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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줄 (벧전2:2-5)

본문

신자가 아이들을 기르다 보면 신앙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 어린 아이 들은 무조건 부모에게 의존한다. 혼내주어도 "엄마"하고 운다. 그리고 때로주면 더욱 달겨들어 안긴다. 도대체 아이가 부모에게 기대지 않으 면 어떻게 서겠는가그러기 때문에 부모는 아이에게 하나님이 된다. 그리고 아이들이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는 모습은 신자가 어떠해야 할지를 밝히 보여준다. 그러기에 그리스도는 분명히 말씀하신다. "너희의 신앙이 어린 아이 처럼 되지 않으면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무슨 말인가여 기서 어린 아이는 신자를, 부모는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아 이가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듯 신자들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의 지해야한다. 아이들은 모든 것을 부모에게 요구해서 타낸다. 신자도 하나님께 그렇게 해야 한다. 오늘날 신자들의 문제는 하나님에 대해서 너무도 무지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말로 계신지조차 불확실한 사람이 많다. 하나님이 내게 무 얼 주는지 모른다. 그저 막연히 무당을 통해서 조상신이나 터주대감이 나 산신령을 섬기는 식의 이해로 교회에 나오고 신앙생활을 한다. 이 들에게 귀신은 필요한때 정성을 보이면 되는 대상이다. 생활은 신앙과 아무 상관이 없다. 제대로 믿음의 교훈을 받음으로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게 된다. 기독교신앙이란 무당 섬기듯 자신은 그대로 있고 가끔 성의나 보이는게 아니다. 자기 전체를 다 포기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지음을 받고 그분으로부터 세상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모든걸 받 아누리는 특별존재가 된다.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알게될 때 그가 세상 부모와는 비교가 안되 게 자녀에게 좋은 모든 것을 줄 힘이 있으며 또한 그들과 비교가 않되 게 자녀를 사랑하고 돌보는 분임을 더 확실히 알게 된다. 이게 바로 신아이 깊어졌다는 것이다. 전보다 열심을 많이 낸다는 것만 가지고는 신앙의 깊이를 알 수 없다. 신앙이 깊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이 해가 그렇다는 말이다.
신앙으로 인간에게는 없지만 꼭 필요한 것들이 오직 하나님 안에 있 따는 것과, 신자는 자녀로서 그것을 요구해서 얻어가질 자격이 있음을 알게된다. 성경은 계속적으로 말하지 않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눈동자 처럼 지키고 돌보신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이라도 주시는데 다른 것들 은 당연히 주지 않겠느냐.이런 말을 들으면서도 그 말을 이해하지 못 한다면 그게 무슨 신앙인가. 그러나 하나님을 산신령이나 부처님처럼 이해하면서 대한다면 신앙생활은 절대로 발전이 없게 된다. 앞에 말한 것처럼 예배당에 오면 신자 이지만 그 외에는 전혀 세상사람과 근본적으로 다른 잠이 없다.그러니 본인도 자신을 볼 때 복받을 이유가 하나도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만 약 무슨 요구 사항이 생기면 그때가서 열심을 낸다. 하나님을 감동시 키려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신자들은 이런 신앙을 가지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한다 면 하나님보다는 자신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을 자기의 힘 으로 살다가 도움이 필요할 때만 하나님께 요청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성경이 말하는 인간과는 전혀 반대되는 행동이다. 인간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잘 모른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모르면 자기 자신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파생된 오해는 하나님 앞에서 염치를 차리게 한다. "그렇게 항상 부탁만 하면 되는가뭘 좀 해드리면서 달라고 해야지 그냥 달라 고만 해서야 얼마나 뻔뻔한가 "만약 아이들이 부모를 이런 식으로 대 한다면 절대로 바른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머로 어린애 처럼 되어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 한다. 어찌보면 성경에는 뻔뻔한 인간들만이 구원을 받았다. 체면차리는 사람들은 언제나 제외되었다. 온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친 소경,남의 집 지붕을 뜯어내고 들어온 중풍병자 귀신들린 딸 고쳐달라고 구걸하는 가나안 여인, 가장 절정은 십자가에서 처형되면서 영생을 부탁하는 뻔 뻔한 강도였다. 이들은 두가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능력이었다.
사람에게는 선도 없고 능력도 없다. 만약 이 말에 공감하지 않으면 절대로 신앙이 나올 수 없다. 염치와 체면을 차리는 사람은 하나님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신앙은 자신의 무력을 확실히 보고 전 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에게는 아무 힘도 없 어서 선도 능력도 전부가 하나님에게서만 나올 때 곧 100%의 의존이 될 때 완벽한 믿음이 된다. 바울이 말한 "내가 약한 그때가 곧 강함이라"는 말이 이것이다.자신 의 악함을 알수록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알수록 전적으로 하나님께만 의지한다. 마치 아기가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 같다. 이때 하나님은 신자에게 분명한 젖줄이 된다. 그로부터만 신령한 젖이 나와서 신자가 살 수 있게 한다. 부모는 하나님이요 젖은 복음의 지식이다. 생각해보라. 죄사함이 어디서 오고 의로움이 어디로부터 오는가 귀 신을 이기고 안보이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어디서 오는가썩지 않는 몸으로 다시 영원히 사는 힘은 어디서 얻는가선배들처럼 신자들을 그 렇게 신비하게 살게하는 힘의 원천 어디인가선배들처럼 신자들을 그 렇게 신비하게 살게하는 힘의 원천이 어디인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은 참된 평안과 영원한 삶이 어디서 오는가귀신인가부처인가모두 가 하나님에게서다. 이 힘은 복음의 지식으로 우리에게 쏟아져 들어온다. 젖이 부모의 애정과 능력이 집합된 것처럼 복음에는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이 집;합 되어 있다. 복음이 신자들에게 들려지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사랑에서 부터 나온다. 아기가 할일은 단지 젖을 물고 빠는 것이다. 신자의 할 일은 복음을 듣고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는 것이다. 그 복음의 지식이 신자를 변화시킨다.
이 복음의 지식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지 알고 자신이 어떤 존재 인지 아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도는 간구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필요한 것을 달라고 하는 것이다. 찬양이나 감사가 자연 스럽게 포함될 수 있지만 그것들은 기도가 아니다. 기도는 자녀가 부 모에게 무엇을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자비롭고 능력많은 신에게 필 요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산신령이나 부처와 근본적으로 같은 존재라고 보는 사람은 하나님을 감동시키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참 신앙의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알면서 자신이 감동한다. 이렇게 고마운 분에게 어찌 안구할 수 있으랴! 또한 내가 항상 그를 의지하지 않고 어떻게 살 수 있으랴!
그러므로 언제나 기도하게 된다. 하나님을 정말 믿기에 쉬지 않고 그에게 말한다. 칼빈의 말대로 기도는 신아의 가장 최상의 훈련이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매순간 받는다. 생각해 보라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 가 필요하지 않은 순간이 있는가
우리의 힘으로 설 수 있는 순간이 어디 있는가 하나님도 그렇기 때문에 쉬지 않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내 아들아,너는 절대로 악령과 죄악을 네 힘으로 이기지 못한다. 그 러니 항상 내게 말해라." 우리에게 가장 좋은 신앙 생활은 늘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그늘에 있는 것이다. 하늘 아버지 곁에 우리를 위해 저장되어 있는 무진장의 보물이 있다. 그것에 손이 닿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도하 시게 하는 이유가 무엇자니가그냥 주면 되지 왜 기도하게 하는가 그 냥 주면 우리가 나태해지고 교만해서 하나님을 떠난다. 그래서 요구해 서 타내라고 명령하신다. 그래서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필요한 것을 얻어야 한다. 물론 우리는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른다. 그러기에 쓸데 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요구한다. 하지만 그런 기도를 통해서라도 우리는 젖줄을 물고 있는 것이다.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그가 주신 복음의 내용을 가지고 그와 대화하며 그와 삶의 주파수를 맞춘다. 성령님은 기도하는 이의 기도를 돕고 계신다. 아픈 때나 슬픈 때나 기도하기 싫은 때나 신자는 언제나 기도를 해야 한다. 일이 원하는대로 잘 풀리고 기뻐할 일 투성이라도 기도해야 한다. 재산과 음식과 사랑하는 사람으로 둘려싸여도 하나님의 은혜가 중 단되면 그런 것들이 전혀 내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악이 되고 저주가 된다. 인간은 약하고 무서운 일은 항상 대기하고 있는 상태이다.어찌 기도 안하랴. 우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라.그리고 죄의 용서를 구하라.
늘 이렇게 함으로 우리는 자비를 받는다. 그리고 죄의 용서를 받는다. 사실 이 내용들이 가장 먼저 받아야할 것들이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되고 받아들여져서 다른 요구들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반 드시 응답된다는 확고한 믿음과 소망의 기도는 모든 절망스러운 상황 을 극복한다. 기도는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 끈질기게 들어지는게 아니다. 오래 힘들게 하고 금식하고 정성을 들이면 응답되기 때문이 아니다. 기도가 들어짐을 믿기에 그렇게 한다. 엘리아는 군중 앞에서 비오 기를 기도했다. 아무 소식도 없었다. 여러 시간, 그랬지만 여전히 하 늘은 맑고 태양은 뜨거웠다. 그는 계속했다.같은 내용을 일곱번이나 했따. 결국에는 비가 왔다. 그렇게 계속 기도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운다 신자 들도 곤경에 빠지는 수가 있다. 곤경에 빠져서 신음한다고 해도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이 온다는 것을 믿고 기도한다. 역경은 크지만 그가 도와주실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은혜를 요구하 면서도 그것을 받으리라 기대하지 않는다는 하나님께서는 이 믿음 부 족함에 노하실 것이다. 기도는 믿음의 인도를 따라야 한다.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 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그러나 "믿 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라"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쉽게 말해서 복음을 듣고 하나님을 아는 자만이 믿음 의 기도를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수의 근원인 하나님을 버리고 물없는 웅덩이를 판다.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크나큰 은혜에 관심을 쓰지도 않느다. "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 느니라"(잠 18:10)고 했다. 요엘은 장차올 무서운 파멸을 예언한다. 그리고는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욜 2:32) 고 확언했다.
그렇다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요청하는 자는 제외되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구원을 받을 것이다. 다시 말하노니 기도의 응답은 내쪽의 어떤 공로 때문이 아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자비 와 능력에 의지하기 때문이요 그의 약속이며 동시에 명령인 말씀에 따 르는 반응하는 것이다."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 행하리니 늘 기도하라." 가능하건 불가능하건 요구하라. 작건 크건 간에 항상 먼저 하나님께 말씀을 드려라. 반드시 이행된다. 내가 원하는 것과는 달라도 내게 꼭 필요하도록 응답이 된다. 기도는 하나님이 내게 무엇이든지 해 줄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요 기도는 그의 사랑이 너무 크시고 그가 너무 도 자상하시기에 한다. 그가 주신 명령 중에 가장 감사한 것은 기도 해서 타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전적으로 젖줄에 매달리는 사람은 절대로 낙심하 지 않는다. 언제나 생명을 공급받으리라. 그리고 하나님처럼 자라가리 라. 그렇게 그리스도와 같이 만들어져서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거 룩한 제사장으로 되어간다. 하나님 앞에서 서서 향을 피우는 제사장 그렇게 하는 것은 순전한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그렇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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