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먼 자여, 빛으로 (눅4:16-21)
본문
대구 가스폭발 사고로 인한 희생자 1인 당 보상액이 4억 원 정도로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이 지구 상에 흔하고 흔한 것이 사람인데 왜 이렇게 엄청난 보상액이 지불되는 것입니까 우리가 먹는 고기 중에 비싸다고 하는 소고기 값이 한 근 당 만 원 정도입니다. 황소 한 마리도 300만 원 정도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보다 더 큰 황소도 300만 원에 불과한데 사람에 대해서 100배 이상의 가치를 두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사람을 황소보다 더 존귀하게 여기야 하는 것입니까
1.인류의 비극 성경을 떠나서는 인간이 독특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생명체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서 진화론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견해에 의하면 모든 생물은 무생물에서 진화되었고 사람과 원숭이 사이에 근원적인 차이가 없습니다. 사람은 또한 종류의 동물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런 견해가 필연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주의해야 합니다.
첫째로, 진화론은 계급 투쟁적 공산주의를 조장했습니다. 공산주의에서 인간은 움직이는 물질 즉 기계에 불과합니다. 자유나 창의성은 필요하지 않고 다만 절대 명령과 절대 복종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인명 경시 풍조가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었습니다. 혁명에 역행하는 사람은 처벌되었습니다. 엥겔스는 인간의 기원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결국 원숭이가 진화하여 인간이 되었는데, 그 과정은 노동이다. 원숭이가 노동을 시작했다. 원숭이가 먹기 위해서 혹은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노동하는 과정에서 도구의 사용 을 배우게 되었다. 처음엔 돌도 던져 보고, 그 다음에는 삐쭉한 나무도 써보고, 하다보니 까 일하기가 용이하였다. 그래서 도구가 발달하게 되었다. 도구가 발달하다 보니까 이웃 원숭이와 통신을 할 필요가 있게 되고 옆에 있는 원숭이와 자꾸 통신을 하려고 보니까 그게 신호가 되어 언어가 나왔다. 언어까지 생겨서 통신하다 보니까 그 다음에는 사고의 힘이 생겨서 이성이 생겼다. 이렇게 도구의 사용에서 언어로 발달하고 언어에서 이성으로 발달 하여 원숭이가 고등동물 인간이 된 것이다.” 강제수용소의 철학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노동을 시켜라. 체제에 반대하고 말썽 부리는 불평분자들은 인간이 아니다. 잡아다 노동을 시켜라. 그들은 노동을 통하여 언어가 발달되고, 이성을 갖게 되고 사람이 될 것이다.” 중국의 문화혁명도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노동이 이간을 개화하고 문화인을 만들고 이성을 발달시키는데 대학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10년 동안 대학 문을 닫고 전부 농장과 공장으로 쫓아낸 것입니다. 1978년 11월 18일자 프랑스의 르 휘가로 잡지에 공산주의 혁명 과정에서 학살된 사람의 통계가 실렸습니다. 구 소련에서 7천만 명, 중국에서 6천 7백만 명, 캄보디아에서 3백만 명, 기타 지역에서 1천만 명, 총계 1억 5천만 명이었습니다. 말이 1억 5천만 명이지 이 사람들을 60년 동안 죽이려면 10분마다 44명 씩 살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스탈린은 “한 사람의 살인은 비극일지 모르지만 백만인의 살인은 통계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캄보디아가 함락되었을 때 그 나라 인구의 1/3이 공산주의 목표를 위해서 살해되었습니다. 공산주의의 아버지 칼 마르크스는 그의 유명한 저서 “자본론”을 진화론의 아버지인 챨스 다윈에게 바치기를 원했습니다.
둘째로, 진화론은 인종차별을 부추겼습니다. 호주에 사는 많은 백인 정착인들은 그곳 원주민들을 원시 미개인으로 믿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고 보이는 대로 모두 사살해 버렸습니다. 유럽인들도 유색 인종에 대해서 편견을 가졌습니다. 2차 대전을 일으킨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믿고 탐탁치 않은 민족이나 개인을 근절시키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 모두가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의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셋째로, 진화론은 낙태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대구 가스폭발 사고로 100여 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전국이 이 뉴스를 듣고 술렁거리며 큰 분노를 나타냈습니다. 그렇지만 매일 전국에서 4천 명이 살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침묵하고 있습니다. 아니 적극 지지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낙태 문제입니다. 필요 없는 종이를 찢고 꾸겨서 휴지통에 버리는 것 같이, 필요 없는 캔을 찌그러뜨려서 버리는 것 같이, 태아를 필요 없다고 찢어버리는 것입니다. 한 부인이 세 살 난 딸을 데리고 산부인과를 찾아와서 뱃속의 태아를 낙태시켜 달라고 의사에게 부탁했습니다. 그 의사는 여러 말로 그 생각을 버리도록 설득했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술칼을 들고 세 살 짜리 아이를 붙잡아 찌를 듯한 시늉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은 비명을 지르며 큰 소리로 “살인이야” 하고 외쳤습니다. 뱃 속의 태아나 세 살 난 아이나 똑 같이 귀한 생명을 가진 살아 있는 존재입니다. 이상과 같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이나 사회는 인간성을 상실하게 되고 잔인하게 됩니다.
2.인류의 소망 흑인은 백인과 똑 같은 권리나 대우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기업체를 소유한 돈 많은 사람은 평범한 월급쟁이인 나에게 마음껏 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고로 사망한 사람에 대해서 유족에게 황소 한 마리 값으로 배상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아니라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겠습니까 그 동안 여러 차례 남북한 간 대화가 있었습니다. 적십자 회담, 고위급 회담, 종교인 회합 등. 우리가 매스콤을 통해서 그들의 주장을 들으면서 말도 되지 않는 억지 주장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한다면 위의 질문에 대한 타당한 근거를 제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깨어야 합니다. 눈을 떠야 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요9:39-41)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3:17)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복음은 “복된 소식”이란 뜻입니다. 이 복음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진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 고”(창1:27) 이 말씀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이 말씀은 인간의 존엄성을 인류에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에 동물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존귀한 존재입니다. 황소나 원숭이와 비교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인종 차별을 중지하도록 인류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흑인이건 백인이건 그들 개개인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에 만민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합니다. 이 말씀은 남녀 평등 사상을 인류가 배우도록 했습니다. 여자도 남자와 동일한 권리를 가집니다. 이 말씀은 장애인의 인권과 복지 향상에 기여했습니다. 장애인에게도 신체는 손상되었지만 하나님의 형상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그들을 차별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낙태 반대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태아에게도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에 낙태는 살인이며 큰 죄악입니다. 이 말씀은 인류애를 고취시켰습니다. 빈민들, 고아와 과부들, 문명 오지의 미개인들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여 각종 자선단체, 의료 기관, 교육 기관을 세우기도 하고 그들의 복지를 위해서 개인적인 삶을 희생하도록 했습니다. 도대체 인류가 어디에서 이렇게 고상한 생각을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둘째로, 예수님은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복음에는 사람이 죄의 종이며 사단에게 얽매여 있다는 진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회개하고 그분을 영접하는 자에게 죄사함을 주시고 자유를 주시고 평안을 주십니다. 예수님 안에 자유가 있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은혜가 있습니다. 복음은 눌린 자를 자유케 합니다. 장애인도 자신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삶을 희망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죄인도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지게 됩니다. 무엇보다 죽을 수밖에 없고 지옥에서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부활의 소망을 가지게 되고 천국의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30세 쯤 되셨을 때 공개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읽으신 성경 말씀이 이사야서 61:1-2인데 이 말씀은 그분 자신이 하실 일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에 의해서 세워졌습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을 지속적으로 행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분에 의하여 세워졌습니다. 따라서 그분의 하신 일이 곧 교회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포로된 자는 신분 상 가난한 자입니다. 눈 먼 자는 육체적으로 가난한 자입니다. 눌린 자는 힘이 없어 가난한 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자유와 광명을 찾아 주는 것이 복음입니다. 교회는 이를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1.인류의 비극 성경을 떠나서는 인간이 독특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생명체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서 진화론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견해에 의하면 모든 생물은 무생물에서 진화되었고 사람과 원숭이 사이에 근원적인 차이가 없습니다. 사람은 또한 종류의 동물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런 견해가 필연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주의해야 합니다.
첫째로, 진화론은 계급 투쟁적 공산주의를 조장했습니다. 공산주의에서 인간은 움직이는 물질 즉 기계에 불과합니다. 자유나 창의성은 필요하지 않고 다만 절대 명령과 절대 복종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인명 경시 풍조가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었습니다. 혁명에 역행하는 사람은 처벌되었습니다. 엥겔스는 인간의 기원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결국 원숭이가 진화하여 인간이 되었는데, 그 과정은 노동이다. 원숭이가 노동을 시작했다. 원숭이가 먹기 위해서 혹은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노동하는 과정에서 도구의 사용 을 배우게 되었다. 처음엔 돌도 던져 보고, 그 다음에는 삐쭉한 나무도 써보고, 하다보니 까 일하기가 용이하였다. 그래서 도구가 발달하게 되었다. 도구가 발달하다 보니까 이웃 원숭이와 통신을 할 필요가 있게 되고 옆에 있는 원숭이와 자꾸 통신을 하려고 보니까 그게 신호가 되어 언어가 나왔다. 언어까지 생겨서 통신하다 보니까 그 다음에는 사고의 힘이 생겨서 이성이 생겼다. 이렇게 도구의 사용에서 언어로 발달하고 언어에서 이성으로 발달 하여 원숭이가 고등동물 인간이 된 것이다.” 강제수용소의 철학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노동을 시켜라. 체제에 반대하고 말썽 부리는 불평분자들은 인간이 아니다. 잡아다 노동을 시켜라. 그들은 노동을 통하여 언어가 발달되고, 이성을 갖게 되고 사람이 될 것이다.” 중국의 문화혁명도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노동이 이간을 개화하고 문화인을 만들고 이성을 발달시키는데 대학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10년 동안 대학 문을 닫고 전부 농장과 공장으로 쫓아낸 것입니다. 1978년 11월 18일자 프랑스의 르 휘가로 잡지에 공산주의 혁명 과정에서 학살된 사람의 통계가 실렸습니다. 구 소련에서 7천만 명, 중국에서 6천 7백만 명, 캄보디아에서 3백만 명, 기타 지역에서 1천만 명, 총계 1억 5천만 명이었습니다. 말이 1억 5천만 명이지 이 사람들을 60년 동안 죽이려면 10분마다 44명 씩 살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스탈린은 “한 사람의 살인은 비극일지 모르지만 백만인의 살인은 통계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캄보디아가 함락되었을 때 그 나라 인구의 1/3이 공산주의 목표를 위해서 살해되었습니다. 공산주의의 아버지 칼 마르크스는 그의 유명한 저서 “자본론”을 진화론의 아버지인 챨스 다윈에게 바치기를 원했습니다.
둘째로, 진화론은 인종차별을 부추겼습니다. 호주에 사는 많은 백인 정착인들은 그곳 원주민들을 원시 미개인으로 믿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고 보이는 대로 모두 사살해 버렸습니다. 유럽인들도 유색 인종에 대해서 편견을 가졌습니다. 2차 대전을 일으킨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믿고 탐탁치 않은 민족이나 개인을 근절시키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 모두가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의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셋째로, 진화론은 낙태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대구 가스폭발 사고로 100여 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전국이 이 뉴스를 듣고 술렁거리며 큰 분노를 나타냈습니다. 그렇지만 매일 전국에서 4천 명이 살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침묵하고 있습니다. 아니 적극 지지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낙태 문제입니다. 필요 없는 종이를 찢고 꾸겨서 휴지통에 버리는 것 같이, 필요 없는 캔을 찌그러뜨려서 버리는 것 같이, 태아를 필요 없다고 찢어버리는 것입니다. 한 부인이 세 살 난 딸을 데리고 산부인과를 찾아와서 뱃속의 태아를 낙태시켜 달라고 의사에게 부탁했습니다. 그 의사는 여러 말로 그 생각을 버리도록 설득했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술칼을 들고 세 살 짜리 아이를 붙잡아 찌를 듯한 시늉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은 비명을 지르며 큰 소리로 “살인이야” 하고 외쳤습니다. 뱃 속의 태아나 세 살 난 아이나 똑 같이 귀한 생명을 가진 살아 있는 존재입니다. 이상과 같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이나 사회는 인간성을 상실하게 되고 잔인하게 됩니다.
2.인류의 소망 흑인은 백인과 똑 같은 권리나 대우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기업체를 소유한 돈 많은 사람은 평범한 월급쟁이인 나에게 마음껏 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고로 사망한 사람에 대해서 유족에게 황소 한 마리 값으로 배상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아니라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겠습니까 그 동안 여러 차례 남북한 간 대화가 있었습니다. 적십자 회담, 고위급 회담, 종교인 회합 등. 우리가 매스콤을 통해서 그들의 주장을 들으면서 말도 되지 않는 억지 주장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한다면 위의 질문에 대한 타당한 근거를 제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깨어야 합니다. 눈을 떠야 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요9:39-41)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3:17)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복음은 “복된 소식”이란 뜻입니다. 이 복음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진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 고”(창1:27) 이 말씀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이 말씀은 인간의 존엄성을 인류에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에 동물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존귀한 존재입니다. 황소나 원숭이와 비교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인종 차별을 중지하도록 인류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흑인이건 백인이건 그들 개개인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에 만민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합니다. 이 말씀은 남녀 평등 사상을 인류가 배우도록 했습니다. 여자도 남자와 동일한 권리를 가집니다. 이 말씀은 장애인의 인권과 복지 향상에 기여했습니다. 장애인에게도 신체는 손상되었지만 하나님의 형상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그들을 차별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낙태 반대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태아에게도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에 낙태는 살인이며 큰 죄악입니다. 이 말씀은 인류애를 고취시켰습니다. 빈민들, 고아와 과부들, 문명 오지의 미개인들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여 각종 자선단체, 의료 기관, 교육 기관을 세우기도 하고 그들의 복지를 위해서 개인적인 삶을 희생하도록 했습니다. 도대체 인류가 어디에서 이렇게 고상한 생각을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둘째로, 예수님은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복음에는 사람이 죄의 종이며 사단에게 얽매여 있다는 진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회개하고 그분을 영접하는 자에게 죄사함을 주시고 자유를 주시고 평안을 주십니다. 예수님 안에 자유가 있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은혜가 있습니다. 복음은 눌린 자를 자유케 합니다. 장애인도 자신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삶을 희망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죄인도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지게 됩니다. 무엇보다 죽을 수밖에 없고 지옥에서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부활의 소망을 가지게 되고 천국의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30세 쯤 되셨을 때 공개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읽으신 성경 말씀이 이사야서 61:1-2인데 이 말씀은 그분 자신이 하실 일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에 의해서 세워졌습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을 지속적으로 행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분에 의하여 세워졌습니다. 따라서 그분의 하신 일이 곧 교회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포로된 자는 신분 상 가난한 자입니다. 눈 먼 자는 육체적으로 가난한 자입니다. 눌린 자는 힘이 없어 가난한 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자유와 광명을 찾아 주는 것이 복음입니다. 교회는 이를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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