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찬송 (벧전1:3-12)
본문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 보이지 않는 자산이 있습니다. 하나는 희망이고 또 하나는 연단입니다. 사람은 미래를 먹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사람에게 장래가 없고 미래가 없고 희망이 없다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 미래와 희망이 있음으로 해서 오늘을 살고 또 오늘의 어려움도 잘 이겨내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연단이라는 훈련을 받게 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 연단을 받을 때는 아프고 힘이 들지만 그 고난의 경험이 후에 얼마나 좋은 지혜와 힘을 주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옛 조상들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이 경험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소중한 자산이 되어 줍니다.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뒤로는 난국을 타개하는 방법을 바꾸었습니다. 이전 같았으면 고난이 오면 뒤로 후퇴하였을 것인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난 뒤에는 정면 돌파를 했습니다. 시원 64년에 로마에 큰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이 불은 네로 황제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위해서 일부러 방화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있었고 로마에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되면서 위협을 느낀 네로 황제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위해서 로마 시내에 불을 지르고는 이 불을 그리스도인들이 방화했다고 뒤집어 씌우고 조직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수난을 당하고 죽음의 위협을 당하면서 살아갔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비장한 마음으로 실라와 마가를 데리고 로마를 방문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의 위협을 감수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베드로는 예루살렘에 편안히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또한 로마에 가면 죽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핍박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직접 만나서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핍박과 죽음을 각오하고 로마로 갑니다. 가서 베드로는 핍박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1. 찬송하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찬송하라고 했는가 하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너희를 거듭나게 하신 것을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이 거듭났다는 말은 중생했다는 말입니다. 이를테면 옛날의 나는 이미 죽었고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생명을 얻어 다시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악했던 사람이 착해지는 것을 가리켜서 변화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예수가 주시는 새생명을 얻어서 변화를 받았다면 그것은 거듭났다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지금 박해받고 고난을 당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찬송할 조건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받는 핍박쯤은 문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오히려 찬송하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사실입니다. 우리들이 지금 거듭나고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마땅히 찬송할 일입니다. 우리들이 오늘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으니 그렇지 안 그랬으면 지금쯤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까 이 점은 생각하면 할수록 감사할 일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여기서 고난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당당하게 말합니다. 지금 받는 고난쯤은 너희들이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과 비교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가도 말합니다. 얼마나 자신 있는 격려입니까 그리고 두 번째 찬송할 조건은 산 소망이 있게 하신 것을 찬송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려고 하면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소망은 영원한 소망이어야 합니다. 영원한 소망이 되려고 하면 세가지 조건이 부합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썩지 않아야 하고, 더럽혀지지 않아야 하고, 쇠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영원한 산 소망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주는 소망이 어디 그렇습니까 곧 변하고 오염되고 추해지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소망은 산 소망입니다. 영원한 소망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고난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권고하기를 너희는 찬송하라,
왜냐하면 이 같은 소망을 주신 것을 생각하면 지금 받는 고난쯤은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오히려 찬송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참 위대한 것입니다. 신앙에는 깊고도 심오한 힘이 들어 있습니다. 이 신비를 체험한 사람은 용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박해 속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순교하고 불 속에 뛰어들고 동물에게 찢겨 죽으면서도 순교의 길을 갑니다. 베드로도 예루살렘 교회에 그대로 있었으면 말년을 평안하게 보냈을텐데 로마의 그 고난의 와중에 뛰어들어가서 권고하기를 찬송하라고 타이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예수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생각해 봅니다. 오늘은 우리들이 이렇게 편안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마지막 시대가 되면 고난의 때가 온다고 했습니다. 혹시 옛날과 같은 그런 고난의 때가 이땅에 다시 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그때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때 나도 베드로처럼 죽을 각오를 하고 고난의 자리로 자청해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하고 가끔씩 그런 생각을 스스로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난도 받을 만한 고난이 있습니다. 내가 잘못해서 고난을 당하고 사업에 실패해서 고난을 당하면 매우 힘이 들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정신 이상을 일으키는 분도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분들은 스스로 생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얼마나 그 순간이 힘들면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겠습니까
그런데 그 고난이 예수 때문이라면 얼마든지 참을 수가 있습니. 얼마나 떳떳한 고난입니까 얼마나 명예롭고 영광스럽고 한번 해볼 만한 고난입니까 아마 여러분들도 그런 환경이 된다면 모두 용기 있는 행동으로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내 힘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때는 또 하나님이 힘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스스로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고난당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찬송하라고 타이르고 있습니다.
2. 시험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벧전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시험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시험은 원래 페이라조라는 말입니다. 시험은 넘어지는가 보려고 한 번 테스트해 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페이라조라는 말은 한번 해본다는 뜻입니다. 해봐서 넘어지면 시련이고, 안 넘어지면 시험입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너희가 넘어지는가 한번 해보는 그런 시험에 근심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예수 때문에 당하는 시험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좋은 격려입니까 베드로가 언제 이렇게 성숙한 지도자가 되었습니까 얼마나 든든한 믿음의 선배요 신앙의 지도자입니까 우리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이런 분이 곁에서 이렇게 위로해 주면 참 힘이 될 것입니다. 의지가 되고 용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의 중직들은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중직이 사람들 앞에서 무력하게 넘어지면 모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힘일 잃게 됩니다. 그래서 사탄은 시험을 걸 때 먼저 중직들을 걸어서 넘어뜨립니다. 그러면 나머지 모든 사람들이 보기만 하고서도 힘을 잃게 됩니다. 그 중직이 끝까지 버티고 서 있어 주면 모든 사람들에게 히이 됩니다. 용기가 됩니다. 이것이 중직의 책임입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직접 고난의 현장에 나타나서 고난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크게 기뻐하라, 이 고난은 잠깐 지나가는 것이니 오히려 기뻐하라” 얼마나 좋은 격려입니까
3. 왜 시험이 오는가하는 문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벧전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시험의 이유입니다. 그 이유는 단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금보다 더 귀하게 하시려고”입니다. 그렇게 해서 무엇하느냐 하면 “주님 오실 때 영광 되게 하시려고”입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신앙 연단을 금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금입니다. 금이 귀한 것은 금이 지니는 영속성 때문입니다. 다변해도 금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죽어서 땅 속에 묻혀 20년 30년을 있으면 다 부패하고 한줌 흙이 되어도 금은 부패하지 않고 찬란하게 빛이 납니다. 금은 수천 년을 땅 속에 묻혀 있어도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혼할 때 사람들은 금으로 만든 반지를 선물로 주고받습니다. 그것이 바로 연단받은 믿음입니다. 흔히 신앙인들에게 고난이 오면 신앙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떨어져 나가는 신앙이고 또 하나는 더 단단해지는 신앙입니다.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면 평소에 내용이 빈약한 신앙인들은 대부분 떨어져 나갑니다. 그렇지만 중심 있는 신앙인들은 그 신앙이 더 단단해지고 새련되어져 갑니다. 이렇게 연단받아서 더 찬란하게 빛이 나고 유명해진 삶이 있다면 그는 욥일 것입니다. 욥의 신앙은 연단을 받으므로 더욱 빛이 났습니다. 제산을 잃고 자식을 잃고 나중에는 아내도 잃고 몸에 병까지 들어서 목숨만 가냘프게 붙어 있었지만 그는 끝까지 견디어 냅니다. 그 연단의 주체가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는 끝까지 인내합니다. 목적이 분명하니까 끝까지 인내한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고난이 지나간 후에 욥이 얼마나 찬란하게 빛이 납니까 우리들이 세상을 살면서 때로 연단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꼭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의 목적을 분명히 이해하는 일입니다. 내가 지금 왜 이런 고난을 당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고난의 이유를 알지 못하게 되면 그 고난이 더 아프고 괴로울 수 있습니다. 명분 있는 고난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내할 수가 있습니다. 황영조라는 마라톤 선수가 올림픽에서 죽기를 작정하고 뛰어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후에 그가 말하기를 한참을 뛰는데 어느 지점인가부터는 더 이상 뛸 수가 없어서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느라고 고통을 많이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고통을 이겨내며 뛰었는가 하면 상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겨야만 주어지는 금메달의 상을 생각하고 뛰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목적이 분명하면 이렇게 오늘의 고난을 잘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세계에도 수고가 없이는 상도 없습니다. 고난이 없이는 면류관도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고난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시련을 잘 이겨내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지금 받고 있는 고난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음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4. 구원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벧전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믿음을 현시제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같은 믿음을 세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하나는 과거입니다. 과거에 우리는 중생했고 거듭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모두 의롭다함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는 지금입니다. 지금 우리는 성결의 단계에 와 있습니다. 우리들은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해진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분노하고 시험받고 유혹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얼마든지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도 가진 채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죄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죄 짓기를 좋아하고 즐겼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금 우리들이 성결해져서 그렇습니다. 성결이 무엇이냐 하면 죄를 지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지만, 죄를 좋아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상태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지금 처해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단계는 장차 주어질 단계입니다. 그것이 영화으이 단계입니다. 우리들이 세상에서 다 살고 천국에 가면 그때는 우리의 미완성의 신앙이 모두 완성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모두 그때 완전한 영화의 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우리 모두가 그 영화의 단계에 100% 도달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빌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고난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이 믿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 선지자들도 이것을 연구했다고 했습니다. 옛날 선지자들도 이 믿음에 대해서 연구했습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옛날에도 이 믿음을 연구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너희들만 고난받는 것이 아니다. 옛날 선지자들도 이 문제로 고민을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매도 혼자 맞으면 아픕니다.
그런데 단체 기합을 받으면 매를 맞으면서도 재미가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격려하기를 “이 환난이 너희들만 받는 것이 아니고 옛날 사람들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12절에서 이 믿음이 얼마나 중요하나 하면 “천사도 흠모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천사는 구원받는 일이 없습니다. 구원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찬송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믿음이로 구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스스로 고난 속으로 들어가서 고난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그만큼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그때보다 신앙을 유지하기가 더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때는 위압을 이기기 위해서 힘쓰며 노력하느라고 애를 썼지만, 오늘날은 어떤 위압이 없어도 내 스스로 신앙을 유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날씨는 덥고 할 일은 많고 갈 곳도 많고 놀 일도 많은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서 우리의 신앙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그래서 오늘날은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보잘것없는 신앙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신앙이 좀더 내용 있고 잘 짜여진 신앙으로 발전되어서 보다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이 될 수 이기를 기원합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우리에게 부여된 가장 큰 의무이고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요구이고 선하신 뜻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의 위협을 감수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베드로는 예루살렘에 편안히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또한 로마에 가면 죽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핍박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직접 만나서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핍박과 죽음을 각오하고 로마로 갑니다. 가서 베드로는 핍박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1. 찬송하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찬송하라고 했는가 하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너희를 거듭나게 하신 것을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이 거듭났다는 말은 중생했다는 말입니다. 이를테면 옛날의 나는 이미 죽었고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생명을 얻어 다시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악했던 사람이 착해지는 것을 가리켜서 변화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예수가 주시는 새생명을 얻어서 변화를 받았다면 그것은 거듭났다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지금 박해받고 고난을 당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찬송할 조건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받는 핍박쯤은 문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오히려 찬송하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사실입니다. 우리들이 지금 거듭나고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마땅히 찬송할 일입니다. 우리들이 오늘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으니 그렇지 안 그랬으면 지금쯤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까 이 점은 생각하면 할수록 감사할 일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여기서 고난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당당하게 말합니다. 지금 받는 고난쯤은 너희들이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과 비교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가도 말합니다. 얼마나 자신 있는 격려입니까 그리고 두 번째 찬송할 조건은 산 소망이 있게 하신 것을 찬송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려고 하면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소망은 영원한 소망이어야 합니다. 영원한 소망이 되려고 하면 세가지 조건이 부합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썩지 않아야 하고, 더럽혀지지 않아야 하고, 쇠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영원한 산 소망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주는 소망이 어디 그렇습니까 곧 변하고 오염되고 추해지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소망은 산 소망입니다. 영원한 소망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고난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권고하기를 너희는 찬송하라,
왜냐하면 이 같은 소망을 주신 것을 생각하면 지금 받는 고난쯤은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오히려 찬송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참 위대한 것입니다. 신앙에는 깊고도 심오한 힘이 들어 있습니다. 이 신비를 체험한 사람은 용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박해 속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순교하고 불 속에 뛰어들고 동물에게 찢겨 죽으면서도 순교의 길을 갑니다. 베드로도 예루살렘 교회에 그대로 있었으면 말년을 평안하게 보냈을텐데 로마의 그 고난의 와중에 뛰어들어가서 권고하기를 찬송하라고 타이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예수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생각해 봅니다. 오늘은 우리들이 이렇게 편안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마지막 시대가 되면 고난의 때가 온다고 했습니다. 혹시 옛날과 같은 그런 고난의 때가 이땅에 다시 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그때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때 나도 베드로처럼 죽을 각오를 하고 고난의 자리로 자청해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하고 가끔씩 그런 생각을 스스로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난도 받을 만한 고난이 있습니다. 내가 잘못해서 고난을 당하고 사업에 실패해서 고난을 당하면 매우 힘이 들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정신 이상을 일으키는 분도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분들은 스스로 생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얼마나 그 순간이 힘들면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겠습니까
그런데 그 고난이 예수 때문이라면 얼마든지 참을 수가 있습니. 얼마나 떳떳한 고난입니까 얼마나 명예롭고 영광스럽고 한번 해볼 만한 고난입니까 아마 여러분들도 그런 환경이 된다면 모두 용기 있는 행동으로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내 힘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때는 또 하나님이 힘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스스로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고난당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찬송하라고 타이르고 있습니다.
2. 시험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벧전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시험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시험은 원래 페이라조라는 말입니다. 시험은 넘어지는가 보려고 한 번 테스트해 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페이라조라는 말은 한번 해본다는 뜻입니다. 해봐서 넘어지면 시련이고, 안 넘어지면 시험입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너희가 넘어지는가 한번 해보는 그런 시험에 근심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예수 때문에 당하는 시험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좋은 격려입니까 베드로가 언제 이렇게 성숙한 지도자가 되었습니까 얼마나 든든한 믿음의 선배요 신앙의 지도자입니까 우리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이런 분이 곁에서 이렇게 위로해 주면 참 힘이 될 것입니다. 의지가 되고 용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의 중직들은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중직이 사람들 앞에서 무력하게 넘어지면 모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힘일 잃게 됩니다. 그래서 사탄은 시험을 걸 때 먼저 중직들을 걸어서 넘어뜨립니다. 그러면 나머지 모든 사람들이 보기만 하고서도 힘을 잃게 됩니다. 그 중직이 끝까지 버티고 서 있어 주면 모든 사람들에게 히이 됩니다. 용기가 됩니다. 이것이 중직의 책임입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직접 고난의 현장에 나타나서 고난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크게 기뻐하라, 이 고난은 잠깐 지나가는 것이니 오히려 기뻐하라” 얼마나 좋은 격려입니까
3. 왜 시험이 오는가하는 문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벧전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시험의 이유입니다. 그 이유는 단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금보다 더 귀하게 하시려고”입니다. 그렇게 해서 무엇하느냐 하면 “주님 오실 때 영광 되게 하시려고”입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신앙 연단을 금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금입니다. 금이 귀한 것은 금이 지니는 영속성 때문입니다. 다변해도 금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죽어서 땅 속에 묻혀 20년 30년을 있으면 다 부패하고 한줌 흙이 되어도 금은 부패하지 않고 찬란하게 빛이 납니다. 금은 수천 년을 땅 속에 묻혀 있어도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혼할 때 사람들은 금으로 만든 반지를 선물로 주고받습니다. 그것이 바로 연단받은 믿음입니다. 흔히 신앙인들에게 고난이 오면 신앙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떨어져 나가는 신앙이고 또 하나는 더 단단해지는 신앙입니다.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면 평소에 내용이 빈약한 신앙인들은 대부분 떨어져 나갑니다. 그렇지만 중심 있는 신앙인들은 그 신앙이 더 단단해지고 새련되어져 갑니다. 이렇게 연단받아서 더 찬란하게 빛이 나고 유명해진 삶이 있다면 그는 욥일 것입니다. 욥의 신앙은 연단을 받으므로 더욱 빛이 났습니다. 제산을 잃고 자식을 잃고 나중에는 아내도 잃고 몸에 병까지 들어서 목숨만 가냘프게 붙어 있었지만 그는 끝까지 견디어 냅니다. 그 연단의 주체가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는 끝까지 인내합니다. 목적이 분명하니까 끝까지 인내한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고난이 지나간 후에 욥이 얼마나 찬란하게 빛이 납니까 우리들이 세상을 살면서 때로 연단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꼭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의 목적을 분명히 이해하는 일입니다. 내가 지금 왜 이런 고난을 당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고난의 이유를 알지 못하게 되면 그 고난이 더 아프고 괴로울 수 있습니다. 명분 있는 고난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내할 수가 있습니다. 황영조라는 마라톤 선수가 올림픽에서 죽기를 작정하고 뛰어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후에 그가 말하기를 한참을 뛰는데 어느 지점인가부터는 더 이상 뛸 수가 없어서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느라고 고통을 많이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고통을 이겨내며 뛰었는가 하면 상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겨야만 주어지는 금메달의 상을 생각하고 뛰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목적이 분명하면 이렇게 오늘의 고난을 잘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세계에도 수고가 없이는 상도 없습니다. 고난이 없이는 면류관도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고난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시련을 잘 이겨내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지금 받고 있는 고난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음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4. 구원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벧전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믿음을 현시제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같은 믿음을 세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하나는 과거입니다. 과거에 우리는 중생했고 거듭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모두 의롭다함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는 지금입니다. 지금 우리는 성결의 단계에 와 있습니다. 우리들은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해진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분노하고 시험받고 유혹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얼마든지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도 가진 채 지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죄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죄 짓기를 좋아하고 즐겼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금 우리들이 성결해져서 그렇습니다. 성결이 무엇이냐 하면 죄를 지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지만, 죄를 좋아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상태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지금 처해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단계는 장차 주어질 단계입니다. 그것이 영화으이 단계입니다. 우리들이 세상에서 다 살고 천국에 가면 그때는 우리의 미완성의 신앙이 모두 완성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모두 그때 완전한 영화의 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우리 모두가 그 영화의 단계에 100% 도달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빌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여기서 고난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이 믿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 선지자들도 이것을 연구했다고 했습니다. 옛날 선지자들도 이 믿음에 대해서 연구했습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옛날에도 이 믿음을 연구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너희들만 고난받는 것이 아니다. 옛날 선지자들도 이 문제로 고민을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매도 혼자 맞으면 아픕니다.
그런데 단체 기합을 받으면 매를 맞으면서도 재미가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격려하기를 “이 환난이 너희들만 받는 것이 아니고 옛날 사람들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12절에서 이 믿음이 얼마나 중요하나 하면 “천사도 흠모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천사는 구원받는 일이 없습니다. 구원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찬송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믿음이로 구원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스스로 고난 속으로 들어가서 고난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그만큼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그때보다 신앙을 유지하기가 더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때는 위압을 이기기 위해서 힘쓰며 노력하느라고 애를 썼지만, 오늘날은 어떤 위압이 없어도 내 스스로 신앙을 유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날씨는 덥고 할 일은 많고 갈 곳도 많고 놀 일도 많은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서 우리의 신앙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그래서 오늘날은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보잘것없는 신앙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신앙이 좀더 내용 있고 잘 짜여진 신앙으로 발전되어서 보다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이 될 수 이기를 기원합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우리에게 부여된 가장 큰 의무이고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요구이고 선하신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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