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것=이 세상 (요일2:16-17)
본문
17절,, . 그리고 그런데 세상 이 지나가고 있고, 지나갈 것이고, 그리고 그 욕망도 정욕도 지나가리라. 세상은 지난 시간 에 생각했지만, 여기서 세상은 우리 인간들이 사는 삶의 모습을세상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참 찬란합니다. 눈에 보이는 저 자연이 찬란하기보다 인간이 이루는 업적들이 더 눈부시다고 할 것입니다. 어디를 가나 그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고 남겼는 지가 자랑입니다. 그것들이 자랑이어서 다 박물관을 만들고 그리고 유적지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제까지 외국의 문물들을 너무 많이 받으며 살다보니 외국의 것만 커 보이 고 우리 자신들의 업적과 우리 조상들이 만든 것은 그렇게 큰 것이 아닌 것으로 생각을 해 서 소홀히 하고 너무 박대를 많이 했는데 우리가 그래도 사람들이 외국 나들이를 많이 해 보니 외국 사람들은 자기의 것들을 자기의 조상들의 것을 잘 보존하려고 참으로 많은 애를 쓰며 좋은 유산들을 가진 것을 많이 자랑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들 혹은 내가 하는 것들이 별게 아닌 것 같 아도 지나놓고 보면 후손들에게는 선조들의 유산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런 좋은 것도 여기 서 말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주로 사람들이 인간들의 욕망을 발동하기 위해서 물론 욕망 없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위대하다고 하는 것을 자기 가 참 다른 사람보다 다르고 큰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알리려고 하는 욕망없이는 많은 사람들이 벌어놓고 평생 써도 못 쓸 돈을 모으기 위하여 그렇게 애쓰고 수고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많이 이 현세적인 것에 그것에 너무 집착하고 현세적으로 나타난 것 에 너무 과도히 표준을 삼기 때문에 세상이 너무 요란하고 어지러워서 우리 사회의 법이 잘 집행되지 아니하고 질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러다 보니 몇몇 가진 자들이 전부를 다 가지려고 욕망을 크게 발동하고 몇몇 잡은 자들이 영구히 자기들이 잡은 것을 계속할려고 하기 때문에 사회에 이렇게 분요하고 분란되며 혼란하고 평화와 자유가 적습니다. 그리고 의와 공평이 실현되지 못합니다. 어느 사회든지 다 불의와 부조리가 있기 마련이지마는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사회는 정말 부조리와 불의가 더 큰 규모로 통용 하기 때문에 큰 규모로만 이뤄지면 그것이 법으로 바른 것으로 통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와같이 순전히 자기의 에고를 발휘하기 위하여 과도히 집착하므로 이뤄내는 이러한 현상들 은 사실은 한때의 물거품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돈과 권력을 그리고 지위를 추구 해서 추구하고 노력하는 일을 한번도 중단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것에 과도히 집착해서 교회에서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을 더 존경하고 그래서 사회에서 존 경받던 사람들이 교회 와서도 장로되고 집사 됩니다. 이건 참 바른 신앙의 법이 아닙니다. 사회에서 높은 지위에 있다고 해서 교회에서도 신앙이 바르고 믿음의 덕이 더 나으며 바른 진리를 바로 깨닫고 교회를 봉사하는데 유익한 은사들을 받아 가졌다고 할 수 없습니다. 흔 히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 믿음에서도 성공하고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겨서 사회에서 잘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교회에 서도 그와같은 지위를 누려야 될 것으로 알지마는 그건 다 세상의 법이지 성경적인 법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고 사장이 되는 것은 세상의 법이요. 그러나 교회 와 서도 그 사람이 장로 하고 집사 되고 그런다는 것은 성경의 법이 아닙니다. 믿음의 부요한 자가 꼭 세상적인 물질에도 부요하고 잘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세상적으로 부요하고 권세있는 자가 믿음에도 꼭 부요하고 믿음에도 덕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둘을 항상 세상적으로 잘되는 사람을 축복으로만 여겨서 세상에서 공 의가 실현되든지 안되든지 정의의 법이 실현되든지 안되든지 간에 높은 지위에만 오르는 것은 그리고 돈을 많이 받을 수 있고 벌 수 있는 것은 어찌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겨서 그걸 표준으로 삼아서 교회에서까지 하나님의 법이 시행되지 아니하고 의와 공평이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그건 바른 법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교회의 부조리는 사회에 있는 부조리가 거기 반영되어 있다 할 것입니다. 돈 많이 낸 자가 교회를 좌지우지 하고 그 리고 자기의 주관대로 이끌고 가는 일들이 너무 많이 잇습니다. 우리는 사회의 지위가 높은 것을 축하하고 치하해 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것의 표준이고 전부인 것으로 아는 것은 전혀 바른 법이 아닙니다. 그러나 돈 많이 버는 것을 축하하고 치하해 줘야 할 것입니다. 그가 그만큼 수고하고 수고의 대가를 지불했다면! 그러나 그것을 전부로 하고 그 걸 목표로 하고 살면 정말 잘못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돈 없이는 우리 인간 이 하고싶은 욕망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돈 없이는 자기가 하고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사람 이 별로 많지 못합니다. 제가 대학교 때 정치학과에서 강의를 좀 듣는데 미국에서 온 교수가 미국의 헌법에 대해 서 강의를 했습니다. 그가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 했는데 참 뼈있는 말을 한마디를 했습니다. 저기 벤치에 앉아서 벤치를 따뜻하게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그 사람의 자유라고 말하 지 않는다. 정말 사실이지요. 벤치에 앉아서 이렇게 맑은 공기를 마시고 벤치나 따뜻하게 하고 있는 것을 가리켜서 자유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가 정당하게 해야될 것을 하지 못하는 것, 또 하고싶어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우리가 물질을 가지 고 우리가 행동하기 때문에 물질 없이 우리가 바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 과 한국교회가 다 물질을 지상으로 하고 살기 때문에 모든 가치가 전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도 그렇게 너무 과도히 우리가 가진 자들과 가진자들을 높이고 숭상을 하는 것이 너무 많아서 가진 자 앞에 도대체 바른 말도 못하고 쥔 자 앞에는 바른 말도 전혀 못 합니다.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법이 시행되지 못하고 의와 공평이 이루어 지지 못하며 평화가 바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 세상이 가진 것을 전부로 알 고 살아서, 또 그것을 위해서 우리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수고하는 것은 바른 법이 아니기 때문에 이 찬란하고 현란한 것은 다 지나갑니다. 제가 이런 말은 아직 할말은 아니고 여러분이 좋지않게 생각을 하실 분들이 있겠지만 피 곤해서 그런 걸로 생각을 합니다마는 어떤 때 가끔 건망증 같은 것을 느낍니다. 시골에 내 려가서 여관에 자고 내가 분명히 양치를 하고 그 다음 동작을 하고 나올 때는 그 치솔을 꼭 놓고 나옵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되는가! 그리고 어떤 때는 기억력도 빨리빨리 되살 아나지 않는데, 많은 경우에 아직 나이탓이라기 보다는 피곤 탓으로 생각을 합니다마는, 그 런 예들을 경험을 해요. 또 그렇게 생각이 들면서 내가 느끼는 것은 정말 세상에서 열심히 하고 분요하고 열심하는 것도 결국은 다 한 때요 지나가는 것인데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종 종 있습니다. 더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 참 좋은 일입니다. 높은 지위를 위해서 그가 해야할 일을 하 면 그는 정말 축복받은 자리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욕망의 만족을 위해서 더 높은 지위를 대부분 남용하는데 그렇게 되면 사실은 그 자리는 그로 그 주변 사람들에게 그가 소속된 사회에 축복거리가 아니라 오히려 욕거리이고 저주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다 욕 망, 가진 것 권력의 추구 그리고 성적 만족 세 가지가 가장 기본적인 욕망일 것입니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한 가질려고 하는 것, 그리고 권력을 행사해서 자기 말로 일이 진행되어지는 것, 그리고 성적인 만족, 이런 것들을 위해서 과도히 우리 한국사회가 거꾸로 뒤집혀 있는 데 사실은 한 때 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법 위에 집권하는 사람이 있어서 참 20년 가까이 하니까 한국 정권은 잡을만 하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다 지나가지요. 얼마 지나고 나면, 정말 우리 주변에 이름 을 들고 말할 수 없지마는 부러워하는 사람들, 잘 가는 사람들, 출세 가도를 잘 달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다 한 때 같아요. 같은 것이 없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우리가 이렇게 봐도 욕망을 발동해서 세상적으로 잘되려고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 그것이 바로 요 란 말로 표현된 것이지요. 그건 다 지나가고 없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오래 살 수 있으면 오래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과도히 욕망을 발동하면 병 듭니다. 병들어요. 그냥 나이 먹어서 지나가기 때문에 사라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의 욕망이 사라집니다. 사실 높은 지위에 오 르기 위해서는 많은 과도한 수고를 하고 높은 지위에 오릅니다. 남보다 배나 이상 수고하고 갑절이나 혹은 잠자지 않고 수고하고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책에 보니까 미국에, 우리나라도 이제는 그런게 많이 생겼습니다마는 연쇄 슈퍼마 켓이 많습니다. 거기의 한 지배인이 일을 했습니다. 열심히 수고하고 다른 지배인들 다른 연쇄점의 지배인보다 더욱 힘 다해서 밤잠 자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 다 퇴근을 하고도 밤 늦게까지 수고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조금 더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위궤양으로 큰 어려움을 겪으며 그 다음 높은 지위에서의 직무는 잘 감당할 수 없는 처 지에 이르게 됐습니다. 그가 과도한 욕망을 발동해서 자기의 욕구를 이루려 하다가 그 욕망 들이 역작용을 일으켜서 그의 건강을 분해하기 시작합니다. 무리하게 너무 과도한 욕망들을 발동했으므로 하나님이 자기에게 베푸신 생의 비중을 깨고 자기의 기관들이 바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므로 그의 기관이 축소되고
그러므로 그의 생이 계속될 수 없도록 상해를 입 습니다. 많은 경우에 이러한 것들이 바로 욕망이 지나간다는 말로 뜻하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가 과도히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서 애쓰는 것, 과도히 자기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서 자기의 능력의 범위를 벗어날려고 과도히 돈을 모을려고 애쓰는 것, 그런 것들은 다 참 그의 생의 바퀴를 불사르는 것이 되어서 그의 생을 단축시켰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생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암스텔담 있을 때에 그 외국 주재 상사원의 말이 한국에서 온 40대 중반 50대의 회사의 중역들이 약봉지를 싸들고 오지 않는 사람들이 아직 한 사람도 없었다. 지금 제일 문제가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까지가 제일 황금시절인데 정말 이제까지 쌓아올린 경험과 경륜 을 발휘해서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나이에 이르렀는데 그들을 접촉해본 한국 주재 상사원 의 하는 말이 약봉지 싸들고 오지 않는 사람 아직까지 한사람도 만나보지 못했다. 과도히 자기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서 애쓰고 수고하므로 그로 하여금 빨리 그의 생이 단축되게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분요하게 너무 억지로 어거지로 하는 것은 곧 쉬이 사라집니다. 사실 우리가 우리의 육체적인 생명도 길게 연장되는 길은 하나님의 법을 좇아 순리대로 사는 길입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분요하고 애쓰면 빨리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까지 거하게 되리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까지 거합니다. 물론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마는 하나님의 법을 좇아 정상적으로 살면 이 육신적인 생명도 바쁘게 분요하게 욕망을 과도하게 발동해서 자기의 범주를 벗어나 자기의 능력의 한계 이상으로 일하는 사람보다 더 오래 살게 됩니다. 또 정욕도 사라지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하나님의 뜻을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는 자, 과거사가 아니고 현재 진행형 분사를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도 오래 살 뿐만 아니라 영원에까지 삶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하면, 이 성경의 문맥에 의하면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고 그의 법도대로 사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뜻 이지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의이고 하나님의 경륜인데 뜻이 무엇이냐
첫째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를 믿음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고 그의 뜻을 아는 것이어서 그 뜻을 앎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을 행할 수 밖에 없 게 되도록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서 살도록 새 피조물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역사를 진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실제로 역사를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선지자들이 많은 핍박을 받았지만 선지자들이 선지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직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 그가 예언한 예언들이 그 선지자적인 말씀들이 응해져서 실제로 사실로 사건으로 자기 백성들의 눈앞에 진행되었 던 데에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가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요 그가 하나님께로 가는 하나님의 심장으로 가는 길일 뿐만 아니라 그가 바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으로 살게 하는 원천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그 뜻을 아는 자는 의의 길로 행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의의 삶입니다. 다른 것이 의가 아니지요.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의 입니다. 바른 법이 다 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 이지요. 그 뜻은 실현되어야 할 될 뜻입니다. 그러니까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지켜져야 되는 것이지 기록된 걸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의 뜻은 행해지기 위해서 계시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법도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은 거룩의 길로 행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악을 벗으며, 죄악을 다 벗는다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 입니다. 그러니까 죽기까지 다 완전해졌다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소위 오순절파에 서 말하는 식으로 성령님세례를 받고 성령님충만을 받아도 죽는 날까지 완전해졌다고 할 사람 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한국 교인들이 생각하듯 육신이니 별수 있 느냐 하고 죄악된 행동들을 변호하고 변호하는 것으로 쓰여지도록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비록 연약하고 육체를 입고 있고 옛사람이 다 죽어버리지 못해서 죽는 날까지 실수하고 넘어지고 그리고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죄와 싸우는 생을 가는 것이 우리의 생이고 죄악을 이겨내는 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의 생은 늘 편안하고 그냥 잔잔한 바다에 돛만 달면 절로가는 그런 수행의 길 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의 삶은 늘 파도를 헤치며 노를 젓는 그와같은 투쟁의 연속 이라고 할 것입니다. 한번 큰 파도를 지나고 나면 우리는 한숨을 짓고 노를 놓기가 쉽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그렇지요. 그러나 바다에서 대부분 항해할 때에 한번 큰 파도를 지났기 때문에 또 다시 파도가 없다고 생각하면 그것처럼 큰 착각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파도 속 으로 빠져 들어갈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제 한번 죄악을 이겼으니 요 다음에는 문제가 없겠지 하면, 그 노를 쉬고 있는 사람이 그 다음 파도에 의해서 바다 속으로 내려가버리듯 우리가 안심하고 살고 있으면 우리는 죄악으로 넘어져버리기가 십상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거룩의 길로 행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생 은 끊임없이 죄와 투쟁해야 하므로 의롭게 의의 길로 사는 생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다 하나님의 법을 좇아서 말씀대로 살며 그리고 죄 악과 싸워 이기는 투쟁의 생을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근본 뜻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자신을 영화롭게 하지마는 하나님은 그를 믿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 은 행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은 영원까지 거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 중에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셨고 그리고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그들 을 자기의 영광에 동참시키시기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자기의 영광을 충분 히 이루시고 새 인류 중에서 영원히 찬송받으실, 영광을 받으실려고 하신 하나님의 뜻은 변 함이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들은 이 세상이 사라 질 때에 사라지는 것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세상에는 기념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영 구히 살아남아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 중에 찬란했던 사람들도 몇년 지나고 나면 이름 석자 남을둥 말둥 가물가물 합니다. 정말 크게 수고하고 크게 인류를 위 해서 공헌하고 주의 교회를 위해서 공헌한 사람 외에는 그 숱한 영웅들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참 기억해 주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서는 별로 그렇게 높임받지 못하고 그리고 기명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 우리가 궁극의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영화가 하나님의 뜻의 궁극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의 하나님의 경륜의 시작이고 마지막 점입니다. 우리 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 그 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루어지고 믿음이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새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뜻 을 행한다. 즉,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찬송하는 일을 하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물론 여러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쉬운 정의는 아닙니다. 제가 미국에 가 가지고 첫 수업에 참석했습니다. 젊은 교수가 열의있게 강의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을 강조를 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도대체가 어떻 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까 무엇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 까 제가 수업이 끝나고 물었습니다. 성경에 말씀했으니 그렇게 해야 된다. 그렇게만 말하 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인지 제가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이름을 기리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요. 그 열매를 감사함,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요. 우리 중에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사는 것, 그것이 내가 보기에는 가장 크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가 교회 와서 예배하고 찬송하고 감사할 때만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실은 제일 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무엇이냐 우리의 생활에서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인정 하며 사는 것!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까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서 많은 큰일을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해야 되고 뭐 이런 것, 돈도 더 많이 벌어야 하고, 이 런 것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압니다. 그것은 바른 가치 판단이 아니고 바른 하나님의 법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와같이 이렇게 사기가 횡행하고 부조리가 구조적으로 이루 어지는 사회에 살면서 우리가 사기 당하지 아니하고 실패하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 우리도 마찬가지로 사기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이렇게 속이고 제도화 되어 있는 이와같 은 부조리한 사회에 살면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면 잘된다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실패하는 것이 바른 귀결입니다. 그러면 돈 많이 벌고 으뜸이 되고 이런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결국 사기하고 세상 사람하고 마찬가지로 돈 버는 것 밖에 다른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생에서 여러분들이 사는 작은 삶에서 여러분들의 삶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인정받고 사는 것, 그 이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없다고 봅니다.
여러분들이 이와같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바른 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너무 많이 만 용을 발휘해서 내가 이렇게 큰 교회를, 이렇게 많은 교인들이 많이 나왔으니 헌금도 많이 나와서 많은 교회도 개척도 하고 선교사, 저 가난한 미개지역 뿐만 아니라 돈 많은 나라에 까지 선교사를 보낼 수 있고, 그런 것들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면 그 게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건 다 세상적인 표준이고 세상적인 척도지요. 하나님의 법은 그 법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의 모든 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으로 최선을 다해야지요. 하나님의 법으로! 그 법으로 살므로 우리가 꼭 승리하고 꼭 번창한다고 약속할 수가 없습니다. 그 약속은 세상의 약속일 뿐이지 하나님의 법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 감옥에 가는 일이라면 그 길을 택하고 그 길을 걸으므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보시는 것이지 꼭 세상적으 로 높이되고 부자되고 외국을 자꾸 들락거리고 휘황번뜩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그래야만 영광을 보시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인정되고 있다면 여러분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경우에 거의 생활에서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것이 인제 문제지요. 거의 예수 믿는 사람들의 생활에 하나님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 하며 사는 자들은. 영원까지 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해서 하나님의 낯을 뵈옵고 사는 영광에 이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낯 을 보는 것이 무슨 영광이냐 우리 한국 사람에게는 지금이 영광이 아니지요. 옛날 임금의 신하들은 임금님만 뵈오는 것이 소원이어서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하고 읍조렸지마는 지금 은 그런 것이 별 문제가 안되어서 돈 많이 벌고 지위에 이르고 높임받고 이런 것을 좋은 것으로 참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바른 법이 아닙니다. 지금 경제가 이렇게 위경을 만나서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아우성일 때에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실패도 없고 잘 된다고만 하는 것은 그건 세상의 법이고 지나갈 세상의 욕망의 법이지 하나님의 법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을 영 화롭게 하는 자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요, 이 사람만이 영원까지 거하게 되어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많이 이 현세적인 것에 그것에 너무 집착하고 현세적으로 나타난 것 에 너무 과도히 표준을 삼기 때문에 세상이 너무 요란하고 어지러워서 우리 사회의 법이 잘 집행되지 아니하고 질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러다 보니 몇몇 가진 자들이 전부를 다 가지려고 욕망을 크게 발동하고 몇몇 잡은 자들이 영구히 자기들이 잡은 것을 계속할려고 하기 때문에 사회에 이렇게 분요하고 분란되며 혼란하고 평화와 자유가 적습니다. 그리고 의와 공평이 실현되지 못합니다. 어느 사회든지 다 불의와 부조리가 있기 마련이지마는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사회는 정말 부조리와 불의가 더 큰 규모로 통용 하기 때문에 큰 규모로만 이뤄지면 그것이 법으로 바른 것으로 통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와같이 순전히 자기의 에고를 발휘하기 위하여 과도히 집착하므로 이뤄내는 이러한 현상들 은 사실은 한때의 물거품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돈과 권력을 그리고 지위를 추구 해서 추구하고 노력하는 일을 한번도 중단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것에 과도히 집착해서 교회에서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을 더 존경하고 그래서 사회에서 존 경받던 사람들이 교회 와서도 장로되고 집사 됩니다. 이건 참 바른 신앙의 법이 아닙니다. 사회에서 높은 지위에 있다고 해서 교회에서도 신앙이 바르고 믿음의 덕이 더 나으며 바른 진리를 바로 깨닫고 교회를 봉사하는데 유익한 은사들을 받아 가졌다고 할 수 없습니다. 흔 히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 믿음에서도 성공하고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겨서 사회에서 잘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교회에 서도 그와같은 지위를 누려야 될 것으로 알지마는 그건 다 세상의 법이지 성경적인 법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고 사장이 되는 것은 세상의 법이요. 그러나 교회 와 서도 그 사람이 장로 하고 집사 되고 그런다는 것은 성경의 법이 아닙니다. 믿음의 부요한 자가 꼭 세상적인 물질에도 부요하고 잘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세상적으로 부요하고 권세있는 자가 믿음에도 꼭 부요하고 믿음에도 덕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둘을 항상 세상적으로 잘되는 사람을 축복으로만 여겨서 세상에서 공 의가 실현되든지 안되든지 정의의 법이 실현되든지 안되든지 간에 높은 지위에만 오르는 것은 그리고 돈을 많이 받을 수 있고 벌 수 있는 것은 어찌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겨서 그걸 표준으로 삼아서 교회에서까지 하나님의 법이 시행되지 아니하고 의와 공평이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그건 바른 법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교회의 부조리는 사회에 있는 부조리가 거기 반영되어 있다 할 것입니다. 돈 많이 낸 자가 교회를 좌지우지 하고 그 리고 자기의 주관대로 이끌고 가는 일들이 너무 많이 잇습니다. 우리는 사회의 지위가 높은 것을 축하하고 치하해 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것의 표준이고 전부인 것으로 아는 것은 전혀 바른 법이 아닙니다. 그러나 돈 많이 버는 것을 축하하고 치하해 줘야 할 것입니다. 그가 그만큼 수고하고 수고의 대가를 지불했다면! 그러나 그것을 전부로 하고 그 걸 목표로 하고 살면 정말 잘못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돈 없이는 우리 인간 이 하고싶은 욕망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돈 없이는 자기가 하고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사람 이 별로 많지 못합니다. 제가 대학교 때 정치학과에서 강의를 좀 듣는데 미국에서 온 교수가 미국의 헌법에 대해 서 강의를 했습니다. 그가 자유에 대해서 이야기 했는데 참 뼈있는 말을 한마디를 했습니다. 저기 벤치에 앉아서 벤치를 따뜻하게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그 사람의 자유라고 말하 지 않는다. 정말 사실이지요. 벤치에 앉아서 이렇게 맑은 공기를 마시고 벤치나 따뜻하게 하고 있는 것을 가리켜서 자유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가 정당하게 해야될 것을 하지 못하는 것, 또 하고싶어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우리가 물질을 가지 고 우리가 행동하기 때문에 물질 없이 우리가 바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 과 한국교회가 다 물질을 지상으로 하고 살기 때문에 모든 가치가 전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도 그렇게 너무 과도히 우리가 가진 자들과 가진자들을 높이고 숭상을 하는 것이 너무 많아서 가진 자 앞에 도대체 바른 말도 못하고 쥔 자 앞에는 바른 말도 전혀 못 합니다.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법이 시행되지 못하고 의와 공평이 이루어 지지 못하며 평화가 바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 세상이 가진 것을 전부로 알 고 살아서, 또 그것을 위해서 우리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수고하는 것은 바른 법이 아니기 때문에 이 찬란하고 현란한 것은 다 지나갑니다. 제가 이런 말은 아직 할말은 아니고 여러분이 좋지않게 생각을 하실 분들이 있겠지만 피 곤해서 그런 걸로 생각을 합니다마는 어떤 때 가끔 건망증 같은 것을 느낍니다. 시골에 내 려가서 여관에 자고 내가 분명히 양치를 하고 그 다음 동작을 하고 나올 때는 그 치솔을 꼭 놓고 나옵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되는가! 그리고 어떤 때는 기억력도 빨리빨리 되살 아나지 않는데, 많은 경우에 아직 나이탓이라기 보다는 피곤 탓으로 생각을 합니다마는, 그 런 예들을 경험을 해요. 또 그렇게 생각이 들면서 내가 느끼는 것은 정말 세상에서 열심히 하고 분요하고 열심하는 것도 결국은 다 한 때요 지나가는 것인데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종 종 있습니다. 더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 참 좋은 일입니다. 높은 지위를 위해서 그가 해야할 일을 하 면 그는 정말 축복받은 자리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욕망의 만족을 위해서 더 높은 지위를 대부분 남용하는데 그렇게 되면 사실은 그 자리는 그로 그 주변 사람들에게 그가 소속된 사회에 축복거리가 아니라 오히려 욕거리이고 저주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다 욕 망, 가진 것 권력의 추구 그리고 성적 만족 세 가지가 가장 기본적인 욕망일 것입니다. 더 많이 가지기 위한 가질려고 하는 것, 그리고 권력을 행사해서 자기 말로 일이 진행되어지는 것, 그리고 성적인 만족, 이런 것들을 위해서 과도히 우리 한국사회가 거꾸로 뒤집혀 있는 데 사실은 한 때 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법 위에 집권하는 사람이 있어서 참 20년 가까이 하니까 한국 정권은 잡을만 하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다 지나가지요. 얼마 지나고 나면, 정말 우리 주변에 이름 을 들고 말할 수 없지마는 부러워하는 사람들, 잘 가는 사람들, 출세 가도를 잘 달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다 한 때 같아요. 같은 것이 없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우리가 이렇게 봐도 욕망을 발동해서 세상적으로 잘되려고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 그것이 바로 요 란 말로 표현된 것이지요. 그건 다 지나가고 없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오래 살 수 있으면 오래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과도히 욕망을 발동하면 병 듭니다. 병들어요. 그냥 나이 먹어서 지나가기 때문에 사라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의 욕망이 사라집니다. 사실 높은 지위에 오 르기 위해서는 많은 과도한 수고를 하고 높은 지위에 오릅니다. 남보다 배나 이상 수고하고 갑절이나 혹은 잠자지 않고 수고하고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책에 보니까 미국에, 우리나라도 이제는 그런게 많이 생겼습니다마는 연쇄 슈퍼마 켓이 많습니다. 거기의 한 지배인이 일을 했습니다. 열심히 수고하고 다른 지배인들 다른 연쇄점의 지배인보다 더욱 힘 다해서 밤잠 자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 다 퇴근을 하고도 밤 늦게까지 수고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조금 더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위궤양으로 큰 어려움을 겪으며 그 다음 높은 지위에서의 직무는 잘 감당할 수 없는 처 지에 이르게 됐습니다. 그가 과도한 욕망을 발동해서 자기의 욕구를 이루려 하다가 그 욕망 들이 역작용을 일으켜서 그의 건강을 분해하기 시작합니다. 무리하게 너무 과도한 욕망들을 발동했으므로 하나님이 자기에게 베푸신 생의 비중을 깨고 자기의 기관들이 바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므로 그의 기관이 축소되고
그러므로 그의 생이 계속될 수 없도록 상해를 입 습니다. 많은 경우에 이러한 것들이 바로 욕망이 지나간다는 말로 뜻하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가 과도히 높은 지위에 오르기 위해서 애쓰는 것, 과도히 자기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서 자기의 능력의 범위를 벗어날려고 과도히 돈을 모을려고 애쓰는 것, 그런 것들은 다 참 그의 생의 바퀴를 불사르는 것이 되어서 그의 생을 단축시켰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생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암스텔담 있을 때에 그 외국 주재 상사원의 말이 한국에서 온 40대 중반 50대의 회사의 중역들이 약봉지를 싸들고 오지 않는 사람들이 아직 한 사람도 없었다. 지금 제일 문제가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까지가 제일 황금시절인데 정말 이제까지 쌓아올린 경험과 경륜 을 발휘해서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나이에 이르렀는데 그들을 접촉해본 한국 주재 상사원 의 하는 말이 약봉지 싸들고 오지 않는 사람 아직까지 한사람도 만나보지 못했다. 과도히 자기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서 애쓰고 수고하므로 그로 하여금 빨리 그의 생이 단축되게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분요하게 너무 억지로 어거지로 하는 것은 곧 쉬이 사라집니다. 사실 우리가 우리의 육체적인 생명도 길게 연장되는 길은 하나님의 법을 좇아 순리대로 사는 길입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분요하고 애쓰면 빨리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까지 거하게 되리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까지 거합니다. 물론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마는 하나님의 법을 좇아 정상적으로 살면 이 육신적인 생명도 바쁘게 분요하게 욕망을 과도하게 발동해서 자기의 범주를 벗어나 자기의 능력의 한계 이상으로 일하는 사람보다 더 오래 살게 됩니다. 또 정욕도 사라지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하나님의 뜻을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는 자, 과거사가 아니고 현재 진행형 분사를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도 오래 살 뿐만 아니라 영원에까지 삶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하면, 이 성경의 문맥에 의하면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고 그의 법도대로 사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뜻 이지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의이고 하나님의 경륜인데 뜻이 무엇이냐
첫째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를 믿음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고 그의 뜻을 아는 것이어서 그 뜻을 앎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을 행할 수 밖에 없 게 되도록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서 살도록 새 피조물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역사를 진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실제로 역사를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선지자들이 많은 핍박을 받았지만 선지자들이 선지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직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 그가 예언한 예언들이 그 선지자적인 말씀들이 응해져서 실제로 사실로 사건으로 자기 백성들의 눈앞에 진행되었 던 데에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가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요 그가 하나님께로 가는 하나님의 심장으로 가는 길일 뿐만 아니라 그가 바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으로 살게 하는 원천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그 뜻을 아는 자는 의의 길로 행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의의 삶입니다. 다른 것이 의가 아니지요.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의 입니다. 바른 법이 다 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 이지요. 그 뜻은 실현되어야 할 될 뜻입니다. 그러니까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지켜져야 되는 것이지 기록된 걸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의 뜻은 행해지기 위해서 계시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법도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은 거룩의 길로 행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악을 벗으며, 죄악을 다 벗는다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 입니다. 그러니까 죽기까지 다 완전해졌다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소위 오순절파에 서 말하는 식으로 성령님세례를 받고 성령님충만을 받아도 죽는 날까지 완전해졌다고 할 사람 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한국 교인들이 생각하듯 육신이니 별수 있 느냐 하고 죄악된 행동들을 변호하고 변호하는 것으로 쓰여지도록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비록 연약하고 육체를 입고 있고 옛사람이 다 죽어버리지 못해서 죽는 날까지 실수하고 넘어지고 그리고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죄와 싸우는 생을 가는 것이 우리의 생이고 죄악을 이겨내는 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의 생은 늘 편안하고 그냥 잔잔한 바다에 돛만 달면 절로가는 그런 수행의 길 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의 삶은 늘 파도를 헤치며 노를 젓는 그와같은 투쟁의 연속 이라고 할 것입니다. 한번 큰 파도를 지나고 나면 우리는 한숨을 짓고 노를 놓기가 쉽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그렇지요. 그러나 바다에서 대부분 항해할 때에 한번 큰 파도를 지났기 때문에 또 다시 파도가 없다고 생각하면 그것처럼 큰 착각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파도 속 으로 빠져 들어갈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제 한번 죄악을 이겼으니 요 다음에는 문제가 없겠지 하면, 그 노를 쉬고 있는 사람이 그 다음 파도에 의해서 바다 속으로 내려가버리듯 우리가 안심하고 살고 있으면 우리는 죄악으로 넘어져버리기가 십상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거룩의 길로 행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생 은 끊임없이 죄와 투쟁해야 하므로 의롭게 의의 길로 사는 생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다 하나님의 법을 좇아서 말씀대로 살며 그리고 죄 악과 싸워 이기는 투쟁의 생을 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근본 뜻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자신을 영화롭게 하지마는 하나님은 그를 믿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 은 행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은 영원까지 거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 중에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셨고 그리고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그들 을 자기의 영광에 동참시키시기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자기의 영광을 충분 히 이루시고 새 인류 중에서 영원히 찬송받으실, 영광을 받으실려고 하신 하나님의 뜻은 변 함이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들은 이 세상이 사라 질 때에 사라지는 것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세상에는 기념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영 구히 살아남아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 중에 찬란했던 사람들도 몇년 지나고 나면 이름 석자 남을둥 말둥 가물가물 합니다. 정말 크게 수고하고 크게 인류를 위 해서 공헌하고 주의 교회를 위해서 공헌한 사람 외에는 그 숱한 영웅들도 세월이 지나고 나면 참 기억해 주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서는 별로 그렇게 높임받지 못하고 그리고 기명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 우리가 궁극의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영화가 하나님의 뜻의 궁극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의 하나님의 경륜의 시작이고 마지막 점입니다. 우리 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 그 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루어지고 믿음이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새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뜻 을 행한다. 즉,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찬송하는 일을 하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물론 여러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쉬운 정의는 아닙니다. 제가 미국에 가 가지고 첫 수업에 참석했습니다. 젊은 교수가 열의있게 강의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을 강조를 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도대체가 어떻 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까 무엇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 까 제가 수업이 끝나고 물었습니다. 성경에 말씀했으니 그렇게 해야 된다. 그렇게만 말하 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인지 제가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이름을 기리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요. 그 열매를 감사함,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요. 우리 중에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사는 것, 그것이 내가 보기에는 가장 크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가 교회 와서 예배하고 찬송하고 감사할 때만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실은 제일 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무엇이냐 우리의 생활에서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인정 하며 사는 것!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까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서 많은 큰일을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해야 되고 뭐 이런 것, 돈도 더 많이 벌어야 하고, 이 런 것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압니다. 그것은 바른 가치 판단이 아니고 바른 하나님의 법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와같이 이렇게 사기가 횡행하고 부조리가 구조적으로 이루 어지는 사회에 살면서 우리가 사기 당하지 아니하고 실패하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 우리도 마찬가지로 사기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이렇게 속이고 제도화 되어 있는 이와같 은 부조리한 사회에 살면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면 잘된다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실패하는 것이 바른 귀결입니다. 그러면 돈 많이 벌고 으뜸이 되고 이런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결국 사기하고 세상 사람하고 마찬가지로 돈 버는 것 밖에 다른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생에서 여러분들이 사는 작은 삶에서 여러분들의 삶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인정받고 사는 것, 그 이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없다고 봅니다.
여러분들이 이와같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바른 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너무 많이 만 용을 발휘해서 내가 이렇게 큰 교회를, 이렇게 많은 교인들이 많이 나왔으니 헌금도 많이 나와서 많은 교회도 개척도 하고 선교사, 저 가난한 미개지역 뿐만 아니라 돈 많은 나라에 까지 선교사를 보낼 수 있고, 그런 것들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면 그 게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건 다 세상적인 표준이고 세상적인 척도지요. 하나님의 법은 그 법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의 모든 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으로 최선을 다해야지요. 하나님의 법으로! 그 법으로 살므로 우리가 꼭 승리하고 꼭 번창한다고 약속할 수가 없습니다. 그 약속은 세상의 약속일 뿐이지 하나님의 법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 감옥에 가는 일이라면 그 길을 택하고 그 길을 걸으므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보시는 것이지 꼭 세상적으 로 높이되고 부자되고 외국을 자꾸 들락거리고 휘황번뜩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그래야만 영광을 보시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인정되고 있다면 여러분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경우에 거의 생활에서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것이 인제 문제지요. 거의 예수 믿는 사람들의 생활에 하나님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 하며 사는 자들은. 영원까지 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해서 하나님의 낯을 뵈옵고 사는 영광에 이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낯 을 보는 것이 무슨 영광이냐 우리 한국 사람에게는 지금이 영광이 아니지요. 옛날 임금의 신하들은 임금님만 뵈오는 것이 소원이어서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하고 읍조렸지마는 지금 은 그런 것이 별 문제가 안되어서 돈 많이 벌고 지위에 이르고 높임받고 이런 것을 좋은 것으로 참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바른 법이 아닙니다. 지금 경제가 이렇게 위경을 만나서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아우성일 때에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실패도 없고 잘 된다고만 하는 것은 그건 세상의 법이고 지나갈 세상의 욕망의 법이지 하나님의 법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을 영 화롭게 하는 자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요, 이 사람만이 영원까지 거하게 되어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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