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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에 기록된 기적-청년아 일어나라 (눅7:11-17)

본문

죽음은 공평합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세상에 태 어나는 데는 순서가 있지만 세상을 떠나는 데는 순서가 없는 듯합니다. 보통은 나이 들어 수명을 다하고 죽지만 누구나 불의의 사 고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죽음 앞에는 무력합니다.복음서에는 예수께서 죽은 사람을 살리는 부활의 기적을 일으키신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혼이 그 육체를 떠났다가 예수님의 역사하심으로 소생한 경우는 세 번 있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어린 딸(막 5:21-43/눅 8:49-56)과 본문에 언급된 나인 성 과부의 아들, 그리고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비 나사로(요 11:1-44)가 그들입니다. 어린아이도 청년도 장년도 모두 죽음의 대상이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예수께서 이 세 사람을 살리신 사건을 통해, 죽음이 누구에게나 찾아오듯이 부활도 주 예수를 믿는 자에게 다 해당됨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소망이 되십니다.부활의 은총을 주신 이유 ^ 세 가지 부활의 기적 가운데 특별히 나인 성 과부 아들의 부활 사건을 살펴보면서 예수께서 부활의 기적을 베푸신 까닭을 연구해 봅시다. 저는 예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신 이유를 네 가지로 정리 하였습니다.첫째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잃어버 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께서는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이 낮고 천한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는 인간을 죽음 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에서 구원을 얻을 때 사망 의 문제도 해결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영생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준다고 하셨습니다.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 실 때 부활의 몸을 입게 됩니다.인간 누구나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죽음은 가장 보편적인 인간의 두려움입니다. 인간은 죽음을 무서워하므로 사망의 세력에 종 노릇 하며 삽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우리 믿는 자들 에게 부활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망의 권세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부활이 정말 확실하고 정말 가능한 것이라면, 부활 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믿는다면, 죽음은 안식입니다.본문에는 두 개의 행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장례 행렬과 예수님 의 행렬입니다. 11절에 보면 예수님을 따르던 행렬과 장례 행렬 이 마주쳤습니다. 이 극적인 장면은 인류의 역사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인간의 행렬은 결국 장례 행렬입니다. 인간은 모두 죽음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행렬과 만난 예수님의 행렬은 생명 의 행렬입니다. 예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 11:2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생명 의 행렬은 장례 행렬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었습니다.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을 다시 살리신 이유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중요한 사명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둘째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이 부활의 은총을 맛볼 수 있게 했습니다. 13절 말씀을 보 십시오.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죽은 청년은 과부의 아들이었습니다. 과부와 외아들의 관계는 남달 리 더 끈끈하고 애틋한 정을 나누는 관계입니다. 인생을 외롭게 사는 과부 여인은 단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금지옥엽(金枝玉葉)으 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죽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슬픔과 절망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그 상황을 알고 과부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 아들을 살려 내어 어머니에게 돌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와 아 들은 다시 만났습니다.죽음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이유는 죽음으로 우리와 세상을 떠난 사람의 관계가 단절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만날 수 없고 함께 있 지 못하기 때문입니다.그러나 부활은 재회의 기쁨을 나누게 합니다. 외아들을 살리시어 과부에게 돌려 주시며 다시 만나게 하신 은총은 장차 우리에게 일 어날 일을 예증합니다. 부활의 환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 나는 데 있습니다.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 말씀을 보십시오.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불신자들은 소망 없는 자들입니다. 죽음으로 영영 이별입니다.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 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 4:14)는 말씀대로 주께서 다시 오시는 날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도 만나게 됩니다. 부활은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과 다시 만나는 사건입니다. 그 날의 감격과 흥분을 상상해 보십시오. 주께서 우리에게 부활의 은총을 주시는 이유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셋째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계시하기 위해서입니다.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14절).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도 말씀으로 모든 일을 하셨습니다(창 1장). 말씀으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동일한 말씀 의 능력으로 사람들을 다시 살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요한복음 5장 25-29절 말씀을 보십시오.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 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人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 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 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죽은 자들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산다고 했습니다. 이 음성 은 명령의 말씀입니다. 그 본보기가 되는 것이 나사로의 부활 사건입니다. 예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요 11:43)고 말씀하 시자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그때 주님이 나사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셨다면 모든 시체가 다 일어나 나왔을 것입니다. 우리는 마 지막 날에 동일한 말씀의 권세로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될 것입니다.넷째로,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삶의 가능성을 보이기 위해서입니다.청년이 다시 살아남으로써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그리스도께는 능 력을 드러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 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 보셨다 하더라(16절).성경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일어날 부활의 소망만 강조하지 않습니다. 장차 죽은 자를 살리실 그 부활의 능력을 지금 우리가 누 릴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에베소서 1장 18-20절 말씀을 보십시오.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 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 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 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 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 편에 앉히사.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부활의 능력을 소유하신 하나님 께서 우리가 부활의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하 십니다.빌립보서 3장 10절에 바울의 소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 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바울은 그리스도와 부활의 권능을 알기 원했습니다. 죽은 자 가운 데서 예수님을 살린 하나님의 능력은 대단히 위대합니다. 우리는 그 부활의 위대한 능력을 소유한 분을 믿고 있으므로 우리가 주님 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 그분의 권능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늘 승리하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 고난 너머에 있는 부활의 능력과 영광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 그런데 우리는 때때로 십자가만을 생각하는지, 세상의 온갖 고 뇌를 다 짊어진 듯 어둡고 우울한 표정으로 살아갑니다.당신은 예수께서 다시 사셨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잊지 않습니까? 부활하신 주님, 살아 계신 주님이 늘 당신 곁에 계시다는 사실 을 믿는다면 날마다의 삶이 힘차고 복될 것입니다.나인 성 과부의 아들은 다시 살아났을 때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 을 돌리고 예수님을 증거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육체의 부활은 장 차 올 것이지만 우리는 이미 영적인 부활의 능력을 지금 이 땅에 서 소유하며 믿음과 소망 가운데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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