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성장을 위해 기도하라 (벧전2:2)
본문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 4:15
1. 신앙과 성장 신앙에는 끊임없는 성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죽어가기 시작할 것이다. R. 슐러 목사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 집 정원에 100년정도 된 후추나무가 있다. 나는 정원사에게 이런 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다. "난 이 나무가 이만하면 완전히 성장했다고 생각되는데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아니요, 나무는 아직 자라고 있습니다. 나무는 죽을 때까지 계속 자라지요."하고 정원사는 말했다.” 1000년된 커다란 미국의 삼나무가 아직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갈대라고 파스칼은 말했다. 사람이 두 다리로 서서 한 두 발짝 떼어 놓기 시작하는 것은 탄생 후 365일이 되는 돐 때부터이다. 우리는 이것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다른 동물들을 보면 인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걷는 것이 빠르다. 벌레는 저 혼자서 알을 뚫고 기어 나와서 독립하여 먹고 살아 간다. 나비도 잠깐 동안에 번데기에서 탈을 벗고 훨훨 날아 다닌다. 인간과 같은 젖먹이 동물에 속하는 송아지도 분만 후 20분이면 혼자서 일어서 걷는다. 얼룩말이나 영양 따위는 생후 즉시 벌판을 뛰어 다닌다.
그런데 인간만은 태어난 후 엄마의 가슴에 안겨 젖무덤에 얼굴을 묻고 1년 또는 2년 동안을 젖꼭지를 빨며 자란 뒤에야 겨우 일어 서게 되며 비로서 걸음마를 하게 된다. 그러나 영혼의 경우에 있어서는 죽을 때까지도 혼자 걷기가 불가능하다. 1-2년 신앙 생활을 했다고 해서 자기 혼자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 즉시 제자리 걸음도 못하고 죄의 흙탕물 속에 쓰러져 뒹굴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혼의 걸음마는 언제까지 계속되는가 우리가 천국 문 앞에 인도될 때까지다. 누가 우리의 손을 잡아 그곳까지 인도하여 주는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국으로 가는 걸음을 가르치시고 때로는 그의 팔로 안고 가시기도 한다. 혹 그 다정한 손길을 우리는 뿌리치고 있지나 않은가 돌아봐야 한다 .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을지라도 내가 저희를 고치는 줄을 저희가 알지 못하였도다"(호11:3) 우리는 왜 자라야 하는가
1) 우리 자신은 가장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이다. 많은 피조물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고, 하나님의 생기를 받은 존재인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끊임없이 사랑하셨고 많은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인간을 죄악에서 구하시려고 힘쓰셨다. 그 사랑이 극치에 달하셔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주셨다. 바로 나를 위하여 쏟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생각해보면 내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2) 어린 아이로 태어나 장성한 사람이 되는 자연 법칙은 영적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신생, 거듭남, 중생을 신앙생활의 시작이라고 한다. 거듭남이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성경은 신령한 양식을 사모하라고 말하고 있으며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요구하고 있다. 바울은 우리의 성장의 목표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두고 있다. 자연법칙이 영적세계에 적용되어서 자라난다면 그 반대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즉 질병과 발육부과 퇴보도 영적인 세계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말이다. 육신의 질병이 성장에 저해를 끼치는데 영적 질병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교만이라는 질병, 외식이라는 질병, 자기만족이라는 질병이 있다. 이것은 영적성장을 방해한다. 뿐만 아니라 발육부진인 신앙인도 있다. 매일 똑같은 신앙의 모습이다. 1년전이나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신앙의 모습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열심도 없고, 기쁨도 없고, 그냥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는 신앙을 말한다. (평생 자라지 않는다면 어떨까) 나아가서 성장이 퇴보하는 겨우도 있다. 가룟유다는 신앙의 퇴보를 한 사람이다. 실패한 사람이다. 예화 ) 성장의 퇴보 나이를 먹을 수록 점점 어려져 가는 여자가 미국 버지니아에서 살았었다. 그녀의 주치의의 말에 의하면(Virginia Medical Monthly), 그녀는 본래 정상적으로 성장했으며 결혼도 하였고 3명의 아이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자녀들은 어머니가 어려져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늙으면 어린이가 되는 현상이 있지만(이것을 심리학자들은 "개성복귀"라고 부른다), 그러한 현상은 어느 정도까지만 진행될 뿐인데 이 여자는 달랐다. 그녀의 행동은 평균 1년에 3-4개월씩 점점 어려졌다. 결국 그녀가 61세가 되었을 때, 그녀는 하는 행동이나 말이 6세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였다. 그녀는 후에 요양소로 보내졌는데, 그곳에서 어린애처럼 짧은 치마를 입고 장남감을 가지고 놀았다. 그녀는 음식도 흘리고 마루바닥에서 엄마를 부르며 징징 우는 3살난 어린이가 되었다. 이러한 퇴보는 한살난 아기상태까지 이르게 되면서 갓난아기처럼 우유병을 빨더니만 결국 그 한계를 넘어 죽고 말았다. 이런 퇴보는 혹 우리의 영혼에도 일어나는 것은 아닌가 처음에는 뜨거웠는데, 주님을 사랑했는데, 열심이었는데 지금은 그 열심이 점점 사라지고 이제 신앙이 습관화되는 퇴보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퇴보는 결국 불순종, 불신앙, 불복종으로 이어집니다.(가롯 유다처럼) 영적성장이 당연한 일이므로 성장해야 한다.
3) 영적 성장은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계속되는 과정이다. 우리의 신앙은 순간적인 각성, 깨달음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과정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어부 생활 중에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생활 속에서 많은 것을 듣고 체험하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고백의 순간이 있었는가 하면(마16:16), 맹세하고 저주하며 부인하던 순간도 있었습니다.(마26:69) 나아가서 두려움과 공포 속에 숨던 시절도 있었으며(요20:19), 갈릴리 바다로 되돌아 갔던 때도 있었습니다.(요21:) 그러나 성령님 충만해지고 능력을 받은 베드로, 담대한 설교, 미문의 기적을 일어켰고, 소신을 펴지 못했던(위선) 베드로(갈2:11)였지만 놀라운 활약,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순교ㅎ\하였습니다.(쿼바디스) 영적성장은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끊이없이 계속되어져 가는 과정이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여러분이 영적으로 성장하시기를 바랍니다.
예화) 성장의 단계 신학자 넬즈 훼레 (Nels Ferre)는 자신의 신앙 순례를 통하여, 신앙의 깊이에는 세 단계가 있다고 말하였다.
첫째 단계는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는 단계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를 받아들이는 단계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구원자로 고백하는 단계이다. 여기에서 신앙이 좀더 깊이 들어가면
둘째 단계로서 정직해지는 단계이다. 자기의 자랑, 자신의 공포, 위선등을 내던지고 하나님 앞에 항복하는 단계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자기를 그 앞에 벌거숭이로 승복하는 단계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즉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단계이다. 그러나 신앙의 깊이는 여기에서 한 단계를 더 들어간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단계, 즉 아바 아버지로 부르는 단계이다. 그것은 모든 일에 있어서 아버지의 은혜를 감사하고 아들의 의무를 다하는 단계이다.
4) 균형있는 성장 영적 성장을 주도하는 인자가 있다.
예화) 성장인자 사람이 성장하게 되면 키가 커지는데 이때 키를 크게 하는 성장인자(IGF)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왜소증에 걸린다. 국내에서는 한양대 의대 申載薰교수(소아과)가 혈액으로부터 처음으로 추출에 성공한 이 성장인자는 발육에 영향을 주는 결정적 요소이다. 성장 호르몬이 정상이어도 이것이 부족하면 키가 크지 않는다고 한다. 신교수는 IGF를 연골세포에 투여한 결과 보통 연골세포 성장보다 5배 이상 증식하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17명을 대상으로 성장인자의 농도를 조사한 결과 저성장 어린이는 정상의 50% 이하였으며 거인증 아동은 2배 정도 농도가 높았다. 신앙인에게도 신앙성장인자가 있다. 그것이 없으면 신앙은 성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인가 예배, 기도 생활, 말씀 연구, 읽기, 회개와 실천등이다. 이 성장의 인자들이 고루 자라나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성장의 기형을 이룰 수 있다. 한국교회
1. 머리만 성장(지적인 교인-성경만 많이 안다)=서기관
2. 가슴만 성장(정적인 교인-열정적인 것을 많이 사모한다)=신비주의자
3. 다리만 성장(의지적인 교인-행동만 강조)=바리새인 교회에서는 성인, 사회에서는 아동으로 전락하는 성도들이 많아진다. 균형있는 성장을 이루기 위하여서는
(1) 겸손이다. 학생운동의 위대한 지도자 죤 모트는 말하기를 " 겸손은 부단히 유지되어야 한다. 인간의 생명에 대해서는 두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인간의 생명은 자신의 것으로 임의로 취급할 수 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인간의 생명은 타자에 속한 것이데 생명의 소유주는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들의 생명을 기꺼이 그리스도께 드리고 통회하여 마음과 정신을 낮춤으로 자신들을 우리의 위대하신 하나님의 처분에 맡기는 자들은 마음과 영혼의 소성함을 입게 될 것이다.(사57:15)
(2) 기도이다. 쉘든 고든(Sheldon D. Gordo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이 말은 기도에 대해서 '말하는 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자신들이 기도를 믿는다고 말하는 자들을 두고 하는 말도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자들은 시간을 내서 기도하는 자들이다. 오늘날 바로 이들이 하나님을 위해 최상의 것을 하고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영혼들을 구하고 문제들을 해결하며 교회를 일깨우고 세상을 좀 더 오래 향기롭게 하는 일에 있어서 최상의 일을 하고 있다. 이러한 기도에 대치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3) 영적인 갈망이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여호와의 얼굴의 구해야 한다. 게속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추구하는 자들만이 영적으로 이 세대를 일깨워 분발시키는 그리스도인의 사역자들이 될 것이다.
예화) 흰돌산 기도원에서 기도하는 학생들을 보면 우리의 영적인 갈망이 너무나 메말라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4) 고백과 회개이다 대하7:14은 우리에게 악한 길에서 돌이키라고 담대히 촉구한다. 우리는 오직 죄의 심각성, 사악함과 비열함에 대해 개인적으로 집단적이며 국가적으로 슬퍼 괴로워하게 될 때만이 신앙부흥을 체험하는 자들 될 수 있을 것이다. 5) 영적 성장의 모델이 있다. 산골 오두막에 사는 어니스트라는 소년은 자기 집 앞 바위산을 바라보며 사는데, 사람들은 그 바위 산이 마치 살아있는 사람같아서 "큰 바위의 얼굴"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전설에 따르면 언젠가는 저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장엄하고 인자한 성자같은 훌륭한 인물이 이 고장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어니스트는 그 예언이 성취되어 그 성자를 만나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다. 그는 아침 저녁으로 그 큰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항상 수양을 하였다. 처음에는 큰 바위의 얼굴을 닮았다는 억만장자 부자가 나타났으나 사실은 인색하기 짝이없는 장사꾼이었으며 후에 보니 굶어죽었던 것이다. 다음에 천하장군이 나타났으나 무자비한 무인에 지나지 않았다. 세번째로 대통령감이 나타났다. 웅변이 뛰어나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것 같았으나 그 사람도 장엄과 인자를 겸하지 못한 사람에 불과 하였다.
네번째로 천하에 제일가는 천재적인 시인이 나타났다. 시는 장엄하였는데 사람을 만나보니 시만큼 사람이 뛰어나지 못하여 어니스트는 실망을 하였다. 이제 어니스트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 전도사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석양녘에 숲속에서 일생의 신앙과 수양이 높은 정열적인 설교를 할때, 동네 사람들과 천재적인 시인은 바로 한 고장에서 같이 살아온 농부며 전도사인 어니스트 노인이 저 전설에 나오는 큰 바위얼굴임을 비로서 알았다. 어니스트는 장엄과 자비라는 인간이 가질 최고의 자격을 구비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시인이 외쳤다. "보시오, 보시오, 저 어니스트야말로 바로 큰 바위의 얼굴 그 사람입니다!" 마침내 그 예언은 이루어졌던 것이다. 우리는 누구의 형상을 닮으려고 하는가 오랫동안 마음에 사모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한낱 시골소년인 어니스트가 평생을 바쳐 큰 바위의 얼굴을 사모하며 닮고자 했을때 그속에서 예언은 서서히 실현되어 가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모하며 닮고자 평생노력하면 우리는 충실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그를 따르라. 그의 길을 가라 영적성장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세계의 법칙이며, 우리의 평생에 계속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성장은 균형을 이루어쟈 하며, 그리스도가 우리의 성장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죽어 있는 신앙, 잠들어 있는 신앙, 졸고 있는 신앙, 퇴보하는 신앙에서 깨어나 성장하는 신앙인,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이르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신앙과 성장 신앙에는 끊임없는 성장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죽어가기 시작할 것이다. R. 슐러 목사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 집 정원에 100년정도 된 후추나무가 있다. 나는 정원사에게 이런 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다. "난 이 나무가 이만하면 완전히 성장했다고 생각되는데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아니요, 나무는 아직 자라고 있습니다. 나무는 죽을 때까지 계속 자라지요."하고 정원사는 말했다.” 1000년된 커다란 미국의 삼나무가 아직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갈대라고 파스칼은 말했다. 사람이 두 다리로 서서 한 두 발짝 떼어 놓기 시작하는 것은 탄생 후 365일이 되는 돐 때부터이다. 우리는 이것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다른 동물들을 보면 인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걷는 것이 빠르다. 벌레는 저 혼자서 알을 뚫고 기어 나와서 독립하여 먹고 살아 간다. 나비도 잠깐 동안에 번데기에서 탈을 벗고 훨훨 날아 다닌다. 인간과 같은 젖먹이 동물에 속하는 송아지도 분만 후 20분이면 혼자서 일어서 걷는다. 얼룩말이나 영양 따위는 생후 즉시 벌판을 뛰어 다닌다.
그런데 인간만은 태어난 후 엄마의 가슴에 안겨 젖무덤에 얼굴을 묻고 1년 또는 2년 동안을 젖꼭지를 빨며 자란 뒤에야 겨우 일어 서게 되며 비로서 걸음마를 하게 된다. 그러나 영혼의 경우에 있어서는 죽을 때까지도 혼자 걷기가 불가능하다. 1-2년 신앙 생활을 했다고 해서 자기 혼자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 즉시 제자리 걸음도 못하고 죄의 흙탕물 속에 쓰러져 뒹굴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혼의 걸음마는 언제까지 계속되는가 우리가 천국 문 앞에 인도될 때까지다. 누가 우리의 손을 잡아 그곳까지 인도하여 주는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국으로 가는 걸음을 가르치시고 때로는 그의 팔로 안고 가시기도 한다. 혹 그 다정한 손길을 우리는 뿌리치고 있지나 않은가 돌아봐야 한다 .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을지라도 내가 저희를 고치는 줄을 저희가 알지 못하였도다"(호11:3) 우리는 왜 자라야 하는가
1) 우리 자신은 가장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이다. 많은 피조물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고, 하나님의 생기를 받은 존재인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끊임없이 사랑하셨고 많은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인간을 죄악에서 구하시려고 힘쓰셨다. 그 사랑이 극치에 달하셔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주셨다. 바로 나를 위하여 쏟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생각해보면 내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2) 어린 아이로 태어나 장성한 사람이 되는 자연 법칙은 영적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신생, 거듭남, 중생을 신앙생활의 시작이라고 한다. 거듭남이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성경은 신령한 양식을 사모하라고 말하고 있으며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요구하고 있다. 바울은 우리의 성장의 목표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두고 있다. 자연법칙이 영적세계에 적용되어서 자라난다면 그 반대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즉 질병과 발육부과 퇴보도 영적인 세계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말이다. 육신의 질병이 성장에 저해를 끼치는데 영적 질병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교만이라는 질병, 외식이라는 질병, 자기만족이라는 질병이 있다. 이것은 영적성장을 방해한다. 뿐만 아니라 발육부진인 신앙인도 있다. 매일 똑같은 신앙의 모습이다. 1년전이나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신앙의 모습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열심도 없고, 기쁨도 없고, 그냥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는 신앙을 말한다. (평생 자라지 않는다면 어떨까) 나아가서 성장이 퇴보하는 겨우도 있다. 가룟유다는 신앙의 퇴보를 한 사람이다. 실패한 사람이다. 예화 ) 성장의 퇴보 나이를 먹을 수록 점점 어려져 가는 여자가 미국 버지니아에서 살았었다. 그녀의 주치의의 말에 의하면(Virginia Medical Monthly), 그녀는 본래 정상적으로 성장했으며 결혼도 하였고 3명의 아이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자녀들은 어머니가 어려져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늙으면 어린이가 되는 현상이 있지만(이것을 심리학자들은 "개성복귀"라고 부른다), 그러한 현상은 어느 정도까지만 진행될 뿐인데 이 여자는 달랐다. 그녀의 행동은 평균 1년에 3-4개월씩 점점 어려졌다. 결국 그녀가 61세가 되었을 때, 그녀는 하는 행동이나 말이 6세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였다. 그녀는 후에 요양소로 보내졌는데, 그곳에서 어린애처럼 짧은 치마를 입고 장남감을 가지고 놀았다. 그녀는 음식도 흘리고 마루바닥에서 엄마를 부르며 징징 우는 3살난 어린이가 되었다. 이러한 퇴보는 한살난 아기상태까지 이르게 되면서 갓난아기처럼 우유병을 빨더니만 결국 그 한계를 넘어 죽고 말았다. 이런 퇴보는 혹 우리의 영혼에도 일어나는 것은 아닌가 처음에는 뜨거웠는데, 주님을 사랑했는데, 열심이었는데 지금은 그 열심이 점점 사라지고 이제 신앙이 습관화되는 퇴보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퇴보는 결국 불순종, 불신앙, 불복종으로 이어집니다.(가롯 유다처럼) 영적성장이 당연한 일이므로 성장해야 한다.
3) 영적 성장은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계속되는 과정이다. 우리의 신앙은 순간적인 각성, 깨달음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과정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어부 생활 중에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생활 속에서 많은 것을 듣고 체험하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고백의 순간이 있었는가 하면(마16:16), 맹세하고 저주하며 부인하던 순간도 있었습니다.(마26:69) 나아가서 두려움과 공포 속에 숨던 시절도 있었으며(요20:19), 갈릴리 바다로 되돌아 갔던 때도 있었습니다.(요21:) 그러나 성령님 충만해지고 능력을 받은 베드로, 담대한 설교, 미문의 기적을 일어켰고, 소신을 펴지 못했던(위선) 베드로(갈2:11)였지만 놀라운 활약,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 순교ㅎ\하였습니다.(쿼바디스) 영적성장은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끊이없이 계속되어져 가는 과정이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여러분이 영적으로 성장하시기를 바랍니다.
예화) 성장의 단계 신학자 넬즈 훼레 (Nels Ferre)는 자신의 신앙 순례를 통하여, 신앙의 깊이에는 세 단계가 있다고 말하였다.
첫째 단계는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는 단계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를 받아들이는 단계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구원자로 고백하는 단계이다. 여기에서 신앙이 좀더 깊이 들어가면
둘째 단계로서 정직해지는 단계이다. 자기의 자랑, 자신의 공포, 위선등을 내던지고 하나님 앞에 항복하는 단계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자기를 그 앞에 벌거숭이로 승복하는 단계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즉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단계이다. 그러나 신앙의 깊이는 여기에서 한 단계를 더 들어간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단계, 즉 아바 아버지로 부르는 단계이다. 그것은 모든 일에 있어서 아버지의 은혜를 감사하고 아들의 의무를 다하는 단계이다.
4) 균형있는 성장 영적 성장을 주도하는 인자가 있다.
예화) 성장인자 사람이 성장하게 되면 키가 커지는데 이때 키를 크게 하는 성장인자(IGF)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왜소증에 걸린다. 국내에서는 한양대 의대 申載薰교수(소아과)가 혈액으로부터 처음으로 추출에 성공한 이 성장인자는 발육에 영향을 주는 결정적 요소이다. 성장 호르몬이 정상이어도 이것이 부족하면 키가 크지 않는다고 한다. 신교수는 IGF를 연골세포에 투여한 결과 보통 연골세포 성장보다 5배 이상 증식하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17명을 대상으로 성장인자의 농도를 조사한 결과 저성장 어린이는 정상의 50% 이하였으며 거인증 아동은 2배 정도 농도가 높았다. 신앙인에게도 신앙성장인자가 있다. 그것이 없으면 신앙은 성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인가 예배, 기도 생활, 말씀 연구, 읽기, 회개와 실천등이다. 이 성장의 인자들이 고루 자라나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성장의 기형을 이룰 수 있다. 한국교회
1. 머리만 성장(지적인 교인-성경만 많이 안다)=서기관
2. 가슴만 성장(정적인 교인-열정적인 것을 많이 사모한다)=신비주의자
3. 다리만 성장(의지적인 교인-행동만 강조)=바리새인 교회에서는 성인, 사회에서는 아동으로 전락하는 성도들이 많아진다. 균형있는 성장을 이루기 위하여서는
(1) 겸손이다. 학생운동의 위대한 지도자 죤 모트는 말하기를 " 겸손은 부단히 유지되어야 한다. 인간의 생명에 대해서는 두가지 견해가 있다. 하나는 인간의 생명은 자신의 것으로 임의로 취급할 수 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인간의 생명은 타자에 속한 것이데 생명의 소유주는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들의 생명을 기꺼이 그리스도께 드리고 통회하여 마음과 정신을 낮춤으로 자신들을 우리의 위대하신 하나님의 처분에 맡기는 자들은 마음과 영혼의 소성함을 입게 될 것이다.(사57:15)
(2) 기도이다. 쉘든 고든(Sheldon D. Gordo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다. 이 말은 기도에 대해서 '말하는 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자신들이 기도를 믿는다고 말하는 자들을 두고 하는 말도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자들은 시간을 내서 기도하는 자들이다. 오늘날 바로 이들이 하나님을 위해 최상의 것을 하고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영혼들을 구하고 문제들을 해결하며 교회를 일깨우고 세상을 좀 더 오래 향기롭게 하는 일에 있어서 최상의 일을 하고 있다. 이러한 기도에 대치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3) 영적인 갈망이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여호와의 얼굴의 구해야 한다. 게속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추구하는 자들만이 영적으로 이 세대를 일깨워 분발시키는 그리스도인의 사역자들이 될 것이다.
예화) 흰돌산 기도원에서 기도하는 학생들을 보면 우리의 영적인 갈망이 너무나 메말라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4) 고백과 회개이다 대하7:14은 우리에게 악한 길에서 돌이키라고 담대히 촉구한다. 우리는 오직 죄의 심각성, 사악함과 비열함에 대해 개인적으로 집단적이며 국가적으로 슬퍼 괴로워하게 될 때만이 신앙부흥을 체험하는 자들 될 수 있을 것이다. 5) 영적 성장의 모델이 있다. 산골 오두막에 사는 어니스트라는 소년은 자기 집 앞 바위산을 바라보며 사는데, 사람들은 그 바위 산이 마치 살아있는 사람같아서 "큰 바위의 얼굴"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전설에 따르면 언젠가는 저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장엄하고 인자한 성자같은 훌륭한 인물이 이 고장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어니스트는 그 예언이 성취되어 그 성자를 만나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다. 그는 아침 저녁으로 그 큰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항상 수양을 하였다. 처음에는 큰 바위의 얼굴을 닮았다는 억만장자 부자가 나타났으나 사실은 인색하기 짝이없는 장사꾼이었으며 후에 보니 굶어죽었던 것이다. 다음에 천하장군이 나타났으나 무자비한 무인에 지나지 않았다. 세번째로 대통령감이 나타났다. 웅변이 뛰어나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것 같았으나 그 사람도 장엄과 인자를 겸하지 못한 사람에 불과 하였다.
네번째로 천하에 제일가는 천재적인 시인이 나타났다. 시는 장엄하였는데 사람을 만나보니 시만큼 사람이 뛰어나지 못하여 어니스트는 실망을 하였다. 이제 어니스트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 전도사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석양녘에 숲속에서 일생의 신앙과 수양이 높은 정열적인 설교를 할때, 동네 사람들과 천재적인 시인은 바로 한 고장에서 같이 살아온 농부며 전도사인 어니스트 노인이 저 전설에 나오는 큰 바위얼굴임을 비로서 알았다. 어니스트는 장엄과 자비라는 인간이 가질 최고의 자격을 구비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시인이 외쳤다. "보시오, 보시오, 저 어니스트야말로 바로 큰 바위의 얼굴 그 사람입니다!" 마침내 그 예언은 이루어졌던 것이다. 우리는 누구의 형상을 닮으려고 하는가 오랫동안 마음에 사모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한낱 시골소년인 어니스트가 평생을 바쳐 큰 바위의 얼굴을 사모하며 닮고자 했을때 그속에서 예언은 서서히 실현되어 가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모하며 닮고자 평생노력하면 우리는 충실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그를 따르라. 그의 길을 가라 영적성장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세계의 법칙이며, 우리의 평생에 계속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성장은 균형을 이루어쟈 하며, 그리스도가 우리의 성장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죽어 있는 신앙, 잠들어 있는 신앙, 졸고 있는 신앙, 퇴보하는 신앙에서 깨어나 성장하는 신앙인,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이르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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