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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받는 삶의 치유 (벧전2:18-25)

본문

저는 이번 주일 새벽 기도회를 인도하면서 베드로전서 2장 말씀을 내용으로한 설교를 했습니다. 시간 시간마다 계속되어지는 말씀 선포를 위한 준비를 하면서 저는 제 나름대로 많은 은혜를 받았고 특히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저 자신의 모습을 말씀을 통해 들여다보면서 많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고통을 받았습니다. 특히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을 준비하면서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때문에 고난을 당하신 모습을 묵상할 때 조그만 억울한 일을 당해도 밤잠을 못 자면서 설쳐 되는 사악한 인간의 모습을 가진 저를 비롯한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한심스럽게 보였습니다. 더욱이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이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오늘날 우리들보다도 훨씬 좋지 못한 악조건 속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저들이 고난을 당했을 때 가졌던 신앙의 모습을 보고 더 큰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조들은 저들이 고난을 당했을 때 가진 신앙의 자세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볼 때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우니라 이 얼마나 놀라운 신앙의 자세입니까 고난을 통해 성화 되어지는 신앙인의 모습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유명한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세계 역사상 우수한 문화와 문명은 고난과 역경의 소산이라고 했습니다. 역경과 고난 없이 피어난 문명의 꽃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 예로 1년 내내 야자 열매와 바나나가 풍성한 하와이 섬에는 자랑할 만한 문화적인 유산이 없고
2,000년 동안 나라 없이 고난의 험한 길을 걸어온 히브리 민족에게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화가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런 의미에서 고난이라고 하는 것은 물론 우리들에게 있어서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주는 괴로운 것이 틀림없지만 그 고난을 잘 참아 내고 대처해 나가면 합력 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에 의해 우리들에게 더 좋은 것으로 결실을 맺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시간 여러분이 당하는 고난이 무엇입니까 어떤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까 오늘 이 시간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고난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고난으로 인해 슬픔과 우울에 빠져 있는 여러분의 심령이 그 슬픔과 우울함에서 자유 하심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1.고난이란 무엇입니까 고난의 정의가 무엇입니까 고난이란 말은 일하다 지칠 대로 지치다란 말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고난이란 뜻은 크게 두 가지 부분으로 확대 해석되어집니다.
1)인생이란(사람) 일을 많이 해야만 먹고살고 수고해야만 소득을 얻게 된다는 숙명적인 틀에 고난이 있고
2)행악자들이 만연된 이 세상 가운데서 의인들이 겪는 속임수와 핍박에서 오는 고난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욥기 5:7의 말씀을 살펴보면 이런 고난에 대한 정의를 더욱더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욥5:7)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 이 말은 우리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고난으로 시작해서 고난 속에서 살다가 고난으로 마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인생은 울음으로 이 세상에 왔다가 한없이 눈물을 흘리다가 마지막에는 죽음의 고통으로 마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난이라고 하는 말이 인생에게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모든 인생들에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고난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2.이런 고난이 우리 기독교인에게는 어떠한 의미를 주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봉독한 하나님의 말씀은 고난을 통해 그 고난을 극복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움을 창출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기독교인이 당하는 고난은 그 고난에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통해 소망이 주어지고 고난을 통해 인생이 새롭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오늘 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이 말씀의 내용이 바로 고난 중에서도 우리에게 소망을 주고 고난 중에서도 우리로 하여금 새롭게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이 지구상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은 고난에 대해 바라보는 방식이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1)자기가 당하고 있는 고난을 아무런 목적 없이 바라보는 것이요
2)자기가 당하는 있는 고난을 뚜렷한 목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어떤 시인은 이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시를 씀으로서 표현을 했습니다. "두 사람이 감옥 창살을 통해 밖을 보았다. 한 사람은 진흙을, 다른 한 사람은 별들을 보았다." 똑 같은 감옥이라는 고난 속에서 한 사람은 창살을 통해 진흙을 봄으로서 흙에 묻혀 흙으로 돌아갈 허무한 인생을 보았고 다른 한 사람은 창살을 통해 하늘의 별들을 쳐다보면서 희망과 용기와 소망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상에서 고통을 받고 있을 때 양쪽 옆에서 똑같은 고통을 받고 있는 양편 강도에게서 나타납니다.
1)왼편 강도의 경우는 그 자신이 당하는 고통을 저주로 시작을 해서 저주로 마칩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2)오른편 강도의 경우는 처음에는 예수를 비방했지만 우리 주님께서 자기를 처형하는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는 도고(다른 사람을 위해 드리는 기도) 기도를 듣고 회심하여 오히려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인생은 비록 고난의 인생으로 끝마쳤지만 그의 영혼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낙원에 이르는 영광을 맛보았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다같이 고난의 현장 속에 있습니다. 또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고난에 함께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골고다 언덕 위에 서 있는 3개의 십자가에 달려 있는 예수님과 2명의 강도들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의 사람들이 가운데 있는 십자가상에 달려 고난을 당하신 주님께 간청을 합니다. 단순히 그 고난을 피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내려 달라고만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소수의 사람들은 십자가상에서 고난을 당하신 주님께 하늘로 올려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둘 중에 어떤 부류에 속해 있습니까 단순히 교회에 와서 “돈 많이 벌이게 해주소서, 육신의 병만 낮게 해주소서, 내 자식을 출세시켜 주세요”라고만 기도하는 왼편 강도와 같은 부류입니까 아니면 주여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저의 영혼이 잘되게 하여주옵소서라고 하면서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오른편에 있는 강도와 같은 부류입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고난만을 면케 해 달라는 왼편 강도의 기도는 응답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고자 하는 오른편 강도의 기도는 들어주셔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이르니라"는 응답을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간단한 예를 들으시면서 여러분은 어떤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이구동성으로 오른편의 강도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나름대로 자부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생활의 모습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는 기도의 내용을 분석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은 왼편의 강도와 마찬가지로 자기의 안일과 세상의 복만을 추구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서는 깜짝 놀랄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왼편도 오른편도 아닌 자기의 모습을 보고 역시 깜짝 놀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시간을 통해 분명히 확인해야만 됩니다. 점검해야만 됩니다. 오른편의 강도처럼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우리가 되어서 예수님의 고난 당하심에 같이 동참하는 우리가 되어야만 됩니다.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는 진정한 성도가 되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인간은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땅위에서 신앙생활을 잘하지만 때때로 도저히 상상치도 못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고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무조건 하나님만을 원망하고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원대한 계획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는지요 우리는 우리가 유한한 존재이기에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계획하시는 일에 대해 섭리하시는 일에 대해 늘 염두에 두어야만 합니다. 미국의 어떤 청년이 신앙생활을 그 누구보다도 잘하던 중 어느 날 길을 걷다가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그는 말할 수 없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목사님을 비롯한 많은 교우들이 병문안을 와서는 모두가 위로의 말을 해주는데 한결같이 하는 말이 롬8:28의 말씀이었습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 청년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아주 불쾌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성했던 내 다리가 끊어져서 불구자가 되었는데 모든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은 차라리 저주같이 들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기본적으로 뿌리를 내린 신앙이 있었기에 그 말을 듣고 아멘 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후에 그는 퇴원 후에 꾸준히 신앙생활을 잘하다가 뜻이 있어 신학교에 입학을 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오지에 식인종이 사는 곳에 전도를 떠났습니다. 그곳은 가기만 하면 식인종들에게 잡혀 먹히는 곳이었습니다. 이 선교사는 죽음을 각오하고 그들이 사는 고장에 찾아갔더니 그 식인종들이 좋아라 고하면서 그 선교사를 잡아먹으려고 했습니다. 그때 그 선교사는 그 위기 속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의 의족인 고무다리의 고무 한 조각을 손수 베어서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식인종들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자기의 살을 베는 사람을 못 보았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잘라서 선뜻 주는 것을 보고 그들은 이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신이라고 생각을 하고 추장 이하 모든 식인종들이 이 선교사 앞에 엎드려서 잘못을 빌더라는 것입니다. 그 후에 그는 그 식인종들을 회개시키고 저들에게 복음을 심었습니다. 그후 그 선교사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기의 다리가 교통사고를 잘리어진 그 고난은 지금의 유익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요 프로그램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고난에 따른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더 소개하겠습니다. 어떤 어린 소년이 연못가에서 손으로 만든 작은 종이배를 띄우면서 놀고 있었는데 그만 그 종이배가 손에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밀려 나가 버렸습니다. 그 어린 소년은 그만 울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모양을 본 그 소년의 형이 배가 나가는 방향에다가 돌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그 어린 소년은 더 소리를 내어서 울었습니다.
왜냐하면 형이 던지는 돌멩이가 종이배를 맞추고 그 배가 가라 앉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그 어린 소년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습니다. 던진 돌멩이가 수면에 떨어졌을 때 생긴 잔물결로 인해 배가 그 꼬마가 있는 연못가로 왔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 어린 꼬마는 그제야 울음을 멈추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받는 고난도 이런 것입니다. 우리들 중 대부분은 어린 소년과 같이 고난의 물결을 일으키는 돌멩이가 우리 앞에 떨어지면 그것으로 인해 우리들 인생이 끝장이 날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당황하고 안절부절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고난의 물결을 일으키는 돌멩이가 우리 앞에 떨어졌다고 해서 과연 여러분의 인생이 끝장이 납디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과정이던 간에 그의 사랑하는 자들에게 유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민수기 6:22-2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 3가지가 소개되어져 있습니다. “(민6: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민6:23)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민6: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민6:25)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민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1)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시며
2)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시며
3)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가 설혹 우리들 자신의 기준에 의해 고난이 왔다고 해서 과연 그 고난이 고난에서 마치게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들에게는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하늘의 비밀을 밝혀 주시면서 큰 평강과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주님께서는 우리를 지켜주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궁극적으로는 우리에게 평강을 주실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 짖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고난을 받으신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뜻깊은 한 주간을 우리는 어떻게 보내어야만 합니까
1. 주님께서 당하신 고난은 결단코 수치스러운 고난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판단에서 당하고 있다는 고난 역시 장기적인 입장인 입장에서 볼 때 결단코 수치스러운 고난이 아님을 우리는 생각해야만 됩니다.
2. 주님께서 당하신 고난은 구원을 이룬 고난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됩니다. 우리 역시 주님을 섬기는 가운데서 당하는 고난은 우리의 영혼이 잘되는 고난임을 믿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3. 주님께서 당하신 고난은 그리고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영광의 고난이요 생명의 고난이요 승리의 고난임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됩니다. 그리하여 고난의 연속인 이 땅위에서 주님의 고난인 영광과 구원의 고난을 늘 생각하면서 우리에게 당면한 고난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힘을 공급받는 귀하고 복된 한 주일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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