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귀와 마음을 가져라 (신29:2-9)
본문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했다. 430년 동안의 고통은 이루말로 할 수 없었다. 출 2:23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상달 한지라 " 그 고통 가운데 있는 백성을 하나님은 10가지 재앙을 애굽 땅에 일으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이끌어 내셨다. 왜 광야로 인도 하셨는가 가까운 지역에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주 시켜도 될 터인데 왜 그 험한 광야로 데리고 나가셨을까 성경에 기록되기를 신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또한가지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가기 위해서는 이 광야를 건너가야만 했다. 광야에서 40년동안 백성들은 수많은 하나님의 기적과 이적을 보았다. 그러나 40년동안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거역한자들은 이제 다 죽고 새로운 세대가 약속의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120세의 늙은 지도자 모세의 마지막 말을 지금 듣고 있다. 그러나 지금 모세의 말은 당시의 백성들에게만 극한 된 것이 아니다고 성경은 밝히고 있다. 14-15절을 다같이 봉독하자. 하나님은 그 동안 수없이 백성들에게 깨달을 수 있는 마음들을 주셨다. 볼 수 있는 눈들을 주셨다.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고. 깨닫지 못했다.
이 말씀은 지금 우리에게도 해당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를 바란다. 첫 번째:보는 눈 ! 4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많은 기적들을 보게 하셨다. 즉 볼 수 있는 눈을 주셨다. 그 수많은 기적과 사건들을 보았지만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 이제 가나안 땅을 들어가는 다음 세대들에게 모세는 이제 제발 보는 눈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것이다.
보는 눈 이 눈은 육적인 눈이 아닌 영적인 눈을 말한다. 아무리 하나님이 보여주어도 영적인 눈이 열려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없다. 인간에게는 지안 지적인 눈. 육안 육적인 눈. 영안 영적인 눈. 세 가지 눈이 있다.
어떤 사건을 어떤 눈으로 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육적인 눈으로 보면 모든게 육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영안을 가지고 바라보면 그 사건 뒤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뜻을 볼 수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큼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을 많이 본 백성들도 없다. 홍해 바닷가 눈앞에서 갈라지는 것을 그들은 보았다. 광야에서 만나가 내리는 기적도 보았다.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는 것도 보았다. 철벽성 여리고 성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도 보았다. 수많은 이적을 보았지만 그들은 육적인 눈으로만 보고 끝냈다. 영적인 눈으로 그 사건을 바라보지 못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얼마나 사랑 하는지는 보지 못했다. 그들은 육적으로 모든 것을 보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만 했다. 그들이 영안만 열렸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5절-6절 을 보자. 40년동안 옷이 낡지 아니했다. 신발도 헤어지지 아니했다. 이 말은 작은 몸에 입었던 옷 신발이 신체발육으로 인해 늘어났다는 것이 아니다 옷과 신발을 40년동안 불편 없이 입고 신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배려를 보지 못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더 많은 이적과 기적을 본 자들이다. 무엇을 보았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 인류에 죄 때문에 오신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인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보았다. 사망권세 이기시고 3일만에 부활하신 것을 보았다. 본 것을 믿으십니까 육적인 눈으로는 우리가 직접 못 보았지만 영적인 눈으로 우리는 이 역사적 사실을 믿고있고 본 자들이다.
마 6:22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했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육적인 눈도 어두우면 세상의 자연을 볼 수 없듯이 영적인 눈이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없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가 내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사실이 왜 안 믿어지는가 영안이 어둡기 때문이다. 영적 소경이기 때문에 그 놀라운 사실이 믿어지지 않은 것이다. 사순절 기간이다. 우리는 육적인 눈으로 십자가를 바라 볼 것이 아니라 영안으로 바라볼 때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를 보게 될 것이다. 왜 우리가 이렇게 영안이 어두운 자들이 되었는가 원수 마귀에 미혹되어서 우리의 영안이 어두워져 버렸다. 하와가 마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본즉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게 보였다. 하와는 마귀의 미혹으로 그만 육의 눈으로 선악과를 보고 말았다 우리가 어떤 것을 어떤 눈으로 보느냐는 너무 중요하다. 세상 것들을 바라볼 때 육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다 갖고싶고 먹고싶고 소유하고 싶어진다.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우리는 저 세상의 모든 것을 바라 볼 때도 잘 보아야 한다. 육의 눈으로 바라보면 우리들또한 미혹되고 만다. 삼손이 성령님이 충만했다. 그러나 그만 이방여인의 아름다움을 육의 눈으로 바라볼 때 그 눈은 육의 눈이 되어 버렸고 그 눈은 결국 뽑히고 말았다. 성도 여러분 ! 영안이 열려지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에게 마 23장에서 이 소경들아! 5번씩이나 소리치고 계신다.
그러므로 왜 우리가 영안이 어두워져 버리고 소경이 되는가 바로 죄 때문이다. 이 죄악이 우리의 눈을 가리우고 하나님의 뜻을 못 보게 하고 예수의 사랑을 못보게하고 성령님의 인도를 못 보게 한다.
그러므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 길은 오직 십자가 예수를 만나는 길뿐이다. 십자가 예수를 만날 때 우리의 죄의 문제도 해결 되면서 우리의 영안도 동시에 열리게 되는 것이다. <예 화> 사마리아 여인을 보라 ! 그가 남편을 다섯이나 갈아치운 더러운 여자였다. 그녀는 죄악으로 견딜 수 없는 나날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우물가에서 그는 예수를 만났다 예수를 만난 그녀는 죄가 사함 받음과 동시에 그녀의 영안이 떠졌다. 그리고 그녀는 소리쳤다.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 " <예 화> 한 여인 얘기를 하나 더하자. 우리는 성경에 나온 일곱 일곱 귀신 들린 막달아 마리아를 잘안다 귀신에 잡혀 살 때 막달라 마리아의 삶은 비참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나고 예수님이 일곱 귀신을 쫓아 내주자 그 후로의 막달아 마리아의 삶은 온전히 예수만 바라보고 사는 영적인 자의 삶이었다. 그녀의 눈은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맨 처음 보는 영광을 보았다. 영안이 열려지는 눈을 가지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를 만나야만 된다. 우리의 죄의 문제 역시 예수를 만나야만 해결되듯이 죄악의 눈으로 가려져 버린 우리의 육적인 눈이 영적인 자의 눈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를 만나야만 된다. (요8:12)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보는 눈은 더욱 중요하다. 계시록에는 본다는 말이 무려 72번이나 나올 정도로 마지막 때는 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러나 보더라도 어떤 눈으로 보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영안으로 볼 때 우리는 이 마지막 때를 지혜롭게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육의 눈만 가지고 모든 것을 본다면 짐승 같은 삶을 살고 말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의 영안이 열려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참 뜻을 알게되고 광야 같은 삶속에서 어떤 고난이 올지라도 그 고난 뒤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참 사랑을 깨닫게 될 것이다. 육적인 눈으로 볼 때는 원망과 불평만 나올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영안이열려진 영의 눈으로 볼 때는 그 어떤 어려움, 환난, 핍박이 올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참고 이기어 내는 것이다. 시 119:18 에서 시편 기자가 외쳤듯이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우리 모두 영안이 열려서 주님의 기이한 뜻을 알고 좆으며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듣는 귀 ! 4절
보는 눈도 중요하지만 듣는 귀 또한 중요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수한 하나님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여겼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키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으리라 했지만 백성들은 두려워하지 아니했다.
듣는 귀 영적 귀를 말한다. 성경은 수많은 곳에서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말하고 있다. 이것은 육적인 귀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영적인 귀를 두고 한 말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말씀이 들려지고 있는가 지금 이 시간도 하나님 말씀이 우리에게 들려지고 있다. 왜 이런 말씀을 우리에게 들리게 하는가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기 위함이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런데 우리가 말씀을 듣고도 믿음이 생기지 않고 우리의 믿음에 변화가 없다면 우리는 육적인 귀로만 말씀을 듣고 끝나 버리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부터 언약의 말씀을 받았다. 우상을 섬기지 말라 !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라 ! 순종해라! 물론 모든 말씀을 거역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는 그들의 가는 길이 순탄했다. 그러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거역할 때는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가 뒤따랐다. 애굽에서 나올 때 어린양을 죽여서 문설주와 문지방에 어린양의 피를 바르라고 할 때 백성들은 순종했다. 그때 애굽에 내린 하나님 재앙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하지 아니했다. 여리고 성도 하나님 말씀대로 귀를 기울이고 순종할 때 그 철벽성은 무너졌다. 그러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에는 귀를 기울이지 아니했다.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아니했다. 하나님은 어떤 말은 귀를 기울이고 어떤 말은 버리라는 말씀이 아니었다. 출15:26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모든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온전히 귀를 기울이지 아니했다 우리도 저 백성들과 다를 바 없다.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귀를 기울이지 아니한다. 들을 때는 깨달음이 오는데 듣고 나면 금방 다 잊어버린다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 주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기 위함인데 우리의 믿음이 전혀 변함이 없다면 큰 문제이다. 문제는 하나님 말씀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귀가 영적인 귀가 되지 아니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들을 때뿐일 것이다. 왜 우리가 영적인 귀가 되지 못하는가
행 28:27 마음이 완악하여지기 때문에 귀가 둔해 진다고 했다 우리의 마음이 완악하여 지는 것은 바로 죄 때문이다. 사도들의 설교를 듣고 초대교회 성도들이 "어찌할꼬" 하며 자신들의 죄를 회개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영의 귀가 열렸기 때문이다. 세상 것으로 가득찬 우리 귀로는 영적인 하나님 말씀 들어도 잠깐 들을 때뿐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귀들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 렘 6:10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으로 듣지 못하는 도다. 세상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세상소리에 귀를 잔뜩 기울이고 사는데 어찌 하나님의 소리가 들리겠는가 삼상 3장에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를 때 사무엘을 그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는 주님의 소리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탄의 상징인 뱀 특징 중에 하나가 귀가 없다. 악한 것에 잡혀버리는 자는 영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이 땅에 초림으로 오신 예수가 얼마나 많은 말씀을 가르치고 전했는가 그러나 타락한 저 무리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모두 다 흘려 버렸다. 듣고만 끝난 것이다. 이 시대 우리의 모습입니다 수많은 설교를 들어도 듣고만 끝나 버리는 우리의 모습이다. 요 8: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믿지 아니하는 도다" 요 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요 10:5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성도는 양이라고 성경에서 말씀했다.
그런데 이 짐승 양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우리가 너무나 닮은 모습이 있다. 이 양들은 자꾸 울타리 밖으로 넘어 도망치려 한다. 우리 안에 먹은 풀이 많이 있어도 자꾸만 울타리를 어정거리고 넘어가려고 한다. 그때 목동은 지팡이로 때려서 양을 울타리에서 떨어지게 한다. 우리 성도들이 예수 안에 진정한 행복과 기쁨이 있는데도 자꾸만 세상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세상을 넘본다. 양의 또 특이한 것은 자기 목자는 틀림없이 안다는 것이다 순하고 미련한 것 같으나 자기 목자만큼은 알고 있다. 요 10:14예수님께서 "내가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안다고 하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수 그리스도의 양들이십니까 주님의 양이라면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만 한다. 듣지 못한다면 . 아니 듣고만 끝나 버린다면 우리는 누구의 양인가 듣고만 끝나 버리는 우리의 귀가 되어서는 안된다. 말씀을 듣고 "어찌할꼬" 하는 회개가 터지고 변화되는 모습이 우리 안에서 나타나야만 한다. 마지막 때에는 미혹하는 소리가 우리를 넘볼 것이다. 마24:4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 사람의 미혹은 눈으로 보다는 귀로서 우리를 미혹 할 것이다. 듣기 좋은 말, 달콤한 말로, 우리를 미혹할 것이다. 계18:13 우리의 영혼이 상품이 될 것이다고 했다. 예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영적인 귀가 되지 못하면 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멸망 당했듯이 모두 다 멸망 당하고 말 것이다. 예수님은 막4:23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어두워져 가는 시대 속에서 우리 모두 영의 귀를 가지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깨닫는 마음을 가져라 ! 4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얼마나 하나님은 깨달을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주었는지 모른다. 광야 40년동안 때로는 벌로, 때로는 타이름으로 때로는 표적으로 보여주었지만 백성들은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깨닫는 마음 대신 원망과 불평만 가득 찼다.
깨닫는 마음 하나님의 뜻을 아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왜 지금 우리에게 이런 고난이 오고 어려움이 오고 핍박이 오는지 깨달아야 한다. 마음 이 마음 또한 육적인 마음이 아니라 영적 상태의 마음을 뜻한다. 육적인 마음으로는 하나님 뜻을 알 수 없다. 당연히 불평과 원망이 나올 수밖에 없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가 깨닫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다시 말해서 영적인 심령이 되기 위해서는 . 그리스도의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안이 열려야 되고 , 우리의 영의 귀가 열려야만 된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란다. 우리의 심령은 보는 눈에 따라서 감동되고 흥분된다. 우리 귀 또한 기분 나쁜 소리 들으면 마음이 상하고 기분 좋은 소리 들으면 기쁜 마음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눈이 영적인 자의 눈이 되어서 세상을 영적인 면으로 보면 산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며 살게 될 것이다. 우리 귀 또한 영의 귀가 되어서 세상소리 보다 하나님 말씀에 더 귀를 기울이고 사모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뜻을 깨닫는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솔직히 하나님 뜻만 알고 산다면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문제 겠는가 그러나 하나님 뜻을 알기보다는 내 뜻을 더 전하기를 원하고 나타내기 원하기 때문에 우리가 문제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게 깨닫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역사하고 계신다. 말씀으로 깨닫게 하신다. 사람을 통해서 깨닫게 하신다. 자연을 통해서 깨닫게 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는 깨닫기도 한다. 그러나 잠간뿐이다. 금방 그 깨달음을 잊어버리고 전에 생활로 돌아가 버린다. 왜 그럴까요 또 우리는 미련한 짐승처럼 아예 하나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산다. 왜 그럴까요 마음이 강퍅하기 때문이다. 겔 3:7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여 네 말을 듣고자 아니 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 함이라" 이 시대 우리의 마음이 너무나 강퍅해지고 있다. 마 15: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할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바라보는 영안을 가지고 세상을 보자 ! 그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 이 시대 영의 귀를 가지고 마지막 때에 들려오는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자! 그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 마음을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이사야 1:3 에서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 짐승보다 못하다고 하셨다. 성도 여러분 ! 하나님 마음을 아십니까 어떤 마음을 우리가 갖기를 원하신지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 곧 그리스도 예수의마음이니" 예수의 마음이 어떤 마음입니까 빌 2:6-8 자기를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마음이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낮아지는 마음이 있습니까 예수를 위해 죽기까지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이 있습니까 우리에게 이 마음이 주어지지 않은 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고후 3:14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예수 안에서 완악하고 강퍅한 마음은 떠나고 깨닫는 마음을 가지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만 깨닫는 마음이 들어오고 세상에 나가면 언제 들었더냐 식의 마음이 되어서는 안된다. 깨닫는 마음에는 "어찌할꼬" 하는 회개가 뒤따라야 한다. "내가 죄인이로다" 애통이 있어야 한다. 옷을 찢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을 찢는 아픔이 뒤따라야 한다. 깨닫는 마음은 이 시대가 어느 시대인지 안다 시대의 마지막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 여러분 ! 세상 속에서는 머리가 잘 움직이는데 영적 세계에서는 깨닫는 마음이 없다면 이것처럼 비참한 인생은 없을 것이다. 깨닫는 마음을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결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깨닫고 사는 것 세상 속에서도 중요하듯이 영적인 세계 또한 이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에게 "에레미야야 무엇을 보느냐" 예레미야는 자기의 본 것을 말했다. "녜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네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 살구나무를 보았다는 말이 뭔데 하나님은 잘 보았다고 했을까요 살구나무는 봄에 가장 먼저 피는 꽃나무이다. 이것은 예레미야 신앙이 깨어있다는 뜻을 말한다 영안을 가질 수 있는 자는 깨어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다. 영적인 잠만 쿨쿨 자고있는 자는 영안이 열릴 수 없다.
시대의 마지막을 볼줄아는 영안을 가지기를 바란다. 마지막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기를 바란다. 계시록에는 귀 있는 자는 들어라는 말씀이 많이 나온다 마지막 때일수록 우리는 잘 분별해서 들어야 될 것이다. 미혹하는 소리들이 너무나 난무하는 시대다. 영의 눈과 영의 귀를 가진 자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게 될 것이다. 내 뜻대로 살아서는 안될 것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면서 예수님의 말씀하신 그 한마디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이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 " 예수의 마음을 품으며 살아가야 할 우리들. 예수의 눈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우리들 예수의 귀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 우리들이다. 이 세 가지를 가질 수 있는 길은 오직 세상 것을 멀리하고 성령님충만 받어야 된다.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말씀은 지금 우리에게도 해당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를 바란다. 첫 번째:보는 눈 ! 4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많은 기적들을 보게 하셨다. 즉 볼 수 있는 눈을 주셨다. 그 수많은 기적과 사건들을 보았지만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 이제 가나안 땅을 들어가는 다음 세대들에게 모세는 이제 제발 보는 눈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것이다.
보는 눈 이 눈은 육적인 눈이 아닌 영적인 눈을 말한다. 아무리 하나님이 보여주어도 영적인 눈이 열려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없다. 인간에게는 지안 지적인 눈. 육안 육적인 눈. 영안 영적인 눈. 세 가지 눈이 있다.
어떤 사건을 어떤 눈으로 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육적인 눈으로 보면 모든게 육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영안을 가지고 바라보면 그 사건 뒤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뜻을 볼 수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큼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을 많이 본 백성들도 없다. 홍해 바닷가 눈앞에서 갈라지는 것을 그들은 보았다. 광야에서 만나가 내리는 기적도 보았다.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는 것도 보았다. 철벽성 여리고 성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도 보았다. 수많은 이적을 보았지만 그들은 육적인 눈으로만 보고 끝냈다. 영적인 눈으로 그 사건을 바라보지 못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얼마나 사랑 하는지는 보지 못했다. 그들은 육적으로 모든 것을 보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만 했다. 그들이 영안만 열렸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5절-6절 을 보자. 40년동안 옷이 낡지 아니했다. 신발도 헤어지지 아니했다. 이 말은 작은 몸에 입었던 옷 신발이 신체발육으로 인해 늘어났다는 것이 아니다 옷과 신발을 40년동안 불편 없이 입고 신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배려를 보지 못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더 많은 이적과 기적을 본 자들이다. 무엇을 보았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 인류에 죄 때문에 오신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인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보았다. 사망권세 이기시고 3일만에 부활하신 것을 보았다. 본 것을 믿으십니까 육적인 눈으로는 우리가 직접 못 보았지만 영적인 눈으로 우리는 이 역사적 사실을 믿고있고 본 자들이다.
마 6:22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했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육적인 눈도 어두우면 세상의 자연을 볼 수 없듯이 영적인 눈이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없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가 내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사실이 왜 안 믿어지는가 영안이 어둡기 때문이다. 영적 소경이기 때문에 그 놀라운 사실이 믿어지지 않은 것이다. 사순절 기간이다. 우리는 육적인 눈으로 십자가를 바라 볼 것이 아니라 영안으로 바라볼 때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를 보게 될 것이다. 왜 우리가 이렇게 영안이 어두운 자들이 되었는가 원수 마귀에 미혹되어서 우리의 영안이 어두워져 버렸다. 하와가 마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본즉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게 보였다. 하와는 마귀의 미혹으로 그만 육의 눈으로 선악과를 보고 말았다 우리가 어떤 것을 어떤 눈으로 보느냐는 너무 중요하다. 세상 것들을 바라볼 때 육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다 갖고싶고 먹고싶고 소유하고 싶어진다.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우리는 저 세상의 모든 것을 바라 볼 때도 잘 보아야 한다. 육의 눈으로 바라보면 우리들또한 미혹되고 만다. 삼손이 성령님이 충만했다. 그러나 그만 이방여인의 아름다움을 육의 눈으로 바라볼 때 그 눈은 육의 눈이 되어 버렸고 그 눈은 결국 뽑히고 말았다. 성도 여러분 ! 영안이 열려지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에게 마 23장에서 이 소경들아! 5번씩이나 소리치고 계신다.
그러므로 왜 우리가 영안이 어두워져 버리고 소경이 되는가 바로 죄 때문이다. 이 죄악이 우리의 눈을 가리우고 하나님의 뜻을 못 보게 하고 예수의 사랑을 못보게하고 성령님의 인도를 못 보게 한다.
그러므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 길은 오직 십자가 예수를 만나는 길뿐이다. 십자가 예수를 만날 때 우리의 죄의 문제도 해결 되면서 우리의 영안도 동시에 열리게 되는 것이다. <예 화> 사마리아 여인을 보라 ! 그가 남편을 다섯이나 갈아치운 더러운 여자였다. 그녀는 죄악으로 견딜 수 없는 나날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우물가에서 그는 예수를 만났다 예수를 만난 그녀는 죄가 사함 받음과 동시에 그녀의 영안이 떠졌다. 그리고 그녀는 소리쳤다.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 " <예 화> 한 여인 얘기를 하나 더하자. 우리는 성경에 나온 일곱 일곱 귀신 들린 막달아 마리아를 잘안다 귀신에 잡혀 살 때 막달라 마리아의 삶은 비참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나고 예수님이 일곱 귀신을 쫓아 내주자 그 후로의 막달아 마리아의 삶은 온전히 예수만 바라보고 사는 영적인 자의 삶이었다. 그녀의 눈은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맨 처음 보는 영광을 보았다. 영안이 열려지는 눈을 가지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를 만나야만 된다. 우리의 죄의 문제 역시 예수를 만나야만 해결되듯이 죄악의 눈으로 가려져 버린 우리의 육적인 눈이 영적인 자의 눈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를 만나야만 된다. (요8:12)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보는 눈은 더욱 중요하다. 계시록에는 본다는 말이 무려 72번이나 나올 정도로 마지막 때는 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러나 보더라도 어떤 눈으로 보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영안으로 볼 때 우리는 이 마지막 때를 지혜롭게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육의 눈만 가지고 모든 것을 본다면 짐승 같은 삶을 살고 말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의 영안이 열려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참 뜻을 알게되고 광야 같은 삶속에서 어떤 고난이 올지라도 그 고난 뒤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참 사랑을 깨닫게 될 것이다. 육적인 눈으로 볼 때는 원망과 불평만 나올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영안이열려진 영의 눈으로 볼 때는 그 어떤 어려움, 환난, 핍박이 올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참고 이기어 내는 것이다. 시 119:18 에서 시편 기자가 외쳤듯이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우리 모두 영안이 열려서 주님의 기이한 뜻을 알고 좆으며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듣는 귀 ! 4절
보는 눈도 중요하지만 듣는 귀 또한 중요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수한 하나님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여겼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키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으리라 했지만 백성들은 두려워하지 아니했다.
듣는 귀 영적 귀를 말한다. 성경은 수많은 곳에서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말하고 있다. 이것은 육적인 귀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영적인 귀를 두고 한 말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말씀이 들려지고 있는가 지금 이 시간도 하나님 말씀이 우리에게 들려지고 있다. 왜 이런 말씀을 우리에게 들리게 하는가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기 위함이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런데 우리가 말씀을 듣고도 믿음이 생기지 않고 우리의 믿음에 변화가 없다면 우리는 육적인 귀로만 말씀을 듣고 끝나 버리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부터 언약의 말씀을 받았다. 우상을 섬기지 말라 !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라 ! 순종해라! 물론 모든 말씀을 거역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는 그들의 가는 길이 순탄했다. 그러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거역할 때는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가 뒤따랐다. 애굽에서 나올 때 어린양을 죽여서 문설주와 문지방에 어린양의 피를 바르라고 할 때 백성들은 순종했다. 그때 애굽에 내린 하나님 재앙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하지 아니했다. 여리고 성도 하나님 말씀대로 귀를 기울이고 순종할 때 그 철벽성은 무너졌다. 그러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에는 귀를 기울이지 아니했다.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아니했다. 하나님은 어떤 말은 귀를 기울이고 어떤 말은 버리라는 말씀이 아니었다. 출15:26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모든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온전히 귀를 기울이지 아니했다 우리도 저 백성들과 다를 바 없다.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귀를 기울이지 아니한다. 들을 때는 깨달음이 오는데 듣고 나면 금방 다 잊어버린다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 주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기 위함인데 우리의 믿음이 전혀 변함이 없다면 큰 문제이다. 문제는 하나님 말씀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귀가 영적인 귀가 되지 아니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들을 때뿐일 것이다. 왜 우리가 영적인 귀가 되지 못하는가
행 28:27 마음이 완악하여지기 때문에 귀가 둔해 진다고 했다 우리의 마음이 완악하여 지는 것은 바로 죄 때문이다. 사도들의 설교를 듣고 초대교회 성도들이 "어찌할꼬" 하며 자신들의 죄를 회개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영의 귀가 열렸기 때문이다. 세상 것으로 가득찬 우리 귀로는 영적인 하나님 말씀 들어도 잠깐 들을 때뿐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귀들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 렘 6:10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으로 듣지 못하는 도다. 세상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세상소리에 귀를 잔뜩 기울이고 사는데 어찌 하나님의 소리가 들리겠는가 삼상 3장에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를 때 사무엘을 그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는 주님의 소리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탄의 상징인 뱀 특징 중에 하나가 귀가 없다. 악한 것에 잡혀버리는 자는 영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이 땅에 초림으로 오신 예수가 얼마나 많은 말씀을 가르치고 전했는가 그러나 타락한 저 무리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모두 다 흘려 버렸다. 듣고만 끝난 것이다. 이 시대 우리의 모습입니다 수많은 설교를 들어도 듣고만 끝나 버리는 우리의 모습이다. 요 8: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믿지 아니하는 도다" 요 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요 10:5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성도는 양이라고 성경에서 말씀했다.
그런데 이 짐승 양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우리가 너무나 닮은 모습이 있다. 이 양들은 자꾸 울타리 밖으로 넘어 도망치려 한다. 우리 안에 먹은 풀이 많이 있어도 자꾸만 울타리를 어정거리고 넘어가려고 한다. 그때 목동은 지팡이로 때려서 양을 울타리에서 떨어지게 한다. 우리 성도들이 예수 안에 진정한 행복과 기쁨이 있는데도 자꾸만 세상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세상을 넘본다. 양의 또 특이한 것은 자기 목자는 틀림없이 안다는 것이다 순하고 미련한 것 같으나 자기 목자만큼은 알고 있다. 요 10:14예수님께서 "내가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안다고 하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수 그리스도의 양들이십니까 주님의 양이라면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만 한다. 듣지 못한다면 . 아니 듣고만 끝나 버린다면 우리는 누구의 양인가 듣고만 끝나 버리는 우리의 귀가 되어서는 안된다. 말씀을 듣고 "어찌할꼬" 하는 회개가 터지고 변화되는 모습이 우리 안에서 나타나야만 한다. 마지막 때에는 미혹하는 소리가 우리를 넘볼 것이다. 마24:4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 사람의 미혹은 눈으로 보다는 귀로서 우리를 미혹 할 것이다. 듣기 좋은 말, 달콤한 말로, 우리를 미혹할 것이다. 계18:13 우리의 영혼이 상품이 될 것이다고 했다. 예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영적인 귀가 되지 못하면 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멸망 당했듯이 모두 다 멸망 당하고 말 것이다. 예수님은 막4:23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어두워져 가는 시대 속에서 우리 모두 영의 귀를 가지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깨닫는 마음을 가져라 ! 4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얼마나 하나님은 깨달을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주었는지 모른다. 광야 40년동안 때로는 벌로, 때로는 타이름으로 때로는 표적으로 보여주었지만 백성들은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깨닫는 마음 대신 원망과 불평만 가득 찼다.
깨닫는 마음 하나님의 뜻을 아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왜 지금 우리에게 이런 고난이 오고 어려움이 오고 핍박이 오는지 깨달아야 한다. 마음 이 마음 또한 육적인 마음이 아니라 영적 상태의 마음을 뜻한다. 육적인 마음으로는 하나님 뜻을 알 수 없다. 당연히 불평과 원망이 나올 수밖에 없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가 깨닫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다시 말해서 영적인 심령이 되기 위해서는 . 그리스도의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안이 열려야 되고 , 우리의 영의 귀가 열려야만 된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란다. 우리의 심령은 보는 눈에 따라서 감동되고 흥분된다. 우리 귀 또한 기분 나쁜 소리 들으면 마음이 상하고 기분 좋은 소리 들으면 기쁜 마음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눈이 영적인 자의 눈이 되어서 세상을 영적인 면으로 보면 산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며 살게 될 것이다. 우리 귀 또한 영의 귀가 되어서 세상소리 보다 하나님 말씀에 더 귀를 기울이고 사모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뜻을 깨닫는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솔직히 하나님 뜻만 알고 산다면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문제 겠는가 그러나 하나님 뜻을 알기보다는 내 뜻을 더 전하기를 원하고 나타내기 원하기 때문에 우리가 문제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게 깨닫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역사하고 계신다. 말씀으로 깨닫게 하신다. 사람을 통해서 깨닫게 하신다. 자연을 통해서 깨닫게 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는 깨닫기도 한다. 그러나 잠간뿐이다. 금방 그 깨달음을 잊어버리고 전에 생활로 돌아가 버린다. 왜 그럴까요 또 우리는 미련한 짐승처럼 아예 하나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산다. 왜 그럴까요 마음이 강퍅하기 때문이다. 겔 3:7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여 네 말을 듣고자 아니 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 함이라" 이 시대 우리의 마음이 너무나 강퍅해지고 있다. 마 15: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할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바라보는 영안을 가지고 세상을 보자 ! 그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 이 시대 영의 귀를 가지고 마지막 때에 들려오는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자! 그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 마음을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이사야 1:3 에서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 짐승보다 못하다고 하셨다. 성도 여러분 ! 하나님 마음을 아십니까 어떤 마음을 우리가 갖기를 원하신지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 곧 그리스도 예수의마음이니" 예수의 마음이 어떤 마음입니까 빌 2:6-8 자기를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마음이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낮아지는 마음이 있습니까 예수를 위해 죽기까지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이 있습니까 우리에게 이 마음이 주어지지 않은 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고후 3:14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예수 안에서 완악하고 강퍅한 마음은 떠나고 깨닫는 마음을 가지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만 깨닫는 마음이 들어오고 세상에 나가면 언제 들었더냐 식의 마음이 되어서는 안된다. 깨닫는 마음에는 "어찌할꼬" 하는 회개가 뒤따라야 한다. "내가 죄인이로다" 애통이 있어야 한다. 옷을 찢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을 찢는 아픔이 뒤따라야 한다. 깨닫는 마음은 이 시대가 어느 시대인지 안다 시대의 마지막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 여러분 ! 세상 속에서는 머리가 잘 움직이는데 영적 세계에서는 깨닫는 마음이 없다면 이것처럼 비참한 인생은 없을 것이다. 깨닫는 마음을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결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깨닫고 사는 것 세상 속에서도 중요하듯이 영적인 세계 또한 이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에게 "에레미야야 무엇을 보느냐" 예레미야는 자기의 본 것을 말했다. "녜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네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 살구나무를 보았다는 말이 뭔데 하나님은 잘 보았다고 했을까요 살구나무는 봄에 가장 먼저 피는 꽃나무이다. 이것은 예레미야 신앙이 깨어있다는 뜻을 말한다 영안을 가질 수 있는 자는 깨어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다. 영적인 잠만 쿨쿨 자고있는 자는 영안이 열릴 수 없다.
시대의 마지막을 볼줄아는 영안을 가지기를 바란다. 마지막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기를 바란다. 계시록에는 귀 있는 자는 들어라는 말씀이 많이 나온다 마지막 때일수록 우리는 잘 분별해서 들어야 될 것이다. 미혹하는 소리들이 너무나 난무하는 시대다. 영의 눈과 영의 귀를 가진 자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게 될 것이다. 내 뜻대로 살아서는 안될 것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면서 예수님의 말씀하신 그 한마디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이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 " 예수의 마음을 품으며 살아가야 할 우리들. 예수의 눈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우리들 예수의 귀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 우리들이다. 이 세 가지를 가질 수 있는 길은 오직 세상 것을 멀리하고 성령님충만 받어야 된다.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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