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고난 (벧전2:18-25)
본문
누구나 고난이 닥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을 때 누구에게나 고난이 닥칩니다. 고난을 자처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닥치는 고난을 아름다운 것으로 만드는 사람도 있고 고난 속에 빠져서 슬픔과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역설입니다. 고난 당하는 자에게 슬픔과 고통 당하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고난도 기쁨이 되는 아름다운고난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최고의 고난인 십자가의 고통이 뻔한데도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아름다운 고난이 무엇인지,이 고난의 본이신 예수의 고난을 살펴보고 예수고난의 영광이 무엇인가 고난을 통하여 누구에게로 돌아가게 됩니까
1.어떤 경우에 고난까지도 아름답습니까
1)범사에 주인에게 순복하는 고난은 우선은 억울해도 그 고난은 아름답니다. 18절 읽어봅시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모든 일에 하인들은 주인에게 순복하라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말은 월급쟁이," 셀러리 맨" 을 말합니다. 셀러리 맨이 상사로부터 많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러나 순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때 당시 종,사환은 인격적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종은 단지 주인에게 하나의 도구 취급했습니다. 책임도 요구하지 않았고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옳고 그름이 종에게는 없었던 시대에 성경은 주인이던지 노예든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게 보았습니다.베드로가 편지 쓸 당시에 하나님 안에서 사람을 평등하게 본다는 것은 보통이 아니 였습니다. 92년 엘에이에 흑인 폭등이 있습니다. 내용은 로이니 킹이라는 사람이 경찰에 심하게 구타를 당했습니다. 경찰이 폭행죄로법정에 섰습니다.
그런데 판결은 폭행한 경찰이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흑인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구호가 무엇이었냐 하면 흑인에게는 정의가 없다 였습니다. 차별가운데 가장큰 차별이 무엇인가 하면 정의와 부정을 구분하는 것에서부터 젖혀놓는 것입니다. 여러분 직장상사로부터 애매히 고난을 당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참고 견디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억울함을 없애려고 사람들이 만들어낸 제도가 무엇입니까 공산주의 민주주의입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더사람을 애매히 고통을 받도록 내버려두었고 민주주의가 최고도로 발달된 곳에서도 여전히 억울하고 애매히 고난을 받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상전 주인 되었다고 해서 애매히 고난을 받는 자리에서 벗어납니까 여전히 애매히 고난을 받을 여백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 전에는 여전히 애매히 고난을 당하는 날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두려움 안에서 주인에게 순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난의 강도가 더 깊어집니다.
2'하나님을 묵상하는 데도 고난이 찾아와도 참으면 아름답습니다. 베드로 전서 2:19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이 닥칠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참으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하나님이 꿈으로 계시한 말씀을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환경이 더나은 쪽으로 전개되어야 마땅한데 오히려 요셉에게 불리하였습니다.그래서 그는 애매하게 옥살이를 하였습니다.주인을 원망하자도 않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욥도 동방의 의인 이였습니다.그는 정결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재산의 손해 더 나아가서 자녀들의 죽음이라는 슬픔을 맛보았습니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몸에 헌데까지 나는 아픔을 견뎠습니다. 그러나 욥은 참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하실 때 고통이라는 장애물을 이용하십니다. 이 장애물을 기쁨으로,감사함으로이기고 승리하시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러분, 지금 애매히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까 아무도 애매히 고통과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는 줄 몰라 줘도 우리가 묵상하는 그 하나님만이 알고 계신다면 우리는 만족합니다. 애매히 고난을 당하시는 여러분 나는 그 실상을 잘 모르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3'선행하는데도 고난은 떠나지 않고 계속됩니다. 그래도 참으면 하나님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본문 20절을 읽어봅시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우리는 대개가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의 잘못이 있어서 매를 맞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지요 죄값으로 매를 맞는다면 누가 칭찬하겠습니까 당연한 처사일 뿐입니다.그러나 이제는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난은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참으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고난의 본이 누구입니까
2.우리의 모본은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입니다. 예수께서 제사장과 장로들에게 애매한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은 두 가지 성질이 있습니다. 하나는 대속의 고통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우리의 위한 고난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있어서 십자가의 죽음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너희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두 번째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본으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4:16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바울을 본 받아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예수그리스도가 우리를 낳았기 때문에 바울이 예수그리스도를 본받은 것같이 너희도 바울을 본 받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우리에게 본을 보이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애매히 고난을 당할 때에 참고 견딥니까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본이 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예수께로 부르신 목적이 예수의 고난의 발자취를 따라오게 하시려고 부르신 것입니다. 본문 21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인생의 고난까지 아름다운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기쁨으로 전환하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습니다.죤.프리벨은 인생의 고난의 위기 닥쳐올 때에 하나님의 기회를 전환의 계기를 만드는 방법3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1)위기가 닥쳐오면 이 기회가 낙망하고 절망의 기회가 아니라 기도의 기회를 삼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를 못했기 때문에 오는 위기로 알면 틀림없습니다. 누구 때문에 위기가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도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도할 기회를 베풀게 하기 위해서 주님의 축복입니다.
2)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삼는 것입니다.
3)내가 하나님의 바뀌지는 전환의 기회를 삼습니다.애매하게 고난이 내게 닥쳐오면 이것을 통하여 예수를 본 받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뜻이 거기에 숨어 있습니다.우리는 변명의 기회를 찾으려고 애를 씁니다.그러나 고난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애매히 고난이 찾아 따라 갈수 있는 기회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시되 입에 속임수가 없었습니다. 본문 22절을 읽어봅시다.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저는 범죄 아니 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죄없다 하면 하나님께 속임수를 쓰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10에 말씀하시기를"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궤사가 없다는 말은 속이는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신 것은 자기의다. 세상에서 가장 큰 용기는 자기 잘못에 대해서 인정하는 것입니다. 실제 예수님은 죄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애매히 고난을 당하셨건만 그 입을 통하여 궤사를 베풀지 아니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실제 잘못을 생각없이 저지르고 또 오해를 낳을 행동을 합니다. 그래서 원망들을만한 일을 생각없이 할 때가 없잖아 있습니다. 우리는 입을 가리고 우리의 잘못된 행위를 회개합시다.
3'욕과 위협을 하시지 않고 오히려 공의로 심판 하실 이 곧 하나님께 기도로 부탁했습니다. 본문 2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 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면전에서 나를 욕하고 위협하면 나도 욕설이 나오고 맞 대항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왼뺨을 때리면 나도 상대방의 왼뺨을 때리는 것이 본래의 성질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는 역설적인 승리 비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외 뺨 맞고도 오른求.여러분 여러분을 향하여 욕하는 자에게 대항하여 욕을 하기는 쉽습니다. 상대방이 고소하면 나도 맞고소를 하기는 쉽습니다. 이렇때 예수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오히려 그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조금전 까지 만해도 유대 민족을 로마의 압박으로부터 구원해줄 정치적 메시아로 알았다가 오히려 힘없이 항복을 통하여 평화를 이루는 무저항 비폭력자인 것을 알고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 의해서 애매히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는 예수님의 기도와 우리의 기도를 비교 해봅시다. 누가복음 23:34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 쌔" 하나님의;공의대로 처리 해달라고 기도 할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긍휼과 자비로 처리 해줄 것을 바라면서 자신을 욕하는 사람의 일은 하나님의 엄격한 공의가 적용되기를 바라는 자신에 대해 불공평한 요구를 하지는 않습니까
3.예수의 고난이 왜 영광이 됩니까
1'예수의 죄 없음에도 애매히 당하시는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다시금 부활 하신 것입니다. 죄없으신 예수께서 애매히 고난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 죄를 단번에 감당하심을 믿습니까 우리의 모든 감사 속에 날 대속하신 그 은혜를 영원토록 찬양하심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애매히 십"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예수께서 애매히 고난을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예수께서 골고다 언덕길을 채찍 맞으며 올라가셨습니다. 그 아픈 채찍 뒤에 우리의 나음이 있는 줄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지식으로 예수를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체험 속에 예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모든 질고에서 나음을 입었습니다. 우리는 다 같이 죄많은 영적생각을 버리고 성령님의 생각 으로 살길을 찾았습니다.
결론:우리 영혼의 목자와 감독이신 예수께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아름다운 고난을 우리에게 일러주시고 친히 애매히 고난을 참으시는 본보기를 보여 주셨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영혼의 목자이시고 감독이신 예수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만세 전에 계획했습니다. 돌아와 우리가 생명과 참 자유의 길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바로 회개하고 천국을 소유하는 것이 신구약의 중심메시지입니다. 본문 2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광야에서 갈길 못 찾아 방황하던 우리를 이제 회복하고 참 목자이신 예수께로 돌아오는 회복의 축복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성경 많은 곳에서 예수님을 우리의 목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0:11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나의 선한 목자이신 예수는 목숨을 버려 우리 영혼의 목자가 되셨습니다. 더이상 바랄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이 땅에 하늘 문을 여시고 주신 땅에 쌓을 곳이 없도록 우리 영혼을 만족을 위하여 하늘로 오신 산 떡입니다. 여러분 예수의 이 만남을 오늘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목자와 감독되는데 여러분의 무엇이 방해합니까 사단은 자꾸 사이를 떼어놓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도 죄 없으심에도 불구 하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가까이 오라고 부르십니다.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지금 고난이 여러분이 눈에 눈물을 흐르게 할지라도 여러분 잠시만 참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눈물을 씻어줄 날을 소망 중에 기다리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어떤 경우에 고난까지도 아름답습니까
1)범사에 주인에게 순복하는 고난은 우선은 억울해도 그 고난은 아름답니다. 18절 읽어봅시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모든 일에 하인들은 주인에게 순복하라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말은 월급쟁이," 셀러리 맨" 을 말합니다. 셀러리 맨이 상사로부터 많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러나 순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때 당시 종,사환은 인격적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종은 단지 주인에게 하나의 도구 취급했습니다. 책임도 요구하지 않았고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옳고 그름이 종에게는 없었던 시대에 성경은 주인이던지 노예든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게 보았습니다.베드로가 편지 쓸 당시에 하나님 안에서 사람을 평등하게 본다는 것은 보통이 아니 였습니다. 92년 엘에이에 흑인 폭등이 있습니다. 내용은 로이니 킹이라는 사람이 경찰에 심하게 구타를 당했습니다. 경찰이 폭행죄로법정에 섰습니다.
그런데 판결은 폭행한 경찰이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흑인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구호가 무엇이었냐 하면 흑인에게는 정의가 없다 였습니다. 차별가운데 가장큰 차별이 무엇인가 하면 정의와 부정을 구분하는 것에서부터 젖혀놓는 것입니다. 여러분 직장상사로부터 애매히 고난을 당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참고 견디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억울함을 없애려고 사람들이 만들어낸 제도가 무엇입니까 공산주의 민주주의입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더사람을 애매히 고통을 받도록 내버려두었고 민주주의가 최고도로 발달된 곳에서도 여전히 억울하고 애매히 고난을 받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상전 주인 되었다고 해서 애매히 고난을 받는 자리에서 벗어납니까 여전히 애매히 고난을 받을 여백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 전에는 여전히 애매히 고난을 당하는 날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두려움 안에서 주인에게 순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난의 강도가 더 깊어집니다.
2'하나님을 묵상하는 데도 고난이 찾아와도 참으면 아름답습니다. 베드로 전서 2:19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이 닥칠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참으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하나님이 꿈으로 계시한 말씀을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환경이 더나은 쪽으로 전개되어야 마땅한데 오히려 요셉에게 불리하였습니다.그래서 그는 애매하게 옥살이를 하였습니다.주인을 원망하자도 않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욥도 동방의 의인 이였습니다.그는 정결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재산의 손해 더 나아가서 자녀들의 죽음이라는 슬픔을 맛보았습니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몸에 헌데까지 나는 아픔을 견뎠습니다. 그러나 욥은 참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하실 때 고통이라는 장애물을 이용하십니다. 이 장애물을 기쁨으로,감사함으로이기고 승리하시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러분, 지금 애매히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까 아무도 애매히 고통과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는 줄 몰라 줘도 우리가 묵상하는 그 하나님만이 알고 계신다면 우리는 만족합니다. 애매히 고난을 당하시는 여러분 나는 그 실상을 잘 모르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3'선행하는데도 고난은 떠나지 않고 계속됩니다. 그래도 참으면 하나님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본문 20절을 읽어봅시다.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우리는 대개가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의 잘못이 있어서 매를 맞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지요 죄값으로 매를 맞는다면 누가 칭찬하겠습니까 당연한 처사일 뿐입니다.그러나 이제는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난은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참으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고난의 본이 누구입니까
2.우리의 모본은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입니다. 예수께서 제사장과 장로들에게 애매한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은 두 가지 성질이 있습니다. 하나는 대속의 고통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우리의 위한 고난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있어서 십자가의 죽음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너희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두 번째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본으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4:16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바울을 본 받아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예수그리스도가 우리를 낳았기 때문에 바울이 예수그리스도를 본받은 것같이 너희도 바울을 본 받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우리에게 본을 보이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애매히 고난을 당할 때에 참고 견딥니까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본이 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예수께로 부르신 목적이 예수의 고난의 발자취를 따라오게 하시려고 부르신 것입니다. 본문 21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인생의 고난까지 아름다운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기쁨으로 전환하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셨습니다.죤.프리벨은 인생의 고난의 위기 닥쳐올 때에 하나님의 기회를 전환의 계기를 만드는 방법3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1)위기가 닥쳐오면 이 기회가 낙망하고 절망의 기회가 아니라 기도의 기회를 삼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를 못했기 때문에 오는 위기로 알면 틀림없습니다. 누구 때문에 위기가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도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도할 기회를 베풀게 하기 위해서 주님의 축복입니다.
2)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삼는 것입니다.
3)내가 하나님의 바뀌지는 전환의 기회를 삼습니다.애매하게 고난이 내게 닥쳐오면 이것을 통하여 예수를 본 받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뜻이 거기에 숨어 있습니다.우리는 변명의 기회를 찾으려고 애를 씁니다.그러나 고난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애매히 고난이 찾아 따라 갈수 있는 기회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시되 입에 속임수가 없었습니다. 본문 22절을 읽어봅시다.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저는 범죄 아니 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죄없다 하면 하나님께 속임수를 쓰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10에 말씀하시기를"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궤사가 없다는 말은 속이는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신 것은 자기의다. 세상에서 가장 큰 용기는 자기 잘못에 대해서 인정하는 것입니다. 실제 예수님은 죄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애매히 고난을 당하셨건만 그 입을 통하여 궤사를 베풀지 아니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실제 잘못을 생각없이 저지르고 또 오해를 낳을 행동을 합니다. 그래서 원망들을만한 일을 생각없이 할 때가 없잖아 있습니다. 우리는 입을 가리고 우리의 잘못된 행위를 회개합시다.
3'욕과 위협을 하시지 않고 오히려 공의로 심판 하실 이 곧 하나님께 기도로 부탁했습니다. 본문 2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 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면전에서 나를 욕하고 위협하면 나도 욕설이 나오고 맞 대항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왼뺨을 때리면 나도 상대방의 왼뺨을 때리는 것이 본래의 성질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는 역설적인 승리 비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외 뺨 맞고도 오른求.여러분 여러분을 향하여 욕하는 자에게 대항하여 욕을 하기는 쉽습니다. 상대방이 고소하면 나도 맞고소를 하기는 쉽습니다. 이렇때 예수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오히려 그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조금전 까지 만해도 유대 민족을 로마의 압박으로부터 구원해줄 정치적 메시아로 알았다가 오히려 힘없이 항복을 통하여 평화를 이루는 무저항 비폭력자인 것을 알고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 의해서 애매히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는 예수님의 기도와 우리의 기도를 비교 해봅시다. 누가복음 23:34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 쌔" 하나님의;공의대로 처리 해달라고 기도 할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긍휼과 자비로 처리 해줄 것을 바라면서 자신을 욕하는 사람의 일은 하나님의 엄격한 공의가 적용되기를 바라는 자신에 대해 불공평한 요구를 하지는 않습니까
3.예수의 고난이 왜 영광이 됩니까
1'예수의 죄 없음에도 애매히 당하시는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다시금 부활 하신 것입니다. 죄없으신 예수께서 애매히 고난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 죄를 단번에 감당하심을 믿습니까 우리의 모든 감사 속에 날 대속하신 그 은혜를 영원토록 찬양하심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애매히 십"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예수께서 애매히 고난을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예수께서 골고다 언덕길을 채찍 맞으며 올라가셨습니다. 그 아픈 채찍 뒤에 우리의 나음이 있는 줄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지식으로 예수를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체험 속에 예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모든 질고에서 나음을 입었습니다. 우리는 다 같이 죄많은 영적생각을 버리고 성령님의 생각 으로 살길을 찾았습니다.
결론:우리 영혼의 목자와 감독이신 예수께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아름다운 고난을 우리에게 일러주시고 친히 애매히 고난을 참으시는 본보기를 보여 주셨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영혼의 목자이시고 감독이신 예수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만세 전에 계획했습니다. 돌아와 우리가 생명과 참 자유의 길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바로 회개하고 천국을 소유하는 것이 신구약의 중심메시지입니다. 본문 2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광야에서 갈길 못 찾아 방황하던 우리를 이제 회복하고 참 목자이신 예수께로 돌아오는 회복의 축복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성경 많은 곳에서 예수님을 우리의 목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0:11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나의 선한 목자이신 예수는 목숨을 버려 우리 영혼의 목자가 되셨습니다. 더이상 바랄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이 땅에 하늘 문을 여시고 주신 땅에 쌓을 곳이 없도록 우리 영혼을 만족을 위하여 하늘로 오신 산 떡입니다. 여러분 예수의 이 만남을 오늘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목자와 감독되는데 여러분의 무엇이 방해합니까 사단은 자꾸 사이를 떼어놓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도 죄 없으심에도 불구 하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가까이 오라고 부르십니다.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지금 고난이 여러분이 눈에 눈물을 흐르게 할지라도 여러분 잠시만 참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눈물을 씻어줄 날을 소망 중에 기다리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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