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에 이르기 위한 연습 (벧전1:13-16)
본문
해리 에머슨 포스딕(Herry Emerson Fosdick)은 크리스챤 설교자는 아니었 습니만, 우리 그리스도인이 한 번 쯤, 귀 기울여야할 다음과 같은 말을 남 겼습니다. "채찍질을 하지 않고 말을 원하는 곳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방법 은 없다. 압력을 가하지 않고 수증기나 기체를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동력기를 통과하지 않고 물을 빛이나 힘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도 어떤 한 가지 일에 집중해 서 헌신하고 훈련되지 않고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해리 에머슨 포스 딕의 말에 공감하십니까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7절과 8절 말씀 을 보십시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 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 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계시는데, 그것은 우리가 온전한 경건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우리가 이 목적을 이루는데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사 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때까지 우리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된다는 뜻을 아닙니다. 경건에 이르기 위해서는 첫째 성령님 충만, 둘째 헌신, 그리고 셋째 자기 훈련이 필요합니다. 고린도전서 9장에서 사도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온전함에 이르기 위해 우리는 자기 몸을 쳐 복종하게 하기까지 자신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코 안이하고 게으른 생활일 수 없습니다. 잠자는 영 혼을 일깨운 대각성 시대의 설교자인 죤 웨슬리(John Wesley)는 다른 설 교자에게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기도할 때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처럼 간절하게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에는 마치 모든 것이 전달자인 당신에게 달려있는 것처럼 간절하게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 죤 웨슬리의 말을 조금 바꾸면, 설교자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들 모두에게 참으로 유용한 충고가 됩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기도할 때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는 것처럼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일할 때에는 마치 모든 것이 자기 손에 달려있는 것처럼 열심히 일 하십시오." 오늘도 경건에 이르기 위한 영혼의 훈련에 게으르지 않는 충성 된 하루가 되기 기도합시다. 참된 영향 요 3장 인간은 여러 가지 영향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때문에, 우리가 만나는 한 사람의 성격과 인격은,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영향력이 낳은 결과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영향력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첫째, 인간은 누구나 주위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둘째, 주위 사람들의 영향을 받습니다. 세 번째로 인간 은, 과거에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에 서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인간이 어느 정도,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환경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정도로 인식해야 할 문제입니다. 주어진 환경보다는, 그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눈에 악조건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오히려 귀한 결실을 맺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위 사람으로부터 받는 영향은, 마치 물결처럼 잔잔하게, 우리가 접하는 사람의 인격이 우리의 삶에 영 향을 미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그 리고 그 사람의 마음 씀씀이에서, 우리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살아가는 모습들을 배우게 됩니다.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교훈은 그래서,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 보다, 귀하고 값진 것일 수가 있습니다. 환경과 사람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삶에 유형, 무형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한 가지 영향력이 빠져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환경으로 부터 받는 영향이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영향, 또는 과거에 경험한 어떤 것으로부터 받는 영향은, 우리의 부족하고 이기적인 본성을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성숙시키시는 것으로, 지금 도 그리스도를 닮은 새로운 피조물로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고 계십니다. 비록 아직은 우리가 주님 앞에 부족한 영혼일지라도, 우리가 받은 하나님 의 사랑을 기억하고 순종한다면, 우리는 좀 더 큰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잠언 3장 5절과 6절 말씀을 함께 묵상하고 싶습니다. "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 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오늘도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의 인도하심에 따라 순종하며 사는 귀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은혜로 가능합니다. 엡 2:4-5 그리스도인을 한 마디로 설명한다면,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이 사실을 확실히 믿는 사람입니다.
에베소서 2장 4절과 5 절을 보면,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 을 얻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 혜로 구원을 얻었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에 속했던 한 사람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려고 할 때, 그 사람 앞에 놓여진 문제는 무엇입니까 죄인의 모습으로 서 있는 자기 자신과 거룩하고 거룩 하신 하나님 사이에,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깊은 골이 가 로놓여 있다는 사실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손을 뻗어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도저히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 수 없 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우리를 향해 먼저 손을 뻗어주신 것,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란, 값없이 주는 값진 선물을 말합니다. 거저 줄만큼 값이 나가지 않아서 거저 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거저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그것(구원)을 받을 수 없을 만큼 귀하기 때문에, 값 없이 그냥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심정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인간이 하나님 앞에 불순종의 죄를 범했을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십자가 를 통한 구원 계획으로, 십자가에서 받으신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우리의 죄값이 모두 치러지도록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섭리하시고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십자가를 통해 은혜로 구원받는 길을 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만일 누군가 하나님의 은혜 를 그림으로 표현해 보라고 하면, 어떤 모양을 그리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마치, 죄인된 우리들과 하나님 사이의 천길 낭떠러기, 깊은 골짜기 를 연결하는 십자가 모양의 다리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그 사랑의 크기를 도무지 측량할 수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십자가의 사랑 으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가 은혜의 상징인 것을 기억하십시다. 오늘도 은혜로 구원받은 줄 아는 사람답게, 주님 앞에 감사하며, 사람 앞에 겸손하게 섬기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롬 3:24/ 딛 3:4-8 한 사람이 돌이켜 천국 아버지 앞으로 돌아오는 것보다, 천국 아버지께 귀 한 일은 없습니다. 본래 하나님의 자녀여야 했지만, 허물과 죄로 죽었던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왔을 때, 잃었던 자식을 되찾은 부모의 심정과 같은 이 기쁨을 어디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의 집을 떠났던 탕자를 기억 해 보십시오. 돌아오는 그 길이 아무리 어렵고 힘든 길이었다고 해도, 아들 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의 집에는 이미 그를 위해 "제일 좋은 옷" 과 "손 가락지"와 그 발에 맞는 "신"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 지는 아들이 돌아온 것을 기뻐하며,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어쩌면 탕자 의 아버지는 언젠가 아들이 돌아올 것을 알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 좋은 것들을 미리 준비해 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이 아들은 아버지의 제일 좋은 옷과 손 가락지와 신을 신을 권리가 없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아들은 아버지의 환영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은 아들을 위해 좋은 것들 을 예비해 두었다가, 그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들에게 모두 주었습니다. 이것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베푼 사랑이고, 은혜입니다. 그러나 만일 아들이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면, 아버지가 마련한 좋은 것들은 결코 아들의 것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 아버지와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집니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 두셨 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다만 예수의 십자가 공로로 죄에서 돌이키는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도 하늘에 약속된 영원한 생 명을 얻을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받게 되는 것은,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은혜로운 계획이고 선물이기 떠문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 를 이해하지 못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는, 은혜를 은혜로 받 아들이는 사람에게만 주어질 수 있습니다. 디도서 3장 5절에서 7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 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님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구원의 문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는 사람에게만 열린다는, 이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도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신 주님의 풍성하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사는 복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은혜는 죄인을 성도로 변화시킵니다. 갈 2:20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인 동시에 성경 전체를 꿰뚫는 분명한 메시지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지만, 하나님 께서 예비하신 십자가를 통해, 이제 우리는 죄인이라는 딱지를 떼어내고, 의롭다는 뜻의 성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구원받았 다고 해서, 그 사람의 생활이 즉시 성도의 생활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일생에 단 한번 일어나는 일회적인 변화이지만, 성숙한 성도로 살아가는 것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지속적인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구원 받은 우리는 일단 죄에서 자유롭게 되었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죄에서 자유로와지기 위해서는 죄를 범하는 그 일에서 떠나는 연습, (그러니까) 날마 다 경건에 이르는 훈련을 계속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때에 하나님 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성도로 살아 가기 위해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주의 은혜로 성도가 되었기에, 이제 그 사람은 죄의 길에서 떠나 의의 길로 돌아서는 것을 삶의 목표 로 삼아야 합니다. 로마서 6장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그렇습니다. 죄는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죄와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죄에서 떠날 수 있습니까 토머스 머튼 (Thomas Merton)은 "성도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 일컫음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선한 사람(착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물과 기름이 섞일 수 없는 것처럼, 성도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기 원한다면 죄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거듭났을 때,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로, 죄에 대 하여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가 행하던 죄에서 떠나, 자유함으로 그리고 기쁨으로 의에 돌아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정 으로 죄에 대하여 죽은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오늘도 하나님의 은 혜가 죄인을 성도로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죄에 대하여 죽은 자답게 살아가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십자가의 은혜만으로 충분합니다. 롬 5:1-11 성경은 "예수님께서 이미 모든 사람의 죄 값을 치르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을 믿기만 하면, 누구나 구원받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을 통한 구원 방법이 아닌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하나님의 구원 방법이 너무 쉬워서, 도무지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마치, 가 파른 산과 가시밭 길을 지나서 어렵게 도착해야 하는 곳에 하나님이 계셔 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 믿음이 아닌 다른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구원에 선한 행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율법주의자들의 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과 9 절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 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 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에 있어서, 율법의 반대는 은혜입니다. "선행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말 하는 율법주의자들은 은혜로 구원에 이른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비웃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란 "값없이 베푸는 호의"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호의는 상대를 사랑하는 사랑 때문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함으로써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 자신 을 구원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죄는 너무나 크고 무거워서 우리의 힘으로는 도무지 속량(贖良)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선을 행 했다고 해도, 그리고 그동기가 아무리 선했다고 해도, 하나님께 우리의 구원을 요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유일 한 방법은 주께서 영생을 우리에게 주시는 그 길밖에 없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결코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흘리 신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얻은 귀한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1장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다. 오늘도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을 선물로 주신 주님 앞에, 합당한 찬양과 감사를 돌리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은혜의 가치를 비웃었습니다. 엡 2:5-10 사람마다 비슷한 경험들을 하게 되지만, 그 경험에 어떤 태도로 반응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경험 한 어떤 일 때문에 지독하게 독선적인 성격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런 가 하면 그 일을 경험했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아량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실패를 경험할 수 있지만, 그 실패에 바르게 대응해 서 극복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베푸는 선의나 호의를 제대로 받아들이 지 못하는 것처럼, 거듭되는 실패로 인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나타나는 관계의 부조화 현상은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에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에 감격하다가도, "자신이 얼마나 죄인된 사람 이었고, 또 지금도 날마다 죄를 범하고 있지 않는가"라는 죄책감에 시달리 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미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 하는 율법주의적인 오류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우리는 이미 은혜로 구원받았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 은혜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죄를 짓고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에게 죄가 있는 것이 너무나 확실한 데도, 재판관은 이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것은 이 죄인에게 정 말 죄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이유 때문에 "죄인의 죄가 없는 것으 로 인정하겠다"는 재판관의 약속 때문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 죄 인이 죄가 없다고 인정받게 된 데에는, 누군가 죄인의 죄 값을 대신 치렀 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재판관의 공정성을 전혀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죄인을 심판에서 구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 말씀을 보십시오.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놀라운 은혜가 주어진 것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 때문입니다.
그런데 율법주의자들은 은혜의 가치를 비웃고, 은혜로 구원받는 것 보 다 의로운 행동으로 자신의 구원을 확실히 하겠다고 열심을 냅니다. 하지 만, 율법주의자들의 열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심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하는 순종은 하나님을 기쁘 시게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두려움에 의한 순종은 결국 십자가의 은혜 를 거부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 것은 무죄 선고를 받은 죄인이 여전히 죄인으로 살겠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아는 자답게, 주 의 사랑을 드러내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잠 13장 여러 가지 비판의 소리가 있기는 하지만,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은 이 제까지 어떤 전도자 보다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초청한 20세기의 능력 있는 전도자입니다. 빌리 그래함은 이미 1억에 가까운 사람들을 향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빌리 그래함의 초청을 받은 2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지금도 빌리 그래함은 세계 곳곳에서 대규모 전도 집회를 열어,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위성 방송 까지 사용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잠언 13장 6절 말씀입니다. "의는 행실이 정직한 자를 보호하고 악은 죄인 을 패망케 하느니라."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엡 1:1-10 매일 아침, 사람들은 자명종 시계의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며 잠을 깹니다. 그리고 재빨리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서, 서둘러 부엌으로 들어갑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아침마다 이것 저것 챙겨 먹으려고 노력합니다. 매일 아침을 빵이나 계란 후라이로 때우는 실속파가 있는가 하면, 요즘 시 중에 많이 나와 있는 즉석 식품을 애용하는 현실파도 있습니다. 흔하지는 않아도, 유난히 부지런한 가정에서는, 저녁 만찬 못지않게, 근사한 아침 식탁을 차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매일 아침마다, 아침 식 사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리석은 대답 같지만, 그 이유는 배가 고 프기 때문입니다. 밤새 비어 있어 시장기를 느끼는 배를 채우기 위해, 매일 아침마다, 아침 식사를 해야 합니다. 이 상황을 좀더 철학적인 용어로 설명 하면,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이 아침 시간에 나타내 보이는 일상적인 모든 활동의 최종 목적(final cause) 은 아침 식사 라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이 말은 인간이 어떤 동기에서 어떤 행동을 보인다면, 그 행 동을 유발한 동기를 최종 목적으로 본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일상적 으로 아침 시간에 바쁘게 서두르는 일련의 행동은, 무엇인가 먹어야겠다는 결정적인 목적이 동기가 되어서 나오는 것으로 본다는 뜻입니다. 이렇 게 보면, 인간의 모든 행동은, 그 배후에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찬가 지로, 하나님도 목적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행하시는 모든 일에 한 가지, 뚜렷한 목적을 갖고 계시는데,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에베소서 1장 9절과 10절을 보십시오.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 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대단히 큽니다. 그분의 계획은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을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십니다. 우리의 목적이 우리 행동의 동기가 되듯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은, 인간의 역사를 통해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역사하심의 이유가 됩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우리의 구원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큰 계획의 일부입니다. 이것은 성도가 기뻐해야 할 필요충분한 이유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이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에 속해 있다는 사 실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그분의 뜻하신 바대로 만 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선택된 사람들 엡 1:3-6 누군가 우리에게 당신은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어 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느 유명한 신 학자는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이유는, 내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입니다 라 고 간단히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축복은, 그리스도의 공로로 자신의 죄를용서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중심 메시지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온전히 하나님의 용서가 주어집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머리 로는 알면서도, 마음 으로 아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평범한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자신이 행한 어떤 죄에 대한 기억 때문에 마음 한 구석에 남 모르는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 도,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한때 자신의 행동이어리석었다는 사실을 곱씹으면 서, 후회하고 슬퍼하느라 남은 시간을 허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리석은 일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를 신뢰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 때문에, 우리가 받은 용서가 흔들 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에베소서 1장 4절로 6절을 보십시오. 곧 창세 전 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 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류 가운데에서 우리를 뽑아내셨는데, 이것은 이미 영원 전에 이루어진 선택입니다. 그리고 변함없는 선택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우리를 구원하기로 선 택하셨다는 사실 때문에, 비록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해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을 믿었습니다. 주께서 우리들 각자의 삶에 행하신 그 일을 기억 하며, 감사드리십시오. 주님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으로 인해,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시작된 하나님의 용서 사 역이 끝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우리를 거룩하 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그 영광 을 찬양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우리가 이 목적을 이루는데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사 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때까지 우리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된다는 뜻을 아닙니다. 경건에 이르기 위해서는 첫째 성령님 충만, 둘째 헌신, 그리고 셋째 자기 훈련이 필요합니다. 고린도전서 9장에서 사도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온전함에 이르기 위해 우리는 자기 몸을 쳐 복종하게 하기까지 자신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코 안이하고 게으른 생활일 수 없습니다. 잠자는 영 혼을 일깨운 대각성 시대의 설교자인 죤 웨슬리(John Wesley)는 다른 설 교자에게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기도할 때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처럼 간절하게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에는 마치 모든 것이 전달자인 당신에게 달려있는 것처럼 간절하게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 죤 웨슬리의 말을 조금 바꾸면, 설교자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들 모두에게 참으로 유용한 충고가 됩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기도할 때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는 것처럼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일할 때에는 마치 모든 것이 자기 손에 달려있는 것처럼 열심히 일 하십시오." 오늘도 경건에 이르기 위한 영혼의 훈련에 게으르지 않는 충성 된 하루가 되기 기도합시다. 참된 영향 요 3장 인간은 여러 가지 영향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때문에, 우리가 만나는 한 사람의 성격과 인격은,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영향력이 낳은 결과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영향력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첫째, 인간은 누구나 주위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둘째, 주위 사람들의 영향을 받습니다. 세 번째로 인간 은, 과거에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모든 것에 서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인간이 어느 정도,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환경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정도로 인식해야 할 문제입니다. 주어진 환경보다는, 그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눈에 악조건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오히려 귀한 결실을 맺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위 사람으로부터 받는 영향은, 마치 물결처럼 잔잔하게, 우리가 접하는 사람의 인격이 우리의 삶에 영 향을 미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그 리고 그 사람의 마음 씀씀이에서, 우리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살아가는 모습들을 배우게 됩니다. 사람으로부터 배우는 교훈은 그래서,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 보다, 귀하고 값진 것일 수가 있습니다. 환경과 사람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삶에 유형, 무형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한 가지 영향력이 빠져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환경으로 부터 받는 영향이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영향, 또는 과거에 경험한 어떤 것으로부터 받는 영향은, 우리의 부족하고 이기적인 본성을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성숙시키시는 것으로, 지금 도 그리스도를 닮은 새로운 피조물로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고 계십니다. 비록 아직은 우리가 주님 앞에 부족한 영혼일지라도, 우리가 받은 하나님 의 사랑을 기억하고 순종한다면, 우리는 좀 더 큰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잠언 3장 5절과 6절 말씀을 함께 묵상하고 싶습니다. "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 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오늘도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의 인도하심에 따라 순종하며 사는 귀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은혜로 가능합니다. 엡 2:4-5 그리스도인을 한 마디로 설명한다면,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이 사실을 확실히 믿는 사람입니다.
에베소서 2장 4절과 5 절을 보면,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 을 얻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 혜로 구원을 얻었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에 속했던 한 사람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려고 할 때, 그 사람 앞에 놓여진 문제는 무엇입니까 죄인의 모습으로 서 있는 자기 자신과 거룩하고 거룩 하신 하나님 사이에,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깊은 골이 가 로놓여 있다는 사실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손을 뻗어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도저히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 수 없 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우리를 향해 먼저 손을 뻗어주신 것,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란, 값없이 주는 값진 선물을 말합니다. 거저 줄만큼 값이 나가지 않아서 거저 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거저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그것(구원)을 받을 수 없을 만큼 귀하기 때문에, 값 없이 그냥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심정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인간이 하나님 앞에 불순종의 죄를 범했을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십자가 를 통한 구원 계획으로, 십자가에서 받으신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우리의 죄값이 모두 치러지도록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섭리하시고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십자가를 통해 은혜로 구원받는 길을 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만일 누군가 하나님의 은혜 를 그림으로 표현해 보라고 하면, 어떤 모양을 그리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마치, 죄인된 우리들과 하나님 사이의 천길 낭떠러기, 깊은 골짜기 를 연결하는 십자가 모양의 다리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그 사랑의 크기를 도무지 측량할 수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십자가의 사랑 으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가 은혜의 상징인 것을 기억하십시다. 오늘도 은혜로 구원받은 줄 아는 사람답게, 주님 앞에 감사하며, 사람 앞에 겸손하게 섬기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롬 3:24/ 딛 3:4-8 한 사람이 돌이켜 천국 아버지 앞으로 돌아오는 것보다, 천국 아버지께 귀 한 일은 없습니다. 본래 하나님의 자녀여야 했지만, 허물과 죄로 죽었던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왔을 때, 잃었던 자식을 되찾은 부모의 심정과 같은 이 기쁨을 어디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의 집을 떠났던 탕자를 기억 해 보십시오. 돌아오는 그 길이 아무리 어렵고 힘든 길이었다고 해도, 아들 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의 집에는 이미 그를 위해 "제일 좋은 옷" 과 "손 가락지"와 그 발에 맞는 "신"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 지는 아들이 돌아온 것을 기뻐하며,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어쩌면 탕자 의 아버지는 언젠가 아들이 돌아올 것을 알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 좋은 것들을 미리 준비해 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이 아들은 아버지의 제일 좋은 옷과 손 가락지와 신을 신을 권리가 없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아들은 아버지의 환영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은 아들을 위해 좋은 것들 을 예비해 두었다가, 그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들에게 모두 주었습니다. 이것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베푼 사랑이고, 은혜입니다. 그러나 만일 아들이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면, 아버지가 마련한 좋은 것들은 결코 아들의 것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 아버지와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집니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 두셨 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다만 예수의 십자가 공로로 죄에서 돌이키는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도 하늘에 약속된 영원한 생 명을 얻을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받게 되는 것은,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은혜로운 계획이고 선물이기 떠문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 를 이해하지 못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는, 은혜를 은혜로 받 아들이는 사람에게만 주어질 수 있습니다. 디도서 3장 5절에서 7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 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님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구원의 문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는 사람에게만 열린다는, 이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도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신 주님의 풍성하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사는 복된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은혜는 죄인을 성도로 변화시킵니다. 갈 2:20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인 동시에 성경 전체를 꿰뚫는 분명한 메시지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지만, 하나님 께서 예비하신 십자가를 통해, 이제 우리는 죄인이라는 딱지를 떼어내고, 의롭다는 뜻의 성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구원받았 다고 해서, 그 사람의 생활이 즉시 성도의 생활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일생에 단 한번 일어나는 일회적인 변화이지만, 성숙한 성도로 살아가는 것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지속적인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구원 받은 우리는 일단 죄에서 자유롭게 되었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죄에서 자유로와지기 위해서는 죄를 범하는 그 일에서 떠나는 연습, (그러니까) 날마 다 경건에 이르는 훈련을 계속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때에 하나님 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성도로 살아 가기 위해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주의 은혜로 성도가 되었기에, 이제 그 사람은 죄의 길에서 떠나 의의 길로 돌아서는 것을 삶의 목표 로 삼아야 합니다. 로마서 6장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그렇습니다. 죄는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죄와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죄에서 떠날 수 있습니까 토머스 머튼 (Thomas Merton)은 "성도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 일컫음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선한 사람(착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한 사람이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물과 기름이 섞일 수 없는 것처럼, 성도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기 원한다면 죄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거듭났을 때,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로, 죄에 대 하여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가 행하던 죄에서 떠나, 자유함으로 그리고 기쁨으로 의에 돌아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진정 으로 죄에 대하여 죽은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오늘도 하나님의 은 혜가 죄인을 성도로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죄에 대하여 죽은 자답게 살아가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십자가의 은혜만으로 충분합니다. 롬 5:1-11 성경은 "예수님께서 이미 모든 사람의 죄 값을 치르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을 믿기만 하면, 누구나 구원받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을 통한 구원 방법이 아닌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하나님의 구원 방법이 너무 쉬워서, 도무지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마치, 가 파른 산과 가시밭 길을 지나서 어렵게 도착해야 하는 곳에 하나님이 계셔 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 믿음이 아닌 다른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구원에 선한 행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율법주의자들의 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과 9 절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 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 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에 있어서, 율법의 반대는 은혜입니다. "선행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말 하는 율법주의자들은 은혜로 구원에 이른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비웃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란 "값없이 베푸는 호의"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호의는 상대를 사랑하는 사랑 때문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함으로써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 자신 을 구원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죄는 너무나 크고 무거워서 우리의 힘으로는 도무지 속량(贖良)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선을 행 했다고 해도, 그리고 그동기가 아무리 선했다고 해도, 하나님께 우리의 구원을 요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유일 한 방법은 주께서 영생을 우리에게 주시는 그 길밖에 없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결코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흘리 신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얻은 귀한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1장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다. 오늘도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을 선물로 주신 주님 앞에, 합당한 찬양과 감사를 돌리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은혜의 가치를 비웃었습니다. 엡 2:5-10 사람마다 비슷한 경험들을 하게 되지만, 그 경험에 어떤 태도로 반응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경험 한 어떤 일 때문에 지독하게 독선적인 성격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런 가 하면 그 일을 경험했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아량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실패를 경험할 수 있지만, 그 실패에 바르게 대응해 서 극복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베푸는 선의나 호의를 제대로 받아들이 지 못하는 것처럼, 거듭되는 실패로 인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나타나는 관계의 부조화 현상은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에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에 감격하다가도, "자신이 얼마나 죄인된 사람 이었고, 또 지금도 날마다 죄를 범하고 있지 않는가"라는 죄책감에 시달리 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미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 하는 율법주의적인 오류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우리는 이미 은혜로 구원받았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 은혜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죄를 짓고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에게 죄가 있는 것이 너무나 확실한 데도, 재판관은 이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것은 이 죄인에게 정 말 죄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이유 때문에 "죄인의 죄가 없는 것으 로 인정하겠다"는 재판관의 약속 때문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 죄 인이 죄가 없다고 인정받게 된 데에는, 누군가 죄인의 죄 값을 대신 치렀 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재판관의 공정성을 전혀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죄인을 심판에서 구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 말씀을 보십시오.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놀라운 은혜가 주어진 것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 때문입니다.
그런데 율법주의자들은 은혜의 가치를 비웃고, 은혜로 구원받는 것 보 다 의로운 행동으로 자신의 구원을 확실히 하겠다고 열심을 냅니다. 하지 만, 율법주의자들의 열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심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하는 순종은 하나님을 기쁘 시게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두려움에 의한 순종은 결국 십자가의 은혜 를 거부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 것은 무죄 선고를 받은 죄인이 여전히 죄인으로 살겠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아는 자답게, 주 의 사랑을 드러내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잠 13장 여러 가지 비판의 소리가 있기는 하지만,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은 이 제까지 어떤 전도자 보다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초청한 20세기의 능력 있는 전도자입니다. 빌리 그래함은 이미 1억에 가까운 사람들을 향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빌리 그래함의 초청을 받은 2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지금도 빌리 그래함은 세계 곳곳에서 대규모 전도 집회를 열어,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위성 방송 까지 사용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잠언 13장 6절 말씀입니다. "의는 행실이 정직한 자를 보호하고 악은 죄인 을 패망케 하느니라."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엡 1:1-10 매일 아침, 사람들은 자명종 시계의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며 잠을 깹니다. 그리고 재빨리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서, 서둘러 부엌으로 들어갑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아침마다 이것 저것 챙겨 먹으려고 노력합니다. 매일 아침을 빵이나 계란 후라이로 때우는 실속파가 있는가 하면, 요즘 시 중에 많이 나와 있는 즉석 식품을 애용하는 현실파도 있습니다. 흔하지는 않아도, 유난히 부지런한 가정에서는, 저녁 만찬 못지않게, 근사한 아침 식탁을 차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매일 아침마다, 아침 식 사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리석은 대답 같지만, 그 이유는 배가 고 프기 때문입니다. 밤새 비어 있어 시장기를 느끼는 배를 채우기 위해, 매일 아침마다, 아침 식사를 해야 합니다. 이 상황을 좀더 철학적인 용어로 설명 하면,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이 아침 시간에 나타내 보이는 일상적인 모든 활동의 최종 목적(final cause) 은 아침 식사 라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이 말은 인간이 어떤 동기에서 어떤 행동을 보인다면, 그 행 동을 유발한 동기를 최종 목적으로 본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일상적 으로 아침 시간에 바쁘게 서두르는 일련의 행동은, 무엇인가 먹어야겠다는 결정적인 목적이 동기가 되어서 나오는 것으로 본다는 뜻입니다. 이렇 게 보면, 인간의 모든 행동은, 그 배후에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찬가 지로, 하나님도 목적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행하시는 모든 일에 한 가지, 뚜렷한 목적을 갖고 계시는데,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에베소서 1장 9절과 10절을 보십시오.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 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대단히 큽니다. 그분의 계획은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을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십니다. 우리의 목적이 우리 행동의 동기가 되듯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은, 인간의 역사를 통해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역사하심의 이유가 됩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우리의 구원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큰 계획의 일부입니다. 이것은 성도가 기뻐해야 할 필요충분한 이유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이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에 속해 있다는 사 실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그분의 뜻하신 바대로 만 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선택된 사람들 엡 1:3-6 누군가 우리에게 당신은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어 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느 유명한 신 학자는 내가 그리스도인이 된 이유는, 내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입니다 라 고 간단히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축복은, 그리스도의 공로로 자신의 죄를용서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중심 메시지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온전히 하나님의 용서가 주어집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머리 로는 알면서도, 마음 으로 아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평범한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자신이 행한 어떤 죄에 대한 기억 때문에 마음 한 구석에 남 모르는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 도,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한때 자신의 행동이어리석었다는 사실을 곱씹으면 서, 후회하고 슬퍼하느라 남은 시간을 허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리석은 일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를 신뢰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 때문에, 우리가 받은 용서가 흔들 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에베소서 1장 4절로 6절을 보십시오. 곧 창세 전 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 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류 가운데에서 우리를 뽑아내셨는데, 이것은 이미 영원 전에 이루어진 선택입니다. 그리고 변함없는 선택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우리를 구원하기로 선 택하셨다는 사실 때문에, 비록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해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을 믿었습니다. 주께서 우리들 각자의 삶에 행하신 그 일을 기억 하며, 감사드리십시오. 주님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으로 인해,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시작된 하나님의 용서 사 역이 끝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우리를 거룩하 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그 영광 을 찬양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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