 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제사장이 일년에 양을 잡아 제사 드리는 것이 매년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는 영원히 유효하며 지금 도 유효하기에 오늘도 예수 공로 의지하여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장소 이 예배 드릴 장소를 마련하신 것입니다. 짐승은 날마다 드렸다는 것은 한정적으로 유효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피는 어제 오늘 내일까지도 유효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해해서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심으로 모든 죄가 용서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를 한번 믿으면 죄로부터 완전히 무관하다고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를 용서 하셨다 함은 정확히 말해서 내가 그 죄에 대하여 어찌 할 수 없는 죄를 언제까지나 속죄하신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해결할 수 있는 죄는 언제나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면 언제든지 회개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죄의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는 것 같지만 무능력해서 죄를 완전 무결하게 해결할 수 없습니다. 원죄가 그렇고 자범죄 중에도 죄를 지을 때는 생각이 나지 않다가 나중에 깨닫게 됩니다.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 지만 죄책을 벗을 길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한꺼번에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십자가 지셨습니다. 히브리서 9:26-2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 되 이제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 나셨느니라[27]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 이 있으리니" 우리가 아무리 완벽하게 살았다고 할지라도 죽은 후에 우리의 잘못이 환 하게 들어 날것입니다. 그러면 나를 다시 살려 주십시오. 그 때 내가 잘 못한 것을 고치겠습니다 가 불가능합니다. 탁구나 정구는 다시 게임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사는 것은 다시 인생을 시작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단번에 제사를 드림으로 이 문제까지 다 해결하셨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속죄함을 받았는데 다른 사람의 실수를 단번에 지우지 못해서 앙금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예수님은 단번에 드린 제사로 우리의 죄를 대속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에 다른 사람이 지은 죄에 대해서는 또 생각나고 또 기억이 납니까 오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도 고난을 당하셨다고 우리의 고난에 위로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0:10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 라" 예수님의 단번에 드린 제사를 우리 생활 속에서 시인하며 살아갑시다.원 망스럽고 불평스러운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마음 속에 두고 몇 번인가를 셈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른 사람을 용서 해줄 때에 그 때 단번에 용서가 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예수님의 고난은 인생의 최고의 고난인 죽음을 통과하신 고난 이였 습니다. 인생은 뭐니뭐니 해도 최고의 두려움의 대상은 죽음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최대의 고난이요 위기 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인생 의 최고의 고난인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셔서 죽음에 메여 종노릇하는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습니다.높은 보좌에서 낮고 낮은 인생을 체험하시며 인생의 최고의 난관인 죽음의 관문을 넘어 우리에게 부활을 주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결코 인생의 교양이 아닙니다. 죽음 선택 하느냐 삶을 선택하느냐 하는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빌립보서 2:7-8절에 예수그리스도의 순종이 어디까지인가를 보여줍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우리의 고통이 아무리 극심해도 신자의 고통,고민,고난 을 호소 해 오지만 예수님은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느 주교가 목회 하기가 너무나 힘들어서 주교회의에 나가 선배 주교님께 사직서를 내밀었습니다. 그 때 선배 주교는 사직서를 내미는 목사님께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침을 얼굴에 뱉습디까아닙니다교인들이 옷을 빼앗고 뺨을 칩디까아닙니다아니면 교인들이 죽이려고 합니까" 사직을 내밀었던 목사님이 대답할 말을 잊은 채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 임지로 돌아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시련이라고 할지라 도 예수님의 곤욕과 죽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고 저주했다고 오해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겠습니까 고대 에피쿠루스 학파의 예피쿠르스는 하나님은 무능하시든지 아니면 매정하시든지 둘 중에 하나라고 공박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인간에게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그걸 막지 못하 신다면 하나님은 무능하신 하나님이고 알면서도 고난을 인생에게 닥치도 록 하셨다면 그 하나님은 몰인정하신 하나님이라고 공박했습니다. 사상 가의 논쟁에 휘둘려 가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생물학자가 고치에서 가날픈 나방이 나오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 보이고 애처러워서 가위로 고 치를 뚫어 주었습니다. 쉽게 나방은 고치를 벗어 날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방은 날지도 못하고 몇 번 퍼덕되더니 결국은 영광스럽게 날아 보지도 못한 채 죽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고난에는 반드시 하나님은 중 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우둔해서 그 메시지를 쉬게 읽지 못합니다. 3>예수님의 고난은 대신 당하신 고난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은혜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하나님의 언약은 행위 언약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 하는 율법의 일점일획의 에누리도 없이 우리 주님께서 대신 그 크신 고난을 당하시므로 말미암아 얻어낸 행위 언약으로 얻어낸 속죄의 언약을 저와 여러분에게 은혜로 그 저 주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 하기 위하여 대신 채찍에 맞으시고 고난을 당하신 것을 믿습니까 이사야 53:3-6절까지를 읽어보겠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 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6)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 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 도다[4]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 노라[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 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 다" 여러분의 죄악,그리고 저의 허물을 그에게, 곧 예수께 담당시켜셨도다는 것입니다. 억울해서 분을 참지 못할 일이 있는 성도 있습니까 예수님의 억울과 한번 비교 해보십시오.자랑스럽고 칭찬 받을 만한 일은 남 대신 잘합니다.그러나 억울 한일은 한치도 여유가 없습니다. 나는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이 억울합니까하나님께 기도 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짐을 가 볍게 해주시든지 기쁨과 감사로 감당하실 능력을 주시든지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 구체적인 양태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어 서 예수님의 고난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2.예수님의 고난은 구원과 심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고난이 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베드로를 만나 보기 전에는 어려운 문제를 남겨 놓는 어려 운 난해한 절을 만났습니다. 어려운 문제가 되는 성경을 만나면 억지로 그 뜻을 알려고 하면 멸망합니다. 성경에 어려운 구절도 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성숙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베드로 후서 3:1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 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 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우선 문제의 본문 19-2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20]그들은 전에 노 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 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우선 다른 성경과 맞지 않는 것이 발견되는데 예수님이 3일간 죽음에 머 물고 있을 때 지옥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도했다는 것인데 전도란 이 땅에 있을 때 가능하고 죽은 후에는 영혼이 천국이든지 지옥이 결정되면 다시 이곳에서 저곳으로 갈 수 없고 저곳에서도 이곳으로 올 수도 없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인데 지옥에 가셔서 예수님께서 전도하셨다니 납 득이 않가는 말씀입니다.신학자들이 본문을 해석한 것이 150종류가 있다 고 하는데 속 시원한 해석해 주는 자가없고 빠져 나오려고 하면 또다른 오류에 말려들기 마련입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습니다. 천국에 가면 베드로 사도에게 직접 물어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에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시기 위한 고난 이였다는 것입니다. 1>하나는 선택한 사람을 예수 안에서 구원하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과 사람이 사람의 잘못으로 틀어졌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중보가 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 로 인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지금 예배를 드립니다. 구약 때 같으면 짐 승을 복잡한 절차 가운데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겠지요 그러나 지금 우리는 단 예수그리스도의 피공로를 의지하고서 이곳에서 하나님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놀라운 구원의 증표를 저와 여러분이 마음에 가지고 를 드립니다. 로마서 8:1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 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우리는 육신이 언제 가는 죽는 것을 확실한 사실로 받아 드립니다. 또한 육신은 썩어지지만 우리 안에 예수 영이 있어서 반드시 다시 살 것을 믿 습니다. 오늘도 부활의 능력이 연약한 내게도 이루워 질 것을 믿습니다. 2>선택받지 못한 사람의 무서운 심판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노아 홍수 때에 방주에 있던 사람들은 많은 홍수 가운데서 구원을 얻었 습니다. 8명만이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다른 면으로 말하면 8명을 제외하고 나머 지 사람들은 물로 심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의 고난의 표시인 십자가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구원 의 십자가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볼 때 불택자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같이 너의 육체와 영혼의 죽음이 도래한다는 경고된다는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1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 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예수님의 고난이 고통으로 끝나는가 아니 그리스도인의 고난의 괴로움 으로 마감하는가 하는 하는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그 대답은
3.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은 영광으로 마치는 고난입니다. 먼저 본문 21절-2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 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 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22]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 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1>그리스도인의 고난은 구원의 표시입니다. 이 구원의 표가 당장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거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약속이 남아 있다는 증표올시다. 바울은 자신을 향하여 괴롭히는 자들에 게 담대히 말했습니다. 갈라디아서 6:1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 졌노라" 이 예수의 흔적이 무엇이겠습니까 고난의 흔적이겠지요 고난을 단순한 고통으로 보는 사람에게는 고통으로 끝나는 정지요 절망입니다. 그러나 고난은 생명이요 성장의 과정입니다. 바울은 예수의 흔적을 자랑했습니다. 2>마침내 모든 능력이 예수 앞에 굴복하는 날이 도래하듯이 그리스도 인의 고난 뒤에는 영광의 빛이 찾아옵니다. 이 땅에서 영광을 누립니다. 그러나 더 큰 영광이 저와 여러분에게 남아 있습니다. 고난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십니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영광으로 모든 능력들이 순복하게 하신 것같이 그리스도인의 고난 의 짐을 들어주시든지 아니면 고난 속에서 기쁜 찬송할 수 있는 힘을 주 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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