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목적 (벧전2:9-10)
본문
이 세상에 교회가 왜 있을까요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교회의 존재 이유를 설명합니다. 교회는 주일낮 아이들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고, 혹은 한(恨)을 풀지 못한 설움을 눈물로 실컷 해소할 할 수 있는 장소로 소개되기도 합니다. 어떤이들은 교회가 있으니까 찬양대의 음악을 들으면서 잠시나마 정신적 휴식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이들은 교회에서 좋은 설교를 들어야 보다 건전한 인생을 살 수 있으므로 교회가 존재한다고 봅니다. 또는 교회에 가서 목사님의 축복을 받아야 세상살이가 잘 풀기기 때문에 교회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이들은 교회가 유아 세례나 결혼식이나 장례식과 같은 의식을 위해서 필요한 종교 기관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물론 교회는 부분적으로 이러한 목적을 만족시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열거한 교회의 존재 이유들은 다 성경적인 것이라고 볼 수도 없고 교회의 존재 이유를 제대로 대변한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교회는 보다 중요하고 영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9절과 10절에서 교인들이 누구이며 그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밝힘으로써 교회의 존재 이유를 알려 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릅니다. 이것이 본 서신의 한결같은 주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되었기 때문에 다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세상과 분리시키기 위해서 따로 불러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자기 백성들에게 알리시고 그들도 거룩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1:15-16). 하나님의 백성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이 세상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신자들에게는 예수님이 소중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또 그들을 위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기뻐합니다. 베드로는 9절을 “오직 너희는”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말은 신자들과 세상의 불신자들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대조시키기 위한 서두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께로 나아왔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배척하였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예수님이 사랑스럽고 고귀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이 아무런 매력도 없습니다. 그들은 이 구원의 반석에게 오더라도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걸려 넘어집니다. 이로써 그들은 진리를 불순종하는 자들의 운명에 처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내쫓기는 자들이 됩니다.” 이 세상의 불신자들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실체를 도무지 깨닫지 못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백성들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들의 축복이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지를 새롭게 배워야 합니다.
베드로는 그의 수신자들에게 이 점을 상기시켰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저기서 모은 보잘것 없는 개개인들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나라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집합체입니다. 여러분은 함께 모여 다같이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돌의 비유도 사용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차고 어두운 땅속에서 발굴되었습니. 여러분은 캄캄한 구덩이에서 끌어 올려졌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진흙에서 여러분을 건져낸 후 바위 위에 발을 딛게 하셨습니다.(시40편). 이 바위는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초대 교회의 신자들에게 베드로가 준 본문의 말씀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적용됩니다. 사실상 지금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적인 집,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성전으로 지어져 갑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각 자가 하나의 돌입니다. 그들은 특별한 목적으로 체석되었으며 하나님의 계획 속에 꼭 들어 맞는 개인으로 다듬어져야 했습니다. 다듬는 작업에는 매우 긴 시간이 소요됩니다. 사실상 신자들의 지상 생애 전체가 이 연마 작업으로 점철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다듬는 일은 때때로 신자들에게 퍽 고통스럽습니다. 각 개인들에게 모가 나고 울통불통한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 연마 작업은 성령님의 성결 사역입니다. 성령님은 모든 성도들의 삶이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 들어맞도록 다듬습니다. 오늘날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의 건물인 교회로 지어져 갑니다. 성령님은 모든 성도들의 삶이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 들어 맞도록 다듬습니다. 오늘날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의 건물인 교회로 지어져 갑니다. 이것이 ‘거룩하게 되었다’는 말의 한 의미입니다. 석공은 건축물으 특정인 장소에 정확하게 들어갈 돌을 깎을 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법입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신자들도 하나님의 의도하신 교회라는 영적 성전의 어떤 구체적인 장소에 꼭 맞는 돌이 되려면, 거친 부분들이 많이 잘려지고 다듬어져야 합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한 가지 흥미있는 측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건축물을 위해 벽돌을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벽돌은 규젹품입니다. 벽돌은 모양이 같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지으실 때 개별적인 석재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성전에 쓰일 정확한 위치와 용도에 따라 각 돌들을 깎고 다듬습니다.
아무도 동일한 여건과 방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법이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대량 생산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각자가 모두 똑같은 봉사에 일률적으로 종사하기를 기대하시지도 않습니다. 각 성도들은 교회의 독특한 역활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편 교회의 각 돌들은 머릿돌에 연결되어 있으며 다른 돌들과도 상호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님의 집으로 지어져 갑니다. 교회의 정의 선택된 민족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은 옛 유댕니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특별히 택함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남달리 우수한 점이 있어서 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실상 당시의 수메르인들이 유대인들보다 문화에 앞섰고, 이집트인들은 확실히 유대인들보다 휠씬 나은 건축가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택하신 것은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킴으로써 약속을 지키셨습니다(신7:7-8). 어떤이들은 하나님의 선택의 교리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누구는 선택하고 누구는 선택하지 않는 것은 불공평하다. ” 고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도대체 누구 한 사람이라도 선택해 주는 일이 공정한 것인가”라고 물어 보아야 합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누구나 죄의 형별을 받아 마땅한 자들입니다. 우리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진정으로 거듭났다면, 구원의 선택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수 많은 사람들로부터 선택된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깁니까 아무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것을 놓고 자랑할 권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잘났다고 뻐기는 엘리트들을 선택하시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선택된 민족이지만 결코 우수한 민족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에는 자랑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리석고 연약하며 멸시받은 자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독자들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서로 상이한 배경을 가졌던 자들이었습니다. 어떤이들은 유대인들이었고 또 다른이들은 이방인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엡2: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엡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엡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엡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엡2:15) 원수 된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엡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엡2:17)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엡2: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님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한 새로운 민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 민족의 일원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된 것은 아브라함의 육신적 후손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께로 나아왔기 때문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 앞 장에서 우리는 각자가 모두 제사장들이라는 진리를 살펴 보았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본문에서 우리들이 하나의 집합체로서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영적 희생 제물을 올리는 일은 성도의 의무이며 특권입니다.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출19:6)가 되기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겼으므로 이 제사장 직분은 사실상 아론의 가문에 국한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제사장들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왕국에 불과하였습니다. 교회는 왕 중의 욍이며, 하나님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착실한 종들이 되기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말하였습니다(계1:6)
거룩한 나라 이 세상의 나라들은 대부분 온전하게 처신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민주주의가 잘 진행되고 국민 생활이 비교적 건전한 나라가 있다고 해도 결코 그런 나라를 거룩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세상 나라들은 근복적으로 이기적입니다. 애국심이라는 것도 다른 나라를 짓밟으면서 자국의 이해 관계에만 집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난하고 힘 없는 약소 민족들이 부강한 강대국들에 의해 착취를 당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자주 보는 현상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는 ‘거룩한’ 나라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거룩한 나라”가 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습니다.(출19:6), 베드로는 본문에서 이 하나님의 신령한 부르심을 교회에 적용시켰습니다. 하나님이 구속하신 백성들이 곧 하나님의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나라의 시민들을 선택하여 영광스런 봉사를 하도록 따로 성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말라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보배로운 특별한 소유라고 하였습니다(말3:17). 당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소유물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귀중품을 힘껏 보호하려고 할 것입니다. 당신은 그 소중한 물품을 잘 돌보며 미래를 위해 안전하게 보존할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하나님이 귀히 여기시는 백성들입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께 속했다면 당신 전체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기꺼이 인정하고 오직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에 일생을 다 보내기로 작정해야 합니다. 10절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일어난 변화를 적시해 줍니다. 한 때 이 백성들은 버림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호세아의둘째 아들인 로암미(내 백성이 아니다, 호1:9)의 이름처럼 하나님의 소유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과거에는 하나님의 긍휼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베벨론에 포로로 끌려 갈 운명에 놓였던 옛 이스라엘 같았고 호세아의 딸인 로루하마(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 호1:6)와 같았습니다. 한편, 호세아서 2장의 예언 속에는 매우 놀라운 변화가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호2:15).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과 하나의 언약을 맺으실 것이었습니다. “내가 … 궁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궁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호2:23) 우리는 신약에서 하나님의 이같은 놀라운 언약이 갈보리 십자가의 속죄 희생을 통해 성취된 것을 선명히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 이 놀라운 큰 축복들이 유대인들 못지 않게 이방인들에게도 적용된다고 피력하엿습니다. 교회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스스로의 모양을 내세우거나 불필요한 의식들에 마음이 사로 잡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의 외형적인 장식에 과도한 신경을 쓰는 것도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다름 사람에게 알리는 일을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행12:1)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하여 (행12: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행12: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일이라 (행12: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사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행12: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행12: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애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숫군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행12:7)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행12:8) 천사가 가로되 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가로되 겉옷을 입고 따라 오라 한대 (행12: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행12:10) 이에첫째와둘째 파수를 지나 성으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절로 열리는지라 나와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행12: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줄 알겠노라 하여 (행12: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두운 감옥에 같혔던 우리들을 풀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늘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구원의 능력을 찬양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9절과 10절에서 교인들이 누구이며 그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밝힘으로써 교회의 존재 이유를 알려 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릅니다. 이것이 본 서신의 한결같은 주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되었기 때문에 다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세상과 분리시키기 위해서 따로 불러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자기 백성들에게 알리시고 그들도 거룩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1:15-16). 하나님의 백성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이 세상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신자들에게는 예수님이 소중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또 그들을 위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기뻐합니다. 베드로는 9절을 “오직 너희는”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말은 신자들과 세상의 불신자들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대조시키기 위한 서두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께로 나아왔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배척하였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예수님이 사랑스럽고 고귀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이 아무런 매력도 없습니다. 그들은 이 구원의 반석에게 오더라도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걸려 넘어집니다. 이로써 그들은 진리를 불순종하는 자들의 운명에 처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내쫓기는 자들이 됩니다.” 이 세상의 불신자들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실체를 도무지 깨닫지 못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백성들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들의 축복이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지를 새롭게 배워야 합니다.
베드로는 그의 수신자들에게 이 점을 상기시켰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저기서 모은 보잘것 없는 개개인들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나라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집합체입니다. 여러분은 함께 모여 다같이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돌의 비유도 사용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차고 어두운 땅속에서 발굴되었습니. 여러분은 캄캄한 구덩이에서 끌어 올려졌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진흙에서 여러분을 건져낸 후 바위 위에 발을 딛게 하셨습니다.(시40편). 이 바위는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초대 교회의 신자들에게 베드로가 준 본문의 말씀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적용됩니다. 사실상 지금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적인 집,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성전으로 지어져 갑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각 자가 하나의 돌입니다. 그들은 특별한 목적으로 체석되었으며 하나님의 계획 속에 꼭 들어 맞는 개인으로 다듬어져야 했습니다. 다듬는 작업에는 매우 긴 시간이 소요됩니다. 사실상 신자들의 지상 생애 전체가 이 연마 작업으로 점철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다듬는 일은 때때로 신자들에게 퍽 고통스럽습니다. 각 개인들에게 모가 나고 울통불통한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 연마 작업은 성령님의 성결 사역입니다. 성령님은 모든 성도들의 삶이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 들어맞도록 다듬습니다. 오늘날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의 건물인 교회로 지어져 갑니다. 성령님은 모든 성도들의 삶이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 들어 맞도록 다듬습니다. 오늘날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의 건물인 교회로 지어져 갑니다. 이것이 ‘거룩하게 되었다’는 말의 한 의미입니다. 석공은 건축물으 특정인 장소에 정확하게 들어갈 돌을 깎을 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법입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신자들도 하나님의 의도하신 교회라는 영적 성전의 어떤 구체적인 장소에 꼭 맞는 돌이 되려면, 거친 부분들이 많이 잘려지고 다듬어져야 합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한 가지 흥미있는 측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건축물을 위해 벽돌을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벽돌은 규젹품입니다. 벽돌은 모양이 같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지으실 때 개별적인 석재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성전에 쓰일 정확한 위치와 용도에 따라 각 돌들을 깎고 다듬습니다.
아무도 동일한 여건과 방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법이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대량 생산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각자가 모두 똑같은 봉사에 일률적으로 종사하기를 기대하시지도 않습니다. 각 성도들은 교회의 독특한 역활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편 교회의 각 돌들은 머릿돌에 연결되어 있으며 다른 돌들과도 상호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님의 집으로 지어져 갑니다. 교회의 정의 선택된 민족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은 옛 유댕니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특별히 택함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남달리 우수한 점이 있어서 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실상 당시의 수메르인들이 유대인들보다 문화에 앞섰고, 이집트인들은 확실히 유대인들보다 휠씬 나은 건축가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택하신 것은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킴으로써 약속을 지키셨습니다(신7:7-8). 어떤이들은 하나님의 선택의 교리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누구는 선택하고 누구는 선택하지 않는 것은 불공평하다. ” 고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도대체 누구 한 사람이라도 선택해 주는 일이 공정한 것인가”라고 물어 보아야 합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누구나 죄의 형별을 받아 마땅한 자들입니다. 우리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진정으로 거듭났다면, 구원의 선택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수 많은 사람들로부터 선택된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깁니까 아무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것을 놓고 자랑할 권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잘났다고 뻐기는 엘리트들을 선택하시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선택된 민족이지만 결코 우수한 민족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에는 자랑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리석고 연약하며 멸시받은 자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독자들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서로 상이한 배경을 가졌던 자들이었습니다. 어떤이들은 유대인들이었고 또 다른이들은 이방인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엡2: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엡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엡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엡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엡2:15) 원수 된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엡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엡2:17)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엡2: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님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한 새로운 민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 민족의 일원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된 것은 아브라함의 육신적 후손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께로 나아왔기 때문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 앞 장에서 우리는 각자가 모두 제사장들이라는 진리를 살펴 보았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본문에서 우리들이 하나의 집합체로서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영적 희생 제물을 올리는 일은 성도의 의무이며 특권입니다.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출19:6)가 되기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겼으므로 이 제사장 직분은 사실상 아론의 가문에 국한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제사장들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왕국에 불과하였습니다. 교회는 왕 중의 욍이며, 하나님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착실한 종들이 되기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말하였습니다(계1:6)
거룩한 나라 이 세상의 나라들은 대부분 온전하게 처신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민주주의가 잘 진행되고 국민 생활이 비교적 건전한 나라가 있다고 해도 결코 그런 나라를 거룩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세상 나라들은 근복적으로 이기적입니다. 애국심이라는 것도 다른 나라를 짓밟으면서 자국의 이해 관계에만 집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난하고 힘 없는 약소 민족들이 부강한 강대국들에 의해 착취를 당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자주 보는 현상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는 ‘거룩한’ 나라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거룩한 나라”가 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습니다.(출19:6), 베드로는 본문에서 이 하나님의 신령한 부르심을 교회에 적용시켰습니다. 하나님이 구속하신 백성들이 곧 하나님의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나라의 시민들을 선택하여 영광스런 봉사를 하도록 따로 성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말라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보배로운 특별한 소유라고 하였습니다(말3:17). 당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소유물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귀중품을 힘껏 보호하려고 할 것입니다. 당신은 그 소중한 물품을 잘 돌보며 미래를 위해 안전하게 보존할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하나님이 귀히 여기시는 백성들입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께 속했다면 당신 전체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기꺼이 인정하고 오직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에 일생을 다 보내기로 작정해야 합니다. 10절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일어난 변화를 적시해 줍니다. 한 때 이 백성들은 버림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호세아의둘째 아들인 로암미(내 백성이 아니다, 호1:9)의 이름처럼 하나님의 소유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과거에는 하나님의 긍휼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베벨론에 포로로 끌려 갈 운명에 놓였던 옛 이스라엘 같았고 호세아의 딸인 로루하마(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 호1:6)와 같았습니다. 한편, 호세아서 2장의 예언 속에는 매우 놀라운 변화가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호2:15).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과 하나의 언약을 맺으실 것이었습니다. “내가 … 궁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궁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호2:23) 우리는 신약에서 하나님의 이같은 놀라운 언약이 갈보리 십자가의 속죄 희생을 통해 성취된 것을 선명히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 이 놀라운 큰 축복들이 유대인들 못지 않게 이방인들에게도 적용된다고 피력하엿습니다. 교회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스스로의 모양을 내세우거나 불필요한 의식들에 마음이 사로 잡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의 외형적인 장식에 과도한 신경을 쓰는 것도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다름 사람에게 알리는 일을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행12:1)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하여 (행12: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행12: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일이라 (행12: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사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행12: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행12: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애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숫군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행12:7)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행12:8) 천사가 가로되 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가로되 겉옷을 입고 따라 오라 한대 (행12: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행12:10) 이에첫째와둘째 파수를 지나 성으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절로 열리는지라 나와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행12: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줄 알겠노라 하여 (행12: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두운 감옥에 같혔던 우리들을 풀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늘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구원의 능력을 찬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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