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의 욕망 (요일2:16-17)
본문
16117절입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다 아버지 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 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지난 시간에 우리가 16절 , ,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육신의 정욕, 욕심, 욕망, 그리고 눈들의 욕심, 욕망 그리고 생의 자랑를 하다 중단했습니다. 우리말로 육신이라. 이는 본래 원 뜻은 우리말 대로살 이라는 뜻입니다.살 하고 하고 어원이 같은지 모르겠어요.살! 그리고 히브리어로는바싸르인데 이게바싸르 의 뜻이 번역되어 있다고 할 것입니다.
첫째의 의 뜻은살 이라 그런 뜻이고 우리 몸에 있는 그런 육을 뜻하는 살이고, 두번째 뜻이 우리 의 전 몸을 지시를 합니다. 우리의 육체, 전 몸! 구약에 있어서 라는 말로 를 뜻할 때는 우리의 전인격을 몸으로 전인격, 우리의 전존재를 나타낸 것입니다.
그런데 라고 하는 말이 성경에서 .으로 표시를 했습니다. 죄아래 놓여있는 그와같은 인간 의 본성, 인간의 존재를 가리켜서 로 표현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의 저자가 말하려 고 하는 것은 인간은 죄아래 있는 존재라! 그 존재방식이라! 세상적인 인간적인 악한 죄성 을 뒤집어쓰고 죄성을 가진 그런 것보다는 물론 거기에서 나왔지마는 라고 하는 말 로, 또 일반 세속에서도 이 를 성적인 욕망과 탐욕 많이 먹음, 그런 것의 차이로 를 표시했습니다. 순전히 죄의 근원의 차이로 를 표시를 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볼 때에 이육신의, 육의 욕망이 무어냐 하면 다른 것이 아니고 바로 성적인 욕망을 말한다고 하겠습니다. 육이 바라는 것은 대부분 성적인 죄된 행위를 즐 기려는 그와같은 욕망을 여기서 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기이한 것은 우리 인간의 생존 의 그 방식이, 기관이, 기구가 죄악을 짓는 제일원이 되는 노릇을 하게 된다고 하는 데에 주의점이 있습니다. 통상 모든 육신의 마지막 욕망은 성적인 욕망에로 귀결하는 것을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혹 그런 영화를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라는 제목의 영화인데, 제목이 돈과 여자와 명예라. 사람이 명예도 추구하지만 성적인 향락, 쾌락을 전적으로 즐기는 것으로 그 영화가 진행되다가 마지막에는 그 죄악으로 인해서 모든 것을 실패하고 내버려두고 혼자 외롭게 살고 있는 본부인에게로 되돌아가서 속죄를 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이 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특별히 남자들이 돈 많이 벌면 항상 성적인 향락, 이와같은 일을 하므로 사람이 되고 남자가 되는 것으로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 법이 근절되도록 우리 한국교회 가 노력해야 될 터인데 사실은 우리 한국교회가 성적범죄로 과도히 방임하고 이 법이 참으 로 또 무서운 법인줄 알지 못하고 있어서 하나님께 (송구한) 것이 많습니다. 그 다음 두번째 눈들의 욕망이라! 눈이 우리 신체기관에서 가장 연약한 기관입니다. 그렇지만 가장 존귀한 기관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눈으로 봄으로 모든걸 알기 때문입니다. 봄으로 바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 눈처럼 좋은 기관이 우리에게 없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봄으로 바로 압니다. 바로 본다는 것이 안다는 것입니다. 본다고 하는 것은 빛을 전제합니다. 일면에 있어서는 눈이 빛의 역활을 하는 기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중에 눈을 쓰지 못하는 사람만큼 불행한 사람 이 아마 없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기관이 눈이고 가장 존귀한 기관이 눈인데 눈이 단지 봄으로 아는 것뿐만 아니라 눈이 또 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을 봄으로 알 기를 바라는 그와같은 지식의 욕망들도 눈이 추구하는 것 중에 미를 추구하는 것이 가장 두드러진 현상이라고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일 만족을 못하고 방황하는 것은 이 미적인 감각의 반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플라톤도 보면 눈으로 보는 것으로 나타나는 미의 아름다움! 아름다움이 우리의 영혼에 미치는 영향을 잘 묘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움하고 그것을 위해서 영혼이 각성할 때 그리고 자기가 있던 본래의 처소 저 이데아 의 세계를 그리므로 철학을 할 수 있게 된다고 하는 시가를 미의 눈뜸에서 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알뿐만 아니라 미를 추구하는데 중요한 역활을 합니다. 미의 추구!
그런데 이런 미의 추구에 있어서 정말 보니까 얼마나 절실합니까 대학교 내 친구 하나가 안경을 끼다가 부러져서 안경을 못끼고 며칠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새로 고쳐서 끼고 서울 거리를 바라다 보니 그렇게 서울이 아름다워서 모든 광 경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면서 찬탄하는 소리를 제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미의 추구가 단순한 이와같은 미, 아름다움 그 자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 관해서 이야기 하기 때문에 눈이 사 실은 그 아름다움의 추구를 통해서 사실 감각적인 데 그리고 성적인 데 귀착하는 것을 여 기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많은 것을 봄으로 많은 호기심을 만족시키지요. 그런 호기심을 만 족시키고 미적인 감상을 높이는 그런 일도 하지만 사람들이 타람함으로 인해서 아름다운 그냥 순수한 자연에서 보다 사람들의 육체에서 더 많은 아름다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렇 게 자꾸 미의 추구가 마침내는 감각적인 것에로 이끄는 그와같은 데로 나아가고 마침내는 성적인 욕구의 충족에로 나아갑니다. 눈으로 봄으로 직접 그런 물론 성행위를 직접 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이 욕망이 발동함으로 많은 경우에 직접 육체적인 행동으로 진행되지 않아 도 성적인 욕구를 많은 경우에 충족시키는 일을 합니다. 그러니 이 눈들의 욕망이 큰 죄의 근원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보지 않았으면 많은 경우에 죄짓지 않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 고도 아름다움으로만 그칠 수 있으면 그건 큰 죄를 구성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을 보고 아 름답다고 하는 것은 끝까지 참으로 좋은 것이고 전혀 죄를 구성하지 않지만 거기서 나아가 서 그 다음 단계로 우리 욕망이 발동할 때에 죄를 구성합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차라리 네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 보다 네 눈을 뽑아버리는 것이 낫다. 그냥 죄가 아니라 이 남녀관계에 연관시켜서 눈을 뽑아버릴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안보면 좋은 것을 자꾸 눈을 자극하는 것이, 현대문명은 항상 눈을 자극하는 데로 많 은 것이 발달하고 있습니다. 눈을 자극하는 것을 통해서 육적인 욕망을 육의 욕망이 충족되도록 현대문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서울에도 보면 상당히 많은 경우에 영화 선전물들이 그렇게 거리거리마다 아무런 규제없이 상당히 많은 몸을 드러낸 부분들이 붙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아무도 개의하지 않고 그저 아무렇지도 않 게 정상적인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런 것도 문제지만 자꾸 보면 모든 것을 나중에 상품화 해서 못할 것이 없습니다. 많은 광고들이 거의가 다 이와같이 육의 욕망에 특히 감각적이고 성적인 것에 호소해서 상품을 사도록 그렇게 향락에 빠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눈이 바른 것을 보고 바르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그렇게 통제되어야 하고 죄악된 욕망이 눈을 지배하는 것을 막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 기독교회가 많은 수적인 번창과 성장을 가져왔어도, 천만의 기독교도가 되면, 25% 이상 되어야 기독교가 그 사회의 주도적인 세력으로 역사할 수 있다 그래서 그것이 강하게 호소력을 갖고 전국 복음화 운동, 전국 신자화 운동이 많이 진행되었습니다. 지금은 정말 많은 교회들이 부흥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부흥이 사실 이 사회를 바로잡고 도덕적으로 교도하는 입장으 로 진행되지 않고 사실은 부흥과 부흥 그것으로 지나친 교회가 이상한 데로 엉뚱한 데로 전혀 그 자체 교회의 큼으로 해서 세력을 행사하고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서 교회에 소속된 주요한 직책자들이 권력을 행사하며 그리고 특별히 목사가 많은 경우에 자기의 자율권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는 그런데로 진행됐지 정말 교회가 이 민족의 양심으로 이 민족을 개혁하는 이 민족을 망하지 못하도록 하는 소금으로 빛으로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감각적인 문화가 계속해서 번져가고 아무런 제재없이 지나가도 교회가 아 무런 소리를 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교회가 이렇게 이 교회내에서 7계 문제를 등 한시 하면 교회가 어떻게 밖을 향해서 그와같은 일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각성을 하고 결국 교회가 각성을 한다는 말이 교역자들이 각성을 하는 것인데 결국 그것은 신학교 문제에 귀착합니다. 신학과 신학 교육의 문제에 다 귀착합니다. 결국 뭐니뭐니 해도 내가 여러번 말했던대로 세계의 마지막 문제는 신학의 문제로 귀착한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참으로 각성해서 이와같이 감각적인 향락에 호소하고 이와같은 문명이 자꾸 반복되는 것을,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햇지만 현대 문명이 이와같이 육신의 성적인 욕망 그리고 쾌락의 모든 것을 가능한 것으로 하지 못할 것이 없는 것으로 해놨습니다. 미국처럼 청교도의 강한 성도덕이 지배해서 정말 7계를 범했을 때 자살하지 않으면 사회를 출입할 수 없던 그와같은 사회가 이제는 전혀 그와같은 죄들이 죄 로 여기지 아니하고 사회의 정당한 관습으로 진행되게 되어 왔습니다. 이와같은 것들을 할 수 있는대로 막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한국 사람들이 전에는 그걸 내가 느끼지 못했는데 외국에 갔다오니까 내가 전에도 한두번 말했습니다마는 우리 한국 남자들이 전에는 여자들만 그런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까 남자들도 마찬가지! 내가 물어봤어요. 재단사에게! 그렇게 다 옷이 비치도록 투명하 게 옷을 만드는데 그것이 소비자들이 그렇게 원하느냐 재단사들이 그렇게 말을 합니다. 보면 우리 한국, 특별히 남녀 다 그렇지만 우선 여자들이 여름에 보면 옷이 일단 다 투명하 게 입는다. 그래가지고 속이 다 들여다 보이도록 살이 다 들여다 보이도록 그렇게 입습니다. 여름 되면 미국 같은데도 핫팬티를 입고 앞만 가리고 배도 다 드러내놓고 여자들이 그 렇게 하기는 하지요. 아예 다 노골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어요. 그러나 구 라파에서 보면 여자들이 옷을 한 겹을 입었는지 두겹을 입었는지는 모르지마는 속이 투명 하지를 않습니다. 전부 다 안이 다 비치지 않도록 짙은 색을 넣고 그리고 그렇게 속모양이 다 들여다 보이도록 입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돼서 우리 한국만은 그렇게 옛날에는 무 릎 위로 치마를 올리지 못했는데 어떻게 돼서 다 그렇게 다 투명한 옷을 입어서 옷을 입어 도 다 몸이 드러날 수 있도록 옷을 입고 다니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쳐야 될 것입니다. 아 이 유행이 그러는데 사회가
그런데 어떻게 할 것입니까 왜 천만이 되는 기독교가 이와같 은 풍습을 고치지 못합니까 우리 한국에는 기독교 신문이 없지만 화란 같은데는 기독교 신문이 영화 광고를 내도 기독교 신문에는 영화 제목만 내지 영화 장면 소개하는 것을 내 주지 않습니다. 영화 광고가 우리처럼 매일 신문에 광고가 나오는게 아니고 꼭 나올 때가 있어요. 그 주에 한번! 우리는 그냥 매번 영화 광고를 신문에 크게 내고! 지금은 텔레비젼 이 많이 생겨서 영화관에도 잘 안가고 VCR이 생겨서 남의 눈을 의식하면서 봐야 하는 그 와 같은 프로그램들을 잘 본다고 하는 그와같은 이야기들이 있는거 같은데 이런 것들도 다 막을 수 있고 재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기독교가 이만큼 양적으로 성장했 으니 이제는 사회에서 기독교의 법이 세워지도록 교회가 노력해야 될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이생의 자랑이라우리말로 그 렇게 번역했는데 나전어 성경으로 보니까부(재산들)의 자랑 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 번역도 제가 볼 때는 상당히 잘된 번역으로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결국 뭐니뭐니 해도 사람은 돈 자랑입니다. 결국은! 돈의 추구를 위해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제일 크게 열등의식을 느끼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결국은 돈의 부족 결핍이라고 할 것입니다. 돈 자체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돈 자체로 보면 돈이 모자란 것이 죄지요. 오히려! 많은 경우에! 우리도 돈이 많으면 남을 도울 수 있다. 선한 일 을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학교가 이렇게 어려움 당하는 것은 돈 이 모자라니까 그렇지요. 돈 있으면 정말 그것이 좋게 사용되므로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돈을 많이 모으는 데서 그 사람의 사람됨을 그 사람의 가치를 측정 을 합니다. 특별히 연예계 같은 경우에는 이것이 결정적으로 두드러지지요. 얼마만큼 돈을 받느냐 어떤 자리에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만큼 돈을 받고 있느냐 돈의 받는 액수가 그 사람의 가치를 전부를 결정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서 정말 혈안이 되고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결국 사람은 돈 자랑이요. 물론 한국에는 벼 슬내는 것을 더 자랑으로 여기지요. 그러나 그 벼슬되는 것이 자랑이 될 수 있는 이유가 한 국에서는 결국 벼슬함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에 귀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에 오복이 무엇이냐 수부귀.부가 먼저고 귀가 다음에 옵니다. 돈 많이 벌고 그 다음에 출 세하는 것! 왜 이것이 생의 자랑, 돈의 자랑이 그렇게 죄된 것이냐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위 대함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너무 돈을 버는 일에 너무 과도히 자기의 정도를 벗어납니다. 그래서 이 자기의 에고 자기의 낯을 위해서 못할 것이 없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그러니 까 항상 사람들에게는 어떤 욕망이 있느냐 하면 자기를 자기 자신을 실제보다 항상 더 크 게 보이기를 바라는 욕구가 있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대부분 좋은 것입니다. 사람이 동물하 고 다른 것이 있다면 이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자기가 위대하다고 하는 것, 자기가 남보다 다르다고 하는 것을 나타내 보이려고 하는 욕망이 정말 좋게 사용됨으로 인류 문명을 이렇 게 발전시키는 동력이 됐다고 할 것입니다. 그것 없으면 사람들이 모험하지 않을 것이고 정 말 고생을 감내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코닥을 만든 죠지 이스트만의 이야기를 혹시 아실련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가난 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난의 공포가 늘 그를 엄습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이 가난에서 평안히 모시기 위해서 정말 그가 잠을 자지 아니하고 하루에 16시간 이상을 혹은 18시간까지 자기 연구실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정말 수고에 수고를 다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가 사실 코닥 필름을 만들어 냈습니다. 사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코닥이 뭐라는 말뜻인지도 모를 때부터서 한국에 있는 필름들은 전부다 코닥 필름들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사쿠라니 여러가지가 많지마는 정말 코닥 하면 필름을. 근데 그가 자기의 가난을 벗기 위 한 피나는 투쟁에서 큰 돈을 벌고 지금도 여러분 주주 주식 나올 때 보면 이스트만의 코닥 의 주가 상당히 높은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도 사실은 위대하다고 하는 말 듣기를 그렇게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그와같은 칭찬 받음으로 그도 사람이어서 참 큰 결실을 거둘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자기를 남보다 크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너무 많이 과도히 상도를 벗 어나는 짓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사실은 죄의 원천이지요. 이것이 좋은 것이기도 하지만 죄의 원천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 사회는 욕망을 절제해주는 그와같은 아무런 통 제기관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싶은 욕망, 자기가 크다고 하는 것을 나타내 기 위해서 못할 짓이 없습니다. 그것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든, 또 정치적인 그런 일들도 다 결국은 자기 욕망 자기 이름 남기기 위해서 내가 얼마만큼 큰사람인가를 보이기 위해서 그 렇게 수고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여기 인제 우리말로 이생의 자랑이라고 했는데 생의 자랑이라고 하는 말의 자랑은 실제보다 과장하는 것을 말합니다.는 실제보다 항상 더 과장 해서 부풀리는 것을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항상 사람이 자기의 욕구가 자 기의 그것이 충족되지 못하므로 자기의 자아충족이 못되니까 밖으로 무엇을 부풀리므로 자 기의 권력을 높이므로 지위를 높이므로 돈을 많이 모으므로 자기가 크다고 하는 것을 나타 낼려고 너무 많은 하지 못할 짓을 상도를 벗어난 짓을 많이 합니다. 이런 것들이 죄악의 원 천입니다. 여러분이 .의 글에 보면 그 체면을 위해서 그냥 높은 사람 비행기를 타고 가도 호텔 자 리에 한바퀴 빙 이렇게 돌고 내가 이렇게 크다고 하는 것을 나타낼려고 하다가 비행기가 막아서 출발하지 못했다고 하는 그와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항상 자기가 크다고 하는 것 을 나타내기 위해서 하지 못할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나는 일을 너무 많이 탈선하고 있습니다. 그런면에 있어서 정상적인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생각해보면 참 그럴까 싶을 것입니다. 내 대학교 때 친구 하나가 의과대학생이었는데 정신의학을 배우니 정말 정상적인 인간 이 몇이나 되는지가의문이라! 그런 이야기를 하는걸 제가 들었습니다. 정말 이 인간이 걸어야 될 정상적인 궤도로 걷지 아니하면 이와같이 외적인 것으로 자기 를 부풀리는 그와같은 죄악을 범하기가 쉽습니다. 자기를 실제보다 더 부풀리는 것은 자신 을 위증죄이니까 거짓말하는 죄에 해당합니다. 그러니 참 하나님을 믿는 자는 그리고 하나님을 믿으므로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아는 자는 그 이상의 가치를 부여받을 길이 더 어디 있습니까 더군다나 우리 한국교회에 예수 믿는 것이 그렇게 값진 것이 못됩니다. 가 진 것이 모든 것의 척도일텐데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예수 믿는 것 자체가 그렇게 복되고 자랑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제가 그런 자랑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요새 최근에!
그런데 최근에 한번 들어봤어요. 동원훈련 가 가지고 군대 장교가 와서 같이 있는데 대위 계급장을 단 사람이 목사님 제가 전도사입니다. 아니 어떻게 돼서 전도사냐 제가 대학교 예과 2학년 때 복음을 듣고 예수 를 믿게 되고 그때부터서 선교사가 되기로 작정을 하고 신학교 입학을 했습니다. 입학을 해 서 지금 병원으로 겸업을 하며 개척교회 전도사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초신이 돼서 그러겠지요. 정말 자기의 신앙을 간증하고 예수 믿어 구원받음에 아무런 주저나 그리고 이 렇게 자제함이 없습니다. 정말 여러분이 예수 믿으면 여러분들이 억대 장사하는 것 하고 비 길게 아니예요. 예수만 믿어보면, 한번 믿어보라고! 그래서 내 어머니가 지금 75세인데 예수 믿은지 9년 됐는데 지금도 어째서, 성경을 잘 못 읽으시는데, 어째서 내가 조금 더 일찍 예수를 몰랐던고! 어머니가 그러신다고, 자기 전도로 형제들이 다 차츰 차츰 예수를 믿게 됐다고! 정말 그 말은 예수 믿음으로 만족하고 예수 믿음으로 인해서 삶의 기쁨, 그리고 그 것만 만족하고 사는 것을 봤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는 예수 믿는 것 자체로는 별게 못 됩니다. 예수 믿어가지고 장로 되어야지요. 그래야 예수 믿는 것 같지요. 그 말은 장로 될려면 돈을 많이 낼 수가 있어야 되니까 일단 장로란 이름이 붙으면 돈이 많다는 표라! 돈 많이 벌어야 그것이 인제 예수 믿어서 보람된거지! 예수 믿어가지고 물질적으로 잘되고 세상적으로 잘되야지 그것이 자랑할 거리지 예수만 믿어가지고 구원얻고 기쁘게 사는 것, 뭐 그리 대단한게 아니지! 그러니 열심히 노력해서 수고 해가지고 돈을 벌고 자기의 생을 사는 것 보다는 어떻게든지 예수덕에 예수 믿음으로 오는 하나님의 축복때문에 복을 받아서 잘되기를 정말 열심하고 애쓰고 있습니다. 너무 많 이 한국교회가 크게 병들어 있습니다. 특히 예수 믿어서 예수 믿음으로 오는 기쁨과 즐거움 을 참으로 알고 그 예수 믿어 새 생을 살게 되었으니 이제는 주를 위해서 그리고 이웃을 위해서 생을 살아야 할 것인데, 예수덕에 예수 이름으로 부자될 생각만 많이 하고 그 덕에 출세할 생각만 많이 하니 참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에 로버트 슐러 제자가 많다고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가끔 로버트 슐러의 설교 를 듣습니다. 그도 한국 사람들 만큼 그렇게 설교는 안해요. 순 엉터리지요. 로버트 슐러 순 엉터리야!
그런데 지난 주일 제가 마지막 부분 좀 들었는데, 내가 목사를 하겠다고 하니까, 당신이 어떻게 목사를 해야, 너는 아무런 재능이 없다. 왜 내가 못해야! 내가 잘 가르칠 수 있다. 가르칠 수 있는 재능이 있다. 너는 목사 하면 안된다. 다 재능이 없다고 하는 거에 대 해서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는 걸 들었습니다.
그런데 너에게 한가 지 좋은게 있는데 스마일, 웃는게 좋다. 좋은 재능이다. 왜! 교회는 친절하게 해야될 곳인데 smile in. 내가 웃으며 사람을 모셔들이고 smile out. 웃으며 사람을 밖으로 내보내면 이 것처럼 좋은게 어디 있느냐 그래서 나는 목사가 되기로 했다. 그러니 여러분 재능이 없다 고 탄식할 필요 없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그를 위해서 여러분에게 많은 재 능이 나타날 수 있다. 가령 예수를 받아들이므로 남에게 친절할 수 있다. 잘 웃을 수 있는 것,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재능입니다. 참 좋은 말을 했어요. smile in. 웃어서 미 소지어서 사람을 들여보내고 smile out. 웃으면서 또 사람을 밖으로 내보낸다. 참 내가 이 제까지 그런 좋은 단어를 못 배웠는데 슐러에게 내가 좋은 단어를 배웠습니다. smile in. smile out. 그래도 그 설교가 한국에서 예수 믿어가지고 복받는 그런 비법 설교 하는 것 하고 좀 다른 것 같애요. 지금 우리 한국교회가 보수교회들, 잘 믿는다는 데는 정말 믿으면 잘된다. 믿으면 복을 내린다. 전부 다 그런 설교들 입니다. 봐라! 요셉이가 하나님을 저렇게 잘 믿으니 저렇게 높이 된다. 결국 요셉이 높이 된 것이 이게 목적이 됐습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구원섭리에 봉사하고 요셉이가 분명히 자기의 생의 목표를, 목적이 무엇인지를 하나님의 구원경륜에 비 춰서 설명했는데, 그건 전혀 안목이 없어요. 여러분들이 나를 해하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기르시려고 나를 여러분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를 팔았다고 염려하 지 마십시요. 여러분은 악을 행하였지만 하나님은 그 악을 변하여 선이 되게 했다고 그렇게 하면서 그가 하나님의 구원섭리에 동참해서 쓰여진 것을 요셉 자신이 강조했는데, 우리 한 국 사람들에게는 그런게 전혀 눈에 어두워요. 그래가지고 늘 강조하기를 예수 잘믿고 이렇 게 하면 이게 높이된다.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아니한다. 우두머리가 될지언정 섬기는 자가 되지 아니하고 남에게 꾸어줄지언정 꾸이지는 않고, 이런 것만 강조해가지고, 그러니 예수도 안믿어가지고 출세 다하고 성공하면 하나님 섬길 필요가 뭐 있냐고! 그때부터서 인 제 하나님 안녕히 계십시요! 이제까지 잘 도와주셔서 이렇게 내가 잘 됐으니 고맙고 감사합니다. 하나님 안녕히 계십시요. bye-bye! 이럴 때는 '사요나라'라는 말이 좋지요. 사요나라1! 사람의 가치는 돈을 많이 갖는데 있거나 권력을 많이 갖는데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자 녀됨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기본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자기를 너무 부풀리고 부풀리려고 하면서 너무 죄를 많이 짓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사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받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 이 것만큼 사람의 에고를 만족시켜 줄 더 큰 진리가 없습니다. 그러지 아니할 때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이와같이 자기의 공과, 자기의 돈을 모음, 자기의 권력을 양성함, 자기의 지위를 높아짐, 그런 것을 과도히 이루기 위해서 너무 많이 정도를 벗어남으로 많은 부조리를 일으 킵니다. 이런 것들은 아버지에게서 오지 않습니다. 이와같은 죄악의 원천적인 욕망들은 하나님으 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으로 타락한 인류의 본성으로부터서 즉 인간 자신으로 부터서 온 것이지요. 죄악의 원천이 사람이니 . 세상 으로부터, 인류로부터, 인간 자신으로부터 이지, 정말 선하시고 진리이시며 빛이신 아버지로 부터서 이와같은 죄악된 욕망이 유래되지 않았습니.
그러니 이 말은 그 다음 17절이 설명 을 하지만 이 말은 이와같은 것들을 행하는 모든 자들은 다 멸망할 것 뿐입니다. 하나님께 로부터 오지 아니한 것은 다 정죄되고 멸망할 것 뿐입니다. 문제는 아버지로부터서 유래한 것에 머무르고 부착하느냐가 결정적입니다. 이와같은 것은 아버지로부터서 나온 것이 아니요 . 이 한번만 있어도 좋을터인데 두 번씩이나 반복해서 써 놓았습니다. 결코 세상에로 부터서 타락한 인류로부터서 인간의 타락한 본성으로부터서 유래했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의 정죄와 저주의 대상이므로 멸망할 것임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17절은 다음에 할 것이지마는, 정말 우리가 세상에 너무 치우치며 세상을 표준으로 살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아버지로부터서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너무 과도 히 세상을 표준으로 하고 살고 있습니다. 어째서 교회가 세상을 지도하는 표준이 되어주지 못하느냐 어째서 살아갈 길이 이 길이라고 가르치는 그와같은 노릇을 못하느냐 정치하는 자들에게도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정치다! 경제하는 사람들에게도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경제활동이라고 왜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졌는데도 표준을 제시하지 못하느냐 거꾸로 교회가 표준이 아니라 사회가 교회의 표준이어서 그 표준을 따라갈려고 너무 많이 노력할 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교회가 진정한 교제가 어디 있습니까 큰 교회일수록 교제가 되 지 않습니다. 큰 교회일수록 냉냉해 집니다. 왜 욕구 충족 다했으니 더 은혜를 사모할게 뭐 있어야지요. 가난할 때 예수 믿기도 하고 가난할 때야 철야기도 하고 산에 많이 갔지마는 부자 되어서 큰 교회 세우고 커졌는데 그럴 필요가 뭐 있느냐 큰 교회 세우고 목사님 들도 산에 가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뭐 자가용 굴리고 대접 받으면서 좋은 데 가서 좋 은 것 먹고 좋은 대접 받으며 행세할 수 있는데 뭐하려고 산에 가서 또 괴로운 일을 반복 하느냐 안 가지요.
그러니까 교회도 자연히 마를밖에! 그러니까 큰 교회 살수록 거의 냉냉 합니다. 여러분도 가 보세요! 실제로 큰 교회에 정말 영이 있는데가 있는지 별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에 큰 교회들 냉냉하다. 이제 이룰 것 다 이루었는데 열심을 다해 서 기도하고 수고하고 애쓸 필요가 뭐 있습니까 가난할 때야 하나님 도움 주시라고 눈물 흘리고 기도했지만 욕구 충족되고 이제 편안해졌는데 왜 또 가서 그 괴로운 짓을 반복 하 느냐! 그러니 우리가 전부 우리 한국 사람들의 신앙이 정말 하나님을 위해서 바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전부 다 세상과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으로 살고 있다. 전부 다 유아독존이지! 하나님이 뭐할려고 있어! 날 위해서 있지! 하나님이 복 주시는 복덕방망이로 좋으신 하나님으로 있는거지! 그러니 그리스도인으로서 정말 바르게 살아도 고난의 길을 가는 것은 우리 한국교회서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요! 세상을 앞서 가기를 세상의 표준에 의해서 세상의 앞서 가기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래가지고 교회가 교회 노릇할지 의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와같은 것은 분명히 아버지로부터서 유래한 것이 아니고 세상으로부터서 온 것입니다. 전부 다 여기 강조가에 있습니다.에 강조가 있고에 그 마지막에 강 조가 붙어 있습니다. 전부 다 강조돼서 아버지로부터서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서 온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오지 않았다는 데에도 강조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 에 또 강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표준으로 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말씀을 표준으로 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아멘.
첫째의 의 뜻은살 이라 그런 뜻이고 우리 몸에 있는 그런 육을 뜻하는 살이고, 두번째 뜻이 우리 의 전 몸을 지시를 합니다. 우리의 육체, 전 몸! 구약에 있어서 라는 말로 를 뜻할 때는 우리의 전인격을 몸으로 전인격, 우리의 전존재를 나타낸 것입니다.
그런데 라고 하는 말이 성경에서 .으로 표시를 했습니다. 죄아래 놓여있는 그와같은 인간 의 본성, 인간의 존재를 가리켜서 로 표현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의 저자가 말하려 고 하는 것은 인간은 죄아래 있는 존재라! 그 존재방식이라! 세상적인 인간적인 악한 죄성 을 뒤집어쓰고 죄성을 가진 그런 것보다는 물론 거기에서 나왔지마는 라고 하는 말 로, 또 일반 세속에서도 이 를 성적인 욕망과 탐욕 많이 먹음, 그런 것의 차이로 를 표시했습니다. 순전히 죄의 근원의 차이로 를 표시를 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볼 때에 이육신의, 육의 욕망이 무어냐 하면 다른 것이 아니고 바로 성적인 욕망을 말한다고 하겠습니다. 육이 바라는 것은 대부분 성적인 죄된 행위를 즐 기려는 그와같은 욕망을 여기서 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기이한 것은 우리 인간의 생존 의 그 방식이, 기관이, 기구가 죄악을 짓는 제일원이 되는 노릇을 하게 된다고 하는 데에 주의점이 있습니다. 통상 모든 육신의 마지막 욕망은 성적인 욕망에로 귀결하는 것을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혹 그런 영화를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라는 제목의 영화인데, 제목이 돈과 여자와 명예라. 사람이 명예도 추구하지만 성적인 향락, 쾌락을 전적으로 즐기는 것으로 그 영화가 진행되다가 마지막에는 그 죄악으로 인해서 모든 것을 실패하고 내버려두고 혼자 외롭게 살고 있는 본부인에게로 되돌아가서 속죄를 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이 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특별히 남자들이 돈 많이 벌면 항상 성적인 향락, 이와같은 일을 하므로 사람이 되고 남자가 되는 것으로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 법이 근절되도록 우리 한국교회 가 노력해야 될 터인데 사실은 우리 한국교회가 성적범죄로 과도히 방임하고 이 법이 참으 로 또 무서운 법인줄 알지 못하고 있어서 하나님께 (송구한) 것이 많습니다. 그 다음 두번째 눈들의 욕망이라! 눈이 우리 신체기관에서 가장 연약한 기관입니다. 그렇지만 가장 존귀한 기관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눈으로 봄으로 모든걸 알기 때문입니다. 봄으로 바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 눈처럼 좋은 기관이 우리에게 없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봄으로 바로 압니다. 바로 본다는 것이 안다는 것입니다. 본다고 하는 것은 빛을 전제합니다. 일면에 있어서는 눈이 빛의 역활을 하는 기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중에 눈을 쓰지 못하는 사람만큼 불행한 사람 이 아마 없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기관이 눈이고 가장 존귀한 기관이 눈인데 눈이 단지 봄으로 아는 것뿐만 아니라 눈이 또 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을 봄으로 알 기를 바라는 그와같은 지식의 욕망들도 눈이 추구하는 것 중에 미를 추구하는 것이 가장 두드러진 현상이라고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일 만족을 못하고 방황하는 것은 이 미적인 감각의 반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플라톤도 보면 눈으로 보는 것으로 나타나는 미의 아름다움! 아름다움이 우리의 영혼에 미치는 영향을 잘 묘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아름다움하고 그것을 위해서 영혼이 각성할 때 그리고 자기가 있던 본래의 처소 저 이데아 의 세계를 그리므로 철학을 할 수 있게 된다고 하는 시가를 미의 눈뜸에서 출발을 하고 있습니다. 알뿐만 아니라 미를 추구하는데 중요한 역활을 합니다. 미의 추구!
그런데 이런 미의 추구에 있어서 정말 보니까 얼마나 절실합니까 대학교 내 친구 하나가 안경을 끼다가 부러져서 안경을 못끼고 며칠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새로 고쳐서 끼고 서울 거리를 바라다 보니 그렇게 서울이 아름다워서 모든 광 경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면서 찬탄하는 소리를 제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미의 추구가 단순한 이와같은 미, 아름다움 그 자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 관해서 이야기 하기 때문에 눈이 사 실은 그 아름다움의 추구를 통해서 사실 감각적인 데 그리고 성적인 데 귀착하는 것을 여 기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많은 것을 봄으로 많은 호기심을 만족시키지요. 그런 호기심을 만 족시키고 미적인 감상을 높이는 그런 일도 하지만 사람들이 타람함으로 인해서 아름다운 그냥 순수한 자연에서 보다 사람들의 육체에서 더 많은 아름다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이렇 게 자꾸 미의 추구가 마침내는 감각적인 것에로 이끄는 그와같은 데로 나아가고 마침내는 성적인 욕구의 충족에로 나아갑니다. 눈으로 봄으로 직접 그런 물론 성행위를 직접 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이 욕망이 발동함으로 많은 경우에 직접 육체적인 행동으로 진행되지 않아 도 성적인 욕구를 많은 경우에 충족시키는 일을 합니다. 그러니 이 눈들의 욕망이 큰 죄의 근원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보지 않았으면 많은 경우에 죄짓지 않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 고도 아름다움으로만 그칠 수 있으면 그건 큰 죄를 구성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을 보고 아 름답다고 하는 것은 끝까지 참으로 좋은 것이고 전혀 죄를 구성하지 않지만 거기서 나아가 서 그 다음 단계로 우리 욕망이 발동할 때에 죄를 구성합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차라리 네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 보다 네 눈을 뽑아버리는 것이 낫다. 그냥 죄가 아니라 이 남녀관계에 연관시켜서 눈을 뽑아버릴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안보면 좋은 것을 자꾸 눈을 자극하는 것이, 현대문명은 항상 눈을 자극하는 데로 많 은 것이 발달하고 있습니다. 눈을 자극하는 것을 통해서 육적인 욕망을 육의 욕망이 충족되도록 현대문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서울에도 보면 상당히 많은 경우에 영화 선전물들이 그렇게 거리거리마다 아무런 규제없이 상당히 많은 몸을 드러낸 부분들이 붙어 있습니다. 그런 것을 아무도 개의하지 않고 그저 아무렇지도 않 게 정상적인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런 것도 문제지만 자꾸 보면 모든 것을 나중에 상품화 해서 못할 것이 없습니다. 많은 광고들이 거의가 다 이와같이 육의 욕망에 특히 감각적이고 성적인 것에 호소해서 상품을 사도록 그렇게 향락에 빠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눈이 바른 것을 보고 바르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그렇게 통제되어야 하고 죄악된 욕망이 눈을 지배하는 것을 막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 기독교회가 많은 수적인 번창과 성장을 가져왔어도, 천만의 기독교도가 되면, 25% 이상 되어야 기독교가 그 사회의 주도적인 세력으로 역사할 수 있다 그래서 그것이 강하게 호소력을 갖고 전국 복음화 운동, 전국 신자화 운동이 많이 진행되었습니다. 지금은 정말 많은 교회들이 부흥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부흥이 사실 이 사회를 바로잡고 도덕적으로 교도하는 입장으 로 진행되지 않고 사실은 부흥과 부흥 그것으로 지나친 교회가 이상한 데로 엉뚱한 데로 전혀 그 자체 교회의 큼으로 해서 세력을 행사하고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서 교회에 소속된 주요한 직책자들이 권력을 행사하며 그리고 특별히 목사가 많은 경우에 자기의 자율권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는 그런데로 진행됐지 정말 교회가 이 민족의 양심으로 이 민족을 개혁하는 이 민족을 망하지 못하도록 하는 소금으로 빛으로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감각적인 문화가 계속해서 번져가고 아무런 제재없이 지나가도 교회가 아 무런 소리를 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교회가 이렇게 이 교회내에서 7계 문제를 등 한시 하면 교회가 어떻게 밖을 향해서 그와같은 일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각성을 하고 결국 교회가 각성을 한다는 말이 교역자들이 각성을 하는 것인데 결국 그것은 신학교 문제에 귀착합니다. 신학과 신학 교육의 문제에 다 귀착합니다. 결국 뭐니뭐니 해도 내가 여러번 말했던대로 세계의 마지막 문제는 신학의 문제로 귀착한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참으로 각성해서 이와같이 감각적인 향락에 호소하고 이와같은 문명이 자꾸 반복되는 것을,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햇지만 현대 문명이 이와같이 육신의 성적인 욕망 그리고 쾌락의 모든 것을 가능한 것으로 하지 못할 것이 없는 것으로 해놨습니다. 미국처럼 청교도의 강한 성도덕이 지배해서 정말 7계를 범했을 때 자살하지 않으면 사회를 출입할 수 없던 그와같은 사회가 이제는 전혀 그와같은 죄들이 죄 로 여기지 아니하고 사회의 정당한 관습으로 진행되게 되어 왔습니다. 이와같은 것들을 할 수 있는대로 막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한국 사람들이 전에는 그걸 내가 느끼지 못했는데 외국에 갔다오니까 내가 전에도 한두번 말했습니다마는 우리 한국 남자들이 전에는 여자들만 그런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까 남자들도 마찬가지! 내가 물어봤어요. 재단사에게! 그렇게 다 옷이 비치도록 투명하 게 옷을 만드는데 그것이 소비자들이 그렇게 원하느냐 재단사들이 그렇게 말을 합니다. 보면 우리 한국, 특별히 남녀 다 그렇지만 우선 여자들이 여름에 보면 옷이 일단 다 투명하 게 입는다. 그래가지고 속이 다 들여다 보이도록 살이 다 들여다 보이도록 그렇게 입습니다. 여름 되면 미국 같은데도 핫팬티를 입고 앞만 가리고 배도 다 드러내놓고 여자들이 그 렇게 하기는 하지요. 아예 다 노골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어요. 그러나 구 라파에서 보면 여자들이 옷을 한 겹을 입었는지 두겹을 입었는지는 모르지마는 속이 투명 하지를 않습니다. 전부 다 안이 다 비치지 않도록 짙은 색을 넣고 그리고 그렇게 속모양이 다 들여다 보이도록 입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돼서 우리 한국만은 그렇게 옛날에는 무 릎 위로 치마를 올리지 못했는데 어떻게 돼서 다 그렇게 다 투명한 옷을 입어서 옷을 입어 도 다 몸이 드러날 수 있도록 옷을 입고 다니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쳐야 될 것입니다. 아 이 유행이 그러는데 사회가
그런데 어떻게 할 것입니까 왜 천만이 되는 기독교가 이와같 은 풍습을 고치지 못합니까 우리 한국에는 기독교 신문이 없지만 화란 같은데는 기독교 신문이 영화 광고를 내도 기독교 신문에는 영화 제목만 내지 영화 장면 소개하는 것을 내 주지 않습니다. 영화 광고가 우리처럼 매일 신문에 광고가 나오는게 아니고 꼭 나올 때가 있어요. 그 주에 한번! 우리는 그냥 매번 영화 광고를 신문에 크게 내고! 지금은 텔레비젼 이 많이 생겨서 영화관에도 잘 안가고 VCR이 생겨서 남의 눈을 의식하면서 봐야 하는 그 와 같은 프로그램들을 잘 본다고 하는 그와같은 이야기들이 있는거 같은데 이런 것들도 다 막을 수 있고 재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기독교가 이만큼 양적으로 성장했 으니 이제는 사회에서 기독교의 법이 세워지도록 교회가 노력해야 될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이생의 자랑이라우리말로 그 렇게 번역했는데 나전어 성경으로 보니까부(재산들)의 자랑 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 번역도 제가 볼 때는 상당히 잘된 번역으로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결국 뭐니뭐니 해도 사람은 돈 자랑입니다. 결국은! 돈의 추구를 위해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제일 크게 열등의식을 느끼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결국은 돈의 부족 결핍이라고 할 것입니다. 돈 자체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돈 자체로 보면 돈이 모자란 것이 죄지요. 오히려! 많은 경우에! 우리도 돈이 많으면 남을 도울 수 있다. 선한 일 을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학교가 이렇게 어려움 당하는 것은 돈 이 모자라니까 그렇지요. 돈 있으면 정말 그것이 좋게 사용되므로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돈을 많이 모으는 데서 그 사람의 사람됨을 그 사람의 가치를 측정 을 합니다. 특별히 연예계 같은 경우에는 이것이 결정적으로 두드러지지요. 얼마만큼 돈을 받느냐 어떤 자리에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만큼 돈을 받고 있느냐 돈의 받는 액수가 그 사람의 가치를 전부를 결정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서 정말 혈안이 되고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결국 사람은 돈 자랑이요. 물론 한국에는 벼 슬내는 것을 더 자랑으로 여기지요. 그러나 그 벼슬되는 것이 자랑이 될 수 있는 이유가 한 국에서는 결국 벼슬함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에 귀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에 오복이 무엇이냐 수부귀.부가 먼저고 귀가 다음에 옵니다. 돈 많이 벌고 그 다음에 출 세하는 것! 왜 이것이 생의 자랑, 돈의 자랑이 그렇게 죄된 것이냐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위 대함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너무 돈을 버는 일에 너무 과도히 자기의 정도를 벗어납니다. 그래서 이 자기의 에고 자기의 낯을 위해서 못할 것이 없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그러니 까 항상 사람들에게는 어떤 욕망이 있느냐 하면 자기를 자기 자신을 실제보다 항상 더 크 게 보이기를 바라는 욕구가 있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대부분 좋은 것입니다. 사람이 동물하 고 다른 것이 있다면 이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자기가 위대하다고 하는 것, 자기가 남보다 다르다고 하는 것을 나타내 보이려고 하는 욕망이 정말 좋게 사용됨으로 인류 문명을 이렇 게 발전시키는 동력이 됐다고 할 것입니다. 그것 없으면 사람들이 모험하지 않을 것이고 정 말 고생을 감내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코닥을 만든 죠지 이스트만의 이야기를 혹시 아실련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가난 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난의 공포가 늘 그를 엄습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이 가난에서 평안히 모시기 위해서 정말 그가 잠을 자지 아니하고 하루에 16시간 이상을 혹은 18시간까지 자기 연구실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정말 수고에 수고를 다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가 사실 코닥 필름을 만들어 냈습니다. 사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코닥이 뭐라는 말뜻인지도 모를 때부터서 한국에 있는 필름들은 전부다 코닥 필름들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사쿠라니 여러가지가 많지마는 정말 코닥 하면 필름을. 근데 그가 자기의 가난을 벗기 위 한 피나는 투쟁에서 큰 돈을 벌고 지금도 여러분 주주 주식 나올 때 보면 이스트만의 코닥 의 주가 상당히 높은가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도 사실은 위대하다고 하는 말 듣기를 그렇게 간절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그와같은 칭찬 받음으로 그도 사람이어서 참 큰 결실을 거둘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자기를 남보다 크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너무 많이 과도히 상도를 벗 어나는 짓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사실은 죄의 원천이지요. 이것이 좋은 것이기도 하지만 죄의 원천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 사회는 욕망을 절제해주는 그와같은 아무런 통 제기관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싶은 욕망, 자기가 크다고 하는 것을 나타내 기 위해서 못할 짓이 없습니다. 그것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든, 또 정치적인 그런 일들도 다 결국은 자기 욕망 자기 이름 남기기 위해서 내가 얼마만큼 큰사람인가를 보이기 위해서 그 렇게 수고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여기 인제 우리말로 이생의 자랑이라고 했는데 생의 자랑이라고 하는 말의 자랑은 실제보다 과장하는 것을 말합니다.는 실제보다 항상 더 과장 해서 부풀리는 것을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항상 사람이 자기의 욕구가 자 기의 그것이 충족되지 못하므로 자기의 자아충족이 못되니까 밖으로 무엇을 부풀리므로 자 기의 권력을 높이므로 지위를 높이므로 돈을 많이 모으므로 자기가 크다고 하는 것을 나타 낼려고 너무 많은 하지 못할 짓을 상도를 벗어난 짓을 많이 합니다. 이런 것들이 죄악의 원 천입니다. 여러분이 .의 글에 보면 그 체면을 위해서 그냥 높은 사람 비행기를 타고 가도 호텔 자 리에 한바퀴 빙 이렇게 돌고 내가 이렇게 크다고 하는 것을 나타낼려고 하다가 비행기가 막아서 출발하지 못했다고 하는 그와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항상 자기가 크다고 하는 것 을 나타내기 위해서 하지 못할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나는 일을 너무 많이 탈선하고 있습니다. 그런면에 있어서 정상적인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생각해보면 참 그럴까 싶을 것입니다. 내 대학교 때 친구 하나가 의과대학생이었는데 정신의학을 배우니 정말 정상적인 인간 이 몇이나 되는지가의문이라! 그런 이야기를 하는걸 제가 들었습니다. 정말 이 인간이 걸어야 될 정상적인 궤도로 걷지 아니하면 이와같이 외적인 것으로 자기 를 부풀리는 그와같은 죄악을 범하기가 쉽습니다. 자기를 실제보다 더 부풀리는 것은 자신 을 위증죄이니까 거짓말하는 죄에 해당합니다. 그러니 참 하나님을 믿는 자는 그리고 하나님을 믿으므로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아는 자는 그 이상의 가치를 부여받을 길이 더 어디 있습니까 더군다나 우리 한국교회에 예수 믿는 것이 그렇게 값진 것이 못됩니다. 가 진 것이 모든 것의 척도일텐데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예수 믿는 것 자체가 그렇게 복되고 자랑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제가 그런 자랑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요새 최근에!
그런데 최근에 한번 들어봤어요. 동원훈련 가 가지고 군대 장교가 와서 같이 있는데 대위 계급장을 단 사람이 목사님 제가 전도사입니다. 아니 어떻게 돼서 전도사냐 제가 대학교 예과 2학년 때 복음을 듣고 예수 를 믿게 되고 그때부터서 선교사가 되기로 작정을 하고 신학교 입학을 했습니다. 입학을 해 서 지금 병원으로 겸업을 하며 개척교회 전도사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초신이 돼서 그러겠지요. 정말 자기의 신앙을 간증하고 예수 믿어 구원받음에 아무런 주저나 그리고 이 렇게 자제함이 없습니다. 정말 여러분이 예수 믿으면 여러분들이 억대 장사하는 것 하고 비 길게 아니예요. 예수만 믿어보면, 한번 믿어보라고! 그래서 내 어머니가 지금 75세인데 예수 믿은지 9년 됐는데 지금도 어째서, 성경을 잘 못 읽으시는데, 어째서 내가 조금 더 일찍 예수를 몰랐던고! 어머니가 그러신다고, 자기 전도로 형제들이 다 차츰 차츰 예수를 믿게 됐다고! 정말 그 말은 예수 믿음으로 만족하고 예수 믿음으로 인해서 삶의 기쁨, 그리고 그 것만 만족하고 사는 것을 봤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는 예수 믿는 것 자체로는 별게 못 됩니다. 예수 믿어가지고 장로 되어야지요. 그래야 예수 믿는 것 같지요. 그 말은 장로 될려면 돈을 많이 낼 수가 있어야 되니까 일단 장로란 이름이 붙으면 돈이 많다는 표라! 돈 많이 벌어야 그것이 인제 예수 믿어서 보람된거지! 예수 믿어가지고 물질적으로 잘되고 세상적으로 잘되야지 그것이 자랑할 거리지 예수만 믿어가지고 구원얻고 기쁘게 사는 것, 뭐 그리 대단한게 아니지! 그러니 열심히 노력해서 수고 해가지고 돈을 벌고 자기의 생을 사는 것 보다는 어떻게든지 예수덕에 예수 믿음으로 오는 하나님의 축복때문에 복을 받아서 잘되기를 정말 열심하고 애쓰고 있습니다. 너무 많 이 한국교회가 크게 병들어 있습니다. 특히 예수 믿어서 예수 믿음으로 오는 기쁨과 즐거움 을 참으로 알고 그 예수 믿어 새 생을 살게 되었으니 이제는 주를 위해서 그리고 이웃을 위해서 생을 살아야 할 것인데, 예수덕에 예수 이름으로 부자될 생각만 많이 하고 그 덕에 출세할 생각만 많이 하니 참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에 로버트 슐러 제자가 많다고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가끔 로버트 슐러의 설교 를 듣습니다. 그도 한국 사람들 만큼 그렇게 설교는 안해요. 순 엉터리지요. 로버트 슐러 순 엉터리야!
그런데 지난 주일 제가 마지막 부분 좀 들었는데, 내가 목사를 하겠다고 하니까, 당신이 어떻게 목사를 해야, 너는 아무런 재능이 없다. 왜 내가 못해야! 내가 잘 가르칠 수 있다. 가르칠 수 있는 재능이 있다. 너는 목사 하면 안된다. 다 재능이 없다고 하는 거에 대 해서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는 걸 들었습니다.
그런데 너에게 한가 지 좋은게 있는데 스마일, 웃는게 좋다. 좋은 재능이다. 왜! 교회는 친절하게 해야될 곳인데 smile in. 내가 웃으며 사람을 모셔들이고 smile out. 웃으며 사람을 밖으로 내보내면 이 것처럼 좋은게 어디 있느냐 그래서 나는 목사가 되기로 했다. 그러니 여러분 재능이 없다 고 탄식할 필요 없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그를 위해서 여러분에게 많은 재 능이 나타날 수 있다. 가령 예수를 받아들이므로 남에게 친절할 수 있다. 잘 웃을 수 있는 것,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재능입니다. 참 좋은 말을 했어요. smile in. 웃어서 미 소지어서 사람을 들여보내고 smile out. 웃으면서 또 사람을 밖으로 내보낸다. 참 내가 이 제까지 그런 좋은 단어를 못 배웠는데 슐러에게 내가 좋은 단어를 배웠습니다. smile in. smile out. 그래도 그 설교가 한국에서 예수 믿어가지고 복받는 그런 비법 설교 하는 것 하고 좀 다른 것 같애요. 지금 우리 한국교회가 보수교회들, 잘 믿는다는 데는 정말 믿으면 잘된다. 믿으면 복을 내린다. 전부 다 그런 설교들 입니다. 봐라! 요셉이가 하나님을 저렇게 잘 믿으니 저렇게 높이 된다. 결국 요셉이 높이 된 것이 이게 목적이 됐습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구원섭리에 봉사하고 요셉이가 분명히 자기의 생의 목표를, 목적이 무엇인지를 하나님의 구원경륜에 비 춰서 설명했는데, 그건 전혀 안목이 없어요. 여러분들이 나를 해하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기르시려고 나를 여러분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를 팔았다고 염려하 지 마십시요. 여러분은 악을 행하였지만 하나님은 그 악을 변하여 선이 되게 했다고 그렇게 하면서 그가 하나님의 구원섭리에 동참해서 쓰여진 것을 요셉 자신이 강조했는데, 우리 한 국 사람들에게는 그런게 전혀 눈에 어두워요. 그래가지고 늘 강조하기를 예수 잘믿고 이렇 게 하면 이게 높이된다.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아니한다. 우두머리가 될지언정 섬기는 자가 되지 아니하고 남에게 꾸어줄지언정 꾸이지는 않고, 이런 것만 강조해가지고, 그러니 예수도 안믿어가지고 출세 다하고 성공하면 하나님 섬길 필요가 뭐 있냐고! 그때부터서 인 제 하나님 안녕히 계십시요! 이제까지 잘 도와주셔서 이렇게 내가 잘 됐으니 고맙고 감사합니다. 하나님 안녕히 계십시요. bye-bye! 이럴 때는 '사요나라'라는 말이 좋지요. 사요나라1! 사람의 가치는 돈을 많이 갖는데 있거나 권력을 많이 갖는데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자 녀됨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기본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자기를 너무 부풀리고 부풀리려고 하면서 너무 죄를 많이 짓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사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받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 이 것만큼 사람의 에고를 만족시켜 줄 더 큰 진리가 없습니다. 그러지 아니할 때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이와같이 자기의 공과, 자기의 돈을 모음, 자기의 권력을 양성함, 자기의 지위를 높아짐, 그런 것을 과도히 이루기 위해서 너무 많이 정도를 벗어남으로 많은 부조리를 일으 킵니다. 이런 것들은 아버지에게서 오지 않습니다. 이와같은 죄악의 원천적인 욕망들은 하나님으 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으로 타락한 인류의 본성으로부터서 즉 인간 자신으로 부터서 온 것이지요. 죄악의 원천이 사람이니 . 세상 으로부터, 인류로부터, 인간 자신으로부터 이지, 정말 선하시고 진리이시며 빛이신 아버지로 부터서 이와같은 죄악된 욕망이 유래되지 않았습니.
그러니 이 말은 그 다음 17절이 설명 을 하지만 이 말은 이와같은 것들을 행하는 모든 자들은 다 멸망할 것 뿐입니다. 하나님께 로부터 오지 아니한 것은 다 정죄되고 멸망할 것 뿐입니다. 문제는 아버지로부터서 유래한 것에 머무르고 부착하느냐가 결정적입니다. 이와같은 것은 아버지로부터서 나온 것이 아니요 . 이 한번만 있어도 좋을터인데 두 번씩이나 반복해서 써 놓았습니다. 결코 세상에로 부터서 타락한 인류로부터서 인간의 타락한 본성으로부터서 유래했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의 정죄와 저주의 대상이므로 멸망할 것임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17절은 다음에 할 것이지마는, 정말 우리가 세상에 너무 치우치며 세상을 표준으로 살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아버지로부터서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너무 과도 히 세상을 표준으로 하고 살고 있습니다. 어째서 교회가 세상을 지도하는 표준이 되어주지 못하느냐 어째서 살아갈 길이 이 길이라고 가르치는 그와같은 노릇을 못하느냐 정치하는 자들에게도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정치다! 경제하는 사람들에게도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경제활동이라고 왜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졌는데도 표준을 제시하지 못하느냐 거꾸로 교회가 표준이 아니라 사회가 교회의 표준이어서 그 표준을 따라갈려고 너무 많이 노력할 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교회가 진정한 교제가 어디 있습니까 큰 교회일수록 교제가 되 지 않습니다. 큰 교회일수록 냉냉해 집니다. 왜 욕구 충족 다했으니 더 은혜를 사모할게 뭐 있어야지요. 가난할 때 예수 믿기도 하고 가난할 때야 철야기도 하고 산에 많이 갔지마는 부자 되어서 큰 교회 세우고 커졌는데 그럴 필요가 뭐 있느냐 큰 교회 세우고 목사님 들도 산에 가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뭐 자가용 굴리고 대접 받으면서 좋은 데 가서 좋 은 것 먹고 좋은 대접 받으며 행세할 수 있는데 뭐하려고 산에 가서 또 괴로운 일을 반복 하느냐 안 가지요.
그러니까 교회도 자연히 마를밖에! 그러니까 큰 교회 살수록 거의 냉냉 합니다. 여러분도 가 보세요! 실제로 큰 교회에 정말 영이 있는데가 있는지 별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에 큰 교회들 냉냉하다. 이제 이룰 것 다 이루었는데 열심을 다해 서 기도하고 수고하고 애쓸 필요가 뭐 있습니까 가난할 때야 하나님 도움 주시라고 눈물 흘리고 기도했지만 욕구 충족되고 이제 편안해졌는데 왜 또 가서 그 괴로운 짓을 반복 하 느냐! 그러니 우리가 전부 우리 한국 사람들의 신앙이 정말 하나님을 위해서 바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전부 다 세상과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으로 살고 있다. 전부 다 유아독존이지! 하나님이 뭐할려고 있어! 날 위해서 있지! 하나님이 복 주시는 복덕방망이로 좋으신 하나님으로 있는거지! 그러니 그리스도인으로서 정말 바르게 살아도 고난의 길을 가는 것은 우리 한국교회서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요! 세상을 앞서 가기를 세상의 표준에 의해서 세상의 앞서 가기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래가지고 교회가 교회 노릇할지 의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와같은 것은 분명히 아버지로부터서 유래한 것이 아니고 세상으로부터서 온 것입니다. 전부 다 여기 강조가에 있습니다.에 강조가 있고에 그 마지막에 강 조가 붙어 있습니다. 전부 다 강조돼서 아버지로부터서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서 온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오지 않았다는 데에도 강조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 에 또 강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표준으로 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말씀을 표준으로 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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