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화목 (벧전3:1-7)
본문
가정의 중심 은 부부입니다. 부부가 가정의 기둥이요,핵입니다. 아무리 재물이 많고 그 자녀들이 귀하다 할지라도 부부가 깨어진 가정은 흔들림이 심한 가정일 수 밖에 없습니다. 부부가 화목하여 금실이 좋을 때는 늙으신 부모님도 함께 기쁘고 자녀들도 가정의 천국 속에서 밝게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부가 불화하면 부모님들도 불안하고 자녀들도 비뚤어지기 쉬어집니다.미국 하바드 대학에서 연구한 바에 의하면 청소년 범죄의 60%가 부모의 불화에서 기인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슴 아픈 것은 우리 나라의 이혼율이 점점 급증하여 92년도 한 해에만도 57,000여 쌍이 이혼함으로 전년도에 비해 10%의 증가세를 나타냈다는 것입니다.이는 결혼하고 있는 7명 부부 중의 하나가 이혼하고 비율이 된다고 통계청의 보고입니다. 미국의 3쌍 중의 하나나 두 쌍 중의 하나가 이혼하고 있는 비율에 비하면 대단히 양호한 편이나 문제는 지금 젊은 부부들의 이혼율 속도가 대단히 빨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미국의 가정들은 참으로 한심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영화를 보면 대부분의 부부들이 이혼한 후에 다시 재혼하므로 자녀들이 여러 가지의 형태입니다. 하나는 전처의 자녀이고 또 하나는 부인이 데려온 아이이고 또 하나는 부부가 낳은 자녀입니다. 토요일이면 친부모가 찾아와서 함께 놀아주므로 제각금 이리 저리로 흩어지는 비참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웃을 일이 아닙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그러한 물결이 우리 나라에도 도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부부들은 지금 방심하지 말고 단단히 정신을 차리고 부부의 결속을 다지어야 합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부부의 화목이 돈독해질까 먼저 아내들에게 말씀 드립니다 우리 아내들은 어떻게 남편을 대할까 특히 믿지 않는 남편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므로 주 안에서 아름다운 부부관계를 가져야 할 터인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 방법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남편에게 잔소리식 설교를 될수록 삼가해야 합니다 남편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멀리하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잔소리식의 설교입니다. 잔소리는 아주 무해한 것입니다. D.카네기 부인의 저서 남편을 성공시키는 법 에서 쓰기를 '잔소리가 심한 아내는 가난,낭비,불신심이라는 것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불행을 가정 안에 들어오게 한다'고 했고, 뒤파예라는 작가는 그의 저서 약혼과 신혼 에서 쓰기를 '잔소리는 애정을 철저하게 파괴하기 위해 지옥이 발명한 무기인 것이다. 마치 코프라 뱀에 물린 것처럼 애정에 있어서 치명적인 것이다'고 했습니다. 어느 남자는 '똑똑하고 인물이 좋으나 잔소리가 심한 여자보다는 오히려 좀 모자라고 못났지만 잔소리가 없는 여자를 결혼 상대자로 택하겠다'고 말합니다. 잔소리는 남편을 여러분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 기독교인 아내들이 범하기 쉬운 큰 잘못은 잔소리식 설교에 능한 데 있습니다. 무슨 돈타령, 무슨 옷타령은 안한다 하더라도 남편에게 끝없이 설교하는 버릇이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예를 든다면 ‘당신 빨리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해요’ 또는 ‘당신 그렇게 살면 하나님께 벌받게 되어요’ ‘당신이 사업마다 실패한 것은 하나님과 함께 살지 않은 탓입니다’ 혹은 남편이 교회는 나오지만 열심이 없다는 생각을 가진 아내들은 빨리 남편이 열심을 내서 세례도 받고 집사도 되고 더 나가서는 남선교회의 임원도 되고 더 나가서는 안수집사나 장로가 되기를 바라는 성급한 생각에서 설교를 해댑니다. ‘한 다리는 교회에 한 다리는 세상에 디밀고 그런 식으로 뜨드미지근하게 믿으려면 그만 두는 게 나아요’ ‘당신하고 교회에 가서 같이 못 않겠어요. 담배내가 어찌 나는지 창피해 죽겠어요. 그 놈의 술담배는 제발 끊어요. 당장에 기도원에 가서 3일 금식합시다’ 그저 쫑알 쫑알 설교하고 싶어 끝없이 설교를 빙자하고 자기하고 싶은 말을 잔소리로 퍼붓고 있으니 어느 남편인들 좋아하겠습니까 어느 남편치고 자기 부인에게 설교조로 훈계를 들으며 좋아할 자가 있겠습니까남자는 누구나 아내를 다스리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거꾸로 아내에게서 다스림을 받는다면 모욕을 느낄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때는 남편은 아내의 말이 옳은 줄 알면서도 역으로 나가기 일 수인 것입니다. 제가 처음 나오기 시작하는 어느 남편의 하소연을 들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술담배를 끊어라. 왜 기도생활을 안하느냐 누구네 남편을 보면 부럽기 그지 없다’고 너무 닦달을 하니 술담배를 하루 아침에 끊을 길은 없고 교회를 그만 두고 마음이 불끈 일어날 때가 여러 번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어느 부인은 새로 예수님을 믿고나서 너무 기쁜 나머지 믿지 않는 남편에게 기독교를 믿으라고 강요하기를 계속했습니다. 그 결과 오히려 남편은 주님에게서 더 멀리 떨어지게 했습니다. 결국,어느날 남편은 부인에게서 영원히 떠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내들이여. 남편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하되 설교는 적게하십시오.
남편에게 주 안에서 순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여자분들이 좋든지 싫든지 간에 성경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내는 남편에게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명하는 말씀에 위배되지 않는 한, 즉 남편이 예수님을 믿지 말라 든지,우상숭배하라든지 죄를 지으라고 하든지 하는 것은 주님의 명령이 우선이기에 결코 순종해서는 안되지만 그 외에는 남편에게 순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아내의 자세입니다. 오늘 본문 5절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순종의 자세는 2장 18절에 하인들이 주인에게 순복하는 것과 같은 태도를 말합니다. 하인들은 까다롭거나 몰인정한 주인에게도 순복하는 것처럼 우리 아내들도 역시 인정이 없는 남편이거나 경건치 못한 남편에게도 순종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견딘 것처럼 때로 남편에게서 받는 고통을 견디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남편이 영적으로 부활하는 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남자들 중에서 여러분의 남편을 인생의 반려자로 주시면서 함께 슬픔과 기쁨을 나누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워 주신 남편에게 순복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순복하되 진심으로 하십시오. 억지로 말고 남편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태도로 하십시오. 어느 남편이든지 아내에게서 존경받는 남편이 되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심리학자 프로이드는 말하기를 ‘남성이 하는 모든 일의 배후에는 숨은 동기가 있는데 그것은 아내의 마음에 들고 싶다는 소망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남편은 자기 아내에게서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 받는 남편이 되고 싶은 본능이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스운 소리입니다만 남자들은 자기 아내를 택할 때에 자기보다 잘난 여자보다는 좀 모자라는 여인을 선정한다고 합니다. 그러한 본능이 강한 남편에게 우리 아내들이 무능하다는 말을 함부로 쏘아대거나 마치 가장 무서운 죄인으로 취급하여 지옥에 가야할 자로 정죄한다면 화가나서 견디지 못할 것이요,오히려 역으로 자꾸 빗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집에 가서 남편에게 전도하는 방법은 윽박지르는 방법이 아니라 격려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참 훌륭한 분인데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정말 더 귀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우리 교회에 나가서 가장 귀한 일꾼이 될 것으로 믿고 기도하고 있어요’라고 한다면 남편은 왜인지 흐뭇한 마음이 생길 것이고 교회에 나가고 싶은 충동이 생길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아내로서도 훌륭했다고 합니다. 남편 파트니기우스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얼마나 성급하고난폭했음에도 늘 온순하게 순종했다고 합니다. 남편이 아무리 폭언을 해도 대항하거나 변론하지 않고 대함으로 남편이 나중에는 큰 내화를 받게 되었고 그 부부에게서 성자가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내들이여. 늘 순종의 십자가를 지고 격려의 노래를 부르는 아내 앞에 하나님은 부활의 남편을 허락하실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단장하는 아내가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 3절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외모로 하지 말고”라고 했는데 너무 외모로 사치한 치장에 치우치지 말고 마음을 단장하는 여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기독교인 아내들은 외모를 허술히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어느 곳에고 여성이 몸을 깨끗이 하고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나무란 곳은 없습니다. 어느 남편치고 아내가 제멋대로 사는 것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 남자들은 온종일 동안 직장이나 거리에서 말쑥하고 예쁘게 꾸미거나 단장한 많은 여인들을 보고 돌아옵니다.
그런데 퇴근하여 현관에서 맞는 아내를 보니 한심합니다. 옷도 아무렇게나 걸치고 있고 온종일 잠만 잤는지 머리는 쑤세미 꼴이고 세수도 안했는지 눈곱이 낀 얼굴이 하품을 찢어지게 합니다. 그런 아내를 좋아할 남편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교회를 갈 때보니 옷이나 화장이나 정성을 다합니다. 그러면 남편은 자기는 교회 따위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천대를 받고 있다는 생각에 심한 모욕을 느끼며 교회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아내들은 늘 남편을 대할 때에 아름답게 단장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남편에 대한 예의요,존경심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요지는 외모 단장보다는 마음의 단장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것은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이라고 했습니다. 믿음과 사랑으로 가득한 심령을 말합니다. 십자가로 녹아진 심령입니다. 나다나엘 올슨 목사님은 말하기를 ‘죄인은 죄의 구덩이에서 설교나 논쟁으로 올려지는 것이 아니고 사랑으로 올려져야 한다“고 했고 오스왈드 J. 스미스 박사는 아내들에게 권면하기를 ‘아내들이여,언제나 남편에게 사랑의 두 팔을 벌리고 가십시요. 시간을 내어 사랑을 표시하십시오. 남편이 늙었을지라도 사랑을 표시하십시오’고 했습니다. 사랑은 어떠한 모든 것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사랑이 솟구치는 마음은 온유하고 안정된 심령으로 단장된 마음입니다. 외모로 옷과 화장과 악세사리로 단장하듯이 마음을 매일 온유와 사랑의 것으로 화장을 할 때에 여러분의 남편은 여러분에게서 가장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홍익의 아내들이여. 모든 남편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고 또한 믿는 남편이라도 더 귀한 그리스도의 선한 일꾼이 되기까지 그저 격려와 순종과 온유로 가득한 아내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번에는 남편들에게 권면합니다 홍익의 남편들이여. 우리는 아내들 앞에서 어떠한 남편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일까 남편의 도리는 무엇일까 7절에 나오고 있습니다.
아내를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 중에 사랑을 담당할 자는 아내가 아니라 바로 남편이라는 것이 성경의 명령입니다. 사랑을 하되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못된 자라도 자기 몸은 끔찍이 위할 것입니다. 배가 고프면 만사를 제치고 음식을 먹고 몸이 아프면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갈 것입니다. 몸이 피곤하면 누워서 쉴 것입니다. 심심하면 재미난 오락을 즐길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몸을 사랑하듯이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남편들은 아내가 자기만 사랑하라고 하지 아내를 사랑하고 도와주는 것에 등한히 합니다. 가정에서 아내를 조금 도와주면 큰 일이나 한 것처럼 야단을 합니다. 그리고 한국 남편들은 아내를 엄하게 대해야 남편답고 아내를 위하는 남편은 공처가나 팔불출로 여기는 잘못된 면이 있습니다. 어느 남편은 자기는 한번도 부엌에 들어가지 않을 것을 자랑하면서 대단히 남자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남편상은 아내를 내 몸처럼 사랑하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여인은 자기가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듣고 싶어합니다. 사랑을 받고 있는 아내는 윤기가 넘치나 사랑을 받지 못할 때 아내들의 마음은 어둠에 가득차고 병들게 되고 그것이 시가 되어 마침내 남편을 상하게 합니다. 사랑은 부어 주면 줄 수록 그것은 씨앗과 같아서 더 큰 사랑의 열매를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남편들이여. 아내라는 땅에 사랑의 씨앗을 심고 심으라. 그러면 많은 열매가 여러분에게 돌아올 줄 아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7절에 보면 여자를 사랑할 이유는 연약한 그릇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자가 아무리 강한 것 같아도 여자는 역시 약한 면이 있습니다. 쓰러지기를 잘합니다. 그래서 여자는 특히 남자의 도움을 받고 싶어합니다. 세실 오스본은 말하기를 ‘아무리 자존심이 강하고 지성이나 능력이 우수하고 다소 지배적인 여성이라고 하더라도 여성에게는 남성에게 의지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남편들은 넓고 관대한 마음으로 약한 그릇과 같은 아내를 감싸주는 사랑을 나타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어느 남편은 너무나 옹졸합니다. 관대한 구석이라고는 없습니다. 부부싸움을 해도 아내가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밉니다. 오늘 오후에 강사로 오시는 김종주 장로님의 저서 행복하나 사랑하나라는 책자에 보면 조사에 의하면 부부싸움을 나서 화를 풀지 않고 먼저 돌아누워서 혹은 분방해서 자는 쪽은 여자보다 남자쪽이 더 많다고 합니다. 믿지 않은 사람들은 술 한잔이면 다 풀릴 것은 십자가 사랑을 가장 강조하는 기독교인 남편 중에 이런 졸장부 남편이 의외로 많다고 합니다. 어느 집사직을 가진 남편은 부부싸움을 하고서 45일 동안 말을 안한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엡 4:26절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고 화를 풀지 않은 채 하룻밤을 보내고 나면 27절 말씀대로 마귀가 틈을 타서 밤새도록 마음 속에 알을 까게 됩니다. 처음 부부싸움 문제는 사소한 것이 었으나 밤새도록 분을 품고 자면 점점 분이 자라갑니다. 지금까지 갖은 고생을 해온 것이 억울해서 못 견디어집니다. 속아 살아온 것 같습니다. 이혼을 하고 싶은 충동을 부글부글 끊습니다. 마귀는 박수를 치면서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때로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그 밤이 가기 전에 서로 화해해야 합니다. 이런 재미 있는 예화가 있습니다. 권희로란 분의 예화집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믿는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고 남편이 집을 나가 방황하다가 밤이 되니까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었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 창문 밖에 서성이는데 아내의 찬송소리가 들립니다. '돌아와 돌아와 맘이 곤한 이여 길이 참 어둡고 매우 험악하니 집을 나간 자여 어서와 돌아와 어서와 돌아와'. 남편은 아내가 부르는 찬송이 남편인 자기를 생각하며 부르는 줄 알고 감동이 되어 문을 안으로 들어가면서 응답의 찬송을 부르기를 '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여 슬프고도 외로워 정처없이 다니니'라 했습니다. 부부는 오랜만에 한마음 한뜻이 되어 찬송을 부르기를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하면서 어느덧 아내가 남편의 품에 안기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부부의 부부싸움과 해결방법입니다. 남편들이여. 큰 마음,큰 사랑으로 아내의 연약함을 감싸 주기를 바랍니다.
아내를 진정으로 칭찬하시기 바랍니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남편들은 자기 아내를 칭찬하는 데 대단히 인색합니다. 특히 한국 남편들은 아내에게 면박을 주는 무뚝뚝한 언사를 멋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것을 요리라고 내어 놓았나 고기가 고무줄처럼 질기 구만' 혹은'무슨 화장을 그리 요란스럽게 하나 꿈에 볼까 무섭군' 혹은 '당신 같은 못생긴 여자를 내가 데리고 사는 것만도 감지덕지해야돼' 또는 '밤낮 아프다는 소리니 이제는 지긋지긋하오. 죽을 라면 빨리 죽어. 더 늙기 전에 새장가 한 번 가보게' 나오는 대로 탁탁 쏘아댑니다. 그러나 진정 옳은 자세가 아닙니다. 어느 분은 말하기를 '여자는 칭찬을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칭찬이라는 비료 속에서 순종의 꽃과 사랑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수천년 동안 여성들은 남자들에게 지배를 받고 살아왔기에 늘 불안의 위치에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찬사와 확신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젊은 남편은 불평하기를 ‘옛날 여자들은 그렇지 않았는데 요즈음 젊은 여자들은 너무 서양물을 먹어서 인지 툭하면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니 이제는 성가셔 죽겠어요. 아니,내가 사랑하는 줄 알면서 왜 묻습니까 나는 월급봉투채 아내에게 줍니다.그리고 아이들과 아내도 보살펴 주지요.
그런데도 여성들은 그따위 감상적인 말을 듣고 싶어할까요'라고 합니다. 옳습니다. 바로 이것이 여자들의 약점입니다. 그저 늘 칭찬 듣기를 기뻐하고 늘 사랑한다는 귀에 달고 다니기를 바라는 약점이 있습니다. 자,
그런데 비싼 옷은 못 사줄지언정 칭찬이나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조차 인색할 필요가 무엇입니까 남편들아, 아내를 진정으로 칭찬해 주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아내를 위해 기도하는 남편이 되기를 바랍니다 7절하반절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함이라”고 했습니다. 아내에게 하나님의 대한 설교를 하는 시간보다 아내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이 더 중요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해 줄 때 아내는 큰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아내를 위해 기도하는 남편이야 말로 그 아내를 육신과 정신과 영까지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신구약에서 나타난 남편상은 종교적인 대표라는 것입니다.남편은 가정의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종교적인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남편에게 아내는 그 영적 권위에 눌리어 순종하게 되고 기도하는 남편을 아내는 진심으로 존경하게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하였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순종의 모습을 보인 사라가 귀해 보이지만 자기 아내로 하여금 주인이 종처럼 순종하도록 만든 아브라함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아브라함은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에게 제단을 쌓고 기도하는 생활에 열심하였으며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았기에 그 영적 권위에 눌리어 순종하였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보면 남편이 열심히 기도하는 부부 사이에 화목이 넘치고 또한 그 아내들이 남편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순복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슈바이쳐는 원래 유명한 오르간 연주자로 신학교수였는데 한번은 여행을 하다가 벌거벗은 흑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그 흑인상은 백인들의 침략주의를 고발한 작품이었는데 그것을 보고 슈바이쳐는 큰 찔림을 받고 흑인들을 위해 살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의 만류를 불구하고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공부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5년 후에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헬레네라는 간호원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를 아끼던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대단히 기뻐하기를 이제 그가 아프리카에 가는 것을 중단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슈바이쳐는 조금도 결심을 굽히지 않고 헬레네에게 ‘나는 아프리카 사람을 돕기 위해 의사가 되었는데 당신의 남은 생애를 나와 함께 아프리카 밀림 속에서 보낼 생각이 없습니까’ 물었습니다. 헬레네는 이에 대해 답하기를 ‘나는 정식으로 간호원 훈련을 받은 사람입니다.간호원인 내가 없이 당신 혼자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어요’라 했습니다. 거룩한 사명에 사로 잡힌 그에게 하나님은 순종의 여인을 주시사 그 후 30년 동안 헬레네는 그의 아내요,동역자요,친구로서 불쌍한 흑인을 돕는 일에 일생을 바쳤던 것입니다. 홍익의 남편들이여.여러분의 아내를 여러분 몸처럼 사랑하시고 칭찬에 늘 풍성하시고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아내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는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홍익
그런데 가슴 아픈 것은 우리 나라의 이혼율이 점점 급증하여 92년도 한 해에만도 57,000여 쌍이 이혼함으로 전년도에 비해 10%의 증가세를 나타냈다는 것입니다.이는 결혼하고 있는 7명 부부 중의 하나가 이혼하고 비율이 된다고 통계청의 보고입니다. 미국의 3쌍 중의 하나나 두 쌍 중의 하나가 이혼하고 있는 비율에 비하면 대단히 양호한 편이나 문제는 지금 젊은 부부들의 이혼율 속도가 대단히 빨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미국의 가정들은 참으로 한심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영화를 보면 대부분의 부부들이 이혼한 후에 다시 재혼하므로 자녀들이 여러 가지의 형태입니다. 하나는 전처의 자녀이고 또 하나는 부인이 데려온 아이이고 또 하나는 부부가 낳은 자녀입니다. 토요일이면 친부모가 찾아와서 함께 놀아주므로 제각금 이리 저리로 흩어지는 비참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웃을 일이 아닙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그러한 물결이 우리 나라에도 도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부부들은 지금 방심하지 말고 단단히 정신을 차리고 부부의 결속을 다지어야 합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부부의 화목이 돈독해질까 먼저 아내들에게 말씀 드립니다 우리 아내들은 어떻게 남편을 대할까 특히 믿지 않는 남편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므로 주 안에서 아름다운 부부관계를 가져야 할 터인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 방법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남편에게 잔소리식 설교를 될수록 삼가해야 합니다 남편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멀리하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잔소리식의 설교입니다. 잔소리는 아주 무해한 것입니다. D.카네기 부인의 저서 남편을 성공시키는 법 에서 쓰기를 '잔소리가 심한 아내는 가난,낭비,불신심이라는 것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불행을 가정 안에 들어오게 한다'고 했고, 뒤파예라는 작가는 그의 저서 약혼과 신혼 에서 쓰기를 '잔소리는 애정을 철저하게 파괴하기 위해 지옥이 발명한 무기인 것이다. 마치 코프라 뱀에 물린 것처럼 애정에 있어서 치명적인 것이다'고 했습니다. 어느 남자는 '똑똑하고 인물이 좋으나 잔소리가 심한 여자보다는 오히려 좀 모자라고 못났지만 잔소리가 없는 여자를 결혼 상대자로 택하겠다'고 말합니다. 잔소리는 남편을 여러분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 기독교인 아내들이 범하기 쉬운 큰 잘못은 잔소리식 설교에 능한 데 있습니다. 무슨 돈타령, 무슨 옷타령은 안한다 하더라도 남편에게 끝없이 설교하는 버릇이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예를 든다면 ‘당신 빨리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해요’ 또는 ‘당신 그렇게 살면 하나님께 벌받게 되어요’ ‘당신이 사업마다 실패한 것은 하나님과 함께 살지 않은 탓입니다’ 혹은 남편이 교회는 나오지만 열심이 없다는 생각을 가진 아내들은 빨리 남편이 열심을 내서 세례도 받고 집사도 되고 더 나가서는 남선교회의 임원도 되고 더 나가서는 안수집사나 장로가 되기를 바라는 성급한 생각에서 설교를 해댑니다. ‘한 다리는 교회에 한 다리는 세상에 디밀고 그런 식으로 뜨드미지근하게 믿으려면 그만 두는 게 나아요’ ‘당신하고 교회에 가서 같이 못 않겠어요. 담배내가 어찌 나는지 창피해 죽겠어요. 그 놈의 술담배는 제발 끊어요. 당장에 기도원에 가서 3일 금식합시다’ 그저 쫑알 쫑알 설교하고 싶어 끝없이 설교를 빙자하고 자기하고 싶은 말을 잔소리로 퍼붓고 있으니 어느 남편인들 좋아하겠습니까 어느 남편치고 자기 부인에게 설교조로 훈계를 들으며 좋아할 자가 있겠습니까남자는 누구나 아내를 다스리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거꾸로 아내에게서 다스림을 받는다면 모욕을 느낄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때는 남편은 아내의 말이 옳은 줄 알면서도 역으로 나가기 일 수인 것입니다. 제가 처음 나오기 시작하는 어느 남편의 하소연을 들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술담배를 끊어라. 왜 기도생활을 안하느냐 누구네 남편을 보면 부럽기 그지 없다’고 너무 닦달을 하니 술담배를 하루 아침에 끊을 길은 없고 교회를 그만 두고 마음이 불끈 일어날 때가 여러 번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어느 부인은 새로 예수님을 믿고나서 너무 기쁜 나머지 믿지 않는 남편에게 기독교를 믿으라고 강요하기를 계속했습니다. 그 결과 오히려 남편은 주님에게서 더 멀리 떨어지게 했습니다. 결국,어느날 남편은 부인에게서 영원히 떠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내들이여. 남편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하되 설교는 적게하십시오.
남편에게 주 안에서 순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여자분들이 좋든지 싫든지 간에 성경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내는 남편에게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명하는 말씀에 위배되지 않는 한, 즉 남편이 예수님을 믿지 말라 든지,우상숭배하라든지 죄를 지으라고 하든지 하는 것은 주님의 명령이 우선이기에 결코 순종해서는 안되지만 그 외에는 남편에게 순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아내의 자세입니다. 오늘 본문 5절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순종의 자세는 2장 18절에 하인들이 주인에게 순복하는 것과 같은 태도를 말합니다. 하인들은 까다롭거나 몰인정한 주인에게도 순복하는 것처럼 우리 아내들도 역시 인정이 없는 남편이거나 경건치 못한 남편에게도 순종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견딘 것처럼 때로 남편에게서 받는 고통을 견디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남편이 영적으로 부활하는 날을 보게 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남자들 중에서 여러분의 남편을 인생의 반려자로 주시면서 함께 슬픔과 기쁨을 나누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워 주신 남편에게 순복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순복하되 진심으로 하십시오. 억지로 말고 남편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태도로 하십시오. 어느 남편이든지 아내에게서 존경받는 남편이 되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심리학자 프로이드는 말하기를 ‘남성이 하는 모든 일의 배후에는 숨은 동기가 있는데 그것은 아내의 마음에 들고 싶다는 소망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남편은 자기 아내에게서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 받는 남편이 되고 싶은 본능이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스운 소리입니다만 남자들은 자기 아내를 택할 때에 자기보다 잘난 여자보다는 좀 모자라는 여인을 선정한다고 합니다. 그러한 본능이 강한 남편에게 우리 아내들이 무능하다는 말을 함부로 쏘아대거나 마치 가장 무서운 죄인으로 취급하여 지옥에 가야할 자로 정죄한다면 화가나서 견디지 못할 것이요,오히려 역으로 자꾸 빗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집에 가서 남편에게 전도하는 방법은 윽박지르는 방법이 아니라 격려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참 훌륭한 분인데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정말 더 귀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우리 교회에 나가서 가장 귀한 일꾼이 될 것으로 믿고 기도하고 있어요’라고 한다면 남편은 왜인지 흐뭇한 마음이 생길 것이고 교회에 나가고 싶은 충동이 생길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아내로서도 훌륭했다고 합니다. 남편 파트니기우스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얼마나 성급하고난폭했음에도 늘 온순하게 순종했다고 합니다. 남편이 아무리 폭언을 해도 대항하거나 변론하지 않고 대함으로 남편이 나중에는 큰 내화를 받게 되었고 그 부부에게서 성자가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내들이여. 늘 순종의 십자가를 지고 격려의 노래를 부르는 아내 앞에 하나님은 부활의 남편을 허락하실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단장하는 아내가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 3절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외모로 하지 말고”라고 했는데 너무 외모로 사치한 치장에 치우치지 말고 마음을 단장하는 여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기독교인 아내들은 외모를 허술히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어느 곳에고 여성이 몸을 깨끗이 하고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나무란 곳은 없습니다. 어느 남편치고 아내가 제멋대로 사는 것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 남자들은 온종일 동안 직장이나 거리에서 말쑥하고 예쁘게 꾸미거나 단장한 많은 여인들을 보고 돌아옵니다.
그런데 퇴근하여 현관에서 맞는 아내를 보니 한심합니다. 옷도 아무렇게나 걸치고 있고 온종일 잠만 잤는지 머리는 쑤세미 꼴이고 세수도 안했는지 눈곱이 낀 얼굴이 하품을 찢어지게 합니다. 그런 아내를 좋아할 남편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교회를 갈 때보니 옷이나 화장이나 정성을 다합니다. 그러면 남편은 자기는 교회 따위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천대를 받고 있다는 생각에 심한 모욕을 느끼며 교회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아내들은 늘 남편을 대할 때에 아름답게 단장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남편에 대한 예의요,존경심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요지는 외모 단장보다는 마음의 단장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것은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이라고 했습니다. 믿음과 사랑으로 가득한 심령을 말합니다. 십자가로 녹아진 심령입니다. 나다나엘 올슨 목사님은 말하기를 ‘죄인은 죄의 구덩이에서 설교나 논쟁으로 올려지는 것이 아니고 사랑으로 올려져야 한다“고 했고 오스왈드 J. 스미스 박사는 아내들에게 권면하기를 ‘아내들이여,언제나 남편에게 사랑의 두 팔을 벌리고 가십시요. 시간을 내어 사랑을 표시하십시오. 남편이 늙었을지라도 사랑을 표시하십시오’고 했습니다. 사랑은 어떠한 모든 것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사랑이 솟구치는 마음은 온유하고 안정된 심령으로 단장된 마음입니다. 외모로 옷과 화장과 악세사리로 단장하듯이 마음을 매일 온유와 사랑의 것으로 화장을 할 때에 여러분의 남편은 여러분에게서 가장 아름다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홍익의 아내들이여. 모든 남편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고 또한 믿는 남편이라도 더 귀한 그리스도의 선한 일꾼이 되기까지 그저 격려와 순종과 온유로 가득한 아내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번에는 남편들에게 권면합니다 홍익의 남편들이여. 우리는 아내들 앞에서 어떠한 남편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일까 남편의 도리는 무엇일까 7절에 나오고 있습니다.
아내를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 중에 사랑을 담당할 자는 아내가 아니라 바로 남편이라는 것이 성경의 명령입니다. 사랑을 하되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못된 자라도 자기 몸은 끔찍이 위할 것입니다. 배가 고프면 만사를 제치고 음식을 먹고 몸이 아프면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갈 것입니다. 몸이 피곤하면 누워서 쉴 것입니다. 심심하면 재미난 오락을 즐길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몸을 사랑하듯이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남편들은 아내가 자기만 사랑하라고 하지 아내를 사랑하고 도와주는 것에 등한히 합니다. 가정에서 아내를 조금 도와주면 큰 일이나 한 것처럼 야단을 합니다. 그리고 한국 남편들은 아내를 엄하게 대해야 남편답고 아내를 위하는 남편은 공처가나 팔불출로 여기는 잘못된 면이 있습니다. 어느 남편은 자기는 한번도 부엌에 들어가지 않을 것을 자랑하면서 대단히 남자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남편상은 아내를 내 몸처럼 사랑하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여인은 자기가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듣고 싶어합니다. 사랑을 받고 있는 아내는 윤기가 넘치나 사랑을 받지 못할 때 아내들의 마음은 어둠에 가득차고 병들게 되고 그것이 시가 되어 마침내 남편을 상하게 합니다. 사랑은 부어 주면 줄 수록 그것은 씨앗과 같아서 더 큰 사랑의 열매를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남편들이여. 아내라는 땅에 사랑의 씨앗을 심고 심으라. 그러면 많은 열매가 여러분에게 돌아올 줄 아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7절에 보면 여자를 사랑할 이유는 연약한 그릇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자가 아무리 강한 것 같아도 여자는 역시 약한 면이 있습니다. 쓰러지기를 잘합니다. 그래서 여자는 특히 남자의 도움을 받고 싶어합니다. 세실 오스본은 말하기를 ‘아무리 자존심이 강하고 지성이나 능력이 우수하고 다소 지배적인 여성이라고 하더라도 여성에게는 남성에게 의지하고 싶은 본능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남편들은 넓고 관대한 마음으로 약한 그릇과 같은 아내를 감싸주는 사랑을 나타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어느 남편은 너무나 옹졸합니다. 관대한 구석이라고는 없습니다. 부부싸움을 해도 아내가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밉니다. 오늘 오후에 강사로 오시는 김종주 장로님의 저서 행복하나 사랑하나라는 책자에 보면 조사에 의하면 부부싸움을 나서 화를 풀지 않고 먼저 돌아누워서 혹은 분방해서 자는 쪽은 여자보다 남자쪽이 더 많다고 합니다. 믿지 않은 사람들은 술 한잔이면 다 풀릴 것은 십자가 사랑을 가장 강조하는 기독교인 남편 중에 이런 졸장부 남편이 의외로 많다고 합니다. 어느 집사직을 가진 남편은 부부싸움을 하고서 45일 동안 말을 안한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엡 4:26절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고 화를 풀지 않은 채 하룻밤을 보내고 나면 27절 말씀대로 마귀가 틈을 타서 밤새도록 마음 속에 알을 까게 됩니다. 처음 부부싸움 문제는 사소한 것이 었으나 밤새도록 분을 품고 자면 점점 분이 자라갑니다. 지금까지 갖은 고생을 해온 것이 억울해서 못 견디어집니다. 속아 살아온 것 같습니다. 이혼을 하고 싶은 충동을 부글부글 끊습니다. 마귀는 박수를 치면서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때로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그 밤이 가기 전에 서로 화해해야 합니다. 이런 재미 있는 예화가 있습니다. 권희로란 분의 예화집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믿는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고 남편이 집을 나가 방황하다가 밤이 되니까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었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 창문 밖에 서성이는데 아내의 찬송소리가 들립니다. '돌아와 돌아와 맘이 곤한 이여 길이 참 어둡고 매우 험악하니 집을 나간 자여 어서와 돌아와 어서와 돌아와'. 남편은 아내가 부르는 찬송이 남편인 자기를 생각하며 부르는 줄 알고 감동이 되어 문을 안으로 들어가면서 응답의 찬송을 부르기를 '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여 슬프고도 외로워 정처없이 다니니'라 했습니다. 부부는 오랜만에 한마음 한뜻이 되어 찬송을 부르기를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하면서 어느덧 아내가 남편의 품에 안기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부부의 부부싸움과 해결방법입니다. 남편들이여. 큰 마음,큰 사랑으로 아내의 연약함을 감싸 주기를 바랍니다.
아내를 진정으로 칭찬하시기 바랍니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남편들은 자기 아내를 칭찬하는 데 대단히 인색합니다. 특히 한국 남편들은 아내에게 면박을 주는 무뚝뚝한 언사를 멋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것을 요리라고 내어 놓았나 고기가 고무줄처럼 질기 구만' 혹은'무슨 화장을 그리 요란스럽게 하나 꿈에 볼까 무섭군' 혹은 '당신 같은 못생긴 여자를 내가 데리고 사는 것만도 감지덕지해야돼' 또는 '밤낮 아프다는 소리니 이제는 지긋지긋하오. 죽을 라면 빨리 죽어. 더 늙기 전에 새장가 한 번 가보게' 나오는 대로 탁탁 쏘아댑니다. 그러나 진정 옳은 자세가 아닙니다. 어느 분은 말하기를 '여자는 칭찬을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칭찬이라는 비료 속에서 순종의 꽃과 사랑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수천년 동안 여성들은 남자들에게 지배를 받고 살아왔기에 늘 불안의 위치에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찬사와 확신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젊은 남편은 불평하기를 ‘옛날 여자들은 그렇지 않았는데 요즈음 젊은 여자들은 너무 서양물을 먹어서 인지 툭하면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니 이제는 성가셔 죽겠어요. 아니,내가 사랑하는 줄 알면서 왜 묻습니까 나는 월급봉투채 아내에게 줍니다.그리고 아이들과 아내도 보살펴 주지요.
그런데도 여성들은 그따위 감상적인 말을 듣고 싶어할까요'라고 합니다. 옳습니다. 바로 이것이 여자들의 약점입니다. 그저 늘 칭찬 듣기를 기뻐하고 늘 사랑한다는 귀에 달고 다니기를 바라는 약점이 있습니다. 자,
그런데 비싼 옷은 못 사줄지언정 칭찬이나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조차 인색할 필요가 무엇입니까 남편들아, 아내를 진정으로 칭찬해 주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아내를 위해 기도하는 남편이 되기를 바랍니다 7절하반절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함이라”고 했습니다. 아내에게 하나님의 대한 설교를 하는 시간보다 아내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이 더 중요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해 줄 때 아내는 큰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아내를 위해 기도하는 남편이야 말로 그 아내를 육신과 정신과 영까지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신구약에서 나타난 남편상은 종교적인 대표라는 것입니다.남편은 가정의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종교적인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남편에게 아내는 그 영적 권위에 눌리어 순종하게 되고 기도하는 남편을 아내는 진심으로 존경하게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에 보면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하였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순종의 모습을 보인 사라가 귀해 보이지만 자기 아내로 하여금 주인이 종처럼 순종하도록 만든 아브라함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아브라함은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에게 제단을 쌓고 기도하는 생활에 열심하였으며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았기에 그 영적 권위에 눌리어 순종하였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보면 남편이 열심히 기도하는 부부 사이에 화목이 넘치고 또한 그 아내들이 남편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순복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슈바이쳐는 원래 유명한 오르간 연주자로 신학교수였는데 한번은 여행을 하다가 벌거벗은 흑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그 흑인상은 백인들의 침략주의를 고발한 작품이었는데 그것을 보고 슈바이쳐는 큰 찔림을 받고 흑인들을 위해 살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의 만류를 불구하고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공부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5년 후에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헬레네라는 간호원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를 아끼던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대단히 기뻐하기를 이제 그가 아프리카에 가는 것을 중단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슈바이쳐는 조금도 결심을 굽히지 않고 헬레네에게 ‘나는 아프리카 사람을 돕기 위해 의사가 되었는데 당신의 남은 생애를 나와 함께 아프리카 밀림 속에서 보낼 생각이 없습니까’ 물었습니다. 헬레네는 이에 대해 답하기를 ‘나는 정식으로 간호원 훈련을 받은 사람입니다.간호원인 내가 없이 당신 혼자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어요’라 했습니다. 거룩한 사명에 사로 잡힌 그에게 하나님은 순종의 여인을 주시사 그 후 30년 동안 헬레네는 그의 아내요,동역자요,친구로서 불쌍한 흑인을 돕는 일에 일생을 바쳤던 것입니다. 홍익의 남편들이여.여러분의 아내를 여러분 몸처럼 사랑하시고 칭찬에 늘 풍성하시고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아내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는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홍익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