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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살길이다 (요일2:15-17)

본문

우리 믿는 사람들은 비록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다(요15:19). 비록 지금 세상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고 있고,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과연 그런가 나는 지금은 비록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한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나라에 속한 자라고 믿는가 나는 오늘밤 이 세상을 떠난다 해도 천국에 있을 믿음이 있는가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고후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정말 내가 믿음에 있는가 정말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는가 정말 내가 영원의 때를 준비하고 있는가 돌아보아야 한다. 만약에 내가 교회 다니니까 구원 얻겠지, 내가 신앙생활 얼마나 했으니까 천국 가겠지, 내가 그냥 막연하게 나는 구원받았어, 천국갈수 있어,라고 생각만 해서는 안된다. 저는 지금까지 이런 것에 대해서 얼마나 소홀하고, 무관심하고, 소극적이었는지 모른다. 그냥 예수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잘되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복받는 삶이 되게할까를 염두에 두고 목회해 왔다. 구원은 예수 믿으면 구원 얻는 것이지, 그리고 그 다음에 대한 이런 일에 너무나 소극적이었다.
그런데 구원이라는 것이 그렇게 말같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성령님의 지혜와 지식으로 깨닫게 해 주셨다. 그러니 여러분이나 저가 얼마나 예수에 대한 믿음이 소극적이고, 안일주의적 이었는지. 거저 주일이니까 교회오고,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 되었으니까 예배를 드리는 이런 자세였다. 믿으니까 구원은 따 놓은 당상이고, 그러다 보니 성경에서 말하는 멸망에 대해 무감각해 진지 벌써 오래다. 그러니 하나님께 대한 열심도 없고, 내 영혼의 때를 위한 준비도 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은 ‘정말 내가 믿음에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성경은 무엇이라 말하는가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는 하나님께 버리운자 되어, 바깥 어두운데 내어 쫓겨 슬피 울면 이를 갈든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구덩이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받으며 살 것이다. 저는 여러분의 영혼을 맡은 자로 여러분들의 영혼이 하나님께로부터 버리운자 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 갈 때까지 영혼을 이끌 목자로서 여러분 중 어느 누구 한 사람도 멸망에 이르지 않고 영생에 이르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어 지려면 오늘 목사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는 한 말씀, 한 말씀이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시기 위하여 내게 주시는 생명의 말씀으로 받고 믿어라. 이 말씀이 내 영혼을 살리기 위하여 주시는 축복의 말씀으로 받아라.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 하라 말하는가
1.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15)
1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16) 이 세상이나 세상의 있는 것들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고 말하고 있다. 육신의 정욕 육신(肉身)은 말 그대로 우리의 몸덩어리. 정욕(情欲)은 이 끄는 대로 따라가는 마음. 우리의 육신은 할 수만 있으면 먹고, 마시고, 입고, 쉬고, 자고, 놀고, 자기만 알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이 육신이다. 그러니 육신의 정욕은 할 수만 있으면 우리를 그런 쪽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 그러니 맨날 우리들은 이것 하다가 시간 보내고, 세월 보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것은 먹고, 마시고, 입고, 자고, 놀고, 자기마음대로 하고, 자기만 알게 하는 존재로 창조한 것이 아니다. 이 육신의 것들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님께서 하게 하시는 일들을 위한 수단이요, 방편으로 주셨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의 일들을 위하여 주신 것이다. 창세기 1장에서 천지를 창조하셔서 인간에게 주시고, 창세기 3장의 에덴동산을 주시며 거기에 생명과와 선악과를 주신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그 모든 것들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하여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을 얻게 하시는 이 일을 위하여 육신의 것을 주셨다. 여러분! 세상에 있는 것들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직장, 돈, 먹고, 마시는 것들, 입는 것들.
그런데 그것이 정욕이 되어버리면 그것이 죄가 된다는 사실이다. 정욕(情欲)이 무엇인가 마땅히 품어야 할 그 이상을 품는 것을 말한다. 주신 것의 목적을 바로 알지 못하고 어긋나서 행하는 것이 정욕이다. 우리가 육신의 정욕대로 살아 왔다면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인간의 삶이 아니라 우리는 이성이 없는 짐승과 같은 삶이다. 만약에 육신의 정욕대로 산다면 짐승과 무엇이 다른가 먹고, 입고, 마시고, 자고, 놀다가 죽는 짐승과 다를 바 없다. 우리가 육신대로 살면 우리의 결국 영원한 멸망에 빠져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누가복음 16장 19-31은 육신의 정욕대로 살다가 생을 마친 한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는 부자 였다. 좋은 옷을 입고 살았고, 날마다 잔치하며 호화로이 연락을 즐기며 살았다. 그의 대문간에 생명의 부지를 위하여 찾아온 거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그에게 곧 다가올 육신의 삶의 끝도 생각하지 않고 거저 먹고, 마시고, 입고, 노는 일에 정신이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인생에 종말이 와 그는 죽어 지옥에 갔다(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아니라 해도 사람에게는 끝이 오고, 그 끝의 결국은 드러나게 되어 있다. 만약에 당신이 오늘 먹고, 마시고, 입고, 노는 일에 정신없이 살고 있다면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부자처럼 지옥의 고통을 피할 길 없다). 그가 있는 지옥의 고통은 상상할 수 없는 곳이었다. 죽고자 하나 죽을 수 없는 곳, 물을 마시고자 하나 마실 수 없는 곳, 다시 돌이켜 그 음부의 고통을 피하고자 하나 돌이킬 수 없는 곳, 이곳이 육신의 정욕을 쫓아 살았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이다. 오늘 당신이 육신의 정욕대로 사는 것, 즉 먹고, 마시고, 입고, 놀고, 즐기는 이 일에만 정욕을 사용하는 것, 이것을 하고 안하고는 여러분에게 달려있지만 그 결국은 음부의 고통을 피할 길이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라. 오늘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상관없는 육신의 정욕을 쫓아, 즉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과는 상관없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육신의 정욕의 결국이 어떠함을 알아 정신을 차려야 한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결국이 뻔하지 않는가 육신의 정욕대로 살면 분명 음부의 고통을 피할 길 없는 사실. 저는 여러분이 육신의 정욕대로 살기를 원치 않는다. 왜 그의 결국은 음부의 고통을 면할 길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세상이나, 이 세상의 있는 것들은 육신의 정욕대로 하기를 원한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내가 하고 싶다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과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하려는가 내가 하기 싫다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다른 사람들과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하지 않으려는가 아니다. 그래서는 안된다. 육신의 정욕의 결국은 영원한 사망이다. 또 이 세상이나, 세상의 있는 것들은 안목의 정욕에 이끌리게 하는 것이다. ‘안목(眼目)의 정욕’이라는 것은 ‘쳐다봄으로 이끌리게 하는 것’, ‘이끌리게 하는 것’은 거기에 마음을 쏟게 해서 정말 쳐다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바로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 우리를 쳐다봄으로 이끌리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쳐다보아야 할 하나님은 쳐다보지 못하게 하고, 쳐다보아야 할 천국은 보지 못하게 한다. 이 세상에 있는 것 그 어느것 하나도 쳐다봄으로 우리의 영혼에 유익을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오히려 우리의 영혼의 손해를 가져오게 하고, 하나님과 천국에 대해 소경이 되게 한다.
그런데 쳐다 보게 함의 결국은 무엇인가 이끌리게 함이다. 마음을 쏙 빼버리게 하는 것이다. 마음을 쏙 뼈버리게 한다는 것은 죄를 짓게 만든다는 것이다. 죄의 결국은 사망이다. 여러분들이 지금 세상에 있는 안목의 정욕에 이끌릴 때 가져오는 영적인 결과는 무엇인가 TV를 쳐다볼 때 재미있고, 신난다.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것 같다. 그러나 그 TV가 우리에게 영생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영을 무디게 한다. 하나님께 대한 관심이 없게 한다. 하나님을 쳐다보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이 안목(眼目)의 정욕에 사로 잡혀 있다. 안목의 정욕은 사람에게 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사망을 가져다준다. 하와가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본 결과가 무엇인가 따먹지 말라는 것을 따먹어야 하겠는다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이생의 자랑이다. 이생의 자랑이 무엇인가 자랑은 가지고 있을 때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다. 없는데 무슨 자랑이 있겠는가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자기 소유에 사로 잡혀 자꾸만 소유욕에 이끌리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소유한 그것을 자랑하며 살게 하는 것이다. 한 번 보라.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의 모두가 다 ‘누가 얼마나 가졌는가’,‘누가 얼마나 있는가’이것이 관심이 아닌가 그래서 남보다 좀더 많이 가져 그것 자랑하려고 얼마나 동분서주하게 하는가 왜 돈을 버는가 소유하고 싶어서, 왜 소유 그것이 자기의 자랑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세상은 여러분과 저가 이 소유욕에 빠져 가게 한다. 그래서 그것이 자기의 힘이 되는 줄로 믿게 한다. 그러나 여러분과 저는 이 소유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이생의 자랑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많이 소유한들 그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다. 죽을 때 싸가지고 갈 것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무엇하지 말라고 하는가
2사랑치 말라. 사랑한다는 것은 ‘좋아한다’는 것이고, 또 그것이 다 인줄 알고 그것에 마음 푹빠지지 그것을 위하여 쫓아가는 것을 말한다. 여러분과 저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대해 얼마나 좋아하는가 하나님은 없어도 그것은 놓칠 수 없다는 자세이다. 그것이 다인줄알고 그것을 얻기를 위하여 얼마나 푹빠져 있는가 지금까지 솔직히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성경은 이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한다.
3이유가 무엇인가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15하) 아버지의 사랑이 무엇인가 죄로 말미암아 영죽을 나를 위하여 나의 죄를 대속해 주신 그 예수. 그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질 영생, 이 영생이 있도록 하는 것이 아버지의 사랑이다. 하나님은 어떻게 하든지 우리 사람들에게 영생이 있기를 원하신다. 독생자를 희생해서라도, 그의 아들을 죽여서라도 이 영생이 있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영생만이 진정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뿐인가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17)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있다가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영원한 것이 아니다. 없어질 것이다. 만약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이 영원한 것이면 그것을 붙잡아야 한다. 그러나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업을 하고자 할 때에 승산이 없는 사업은 하지 않을 것이다. 결과가 뻔한데 왜 투자를 하겠는가 이 세상에 있는 것, 그래서 우리가 그것이 최고이고, 다 인줄 알고 쫓아가는 것중 그 어느것 하나 영원한 것이 없다. 이것은 나의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그렇다면 그렇게 되지를 않았는가
그런데 이 세상의 임금은 마귀는 속인다. 창세기 3장에 하와를 유혹하여 넘어지게 한 사탄의 전술을 보라. 창3:4-5 결코 죽지 않는다. 그것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 그러니 먹어라. 사탄, 마귀는 오늘날 우리에게 속인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속인다. 돈이 있어야 먹고산다는 것이다. 잘 입어야 남들이나를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이다. 하나님 없이도 잘된다는 것이다. 세상에 있는 그것이 능력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돈을 주냐, 밥을 주냐, 입을 것을 주냐. 그렇게 해봐야 빌어먹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있는 그것이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힘라는 것이다. 그것이 최고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분명 생명과를 먹으면 살고,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는다고 했는데 오히려 선악과 따먹어야 산다는 것이다. 잘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와가 얼마나 그 말에 잘 동의하고 움직이는가 그래서 그것이 진짜인줄 알고 그 말을 듣는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사탄 위에 계신분인줄 믿는가 하나님이 사탄을 휘어잡고 있다고 믿는가
그렇다면 세상의 임금이 말하는 것,‘즉 돈이 있어야 산다. 그러니 하나님보다 돈을 더 벌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주일날 교회가지 말고 돈 벌로 가라’는 사탄의 말은 들으면서도 생사화복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은 왜 믿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따먹으면 죽는다고 금한 선악과는 어찌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잘 믿고, 잘 따르고 있는가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정말 내가 믿나, 안 믿나를 우리의 삶을 보면 알 수 있다. 여러분! 마귀의 말에 속지 말자. 절대 동의하지 말자. 요8:34에 사탄은 거짓의 아비라고 했다. 또 요 10:10에 그가 오는 것은 죽이고, 멸망하게 하려고 온다고 했다. 실제 적으로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말에 동의하고 그 말을 쫓아 간 결국이 무엇인가 창3:8에 숨었다는 것이다. 떴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창3:10에 두려워 숨었다는 것이다. 창3:14에 종신토록 고생하며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창3:19에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창3:23에 축복의 땅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세상과 이 세상의 것을 사랑함의 결국은 사망이다. 우리를 복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은 달콤하고, 재미있고, 신난다. 그러나 그것은 잠간의 것이지만 멸망의 결국은 영원이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왜 당신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이 생명인줄 알고, 능력인줄 알고, 힘인 줄 알고, 그것을 그렇게도 사랑하고 쫓아가는가 그것 위에 계시는 능력의 하나님, 생명의 하나님, 힘의 하나님, 왜 그 하나님은 붙들지 못하는가 왜 먹고, 마시고, 입고, 쉬고, 노는 일에는 힘을 다하여 쫓아가면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하루는 그렇게 아깝고,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는 왜 그렇게 지루한가 문제가 있으면 이 사람, 저 사람, 이런 방법, 저런 세상의 방법은 찾아 해결하려고 하면서,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있는 모든 것위에 계시는 하나님께 기도는 하지 않는가 잠시 머물다가 갈 사람 기쁘게 할 줄은 알면서 영원히 계시고, 그리고 그 영원히 계시는 하나님 앞에 있어야 할 우리들이 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은 관심이 없는가 여러분! 속지 말자. 세상이나, 세상의 있는 것들은 지나가는 것이다. 영원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쫓아가면 우리에게 멸망을 가져다 올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그것이 나를 잘되게 하고, 나를 살려주고, 나를 복되게 하는 것인줄 알고 일평생 쫓아 왔다. 이 얼마나 분한가 사탄에게 속아 그것이 진짜 인줄 알고 일평생 의지하고 쫓아 온 것들. 우리는 사탄에게 속아 온 것에 대해 가슴을 찢어야 한다. 분통으로 여겨야 한다. 그리고 내가 다시는 이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지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성경에 이 세상이나, 이 세상의 것들을 쫓아간 모든 사람들은 망했고, 죽었다. 여리고 성을 정복하려 갔던 이스라엘 백성 중에 아간이 세상의 것 탐내다가 망했고, 그 어느 누구도 감당할 수 없었던 엄청난 힘의 소유자 삼손도 세상의 것 쫓다가 망했고, 엘리야의 종 게하시가 세상의 것을 쫓다가 문둥병 걸렸다. 망하지 말자. 손해보지 말자. 영원히 살자. 영원까지 남을 수 있는 것을 붙잡자. 그럴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하는가
2.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17하) 이 세상도, 정욕도 지나가는 것이다. 멸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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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원한 것이 있다. 여기서 ‘영원하다’라는 말은 없어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즉 살게 하는 생명이라는 것이다. 잘되게 하는 것이며, 복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라는 것이다. 여러분!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것을 붙들고 멸망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것, 잘되게 하는 것, 복되게 하는 것을 붙들기를 바란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가 이것을 붙들기를 바라고 있다. 이것 붙드는 것이 가장 복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2무엇이 영원한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가 영원하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의 뜻은 ‘우리 사람들이 멸망치 않고 모두가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일을 위하여 오신 이가 예수님이시다. 이 예수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영생을 약속하셨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영원히 거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인 예수를 믿는 길이 우리가 살길이며, 이 예수를 붙드는 것이 영원히 복되게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 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가 생명이며, 이 예수를 믿는 것이 영원히 사는 것이다.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영의 생각이 무엇인가 예수만이 나를 구원하실 분이다. 예수만이 나의 능력이다. 이것을 믿는 이가 생명과 평안이 주어진다고 했다. 돈이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있는 그 어떤 힘과 권력이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생명이며, 예수를 믿고 붙드는 길이 살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명있는자 되어지기 원한다. 생명은 어디에 있는가 예수에게 생명이 있다. 예수님에게 우리의 살길이 있다. 예수님에게 우리의 능력이 있다. 예수님에게 우리 문제의 해결이 있다. 예수만이 우리를 영원히 거하게 한다. 예수만이 우리에게 만족을 준다. 예수만이 우리에게 평안을 준다. 사도행전 3장에 배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말한다. (행 3: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라 하고 앉은뱅이가 일어난 것은 예수 때문이다.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은 돈이 아니다. 예수님이시다. (요일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를 믿는 믿음이 세상을 이기게 한다. 왜 그런가 요16:33에 예수님이 세상을 이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지금까지 어떠했느냐 요한복은 6장에 보면, 사람들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에게는 별 관심이 없고, 예수님이 나눠주시는 육신의 떡에 관심이 있었다. 그들을 향해 영원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자신을 이야기 할 때에 그 말이 어렵다고 하면서 다 예수님을 떠나고 말았다. 이것처럼 우리가 생명의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생사화복의 주관자가 되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적으로 어떻게 했는가 예수님에게 살고 죽는 것이 달린 줄 모르고 나에게, 사람에게 살고 죽는 것이 달린 줄 알고 살려고 얼마나 발버둥을 쳤는가 예수에게서 길을 찾지 않고 다른 곳에서 살길, 문제 해결의 길을 찾았다. 예수가 일으킬 것이라 믿지 않고 금과 은이 내 가정을, 내 식구를, 내 믿음을 일으키리라 생각하고 얼마나 열심히 쫓아 왔나 예수가 환난을, 핍박을, 어려움을 이기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지식과 열심히, 내 노력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간다 여기고 쫓아 왔다.
그런데 내 노력과 열심히 그것이 되던가 여러분! 저는 교회를 일으키는 것이, 목회가 잘 되는 길이, 내 열심과 내 노력과 내 지식과 내 학문과 내 똑똑과 사람의 방법과 사람의 이론으로, 사람들이 겪었던 경험으로 이루어 지는 줄 알았다. 그러니 그것이 길 인줄 알고, 방법인줄 알고, 해결책인줄 알고 얼마나 열심히 쫓아 왔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길이 그런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알았다. 예수님이 하심을 믿는다. 저는 목사로서 성도들에게 주어야 할 것이 천국은 믿으면 주어지는 것이고, 이 세상에 몇 가지 잘되고, 좋은 물질의 축복, 건강의 축복, 이 땅에서 복된 삶인 줄 알았다. 이 땅에 지금 현실적으로 당하고 있는 그 어려운 일들을 어떻게 하면 헤쳐 나가고, 그래서 승리의 삶을 살게 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심을 갖고 말씀을 전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문제 해결의 방법이 아니라, 문제의 해결자 되시는 예수다, 몇 가지의 축복이 아니라 축복의 근원이신 예수, 이 예수를 주어야 하는 것을 너무 몰랐다. 예수는, 하나님은 하나의 악세사리로, 폼으로 얼마나 여겼는지 저가 요즘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가슴 아파하는 부분이 이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것은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러 오셨는데
그런데 이 목사가 생명의 주님은 주지 않고, 생명의 주님께서 별로 귀하게 여기시지 않는 그런 것을 주던 내 모습을 보고, 오늘은 이 생명의 예수인 자신을 줄까 기대하고 왔다가 실망하고 돌아서 가셨던 주님의 뒷모습이 얼마나 가슴 아픈지 모른다. 이 생명의 예수, 문제 해결의 예수, 능력의 예수, 소망의 예수, 이 예수를 주라고 세워 놓았는데 이 예수를 주지 못했으니 얼마나 죄송한지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나 망하는 줄 모르고, 나 죽는지 모르고 사탄의 속임수에 속아 얼마나 많이 살아 왔나. 그래서 육신의 정욕에, 안목의 정욕에, 이생의 자라에 빠져 살아왔다. 돈이 힘이고, 돈이 능력이고, 돈이 최고인줄 알고,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이 살길인줄 알고 쫓아 왔다. 그러나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지나간다. 없어진다. 오히려 멸망을 가져 올 뿐이다. 그러나 영원히 거하게 하는 것이 있다. 우리가 망하지 않고, 살길이 있다. 예수가 우리를 영원히 거하게 한다. 예수가 우리의 능력이다. 예수가 우리의 소망이다. 예수가 우리의 힘이다. 이 예수를 믿자. 이 예수를 붙들고 살자. 이 예수 놓치지 않기 위하여 몸부림을 치자. 이 예수 놓치면 나 망하는 줄 알고 예수 믿자. (마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 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세상의 것을 얻은들 예수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예수 없는 물질, 예수 없는 건강, 예수 없는 부요, 예수 없는 형통은 부요가 아니다. 건강이 아니다. 형통이 아니다. 비록 그런 것은 없다고 할지라도 예수만 있으면 슬픔 많은 이세상도 천국이요,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디나 하늘나라며, 할렐루야 찬양하며 살 줄 믿는다. 여러분! 정말 이 예수 믿자. 이 예수 붙들자. 이 예수 의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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