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이란 무엇인가? (요일4:1-6)
본문
최근에 와서 이단 종파들의 활동이 교회와 사회의 암적인 존재로서 도청에서 성행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성경말씀을 보면 선지자들이 예언할 때에 거짓 선지자들도 예언을 하였고,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유대주의 자들은 다른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행15:1) 예수님께서는 이런 일이 있을 줄 미리 아시고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 하라!”고 경고 하셨습니다.(마24:4) 사단은 언제나 자기의 형체를 감추고 그의 영을 받은 자를 보내어 미혹케 하는데 그들이 바로 거짓 선지자 곧 이단자들입니다. 오늘은 이단에 대하여 공부를 함으로서 이단에 미혹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신앙에 대해 배우겠습니다.
1. 첫번째로 이단이 아닌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를 살펴 봅시다. 이단은 개인적인 신앙태도나 감정이나 관습에 의하여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말씀에 기초를 둔 가운데 규정되어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이단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실제로는 이단이 아닌 경우를 살펴 봅시다.
(1) 교회 혹은 교파의 분열은 이단이 아닙니다. 원칙적으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기때문에 나누어 질 수가 없습니다. 이 세계에 있는 교회로서 성경에 기록된 진리를 믿고 고백하는 교회는 모두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교회입니다. 그것은 우주적인 교회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라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이 우주적인 교회는 가능하면 더 많은 지역 교회로 나뉘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우리가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고 세우는 이유입니다. 물론 교회가 인간들의 감정에 좌우되어 나뉘는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슬프게 하는 일에는 틀림없으나 서로 나뉜 교회들이 동일하게 성령님의 진리에 굳게 서는한 이단이 아닌 것입니다.
(2) 이단은 교리에 대한 일시적인 강조의 차이점과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인간의 이성이나 이해를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도움심이 없이는 누구나 오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교회에는 하나님의 진리를 해석해 주는 목사와 교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각 교파, 교회마다 조금씩은 신앙의 강조점이 다를 수 있습니다. 어느 교파에서는 중생을 더 강조하고, 어느 교파에서는 성화를 더 강조하기도 합니다. 어느 주의 종은 회개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며 어느 주의 종은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합니다. 이와같이 각 교파 각 교회 각 주의 종마다 성경의 가르치심 안에서 강조점이 다릅니다. 그렇게 서로의 신앙의 강조점이 다르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함부로 규정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3) 이단은 불신앙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불신앙이라 함은 아직 믿음이 연약하여 믿기를 원하면서도 믿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태를 말합니다. 베드로는 분명히 물위로 걸어가다가 믿지 못함으로 물속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 할 때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솏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고전3:1) 고 탄식했으며 히브리교인들에게는 그들의 들음이 둔함을 지적했습니다.(히5:11-14)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 분량대로 주시는 은사이기때문에 어떤 사람은 신속히 성장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더디 성장하기도 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신앙을 기준하여 이해되지 않는다고해서 내 자신의 신앙보다 더 훌륭한 사람을 이단이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내 자신의 신앙정도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서 그를 정죄하는 것도 잘못된 일입니다.
2. 그러면 이단의 일반적 특징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배웁시다. 이단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1) 표리가 다른 것이 특징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성경을 인정하고 하나님도 부르고 예수님의 이름도 부르지만 그러나 그 속에는 이 모든 진리와 복음으로부터 떠나 있습니다.
(2) 성경이 하나님의 정확무오하고 유일한 기록된 말씀임을 부인합니다. 이들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외에 자기들의 교조의 주장을 담은 책을 마련하여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귀하게 여기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거의 모든 이단들이 공통적으로 범하는 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그 안에 기록된 진리를 가감(加減)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재앙이 임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계22:18,19)
(3) 이단들은 교조를 절대 신격화 합니다. 이것도 역시 하나님의 보좌를 찬탈하려던 마귀의 특색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어느 피조물이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려고 하면 그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4) 은혜로 구원에 이르는 진리를 부정합니다. 그들은 인간의 노력과 행위로 구원에 이른다고 주장하기도 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위로 돌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은 오직 믿음과 은혜로 말미암아 옵니다.
(5) 삼위일체 교리를 부인합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든지, 예수님의 인성을 무시하기도 합니다. 또한 성령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어떤 영향력 정도로 가르치기도 합니다.
(6) 육체의 정욕을 따라 간음을 행하는 등 비 윤리적 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7) 성경에도 없는 구원론을 주장합니다.
(8) 그들은 성경에도 없는 예수님의 재림 시간을 계산하여 교인들을 미혹합니다. 오늘날 국내외적으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단들이 독버섯처럼 돋아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세가 될 수록 이런 종류의 집단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마24:3-5)
3. 이단에 미혹되지 않는 길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는 우리가 이단에 미혹되지 않고 올바른 신앙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에 대해 알아 보리고 하겠습니다.
(1) 함부로 이단들과 토론해서는 안됩니다. 일반적으로 이단들은 교묘한 논리를 앞세우고, 교묘한 말장난으로 기성교회 성도들은 미혹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기성교회를 공경하기 위하여 조작한 성구, 이론을 전문적으로 세뇌 받고 있기때문에 섣불리 이들과 교리에 대하여 논재을 벌이게 되며는 부지불식간에 그들의 꾀임에 빠져들기 십상입니다.
그러므로 이단 종파의 무리들이 톨론을 제의해 올 때 함부로 토론하지 말고 단호히 거절해야 합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요2:10)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매사에 교만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특히 이단을 대할 때는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나는 이까짓 이단쯤은 충분히 이길 수 있을 정도로 말씀으로 무장되어 있다”라고 자신감을 가지고 이단과 맞섰다가는 그나마 있던 신앙마저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교훈으로 꺽을 생각을 하지말고 조용히 피한 후 기도를 함으로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3) 말씀 중심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이단들이 이단이 된 것은 바로 말씀해석을 멋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검, 곧 말씀위에 굳게 서서 삼위일체되신 하나님과, 우리의 구세주되신 예수님과, 그 밖의 성경상에 나타난 모든 진리들을 올바르게 믿고 또한 그 믿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담대히 증거해야 하겠습니다.
(4) 성령님께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이단의 공격이 다가올 때 이전에 들었던 이단에 대한 부분지식이나, 경험에 의지하지 말고 성령님께 맡기고 나아가십시요! 그리하면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할 때,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셔서 우리에게 길을 예비해 주실 것입니다.
(5) 신본주의적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단의 형성사를 살펴 볼 때, 누구나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복음을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4장 1-11절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금식하신 후 마귀가 교묘하게 시험해 왔을 때 예수님은 신본주의 곧 하나님 중심주의로 마귀를 대적함으로서 그 시험을 물리치셨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단의 유혹의 손길이 교묘하게 뻗칠 때 우리는 주저하지말고 하나님 중심으로 굳게 서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할 때(고전10:31) 우리는 이단의 유혹에 관계없이 진리의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6) 소속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7장 23절 말씀을 보면 사도바울이 종교재판 받으러 로마로 압송되던 중 유라굴로라는 큰 광풍을 만나서 배에 탄 사람들이 다 죽게되어 혼비백산했을 때, 사도 바울이 담대하게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라고 말함으로써 배에 탄 사람들을 안심시킨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 믿는 신앙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사도 바울과 같은 신앙 고백입니다. “세상은 무엇이라고 나에게 말하고 너희 이단의 무리들은 무엇이라고 말할 지라도 나는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다.”라고 담대하게 신앙고백하면서 우리가 속한 소속을 분명히 할 때, 이단의 가면을 쓰고 우리에게 다가왔던 마귀는 한 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하고 말 것입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
1. 첫번째로 이단이 아닌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를 살펴 봅시다. 이단은 개인적인 신앙태도나 감정이나 관습에 의하여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말씀에 기초를 둔 가운데 규정되어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이단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실제로는 이단이 아닌 경우를 살펴 봅시다.
(1) 교회 혹은 교파의 분열은 이단이 아닙니다. 원칙적으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기때문에 나누어 질 수가 없습니다. 이 세계에 있는 교회로서 성경에 기록된 진리를 믿고 고백하는 교회는 모두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교회입니다. 그것은 우주적인 교회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라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이 우주적인 교회는 가능하면 더 많은 지역 교회로 나뉘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우리가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고 세우는 이유입니다. 물론 교회가 인간들의 감정에 좌우되어 나뉘는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슬프게 하는 일에는 틀림없으나 서로 나뉜 교회들이 동일하게 성령님의 진리에 굳게 서는한 이단이 아닌 것입니다.
(2) 이단은 교리에 대한 일시적인 강조의 차이점과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인간의 이성이나 이해를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도움심이 없이는 누구나 오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교회에는 하나님의 진리를 해석해 주는 목사와 교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각 교파, 교회마다 조금씩은 신앙의 강조점이 다를 수 있습니다. 어느 교파에서는 중생을 더 강조하고, 어느 교파에서는 성화를 더 강조하기도 합니다. 어느 주의 종은 회개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며 어느 주의 종은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합니다. 이와같이 각 교파 각 교회 각 주의 종마다 성경의 가르치심 안에서 강조점이 다릅니다. 그렇게 서로의 신앙의 강조점이 다르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함부로 규정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3) 이단은 불신앙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불신앙이라 함은 아직 믿음이 연약하여 믿기를 원하면서도 믿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태를 말합니다. 베드로는 분명히 물위로 걸어가다가 믿지 못함으로 물속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 할 때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솏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고전3:1) 고 탄식했으며 히브리교인들에게는 그들의 들음이 둔함을 지적했습니다.(히5:11-14)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 분량대로 주시는 은사이기때문에 어떤 사람은 신속히 성장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더디 성장하기도 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신앙을 기준하여 이해되지 않는다고해서 내 자신의 신앙보다 더 훌륭한 사람을 이단이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내 자신의 신앙정도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서 그를 정죄하는 것도 잘못된 일입니다.
2. 그러면 이단의 일반적 특징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배웁시다. 이단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1) 표리가 다른 것이 특징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성경을 인정하고 하나님도 부르고 예수님의 이름도 부르지만 그러나 그 속에는 이 모든 진리와 복음으로부터 떠나 있습니다.
(2) 성경이 하나님의 정확무오하고 유일한 기록된 말씀임을 부인합니다. 이들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외에 자기들의 교조의 주장을 담은 책을 마련하여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귀하게 여기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거의 모든 이단들이 공통적으로 범하는 죄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그 안에 기록된 진리를 가감(加減)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재앙이 임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계22:18,19)
(3) 이단들은 교조를 절대 신격화 합니다. 이것도 역시 하나님의 보좌를 찬탈하려던 마귀의 특색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어느 피조물이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려고 하면 그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4) 은혜로 구원에 이르는 진리를 부정합니다. 그들은 인간의 노력과 행위로 구원에 이른다고 주장하기도 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위로 돌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은 오직 믿음과 은혜로 말미암아 옵니다.
(5) 삼위일체 교리를 부인합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든지, 예수님의 인성을 무시하기도 합니다. 또한 성령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어떤 영향력 정도로 가르치기도 합니다.
(6) 육체의 정욕을 따라 간음을 행하는 등 비 윤리적 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7) 성경에도 없는 구원론을 주장합니다.
(8) 그들은 성경에도 없는 예수님의 재림 시간을 계산하여 교인들을 미혹합니다. 오늘날 국내외적으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단들이 독버섯처럼 돋아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세가 될 수록 이런 종류의 집단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마24:3-5)
3. 이단에 미혹되지 않는 길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는 우리가 이단에 미혹되지 않고 올바른 신앙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에 대해 알아 보리고 하겠습니다.
(1) 함부로 이단들과 토론해서는 안됩니다. 일반적으로 이단들은 교묘한 논리를 앞세우고, 교묘한 말장난으로 기성교회 성도들은 미혹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기성교회를 공경하기 위하여 조작한 성구, 이론을 전문적으로 세뇌 받고 있기때문에 섣불리 이들과 교리에 대하여 논재을 벌이게 되며는 부지불식간에 그들의 꾀임에 빠져들기 십상입니다.
그러므로 이단 종파의 무리들이 톨론을 제의해 올 때 함부로 토론하지 말고 단호히 거절해야 합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요2:10)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매사에 교만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특히 이단을 대할 때는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나는 이까짓 이단쯤은 충분히 이길 수 있을 정도로 말씀으로 무장되어 있다”라고 자신감을 가지고 이단과 맞섰다가는 그나마 있던 신앙마저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교훈으로 꺽을 생각을 하지말고 조용히 피한 후 기도를 함으로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3) 말씀 중심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이단들이 이단이 된 것은 바로 말씀해석을 멋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의 검, 곧 말씀위에 굳게 서서 삼위일체되신 하나님과, 우리의 구세주되신 예수님과, 그 밖의 성경상에 나타난 모든 진리들을 올바르게 믿고 또한 그 믿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담대히 증거해야 하겠습니다.
(4) 성령님께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이단의 공격이 다가올 때 이전에 들었던 이단에 대한 부분지식이나, 경험에 의지하지 말고 성령님께 맡기고 나아가십시요! 그리하면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할 때,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셔서 우리에게 길을 예비해 주실 것입니다.
(5) 신본주의적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단의 형성사를 살펴 볼 때, 누구나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복음을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4장 1-11절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금식하신 후 마귀가 교묘하게 시험해 왔을 때 예수님은 신본주의 곧 하나님 중심주의로 마귀를 대적함으로서 그 시험을 물리치셨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단의 유혹의 손길이 교묘하게 뻗칠 때 우리는 주저하지말고 하나님 중심으로 굳게 서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할 때(고전10:31) 우리는 이단의 유혹에 관계없이 진리의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6) 소속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7장 23절 말씀을 보면 사도바울이 종교재판 받으러 로마로 압송되던 중 유라굴로라는 큰 광풍을 만나서 배에 탄 사람들이 다 죽게되어 혼비백산했을 때, 사도 바울이 담대하게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라고 말함으로써 배에 탄 사람들을 안심시킨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 믿는 신앙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사도 바울과 같은 신앙 고백입니다. “세상은 무엇이라고 나에게 말하고 너희 이단의 무리들은 무엇이라고 말할 지라도 나는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다.”라고 담대하게 신앙고백하면서 우리가 속한 소속을 분명히 할 때, 이단의 가면을 쓰고 우리에게 다가왔던 마귀는 한 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하고 말 것입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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