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요일4:7-11)
본문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는 구절은 오늘 읽은 8절과 뒤에 있는 1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말은 하나님은 사랑의 원천이요,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요, 하나님으로 더불어 사귐이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근본적인 성품이요, 하나님 자체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쉽게 그 하나님의 사랑을 잊고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린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고 우리 삶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크리스찬이 되어서 날마다 하나님을 보고 느끼며 사는 신앙인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완전한 사랑.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5:48'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며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시고 아시는 분이시다. 그의 완전은 사랑에까지 확대된다. 하나님은 사랑은 완전한 사랑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보편적으로 일부분에만 제한된 좁은 사랑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모든 것을 주시는 풍부한 사랑이라는 말이다. 옛날 유대 민족은 하나님의 사랑이 좁은 팔레스타인이라는 지역, 유대민족이라는 좁은 테두리에 제한 된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종교의 지도자였던 대제사장과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은 아브라함이 자손임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을 멸시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을 위한 성전뜰을 장사꾼의 소굴로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민인 유대인만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의 사랑의 넓이는 제한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마태복음 5:4
5'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고 차별없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차별을 두고 사랑합니다. 우리는 가족만 사랑하고, 우리 교인만 사랑하고, 나만 사랑하는 이기적인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더 나아가서 모든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씀은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하심같이 모든 사람의 영혼을 온전히
사랑하는 성도가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의 영혼을 위해 끊임없이 전도하므로 하나님의 온전하신 사랑을 실천하는 참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길 바랍니다.
2. 인내의 사랑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베드로후서 3:1
5' 하나님의 사랑은 범죄하여 타락한 자식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랑입니다. 인내하는 사랑입니다. 이미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팔 것을 알았지만 사랑으로 참고 회개하기를 기다렸습니다. 우리가 잘아는 탕자의 비유-이것은 다른 말로 "기다리는 아버지의 비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탕자보다 기다리는 아버지의 사랑에 더 주목.(눅15:11-32) 상거가 아직도 먼데 아버지는 돌아오는 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즉 아버지는 아들이 오기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봅시다. 먼 발치인데도 아들을 알아보고 달려가는 아버지의 사랑은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인내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내의 사랑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 그리스도가 재림하기를 바라고 있었으며, 그들안에는 강한 재림의 신앙이 존재하였다. "마라나타, 아멘 주예수여 오시옵소서"예배때 마다 고백 . 의심하는 자들도 생김. "오기는 뭐가 온단 말인가 아무리 기다려도 도무지 올 기미도 보이지 않는구나." 주의 재림이 지연 되면서 의심하는 자들도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주의 재림이 지연된 것은 사람의 생각으로 헤아려 볼 때 그안에 하나님은 지혜와 깊은 사랑이 풍겨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베드로후서 3:9' 성경은 심판의 임박함을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였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종말의 시대의 살아가고 있습니다. 종말은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 사이를 종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심판이 우리 앞에 닥쳐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의 심판을 연기함으로서 그의 사랑하는 자들이 회개하고 구원얻는 기회를 주려는 자비심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베드로는 오래 참음으로 지체되는 주의 재림을 등한히 기달릴 성도를 향해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베드로후서 3:10'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은 그의 앞에 설 수 있도록 거룩한 행실과 깨끗함이 있어야 겠다. 오래 참음이 있어야 겠다. 주는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 원해서 오래 참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생각할 때에 주의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인내하며 주의 사랑을 전함으로 하나님의 인내하는 사랑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예화) 옛날 아브라함이 한번은 자기 장막앞에 앉아 있노라니 어떤 길손이 지나가고 있었다. 더운 날이라 길손은 땀을 흘리며 걸어가고 있는데 매우 피곤한 모양이다. 아브라함은 그 모습을 보고 잠깐 자기 장막에 들어와 쉬어 가기를 권했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내 사라에게 부탁하여 서늘한 우유와 빵을 그 앞에 가져다가 먹기를 권하였다. 시장하던 그 길손들은 우유를 마시며 빵을 먹었다. 그 옆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 보던 아브라함은 넌즈시 "손님은 음식을 잡수실 때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습니까" 물으니 그는 무뚝뚝하게 "아니오, 나는 하나님을 모릅니다. 나는 먼 파사에서 오는데 그곳에는 불을 숭배합니다."고 대답했다. 신앙이 독실한 아브라함은 그에게 하나님께서 계신 것과 그 이유를 설명했으나 그는 반대 이론을 펴서 결국은 큰 논쟁이 일어났다. 아브라함은 격분하여 "당신같은 이를 우리 장막에 오래 영접할 수는 없소. 곧 나가시오"라고 말하니 그 길손은 장막을 떠났다. 아브라함은 그 장막 앞에서 그 길손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섰는데, 문득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그 사정을 묻는다. 격분한 아브라함은 그 경위를 설명하니 그 사자는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나님은 저런 사람이라도 오십년이나 참아 오시지시 않았느냐“고 말하였다. 하나님은 인내의 사랑이 넘치시는 분이시다. 전도의 열매가 없다할지라도, 박해가 있다할지라도 인내하며 수고할 때 하나님이 놀랍게 채우시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를 참고 기다리는 인내의 사랑에 감사하며 헌신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징계의 사랑, 권고의 사랑 여호와여 주의 징벌을 당하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시편 94:12'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 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하였으니 '히브리서 12:6' 환난이 올 때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매 즉 징계인 것을 알고 권고의 날인 것을 알고 깨우침이 있어야 합니다. 그 때 고칠 바를 고치고, 설 바를 바로 서야 합니다. 우리가 징계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다는 증거입니다.
예) 사랑의 표현-진한 관심 사랑 미움 무관심이 가장 무섭다.-거기에는 이미 애정이 떠났다는 것.
예화) 중동 지역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의 말에 따르면 목자의 말을 따르지 않고 제 멋대로 돌아다니려고 하는 양들은 그 다리를 부러뜨린다고 한다. 그러면 그 양은 다리가 아파서 절룩거리면서 다른 곳으로 갈 수 없기 때문에 목자의 뒤를 따라 다닌다. 그럴 때마다 아픈 다리를 싸매 주어서 낫게 한다. 그 양은 다리가 다 나은 다음에도 목자의 말을 잘 따르게된다. 그 징계는 그가 우리를 참아들로 여겨 우리를 대하는 모습이며, 우리안에 의의 열매를 맺게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징계에 불평을 갖지 말고, 공포를 갖지말며, 그것이 곧 가르침의 축복이요, 인도하심의 축복이요, 권고의 축복임을 알고-승리하는 신앙.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잠언 3:11-잠언 3:12'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데도 선악을 가려가며 상벌을 바르게 하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바르게 가르칠 땐 가르치고, 사랑할 땐 사랑하는 것이 바로 부모의 사랑.
예) 요즈음 아이들 교육 없어, 몰라, 누군데, 알았어, 아니-완전 반말, 예절 없다.
예) 바늘 도둑인 아이를 나무라지 않으므로 큰 도둑이 되어서 사형장에 이슬로 아들을 보낸 부모의 모습. 하나님의 징계를 감사하며 그 안에서 바르게 성장하는 신앙인. "하나님의 진노는 사탄의 애무와 사랑보다 나으니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를 살게 하시려고 징계하시고, 사탄은 우리를 죽게 하려고 애무한다."-에갈드-
4. 용서의 사랑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에베소서 4:3
2'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우리의 공로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신 성품으로 된 것입니다. 전세계 인류가 죄악으로 인하여 지옥으로 달려감을 보신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사 구원을 주신 것. 하나님은 그의 인자하신 사랑의 성품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사 그의 피흘리심을 통해 우리의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탕자의 비유, 기다리는 아버지의 비유-용서하시는 아버지 예수님은 자기를 박해하는 원수를 위하여 기도했고 자기 몸을 창으로 찌르는 자들을 위하여 죄사함의 간구. 우리는 이사랑을 본받아서 인간을 용서하는 정신을 받아야 한다. 용서는 우주의 생명이요, 인류의 평화입니다. 용서는 사랑의 최고 표현입니다. 그리고 이 용서는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예수님-“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태복음 6:1
5' 주의 기도에서도 같은 용서를 가르침.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마태복음 6:12' 우리의 죄가 용서함 받는 조건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는 예를 들고 있습니다. 내가 이웃을 용서한 것처럼, 큰 허물을 덮어준 것처럼, 죽을 죄를 용서해준 것처럼 우리를 용서해 달라는 간구. “용서의 사랑” 네 원수를 친구처럼 사랑하라 그러면 너는 하나님의 친구가 될 것이다. 네게 무관하고 낯선 사람 일지라도 사랑하라 그러면 하나님 가까이에 있게 될 것이다. 네마음에 끌리지 않는 사람도 사랑하고 네마음에 받아들이라 하나님께서 너를 영접하실 것이다. 너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라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을 네게 넘치도록 부어 주실 것이다. 너를 용납하지 않는 사람을 초청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네게 하는 영광문을 넓게 여실 것이다. 하나님의 큰 용서를 생각하고 남의 허물을 용서하는 사랑을 간직하는 성도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한 사랑, 인내의 사랑, 징계의 사랑, 용서의 사랑입니다. 차별이 없으시고 넘치는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으로 완전해지며 끝까지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시는 주의 사랑에 감사하며 우리를 살리기 위한 징계의 사랑을 겸손히 받으며 우리를 용서하신 주님의 사랑이 넘쳐서 사랑이신 하나님을 보는 만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요, 하나님으로 더불어 사귐이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근본적인 성품이요, 하나님 자체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쉽게 그 하나님의 사랑을 잊고 하나님의 사랑을 저버린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고 우리 삶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크리스찬이 되어서 날마다 하나님을 보고 느끼며 사는 신앙인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완전한 사랑.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5:48'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며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시고 아시는 분이시다. 그의 완전은 사랑에까지 확대된다. 하나님은 사랑은 완전한 사랑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보편적으로 일부분에만 제한된 좁은 사랑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모든 것을 주시는 풍부한 사랑이라는 말이다. 옛날 유대 민족은 하나님의 사랑이 좁은 팔레스타인이라는 지역, 유대민족이라는 좁은 테두리에 제한 된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종교의 지도자였던 대제사장과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은 아브라함이 자손임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을 멸시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을 위한 성전뜰을 장사꾼의 소굴로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민인 유대인만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의 사랑의 넓이는 제한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마태복음 5:4
5'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고 차별없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차별을 두고 사랑합니다. 우리는 가족만 사랑하고, 우리 교인만 사랑하고, 나만 사랑하는 이기적인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더 나아가서 모든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씀은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하심같이 모든 사람의 영혼을 온전히
사랑하는 성도가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의 영혼을 위해 끊임없이 전도하므로 하나님의 온전하신 사랑을 실천하는 참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길 바랍니다.
2. 인내의 사랑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베드로후서 3:1
5' 하나님의 사랑은 범죄하여 타락한 자식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랑입니다. 인내하는 사랑입니다. 이미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팔 것을 알았지만 사랑으로 참고 회개하기를 기다렸습니다. 우리가 잘아는 탕자의 비유-이것은 다른 말로 "기다리는 아버지의 비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탕자보다 기다리는 아버지의 사랑에 더 주목.(눅15:11-32) 상거가 아직도 먼데 아버지는 돌아오는 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즉 아버지는 아들이 오기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봅시다. 먼 발치인데도 아들을 알아보고 달려가는 아버지의 사랑은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인내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내의 사랑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자기가 살아있는 동안 그리스도가 재림하기를 바라고 있었으며, 그들안에는 강한 재림의 신앙이 존재하였다. "마라나타, 아멘 주예수여 오시옵소서"예배때 마다 고백 . 의심하는 자들도 생김. "오기는 뭐가 온단 말인가 아무리 기다려도 도무지 올 기미도 보이지 않는구나." 주의 재림이 지연 되면서 의심하는 자들도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주의 재림이 지연된 것은 사람의 생각으로 헤아려 볼 때 그안에 하나님은 지혜와 깊은 사랑이 풍겨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베드로후서 3:9' 성경은 심판의 임박함을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였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종말의 시대의 살아가고 있습니다. 종말은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 사이를 종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심판이 우리 앞에 닥쳐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의 심판을 연기함으로서 그의 사랑하는 자들이 회개하고 구원얻는 기회를 주려는 자비심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베드로는 오래 참음으로 지체되는 주의 재림을 등한히 기달릴 성도를 향해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베드로후서 3:10'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은 그의 앞에 설 수 있도록 거룩한 행실과 깨끗함이 있어야 겠다. 오래 참음이 있어야 겠다. 주는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 원해서 오래 참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생각할 때에 주의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인내하며 주의 사랑을 전함으로 하나님의 인내하는 사랑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예화) 옛날 아브라함이 한번은 자기 장막앞에 앉아 있노라니 어떤 길손이 지나가고 있었다. 더운 날이라 길손은 땀을 흘리며 걸어가고 있는데 매우 피곤한 모양이다. 아브라함은 그 모습을 보고 잠깐 자기 장막에 들어와 쉬어 가기를 권했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내 사라에게 부탁하여 서늘한 우유와 빵을 그 앞에 가져다가 먹기를 권하였다. 시장하던 그 길손들은 우유를 마시며 빵을 먹었다. 그 옆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 보던 아브라함은 넌즈시 "손님은 음식을 잡수실 때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습니까" 물으니 그는 무뚝뚝하게 "아니오, 나는 하나님을 모릅니다. 나는 먼 파사에서 오는데 그곳에는 불을 숭배합니다."고 대답했다. 신앙이 독실한 아브라함은 그에게 하나님께서 계신 것과 그 이유를 설명했으나 그는 반대 이론을 펴서 결국은 큰 논쟁이 일어났다. 아브라함은 격분하여 "당신같은 이를 우리 장막에 오래 영접할 수는 없소. 곧 나가시오"라고 말하니 그 길손은 장막을 떠났다. 아브라함은 그 장막 앞에서 그 길손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섰는데, 문득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그 사정을 묻는다. 격분한 아브라함은 그 경위를 설명하니 그 사자는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나님은 저런 사람이라도 오십년이나 참아 오시지시 않았느냐“고 말하였다. 하나님은 인내의 사랑이 넘치시는 분이시다. 전도의 열매가 없다할지라도, 박해가 있다할지라도 인내하며 수고할 때 하나님이 놀랍게 채우시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를 참고 기다리는 인내의 사랑에 감사하며 헌신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징계의 사랑, 권고의 사랑 여호와여 주의 징벌을 당하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시편 94:12'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 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하였으니 '히브리서 12:6' 환난이 올 때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매 즉 징계인 것을 알고 권고의 날인 것을 알고 깨우침이 있어야 합니다. 그 때 고칠 바를 고치고, 설 바를 바로 서야 합니다. 우리가 징계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다는 증거입니다.
예) 사랑의 표현-진한 관심 사랑 미움 무관심이 가장 무섭다.-거기에는 이미 애정이 떠났다는 것.
예화) 중동 지역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의 말에 따르면 목자의 말을 따르지 않고 제 멋대로 돌아다니려고 하는 양들은 그 다리를 부러뜨린다고 한다. 그러면 그 양은 다리가 아파서 절룩거리면서 다른 곳으로 갈 수 없기 때문에 목자의 뒤를 따라 다닌다. 그럴 때마다 아픈 다리를 싸매 주어서 낫게 한다. 그 양은 다리가 다 나은 다음에도 목자의 말을 잘 따르게된다. 그 징계는 그가 우리를 참아들로 여겨 우리를 대하는 모습이며, 우리안에 의의 열매를 맺게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징계에 불평을 갖지 말고, 공포를 갖지말며, 그것이 곧 가르침의 축복이요, 인도하심의 축복이요, 권고의 축복임을 알고-승리하는 신앙.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잠언 3:11-잠언 3:12'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데도 선악을 가려가며 상벌을 바르게 하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바르게 가르칠 땐 가르치고, 사랑할 땐 사랑하는 것이 바로 부모의 사랑.
예) 요즈음 아이들 교육 없어, 몰라, 누군데, 알았어, 아니-완전 반말, 예절 없다.
예) 바늘 도둑인 아이를 나무라지 않으므로 큰 도둑이 되어서 사형장에 이슬로 아들을 보낸 부모의 모습. 하나님의 징계를 감사하며 그 안에서 바르게 성장하는 신앙인. "하나님의 진노는 사탄의 애무와 사랑보다 나으니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를 살게 하시려고 징계하시고, 사탄은 우리를 죽게 하려고 애무한다."-에갈드-
4. 용서의 사랑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에베소서 4:3
2'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우리의 공로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자하신 성품으로 된 것입니다. 전세계 인류가 죄악으로 인하여 지옥으로 달려감을 보신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사 구원을 주신 것. 하나님은 그의 인자하신 사랑의 성품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사 그의 피흘리심을 통해 우리의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탕자의 비유, 기다리는 아버지의 비유-용서하시는 아버지 예수님은 자기를 박해하는 원수를 위하여 기도했고 자기 몸을 창으로 찌르는 자들을 위하여 죄사함의 간구. 우리는 이사랑을 본받아서 인간을 용서하는 정신을 받아야 한다. 용서는 우주의 생명이요, 인류의 평화입니다. 용서는 사랑의 최고 표현입니다. 그리고 이 용서는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예수님-“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태복음 6:1
5' 주의 기도에서도 같은 용서를 가르침.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마태복음 6:12' 우리의 죄가 용서함 받는 조건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는 예를 들고 있습니다. 내가 이웃을 용서한 것처럼, 큰 허물을 덮어준 것처럼, 죽을 죄를 용서해준 것처럼 우리를 용서해 달라는 간구. “용서의 사랑” 네 원수를 친구처럼 사랑하라 그러면 너는 하나님의 친구가 될 것이다. 네게 무관하고 낯선 사람 일지라도 사랑하라 그러면 하나님 가까이에 있게 될 것이다. 네마음에 끌리지 않는 사람도 사랑하고 네마음에 받아들이라 하나님께서 너를 영접하실 것이다. 너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라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을 네게 넘치도록 부어 주실 것이다. 너를 용납하지 않는 사람을 초청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네게 하는 영광문을 넓게 여실 것이다. 하나님의 큰 용서를 생각하고 남의 허물을 용서하는 사랑을 간직하는 성도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한 사랑, 인내의 사랑, 징계의 사랑, 용서의 사랑입니다. 차별이 없으시고 넘치는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으로 완전해지며 끝까지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시는 주의 사랑에 감사하며 우리를 살리기 위한 징계의 사랑을 겸손히 받으며 우리를 용서하신 주님의 사랑이 넘쳐서 사랑이신 하나님을 보는 만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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