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의 정욕을 제어하라 (벧전2:11-12)
본문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12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 지금까지 (1:13-2:10)는 대체적으로 개인생활에 관한 권면을 준 저자는 곧이어 이제 성도들이 사회인으로서 처신할 바에 대하여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수신.제가.평천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11-12절은 서론적으로 성도의 기본적인 자세와 사회적인 위치를 말하고 13-17절은 성도는 사회인으로서 국가의 권세에 대한 태도를 밝힙니다. 18-25절은 종의 윤리에 대해서 3:1-7절은 부부간의 윤리,즉 가정생활을 위한 권면을 주고 있습니다. 그럼 오늘은 11절과 12절을 통해 그리스도인인 제어해야 할 것과 하나님앞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성도의 사회적인 생활을 위해 권면함에 있어서 신자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성도들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 도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즉 성도는 세상에 살고 있으나 세상에서 나그네와 행인들이기 때문에 성도의 한가지 행동이 불신자에게 비방거리를 제공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나그네의 신분임을 기억한다면 언제나 영원한 본향에 돌아갈 것을 염두에 두며 세상을 살아야 하며 책무를 다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에서는 그 생활을 선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
1절 초반에 “사랑하는 자들아” 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늘 애용하는 말입니다. 이는 베드로가 사랑하는 대상이 될수 있으며 넓은 의미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대상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우리의 위치를 가만히 살피면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리신 것을 보면 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 이렇게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기 까지 사랑 받을 조건이 없는데 이런 놀라운 사랑을 받을 것을 생각할때마다 감사가 넘칩니다.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이말은 정말 우리의 위치를 알려줍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나그네와 행인같음을 알지 못하게 될때 땅에서, 세상에서 소망을 두고 세상에서 영원히 살것으로 착각을 하고 살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이세상이 목적지가 아닙니다. 우리의 영원한 목적지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는 영원한 천국입니다. 레 25:23에 보면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히 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참고 히 11:13-16 믿음의 사람들의 삶의 방식 히 11:13-16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14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15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16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성도의 삶의 방식은 영원한 천국, 우리의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는 삶의 태도가 무엇보다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인생의 나그네입니다. 그렇기에 세상에 땅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세상에 살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뜻이 무엇인가 이것이 매우 중요하며 이를 알고 실천하는 삶이야말로 정말 아름답고 귀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베드로 사도는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육체의 정욕대로 산다면 이미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이는 세상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성도가 왜 육체의 정욕을 제어해야만 합니까 그것은 바로 영혼을 거스리기 때문입니다. 약 4:1에 보면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육체의 정욕은 육체적 욕망을 채우려는 것으로 악성적 욕심을 말합니다. 성도는 이런 육체의 정욕을 잘 제어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특별히 로마 교회의 교인들에게 보내는 로마서에서 자기 속에서 싸우는 두가지 자아에 개해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고 하는 마음과 육신의 법을 좇아 살려고 하는 두가지 마음이 싸우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 7:24-25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고 탄식하고 있고 25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세상의 나그네입니다. 나그네는 일정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요,그 다음 방법은 육신의 정욕을 제어해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어서 5:24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렇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사람으로서 피조물로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기에 영원한 하늘나라에 본향을 둔 성도로서의 삶은 이제 이렇게 죄와 육신의 정욕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죽은 사람은 반응이 없습니다. 깨어도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반응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죄와 육신의 정욕에 죽은 사람이 되었다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았다면 죄와 정욕이 우리를 유혹해도 전혀 반응이 없어야 합니다. 거기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삶이야 말로 영원한 하늘에 본향을 둔 성도의 마땅한 삶인것입니다. 육신의 정욕은 롬 7: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사망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고전 15:50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이 정욕을 제어해야 할 마땅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삶속에 아직도 육신의 정욕이 남아 있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혈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고 나그네된 삶을 산다면, 영원한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두고 있다면 그래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십니다. 성도의 삶은 바로 이와 같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어야 하고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12절에 보면 벧전 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고 했는데 그리스도인이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는 삶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편지를 쓸 당시에 그리스도인에 대한 평판이 왜곡되어 있었습니다. 곧 악행을 하는 새로운 미신으로 오해를 받았습니다. 즉 악행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서 바로 선한 행실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것으로서 선한 행실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방인중에 선한 행실을 가지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은 유대인을 제외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참 유대인라면 그리스도밖에 있는 불신자를 의미합니다. 불신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비난합니다. 선한 행실이 없다고 외칩니다. 그러나 간혹 성도의 잘못된 행실이 전체 그리스도인의 것인양 싸잡아 비난을 할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예수를 믿는 사람을 욕하게 되는 악한 행실을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벧전 3: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 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빌 2: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딛 2:7-8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과 8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 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마 5:16에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선한 행실로 말미암아 불신자들이 마음에 권고함을 받는 날 즉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일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결국, 그것은 바로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남편이 아내가 자녀들이 친척이나 친구가 우리의 선한행실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돌아올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중 가장 중요한 것중 하나가 바로 나의 올바른 행실 선한 행실로 말미암아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주께 인도하는 것입니다. 날마다의 삶속에 하나님의 은혜속에 사시는 성도 여러분께서는 영원한 하늘 본향에 소망을 두시고 나그네와 행인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고 선한 행실을 하게 되므로 말미암아 이제 불신자들을 하나님께 인도하시는 거룩한 성도가 다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1절 초반에 “사랑하는 자들아” 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늘 애용하는 말입니다. 이는 베드로가 사랑하는 대상이 될수 있으며 넓은 의미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대상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우리의 위치를 가만히 살피면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리신 것을 보면 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 이렇게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기 까지 사랑 받을 조건이 없는데 이런 놀라운 사랑을 받을 것을 생각할때마다 감사가 넘칩니다.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이말은 정말 우리의 위치를 알려줍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나그네와 행인같음을 알지 못하게 될때 땅에서, 세상에서 소망을 두고 세상에서 영원히 살것으로 착각을 하고 살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이세상이 목적지가 아닙니다. 우리의 영원한 목적지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는 영원한 천국입니다. 레 25:23에 보면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히 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참고 히 11:13-16 믿음의 사람들의 삶의 방식 히 11:13-16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14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15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16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성도의 삶의 방식은 영원한 천국, 우리의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는 삶의 태도가 무엇보다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인생의 나그네입니다. 그렇기에 세상에 땅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세상에 살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뜻이 무엇인가 이것이 매우 중요하며 이를 알고 실천하는 삶이야말로 정말 아름답고 귀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베드로 사도는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육체의 정욕대로 산다면 이미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이는 세상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성도가 왜 육체의 정욕을 제어해야만 합니까 그것은 바로 영혼을 거스리기 때문입니다. 약 4:1에 보면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육체의 정욕은 육체적 욕망을 채우려는 것으로 악성적 욕심을 말합니다. 성도는 이런 육체의 정욕을 잘 제어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특별히 로마 교회의 교인들에게 보내는 로마서에서 자기 속에서 싸우는 두가지 자아에 개해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고 하는 마음과 육신의 법을 좇아 살려고 하는 두가지 마음이 싸우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 7:24-25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고 탄식하고 있고 25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세상의 나그네입니다. 나그네는 일정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요,그 다음 방법은 육신의 정욕을 제어해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어서 5:24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렇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사람으로서 피조물로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기에 영원한 하늘나라에 본향을 둔 성도로서의 삶은 이제 이렇게 죄와 육신의 정욕에 대해서는 죽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죽은 사람은 반응이 없습니다. 깨어도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반응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죄와 육신의 정욕에 죽은 사람이 되었다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았다면 죄와 정욕이 우리를 유혹해도 전혀 반응이 없어야 합니다. 거기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삶이야 말로 영원한 하늘에 본향을 둔 성도의 마땅한 삶인것입니다. 육신의 정욕은 롬 7: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사망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고전 15:50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이 정욕을 제어해야 할 마땅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삶속에 아직도 육신의 정욕이 남아 있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혈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고 나그네된 삶을 산다면, 영원한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두고 있다면 그래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는 삶을 산다면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십니다. 성도의 삶은 바로 이와 같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어야 하고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12절에 보면 벧전 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고 했는데 그리스도인이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는 삶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편지를 쓸 당시에 그리스도인에 대한 평판이 왜곡되어 있었습니다. 곧 악행을 하는 새로운 미신으로 오해를 받았습니다. 즉 악행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서 바로 선한 행실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것으로서 선한 행실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방인중에 선한 행실을 가지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은 유대인을 제외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참 유대인라면 그리스도밖에 있는 불신자를 의미합니다. 불신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비난합니다. 선한 행실이 없다고 외칩니다. 그러나 간혹 성도의 잘못된 행실이 전체 그리스도인의 것인양 싸잡아 비난을 할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예수를 믿는 사람을 욕하게 되는 악한 행실을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벧전 3: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 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빌 2: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딛 2:7-8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과 8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 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마 5:16에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선한 행실로 말미암아 불신자들이 마음에 권고함을 받는 날 즉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일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결국, 그것은 바로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남편이 아내가 자녀들이 친척이나 친구가 우리의 선한행실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돌아올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중 가장 중요한 것중 하나가 바로 나의 올바른 행실 선한 행실로 말미암아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주께 인도하는 것입니다. 날마다의 삶속에 하나님의 은혜속에 사시는 성도 여러분께서는 영원한 하늘 본향에 소망을 두시고 나그네와 행인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고 선한 행실을 하게 되므로 말미암아 이제 불신자들을 하나님께 인도하시는 거룩한 성도가 다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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