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소망의 원천 (벧전1:1-12)
본문
베드로는 우리가 알다시피 벳세다출신(요1:44)으로 이름이 시몬이였는데 예수님을 만나서 올바른 신앙을 고백하므로 ‘베드로’란 이름을 얻었다. 그의 부친은 요나(마16:17)또는 요한(1요1:42)으로 불리었으며 동생은 안드레였는데 후일 그들 형제는 예수님을 만났고(요1:40-42) 주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님의 졔자가 되었다 12사도에 뽑히게 되었고 (마10:2) 예수님의 총애를 받는 세명의 제자중 하나였다. 예수님께 올바른 신앙을 고백하여 칭찬을 받기도 했던 그는 예수님을 세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던 사람으로서 강하면서도 매우 연약한 면이 있었던 제자였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님강림이후 성령님의 세례와 충만을 받아 예루살렘 교회를 대부흥 시킨 위대한 사도 였다. 사마리아 욥바,가이사랴 안디옥을 순행하며 복음을 전파했으며 바울이 복음전파의 일선에 나서면서부터 자취를 감추었다가 네로의 대 박해때 (AD54-68)순교했다고 전해지니다. 본서신은 환란중에 있는 신자들이 곧 다가올 박해를 극복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온갖 어려움을 겪을 신자들을 위로 하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이 서신을 통해 베드로는 환란중에 있는 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오는 산소망을 제시해줌으로써 고난과 시험에 약해 지지 않고 담대히 대처 할 수 있는 믿음과 소망을 촉구하였습니다. 본 서신은 기독교의 교리가 많이 나오는 편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3절에서 12절 까지의 말씀을 갖고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3절에 보면 베드로는 “찬송하리로다” 하고 있습니다. 수신자에 대한 인사의 말에 이어서 베드로는 하나님께 찬미를 하라고 한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산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산 소망이 있게 되었고 왜 찬송을 해야만 합니까 3절-찬송하리로다 무엇을 찬송하라는 말인가 그것은
1 우리 主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그리스도의 죽은 자 다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본문 1장24절에 보십시오, 우리가 만약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다면 우리의 삶은 24절의 고백과 같을 것입니다. (벧전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 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마르는 풀처럼, 시들어지는 꽃처럼 그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의 전부였을 것입니다. ‘마르는 풀, 시드는 꽃과 같은 운명을 지향하고 있는 삶,예수 없는 삶이 바로 그러합니다.
그런데 언제 우리가 소망을 갖기 시작했습니까 거듭나는 순간입니다. 무엇으로 거듭났습니까(벧전1:23) (벧전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우리는 말씀으로 거듭났습니다. 어느날 ,하나님의 거룩하신 구원의 말씀을 접촉하기 시작했을 때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알았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나는 예수 없이 영적으로 죽은 자 가운데 있었던 내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하나님의 무한한 생명에 연결되었고,하나님 안에 있는 그 영원한 생명을 내 것으로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거듭났습니다. 그 순간부터 내 속에는 산 소망이 임했습니다. 이 사건이 여러분에게 있었습니까 참으로 거듭나서 이 산 소망이 여러분의 것이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에드워드 모트라는 37세 된 목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목수라기보다는 캐비닛 제조공입니다. 이 사람은 젊은 시절, 공장에서 일하면서 열등의식과,반항심,원망 등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겨우 이런 공장에서 망치나 두둘기며 일하다니,,,,우리 부모는 왜 나에게 이런 삶밖에 주지 못하는 걸까” 이 열등의식,반항,원망,,,,삶은 그에게 전혀 무의미한 것이었고, 그에게 소망이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그가 런던의 거리를 배회하다가 길가에 있던 자그마한 교회에 들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그 교회 강대상에서 존 하이야트 목사님이 요한복음 3장을 가지고 “거듭나는 도리”에 관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에드워드가 그 말씀을 들었을 때“그렇다,나는 거듭나야 한다”라는 강렬한 소원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님께서 그의 마음 문을 열어 주셔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거듭났습니다. 이렇게 거듭난 에드워드 모트는 그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망치는 이제 노래하기 시작했다. 내 망치는 이제 춤을 춘다. 그리고 내 눈동자는 생기가 돌고 내 마음 속에는 생수가 솟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에 오셨기 때문이다. 나는 거듭났다!“ 이제 그는 행복한 목공이었습니다. 그의 생은 점점 풍요로워졌습니다. 자기가 고용되어 일하던 목공소가 자기의 소유가 되었으며 그 목공소는 점차 확장되었습니다. 곧,그는 성공적인 사업가가 된 것입니다. 그가 55세 되던 해, 자기를 거듭나게 하신 주님의 은헤가 너무나 놀라워서 그 주님께 자신의 전 재산을 바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 주님이 축복하셔서 번창케 하신 목공소입니다.이것을 다 주님 앞에 드리겠습니다. “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목공소를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판 돈으로 런던의 언덕위에 침례교회 하나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목회 공부를 하여 목사 안수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의 전 재산을 드려서 교회를 짓고 자기를 구원하시고 거듭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한 그 첫날, 그는 오래전 자기 나이 37세였을 때 자기를 거듭나게 하셨던 주님의 첫 사람을 기억하면서 그 소망을 주신 주님의 은혜가 감격스러웠던지 주님을 향한 감사의 시를 지었습니다. 그 시는 찬송가(539장)로 널리 불리워지게 되었습니다.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주 예수 뿐일세 우리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국건한 반석 되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묻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희망이 있습니까 산 소망이 여러분안에 정말 있는지요아니면 에드워드 모트가 그러했듯이 희망 없이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매주일 어김없이 교회에 출석하지만 아직도 거듭나지 못한 것은 아닌지요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시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님으로 신뢰함으로 거듭나는 삶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심-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한 것(4절)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즉 산 소망은 미래의 기업을 보증합니다. 그 기업은 어떤 기업입니까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간직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이 있는데 그 기업은 첫째,썩지 아니하는 기업 둘째,더럽히지 않는 기업 세째,쇠하지 않는 기업 이처럼 주님께 우리를 위해서 하늘나라에 간직해 놓으신, 우리가 장차 누리게 될 그 영광스러운 기업은 불후의 기업이며, 불변의 기업이며 또한 불멸의 기업입니다. 이것이 하늘 나라에 우리를 위해서 간직되어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살아 있는 산 소망은 이 기업으로 연결됩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예비해 놓으신 영광스러운 기업으로 연결됩니다. 이것이 산 소망의 능력이며 혹은 산 소망의 결과입니다.
3 5절-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미래의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하나님의 구원의 조건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능력으로 보호하시는 하나님 ㉧ 거듭난자 산소망을 가진다가 받는 것은 바로 썩지 않고 더럽지 않 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받는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받았으나 우리들은 영원한 하늘나라를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여러가지 시험은 있을 수 있으나 기뻐하도다라고 말합니다. 6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 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7절-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 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다이빙 믿음의 시련은 없어질 금보다 귀하다./ 영원하신 예수님의 칭찬,영광,존귀를 얻음 시련이라는 말은 당시 두 가지 용도로 쓰여지고 있었습니다.
첫째로,순금과 가짜 금을 구별 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시련이란 당시 순금과 가짜 금을 강정할 때 쓰던 단어입니다. 시련이 왜 옵니까 그리스도인들에게 시련이 왜 올까요진짜 성도와 가짜를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 시련이 올 때,고난이 찾아올때,고난이 찾아 올 때,우리는 우리가 참 신앙을 가진 사람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시련이 올 때 가짜 그리스도인들은 뿔뿔이 흩어집니다. 도망갑니다.주님과 상관없는 사람으로 자처합니다.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처음부터 불신앙인이었습니다. 저는 “믿다가 타락했다”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타락하는 원인을 찾아보면 대부분 처음부터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결코 주님 앞에서 완전히 후퇴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잠시의 방황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에는 주님안에서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하게 될 것입니다. 시련이라는 말은 순금과 가짜를 구별할 때 사용되었듯이 시련은 우리의 신앙의 지위를 드러냅니다.
둘째,의사고시를 일컬을 때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의대생이 치르는 시험을 “시련”이라고 했습니다. 6절에 보면“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문자 그대로 시험은 여러 가지입니다. “여러가지라는 말”은 원래 =“여러가지 색깔의”라는 뜻입니다. 형형색색의 시험이 인생을 살면서 우리에게 부듳쳐 옵니다. 얼마나 많은 시험들이 있습니까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시험은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도 근심합니다. “나는 근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오리혀 비정상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근심합니다. . 그 사실을 성경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벧전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그리스도인들도 근심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근심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연약한 인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련은 잠깐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한 가지 비밀을 아셔야 합니다. . 이 시련은 결국 나를 유익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벧전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나방이 되어 나오는 과정(예화) 찰스코우만 여사는 곤충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그는 1년 동안 번데기에서 나방이 나오는 그 과정을 관찰했다. 번데기에서 나방이 나오는 그 구멍이 너무 작아서, 나오기가 매우 어려워, 나방은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보고 있자니까 너무 괴로워서, 가위를 가지고 좀 잘라 주었다. 그랬더니 그만 쉽게 쑥 나왔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나오기는 했어도 나방은 방구석에서 뒹굴면서 날지를 못하였다. 여러분 외 나방이 왜 나르지 못했을까요 이 나방은 이 작은 구멍으로 나오는 고통과 고난의 시간을 통해서 건전한 나비가 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을, 그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쉽게 나와 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나방이 되지못하였던 것입니다. 어러분에게 여러가지 시험이 찾아옵니까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 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벧전1:7)
결론 우리가 시련이 올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1)찬송해야 합니다. 1장3절을 보십시오, “찬송하리로다”. 찬송해야 합니다. 시련이 올 때 찬송해야 합니다. (벧전1: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찬양해야 마땅합니다.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이 산 소망 때문에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시련 속에서도 주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찬양 대상은 산 소망을 갖게 해 주신 그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2)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벧전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그 예수를 사랑하십시오, 그 예수를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그 예수님을 기뻐하시기 바랍니. 계속되는 말씀을 보십시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우리는 우리를 구속하시고 거듭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와 허물로 죽었던 나를 우리를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영원토록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썩지 않을 영원한 하늘의 것을 우리를 위해 주시며 우리의 기업이 되게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보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어야 겠습니다.
1 우리 主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그리스도의 죽은 자 다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본문 1장24절에 보십시오, 우리가 만약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다면 우리의 삶은 24절의 고백과 같을 것입니다. (벧전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 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마르는 풀처럼, 시들어지는 꽃처럼 그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의 전부였을 것입니다. ‘마르는 풀, 시드는 꽃과 같은 운명을 지향하고 있는 삶,예수 없는 삶이 바로 그러합니다.
그런데 언제 우리가 소망을 갖기 시작했습니까 거듭나는 순간입니다. 무엇으로 거듭났습니까(벧전1:23) (벧전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우리는 말씀으로 거듭났습니다. 어느날 ,하나님의 거룩하신 구원의 말씀을 접촉하기 시작했을 때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알았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나는 예수 없이 영적으로 죽은 자 가운데 있었던 내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하나님의 무한한 생명에 연결되었고,하나님 안에 있는 그 영원한 생명을 내 것으로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거듭났습니다. 그 순간부터 내 속에는 산 소망이 임했습니다. 이 사건이 여러분에게 있었습니까 참으로 거듭나서 이 산 소망이 여러분의 것이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에드워드 모트라는 37세 된 목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목수라기보다는 캐비닛 제조공입니다. 이 사람은 젊은 시절, 공장에서 일하면서 열등의식과,반항심,원망 등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겨우 이런 공장에서 망치나 두둘기며 일하다니,,,,우리 부모는 왜 나에게 이런 삶밖에 주지 못하는 걸까” 이 열등의식,반항,원망,,,,삶은 그에게 전혀 무의미한 것이었고, 그에게 소망이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그가 런던의 거리를 배회하다가 길가에 있던 자그마한 교회에 들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그 교회 강대상에서 존 하이야트 목사님이 요한복음 3장을 가지고 “거듭나는 도리”에 관한 설교를 하고 있었습니다. 에드워드가 그 말씀을 들었을 때“그렇다,나는 거듭나야 한다”라는 강렬한 소원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님께서 그의 마음 문을 열어 주셔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거듭났습니다. 이렇게 거듭난 에드워드 모트는 그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망치는 이제 노래하기 시작했다. 내 망치는 이제 춤을 춘다. 그리고 내 눈동자는 생기가 돌고 내 마음 속에는 생수가 솟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에 오셨기 때문이다. 나는 거듭났다!“ 이제 그는 행복한 목공이었습니다. 그의 생은 점점 풍요로워졌습니다. 자기가 고용되어 일하던 목공소가 자기의 소유가 되었으며 그 목공소는 점차 확장되었습니다. 곧,그는 성공적인 사업가가 된 것입니다. 그가 55세 되던 해, 자기를 거듭나게 하신 주님의 은헤가 너무나 놀라워서 그 주님께 자신의 전 재산을 바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 주님이 축복하셔서 번창케 하신 목공소입니다.이것을 다 주님 앞에 드리겠습니다. “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목공소를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판 돈으로 런던의 언덕위에 침례교회 하나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목회 공부를 하여 목사 안수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의 전 재산을 드려서 교회를 짓고 자기를 구원하시고 거듭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한 그 첫날, 그는 오래전 자기 나이 37세였을 때 자기를 거듭나게 하셨던 주님의 첫 사람을 기억하면서 그 소망을 주신 주님의 은혜가 감격스러웠던지 주님을 향한 감사의 시를 지었습니다. 그 시는 찬송가(539장)로 널리 불리워지게 되었습니다.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주 예수 뿐일세 우리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국건한 반석 되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묻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희망이 있습니까 산 소망이 여러분안에 정말 있는지요아니면 에드워드 모트가 그러했듯이 희망 없이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매주일 어김없이 교회에 출석하지만 아직도 거듭나지 못한 것은 아닌지요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시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님으로 신뢰함으로 거듭나는 삶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심-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한 것(4절)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즉 산 소망은 미래의 기업을 보증합니다. 그 기업은 어떤 기업입니까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간직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이 있는데 그 기업은 첫째,썩지 아니하는 기업 둘째,더럽히지 않는 기업 세째,쇠하지 않는 기업 이처럼 주님께 우리를 위해서 하늘나라에 간직해 놓으신, 우리가 장차 누리게 될 그 영광스러운 기업은 불후의 기업이며, 불변의 기업이며 또한 불멸의 기업입니다. 이것이 하늘 나라에 우리를 위해서 간직되어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살아 있는 산 소망은 이 기업으로 연결됩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예비해 놓으신 영광스러운 기업으로 연결됩니다. 이것이 산 소망의 능력이며 혹은 산 소망의 결과입니다.
3 5절-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미래의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하나님의 구원의 조건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능력으로 보호하시는 하나님 ㉧ 거듭난자 산소망을 가진다가 받는 것은 바로 썩지 않고 더럽지 않 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받는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받았으나 우리들은 영원한 하늘나라를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여러가지 시험은 있을 수 있으나 기뻐하도다라고 말합니다. 6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 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7절-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 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다이빙 믿음의 시련은 없어질 금보다 귀하다./ 영원하신 예수님의 칭찬,영광,존귀를 얻음 시련이라는 말은 당시 두 가지 용도로 쓰여지고 있었습니다.
첫째로,순금과 가짜 금을 구별 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시련이란 당시 순금과 가짜 금을 강정할 때 쓰던 단어입니다. 시련이 왜 옵니까 그리스도인들에게 시련이 왜 올까요진짜 성도와 가짜를 구별하기 위해서입니다. 시련이 올 때,고난이 찾아올때,고난이 찾아 올 때,우리는 우리가 참 신앙을 가진 사람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시련이 올 때 가짜 그리스도인들은 뿔뿔이 흩어집니다. 도망갑니다.주님과 상관없는 사람으로 자처합니다.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처음부터 불신앙인이었습니다. 저는 “믿다가 타락했다”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타락하는 원인을 찾아보면 대부분 처음부터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결코 주님 앞에서 완전히 후퇴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잠시의 방황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에는 주님안에서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하게 될 것입니다. 시련이라는 말은 순금과 가짜를 구별할 때 사용되었듯이 시련은 우리의 신앙의 지위를 드러냅니다.
둘째,의사고시를 일컬을 때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의대생이 치르는 시험을 “시련”이라고 했습니다. 6절에 보면“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문자 그대로 시험은 여러 가지입니다. “여러가지라는 말”은 원래 =“여러가지 색깔의”라는 뜻입니다. 형형색색의 시험이 인생을 살면서 우리에게 부듳쳐 옵니다. 얼마나 많은 시험들이 있습니까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시험은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도 근심합니다. “나는 근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오리혀 비정상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근심합니다. . 그 사실을 성경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벧전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그리스도인들도 근심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근심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연약한 인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련은 잠깐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한 가지 비밀을 아셔야 합니다. . 이 시련은 결국 나를 유익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벧전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나방이 되어 나오는 과정(예화) 찰스코우만 여사는 곤충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그는 1년 동안 번데기에서 나방이 나오는 그 과정을 관찰했다. 번데기에서 나방이 나오는 그 구멍이 너무 작아서, 나오기가 매우 어려워, 나방은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보고 있자니까 너무 괴로워서, 가위를 가지고 좀 잘라 주었다. 그랬더니 그만 쉽게 쑥 나왔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나오기는 했어도 나방은 방구석에서 뒹굴면서 날지를 못하였다. 여러분 외 나방이 왜 나르지 못했을까요 이 나방은 이 작은 구멍으로 나오는 고통과 고난의 시간을 통해서 건전한 나비가 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을, 그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쉽게 나와 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나방이 되지못하였던 것입니다. 어러분에게 여러가지 시험이 찾아옵니까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 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벧전1:7)
결론 우리가 시련이 올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1)찬송해야 합니다. 1장3절을 보십시오, “찬송하리로다”. 찬송해야 합니다. 시련이 올 때 찬송해야 합니다. (벧전1: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찬양해야 마땅합니다.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이 산 소망 때문에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시련 속에서도 주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찬양 대상은 산 소망을 갖게 해 주신 그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2)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벧전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그 예수를 사랑하십시오, 그 예수를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그 예수님을 기뻐하시기 바랍니. 계속되는 말씀을 보십시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우리는 우리를 구속하시고 거듭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와 허물로 죽었던 나를 우리를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영원토록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썩지 않을 영원한 하늘의 것을 우리를 위해 주시며 우리의 기업이 되게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보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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