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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들로 만들어진 인간성전 (벧전2:5-10)

본문

사도 베드로는 신자가 세상에서 나그네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서신의 서두에서부터 흩어진 나그네에게 편지한다고 시작했는데 계속하여 신자는 세상에서 나그네로서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라고 했고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했습니다. 또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다'고 했습니다. 때문에 우리 인간이 풀과 같고 그 영광이 풀의 꽃 같이 덧없는 존재이지만 영원한 복음의 말씀을 사모하고 살라고 합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신자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믿음의 삶을 가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사모할 것은 영원한 말씀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러한 말씀을 사모하다가 풀과 같이 또는 풀의 꽃과 같이 떨어져도 그것을 섭섭해하거나 허무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눈으로 보면 우리 신자의 모습이 처량하고 서글프기 비길 데가 없어도 믿음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참으로 놀라운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오늘 본문에서 이 사실을 우리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나그네요 풀과 같고 풀의 꽃 같지만 그러나 너희는 놀라운 사람들이요 말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사람들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말씀은 그 옛날 소아시아에서 나그네 된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오늘날 현 세상에서 나그네 된 우리에게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말할 수 없이 영광스럽고 놀라운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죄인이며 본성상 무가치한 인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연약성도 되새겨야 하겠지만 또 주님께서 이런 무가치한 인간에게 입혀주신 놀랍고 영광스러움도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은혜 주신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비록 이 세상의 삶이 고달프지만 은혜 주신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면서 나그네길을 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나그네이지만 우리의 영광스럽고 놀라운 신분은 어떤 것입니까 먼저 5절 이하를 봅시다. '너희도 산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고 합니다. 이 말씀 속에는 집을 이야기하다가 또 제사장 즉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약간의 혼동을 느끼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주의하여 생각해보면 집과 사람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너희도 산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지어지고' 라고 했을 때 성전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건물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인간을 두고 하는 말이기 때문에 성전이라고 하였지만 인간을 생각해야지 건물을 생각하면 혼돈을 일으키게 됩니다. 제가 인간을 생각하라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성전은 성전이지만 돌과 나무로 지어지는 성전이 아니라 인간으로 지어지는 성전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구약의 성전과는 달리 이제 하나님의 성전은 인간으로 지어져 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성전으로 지어지는 인간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바로 거룩한 제사장들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은 제사장들로 지어지는 인간 성전입니다. 베드로는 이제 성전이 인간 제사장들로 지어지고 있고 너희는 이 성전을 이루는 구성원인 제사장들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셈입니다. 따라서 구약의 성전과 같은 건물은 이제 없으며 그것은 성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인간 인격만이 성전을 이루는 요소이지 그 외 어떤 것도 성전을 이루는 요소는 없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우리 한국 교회에 정신을 차리게 하는 채찍의 말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아직도 인격 외에 건물을 성전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인간이 만든 제도를 교회라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은 인간 성전이 필요로 해서 사용하는 도구들이지 그 자체가 성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인간 인격 외에 성전의 요소에 추가시킬 그 어떤 것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것을 소중하게 여기도록 해야 하겠으며 또 인격 외에 성전화하려는 어떤 시도와 성전시 되는 요소도 단호히 배격해야 하겠습니다. 이 인격 성전에 하나님이 임재하여 계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전이라는 말씀입니다. 제사장들로 지어지는 인간 성전은 또한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속에는 아무도 제사장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똑 같은 영광을 가졌고 똑 같은 구성원으로서 높낮이가 없는 동일한 위치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목사도 장로도 높은 사람이 아니며 평신도가 낮은 사람이 아닙니다. 모두가 똑 같은 주님의 영광을 입고 있는 제사장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소위 옛날 종교개혁자들이 믿었던 만인 제사장 이론의 근거입니다. 이 이론은 너무나 확실한 성경의 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것에 의해서도 부정할 수 없는 이론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은 누구도 자기만이 제사장이라고 해서도 안되며 자기는 더 높은 자리에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모두가 똑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어서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삶 자체가 바로 신령한 제사임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특별한 제사를 드리겠다고 야단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제사가 있는 듯이 생각하면서 특별한 행사를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헌신 예배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향기 나는 예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예수 안에서 자기의 죽었음을 되새기면서 살고 있는 그 자체가 바로 신령한 제사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신령하다는 말은 2절에서 '신령한 젖'이라고 할 때의 '신령한'이라고 번역된 말과는 전혀 다른 말입니다.
2절에서는 '말씀의'라는 말이라고 했습니다만 여기서는 '성령님의'라고 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삶이 바로 성령님으로 드리는 제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삶은 성령님으로가 아니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전이고 성령님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라고 해서 이 모든 것이 우리 자신의 힘으로 되어지는 것이라는 착각을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니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이제는 우리들의 노력으로서 십자가를 지고 가야한다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합니다. 어디까지나 우리는 예수 안에서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사역 때문에 성령님이 있지 예수 사역이 아니면 성령님이 있을 수 없으며 또 예수 사역이 아니면 우리의 제사란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예수께서 드린 제사의 온전함을 받으셨기 때문에 그 온전함을 믿고 성령님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받으시는 것이지 우리의 온전함 때문에 우리를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5절에 우리 신자들을 산 돌들(단수같이 번역되었지만 단수가 아님)이라고 했는데 우리들은 참으로 산 돌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 때문에 된 것이며 또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성령님으로 생명을 공급하시기 때문에 산 돌들로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없이도 우리 자신이 믿음으로 산 제사를 드리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착각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든 기도를 하든 묵상을 하든 모든 것이 예수 안에서 되어지는 일이요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있는 생명현상이지 예수 밖에서 독자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다시 이야기하면 우리 자신의 제사는 진짜 제사가 아니라 주님의 제사를 믿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그림자와 같은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제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제사가 중요한 것이며 주님의 제사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우리의 제사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제사장 사역 때문에 제사장 된 우리에게 신령한 제사를 드리라고 하는 것은 주님의 제사장 사역을 반영하는 자로서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곧 이것은 믿음으로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완전한 대제사장이신 주님이 우리를 자기 안에 품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대제사장의 사역을 기억나게 합니다. 구약의 대 제사장은 모든 백성은 물론 모든 제사장을 대표해서 하나님의 지성소에 피를 가지고 들어가는 자입니다. 이 대제사장의 사역은 모든 제사장들의 사역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 사역으로 모든 제사장들이 다 깨끗하게 되어서 성전에서 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바로 이와 같은 사역이며 우리는 이 예수님 안에서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아서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둔 성전으로 지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한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하다는 말도 주님이 거룩하게 하신 거룩을 덧입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제사장 성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다. 주님의 거룩하심을 입혀 주셨기 때문에 거룩해진 제사장 성전입니다. 이 사실을 확증해 주는 것이 6-7절에 나오는 주님에 대한 묘사입니다. 6-7절에 주님을 하나님이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이라고 했으며 또 믿는 자에게 보배라고 했습니다. 이 모퉁이 돌이 시온에 놓이므로 시온은 하나님이 승리하셨다는 것을 선포합니다.
그런데 이 시온에 놓인 보배로운 돌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를 믿는 신자에게는 보배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보배는 구약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용된 하나님의 보물을 가리는 것과 같은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 보배, 보석, 하나님의 특별한 재산' 등을 뜻하는 '스굴라'라는 말을 사용하여 불렀습니다(출19:5; 신7:6; 14:21; 26:18 등).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제쳐두고 우리가 바로 이런 하나님의 특별한 보배로구나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우리를 이렇게 말하기 전에 예수님을 '하나님의 특별한 보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보배가 믿는 자에게도 보배가 되었습니다. 믿는 자를 위하여 사역하셔서 믿는 자를 하나님의 제사장이요 보배로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예수님 때문에 인간 성전 곧 제사장 성전이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둔 하나님의 특별한 보배가 되는 것입니다. 이상의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모든 종교적인 행위들을 쓸 데 없는 것이라고 인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신앙이란 종교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주님을 믿는 제사장으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성령님의 제사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믿는 자는 곧 성령님으로 제사 드리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도 됩니다. 주님을 믿음으로 소망을 하늘에 두고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성령님으로 제사를 드리고 있는 제사장들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망각하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눈에는 인간 성전이 보일 리 없고 믿는 자들로 이루어진 인간 성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고 하나님이 거기 계신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며, 또 믿는 자들이 보잘것이 없는 것 같이 생각되기 때문에 그들에게 신의 영광이 있다는 것을 조롱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 자신은 세상적으로 보면 초라해 보일 지라도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져 가고 있는 성전에 자신이 참여되어 있다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그 사실에서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믿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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