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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 (요일4:16-21)

본문

크게 나누어서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하나는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미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평안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보냅니다만 그러나 미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루 하루를 증오심과 악한 감정을 지닌 채 살아가게 됩니다. 다시 말 하면 극도의 증오심과 분노를 안은 채 잠들고 깨어나고 하루를 살아 가게 됩니다.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종류의 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사랑하며 용서하며 살아가는 생활을 신선한 바람이 부는 전웠의 생활 에 비한다면 미움과 분노로 지새는 생활은 최루가스가 짙게 깔린 현 장과 같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 뜻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뜻이고 그 하나님께서 하신 일 들은 모두가 사랑의 행동들이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랑이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당연히 우리들의 삶이 사랑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마음속에는 사랑하는 마음보다는 미워하는 마음이 더 짙게 드리워 있는가 하면 용서 하는 마음보다는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가득 차 있습니다. 돈을 주는 것도 쉽고 옷을 주는 것도 쉽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사랑 을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점심을 사고 커피를 대접하는 일은 쉽지만 사랑을 주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1987년 새해를 맞 았습니다. 새해를 위한 기도가 있다면 그것은 '주님 사랑하게 하소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나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을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곧 조컨을 따라 조건부로 사랑하는 방법과 조건에는 상관없이 무조건 사랑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대 개의 경우는 조건부이기가 쉽습니다. 조건부란 무엇을 해주었기 때문에, 무엇이 되기 때문에. 어떤 관계가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을 의 미합니다. 그러나 조컨없이 그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 이 아닙니다. 사랑의 절정이 있다면 그것은 조건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게리콜 린스가 쓴'크리스찬 카운셀링'이라는 책 속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 려 있습니다. 어떤 설교자가 교회에서 다음 주일에 역사상 가장 은 설교를 하겠다'고 예고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주일아침 그 교회는 앉을 자리가 없을만큼 사람들이 꽉 찼습니다. 그날 그가 한 역사상 가장 짧은 설교는 단 한마디 '사랑' 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에 관하여는 이 알고 있고 사랑에 대하여 서는 많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진정한 의미라든지 그 실천에 관하여는 을바로 깨닫지도 못하고 파악하지도 못$i고 있읍니다. 사랑에 대하여 관심은 가지고 있지만 사랑을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선언하면서 '서 로 사랑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왜 사랑해야 하며 어떻게 사랑해 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주님의 분부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말년에 행한 설교의 주제를 '사랑' 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설교할 때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한번은 그의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라'는 이야기 외에 다른 말이 없느냐고 묻 자 '이보다 더 좋은 말이 어디 있겠느냐'라고 대답했다고 전해 내려옵니다. 그러면 사도 요한이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강조하고 가르쳤던 그 사랑은 어디서 배운 것이었겠습니까 요한 l서 S장 11절을 보면 우리가 서로 사랑할찌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고 했읍니다. 여기서 말하는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란 말의 뜻은 예수믿기 시 작한 때부터 들은 소식이라는 뜻도 있고 요한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맨처음 들은 소식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일 증요한 소식이 라는 뜻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 동안 주님을 따라 다니면 서 주님이 제일 원하고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것을 누 구보다도 깊이 깨달았던 요한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의 사랑하는 제자 들에게도 '서로 사랑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쳤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십 남매를 키웠다는 어느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십 남매를 키우면 서 가장 힘들고 어려왔던 일이 무엇이었느냐'고. 그 어머니의 대답은 '10 남매가 서로 다투고 싸울 때 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돈이 모자라는 것보다, 양식이 떨어지는 것보다 더 근심스럽고 마음 아픈 것은 형제 가 우애하지 못하고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는 것이었다는 이야 기인 것입니다. 우린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갚아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랑 가운데서도 최고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조컨없이 주신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사랑 을 받았기 때문에 우린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혼히 돈 빚진 것만 빚으로 생각합니다만 사랑의 빚은 더 큰 빚인 것입니다. 그 사랑의 빚도 갚아야 합니다. 사랑의 빚진자들은 그 빚을 갚아야 떳떳한 사람으로 구실을 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기에 우리는 그 사랑의 명령을 따라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쯔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기 때문입니다. 본문 4장 18절서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고 했습니다. 법이라든지 공 의는 사람을 겁나게 하고 두렵게 합니다만 그러나 사랑은 두려움을 없애줍니다. 지난 1월
I3일자 모 일간지에 '웃음은 보약보다 좋다'는 글이 실린 일이 있었습니다. 내용은 고려병원 이상종 박사의 웃음에 대한 견해였습니다. 사람이 화를 내게 되면 그것이 하나의 스트레스로 작용해 뇌하수체 와 부신 수질의 노르아드레나린 등의 호르몬 분비를 촉진하게 되는데 그 단계를 경고기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혈압이 오르고 맥박이 증가하는가 하면 체온이 상승하고 고혈당이 되는 등 생리변화 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계속해서 화를 낼 경우 각종 질환에 대한 저항럭이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면역력의 저하가 일어난다는 것 입니다. 그래도 계속 화를 내면 동맥경화, 심장장애, 당뇨병. 심근경색 등 성인병과 위 십이지장퀘양 기타 알레르기와 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병으로 이환되고 심하면 목숨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국에서 행한 실험으로 화낸 사람이 내뿜은 숨을 액체 질소로 급속 냉각을 시 켜 농축액체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색갈이 노란색이 되 었고 그것을 횐 쥐에 소량 주사를 했더니 횐 쥐가 즉사했고, 한 시간 동 안 내뿜은 화난 사람의 독성은 무려 80명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양이 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화내는 것은 독약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웃음은 긴장하고 이환된 모든 신체의 각 부분을 정상으로 바꿔놓는 것이기 때문에 보약보다 더 좋다는 것입니다. 웃을 수 있는 것은 너그러운 마음씨를 지닐 때 가능합니다. 그리고 너그러운 마음 씨는 그 마음 속에 사랑이 있을 때 가능하게 됩니다. 요즘 인권 운운 합니다만 그러나 인권보다 더 증요한 젓은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만일 피의자를 다루는 경관이 그 마음속에 사랑하는 마음씨가 있었 다면 듣기만 해도 소름끼치는 고문이라든지 치사사건이 일어날 수 없 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 아, 내 동생이라고 여기는 연민과 사랑이 마음 한 구석에 단 몇 치라도 남아 있다면 그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경제개발이나 정치발전이기 전에 사랑과 진실의 회복운동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믿고 사랑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밤거리를 거닐어도 두려움이 없는 사회, 집을 비워놓고 다녀도 려 정이 없는 사회, 부모들이 마음 조리지 않고 자식들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 사회가 먼저 선행되어야 합니다. 강아지를 보고 자즈러지게 울 던 세 살된 아기가 강아지보다 더 우람하고 큰 물체를 보자 울음을 그쳤습니다. 그리고 그 품에 안겼습니다. 그 아기의 엄마였기 때문입니다. 아기한테 엄마의 품은 사랑과 안정과 평화의 품입니다. 그 품 속엔 두려움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 속에 무섭게 깔려 있는 두려움을 없애 려면 사랑의 씨앗을 심고 사랑의 나무를 가꾸어야 합니다. 사랑만이 두려움을 내어 쫓을 수 있는 것입니다.
3.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4장 2o절을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 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않는 자가 보지 못한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의 척도를 가늠하는 기준이 형제를 얼마나 사랑하느냐로 측정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노라면서 이웃과 원수맺고 사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예수 잘 믿는다면서 형제와 담 쌓고 사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고 괴륨히고 상처를 준다 면 그것도 거짓말입니다. 요한 l서 '2장 4절을 보면 '저를 아노라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서로 사랑하다는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것은 예수를 아는 사람도 아니고 그를 믿는 사람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보통 볼신과 긴장과 증오가 안개처럼 드리워 있습니다.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그 소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믿으려 하질 않습니다. 그리고 신자 블신자를 막론하고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서 말 세라고 자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돌아가는 꼴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것은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시기와 증오와 꾄견입니다. 어떤 철인은 사람의 마음을 작은 우주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작은 우주가 지금 저마다 제 정신을 못차리고 탐욕과 시기와 질투와 불신과 중오로 뒤범벅이 되어 있습니다. 거기다가 하나님의 사랑의 폭탄 을 던집시다. 부부끼리 서로 사랑합시다. 부모 자식끼리 서로 사랑합시다. 형제끼리 서로 사랑합시다. 교인끼리 서로 사랑합시다. 동포끼리 서로 사랑합시다. 어떻게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바라보면 가능합니다. 원수 사랑은뒤로 미루더라도 형제, 부모, 부부 자식 간의 사랑을 먼저 회복해야 됩니다. 주님의 말에 귀를 기울입시다. '새 계명을 너회에게 주노니 서로사랑하라 내가 너회를 사랑한 것 갈이 너회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요한복음 13장 34절에서 주신 말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모인 곳이 지상천국입니다. 서로 미워하면 거기가 지상지윽인 것입니다. 주님, 서로 사랑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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