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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고난 (벧전1:1-2)

본문

우리는 신앙생활하기에 가장 어려운 때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경제위기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때 우리들의 신앙 내용을 한번 확인도 해보고 우리들의 신앙 모습이 지금 얼마만큼 생동감이 있는가를 확인해 보기 위해 앞으로 베드로서를 통해서 우리들의 신앙을 무장해 보려고 합니다. 특히 베드로서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박해를 많이 받을 때 쓰여진 책입니다. 이 책은 기원 60년을 전후해서 네로 황제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많은 박해를 받을 때에 쓰여진 책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서를 보면 박해받는 성도들을 격려하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그때 그리스도인들이 로마로부터 박해와 핍박을 받게 된 데는 몇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1. 반국가 단체로 오인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로마 황제를 섬기는 일이 절정에 달했을 때였습니다. 로마 시민이나 이방인들 모두 로마 황제를 신으로 섬겼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항거하거나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독 그리스도인들만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하니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인간을 숭배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반대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들이 반국가 단체로 오해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로마로부터 극심한 핍박과 박해를 받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기독교는 세상에서 박해받을 운명을 타고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으로 잡혀 갔를 때 왕을 숭배하지 않는다고 해서 박해를 받다가 마침내는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폴리캅이라는 초대교회의 교부는 로마 황제 숭배를 거부한다고 해서 화형에 처해져 죽었습니다. 일제 시대 때에는 신사 참배를 거부한다고 해서 기독교인들이 극심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북한에서는 김일성 종교를 섬기지 않으면 수난을 당하고 고난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일반인들 같으면 하등의 문제가 없습니다. 고개만 한 번 숙이면 그만입니다. 일반인들은 신앙이 없으니까 별로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아무 거리낌없이 고개만 숙이면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핍박을 피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그럴 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적당히 살아갈 수가 없는 사람들이고 아무 데나 가서 고개를 숙이고 경배하고 그럴 수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이 세상으로부터 핍박받고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로마 시대에도 그리스도인들이 황제 숭배를 순종했더라면 그런 박해는 없었을 것입니다. 또 일제 시대에도 신사 참배를 적당히 순종했더라면 그런 고난은 받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기독교가 이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고 고난을 당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2. 비도덕적 단체로 오인되었기 때문입니다. 로마로부터 박해를 받고 핍박을 받게 되니까 그리스도인들이 피신을 했는데 어디로 갔는가 하면 동굴 속으로 밀실로 들어가 숨었습니다. 이 동굴이 오늘 우리들이 알고 있는 카타콤이라고 하는 지하 무덤입니다. 우리나라는 무덤이 메장 형태로 되어 있지만 당시의 무덤은 동굴이었습니다. 예수님도 동굴 속에 묻혔습니다. 동굴에 넣고 돌로 문을 막습니다. 다급해진 그리스도인들이 지하 동굴로 피신해 들어갔습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야 했고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긴장 하면서 살았습니다. 당시 그런 상황을 이겨 가면서 살아가야 했으니 그들의 신앙이 얼마나 생동감이 있고 긴박감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면서 그들은 동굴 속에서 매일같이 성찬식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매일같이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떡을 나누고 포도주를 나눔으로써 신앙을 고백하고 형제애를 다졌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교회에 편안히 앉아서 성찬식을 나누는 그런 심정과는 그 감정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나 그 신앙이 고백적이고 분명하고 뜨거웠겠습니까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서 주어지는 힘을 가지고 그 어려운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밖에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동굴과 밀실 속에서 사람을 잡아서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로마 정부에 고분고분하지 않는다고 미운 털이 박혔는데 그런 소문이 나돌게 되니까 정부가 얼마나 합법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괴롭히고 핍박했겠습니까 소문은 꼬리를 물고 퍼져서 그리스도인들은 속수무책으로 오해를 받고 박해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로마 시대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박해를 받으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신앙은 참 묘한 데가 있습니다. 신앙은 그렇게 박해를 받고 핍박을 받으면 사라지고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더 강해지고 의지가 더 굳어져 가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상 기독교가 가장 극심하게 핍박을 받은 때가 네로 황제 때인데, 기독교 신앙이 가장 강렬하게 전파되고 더 넓게 파고 들어가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위력이고 능력이고 힘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약간 긴장 속에서 해야 참다운 신앙을 유지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은 이 같은 긴장이 없으니까 신앙이 자꾸만 형식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가장 좋은 신앙 환경은 어느 정도 긴장 요인이 있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이 너무 자유하고 평안하면 신앙생활이 그만큼 메말라지기 쉽습니다. 사람이 평안하고 자유하기도 하면서 신앙이 새롭고 무장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은 이상일 뿐입니다.
3. 인사법입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인사법으로 입맞추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전서 “(벧전5:14)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는 말이 나옵니다. 오늘날 서구인들이 서로 만나면 포옹하고 입을 맞추며 인사를 나눕니다. 이것이 원래 그리스도인들의 인사법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나라는 양반 문화를 지켜 오다 보니 멀리 떨어져서 서로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끝내는데 정말 반가운 사람이라면 그것만으로는 좀 아쉽고 부족하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입을 맞추며 인사를 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박해를 피해서 지하 밀실에 살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같은 운명입니다. 그러니 함께 도피해 그날 그날을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얼마나 형제애가 두렵고 돈독한 관계를 이루며 살았겠습니까 그래서 만나면 서로 얼싸안고 포옹하고 입맞추며 서로를 격려하고 반가움을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입맞추는 인사법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랬더니 밖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동굴 속에서 음란한 짓을 하고난륜 행위를 한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당시 이방 종교에서는 그런 음한 행위가 실제로 있었습니다. 이방신에게 제사를 지내고는 제의 행사로서 음란 행위를 하곤 했다고 합니다. 당시 이방 종교의 여사제는 실제로 창부였습니다. 제의가 끝나면 그곳에서 음란 행위가 벌어졌습니다. 그런 일들로 사교들이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었는데 그리스도인들이 동굴 속에서 입을 맞춘다는 소문이 퍼짐으로써 밖에서는 그것이 음란 행위로 오해를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로마 정부가 기독교를 박해하기에 얼마나 좋은 구실로 삼았겠습니까 그래서 마음 놓고 잡아다가 죽이고 맹수들에게 밥으로 던져주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기독교인들이 지하 동굴을 더 깊이 파고 들어가서 숨었고 더 넓게 파고 들어가서 그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카타콤”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카타콤이라는 말은 “지하 무덤”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로마 시대의 신앙생활은 참 처절했습니다. 이것을 말로 표현하니까 쉽지 실제로 당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이 보통 일입니까 그렇게 보면 신앙에는 참 신비한 힘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 사도였던 베드로가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은 박해를 받고 있었고 죽음을 당하고 있었고 수난을 당하고 있었고, 앞으로 언제까지 이런 박해가 계속될지 알 수도 없고, 또 핍박 때문에 낙오되고 떨어져 나가는 사람도 있고 해서 그냥 모른 체하고 앉아만 있을 수가 없어 붓을 들어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그때 쓴 책이 바로 베드로전서입니다. 이 책에서 베드로는 빕박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격려하고 잘 인내하며 견디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이 무엇인가를 그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때는 누군가 격려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위로가 되고 흩어지지 않고 구심점이 강하게 이루어질 수가 있습니다. 이 책은 베드로가 순교하기 직전에 썼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기원 64년에 이 책을 기록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베드로는 예수님이 고난받으실 때 너무 졸렬하게 행동했고 비겁하게 행동한 것 때문에 늘 죄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살았는데 마침내 순교를 당하게 될 때 자청해서 십자가르 거꾸로 지겠다고 해서 거꾸로 매달려서 죽었다고 합니다. 아마 이 이야기는 베드로의 성격을 보면 사실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베드로전서의 서두로서 인사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본문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있는 흩어진 나그네”에게 이 글을 쓴다고 했습니다. 이 글을 받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흩어진 나그네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박해가 너무 심하니까 일단의 무리들은 동굴 속으로 피하여 들어가고 일단의 사람들은 로마의 박해를 피해서 멀리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로 피신을 해서 살았습니다. 이들이 디아스포라, 즉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러면 이 그리스도인들이 왜 이렇게 여러 나라고 흩어지게 되었느냐 하면 거기에 중요한 원인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입니다. 2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왜 흩어지게 되었느냐 하면 단순히 핍박을 피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 배경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경륜이 있어서 흩어졌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위압이 없으면 가능하면 흩어지지 않으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뭉쳐서 함께 있으려고 합니다. 구역도 그냥 놔 두면 20가정 30가정이 되어도 좋다고 할 것입니다. 헤어지지 않으려고들 합니다. 그렇지만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흩어 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효율적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나누어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모여서 흩어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흩어져야 복음이 넓게 퍼질텐데 안에서 우리끼리만 모여서 신앙공동체를 이루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복음을 확산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스데반의 순교를 기점으로 해서 예루살렘에 박해를 가하게 하십니다. 그때 엉겹결에 그리스도인들이 사방으로 멀리까지 흩어졌습니다. 그 결과 복음이 멀리 이방 땅에까지 퍼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 그것은 단순한 박해요 핍박이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같은 의미로 보면 여기 로마의 핍박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볼때는 단순한 핍박같이 보이지만 실은 하나님의 섭리가 거기에 들어 있습니다. 이 같은 섭리는 그때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오늘 우리들에게도 나타납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다가 부질없이 당하는 것 같은 고난들, 수난들, 어려움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에 하나님의 의도가 들어 있고 섭리가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때로 우리들이 그 고난을 더 어렵게 느끼고 더 아프게 생각하며 때로 탄식하고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지금 고통을 당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고통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이 편지를 쓴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구약적인 용어입니다. 레위기 14:1-7을 보면 결례를 행할 때 피를 뿌렸다고 했습니다. 당시는 문등병자가 발생하면 동구 밖으로 내보내 격리시켰습니다.
그런데 이 문둥병자가 그곳에 병이 낫게 되면 복귀 절차를 밟아 가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때 먼저 제사장으로부터 진찰을 받았습니다. 진찰 결과 다 나았다고 판단되면 새 두 마리를 택해서 한 마리는 잡아서 그 피를 살아 있는 또한 마리의 새에게 묻혀서 문등병자의 몸에 일곱 번 뿌렸습니다. 그것은 병이 깨끗해져서 회복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해서 정결례를 행한 후에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것이 피 뿌림입니다. 또 언약을 맺을 때 이 피가 등장했습니다. 출애굽기 24:1-8을 보면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계약이 이루어질 때 이 피가 뿌려졌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하나님이 너희를 구원해 자녀로 삼기 위해서 예수의 피가 뿌려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이 말은 지금 너희가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너희는 예수의 피 뿌림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점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값을 알라”는 말입니다. 신앙인은 무엇보다도 이 값을 알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존재의 의미를 알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 값을 알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피 뿌림을 받아 구속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값을 알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베드로는 여기서 고난받는 신앙인들에게 이 값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고난을 참고 인내해서 승리하라고 타이릅니다. 오늘 우리는 이 값을 알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래야 신앙이 주는 축복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무엇인지를 비로소 깊이 있게 알게 됩니다. 오늘 이 시대는 박해의 시대보다도 신앙을 유지하기가 더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래서 자칫하면 세상으로 빠지기가 쉽고 신앙을 버리기도 쉬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이든 값을 모르면 값없이 버리기가 쉽습니다. 이 소중한 신앙을 끝까지 발전시켜 나가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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