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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 (벧전3:1-6)

본문

어떤 성(城)을 점령한 적장이 다음과 같은 포고를 내렸습니다. "이 성 안에 있는 부녀자와 어린이는 가장 귀중한 보물 하나씩만 가지고 오늘 12시 안으로 성문을 나가라!" 이 포고를 들은 사람들은 자기 딴에 가장 귀중하다는 보물을 들고 이고 지고 성문 을 울면서 빠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어버지가, 아들이 적병의 칼에 죽을 것을 생각하니 간이 녹는 듯 했습니다. 이 때 한 여자가 아무 것도 안 가지고, 자기 남편을 업고 성문 을 빠져 나가다가 적장에게 잡혔습니다. "이년 어디라고 사내를 데리고 나가느냐 너 마저 죽고 싶으 냐" 적장은 호령호령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눈하나 깜짝 않고 대들었습니다. "장군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시기를 가장 귀 중한 보물을 가지고 나갈 수 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제가 진 것은 장군에겐 하찮은 것이 오나 제게는 가장 귀중한 보물입니다. 그걸 가지고 가는 게 무엇이 잘못입니까" 혹시 여러분 중에는 따라오는 남편도 뿌리치고 보석 한 움큼 쥐 고 나오실 분은 안계시겠지요 이렇게 소중한 남편들과 아내된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귀를 기울여 보십시다. 자존심을 세워주라 성경은 우선 "남편에게 순복하라"고 말합니다. "남편에게 순복 하라"는 이 성경 구절에 기대어 얼마나 많은 남성들이 폭군으로 행세를 하면서 이 말씀을 오염시켰는지 모릅니다. 또 얼마나 많 은 여성 신학자들이 이 말씀을 때로는 공격하고 때로는 재해석을 하면서 몸부림쳤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 말씀 구절 만큼 피어 린 역사를 가져온 구절도 아마 드물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 구절을 한번 살펴 보십시다. 순복이란 말의 헬라 어는 '휘포탓소메나이'입니다. 이 말은 '휘포(밑에) 탓소(두다)'의 합성어이니, '자신을 밑에 둔다'는 뜻입니다.
영어로 복종도 (Submission) '`아래서' 라는 말과 '잘 듣다'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아래서 잘듣는 것이 순복이니 결국 존중해 준다는 뜻이 있습니다. 밑에 있는 사람은 말을 경청합니다. 말을 잘 들어 주는 것은 존중의 표시입니다. 말을 잘 안 듣는 것은 무시의 표시입니다. 그 러니 결국 순복, 복종은 남편을 존중해 주는 것입니다. 남편의 얘 기를 잘 들어 주라는 것입니다. 즉, 자존심을 세워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남편 기살리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만, 기 살리는 것 보다 존중해 주는 것이 더 훨신 신사적이고 성경적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로마인 이야기에 나옵니다. 시이저가 전투 직전 부하들의 자존심을 한 껏 높여 주었습니다. 그러자, 한 백인대장 은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나의 장군이시여, 오늘은 제가 살든 죽든 장군께서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용감히 싸워 보이겠 습니다" 이 백인대방은 '파르살로스 회전'이라는 폼페이우스와 의 치열한 전투에서 장열하게 전사를 함으로써 이 말을 실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찮은 로마의 백인 대장도 자신의 자존심을 힘껏 세워 주니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시이저를 위해 목숨을 버 린는 데, 하물며 그대와 한 몸인 남편에서랴. 이 세상의 아내들이 여 남편에게 순복하세요. 남편의 자존심을 세워 주세요. 그러면 그는 목숨을 걸고 그대를 위해 전투에 임할 것입니다. 남편의 자 존심을 세워 주는 현명한 아내가 되십시오. 명예와 자존심을 지켜 주라. 이것이 남편에게 순복하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남자는 단순합니다. 아주 쉽습니다. 복잡한 동물이 아닙니다. 남자는 만들 때도 흙으로 만들었지요. 여자는 뼈로 만 들었습니다. 더 정교하고 더 복잡한 기관입니다. 그래서 임신과 출산의 엄청난 시스템을 여자의 기관에 허락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성을 기쁘게 하는 일은 섬세하고 세밀해야 되지만 남자 를 즐겁게 하는 일은 단순합니다. 남자를 동원하는 것도 훨신 단 순합니다. 그러나 여성을 동원하는 것은 복잡하고 예민합니다. 이 걸 아셔야 해요. 남자는 자존심만 세워 주면 대개의 경우 다 통 합니다. 그래서 복종하라는 겁니다. 순종하라는 겁니다. 마찬 가 지입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인 여러분이 주님께 헌신하고 그 의 이름을 높여 경배 하기만 하면 주님은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이 든 다 합니다. 십자가를 기꺼이 지십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이 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잠4:6,8)
어떤 분이 제2 신혼기를 위한 아내의 8계명을 제시했습니다. 그 중에 이런게 있습니다. '남편의 출퇴근 길을 기분좋게 하라. 남 편은 아내가 이렇게 할 때 존경 받고 있다고 느낀다.' '남편의 고충을 이해하고 편을 들어 주라. 남편은 자기편을 들 어줄 사람을 찾아 매일 아내가 기다리는 가정을 참자 온다.' 그 렇습니다. 이 세상의 남편들은 지금 존중받고 싶어 합니다. "남편들이 회사일의 고충을 아내에게 털어 놓지 못하는 이유 중 대부분은 아내에게 못난 남편으로 보이거나 아내에게 까지 고 민을 주고 싶지 않아서이다"라고 어떤 상담가가 분석을 했습니다. 남편은 가정에서만이라도 가치있는 사람으로 인정 받고 싶어 합니다. '고개숙인 남자, 왜소한 남자'라도 가정에서는 최고가 되고 싶어 합니다. 제왕의식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지배하고 억압하고 착취하는 제왕의식은 나쁜 것이지만, 달리 표현하자면 인정받고 싶은 욕구입니다. 꼭 필요해! 최고야! 이런 인정을 받고 싶은 겁니다. 가부장(家父長) 사회든, 가모장(家母長) 사회든, 가부모장 (家父母長) 사회이든 가정의 지도력은 필요합니다. 구심점은 있 어야 하니까요. 때문에 지도력을 맡은 사람이 소중하게 받아들여 지고 있다는 심정은 꼭 필요합니다. 아무리 가정 밖에서 외소하 고 하찮게 취급당하는 사람도 가정에 돌아가면 가장입니다. 모든 가족 구성원이 존중 받고 가치있게 취급되어야 하지만, 특히 가 장은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결혼한 여성들은 대화의 주제가 극히 제한 되어 있습니다. 아이 와 남편 이야기입니다. 특히 사회활동을 하지 않는 분들의 대화는 더 그렇습니다. 대화의 주제에서 아이 얘기와 남편 얘기를 빼 고 이야기 하기 게임을 하라고 한다면 아마 무척 힘든 게임이 될 것입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는 게 아니라 결혼한 여성의 이 야기 주제는 모두 남편과 아이들 문제로 통합니다.
그런데 더 불 가시이 한 것은, 이야기 끝마무리는 꼭 남편 칭찬이라는 사실입니다. 흉도 끝에 가면 칭찬으로 바뀌어요. 모든 아내들에게 있어 서 남편은 대화의 중심이요, 관심의 핵심이라서 그렇습니다. 바깥 에서 아무리 하찮은 취급을 당하는 남편이라도 그렇습니다. 이렇 게 관심의 중심인 남편을 존중하지 않는 다면 누구를 존중하겠습 니까 때문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입니다. 존중하라는 말입니다. 한 발걸음만 더 나아가면, 존중은 지지자가 되게 합니다. 아내는 언제나 남편의 지지자여야 합니다. 왜그렇습니까 오늘 같이 생존 경쟁이 치열한 시대, 요즈음 같이 적으로만 둘러 쌓여 있는 시대 가정의 문지방만 넘어서면 나의 편은 없기 때문 입니다. 모두가 경쟁의 대상이요 적으로 둘러 쌓여 있습니다. 그 러니 그대 만이라도 최후의 친구로, 지지자로 남으세요. 남편은 수 많은 비판자와 야당에 둘러 쌓여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그대만이라도 여당이 되세요. 지혜로운 아내는 남편을 존중합니다. 남편의 지지자가 됩니다. 성경에 미련한 여인 둘이 나옵니다.
첫째는 다윗의 아내인 미갈 입니다. 다윗은 너무 너무 기뻤습니다. 수많은 전쟁을 치르고, 사울에게 살해 당할 뻔 하면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유랑의 객이 되어 극 적으로 도망치던 것이 몇 번이었던가 유다 헤브론에서 왕으로 등극은 ㅎ지만, 사울의 아들을 왕으로 앞세운 잔류 세력들이 북 쪽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나라를 일으키고 있는 그야말로 내전의 위기를 격던일, 이제 그 모든 파란의 세월이 끝이 나고 이제 안 정이 되어 예루살렘을 새로운 수도를 정하고 꿈에도 그리던 야 훼 하나님의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던 가 슴 벅찬 날, 다윗은 법궤를 앞세우면서 웃을 벗고 춤을 추면서 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들어 옵니다. 그때 미갈이 성에서 보면서 다윗을 경멸해 마지 않습니다. 방탕 한 건달 처럼 온 몸을 드러 내면서 춤을 추느냐고 하면서 은근히 양치기 출신은 어쩔 수 없어 뭐 이런 감정을 가지고 왕을 질책했 습니다.(삼하 6:14) 자존심을 세워주는 것은 고사하고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그 다음은 욥의 아내입니다. 사단이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했습니다.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엇습니다. 아내가 욥에게 와서 기껏 한다는 말이, "당신이 그 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고 말합니다. (욥 2:7-10) 욕창이 나서 죽을 지경인 데 자잘 못을 탓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하나님을 원망하고 장열하게 전사하라는 겁니다. 미련한 여인입니다. 남편도 지금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거룩한 투쟁을 하 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투쟁을 지원하고 격려하고 돕지는 못할 망정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겹게 올라가는 데 올라타고 발을 구르는 격입니다. 자존심을 세워줄 줄 모르는 미련한 여인입니다. 이 게 진짜 순복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여인들입니다. 우리가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 잇습니다. 이 두 여인의 경우 모두 남편인 인간에게 대항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미갈의 경우는 하나님의 법궤 축제에 찬물을 끼얹은 것입니다. 욥의 아 내의 경우는 그 원망을 하나님께 돌리고 하나님을 대적하라고 말 하는 것입니다. 모두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입니다. 영광스럽게 하라 자존심을 세워 주는 데서 한 걸음 더 나가면 기쁨의 헌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대의 남편은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그 냥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가부장적 남성 우위의 상태를 더 부추기는 것 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내와 남편 과의 관계를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로 한단계 승화시키면서 이 기쁨의 헌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 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엡 5:23-24) '교회가 그리스도께 하듯' 이것이 복종의 기준입니다. 이런 복종 은 마지 못해하는 억지로의 복종이 아니라 기쁜 헌신의 행위입니다.
우리 남편은 예수님 처럼 위대하지도 사랑이 많지도 못합니다. 이래도 복종해야 합니까'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여기서 머리(케팔레)는 지도자나 통치자의 뜻입니다. 이 지도의 권위는 물론 희생과 모범의 권위입니다. 물론 머리로서의 지도력 을 발휘하지 못하는 머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에는 진정한 머리로서의 지도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래서 창 세기에 돕는 베필 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대의 돕기에 따라서 인간적인 지극히 냄새나는 인간적인 그대의 남편이 그리스도 처 럼 영광스러워 질 수도 있음을 명심 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명령입니다. 그리스도와 교회는 유기체입니다. 그리스도는 머리이고, 우리는 각 사지백체입니다. 고통과 슬픔을 함께, 즐거움과 기쁨을 함께하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설명한 것은 부부관계가 영적인 관계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믿음 의 아들 딸들에게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부부관계를 한 차원 높 은 데로 끌어 올리셨습니다. 당연하지요. 교회가 있기 전에 가정 이 먼저 있었으니까요.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린 최초의 공동체는 교회가 아니라 가정입니다. 때문에 영적인 부부관계에서 특히 영적인 속사람의 단장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 3:3-4 중에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내 면도 꾸미고 외모도 꾸며야 합니다. 내면은 말씀으로 잘 꾸미고 외모는 귀신 산발한 것 같이 해 가지고 다니면 하나님이 기뻐할 까요 그래도 숨은 사람, 속 사람이 중요성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4절)
헌신을 제대로 하려면 인간적인 각오로 되는 게 아닙니다. 겉모 양을 헌신의 모양으로 꾸며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속사람, 숨은 사람을 준비시켜야 합니다. 숨은 사람을 단장해야 합니다. 지혜롭 고 아름다운 여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고운 것도 헛되고 아름다 운 것도 헛되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아름답다고 전도서 기자는 말했습니다. 때문에 무엇 보다 말씀으로 단장하고 말씀으로 남편을 돕는 배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아내는 참으로 아름다 운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사람에게서는 저절로 향기가 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하듯' 그리스도를 향한 교회의 태도는 과연 무엇입니까 감격을 가진 빚진자입니다. 탕감받은 자의 감격, 향 유 부은 여인의 감격이 기본 성격입니다.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는 이런 감격에 바탕을 두고 그리스도께 자발적 순종, 기쁨의 헌 신을 합니다. 이것이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 가 그리스도를 위해 하는 헌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는 잘 압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아내된 여러분이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자발적 인 헌신을 한다면 한 낮 인간에 지나지 않는 여러분의 남편은 그리스도 처럼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아내의 머 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 (엡5:23-24)라고 합니다. 이렇듯 그대는 말씀에 서서 사랑을 하면 어거스틴 처럼 방탕한 시대의 탕아가 그리스도 같이 영광스런 존재가 될 수 있음을 기 억하십시다. 그리고 꼭 명심할 일이 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하듯"이 잘 되려면 우선 아내된 여러분 자신이 참다운 교회가 되어야 한 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교회로 변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그리스도에게 처럼 남편에게 복종하고 그를 영광스럽게 하기 전에 그대 자신이 교회로 변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거룩합니다. 교회는 순결합니다. 아내된 여러분도 거룩하고 순결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교회는 능력이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십니다. 교회는 말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교회는 성령님충만하여 탄생 되었습니다. 아내된 여러분도 말씀과 성령으로 가득차 있는 능력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먼저 여러분을 참다운 교회로 만드세요. 그래야 남편을 진정 도와 그리스도 처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를 영광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남편으로 인해 아픔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남편을 위 해 기도의 무릎을 꿇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교회입니다. 힘있고 능력있는 교회입니다. 변화시킬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권세를 활용해 보세요. 피로 값주고 사서 교회 의 머리 되신 주님께서 여러분을 도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말씀 안에선 교회 처럼 아름다운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문)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특별히 아내된 당신의 딸들이 괴로 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가정관계가 파괴되어 가슴 아파하고 있습니다. 갈등이 커서 괴로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아픈 십자가 의 못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리한 창끝이 되고 있습니다. 어 그러진 가정, 이것이 가시 면류관이 되어 찌르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 최후의 십자가 싸움에서 승리하게 도와 주옵소서. 교회가 그리스도께 하듯 남편에게 헌신하라고 명하신 주님, 무 엇보다 먼저 당신의 딸들로 하여금 거룩한 교회가 되게 하여 주 옵소서. 순결한 교회되게 하여 주옵소서. 능력있는 교회, 말씀이 가득찬 교회, 성령님이 활동하는 교회되게 하옵소서. 당신의 아름다 운 딸들 그 자신이 이런 교회로 세워지게 하옵소서. 인간의 힘으로가 아니라 이런 능력있는 교회되어, 남편을 변화 시키고 섬기고 영광스럽게 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가정 이 변화되는 그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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