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한 성장 (벧전2:1-10)
본문
예수 믿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고 희한한 일 입니다. 참으로 신기하고 신비롭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일은 신 비한 것입니다.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이 특허를 낸것도 아니요. 부자들의 전용도 아닙니다. 유식한 사람이건 무식한 사람이건 모두 살아있는 한 말씀으로 거듭났습니다. 때로는 서로 원망하고 싸워도 결국은 예수의 형제입니다. 우리와 함께 신앙생활하다가 떠나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결국은 천국에서 예수 앞에서 만날 것입니다. 잠시 잠깐 못마땅해하고 원망해도 결국은 예수로 관계를 맺고 있는 한, 우리는 한 형제임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만일 아이가 태어나서 갑자기 성장을 멈춘다면 죽었거나 어디엔가 이상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거듭나고 새생명을 얻었습니다. 생명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 고 이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을 연명 시켜주는 젖임을 믿습니까 아무리 과학이 발달되었다고 할지라도 젖을 먹지 않고 자라는 아이는 없 습니다. 어린이의 성장의 3대 요소가 있습니다. 섭취, 배설, 취침입니다. 약간 어려운 말인데 쉬게 말하면 아이는 젖 잘먹고 잘 싸고 잘 자면 세월 이 가면 잘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를 신령한 눈으로 바라본다고 하 면 말씀으로 갓 태여 난 사람도 있고 말씀으로 믿음이 성장한 사람도 있 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갓태어난 아이를 보았는데 십년이 지나도 갓난 아기라면 부모의 마음이 어떨까요 그래서 외부적 신체적 성장은 보이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때가 되면 키도 자라고 몸 무게 늘어나도록 하나님께서 섭리 해두셨습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자람이 있습니다. 신령한 자람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적 성장,양육입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는 말씀으로 갓 태어난 사람의 신령한 성장에 대해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1. 신앙은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자랍니다. 본문 2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영적으로 자라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필요하겠지만 신령한 젖을 사모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구원을 이룬다는 것은 거듭난다,중생, 영생을 얻었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구원의 마지막 단계인 영화의 단계에 까지 자란다는 것을 말합니다. 히브리서 5:12-13절 말씀에 이 젖이 하나님 의 말씀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 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1
3'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말씀을 읽지 않으면 갓난아기를 못 벗어난다는 것 입니다. 순수하고 신령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면 신 령한 젖을 사모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지금 내가 사모하고 있는 불순물을 제거해야 합니다. 아기 젖병이 땅에 떨어져 더럽다면 씻거나 소독하고 아기에게 먹일 것입니다.아기가 아무리 울어도 깨끗이 씻기 전에는 먹이지 않습니다. 소독이 끝나기 전에는 말씀 을 공급하지 않습니다. 모두다 희망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지체 하 실 까요 아직 소독 중입니다. 불순물을 제거 하기 전에는 말씀이 바로 보 이지가 않습니다. 병상에 누워서 시편을 보았습니다. 많은 위로도 받고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습니다. 빨리 병마를 물리 쳐야해야 하겠다는 욕심이 가득 차있었기 때문에 시편 구절구절이 내 병이 곧 낫겠다는 것으로 만 보여 집디다. 그 때에는 후유증이 이렇게 길 줄도 몰랐습니다. 왜 하나님 의 말씀이 굴절되어 보입니까 내 소원을 가지고 말씀을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은 보이지 않고 자신의 뜻만 보였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아무 리 사모해도 영적 도움에 하나도 보탬이 안됩니다. 신령한 젖을 사모 하 기 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1'불순한 인간의 동기를 제거하는 일입니다. 본문 1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우리 마음속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들을 나열했습니다. 악독을 가지고 말씀을 보면 말씀 속에서 악독이 흘러나옵니다. 두 가지 악독을 분류하고 있는데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상태와 이 런 마음의 상태가 비방하는 말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악독과 궤휼과 외식과 시기는 마음속에서부터 발생합니다. 궤휼이라는 것은 남을 해치려고 속임수를 쓰는 것입니다. 외식과 시기는 속임수를 쓰기 위해 가장하고 속임수가 통하지 않을 때 마음속에 일어 나는 불평과 불만 입니다. 이것이 마음에 가득하면 말로는 듣기 좋은 말을 해도 영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강단을 빙자해서 속임수를 써는 설교자가 되 않도 록 기도해 주십시오 저는 말씀을 전 할 때에 속임수가 있나 없나를 살펴 봅니다. 우리는 말씀을 온전히 받기 위해서 제거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악독이나 궤휼,외식과 시기의 옷을 벗어버리고 말씀의 새옷을 입읍시다. 여기에 "버리고"란"벗어버린다"는 뜻입니다. 순전한 말씀을 받는데 우리의 마음은 순전한가 우리의 마음은 정직한가 남에게 손해를 끼칠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2'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사람은 말씀을 통하여 주의 인자하심을 깨닫 고 체험해야 말씀을 사모하게 됩니다. 본문 3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말씀에 대한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이 체험이 있어야 사슴이 시냇물을 갈급하듯이 주의 말씀을 사모하게 됩니다. 루터는 시편 22:1절 말씀 속에 서 우리를 대신 값을 치르기 위하여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 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듣지 않고 버리시는 줄 알았던 루터는 이 말씀 속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 을 만나고 담대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사가인 디아우빅네는 에배 소 3:21-22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2
1'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저는 로마서 8:28절에서 모든 것을 좋은 결과로 만드시는 예수님을 체험 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 들에게는
(1)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커 가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넓혀 갈 때에 신앙이 성장합니다. 아기가 자라면서 갓 태여 났을 때는 자기도 모릅니다. 물론 어머니도 모 릅니다. 커가 면서 점차 어머니를 알고 아버지를 알고 식구들을 압니다. 나중에는 친구를 알고 공동체의 일원이구나를 알게 됩니다. 영의 세계에 서도 마찬 가지 입니다. 처음 믿을 때는 자신도 모르고 예수도 모르고 그 저 좋습니다. 신앙이 자라가면서 자신을 알게 되고 예수그리스도를 알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와 관계를 넓혀 갑니까
1'예수님께 인정받는 신앙 생활을 합시다. 사람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아야 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칭찬이 더 중요합니다. 예수 앞에 날마다 나가 간다면 예수의 인정이 늘 필요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정하는 것은 상관없고 사람의 눈치만 살피다가 예수의 종이 아니라 사람의 종으로 전략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사람이 보기는 농어촌 교회에서 몇몇 늙은 사람의 영혼을 바라보고 주님의 인정 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목회자들이 정말 이 시대에 존경을 받아야 하는 데 무능력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멸시하지는 않았습니까 본문 4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사람에게 싫어 버림 바가 되어도 기쁘고 감사합니다.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었기 때문올시다. 부활하신 예수가 우리의 근본 기초석입니다. 모든 시 작이 살아 있는 보배로운 돌-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기초입니다. 부활하신 예수와 관계 속에서 우리의 신앙이 자라 갑니다. 주님이 예비하신 하늘의 집에 갈 때까지 날마다 교회의 기초석이 되신 예수님께 날마다 나아갑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신령한 반석이 그리스도임을 분명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교회와 여러분 의 관계가 어떠합니까 교회와의 관계라는 것은 결국 살아 있는 반석인 그리스도와 관계를 말합니다.
2'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장이 됩시다. 목사만이 제사장이 아닙니다. 여러분 각자가 하나님의 향기로운 제물을 드리는 제사장이요 주인인 것입니다. 우리가 제사장이 되어서 매주일마다 하나님 앞에 예수의 피로 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입니다. 본문 5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신령한 집은 성전을 뜻했고 지금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제사장 들이 모여 있는 무리, 공동체,교회를 말합니다. 이 신령한 집을 통하여 하나님기뻐하시는 여러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석원태 목사님은 교회가 신령한 집이 되어야 할 이유 7가지를 밝혀 셨는 데
1)이 공동체의 주인이신 하나님자신이 신령하신 분이 때문입니다.
2)이 공 동체 의 기초석이 되신 예수그리스도가 산 돌로 신령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3) 이 공동체 속에 지금 내주하고 계신 성령님께서 신령하기 때문입니다.
4)이 공동체의 구성 멤버인 성도들이 신령하기 때문입니다. 5)이 공 동체 드리는 예배 곧 찬송,기도가 신령하기 때문입니다.
6)이 공동체에 맡 겨 주신 사명이 신령하기 때문입니다. 7)이 공동체의 최후 목적이 신령하 기 때문에 교회는 지금부터 영원 토록 신령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신 령한 봉사와 사명을 감담 하므로 교회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기뻐시게 해야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신앙이 성장합니다. 크네다너스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교회는 이렇게 하여 하나가 되어 하나님 을 기쁘게 할 때에 기쁨을 공급받는 영적 단체라고 말했습니다. 교회에서 왜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까 누구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 을 위하여 내가 헌신 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교회 에 봉사 할 때에 신앙도 자라고 영적 성장을 이루는 것입니다.
3'예수를 보배로 자랑할 때 우리의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본문 6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세상의 사람들은 자식을 자랑하고 돈을 자랑합니다. 자랑 할 것이 아무것 이 없다고 할지라도 나는 보배하나 있습니다. 질그릇 같은 이 육체에 보 배로운 예수 그리스도인된것을 자랑합니다. 그리고 일생동안 가장 귀중한 것을 얻은 것은 예수를 얻은 것이 가장 큰 수익입니다. 바울은 예수를 얻 고 다른 모든 것은 예수에 비하면 배설물과 같다고 증언하였습니다. 고후 4:7절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영적으로 성장한 사람은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자 기 속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합니다.
4'불순종하는 자는 똑똑한 것 같아도 마지막에 무너집니다. 본문 7-8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8'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 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 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불신자에게는 예수가 거치는 돌이 되겠다는 말입니다. 예수가 우리 순종 하는 자에게는 구속자 이십니다. 그러나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예수그리스도가 영벌의 심판자입니다. 예정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8절에 말씀하시기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 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마지막 때가 가까운 이때에 예수그리스도가 불신자의 심판자가 아니라 참 구원자인 것을 알리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합시다.
3.영적으로 성장할 때 행복이 따릅니다.
1'성장의 목적이 분명합니다. 나무가 성장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열매맺기 위해서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영적으로 성장해야할 목적이 무엇입니까 본문 9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 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복음 선교의 열 매을 맺음으로 말미암아 찾아오는 행복을 누리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인의 누리는 4대 특권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1)"택하신 족속" 입니다. 구약 시대에 아무나 이스라엘자손이 못되었 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우리를 영적으로 이스라엘 백성 삼으신 것입니다.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것입니다. 갈 3:7절에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 찌어다"
2)"왕 같은 제사장"-기도할 수 있는 특권,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 할 수 있는 왕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3)"거룩한 나라"라고 했습니다.
4)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위치를 이처럼 아름답게 하신 이가 누구입니까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의 덕을 선전하기 위해서 영적 으로 자라야 합니다.
2'이제 영적으로 자라나서 그전과 이제가 현저하게 비교됩니다. 백성 아니고 긍휼이 없던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긍휼을 풍성히 입 었습니다. 우리 모두 제자리걸음하지 말고 힘내어 자신의 영적 성장에 관 심을 가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람니다.
그런데 만일 아이가 태어나서 갑자기 성장을 멈춘다면 죽었거나 어디엔가 이상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거듭나고 새생명을 얻었습니다. 생명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 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 고 이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을 연명 시켜주는 젖임을 믿습니까 아무리 과학이 발달되었다고 할지라도 젖을 먹지 않고 자라는 아이는 없 습니다. 어린이의 성장의 3대 요소가 있습니다. 섭취, 배설, 취침입니다. 약간 어려운 말인데 쉬게 말하면 아이는 젖 잘먹고 잘 싸고 잘 자면 세월 이 가면 잘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를 신령한 눈으로 바라본다고 하 면 말씀으로 갓 태여 난 사람도 있고 말씀으로 믿음이 성장한 사람도 있 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갓태어난 아이를 보았는데 십년이 지나도 갓난 아기라면 부모의 마음이 어떨까요 그래서 외부적 신체적 성장은 보이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때가 되면 키도 자라고 몸 무게 늘어나도록 하나님께서 섭리 해두셨습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자람이 있습니다. 신령한 자람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영적 성장,양육입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는 말씀으로 갓 태어난 사람의 신령한 성장에 대해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1. 신앙은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자랍니다. 본문 2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영적으로 자라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필요하겠지만 신령한 젖을 사모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구원을 이룬다는 것은 거듭난다,중생, 영생을 얻었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구원의 마지막 단계인 영화의 단계에 까지 자란다는 것을 말합니다. 히브리서 5:12-13절 말씀에 이 젖이 하나님 의 말씀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 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1
3'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말씀을 읽지 않으면 갓난아기를 못 벗어난다는 것 입니다. 순수하고 신령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면 신 령한 젖을 사모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지금 내가 사모하고 있는 불순물을 제거해야 합니다. 아기 젖병이 땅에 떨어져 더럽다면 씻거나 소독하고 아기에게 먹일 것입니다.아기가 아무리 울어도 깨끗이 씻기 전에는 먹이지 않습니다. 소독이 끝나기 전에는 말씀 을 공급하지 않습니다. 모두다 희망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지체 하 실 까요 아직 소독 중입니다. 불순물을 제거 하기 전에는 말씀이 바로 보 이지가 않습니다. 병상에 누워서 시편을 보았습니다. 많은 위로도 받고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습니다. 빨리 병마를 물리 쳐야해야 하겠다는 욕심이 가득 차있었기 때문에 시편 구절구절이 내 병이 곧 낫겠다는 것으로 만 보여 집디다. 그 때에는 후유증이 이렇게 길 줄도 몰랐습니다. 왜 하나님 의 말씀이 굴절되어 보입니까 내 소원을 가지고 말씀을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은 보이지 않고 자신의 뜻만 보였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아무 리 사모해도 영적 도움에 하나도 보탬이 안됩니다. 신령한 젖을 사모 하 기 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1'불순한 인간의 동기를 제거하는 일입니다. 본문 1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우리 마음속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들을 나열했습니다. 악독을 가지고 말씀을 보면 말씀 속에서 악독이 흘러나옵니다. 두 가지 악독을 분류하고 있는데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상태와 이 런 마음의 상태가 비방하는 말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악독과 궤휼과 외식과 시기는 마음속에서부터 발생합니다. 궤휼이라는 것은 남을 해치려고 속임수를 쓰는 것입니다. 외식과 시기는 속임수를 쓰기 위해 가장하고 속임수가 통하지 않을 때 마음속에 일어 나는 불평과 불만 입니다. 이것이 마음에 가득하면 말로는 듣기 좋은 말을 해도 영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강단을 빙자해서 속임수를 써는 설교자가 되 않도 록 기도해 주십시오 저는 말씀을 전 할 때에 속임수가 있나 없나를 살펴 봅니다. 우리는 말씀을 온전히 받기 위해서 제거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악독이나 궤휼,외식과 시기의 옷을 벗어버리고 말씀의 새옷을 입읍시다. 여기에 "버리고"란"벗어버린다"는 뜻입니다. 순전한 말씀을 받는데 우리의 마음은 순전한가 우리의 마음은 정직한가 남에게 손해를 끼칠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2'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사람은 말씀을 통하여 주의 인자하심을 깨닫 고 체험해야 말씀을 사모하게 됩니다. 본문 3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말씀에 대한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이 체험이 있어야 사슴이 시냇물을 갈급하듯이 주의 말씀을 사모하게 됩니다. 루터는 시편 22:1절 말씀 속에 서 우리를 대신 값을 치르기 위하여 십자가의 수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 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듣지 않고 버리시는 줄 알았던 루터는 이 말씀 속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 을 만나고 담대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사가인 디아우빅네는 에배 소 3:21-22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 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2
1'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저는 로마서 8:28절에서 모든 것을 좋은 결과로 만드시는 예수님을 체험 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 들에게는
(1)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커 가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넓혀 갈 때에 신앙이 성장합니다. 아기가 자라면서 갓 태여 났을 때는 자기도 모릅니다. 물론 어머니도 모 릅니다. 커가 면서 점차 어머니를 알고 아버지를 알고 식구들을 압니다. 나중에는 친구를 알고 공동체의 일원이구나를 알게 됩니다. 영의 세계에 서도 마찬 가지 입니다. 처음 믿을 때는 자신도 모르고 예수도 모르고 그 저 좋습니다. 신앙이 자라가면서 자신을 알게 되고 예수그리스도를 알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와 관계를 넓혀 갑니까
1'예수님께 인정받는 신앙 생활을 합시다. 사람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아야 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칭찬이 더 중요합니다. 예수 앞에 날마다 나가 간다면 예수의 인정이 늘 필요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정하는 것은 상관없고 사람의 눈치만 살피다가 예수의 종이 아니라 사람의 종으로 전략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사람이 보기는 농어촌 교회에서 몇몇 늙은 사람의 영혼을 바라보고 주님의 인정 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목회자들이 정말 이 시대에 존경을 받아야 하는 데 무능력한 사람으로 취급하고 멸시하지는 않았습니까 본문 4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사람에게 싫어 버림 바가 되어도 기쁘고 감사합니다.하나님께 택하심을 입었기 때문올시다. 부활하신 예수가 우리의 근본 기초석입니다. 모든 시 작이 살아 있는 보배로운 돌-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기초입니다. 부활하신 예수와 관계 속에서 우리의 신앙이 자라 갑니다. 주님이 예비하신 하늘의 집에 갈 때까지 날마다 교회의 기초석이 되신 예수님께 날마다 나아갑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신령한 반석이 그리스도임을 분명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교회와 여러분 의 관계가 어떠합니까 교회와의 관계라는 것은 결국 살아 있는 반석인 그리스도와 관계를 말합니다.
2'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장이 됩시다. 목사만이 제사장이 아닙니다. 여러분 각자가 하나님의 향기로운 제물을 드리는 제사장이요 주인인 것입니다. 우리가 제사장이 되어서 매주일마다 하나님 앞에 예수의 피로 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입니다. 본문 5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신령한 집은 성전을 뜻했고 지금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제사장 들이 모여 있는 무리, 공동체,교회를 말합니다. 이 신령한 집을 통하여 하나님기뻐하시는 여러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석원태 목사님은 교회가 신령한 집이 되어야 할 이유 7가지를 밝혀 셨는 데
1)이 공동체의 주인이신 하나님자신이 신령하신 분이 때문입니다.
2)이 공 동체 의 기초석이 되신 예수그리스도가 산 돌로 신령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3) 이 공동체 속에 지금 내주하고 계신 성령님께서 신령하기 때문입니다.
4)이 공동체의 구성 멤버인 성도들이 신령하기 때문입니다. 5)이 공 동체 드리는 예배 곧 찬송,기도가 신령하기 때문입니다.
6)이 공동체에 맡 겨 주신 사명이 신령하기 때문입니다. 7)이 공동체의 최후 목적이 신령하 기 때문에 교회는 지금부터 영원 토록 신령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신 령한 봉사와 사명을 감담 하므로 교회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기뻐시게 해야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신앙이 성장합니다. 크네다너스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교회는 이렇게 하여 하나가 되어 하나님 을 기쁘게 할 때에 기쁨을 공급받는 영적 단체라고 말했습니다. 교회에서 왜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까 누구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 을 위하여 내가 헌신 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교회 에 봉사 할 때에 신앙도 자라고 영적 성장을 이루는 것입니다.
3'예수를 보배로 자랑할 때 우리의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본문 6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세상의 사람들은 자식을 자랑하고 돈을 자랑합니다. 자랑 할 것이 아무것 이 없다고 할지라도 나는 보배하나 있습니다. 질그릇 같은 이 육체에 보 배로운 예수 그리스도인된것을 자랑합니다. 그리고 일생동안 가장 귀중한 것을 얻은 것은 예수를 얻은 것이 가장 큰 수익입니다. 바울은 예수를 얻 고 다른 모든 것은 예수에 비하면 배설물과 같다고 증언하였습니다. 고후 4:7절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영적으로 성장한 사람은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자 기 속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합니다.
4'불순종하는 자는 똑똑한 것 같아도 마지막에 무너집니다. 본문 7-8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8'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 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 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불신자에게는 예수가 거치는 돌이 되겠다는 말입니다. 예수가 우리 순종 하는 자에게는 구속자 이십니다. 그러나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예수그리스도가 영벌의 심판자입니다. 예정되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8절에 말씀하시기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 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마지막 때가 가까운 이때에 예수그리스도가 불신자의 심판자가 아니라 참 구원자인 것을 알리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합시다.
3.영적으로 성장할 때 행복이 따릅니다.
1'성장의 목적이 분명합니다. 나무가 성장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열매맺기 위해서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영적으로 성장해야할 목적이 무엇입니까 본문 9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 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복음 선교의 열 매을 맺음으로 말미암아 찾아오는 행복을 누리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인의 누리는 4대 특권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1)"택하신 족속" 입니다. 구약 시대에 아무나 이스라엘자손이 못되었 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우리를 영적으로 이스라엘 백성 삼으신 것입니다.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것입니다. 갈 3:7절에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 찌어다"
2)"왕 같은 제사장"-기도할 수 있는 특권,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 할 수 있는 왕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3)"거룩한 나라"라고 했습니다.
4)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위치를 이처럼 아름답게 하신 이가 누구입니까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의 덕을 선전하기 위해서 영적 으로 자라야 합니다.
2'이제 영적으로 자라나서 그전과 이제가 현저하게 비교됩니다. 백성 아니고 긍휼이 없던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긍휼을 풍성히 입 었습니다. 우리 모두 제자리걸음하지 말고 힘내어 자신의 영적 성장에 관 심을 가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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