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 (요일4:1-6)
본문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 야곱 다윗 모세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고난 후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구체적인 어떤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고, 하늘에 계시는 어떤 절대적인 존재로서의 신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종교가 생겨나게 됩니다. 아브라함때는 종교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삭때도 종교가 아니었고 야곱때도 종교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없어져 버리면 그 하나님은 또 종교적인 하나님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겉모양은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실제내용은 이방인들이 말하는 하나님과 꼭 같은 그런 하나님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요한 1서에서 요한이 말하려고 하는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계가 안될지라도 나에게 관계된 하나님,구체적으로 예수로 말미암은 그 하나님을 얘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자들아 영들을 다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肉體로 오신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안에 계신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매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요한1서 4:1-4:6-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이 곧 적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입니다. 이말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아닌 다른 하나님을 믿는 것이 적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대로 '옥황상제다 하늘에 있는 어떤 상제다'하는 절대 권능자로서의 그런 하나님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하나님, 그 하나님이 아닌 다른 하나님을 믿는 것이 적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미혹케하는 영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왜 혼란되어 있느나 종교가 왜 혼란되어 있느냐 그것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래서 혼란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존재 무소부재한 존재 전지 전능한 신은 믿으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모르기 때문에 미혹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미혹을 받지 않지만 전능하고 무소부재하고 못할 것이 없고 절대적인 즉 '그것' 으로서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 사람을 미혹케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는 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인 것입니다. 즉 예수의 하나님을 시인하지 않는 것이 적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이죠.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시인하지 않는 것이 적그리스도의 영인 것과 같이 예수의 하나님을 시인하지 않는 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모두 자기들이 알고 있고 자기들이 믿고 있는 신이 있습니다. 요한이 믿고 있는 하나님과 어떻게 다른가 예수없이는 요한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서 아는 하나님이니까. 예수의 하나님이지 결코 예수없이도 있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점입니다. 유대교인들이 나중에 어떻게 미혹되었느냐하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이 있다는 것, 아브라함이 없다하더라도 상관없는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미혹케 한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믿으면 이방인의 하나님과 다를바 없어집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백성은 그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못하고 이방인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될수 없고 '너는 내 아내다'하는 그 아내가 될수 없고 '너는 내백성이다.' 하는 그 백성이 될수 없고 '너는 내 자녀다.'하는 그 자녀가 될수 없고 이방인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어떻게 하든지 할수만 있으면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뺴버리고 다른 하나님을 사람들이 믿게 하려하는 것입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하나님,능력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은 사람들이 믿기가 쉽습니다.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말을 듣느니라.
그런데 우리가 말을 하면 우리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고로 우리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께 속했는데 우리말을 듣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속했다는 말은 예수의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속했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버리고 없습니다. 이삭도 가버리고 없습니다. 야곱도 가버리고 없습니다. 사람들이 알수 있는 것은 무엇을 알수 있는가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무소부재하시다. 그런 분이 하나님이다. 그는 기적을 행하셨고 지금도 기적을 행하신다.' 그런 하나님은 잘 알지만 아브라함의 하나님하면 아브라함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삭의 하나님하면 이삭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하나님하면 야곱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아무리 말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의 하나님은 사람들이 예수를 잘 모르기 때문에 아무리 말해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의 말을 하매 저희말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고로 하나님을 아는자들은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구의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을까 예수의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모르면 예수의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 하나님께 속하여 있을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모르는 사람은 예수의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의 하나님을 모르면 예수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적그리스도의 영이 무엇인가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것을 시인하지 않는것, 그것을 부인하는 것이 적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아브라함을 빼버린 하나님, 이삭을 빼버린 하나님,야곱을 빼버린 하나님을 믿게 하는 것이 적그리스도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을 우리가 생각해 봅시다. 아브라함이 꼭 있어야 되는가 이삭이 꼭 있어야 되는가 야곱이 꼭 있어야 되는가 더 내려와서 예수가 없어도 되는 하나님이 아닌가 예수가 없어도 전혀 상관이 없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예수가 없어도 전혀 상관없는 하나님이듯이 지금도 마찬가지로 예수가 없어도 상관없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을 빼버린 하나님, 그런 하나님을 믿게 하는 것이 적그리스도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은 선지자들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지자 없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이죠. 이사야를 빼버린 하나님, 에레미야를 빼버린 하나님, 호세아를 빼버린 하나님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아주 아리송한 것입니다. 하나님, 하나님하면 다 마찬가지인데 어째서 저 사람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하나님께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듣지 않는가 세상에 속한 말을 하면 잘 듣고 하나님께 속한 말을 하면 왜 안듣는다는 것인가하나님께 속했다는 말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에게, 예수의 하나님에게 속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하나님, 예수의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을 시인하게 하는 것이 적그리스도의 일인데 이것이 구체적으로는 예수가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육체로 있는 것을 부인한 것이나 이삭이 육체로 있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나 야곱이 사람인 것을 부인하는 것이나 예수가 사람인 것을 부인하는 것이 꼭 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사람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유태교인입니다. 이것이 곧 이방인인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백성인데 누구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느냐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방인과 꼭 같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의 하나님은 사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방인들은 자기 생각속의 하나님입니다. 어떤 전능자를 보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어떤 절대자를 보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이방인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 신을 아는데는 사람을 필요치 않습니다. 어떤 기적이 행해지면 '아! 하나님이 있구나'라고 믿으면 되니까 사람은 필요치 않습니다. 만일 오늘 병을 고친 하나님을 믿는다면 병을 고치는 것을 보고 믿는 것이지 예수를 보고 믿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오늘 홍해를 가른다면 홍해를 가른 것을 보고 믿는 거지, 아브라함을 보고 믿는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홍해를 가를 수 있는 하나님일 수 있지마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아닐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사탄이 사람을 꼬이는 곳이 여깁니다. 이것으로 미혹을 해버리면 하나님의 영원한 창조의 목적인 사람과 하나님 이것이 깨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분명히 기적을 통해서 믿게 하는 것은 쉬운 것입니다. 제일 쉬운 일입니다. 옛날에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게 하려는데 아무리해도 하나님을 믿게 할수가 없었어요. 근데 기적을 행하는 곳에 가보면 사람들이 금방 하나님을 믿는다 말입니다. 야 저것이 가장 쉬운 길이고 가장 옳은 길이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증명할 길이 없고 나의 하나님을 증명했어야 될텐데 나의 하나님을 증명할 길이 없고 나는 그 하나님을 증명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하나님을 증거해봤자 사람들이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병자에게 안수를 했는데 고침을 받았으면 그 사람은 즉석에서 대학교수든지 박사든지금방 하나님은 살아있다고 믿습니다.제가 알고 있는 교수 한분이 있는데 그분은 자기말대로 무신론자 였다는 겁니다. 자기아내가 교회를 다녔어요. 교회를 다녔지만 자기는 전혀 무신론자였다는 겁니다. 자기 아내가 중풍이 걸려서 의식불명상태에 있었는데 어느 교회에서 와서 계속 기도를 하더니 그 아내가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 사람은 철저하게 믿고 있었어요. 이것은 유식하고 무식한 것과 상관없습니다. 기적만 봐버리면 누구라도 믿을수 있는 것이니까요.그리고 그 즉석에서 믿을 수있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쉬운 일입니까 근데 이것은 이방인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는 없어도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뭣땜에 필요합니까 예수가 왜 필요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왜 자기 자신을 통해서 자기의 하나님을 알게 하려했느냐는 것입니다. 자기가 죽기까지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그 하나님을 증거하려면 기적만 행하고 가면 그만인데 왜 자기는 십자가를 지면서까지 자기 하나님 자기 아버지를 나타낼려고 했느냐 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사람을 미혹하여 하나님 창조의 영원한 목적인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를 끊어버리게 하는 미혹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 일을 갈라내기 위해서는 꼭 사람의 하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꼭 예수의 하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삭에게 너는 누구의 하나님을 믿느냐고 물으면 '나는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을 믿는다' 이렇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통입니다. 나는 어떤 어떠한 교리의 하나님을 믿는다 이것이 정통이 아니고 '너는 어떠한 하나님을 믿느냐' 하면 '나는 우리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믿는다' 이것이 가장 정통입니다. 야곱에게 묻기를 '너는 어떤 하나님을 믿느냐'라고 물으면 '나는 우리 아버지 이삭과 우리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믿는다' 이것이 정통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믿는 하나님은 이방인의 하나님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없어도 되는 것이니까 기적을 통해서 믿는 하나님도 마찬가지로 이방인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많은 기적을 이스라엘 백성앞에 행해 주었지만 미혹을 받아 혼란이 되어버려 분간을 못한 것입니다. 광야 40년동안 그들은 기적의 양식을 먹으면서 수없는 기적을 보아왔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에서 가자마자 금새 바알을 섬겼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나안에 가보니까 바알을 섬기고 있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데 그사람들은 자기들보다 잘 살더라는겁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사람들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고 자기들은 유목민입니다. 그러니까 옛날에 유목민에 비해서 농경민들은 훨씬 부유했습니다. 그리고 문화가 훨씬 앞서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농경민은 정착한 사람들이고 유목민은 떠돌아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떠돌아다니다 보니까 문화가 발전할수 없습니다. 정착하는 사람들을 통해 문화가 발전했습니다. 집을 짓더라도 이 사람들은 초갓집 짓다가 나무로 짓고 나무로 짓다가 흙벽돌로 짓고 자꾸 개조를 해나가지 않습니까 그러나 떠돌아 다니는 사람들이야 집을 지을 필요가 없단 말입니다. 천막하나 둘러메고 가다가 펴놓고 자다가 또 둘러메고 가고 이러니까. 문화가 발전할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가나안의 문화에 현혹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 우리가 지금까지 여호와를 믿어 왔는데 여기와서 보니까 바알이라는 하나님을 믿는데 바알이 진짜 하나님이었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그 성에 이르러서 장로들을 불러놓고 "너희는 오늘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섬길자를 택하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나와 내집은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겠다"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탄이 만일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방법으로든지 하나님을 믿게 하고 그리고 거기서 사람만 빼버리면 그 아브라함을 빼버리고 이삭을 빼버리고 야곱을 빼버리고 그래서 마지막에 예수를 빼버리게 되면 그건 자기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바알이 사탄인지 하나님인지 어떻게 알겠느냐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알겠느냐는 겁니다. 사탄은 욥의 모든 재산을 한꺼번에 가져갈수도 있었습니다. 자식들을 한꺼번에 가져 갈수도 있었고 몸에 병이 들게 할수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그 몸에 병이 낫게 할수도 있었을 것이고 재산을 다시 줄수도 있었고 자식을 다시 줄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와서 시험하던 사탄은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이며 가로되, "내게 절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들에게 주노라"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모든 것을 할수 있는 것입니다. 다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사람들을 미혹케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밥법입니다. 왜 아담으로 하여금 선악과를 먹게 하였는가 이것이 사람과 하나님을 이간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왜 이스라엘 속에 들어와서 사람들에게 아브라함을 제하게 만들었는가 이삭을 빼버리고 야곱을 빼버리고 선지자들을 빼버린 하나님을 믿게 하였느냐이것이 자기에게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그랬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과 우리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이방인과 꼭 같은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 하나님에게 가인과 아벨처럼 영원히 제사만 드리는 그런 생활을 계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서 너희 죄를 깨끗케 할수 없어서 해마다 그 제사를 드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화 되었다는 뜻입니다. 자기에게 문제가 있으면 그 예법에 따라 제사를 드리고 예법에 따라 사함을 받고 그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는 자기고,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그런 것입니다. 언제든지 그런 관계입니다. 항상 거리를 두고 유지하는 그런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자기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영원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종교를 없애려는 것입니다. 그 항상 일정한 거리를 두는 그것을 없앨려고 자기자신을 단번에 드림으로서 영원한 제사를 드려 다시는 염소나 피로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말을 듣느니라". 그러니까 우리가 만일 그것으로서의 하나님을 말한다면 사람들은 자기 생각속에 있기 때문에 자기 눈으로 볼수 있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얼른 믿게 되겠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우리의 말을 듣고 예수의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다시 말하면 우리의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느니라.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그러니까 어느 영이 진리의 영이고 어느 영이 미혹의 영인가 미혹의 영은 결국 '사람을 뺴버린 하나님'을 믿게 하는 영이 미혹의 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저절로 미혹돼 버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하면 아브라함이 있기때문에 미혹될수 없지만 아브라함을 빼버리고 나면 또 하나님이 미혹돼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영원히 선지자들을 만나지 못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벌써 종교화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선지자를 만날수 없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들은 선지자들을 더 학대하고 더 버렸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지자들이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들이 없어도 이미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지자들이 굳이 있을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가 자기땅에 왔지만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않았다. 예수가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하나님이 아니라도 그들은 광야에서 40년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는 우리에게 무슨 표적을 주겠느냐 그보다 더한 표적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따라 다니면서 얘기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실망했습니다. '너희가 이적을 본 때문이 아니고 먹고 배부른 까닭이구나 너희가 나를 찾아온 것은 이적을 본 까닭이 아니고 먹고 배부른 까닭이구나 진짜 이적이 여기 있는데 이적을 보지 못하고 먹고 배부른 것을 보았구나' 그래서 그후로는 다시 기적을 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만약 그런 하나님을 보여 주었으면 예수님은 없어도 상관없는 하나님이 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으면 사람들은 다시 미혹에 빠졌을 것입니다. 다시 사탄의 종이 돼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또다시 바울이 없어지고 베드로가 없어지고 요한이 없어진 후에 또 그런 상태로 넘어 온것입니다. 사람은 없어지고 하나님만 남습니다. 그리고 얼른 보면 그것이 완전한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이 없는 하나님이니까. 더 완전하고 흠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미혹케 해버린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바울도 인간적으로 보면 흠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하나님은 미혹될수 없습니다. 그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고 갔던 사람, 3년이나 따라 다니고도 또 다시 고기잡으러 가버린 사람 그사람의 하나님이고 그 사람의 주님이기 때문에 그 자리가 미혹될수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없앨려고 공문을 가지고 가던 사람, 예수를 이단으로 알고 예수를 박해하려고 가던 사람, 이 자리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의 하나님은 미혹이 될수 없습니다. 인간으로는 결함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성질이 급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아주 못된 사람이기도 합니다. 마가하고 분쟁이 일어나 데리고 가지 않고 "너하고 나하고 갈리자"하고 그래서 갈라선 사람입니다. 성격이 괴팍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부름받은 자리가 바울이 아니면 안되는 부름받은 자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하나님은 미혹될수가 없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이죠! 어떻게 보면 용기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허풍쟁이이기도 합니다. "죽을지라도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옥에도 같이가고 죽는데도 같이 가겠습니다." 해놓고 "나는 도무지 저 사람을 모른다." 라고 한사람입니다. 언제는 이랬다 언제는 저랬다 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지만 그가 그런 사람으로서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요동하지 않는다 말입니다. 하늘에 계신 신, 기적을 행하신 신, 절대능력을 가지고 있는 신은 우리에게서 늘 변할수 있지만 베드로를 구원하고 바울을 구원한 그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세상은 세상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을 듣는다는 말은 그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그 하나님의 말을 듣지마는 그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사람은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떻게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알수 있을 것인가 이것으로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계교를 모르기 때문에 종교는 끝없이 사탄의 일을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심지어는 예수의 이름으로 사탄의 일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선악과를 먹여 놓았습니다.
그래서 그 선악과가 아담의 생명이 돼있기 때문에 저절로 사탄의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해야되겠다. 그렇게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의도적으로 하는게 아니라 내가 저절로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거짓을 나의 생명으로 심어놨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때 내가 거짓말을 해야 되겠다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전혀 자기로 자연스럽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자기를 말하는데 거짓말이 나오니까 거짓말하기가 얼마나 쉽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거짓말을 억지로 하려면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거짓말도 머리가 좋아야 하지 머리가 나쁜 사람은 거짓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거짓말하면 금방 탄로나 버린다.
왜냐하면 앞뒤가 맞아야 하지 않습니까 말이 길어질수록 앞뒤가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근데 처음부터 끝까지 기억하고 있으려면 머리가 좋아야 기억하는 것입니다. 뒤로가면 그만 탄로가 나고 마는 것입니다. 머리가 나쁜 사람은 한두마디하면 탄로가 나버리고 머리가 좀 좋은 사람은 여러마디 할때까지 모르고 그렇게 됩니다. 그러니까 참말하기보다 거짓말하기가 더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자신이 거짓이라면 거짓말하기가 쉬운 것이죠. 사람에게 선악과를 먹여 놓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저절로 사탄의 일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경향이 그쪽으로 흐르도록 되어 있기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어도 사람속에 들어와서는 어느 사이엔가 또 변해버리고 어느 사이엔가 변해버립니다. 이스라엘속에 온 하나님의 은혜가 어느 시간엔가 언제 그리된지도 모르게 변해 버립니다. 그 사람을 알면 그 사람의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 사람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그사람을 구원하신 하나님이란 말이니까 그 하나님은 그사람으로 말미암아 보존되게 됩니다. 예수는 베드로로 말미암아 보존되었습니다. 바울로 말미암아 보존된것입니다. 만일 베드로가 없었고 바울이 없었고 요한이 없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요.그러면 예수는 뭐가 되버리고 마는 것인가 그는 또 하나의 신이 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가 예수로 보존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로 보존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로 보존되려면 사람안에서만 보존될수 있습니다. 생명은 생명안에서만 보존됩니다. 생명밖에서는 보존이 되지 않습니다. 로얄젤리를 보존하려면 꿀속에서만 보존됩니다. 바깥에서는 보존이 잘 안된다는 말입니다. 썩어버리고 만다는 말입니다. 예수가 보존되려면 생명안에서만 보존됩니다. 그가 생명이시기 때문에 그 생명안에서만 보존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증인을 찾았던 것입니다. 자기가 세상에서 보존될수 있는 유일한 길은 여호와께서 성전안에서만 보존된 것같이 예수께서는 자기 제자들안에서 보존되었습니다.
어떤 교회안에서 보존된 것이 아닙니다. 교리안에서 보존되려면 제자들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그 속썩여주는 사람들이 무엇땜에 필요하겠습니까 그 헷갈리든 사람들이 무엇때문에 필요 하겠느냐 말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 길에도 뒤에 따라 오면서 누가 크냐 니가 크냐 내가 크냐 하던 사람들이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향해가고 있을때 그 속도 모르고 당신이 임금이 되면 아들 하나는 우편에 앉게 해주시고 하나는 좌편에 앉게해 주십시요 세베데의 어머니는 그렇게 얘기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답답한 사람들이 왜 필요하냐는 것입니다. 교리로 보존할수 있을 것 같으면 교리만 잘 만들어 가지고 교리를 가르쳐주고 가면 되는 것이지 뭣 땜에 그런 사람들하고 속썩이는 생활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자기자신을 보존할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람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하나님으로서 그런 사람들의 주님으로서 보존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의 주님은 변치 아니합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그런 사람의 주님으로서는 변질이 되어 버리지만 없으면 안될 사람들의 주님으로서는 변질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에게 보존된 예수는 변질이 불가능 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구원의 자리가 너무 확실하니까 베드로에게 보존된 예수는 영원히 변질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구원의 자리가 너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왜 야곱을 꼭 그런 자리에서 불렀으며 하나님이 왜 야곱을 꼭 그런 자리에서 쓰셨는가 하나님 자신을 보존하려면 꼭 그자리가 아니면 안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왜 그렇게 하였는가 아브라함의 하나님으로 보존되기 위해서 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을 알때 아버지로 알려면 아브라함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알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버지의 형상이었습니다. 이삭에게 있어 아브라함은 아버지의 형상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버지라면 아브라함을 빼놓고는 하나님이 자기 아버지인지 아닌지 알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일생동안 뭐가 되었는가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사실을 보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안에서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삭은 누군가 하나님은 이삭안에서 영원한 아들로 보존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꼭 그 사람이 아니면 아들로 보존되지 않습니다. 예수안에서 하나님은 영원한 사람으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적그리스도는 어떻게 해야만 적그리스도의 일이 되겠습니까 바로 이것을 빼버려야만 자기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일입니다. 이것은 아주 깊은 비밀입니다. 이것은 세계 모든 종교속에 깊이 박혀있는 것인데 이것은 깊은 비밀입니다. 이걸 모르면 항상 자기는 하나님의 일을 하지마는 그러나 사탄의 일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선교사업도 할수 있고 예배당도 지을수 있고 많은 사람을 구원할 수도 있고 다할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원한 목표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탄은 얼마나 교묘하게 자기의 일을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못믿게 하면 안되니까 믿게 하되, 한편으로 자기의 일을 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공산당이 자기정권을 다른나라에 침투시킬때도 마찬가지 방법을 씁니다. 처음부터 '우리가 공산당이다'라고 하면 아무도 공산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민주화해야 한다.우리는 민족주의를 해야한다." 이렇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민족주의를 하기 위해서 " 라고 외치고 일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공산주의가 되는 것입니다. 박헌영은 민족주의자로서 공산당입니다. 독립운동을 하기위해 공산당을 했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공산당하자'라고 하면 잘하지 않습니다. 사탄도 와서 처음부터 사탄을 섬겨라 하면 누가 섬기겠습니까 '너는 하나님을 섬겨라' 그럽니다. 여호와를 섬겨라 더욱 열심으로 섬겨라, 더욱 잘해라 라고 시킵니다.바로 그것입니다. 그때 그는 그 생명을 잡는 것입니다. 자기에게로 흘러 들어 올수 있는 생명을 이미 확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안심하고 하나님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의 함정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영이 누구냐 거짓말하는 영이 누구냐 그것은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것을 부인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세때부터 사탄이 하던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미혹케 하는자를 잡기위해 아담을 지었습니다. 사람을 지었다는 뜻입니다. 사람을 통해서 보존되고 사람을 통해서 증거되는 그 하나님으로서 있게 하기위해서 그래서 아담을 지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오신것은 사탄의 일을 멸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없이 하시려고 오시고 사탄의 일을 멸하시려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일이 딱 끊어져 버리고 나면 사람은 영원히 죄인으로서 백날 죄를 고백해도 여전히 죄인으로 그냥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사탄아 물러가라, 물러가라" 소리를 쳐도 사탄은 여전히 자기 자리를 확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아 물러가라"하고 소리치는데가 많습니다. 그것은 귀신 물러가라는 뜻입니다. 그건 무당들도 할수 있는 일입니다. 무당들도 귀신 쫓는 일을 합니다. 실제로 그것이 심리적인 요법이 되어 귀신이 나가는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무엇으로 알것인가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엇으로 알것인가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통해서만 하나님이 영원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알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왜 사람을 창조했는가 알수 있고 하나님이 왜 사람을 찾고 있는가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영원한 나라에서 누구와 같이 살것인가를 알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인격속에 박혀있습니다. 그인격은 그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조성된 자리이기 때문에 그 인격안에 하나님은 박혀 있습니다. 한 생명으로서 박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뺄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가 아들 하나를 얻으면서도 그 아들 하나를 얻는 과정안에 그 하나님이 박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기적으로 박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신비로 박혀 있는 것도 아니고 인격으로 박혀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여호와 사이에 인격과 인격의 만남으로서 그렇게 박혀 있습니다. 거기서 그는 다른 사람으로 변해 가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해가는 그사람의 하나님, 그러니까 아브라함 자신으로 증거되는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을 빼놓고는 증거할수 없는 , 자기를 뺴 놓고는 증거가 안되는 하나님, 아브라함은 다른 하나님을 모릅니다. 자기를 빼놓고는 알수 없는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의 하나님은 자기를 뺴놓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자기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그냥있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존재자라는 것입니다. 그냥 순전히 존재하는자 그러니까 나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지요. 내 인격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있는 자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물으면 자기자신을 뺴놓고는 전혀 말할수 없는 하나님입니다. 자기자신이라고 하는 자신이 지금 형성되어 있는 자기자신이 곧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자신이기 때문에 자기를 빼놓고는 하나님을 말할수 없습니다. 야곱도 마찬가지 입니다. 야곱의 인격속에는 그 하나님이 박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자신을 빼놓고는 그 하나님이 누군지 알수 없습니다. 그것이 적든지 크든지 그것이 어떤 모양이든지간에 자기로 밖에는 말할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와 그 하나님과의 관계였기 때문에 그러니까 여기서 하나님이 온전하게 보존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만일 그 하나님이 부족하다면 이삭이 있고 이삭에까지 부족하다면 야곱이 있고 그래서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자기자신을 완전하게 보존했던 것입니다. 그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부분적으로 보존되었던 하나님이 이 마지막 날에 예수로 말미암아 완전하게 보존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게 하는 영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고 세상을 미혹케 하는 영입니다.
처음부터 거짓말하던 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사람과 하나님을 영원히 이간시켜서 영원히 갈라서 서로 없어도 되는 존재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서로 거리를 가지고 제사만 지내면 되는 그런 존재가 되게 하려고 했습니다.향불을 피우면 향이 올라가고 왔다갔다 영원히 편지만 왔다갔다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둘이 서로 만나지는 못하게 하고 견우와 직녀가 서로 만나지 못하게 된것처럼 영원히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하나가 되지 못하도록 그렇게 만들어 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영이고 사탄의 계교입니다. 그리고 이사탄의 계교가 어디에서 가장 확실하게 작용하고 있느냐 하면 종교안에서 작용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종교는 이름은 있지만 실상은 없는 그런 것입니다. 사이비라는 것은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같은 것 같은데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얼마나 여호와를 섬기고 있습니까 얼마나 여호와의 이름을 신실하게 부르고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의 보내신 자를 만나면 모르니 이것이 바로 사이비입니다. 분명히 부내신 이를 믿었다면 보내신 자를 보고 알았을 것인데 보내신 이를 믿는다고는 하는데 보냄을 받은 자를 보면 모른다는 것입니다. 주인은 안다하면서 종은 모른다 이렇게 돼 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안다 하면서 사람은 모른다'라고 하는 모양이 되어버렸고 '아버지는 안다하면서 아들은 모른다'하는 결과를 가져와 버렸으니까 이것이 비슷하면서도 아닌 그런 결과를 가져와 버렸습니다. 비슷하면서도 아니어야만 속는거지 전혀 다르면 속지 않습니다. 나무와 돌멩이를 갖다놓고 속일수는 없습니다. 비슷한것 미나리와 미나리아재비라는 것 그런 것들이 있잖아요 미나리와 비슷해서 서투른 사람은 잘 모르는 것이죠. 독버섯과 식용 버섯은 똑같이 버섯으로 생겼으니까 잘 모르는 거지 하나는 나무로 생기고 하나는 버섯으로 생기면 누가 그것을 따먹겠습니까 비슷하게 생겼으니까 먹는 거죠. 似而非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같은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이라는 것입니다. 종교는 바로 사이비가 돼버립니다. 흘러가다보면 似而非가 되어 버립니다. 비슷하지만 아닌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천주교에 가보면 초대교회의 형상과 비슷한 것이 많습니다. 비슷한데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주 엇비슷한데 아닙니다. 이상한것이죠. 그들은 신부가 중보자가 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중보자된것과 똑같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는 제도적으로 만들어진 중보자이고 하나는 생명으로 나타난 중보자입니다. 하나는 진실이고 하나는 거짓이고 그렇습니다. 하나는 생명에서 나오고 하나는 생명 아닌데서 나왔으니까 아주 비슷한데 아닙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쩔수 없이 다시 구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제도와 모든 일을 보면 구약과 똑같은 일을 다시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있었던 일과 지금 천주교에 있는 일은 똑 같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종교들은 다 그렇게 돌아갑니다. 신교도 마찬가지로 그런 방법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안돌아갈래야 안돌아갈 방법이 없습니다. 사탄이 계속 미혹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게 만들기 때문에 미혹이 되어 버려 결국은 도로 원점으로 돌아가고 또 도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율법밖에 없지 않습니까 눈에 확실히 볼수있는 것은 율법밖에 없습니다.그래서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는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느니라." 이 말은 예수께 속한 자는 예수의 말을 듣고 예수께 속하지 않는자는 예수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면 되겠지요.
그런데 이것도 또 종교가 있기 때문에 누가 예수께 속한자냐 예수께 다 속하지 않았느냐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이래서 또 미혹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게 하는 것이 미혹케 하는 영입니다. 아주 교묘한 방법인 것입니다. 이 방법은 영원한 생명안에서 밖에는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왜 인봉한 책을 뗄자가 없었을까 왜 하늘 위에나 땅위에나 땅아래에 인봉된 책을 뗄자가 없었을까 그건 이 이유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린양이 인봉한 책을 떼실 것이다. 어린 양만이 이 인봉한 책을 뗄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비밀인 것입니다. 숨겨지지 않는 비밀인 것입니다. 다 알려져 있지만 사람이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미혹을 받고 있기 때문에 숨겨져 있는 비밀입니다. 그래서 어린 양밖에는 열수가 없고 십자가로 밖에는 열려지지 아니합니다. 그걸로 밖에는 풀어지지 아니하는 그런 비밀인 것입니다.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서 아니니라. 사람들이 미혹을 받고 있는 것을 우리는 눈으로 그냥 볼수가 있습니다.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서 아느니라" 꼭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에 가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똑같은 현상을 볼수가 있습니다. 바알인지 여호와인지 잘모르는 그 모습을 볼수가 있습니다. 어떤 하나님인지 모르는 그런 모습을 볼수가 있습니다. 너의 하나님이 누구냐 그렇게 묻는다면 그들은 영낙없이 그렇게 대답합니다. 가나안 사람이 대답한대로 대답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대답한대로 그렇게 대답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그렇게 대답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미혹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사탄의 일을 멸하려고 오셨습니다. 육체로 오신 이유는 사탄의 일을 멸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육체로 오신 것을 우리가 굳게 잡지 아니하면 우리는 미혹케하는 영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메주를 쓰고 간장을 담그려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너무 짜면 맛이 없고 너무 싱거우면 구더기가 나고 그래서 참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죠.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간장 담그기가 참 어렵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시어머니 밑에서 배워가지고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또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전수해 주었습니다. 손맛으로 입맛으로 전수해 주었던 것인데 요즈음엔 그렇게 안되기 때문에 상당히 어려운 것이 되었습니다. 가장 쉬운 것 같지만 김치 담그기가 제일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적당한 간을 쳐야되고 적당한 온도를 맞추어야 되고 글이나 말로 어떻게 표현하기 어려운 적당한 자리에서 발효가 되기 때문에 음식을 잘하는 사람은 김치를 잘 담그는 사람입니다. 김치 못담그는 사람은 음식을 잘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구더기가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꼭 간장을 담궈야 되는가 화학 약품을 타고 카라멜 액을 좀 넣고 소금을 좀 넣고 미원 좀 넣고 간장맛을 내면 얼마든지 만들수 있는데 왜 구더기 쓸줄 알면서도 간장을 담그는가 그것은 우리가 생명을 먹으려하니까 간장을 꼭 담글 필요가 생긴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가 있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거짓선지자가 나올줄 알면서도 왜 선지자를 통해서 자기일을 하려고 하는 것인가 거짓 선지자고 참 선지자고 다 없애 버리고 하나님이 직접하시면 거짓될 것도 참될것도없고 완전 무결할 것인데 왜 꼭 선지자를 보내어 거짓 선지자도 나오고 참 선지자도 나오게 하는 것인가 이것이 생명의 비밀입니다. 생명이 아니면 이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간장은 구더기가 쓸지도 않고 그리고 너무 짜지도 않고 가장 적당한 간에 적당하게 발효되어서 그안에 먹을수 있는 세균만 잘 번식하도록 만들어진 된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이 가장 알맞는 상태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가장 완전하게 보존해야 하는 것입니다. 돌로 지은 집에 보존하는 것은 완전하지가 않습니다. 율법이나 교리속에 보존하는 것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자신을 사람속에 보존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장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면서도 꼭 그것이필요한 것입니다. 교리속에 보존하면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생명이 없습니다. 율법속에 보존하면 위험은 없지요 틀에 박아놓은 것이니까. 활자에 박아 놓은 것이니까 위험은 없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얼마나 거기서 제한이 되어 버리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거기서 제한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돌로 지은 집-성전에 제한되어 버린 것처럼 율법안에서도 하나님은 제한되어버리고 맙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그날은 일하지 말아라 해놓고 나면 그날 사람이 죽어가도 살릴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그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자신을 율법안에서 보존하시기가 어렵습니다. 사람안에서만 인자안에서만 하나님은 완전하게 보존될수가 있습니다. 생명안에서만 완전하게 보존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 위험한 도박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가장 완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이것을 꺼려 하면 죽은 것 밖에 찾지 못합니다. 구더기 싫으면 아예 장을 못먹는 것입니다. 진짜 간장은 아주 못먹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영 화학약품만 먹고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도 죽는 것입니다. 화학약품만 계속 먹으면 틀림없이 죽습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틀림없이 죽을 것입니다. 생명은 생명을 먹어야 삽니다. 우리 몸안에는 많은 균이 있어 그균들이 우리를 돕고 있습니다. 그 균들이 아니면 우리가 음식을 먹는다 하더라도 우리몸에 알맞는 영양분으로 흡수되지 못합니다. 그 균들로 말미암아 가장 알맞는 것으로 가장 친근한 것으로 변해서 그렇게 들 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관문에서 어떤 생물들이 우리몸에 가장 알맞고 가깝게 분해시켜 몸속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꺼려 한다면 뱃속을 완전히 소독약으로 청소해 버리고 그렇게 살아야 되는데 그렇게 되면 졀국 죽습니다. 아무리 좋은 링겔주사라 해도 그것만 맞고 사람이 살수가 없습니다. 생명을 통해 들어온 것을 먹지 않고는 사람이 살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위험하지만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주기까지 생명을 주기까지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자기 생명을 주기까지 안하면 사람이 잘못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간장담그는 일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죠. 그건 자기가 죽지 않아도 되는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를 찾는 것은 자기가 죽지 않으면 못 찾기때문입니다. 그렇게 그는 심각한 것입니다. 사탄은 어찌하든지 이것을 방해하려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교묘하게 이것을 방해해서 죽은 교리만, 죽은 제도만, 죽은 형식만 남게 만들어 버리면 됩니다. 그러면 겉으로는 여전히 그냥 그대로 있고 속 알맹이만 없는 것입니다. 엘리 선지자가 섬기고 있던 성전은 법궤가 없던 성전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외모는 성전입니다. 그래서 밖에 와서 계속해서 사람들은 제사를 드리고 가는 것입니다. 법궤가 없습니다. 주인 없는 집에 와서 선물을 놓고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밖에서 보면 모르니까요. 블레셋 사람들에게 법궤를 뺏겨버리고 없습니다. 그후로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성전은 그냥 그대로 있다는 것입니다. 엘리 선지자는그 성전을 지키고 거기서 제사를 받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의자에 앉있다가 자기 아들이 전사했다는 말을 듣고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법궤없는 성전의 제사장, 생명없는 성전의 제사상이라는 말입니다. 성전없는 성전의 제사장도 역시 생명없는 사람이 아니겠어요 그렇게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자신을 가장 완전하게보존하는 방법으로서 사람을 택하게 되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자신을 완전하게 보존하고 증거하는 방법으로서 베드로를 택하고 바울을 택하고 요한을 택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기한 지혜입니다. 사탄은 할수 없는 그러한 지혜입니다. 모방할수도 없고 따라 올수도 없고 흉내낼수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결국 사탄이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놓으면 다음에 가서는 사탄하고 분열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사탄은 아무리 자기 사람을 만들고 싶어도 마지막에가면 다시 분열되어 버리기 때문에 자기 사람을 만들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그렇게 하실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자기가 죽어서 생명을 주기 때문에 사탄은 자기가 죽어서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안되는 것입니다. 재주는 많지만 자기 생명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할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원래 자기가 죽으려고 했던 자가 아니고 살려고 했던 자이기 때문에 자기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에게서 나온 것은 교리밖에 나오지 못합니다. 제도와 형식밖에 만들어 줄수가 없습니다. 교리와 제도와 형식을 완벽하게 만들어 놓음으로서 자기의 성을 지키려고 생각하는 것이고 사람들을 그 성안에 미혹시키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몸으로 지은 성전, 사람으로 지은 성전안에 천하 만민을 부르게 된것입니다. 어린 양의 몸으로 지어진 성전안에 천하만민을 부르게 될것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것이고 변치않는 것이며 안전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아버지가 되셨던분 이삭을 통해서 아들이 되셨습니다. 야곱을 통해서 그는 종이 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완전하신 분이신 것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형제가 될수 있습니다. 우리가 형제가 되고 싶어 되는 것이 아니고 그가 우리에게 자기의 생명을 주기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탄은 이일을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부하를 가지고 있지만 형제를 만들수 없습니다. 부하들끼리 서로 싸우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도둑질하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합심하여 도둑질하지요. 혼자하면 어려우니까 혼자는 못하겠으니까 하나는 사다리 잡아주어야 되고 하나는 올라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둘이 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둘이해서 돈을 훔치고 나면 마음이 딱 달라집니다. '아! 저놈이 아니었으면 나혼자 가질텐데.' 그래 가지고 이제는 둘이 서로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근데 갖다놓고 돈을 보니까 어쩐지 모자란다 말입니다. 한놈이 하는 말이 우리중에도 도둑놈이 있는가 우리중에서도 거짓말하는 놈이 있는가 둘이 서로 자기만 진실하다고 한단 말입니다. 어느놈인가 분명히 훔쳤는데 근데 사실은 알고보면 두놈다 훔쳤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사탄은 결코 형제를 만들지 못합니다. 자기의 졸개를 만들겠지만 자기 형제를 만들지 못합니. 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율법을 강요하기가 쉬운가 율법을 강요하면 자기가 편합니다. 군대에 가보면 전부가 율법입니다. 왜 군대는 전부가 율법인가 상관이 편할려고 그렇습니다. 말을 안듣는 놈을 말을 듣게 하는데 만일 그것을 생명으로 듣게 할려면 자기가 죽어야 할것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상관이 될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상관이 되려면 율법을 주어야 합니다. 율법을 주면 편합니다. 나는 편하고 받는 사람은 괴로운 겁니다. 그래서 군대가 괴롭다는 겁니다. 사랑이 없으면 율법이 되버립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귀찮단 말입니다. 율법을 줘버리면 율법을 말미암아 저희가 스스로 알아서 할것이니까 잘못하면 심판받고 잘하면 칭찬받고 "너하고 나하고 상관없으니까 잘해라. 그러면 상주고 못하면 너는 벌받아!" 이래 버리면 간단하단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율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는 자식을 버릴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율법을 줄수가 없단 말입니다. 망하려면 망해라 이럴수 있었으면 괜찮겠는데 다섯 아들이 있는데 네 아들이 다 좋드래도 한 아들이 예를 들어 멸망돼 버린다면 부모로서는 다섯아들 잃은 거나 마찬가지란 말입니다. 그래서 할수 없이 이 아들에게 율법을 줄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생명으로 시작해서 생명으로 마치려고 하는 것인가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교리라는 것은 쉬운 것입니다. 내가 교리를 가르칠려면 나 자신의 생활과 교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냥 교리만 옳으면 되지 않습니까 이단이라는 말을 듣지 않을수 있는 교리만 있으면 되지 않습니까 아주 쉬운 것입니다. 어려운 것이 전혀 아닙니다. 성경을 연구하면 교리는 명백한 것입니다. 그것만 가지면 나하고는 전혀 관계가 안되지요. 나는 전혀 침해를 받지 않습니다. 전혀 손해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리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왜 더 교리주의자가 되려고 할까 더 교리를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왜 사람들을 교리로 무장시켜야 할까 교리로 무장시키면 자기가 편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교회가는 사람들이 교리만 계속 배운다면 학교 선생님한테 글배우는 것과 꼭 같습니다. 그러니까 전혀 상관이 없는것 아니겠습니까 글만 잘 배우면 되는 것이니까 선생님이 술을 먹든지 무얼 하든지 간에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자기한테 영어만 잘 가르쳐 주면 되는 것이고 수학만 똑바로 가르쳐 주어서 서울대 들어갈수 있도록만 해주면 되는 거지 그사람이 착한 사람이면 무얼하고 악한 사람이면 무얼하겠느냐 말입니다. 아무 소용없잖아요 학교 선생하기 보다 학원강사 하기가 더 쉬운 이유가 그것입니다. 학원강사라는 것은 단순히 전달하면 되는 것이니까 학교선생은 그보다는 조금 어렵지요.
왜냐하면 학생들을 자기가 통솔해야 되기 때문에 자기를 완전히 빼놓고 통솔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학원강사보다는 학교선생 하기가 조금 더 어렵습니다. 선생하기 보다는 부모노릇하기가 조금더 어렵습니다. 부모노릇하기 보다는 하나님노릇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왜 교리로 흐르는가 그것은 지도자가 자기편하려고 하기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편합니다. 여기서 열가지 조항이든지 백가지 조항을 놔두고 그것만 믿으면 된다고 가르치면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이대로만하면 된다. 나도 이대로 하고 당신도 이대로 하고 하나님앞에 심판은 그때 받을꺼니까 그리하면 아주 쉬운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적그리스도는 어디서 나왔는가 사탄은 어디서 나왔는가 사랑이 없는데서 나왔지요 생명이 없는데서 나왔습니다.
남의 자식이니까 율법으로 하지요 자기 자식같으면 율법으로 할수 없잖아요. '너 이것 안하면 죽어' 해놓고도 다음날 가서 죽일수 없단 말입니다. 너 내말 안들으면 내일 너 족보에서 빼버린다. 그래 놓고도 뺄수 없단 말입니다. 남의 자식같으면 말안들으면 제해 버리면 그만인데 자기 자식인데 제할수 없잖습니까 그래서 아버지는 늘 아들에 대해서는 늘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는 사람이되고 아버지는 아들에 대해서 항상 무능한 사람이 될수가 있고 아버지는 아들에 대해서 항상 법을 어기는 사람이 될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아들을 살려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율법의 세계, 그것은 남과 남의 세계이며 교리의 세계 그것은 남과 남의 세계입니다. 그러면 서로가 서로의 침해를 받지 않습니다. 교회가 다섯명이 되었는지 천명이 되었는지 예배를 드리면 각자 자기 교리대로 자기가 예배를 드리면 되는 거니까 누구하고도 관계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저 사람하고 나하고 관계가 될 필요가 없으니까 조용히 엄숙한 자리에 가서 자기혼자 미사를 드리고 오면 되지 않습니까 그것이 제일 편한 방법이고 교회에 가면 조금 불편합니다. 일반 기독교에 가면 조금 불편합니다. 천주교에 가면 아주 편합니다.
왜냐하면 그냥 자기만 가서 미사를 드리고 오면 되는 거니까. 남하고 전혀 관계없이 할수 있단 말입니다. 근데 교회에 가면 그래도 늘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서로 사생활도 알게 되고 무슨 연관도 있게 되고 약간자기 침해를 받게 됩니다. 근데 그리스도의 몸안에서는 자기가 전폭적으로 침해받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더욱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러지 않고는 하나가 되지 않으니까 그러지 않고는 생명의 교류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습니다. 사탄은 자기가 좋아서 사탄됐겠습니까 단지 하나되기 싫어 사탄이 된 것입니다. 자기 생명을 주기 싫어서 그래서 사탄이 된 것입니다. 율법주의자는 율법주의자가 되고 싶었겠습니까 자기가 침해받지 않으려니까 율법주의자가 된것입니다. 교리주의자는 교리주의자가 되고 싶었겠습니까 자기가 편해지려고 하니 교리주의자가 된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우리를 살리려고 하니까 그래서 교리주의자가 될수도 없고 율법주의자가 될수도 없고 그래서 그는 우리의 주님이 될수 밖에 없게 된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될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오신 것은 바로 그 사탄의 일을 멸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교리주의를 멸하려고 율법주의를 멸하려고 형식주의를 멸하려고 어떤 것하나 만들어 놓고 여기절해라 그러면 쉽지 않습니까 나한테 올것까지도 없고 여기 상을 하나 만들어 놓았으니까 여기와서 기도나 하고 가거라 그러면 더 쉽습니다. 절에 중노릇하기는 더 쉽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만 하나 만들어 놓고 여기와서 공들이고 가라하면 되는 겁니다. 자기하고 전혀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니 더 쉽지요. 알고보면 신부노릇하기보다 더 쉽습니다. 내가 절에서 일년을 살아밨어요. 중노릇하기는 아주 쉽습니다. 새벽에 좀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좀
그런데 일찍 일어나는 것도 거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없는데 혼자 사니까 일찍 자지 않습니까 일찍 일어날수 있어요. 3시에 일어납니다. 그래서 종치고 염불하고 그러면 됩니다. 그러니까 왜 부처님 만들어놓고 여기다 절을 천번해라 오백번해라 그렇게 했겠습니까 그게 자기한테 쉽지 않습니까 천번하면 천번한 사람 허리는 부러지게 되지만 자기야 간단하단 말입니다. 아주 쉬워요. 그래서 날마다 보던 일이지만 하루는 염불하는데 옆에서 가만히 지켜봤습니다. 어떤 부인이 와서 밥을 해놓고 옆에서 계속 큰절을 하고 스님은 목탁을 두드리고 염불을 합니다. 근데 그 염불하는소리가 무슨 소린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범어로 하기 때문에 옆에서 듣는 사람은 무슨 소리인지 모릅니다. 그래 그 스님보고 내가 그랬어요. "기도를 하는데 옆에 사람이 무슨 기도하는지 알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물으니까 그 스님이 피식 웃으면서 하는 말이 '이건 우리 일년 농사라네'
왜냐하면 정월달이 돌아오면 아낙네들이 전부 봇짐을 싸들고 산에 올라옵니다. 산에 올라와 불공를 드리고 갑니다. 그해 운수가 대통하게 해달라고 빌고 갑니다. 그래 이스님은 참선하는 스님이니까 어느정도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것은 우리 농사니까 또 사람들이 와서 자기들 맘을 바치고 가는 것이 그 사람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염불을 해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염불하다가 글자가 틀려도 상관없는거죠 이사람이 알아듣든지 못알아듣든지 관계가 안되요. 내가 못알아듣는 기도를 하면 무슨말하는지 알겠느냐 하니까 그건 우리 일년농사라는 겁니다. 그 양반은 그래도 솔직하게 대답한 것 아닙니까 참선하는 중이니까 그렇게 대답하지 염불하는 중같으면 뭐그래도 변명하고 그럴건데 이 사람은 그래도 부처로 가는 길은 그게 아니라는 것은 알거든요. 밥해놓고 절하고 그런다고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단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물으니까 할수 없이 그렇게 대답을 했어요. 그러니까 이건 쉽지요. 범어로 하는데 남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 아닙니까 우리는 영어를 못알아 듣는데 누가와서 영어로 맘대로 말해도 상관없지 않습니까 맞은지 틀린지 모르니까 세상에 속임수가 왜 생겼는가 알수 있지 않습니까 속이는 자가 왜 생기고 거짓말하는자가 왜 생겼는가 모르니까 생기지 않습니까
자! 생명이 없으면 거짓말이 생겨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생명이 아니면 우리는 그 거짓말에 속아 버립니다. 그러니까 거짓말에 속고 싶은 사람도 없고 자기가 거짓말장이가 되고 싶어된 사람도 없습니다. 자기가 편하려 하다보니까 율법주의자가 되고 자기가 희생되려고 하지 않으니까 교리주의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탄도 원래는 천사였는데 왜 사탄이 되었는가 그것은 자기를 휘생하지 않으려고 하다보니깐 그래서 사탄이 돼어비리고 만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너무 편하게 하려다보면 거짓말쟁이가 되고 맙니다. 너무 편하게 너무편하게 그렇게 하려고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만 사탄에 동조해 버리고 맙니다. 자기만 편하려고 생각하다 보면 속아넘어가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남을 살리면 나도 살고 남도 살지만 내만 살자라고 하다보면 다음에 가서 거짓말쟁이가 되기 쉽습니다. 아버지가 자기 편하려고 하다보면 자식을 율법으로 다스리게 됩니다. 남편이 자기가 편하려고 하면 아내를 율법으로 다스리게 됩니다. 그러면 쉬우니까. 그렇게 하면 율법이 율법을낳고 율법이 또 율법을 낳아 결국 사망에서 사망으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사망은 사망을 낳고 그래서 위에서 그렇게 하면 아래서도 계속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상병이일병에게 그러면 일병은 이병에게 그렇게 하고 그래서 쫄병이 괴로운 것이 군대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서는 서로 높이 올라가려고 하지요. 어떻게 하면 하나 더 달까 그것만 꿈꾸고 있습니다. 하나만 더달면 그때부턴 그만큼 편해질뿐 아니라 자기도 그만큼 또 부려먹을 수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높아지려 합니다. 자 우리 사회가 서로 높아지려 합니다. 서로 대통령만 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사회자체가 율법주의적인 사회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높은 사람은 편하고 낮은 사람은 괴로운 겁니다. 이조 500년 역사동안에 유교문명이 들어와서 그위에는 편하고 밑에는 괴로운 그런 사상이 도입 됐습니다. 그러니까 높이 올라가면 편하고 낮게 내려가면 괴로운 겁니다. 공무원들은 윗사람은 하루종일 가만 앉아 있어요. 창구에 있는 사람들은 손이 닳아지도 록 하루종일 일을 해요. 그러니 창구에 있는 사람은 언제 나도 저기 올라갈꼬 밤낮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겠어요 자기 하는 일에 소신이 생기기는 커녕 언제 올라가서 나도 저렇게 버티고 앉아 편해볼꼬 생각만 한단 말입니다.
이 사회가 그러니까 안될수 밖에 없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회가 서로 높아지려고만 생각한단 말입니다. 자기 할일이 따로 없고 높아지는게 일입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집안에서도 높은 사람은 제일 편하고 낮은 사람은 제일 괴롭고 며느리는 들어가면 그 집안에서 제일 괴로운 사람이 됩니다. 그러니까 며느리는 내가 언제 시어머니가 될꼬 그러니까 사망은 사망을낳고 사망은 또 사망을 계속 낳게 됩니다. 어느 지휘관이 이런 방법을 썼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등병이 들어오면 무조건 쉬게 하고 제대얼마 안남은 사람들이 일을해라 계급이 높은 사람이 일을 하고 계급이 낮은 사람은 쉬게 하는 그런 정책을 썼다고 해요. 그렇게 하면 그곳에서는 생명에서 생명으로 사랑에서 사랑으로 가겠지요. 사실은 알고보면 그렇게 할때 일이 더 잘됩니다.
왜냐하면 초년병은 일에 대해 잘모르니까 견학을 좀 충분히 해야 눈에 익어 두렵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게 일을 할 것이 아닙니까 근데 아예 처음 들어온 쫄병을 뻉뺑이 돌리면 정신이 없어가지고 실수만 계속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제대할때가 다된 고참은 일에 대해 환하니까 일하는데 여유가 있고 천천히 해도 잘할수 있단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좀 여유가 생기는 그런 사회가 되겠지요. 근데 그렇게 되면 우리는 너무나 억압을 받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기어올라가 버릴 겁니다.
만일 군대에서 그렇게 하면 상관을 그만 깔고 뭉게 버릴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못하죠. 그래서 계속 악순환이 연속되는 겁니다. 안할수도 없고 할수도 없게 돼 버립니다. 구타 금지해라 명령을 내려 놓으면 한두달은 구타가 없다가 또 구타가 생기고 또 구타가 생기고 구타를 안하면 안되니까 말을 안들어 먹으니까 그래서 사망에서 사망으로 게속 흘러가는 사회가 이 사회가 된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자신을 우리에게 주심으로서 우리를 증인으로 삼고 자기를 우리안에서 보존하시려고 하시기 때문에 그의 사랑안에서 우리는 사랑에서 사랑에 이르고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러갑니다. 그러나 사탄의 세계는 자기가 편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망에서 사망을 주게 됩니다. 계속 내려 갈수록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분열에 이르게 됩니다. 처음에는 쉬운 것 같은데 뒤로 가보면 더 안되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는 처음에는 참 어려운 것 같은데 가면 갈수록 더 잘되게 됩니다. 한알의 밀이 땅속에 떨어져 죽으면 30배 60배 100배가 되기가 아주 쉽지만 밀하나가 그냥 그대로 있으면서 밀을 만들어 내려고 하면 그것은 참 쉬운 것 같지만 어려운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참 지혜로우시고 그가 지혜로운 이유는 그가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영이니 너희는 이것으로서 미혹의 영과 진리의 영을 구별할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많이 적그리스도가 일어 났으니 세상에 많이 나타났으니까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는것이니 곧 적 그리스도의 영이라. 오리라 한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안에 계신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시니라.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말을 듣니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말을 듣지 아니하느니라.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서 우리가 아느니라. 잘되는 집,못되는 집 보면 금방 알수 있습니다. 잘되어가는 곳 못되어가는곳 보면 금방 알수 있습니다. 장래성이 있는 곳, 없는 곳 금방알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평화가 평화를 주고 평화가 평화를 주면 잘되는 것이고 사망이 사망을 주고 사망이 사망을 주면 잘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직 희망이 있는 것은 그래도 아직 가정이라는 것이 있어 부모의 사랑이 자녀에게 흐르고 있기 때문에 위에서 흐르는 것이 있으니까 남아도는 것이 있으니까 그래서 사는 것이지 만일 부모마저도 강퍅해져 버리면 이사회는 완전히 매말라 버리게 될 것입니다. 어머니로부터 젖이 나오지 않으면 어린 아이는 마를수 밖에 없는 것처럼 그러나 다행이도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안에서 어머니는 애기를 낳으면 저절로 젖이 나오도록 그렇게 만들어 놨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흘러서 괴롭기 때문에 애기에게 주지 않을수 없는 어머니의 젖이 있기때문에 그래서 아직도 사람들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똑똑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위에서 흘러오기 때문에 흘러오는 은혜가 있기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살수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이 곧 적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입니다. 이말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아닌 다른 하나님을 믿는 것이 적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대로 '옥황상제다 하늘에 있는 어떤 상제다'하는 절대 권능자로서의 그런 하나님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하나님, 그 하나님이 아닌 다른 하나님을 믿는 것이 적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미혹케하는 영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왜 혼란되어 있느나 종교가 왜 혼란되어 있느냐 그것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래서 혼란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존재 무소부재한 존재 전지 전능한 신은 믿으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모르기 때문에 미혹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미혹을 받지 않지만 전능하고 무소부재하고 못할 것이 없고 절대적인 즉 '그것' 으로서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 사람을 미혹케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는 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인 것입니다. 즉 예수의 하나님을 시인하지 않는 것이 적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이죠.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시인하지 않는 것이 적그리스도의 영인 것과 같이 예수의 하나님을 시인하지 않는 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모두 자기들이 알고 있고 자기들이 믿고 있는 신이 있습니다. 요한이 믿고 있는 하나님과 어떻게 다른가 예수없이는 요한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서 아는 하나님이니까. 예수의 하나님이지 결코 예수없이도 있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점입니다. 유대교인들이 나중에 어떻게 미혹되었느냐하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이 있다는 것, 아브라함이 없다하더라도 상관없는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을 미혹케 한것입니다. 이 하나님을 믿으면 이방인의 하나님과 다를바 없어집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백성은 그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못하고 이방인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될수 없고 '너는 내 아내다'하는 그 아내가 될수 없고 '너는 내백성이다.' 하는 그 백성이 될수 없고 '너는 내 자녀다.'하는 그 자녀가 될수 없고 이방인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어떻게 하든지 할수만 있으면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뺴버리고 다른 하나님을 사람들이 믿게 하려하는 것입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하나님,능력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은 사람들이 믿기가 쉽습니다.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말을 듣느니라.
그런데 우리가 말을 하면 우리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고로 우리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께 속했는데 우리말을 듣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속했다는 말은 예수의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속했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버리고 없습니다. 이삭도 가버리고 없습니다. 야곱도 가버리고 없습니다. 사람들이 알수 있는 것은 무엇을 알수 있는가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무소부재하시다. 그런 분이 하나님이다. 그는 기적을 행하셨고 지금도 기적을 행하신다.' 그런 하나님은 잘 알지만 아브라함의 하나님하면 아브라함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삭의 하나님하면 이삭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하나님하면 야곱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아무리 말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의 하나님은 사람들이 예수를 잘 모르기 때문에 아무리 말해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의 말을 하매 저희말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고로 하나님을 아는자들은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구의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을까 예수의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모르면 예수의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 하나님께 속하여 있을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모르는 사람은 예수의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의 하나님을 모르면 예수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적그리스도의 영이 무엇인가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것을 시인하지 않는것, 그것을 부인하는 것이 적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아브라함을 빼버린 하나님, 이삭을 빼버린 하나님,야곱을 빼버린 하나님을 믿게 하는 것이 적그리스도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을 우리가 생각해 봅시다. 아브라함이 꼭 있어야 되는가 이삭이 꼭 있어야 되는가 야곱이 꼭 있어야 되는가 더 내려와서 예수가 없어도 되는 하나님이 아닌가 예수가 없어도 전혀 상관이 없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예수가 없어도 전혀 상관없는 하나님이듯이 지금도 마찬가지로 예수가 없어도 상관없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을 빼버린 하나님, 그런 하나님을 믿게 하는 것이 적그리스도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은 선지자들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지자 없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이죠. 이사야를 빼버린 하나님, 에레미야를 빼버린 하나님, 호세아를 빼버린 하나님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아주 아리송한 것입니다. 하나님, 하나님하면 다 마찬가지인데 어째서 저 사람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하나님께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듣지 않는가 세상에 속한 말을 하면 잘 듣고 하나님께 속한 말을 하면 왜 안듣는다는 것인가하나님께 속했다는 말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에게, 예수의 하나님에게 속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하나님, 예수의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을 시인하게 하는 것이 적그리스도의 일인데 이것이 구체적으로는 예수가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육체로 있는 것을 부인한 것이나 이삭이 육체로 있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나 야곱이 사람인 것을 부인하는 것이나 예수가 사람인 것을 부인하는 것이 꼭 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사람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유태교인입니다. 이것이 곧 이방인인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백성인데 누구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느냐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방인과 꼭 같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의 하나님은 사람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방인들은 자기 생각속의 하나님입니다. 어떤 전능자를 보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어떤 절대자를 보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이방인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 신을 아는데는 사람을 필요치 않습니다. 어떤 기적이 행해지면 '아! 하나님이 있구나'라고 믿으면 되니까 사람은 필요치 않습니다. 만일 오늘 병을 고친 하나님을 믿는다면 병을 고치는 것을 보고 믿는 것이지 예수를 보고 믿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오늘 홍해를 가른다면 홍해를 가른 것을 보고 믿는 거지, 아브라함을 보고 믿는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홍해를 가를 수 있는 하나님일 수 있지마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아닐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사탄이 사람을 꼬이는 곳이 여깁니다. 이것으로 미혹을 해버리면 하나님의 영원한 창조의 목적인 사람과 하나님 이것이 깨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분명히 기적을 통해서 믿게 하는 것은 쉬운 것입니다. 제일 쉬운 일입니다. 옛날에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게 하려는데 아무리해도 하나님을 믿게 할수가 없었어요. 근데 기적을 행하는 곳에 가보면 사람들이 금방 하나님을 믿는다 말입니다. 야 저것이 가장 쉬운 길이고 가장 옳은 길이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증명할 길이 없고 나의 하나님을 증명했어야 될텐데 나의 하나님을 증명할 길이 없고 나는 그 하나님을 증명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신학적이고 교리적인 하나님을 증거해봤자 사람들이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병자에게 안수를 했는데 고침을 받았으면 그 사람은 즉석에서 대학교수든지 박사든지금방 하나님은 살아있다고 믿습니다.제가 알고 있는 교수 한분이 있는데 그분은 자기말대로 무신론자 였다는 겁니다. 자기아내가 교회를 다녔어요. 교회를 다녔지만 자기는 전혀 무신론자였다는 겁니다. 자기 아내가 중풍이 걸려서 의식불명상태에 있었는데 어느 교회에서 와서 계속 기도를 하더니 그 아내가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 사람은 철저하게 믿고 있었어요. 이것은 유식하고 무식한 것과 상관없습니다. 기적만 봐버리면 누구라도 믿을수 있는 것이니까요.그리고 그 즉석에서 믿을 수있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쉬운 일입니까 근데 이것은 이방인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는 없어도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뭣땜에 필요합니까 예수가 왜 필요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왜 자기 자신을 통해서 자기의 하나님을 알게 하려했느냐는 것입니다. 자기가 죽기까지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그 하나님을 증거하려면 기적만 행하고 가면 그만인데 왜 자기는 십자가를 지면서까지 자기 하나님 자기 아버지를 나타낼려고 했느냐 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사람을 미혹하여 하나님 창조의 영원한 목적인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를 끊어버리게 하는 미혹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 일을 갈라내기 위해서는 꼭 사람의 하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꼭 예수의 하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삭에게 너는 누구의 하나님을 믿느냐고 물으면 '나는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을 믿는다' 이렇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통입니다. 나는 어떤 어떠한 교리의 하나님을 믿는다 이것이 정통이 아니고 '너는 어떠한 하나님을 믿느냐' 하면 '나는 우리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믿는다' 이것이 가장 정통입니다. 야곱에게 묻기를 '너는 어떤 하나님을 믿느냐'라고 물으면 '나는 우리 아버지 이삭과 우리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믿는다' 이것이 정통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믿는 하나님은 이방인의 하나님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없어도 되는 것이니까 기적을 통해서 믿는 하나님도 마찬가지로 이방인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많은 기적을 이스라엘 백성앞에 행해 주었지만 미혹을 받아 혼란이 되어버려 분간을 못한 것입니다. 광야 40년동안 그들은 기적의 양식을 먹으면서 수없는 기적을 보아왔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에서 가자마자 금새 바알을 섬겼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나안에 가보니까 바알을 섬기고 있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데 그사람들은 자기들보다 잘 살더라는겁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사람들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고 자기들은 유목민입니다. 그러니까 옛날에 유목민에 비해서 농경민들은 훨씬 부유했습니다. 그리고 문화가 훨씬 앞서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농경민은 정착한 사람들이고 유목민은 떠돌아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떠돌아다니다 보니까 문화가 발전할수 없습니다. 정착하는 사람들을 통해 문화가 발전했습니다. 집을 짓더라도 이 사람들은 초갓집 짓다가 나무로 짓고 나무로 짓다가 흙벽돌로 짓고 자꾸 개조를 해나가지 않습니까 그러나 떠돌아 다니는 사람들이야 집을 지을 필요가 없단 말입니다. 천막하나 둘러메고 가다가 펴놓고 자다가 또 둘러메고 가고 이러니까. 문화가 발전할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가나안의 문화에 현혹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 우리가 지금까지 여호와를 믿어 왔는데 여기와서 보니까 바알이라는 하나님을 믿는데 바알이 진짜 하나님이었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그 성에 이르러서 장로들을 불러놓고 "너희는 오늘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섬길자를 택하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나와 내집은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겠다"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탄이 만일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방법으로든지 하나님을 믿게 하고 그리고 거기서 사람만 빼버리면 그 아브라함을 빼버리고 이삭을 빼버리고 야곱을 빼버리고 그래서 마지막에 예수를 빼버리게 되면 그건 자기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바알이 사탄인지 하나님인지 어떻게 알겠느냐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알겠느냐는 겁니다. 사탄은 욥의 모든 재산을 한꺼번에 가져갈수도 있었습니다. 자식들을 한꺼번에 가져 갈수도 있었고 몸에 병이 들게 할수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그 몸에 병이 낫게 할수도 있었을 것이고 재산을 다시 줄수도 있었고 자식을 다시 줄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와서 시험하던 사탄은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이며 가로되, "내게 절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들에게 주노라"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모든 것을 할수 있는 것입니다. 다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사람들을 미혹케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밥법입니다. 왜 아담으로 하여금 선악과를 먹게 하였는가 이것이 사람과 하나님을 이간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왜 이스라엘 속에 들어와서 사람들에게 아브라함을 제하게 만들었는가 이삭을 빼버리고 야곱을 빼버리고 선지자들을 빼버린 하나님을 믿게 하였느냐이것이 자기에게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그랬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과 우리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이방인과 꼭 같은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 하나님에게 가인과 아벨처럼 영원히 제사만 드리는 그런 생활을 계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서 너희 죄를 깨끗케 할수 없어서 해마다 그 제사를 드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화 되었다는 뜻입니다. 자기에게 문제가 있으면 그 예법에 따라 제사를 드리고 예법에 따라 사함을 받고 그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는 자기고,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그런 것입니다. 언제든지 그런 관계입니다. 항상 거리를 두고 유지하는 그런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자기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영원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종교를 없애려는 것입니다. 그 항상 일정한 거리를 두는 그것을 없앨려고 자기자신을 단번에 드림으로서 영원한 제사를 드려 다시는 염소나 피로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말을 듣느니라". 그러니까 우리가 만일 그것으로서의 하나님을 말한다면 사람들은 자기 생각속에 있기 때문에 자기 눈으로 볼수 있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얼른 믿게 되겠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우리의 말을 듣고 예수의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다시 말하면 우리의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느니라.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그러니까 어느 영이 진리의 영이고 어느 영이 미혹의 영인가 미혹의 영은 결국 '사람을 뺴버린 하나님'을 믿게 하는 영이 미혹의 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저절로 미혹돼 버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하면 아브라함이 있기때문에 미혹될수 없지만 아브라함을 빼버리고 나면 또 하나님이 미혹돼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영원히 선지자들을 만나지 못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벌써 종교화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선지자를 만날수 없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들은 선지자들을 더 학대하고 더 버렸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지자들이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들이 없어도 이미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선지자들이 굳이 있을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가 자기땅에 왔지만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않았다. 예수가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하나님이 아니라도 그들은 광야에서 40년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는 우리에게 무슨 표적을 주겠느냐 그보다 더한 표적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따라 다니면서 얘기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실망했습니다. '너희가 이적을 본 때문이 아니고 먹고 배부른 까닭이구나 너희가 나를 찾아온 것은 이적을 본 까닭이 아니고 먹고 배부른 까닭이구나 진짜 이적이 여기 있는데 이적을 보지 못하고 먹고 배부른 것을 보았구나' 그래서 그후로는 다시 기적을 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만약 그런 하나님을 보여 주었으면 예수님은 없어도 상관없는 하나님이 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으면 사람들은 다시 미혹에 빠졌을 것입니다. 다시 사탄의 종이 돼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또다시 바울이 없어지고 베드로가 없어지고 요한이 없어진 후에 또 그런 상태로 넘어 온것입니다. 사람은 없어지고 하나님만 남습니다. 그리고 얼른 보면 그것이 완전한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이 없는 하나님이니까. 더 완전하고 흠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미혹케 해버린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바울도 인간적으로 보면 흠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하나님은 미혹될수 없습니다. 그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고 갔던 사람, 3년이나 따라 다니고도 또 다시 고기잡으러 가버린 사람 그사람의 하나님이고 그 사람의 주님이기 때문에 그 자리가 미혹될수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없앨려고 공문을 가지고 가던 사람, 예수를 이단으로 알고 예수를 박해하려고 가던 사람, 이 자리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의 하나님은 미혹이 될수 없습니다. 인간으로는 결함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성질이 급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아주 못된 사람이기도 합니다. 마가하고 분쟁이 일어나 데리고 가지 않고 "너하고 나하고 갈리자"하고 그래서 갈라선 사람입니다. 성격이 괴팍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부름받은 자리가 바울이 아니면 안되는 부름받은 자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하나님은 미혹될수가 없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이죠! 어떻게 보면 용기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허풍쟁이이기도 합니다. "죽을지라도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옥에도 같이가고 죽는데도 같이 가겠습니다." 해놓고 "나는 도무지 저 사람을 모른다." 라고 한사람입니다. 언제는 이랬다 언제는 저랬다 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지만 그가 그런 사람으로서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요동하지 않는다 말입니다. 하늘에 계신 신, 기적을 행하신 신, 절대능력을 가지고 있는 신은 우리에게서 늘 변할수 있지만 베드로를 구원하고 바울을 구원한 그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세상은 세상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을 듣는다는 말은 그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그 하나님의 말을 듣지마는 그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사람은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떻게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알수 있을 것인가 이것으로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계교를 모르기 때문에 종교는 끝없이 사탄의 일을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심지어는 예수의 이름으로 사탄의 일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선악과를 먹여 놓았습니다.
그래서 그 선악과가 아담의 생명이 돼있기 때문에 저절로 사탄의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해야되겠다. 그렇게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의도적으로 하는게 아니라 내가 저절로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거짓을 나의 생명으로 심어놨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때 내가 거짓말을 해야 되겠다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전혀 자기로 자연스럽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자기를 말하는데 거짓말이 나오니까 거짓말하기가 얼마나 쉽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거짓말을 억지로 하려면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거짓말도 머리가 좋아야 하지 머리가 나쁜 사람은 거짓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거짓말하면 금방 탄로나 버린다.
왜냐하면 앞뒤가 맞아야 하지 않습니까 말이 길어질수록 앞뒤가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근데 처음부터 끝까지 기억하고 있으려면 머리가 좋아야 기억하는 것입니다. 뒤로가면 그만 탄로가 나고 마는 것입니다. 머리가 나쁜 사람은 한두마디하면 탄로가 나버리고 머리가 좀 좋은 사람은 여러마디 할때까지 모르고 그렇게 됩니다. 그러니까 참말하기보다 거짓말하기가 더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자신이 거짓이라면 거짓말하기가 쉬운 것이죠. 사람에게 선악과를 먹여 놓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저절로 사탄의 일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경향이 그쪽으로 흐르도록 되어 있기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어도 사람속에 들어와서는 어느 사이엔가 또 변해버리고 어느 사이엔가 변해버립니다. 이스라엘속에 온 하나님의 은혜가 어느 시간엔가 언제 그리된지도 모르게 변해 버립니다. 그 사람을 알면 그 사람의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 사람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그사람을 구원하신 하나님이란 말이니까 그 하나님은 그사람으로 말미암아 보존되게 됩니다. 예수는 베드로로 말미암아 보존되었습니다. 바울로 말미암아 보존된것입니다. 만일 베드로가 없었고 바울이 없었고 요한이 없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요.그러면 예수는 뭐가 되버리고 마는 것인가 그는 또 하나의 신이 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가 예수로 보존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로 보존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로 보존되려면 사람안에서만 보존될수 있습니다. 생명은 생명안에서만 보존됩니다. 생명밖에서는 보존이 되지 않습니다. 로얄젤리를 보존하려면 꿀속에서만 보존됩니다. 바깥에서는 보존이 잘 안된다는 말입니다. 썩어버리고 만다는 말입니다. 예수가 보존되려면 생명안에서만 보존됩니다. 그가 생명이시기 때문에 그 생명안에서만 보존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증인을 찾았던 것입니다. 자기가 세상에서 보존될수 있는 유일한 길은 여호와께서 성전안에서만 보존된 것같이 예수께서는 자기 제자들안에서 보존되었습니다.
어떤 교회안에서 보존된 것이 아닙니다. 교리안에서 보존되려면 제자들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그 속썩여주는 사람들이 무엇땜에 필요하겠습니까 그 헷갈리든 사람들이 무엇때문에 필요 하겠느냐 말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 길에도 뒤에 따라 오면서 누가 크냐 니가 크냐 내가 크냐 하던 사람들이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향해가고 있을때 그 속도 모르고 당신이 임금이 되면 아들 하나는 우편에 앉게 해주시고 하나는 좌편에 앉게해 주십시요 세베데의 어머니는 그렇게 얘기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답답한 사람들이 왜 필요하냐는 것입니다. 교리로 보존할수 있을 것 같으면 교리만 잘 만들어 가지고 교리를 가르쳐주고 가면 되는 것이지 뭣 땜에 그런 사람들하고 속썩이는 생활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자기자신을 보존할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람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하나님으로서 그런 사람들의 주님으로서 보존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의 주님은 변치 아니합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그런 사람의 주님으로서는 변질이 되어 버리지만 없으면 안될 사람들의 주님으로서는 변질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에게 보존된 예수는 변질이 불가능 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구원의 자리가 너무 확실하니까 베드로에게 보존된 예수는 영원히 변질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구원의 자리가 너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왜 야곱을 꼭 그런 자리에서 불렀으며 하나님이 왜 야곱을 꼭 그런 자리에서 쓰셨는가 하나님 자신을 보존하려면 꼭 그자리가 아니면 안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왜 그렇게 하였는가 아브라함의 하나님으로 보존되기 위해서 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을 알때 아버지로 알려면 아브라함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알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버지의 형상이었습니다. 이삭에게 있어 아브라함은 아버지의 형상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버지라면 아브라함을 빼놓고는 하나님이 자기 아버지인지 아닌지 알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일생동안 뭐가 되었는가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사실을 보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안에서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삭은 누군가 하나님은 이삭안에서 영원한 아들로 보존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꼭 그 사람이 아니면 아들로 보존되지 않습니다. 예수안에서 하나님은 영원한 사람으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적그리스도는 어떻게 해야만 적그리스도의 일이 되겠습니까 바로 이것을 빼버려야만 자기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일입니다. 이것은 아주 깊은 비밀입니다. 이것은 세계 모든 종교속에 깊이 박혀있는 것인데 이것은 깊은 비밀입니다. 이걸 모르면 항상 자기는 하나님의 일을 하지마는 그러나 사탄의 일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선교사업도 할수 있고 예배당도 지을수 있고 많은 사람을 구원할 수도 있고 다할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원한 목표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탄은 얼마나 교묘하게 자기의 일을 수행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못믿게 하면 안되니까 믿게 하되, 한편으로 자기의 일을 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공산당이 자기정권을 다른나라에 침투시킬때도 마찬가지 방법을 씁니다. 처음부터 '우리가 공산당이다'라고 하면 아무도 공산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민주화해야 한다.우리는 민족주의를 해야한다." 이렇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민족주의를 하기 위해서 " 라고 외치고 일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공산주의가 되는 것입니다. 박헌영은 민족주의자로서 공산당입니다. 독립운동을 하기위해 공산당을 했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공산당하자'라고 하면 잘하지 않습니다. 사탄도 와서 처음부터 사탄을 섬겨라 하면 누가 섬기겠습니까 '너는 하나님을 섬겨라' 그럽니다. 여호와를 섬겨라 더욱 열심으로 섬겨라, 더욱 잘해라 라고 시킵니다.바로 그것입니다. 그때 그는 그 생명을 잡는 것입니다. 자기에게로 흘러 들어 올수 있는 생명을 이미 확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안심하고 하나님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의 함정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영이 누구냐 거짓말하는 영이 누구냐 그것은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것을 부인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세때부터 사탄이 하던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미혹케 하는자를 잡기위해 아담을 지었습니다. 사람을 지었다는 뜻입니다. 사람을 통해서 보존되고 사람을 통해서 증거되는 그 하나님으로서 있게 하기위해서 그래서 아담을 지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오신것은 사탄의 일을 멸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없이 하시려고 오시고 사탄의 일을 멸하시려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일이 딱 끊어져 버리고 나면 사람은 영원히 죄인으로서 백날 죄를 고백해도 여전히 죄인으로 그냥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사탄아 물러가라, 물러가라" 소리를 쳐도 사탄은 여전히 자기 자리를 확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아 물러가라"하고 소리치는데가 많습니다. 그것은 귀신 물러가라는 뜻입니다. 그건 무당들도 할수 있는 일입니다. 무당들도 귀신 쫓는 일을 합니다. 실제로 그것이 심리적인 요법이 되어 귀신이 나가는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무엇으로 알것인가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엇으로 알것인가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통해서만 하나님이 영원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알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왜 사람을 창조했는가 알수 있고 하나님이 왜 사람을 찾고 있는가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영원한 나라에서 누구와 같이 살것인가를 알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인격속에 박혀있습니다. 그인격은 그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조성된 자리이기 때문에 그 인격안에 하나님은 박혀 있습니다. 한 생명으로서 박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뺄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가 아들 하나를 얻으면서도 그 아들 하나를 얻는 과정안에 그 하나님이 박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떤 기적으로 박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신비로 박혀 있는 것도 아니고 인격으로 박혀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여호와 사이에 인격과 인격의 만남으로서 그렇게 박혀 있습니다. 거기서 그는 다른 사람으로 변해 가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해가는 그사람의 하나님, 그러니까 아브라함 자신으로 증거되는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을 빼놓고는 증거할수 없는 , 자기를 뺴 놓고는 증거가 안되는 하나님, 아브라함은 다른 하나님을 모릅니다. 자기를 빼놓고는 알수 없는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의 하나님은 자기를 뺴놓은 하나님인 것입니다. 자기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그냥있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존재자라는 것입니다. 그냥 순전히 존재하는자 그러니까 나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지요. 내 인격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지만 있는 자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물으면 자기자신을 뺴놓고는 전혀 말할수 없는 하나님입니다. 자기자신이라고 하는 자신이 지금 형성되어 있는 자기자신이 곧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자신이기 때문에 자기를 빼놓고는 하나님을 말할수 없습니다. 야곱도 마찬가지 입니다. 야곱의 인격속에는 그 하나님이 박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자신을 빼놓고는 그 하나님이 누군지 알수 없습니다. 그것이 적든지 크든지 그것이 어떤 모양이든지간에 자기로 밖에는 말할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와 그 하나님과의 관계였기 때문에 그러니까 여기서 하나님이 온전하게 보존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만일 그 하나님이 부족하다면 이삭이 있고 이삭에까지 부족하다면 야곱이 있고 그래서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자기자신을 완전하게 보존했던 것입니다. 그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서 부분적으로 보존되었던 하나님이 이 마지막 날에 예수로 말미암아 완전하게 보존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게 하는 영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고 세상을 미혹케 하는 영입니다.
처음부터 거짓말하던 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사람과 하나님을 영원히 이간시켜서 영원히 갈라서 서로 없어도 되는 존재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서로 거리를 가지고 제사만 지내면 되는 그런 존재가 되게 하려고 했습니다.향불을 피우면 향이 올라가고 왔다갔다 영원히 편지만 왔다갔다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둘이 서로 만나지는 못하게 하고 견우와 직녀가 서로 만나지 못하게 된것처럼 영원히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하나가 되지 못하도록 그렇게 만들어 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영이고 사탄의 계교입니다. 그리고 이사탄의 계교가 어디에서 가장 확실하게 작용하고 있느냐 하면 종교안에서 작용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종교는 이름은 있지만 실상은 없는 그런 것입니다. 사이비라는 것은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같은 것 같은데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얼마나 여호와를 섬기고 있습니까 얼마나 여호와의 이름을 신실하게 부르고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그의 보내신 자를 만나면 모르니 이것이 바로 사이비입니다. 분명히 부내신 이를 믿었다면 보내신 자를 보고 알았을 것인데 보내신 이를 믿는다고는 하는데 보냄을 받은 자를 보면 모른다는 것입니다. 주인은 안다하면서 종은 모른다 이렇게 돼 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안다 하면서 사람은 모른다'라고 하는 모양이 되어버렸고 '아버지는 안다하면서 아들은 모른다'하는 결과를 가져와 버렸으니까 이것이 비슷하면서도 아닌 그런 결과를 가져와 버렸습니다. 비슷하면서도 아니어야만 속는거지 전혀 다르면 속지 않습니다. 나무와 돌멩이를 갖다놓고 속일수는 없습니다. 비슷한것 미나리와 미나리아재비라는 것 그런 것들이 있잖아요 미나리와 비슷해서 서투른 사람은 잘 모르는 것이죠. 독버섯과 식용 버섯은 똑같이 버섯으로 생겼으니까 잘 모르는 거지 하나는 나무로 생기고 하나는 버섯으로 생기면 누가 그것을 따먹겠습니까 비슷하게 생겼으니까 먹는 거죠. 似而非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같은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이라는 것입니다. 종교는 바로 사이비가 돼버립니다. 흘러가다보면 似而非가 되어 버립니다. 비슷하지만 아닌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천주교에 가보면 초대교회의 형상과 비슷한 것이 많습니다. 비슷한데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주 엇비슷한데 아닙니다. 이상한것이죠. 그들은 신부가 중보자가 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중보자된것과 똑같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는 제도적으로 만들어진 중보자이고 하나는 생명으로 나타난 중보자입니다. 하나는 진실이고 하나는 거짓이고 그렇습니다. 하나는 생명에서 나오고 하나는 생명 아닌데서 나왔으니까 아주 비슷한데 아닙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쩔수 없이 다시 구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제도와 모든 일을 보면 구약과 똑같은 일을 다시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있었던 일과 지금 천주교에 있는 일은 똑 같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종교들은 다 그렇게 돌아갑니다. 신교도 마찬가지로 그런 방법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안돌아갈래야 안돌아갈 방법이 없습니다. 사탄이 계속 미혹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게 만들기 때문에 미혹이 되어 버려 결국은 도로 원점으로 돌아가고 또 도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율법밖에 없지 않습니까 눈에 확실히 볼수있는 것은 율법밖에 없습니다.그래서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는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느니라." 이 말은 예수께 속한 자는 예수의 말을 듣고 예수께 속하지 않는자는 예수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면 되겠지요.
그런데 이것도 또 종교가 있기 때문에 누가 예수께 속한자냐 예수께 다 속하지 않았느냐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이래서 또 미혹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게 하는 것이 미혹케 하는 영입니다. 아주 교묘한 방법인 것입니다. 이 방법은 영원한 생명안에서 밖에는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왜 인봉한 책을 뗄자가 없었을까 왜 하늘 위에나 땅위에나 땅아래에 인봉된 책을 뗄자가 없었을까 그건 이 이유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린양이 인봉한 책을 떼실 것이다. 어린 양만이 이 인봉한 책을 뗄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비밀인 것입니다. 숨겨지지 않는 비밀인 것입니다. 다 알려져 있지만 사람이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미혹을 받고 있기 때문에 숨겨져 있는 비밀입니다. 그래서 어린 양밖에는 열수가 없고 십자가로 밖에는 열려지지 아니합니다. 그걸로 밖에는 풀어지지 아니하는 그런 비밀인 것입니다.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서 아니니라. 사람들이 미혹을 받고 있는 것을 우리는 눈으로 그냥 볼수가 있습니다.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서 아느니라" 꼭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에 가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똑같은 현상을 볼수가 있습니다. 바알인지 여호와인지 잘모르는 그 모습을 볼수가 있습니다. 어떤 하나님인지 모르는 그런 모습을 볼수가 있습니다. 너의 하나님이 누구냐 그렇게 묻는다면 그들은 영낙없이 그렇게 대답합니다. 가나안 사람이 대답한대로 대답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대답한대로 그렇게 대답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그렇게 대답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미혹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사탄의 일을 멸하려고 오셨습니다. 육체로 오신 이유는 사탄의 일을 멸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육체로 오신 것을 우리가 굳게 잡지 아니하면 우리는 미혹케하는 영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메주를 쓰고 간장을 담그려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너무 짜면 맛이 없고 너무 싱거우면 구더기가 나고 그래서 참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죠.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간장 담그기가 참 어렵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시어머니 밑에서 배워가지고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또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전수해 주었습니다. 손맛으로 입맛으로 전수해 주었던 것인데 요즈음엔 그렇게 안되기 때문에 상당히 어려운 것이 되었습니다. 가장 쉬운 것 같지만 김치 담그기가 제일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적당한 간을 쳐야되고 적당한 온도를 맞추어야 되고 글이나 말로 어떻게 표현하기 어려운 적당한 자리에서 발효가 되기 때문에 음식을 잘하는 사람은 김치를 잘 담그는 사람입니다. 김치 못담그는 사람은 음식을 잘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구더기가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꼭 간장을 담궈야 되는가 화학 약품을 타고 카라멜 액을 좀 넣고 소금을 좀 넣고 미원 좀 넣고 간장맛을 내면 얼마든지 만들수 있는데 왜 구더기 쓸줄 알면서도 간장을 담그는가 그것은 우리가 생명을 먹으려하니까 간장을 꼭 담글 필요가 생긴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가 있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거짓선지자가 나올줄 알면서도 왜 선지자를 통해서 자기일을 하려고 하는 것인가 거짓 선지자고 참 선지자고 다 없애 버리고 하나님이 직접하시면 거짓될 것도 참될것도없고 완전 무결할 것인데 왜 꼭 선지자를 보내어 거짓 선지자도 나오고 참 선지자도 나오게 하는 것인가 이것이 생명의 비밀입니다. 생명이 아니면 이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간장은 구더기가 쓸지도 않고 그리고 너무 짜지도 않고 가장 적당한 간에 적당하게 발효되어서 그안에 먹을수 있는 세균만 잘 번식하도록 만들어진 된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이 가장 알맞는 상태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가장 완전하게 보존해야 하는 것입니다. 돌로 지은 집에 보존하는 것은 완전하지가 않습니다. 율법이나 교리속에 보존하는 것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자신을 사람속에 보존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장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면서도 꼭 그것이필요한 것입니다. 교리속에 보존하면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생명이 없습니다. 율법속에 보존하면 위험은 없지요 틀에 박아놓은 것이니까. 활자에 박아 놓은 것이니까 위험은 없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얼마나 거기서 제한이 되어 버리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거기서 제한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돌로 지은 집-성전에 제한되어 버린 것처럼 율법안에서도 하나님은 제한되어버리고 맙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그날은 일하지 말아라 해놓고 나면 그날 사람이 죽어가도 살릴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그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자신을 율법안에서 보존하시기가 어렵습니다. 사람안에서만 인자안에서만 하나님은 완전하게 보존될수가 있습니다. 생명안에서만 완전하게 보존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 위험한 도박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가장 완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이것을 꺼려 하면 죽은 것 밖에 찾지 못합니다. 구더기 싫으면 아예 장을 못먹는 것입니다. 진짜 간장은 아주 못먹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영 화학약품만 먹고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도 죽는 것입니다. 화학약품만 계속 먹으면 틀림없이 죽습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틀림없이 죽을 것입니다. 생명은 생명을 먹어야 삽니다. 우리 몸안에는 많은 균이 있어 그균들이 우리를 돕고 있습니다. 그 균들이 아니면 우리가 음식을 먹는다 하더라도 우리몸에 알맞는 영양분으로 흡수되지 못합니다. 그 균들로 말미암아 가장 알맞는 것으로 가장 친근한 것으로 변해서 그렇게 들 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관문에서 어떤 생물들이 우리몸에 가장 알맞고 가깝게 분해시켜 몸속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꺼려 한다면 뱃속을 완전히 소독약으로 청소해 버리고 그렇게 살아야 되는데 그렇게 되면 졀국 죽습니다. 아무리 좋은 링겔주사라 해도 그것만 맞고 사람이 살수가 없습니다. 생명을 통해 들어온 것을 먹지 않고는 사람이 살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위험하지만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주기까지 생명을 주기까지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자기 생명을 주기까지 안하면 사람이 잘못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간장담그는 일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죠. 그건 자기가 죽지 않아도 되는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를 찾는 것은 자기가 죽지 않으면 못 찾기때문입니다. 그렇게 그는 심각한 것입니다. 사탄은 어찌하든지 이것을 방해하려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교묘하게 이것을 방해해서 죽은 교리만, 죽은 제도만, 죽은 형식만 남게 만들어 버리면 됩니다. 그러면 겉으로는 여전히 그냥 그대로 있고 속 알맹이만 없는 것입니다. 엘리 선지자가 섬기고 있던 성전은 법궤가 없던 성전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외모는 성전입니다. 그래서 밖에 와서 계속해서 사람들은 제사를 드리고 가는 것입니다. 법궤가 없습니다. 주인 없는 집에 와서 선물을 놓고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밖에서 보면 모르니까요. 블레셋 사람들에게 법궤를 뺏겨버리고 없습니다. 그후로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성전은 그냥 그대로 있다는 것입니다. 엘리 선지자는그 성전을 지키고 거기서 제사를 받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의자에 앉있다가 자기 아들이 전사했다는 말을 듣고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법궤없는 성전의 제사장, 생명없는 성전의 제사상이라는 말입니다. 성전없는 성전의 제사장도 역시 생명없는 사람이 아니겠어요 그렇게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자신을 가장 완전하게보존하는 방법으로서 사람을 택하게 되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자신을 완전하게 보존하고 증거하는 방법으로서 베드로를 택하고 바울을 택하고 요한을 택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기한 지혜입니다. 사탄은 할수 없는 그러한 지혜입니다. 모방할수도 없고 따라 올수도 없고 흉내낼수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결국 사탄이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놓으면 다음에 가서는 사탄하고 분열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사탄은 아무리 자기 사람을 만들고 싶어도 마지막에가면 다시 분열되어 버리기 때문에 자기 사람을 만들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그렇게 하실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자기가 죽어서 생명을 주기 때문에 사탄은 자기가 죽어서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안되는 것입니다. 재주는 많지만 자기 생명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할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원래 자기가 죽으려고 했던 자가 아니고 살려고 했던 자이기 때문에 자기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에게서 나온 것은 교리밖에 나오지 못합니다. 제도와 형식밖에 만들어 줄수가 없습니다. 교리와 제도와 형식을 완벽하게 만들어 놓음으로서 자기의 성을 지키려고 생각하는 것이고 사람들을 그 성안에 미혹시키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몸으로 지은 성전, 사람으로 지은 성전안에 천하 만민을 부르게 된것입니다. 어린 양의 몸으로 지어진 성전안에 천하만민을 부르게 될것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것이고 변치않는 것이며 안전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아버지가 되셨던분 이삭을 통해서 아들이 되셨습니다. 야곱을 통해서 그는 종이 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완전하신 분이신 것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형제가 될수 있습니다. 우리가 형제가 되고 싶어 되는 것이 아니고 그가 우리에게 자기의 생명을 주기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탄은 이일을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부하를 가지고 있지만 형제를 만들수 없습니다. 부하들끼리 서로 싸우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도둑질하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합심하여 도둑질하지요. 혼자하면 어려우니까 혼자는 못하겠으니까 하나는 사다리 잡아주어야 되고 하나는 올라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둘이 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둘이해서 돈을 훔치고 나면 마음이 딱 달라집니다. '아! 저놈이 아니었으면 나혼자 가질텐데.' 그래 가지고 이제는 둘이 서로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근데 갖다놓고 돈을 보니까 어쩐지 모자란다 말입니다. 한놈이 하는 말이 우리중에도 도둑놈이 있는가 우리중에서도 거짓말하는 놈이 있는가 둘이 서로 자기만 진실하다고 한단 말입니다. 어느놈인가 분명히 훔쳤는데 근데 사실은 알고보면 두놈다 훔쳤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사탄은 결코 형제를 만들지 못합니다. 자기의 졸개를 만들겠지만 자기 형제를 만들지 못합니. 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율법을 강요하기가 쉬운가 율법을 강요하면 자기가 편합니다. 군대에 가보면 전부가 율법입니다. 왜 군대는 전부가 율법인가 상관이 편할려고 그렇습니다. 말을 안듣는 놈을 말을 듣게 하는데 만일 그것을 생명으로 듣게 할려면 자기가 죽어야 할것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상관이 될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상관이 되려면 율법을 주어야 합니다. 율법을 주면 편합니다. 나는 편하고 받는 사람은 괴로운 겁니다. 그래서 군대가 괴롭다는 겁니다. 사랑이 없으면 율법이 되버립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귀찮단 말입니다. 율법을 줘버리면 율법을 말미암아 저희가 스스로 알아서 할것이니까 잘못하면 심판받고 잘하면 칭찬받고 "너하고 나하고 상관없으니까 잘해라. 그러면 상주고 못하면 너는 벌받아!" 이래 버리면 간단하단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율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는 자식을 버릴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율법을 줄수가 없단 말입니다. 망하려면 망해라 이럴수 있었으면 괜찮겠는데 다섯 아들이 있는데 네 아들이 다 좋드래도 한 아들이 예를 들어 멸망돼 버린다면 부모로서는 다섯아들 잃은 거나 마찬가지란 말입니다. 그래서 할수 없이 이 아들에게 율법을 줄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생명으로 시작해서 생명으로 마치려고 하는 것인가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교리라는 것은 쉬운 것입니다. 내가 교리를 가르칠려면 나 자신의 생활과 교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냥 교리만 옳으면 되지 않습니까 이단이라는 말을 듣지 않을수 있는 교리만 있으면 되지 않습니까 아주 쉬운 것입니다. 어려운 것이 전혀 아닙니다. 성경을 연구하면 교리는 명백한 것입니다. 그것만 가지면 나하고는 전혀 관계가 안되지요. 나는 전혀 침해를 받지 않습니다. 전혀 손해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리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왜 더 교리주의자가 되려고 할까 더 교리를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왜 사람들을 교리로 무장시켜야 할까 교리로 무장시키면 자기가 편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교회가는 사람들이 교리만 계속 배운다면 학교 선생님한테 글배우는 것과 꼭 같습니다. 그러니까 전혀 상관이 없는것 아니겠습니까 글만 잘 배우면 되는 것이니까 선생님이 술을 먹든지 무얼 하든지 간에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자기한테 영어만 잘 가르쳐 주면 되는 것이고 수학만 똑바로 가르쳐 주어서 서울대 들어갈수 있도록만 해주면 되는 거지 그사람이 착한 사람이면 무얼하고 악한 사람이면 무얼하겠느냐 말입니다. 아무 소용없잖아요 학교 선생하기 보다 학원강사 하기가 더 쉬운 이유가 그것입니다. 학원강사라는 것은 단순히 전달하면 되는 것이니까 학교선생은 그보다는 조금 어렵지요.
왜냐하면 학생들을 자기가 통솔해야 되기 때문에 자기를 완전히 빼놓고 통솔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학원강사보다는 학교선생 하기가 조금 더 어렵습니다. 선생하기 보다는 부모노릇하기가 조금더 어렵습니다. 부모노릇하기 보다는 하나님노릇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왜 교리로 흐르는가 그것은 지도자가 자기편하려고 하기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편합니다. 여기서 열가지 조항이든지 백가지 조항을 놔두고 그것만 믿으면 된다고 가르치면 아주 간단한 것입니다. 이대로만하면 된다. 나도 이대로 하고 당신도 이대로 하고 하나님앞에 심판은 그때 받을꺼니까 그리하면 아주 쉬운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적그리스도는 어디서 나왔는가 사탄은 어디서 나왔는가 사랑이 없는데서 나왔지요 생명이 없는데서 나왔습니다.
남의 자식이니까 율법으로 하지요 자기 자식같으면 율법으로 할수 없잖아요. '너 이것 안하면 죽어' 해놓고도 다음날 가서 죽일수 없단 말입니다. 너 내말 안들으면 내일 너 족보에서 빼버린다. 그래 놓고도 뺄수 없단 말입니다. 남의 자식같으면 말안들으면 제해 버리면 그만인데 자기 자식인데 제할수 없잖습니까 그래서 아버지는 늘 아들에 대해서는 늘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는 사람이되고 아버지는 아들에 대해서 항상 무능한 사람이 될수가 있고 아버지는 아들에 대해서 항상 법을 어기는 사람이 될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아들을 살려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율법의 세계, 그것은 남과 남의 세계이며 교리의 세계 그것은 남과 남의 세계입니다. 그러면 서로가 서로의 침해를 받지 않습니다. 교회가 다섯명이 되었는지 천명이 되었는지 예배를 드리면 각자 자기 교리대로 자기가 예배를 드리면 되는 거니까 누구하고도 관계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저 사람하고 나하고 관계가 될 필요가 없으니까 조용히 엄숙한 자리에 가서 자기혼자 미사를 드리고 오면 되지 않습니까 그것이 제일 편한 방법이고 교회에 가면 조금 불편합니다. 일반 기독교에 가면 조금 불편합니다. 천주교에 가면 아주 편합니다.
왜냐하면 그냥 자기만 가서 미사를 드리고 오면 되는 거니까. 남하고 전혀 관계없이 할수 있단 말입니다. 근데 교회에 가면 그래도 늘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서로 사생활도 알게 되고 무슨 연관도 있게 되고 약간자기 침해를 받게 됩니다. 근데 그리스도의 몸안에서는 자기가 전폭적으로 침해받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더욱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러지 않고는 하나가 되지 않으니까 그러지 않고는 생명의 교류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습니다. 사탄은 자기가 좋아서 사탄됐겠습니까 단지 하나되기 싫어 사탄이 된 것입니다. 자기 생명을 주기 싫어서 그래서 사탄이 된 것입니다. 율법주의자는 율법주의자가 되고 싶었겠습니까 자기가 침해받지 않으려니까 율법주의자가 된것입니다. 교리주의자는 교리주의자가 되고 싶었겠습니까 자기가 편해지려고 하니 교리주의자가 된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우리를 살리려고 하니까 그래서 교리주의자가 될수도 없고 율법주의자가 될수도 없고 그래서 그는 우리의 주님이 될수 밖에 없게 된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될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오신 것은 바로 그 사탄의 일을 멸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교리주의를 멸하려고 율법주의를 멸하려고 형식주의를 멸하려고 어떤 것하나 만들어 놓고 여기절해라 그러면 쉽지 않습니까 나한테 올것까지도 없고 여기 상을 하나 만들어 놓았으니까 여기와서 기도나 하고 가거라 그러면 더 쉽습니다. 절에 중노릇하기는 더 쉽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만 하나 만들어 놓고 여기와서 공들이고 가라하면 되는 겁니다. 자기하고 전혀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니 더 쉽지요. 알고보면 신부노릇하기보다 더 쉽습니다. 내가 절에서 일년을 살아밨어요. 중노릇하기는 아주 쉽습니다. 새벽에 좀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좀
그런데 일찍 일어나는 것도 거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없는데 혼자 사니까 일찍 자지 않습니까 일찍 일어날수 있어요. 3시에 일어납니다. 그래서 종치고 염불하고 그러면 됩니다. 그러니까 왜 부처님 만들어놓고 여기다 절을 천번해라 오백번해라 그렇게 했겠습니까 그게 자기한테 쉽지 않습니까 천번하면 천번한 사람 허리는 부러지게 되지만 자기야 간단하단 말입니다. 아주 쉬워요. 그래서 날마다 보던 일이지만 하루는 염불하는데 옆에서 가만히 지켜봤습니다. 어떤 부인이 와서 밥을 해놓고 옆에서 계속 큰절을 하고 스님은 목탁을 두드리고 염불을 합니다. 근데 그 염불하는소리가 무슨 소린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범어로 하기 때문에 옆에서 듣는 사람은 무슨 소리인지 모릅니다. 그래 그 스님보고 내가 그랬어요. "기도를 하는데 옆에 사람이 무슨 기도하는지 알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물으니까 그 스님이 피식 웃으면서 하는 말이 '이건 우리 일년 농사라네'
왜냐하면 정월달이 돌아오면 아낙네들이 전부 봇짐을 싸들고 산에 올라옵니다. 산에 올라와 불공를 드리고 갑니다. 그해 운수가 대통하게 해달라고 빌고 갑니다. 그래 이스님은 참선하는 스님이니까 어느정도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것은 우리 농사니까 또 사람들이 와서 자기들 맘을 바치고 가는 것이 그 사람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염불을 해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염불하다가 글자가 틀려도 상관없는거죠 이사람이 알아듣든지 못알아듣든지 관계가 안되요. 내가 못알아듣는 기도를 하면 무슨말하는지 알겠느냐 하니까 그건 우리 일년농사라는 겁니다. 그 양반은 그래도 솔직하게 대답한 것 아닙니까 참선하는 중이니까 그렇게 대답하지 염불하는 중같으면 뭐그래도 변명하고 그럴건데 이 사람은 그래도 부처로 가는 길은 그게 아니라는 것은 알거든요. 밥해놓고 절하고 그런다고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단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물으니까 할수 없이 그렇게 대답을 했어요. 그러니까 이건 쉽지요. 범어로 하는데 남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 아닙니까 우리는 영어를 못알아 듣는데 누가와서 영어로 맘대로 말해도 상관없지 않습니까 맞은지 틀린지 모르니까 세상에 속임수가 왜 생겼는가 알수 있지 않습니까 속이는 자가 왜 생기고 거짓말하는자가 왜 생겼는가 모르니까 생기지 않습니까
자! 생명이 없으면 거짓말이 생겨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생명이 아니면 우리는 그 거짓말에 속아 버립니다. 그러니까 거짓말에 속고 싶은 사람도 없고 자기가 거짓말장이가 되고 싶어된 사람도 없습니다. 자기가 편하려 하다보니까 율법주의자가 되고 자기가 희생되려고 하지 않으니까 교리주의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탄도 원래는 천사였는데 왜 사탄이 되었는가 그것은 자기를 휘생하지 않으려고 하다보니깐 그래서 사탄이 돼어비리고 만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너무 편하게 하려다보면 거짓말쟁이가 되고 맙니다. 너무 편하게 너무편하게 그렇게 하려고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만 사탄에 동조해 버리고 맙니다. 자기만 편하려고 생각하다 보면 속아넘어가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남을 살리면 나도 살고 남도 살지만 내만 살자라고 하다보면 다음에 가서 거짓말쟁이가 되기 쉽습니다. 아버지가 자기 편하려고 하다보면 자식을 율법으로 다스리게 됩니다. 남편이 자기가 편하려고 하면 아내를 율법으로 다스리게 됩니다. 그러면 쉬우니까. 그렇게 하면 율법이 율법을낳고 율법이 또 율법을 낳아 결국 사망에서 사망으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사망은 사망을 낳고 그래서 위에서 그렇게 하면 아래서도 계속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상병이일병에게 그러면 일병은 이병에게 그렇게 하고 그래서 쫄병이 괴로운 것이 군대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서는 서로 높이 올라가려고 하지요. 어떻게 하면 하나 더 달까 그것만 꿈꾸고 있습니다. 하나만 더달면 그때부턴 그만큼 편해질뿐 아니라 자기도 그만큼 또 부려먹을 수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높아지려 합니다. 자 우리 사회가 서로 높아지려 합니다. 서로 대통령만 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사회자체가 율법주의적인 사회였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높은 사람은 편하고 낮은 사람은 괴로운 겁니다. 이조 500년 역사동안에 유교문명이 들어와서 그위에는 편하고 밑에는 괴로운 그런 사상이 도입 됐습니다. 그러니까 높이 올라가면 편하고 낮게 내려가면 괴로운 겁니다. 공무원들은 윗사람은 하루종일 가만 앉아 있어요. 창구에 있는 사람들은 손이 닳아지도 록 하루종일 일을 해요. 그러니 창구에 있는 사람은 언제 나도 저기 올라갈꼬 밤낮 그렇게만 생각하지 않겠어요 자기 하는 일에 소신이 생기기는 커녕 언제 올라가서 나도 저렇게 버티고 앉아 편해볼꼬 생각만 한단 말입니다.
이 사회가 그러니까 안될수 밖에 없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사회가 서로 높아지려고만 생각한단 말입니다. 자기 할일이 따로 없고 높아지는게 일입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집안에서도 높은 사람은 제일 편하고 낮은 사람은 제일 괴롭고 며느리는 들어가면 그 집안에서 제일 괴로운 사람이 됩니다. 그러니까 며느리는 내가 언제 시어머니가 될꼬 그러니까 사망은 사망을낳고 사망은 또 사망을 계속 낳게 됩니다. 어느 지휘관이 이런 방법을 썼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등병이 들어오면 무조건 쉬게 하고 제대얼마 안남은 사람들이 일을해라 계급이 높은 사람이 일을 하고 계급이 낮은 사람은 쉬게 하는 그런 정책을 썼다고 해요. 그렇게 하면 그곳에서는 생명에서 생명으로 사랑에서 사랑으로 가겠지요. 사실은 알고보면 그렇게 할때 일이 더 잘됩니다.
왜냐하면 초년병은 일에 대해 잘모르니까 견학을 좀 충분히 해야 눈에 익어 두렵지 않고 부담스럽지 않게 일을 할 것이 아닙니까 근데 아예 처음 들어온 쫄병을 뻉뺑이 돌리면 정신이 없어가지고 실수만 계속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제대할때가 다된 고참은 일에 대해 환하니까 일하는데 여유가 있고 천천히 해도 잘할수 있단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좀 여유가 생기는 그런 사회가 되겠지요. 근데 그렇게 되면 우리는 너무나 억압을 받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기어올라가 버릴 겁니다.
만일 군대에서 그렇게 하면 상관을 그만 깔고 뭉게 버릴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못하죠. 그래서 계속 악순환이 연속되는 겁니다. 안할수도 없고 할수도 없게 돼 버립니다. 구타 금지해라 명령을 내려 놓으면 한두달은 구타가 없다가 또 구타가 생기고 또 구타가 생기고 구타를 안하면 안되니까 말을 안들어 먹으니까 그래서 사망에서 사망으로 게속 흘러가는 사회가 이 사회가 된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자신을 우리에게 주심으로서 우리를 증인으로 삼고 자기를 우리안에서 보존하시려고 하시기 때문에 그의 사랑안에서 우리는 사랑에서 사랑에 이르고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러갑니다. 그러나 사탄의 세계는 자기가 편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망에서 사망을 주게 됩니다. 계속 내려 갈수록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분열에 이르게 됩니다. 처음에는 쉬운 것 같은데 뒤로 가보면 더 안되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는 처음에는 참 어려운 것 같은데 가면 갈수록 더 잘되게 됩니다. 한알의 밀이 땅속에 떨어져 죽으면 30배 60배 100배가 되기가 아주 쉽지만 밀하나가 그냥 그대로 있으면서 밀을 만들어 내려고 하면 그것은 참 쉬운 것 같지만 어려운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참 지혜로우시고 그가 지혜로운 이유는 그가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영이니 너희는 이것으로서 미혹의 영과 진리의 영을 구별할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많이 적그리스도가 일어 났으니 세상에 많이 나타났으니까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는것이니 곧 적 그리스도의 영이라. 오리라 한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안에 계신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시니라.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말을 듣니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말을 듣지 아니하느니라.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서 우리가 아느니라. 잘되는 집,못되는 집 보면 금방 알수 있습니다. 잘되어가는 곳 못되어가는곳 보면 금방 알수 있습니다. 장래성이 있는 곳, 없는 곳 금방알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평화가 평화를 주고 평화가 평화를 주면 잘되는 것이고 사망이 사망을 주고 사망이 사망을 주면 잘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직 희망이 있는 것은 그래도 아직 가정이라는 것이 있어 부모의 사랑이 자녀에게 흐르고 있기 때문에 위에서 흐르는 것이 있으니까 남아도는 것이 있으니까 그래서 사는 것이지 만일 부모마저도 강퍅해져 버리면 이사회는 완전히 매말라 버리게 될 것입니다. 어머니로부터 젖이 나오지 않으면 어린 아이는 마를수 밖에 없는 것처럼 그러나 다행이도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안에서 어머니는 애기를 낳으면 저절로 젖이 나오도록 그렇게 만들어 놨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흘러서 괴롭기 때문에 애기에게 주지 않을수 없는 어머니의 젖이 있기때문에 그래서 아직도 사람들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똑똑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위에서 흘러오기 때문에 흘러오는 은혜가 있기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살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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