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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으로 기름부으심 (요일2:25-27)

본문

이것들을 여러분들에게 썼습니다. . 여러분들을 유혹하는 자들에 관하여(때문에) 이것들을 여러분들에게 썼 습니다. 여기는 1장부터 25절까지에 나타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도에 관한 사도의 모든 기록을 말합니다. 여기 인제라고 썼으니 또한번의 편지를 쓴 것과 같은 그와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지마는 이제까지 25절까지에 특히 25절을 중심한, 물 론 이 전체, 여기까지 온 전체 내용 중에 주로 소위 미혹하는 자들, 즉 소 위 사도 당시에 살아있던 영지주의자들의 미혹에 관하여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 기서 지금 18절부터 25절까지에 강조되어 있듯이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로서 육신을 입고 오심을 부인하는 것을 반박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희랍적인 사고가 만연해서 희랍사고에 의하면 물질은 다 악한 것이어서 영이라 든지 합리적인 존재가 물질하고 이렇게 함께 교제하거나 합할 수 없는 걸로 돼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은 우리의 몸의 구원이 아니라 그 합리적인 요소, 인간에게서 이렇게 뽑 아내 가는 것 그것이 영지주의자들에게 구원이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에 의하면 우리 속에 들어있는 영혼은 저 신의 세계에서 온 신적인 파편들 입니다. 그래서 그 파편된 존재들을 이 육체라고 하는 감옥에 갇혀 있는 이 신적인 존재들을 불러내 가는 것이 구원인데 그것은 희랍사고의 변형일 뿐이요 기독교에 의하면 우리의 몸이 우리의 영혼과 함께 구원에 이 르고 물론 영혼과 육체가 구분되는 것이 사실이고 육체 때문에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타락 때문이고 본래 자체부터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창조되어 나왔고 또 인간은 몸을 떠나서 완전한 인격이 되지 못합니다. 육체가 혹은 물질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이 표현되게 하셨는데 우리의 인격은 최소한 육을 따라서 만족하게 해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때 벌써 이 영과 육을 영 대립되는 갈등의 대립물로 생각해서 이 육체라 고 하는 감옥에 혹은 무덤에 갇혀져 있는 신적 존재를 불러내므로 구원에 이르게 한다. 본 래 본고향으로 되돌리므로! 그와같은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 우리와 동일한 몸을 입고 하나님이 사람되셔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이것을 영지주의가 만들어 냈 습니다. 바로 이것에 대한 반박이 여기까지 오면서 사도 요한이 가르치고 있는 그런 교훈입니다. 그것은 바로 나사렛 예수가 바로 메시야이시고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하나님의 아 들이라고 하는 진리이고, 그로 인해서 우리에게 영생이 왔다고 하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영생은 영혼의 불멸이 아니라 우리의 육체와 영혼이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이라 라고 하는유혹하다 라는 동사를 썼는데 라고 하는 동사는 그냥미혹하다, 속이다 의 뜻도 있지만 여기 쓰일 때 더 근본은 이렇 게 참 하나님을 섬기는 데서 피조물로 이렇게 하나님 섬기는 걸 바꾸는 유혹을 말할 때에 를 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못믿게 하는 것은 사도의 입장에서 보면 참 하나님을 섬기는 데서 우상을 섬기는 일에 끌어내리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 섬기는 유일한 길이 예수 그리스도이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을 섬 기는 참 길이요 바른 길이요.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그렇게 참 으로 성육신해 오신 우리의 구주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참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고 우상을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탈락하면 많은 사람들이 무종교가 될줄 알아도 그러지 않습니다. 많은 지성인들이 종교를 갖지 아니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지적인 것에 만족해서 우상을 섬기지 않는 것으로 많은 경우에 볼 수 있지마는 결국에는 국가라고 하든지 어떤 이성을 절대화 해서 그런 것을 섬긴다든지 전부가 다 피조물을 섬긴다. 그러니까 철학자라든지 지 성인들은 이성을 절대화 해서 이성을 신으로 섬깁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참 하나님을 떠 나면 다 사람을 섬기는 인간숭배로 되돌아오기 마련입니다. 아우그스 콩트라고 하는 소위 실존과학을 철학계에 도입한 콩트도 결국에는 처음에는 형이상학 시대이고 그 다음 이렇게 미신 형이상학, 처음에는 신 형이상학 그 다음에는 과학시대라 이렇게 해서, 신학의 시대, 형이상학 시대, 과학의 시대, 전부 다 모든 세상을 신적으로 해석하는 신화적으로 해석하는 그런 원시 시대에서 형이상학 시대로 옮아 왔고 그 다음 자연과학 시대로 옮아 왔다. 우리는 그러니 정말 개명된 이성을 갖고 살고 있다고 그렇게 콩트가 말하고 그런 저 첫 단계에 속한 그런 신화적인 세계에 속하는 그런 기독교 신앙을 계속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마는 마 침내는 그도 여성 숭배에 빠지고 결국 사람을 숭배하는 데에 빠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다른 길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은 다 우상숭배에 이르는 길 뿐입니다. 이 길을 분명히 알으셔야지요.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 구원의 길이고 그 를 통해서만 참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아들을 부인하므로 아버지를 부인하였습니다. 27절,, 그에게서부터서 여러분들이 받았던 를 여러분 안에 거한다면, 여러분들이 그로부터서 받았던기름부음이 여러분 안에 거한다면… 사도 요한은 성령님이라는 이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에서도 보혜사 라고 하는 단어로 말하고 여기서도 성령님이라는 말을 언급하는 대신 기름부음 받음이라고 강조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기름부음이라고 말한 것에는 오순절날 성령님의 강림에 물붓듯 기름붓듯 부어주심을 늘 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에게서 기름부어지 신 분임을 강조하기 위해서기름부음이라고 그렇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또 받은를의 second aorist를 썼는데 과거사라! 즉 단번에 오순절에 오신 성령님을 이 성도들이 동참하는 것으로 한번에 받았습니다. 성령님은 반복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반복해서 받는 것이 아니지요. 지금 다 반복해서 받는 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님을 반복해서 받음으로 편만케 된다고 생각 하고 있습니다. 반복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그에게서 단번에 받았던 그 우리가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오순절에 인류에게 부어주신 그 성령님에 동참합니다. 바울 사도의 글이 그 안에서 한 성령님으로 마시우게 되어졌다. 혹은 한 영으로 한 몸에 로, 그 연합에서 한 몸으로 심기워졌다고 하는 것처럼, 우리가 다 예수 믿어 그의 몸에 부 착되어 그리스도와 신비한 연합을 가지므로 우리가 다 성령님의 기름부음, 성령님을 받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반복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를 앞에다 갖다놓 고 강조를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신앙고백 하는 자들은 다 예외없이 성령님 을 받는다고 하는 진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 지금는 편지를 받는 대상인데 그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므 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므로 아들과 아버지를 가진 자들 입니다. 그 들은 다 성령님을 가진 자들 입니다.
그런데 이미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 지금 우리에게 성령님이 거하시고 계십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역 사하시고 계십니다. 단지 우리가 너무 육으로 옛사람을 좇아 살고 새사람으로 살지 아니하 므로 성령님의 역사가 계속되지 못한 것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령님이 떠나가신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여러분이 알으셔야 할 것은 택함받은 자로 주의 영이 임한 자는 성령님이 중간 에 오셨다 가셨다 그러시는 것이 아니다. 한번 오신 성령님이 우리를 떠나가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형을 썼습니다.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이 여러분 안에 거하나 니, 한번 오신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십니다. 글쎄, 이런 예를 들어서 맞을려는지는 모르지만, 제가 대학 다닐 때 참 심령이 갈급할 때 가 참 많았어요. 말씀을 듣지 못하니까, 성령님이 그냥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항상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데 말씀이 선포되고 말씀이 오지 않으니까 성령님의 역사도 우리가 힘있게 체험할 수 없다.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 받아 살 수가 없어요. 성령님이 말씀 없이 우리를 인도 하고 가르치시고 관계하시는 것이 아니다. 말씀을 좇아서 말씀대로 살도록 우리를 권고하시는데 참 말씀을 받지 못하니까 늘 괴롭고 늘 심령이 매말라서 갈급하고 기도를 잘 못한다. 그러면 내가 분명히 느끼기는 그때 바로 기도하다가 이렇게 권고하고 권하는 음성이 온다. 아주 세미하게! 그때 분명이 느끼기는 성령님께서 나로 하여금 기도하도록 권유하시고 역사하 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적극적으로 신앙생활 못할 때에라도 성령께서 우리를 떠나가셨다가 기도를 많이 하시면 더 큰 은혜를 가지고 우리를 충만하게 채 우시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와 계신 성령님께서 우리가 말씀대로 살도록 권유하 시고 우리의 신앙이 자라서 우리의 속사람이 자라서 성령님에 온전히 이렇게 순종하기를 늘 권고하시고 깨우치신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셨다. 오셨다 갔다 오시는 것이 아니라 그는 우리에게 항 속적으로 계십니다. 죽을 때도 죽음 후에도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떠나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큰 위로이고 우리의 구원에 대한 가장 확실한 보장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와 계심이 우리의 구원의 보장으로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내 신 것이라. 여기는라 해서 기름부으신 이가 그리스도이심을 강조하고 있듯 이 주님께서 성령님을 보내시므로 우리의 구원이 확실함을 보장해 주시는 보장으로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말씀과 함께만 거한다면 성령님이 우리에게 늘 역 사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늘 말씀을 읽으며 말씀의 선포를 들어야 합니다. 말씀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구나 선포된 말씀을 늘 들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설교가 얼마나 중요하냐 맨날 설교에서 성경만 해석한다고 다 설교가 아니다. 참 복음을 전해야 그것이 설교가 되고 상령께서 역사하시도록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거하라. 그러면, , 어떤 사람도 여러분들을 가르쳐야 될만큼 필요가 없습니다. 자, 인제는 성경이 쓰여졌습니다. 최소한 사도요한에 의해서도 이 요한일서가 쓰여졌습니다. 그러니 요한일서가 분명히 요한복음보다 일찍 쓰였지요.
그런데 이제는 성령님의 가르침 과 이 사도가 쓴 것과 일치한다. 성령님이 가르친 내용이 다른 내용이 아니라 여기 지금 사도 가 쓴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본래 하나님께서 세상을 선하게 지으 셨는데 우리가 악한 자에게 짝하여 하나님으로부터 타락했을 때 우리를 다시 하나님께로 돌리시기로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그리스도가 되어 오신 이가 우리의 죄를 속하시므 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고 하는 진리, 이것이 사도가 가르친 교훈일 뿐만 아니라기름 부으심 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내용입니다. 성령님은 자기를 증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의 사역을 증거합니다. 사람들을 통하여 성령님은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고 그 이름이 존귀히 되게 합니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존귀히 하고 영화롭게 하려고 그 의 영광에 동참하므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것은 마치 아들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므로 아버지의 영광에 동참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것과 동일한 사역의 방식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에게 오셔서 바로 이 복음의 진리를 전파한다. 그러니 바로 이 성령님께서 가르치시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이 사도가 기록한 복음의 내용이라. 항상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 고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함 속에 사는 길은 다른 길이 아니라 성령님충만을 위해서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바로 복음을 바로 선포해야지요. 우리 한국교회가 능력 많은 분들이 많아서 한국 뿐만 아니라 오순절운동 하는 사람들 중 에 능력 많은 이들이 많기 때문에 한국에도 그렇게 하겠지마는내일 저녁 성령님 강림 합니다. 다 준비해갖고 오십시요.자, 어때요! 여러분도 다 성령님 받으러 가 보시지요. 뭘 준비해 갑니까 그런 회개하고 그런 준비도 하지요. 그렇지만 돈 준비해야지! 나는 그런 집회 참석 을 안해보고 들어보기만 해서 확실히 내가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준비해 가야 하는 데 뭘 준비해 갑니까 어디 기도원에 가서 한번 은혜 받아 보신 분, 그런 집회 참석해 보 신 분! 뭘 준비해 갑니까 예 그날 보통 성령님 강림 한다고 하는 날, 헌금궤 돌립니까 어 때요 이미 우리가 성령님을 모셔 기름부음으로 받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기름부음이란 속에 이 미 우리에게 와서 우리의 소유가 되어있다는 뜻이 상당히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와 계십니다. 계신 성령님이 왔다갔다 하신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한번 오신 성령님이 죽을 때까지 죽은 다음에 주의 품에까지 계속해서 계십니다. 그러니 이 성경의 말씀 읽고 성령님이 우리에 게 계시면 미혹에 넘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여기에가르칠 필요가 없다 고 한 말은! 그 다음에 자 여기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기름부으심이 여러분을 모든 것 에 관해서 가르칩니다.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하나님에 관한 모든 것을 다 가르칩니다. 구원 그러며는 하나님은 상관이 없는 것처럼 혹 생각하기 쉬운데 칼빈이 늘 강조한 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바로 우리의, 그것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구원하고, 구원은 성령님이 오셔 가지고 우리에게 뭘 갖다 주는 것이고, 지식은 저 멀리 초보로 처음 단계가 아니라, 참 하나님을 아는 그것이 구원이라. 그러니 기독교의 도리의 전부를 성령님께서 가르치십니다. 그 의 성령님의 역사로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원에 관한 모든 진리를 다 가르치십니다. 성령님께서 가르치시므로 이 책이 쓰여졌습니다. 자, 여기서모든 것에 관하여는 세상적인 그런 모든 것이 아니고 구원에 관계된 모든 것을 말합니다. 모든 것에 관해서 너희에게 가르치고, 여기에 인제 우리말로 번역이 27절 후반절을 봅시다.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 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지금 이것이 어디에 붙는 문맥인지 분명하지 않게 번역 이 되어 있습니다. 이 문맥에 보면참되고 거짓이 없으니뭐가 참되고 거짓이 없는지에 대한 붙는 문맥이 없이 번역을 해놨는데, 이럴 경우 우리가 원문에 돌아가서 살펴보는 것이 바릅니다. 여기 를 지금 중 성형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성이나 남성형이 아니라 중성형으로 기록하고 있으므로 를 지시합니다. 그가 진실하시고 참이시다. 왜 그가 바로 진리의 영이시므로 그 가 진리의 근원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는 참되시다. 그의 모든 가르침은 참되시기 때문에 다 른 사람이 가르칠 필요가 없다. 왜 참말은 이미 기름부으신 이가 가르치고 있으니까! 그럴 뿐만 아니라 거짓되지 않으시다. 그러니 영이 가르치시며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가르치심은 거 짓된 것은 없다.
그런데 여기 인제 , 의 앞에 에 액센트를 붙여서 그가 거짓됨이 없다고 하는 것, 그의 가르침이 참으로 참되고 거짓됨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성령님의 감화와 감동으로 온 진리에는 가르침에는 거짓이 없고 순진하십니다. 그가 진리의 영이시고, 그런데 많은 경우에 참 어려운 문제에 속합니다. 속하지만 부활 이후에 그리스도와 영과를 많은 경우에 구분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영을 가리켜서 성령님을 가리켜서 예수의 제 2의 자아라. 다른 자아라. 그렇게 말하는데 그런 면에서 볼 때에도 성령과 그리스도를 일치시킬 수 있다. 그리스도 자신이 성령님 안에서 우리에게 오셨다. 성령님이 가르치심이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 가르치심이다. 그러니 그는 거짓을 가르치실 수가 없다. , . 그리고 그가 여러분들을 가르치셨던 대로 그 안에 머무르라. 자, 이 말은 거하라는 말이고 복음대로 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복음으로 살지 않습니다. 복음은 열심히 듣고 성경은 읽어도 살지는 않습니다. 우리 한국 백성들이 가장 절실한 문제된 것이 있다면 이것이요. . 그 안에 그리스도 안에 살지 않는다. 그것이 제일 큰 문제요. 복음은 듣고 열심히 말씀은 읽고 기도는 많이 해도 살지는 않는다. 열심히 기도하는 데도 거짓말은 계속한다. 은혜라는 명목 으로 너무 불의한 일이 많이 진행됩니다. 왜 그럽니까 사실은 복음으로 살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복음이 가면 변화되어서 불의와 거짓을 구분해내게 됩니다. 내가 이 간증을 여기서 해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졸업생이 되어버렸으니까 이 간증 을 내가 하려고 합니다. 저 대구에 지금 개척교회 하는 분 한분이 있습니다. 전도사라 고 이번에 졸업했는데 그분이 여기 와서 참 복음을 깨닫고 복음의 가르침을 받고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늘 넘치는 삶을 살뿐만 아니라 어려움 중에 개척교회를 하면서도 그런 복음 의 역사가 얼마나 놀라운지를 간증을 나한테 자주 했습니다. 이번에 졸업하기 직전에 내게 와가지고 자기 장로님이 진주에 사시는데 장모님이 술집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장모님이 술 집을 해도 그것은 하지 않아야 될 일이고 하면 안된다고 하는 것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생계 수단으로 밥을 팔듯 술을 팔아가지고 (녹음 불량.) 그래서 내가 이 무슨 소리냐 아 이거 내가 살기 위해서 이렇게 술을 팔고 그래서 나온 소득의 십일조를 하나님한테 바치고 그러면 내가 정상적인 생을 잘 살고 있는데 아 무슨 말이냐 전혀 들을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기 처형이 이제자기 집에 와서 한 석달 있 으면서 전도사 가르침을 받고 그 마음이 변화되서 진주로 내려갔다. 내려가서 자기가 받은 복음을 자기만 감추고 있을 수 없어서 자기 가족에게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제부에게 가르침 받은 복음을 가족들에게 자기 어머니에게 가르쳤습니다. 그 러니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여서 그들이 변화되어서 장모님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제 복음을 받아들이니까 거짓이 무엇이고 참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해야될 것과 안해야 될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정말 이 술집 하면 안 되겠구나 이것이 큰 죄악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돼서 술집을 정리하고 다른 사업 하기로 다 제발로 벌써 일을 진행했다. 이것이 됐다는 말이 이미 끝내버렸다는 말인지 진행중이라는 말인지 내가 확인을 못했습니다마는, 그렇게 복음이 들어가면 이제까지 교회생활 충실히 잘하고 모범생이어서 십일조 잘하니 얼마나 모범생이요. 교회봉사 잘하고 남 잘돕고 그런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받아들이니까 정말 복음과 복음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되 어서 참과 거짓을 해야 될 것과 하지 않아야 될 것을 자동적으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복음이 오니까! 복음이 역사하니까!
그런데 왜 우리 한국교회가 복음대로 살지 못하느냐 말씀대로! 복음을 알지 못하니까 그런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가르침 받지 못하니까! 아, 그래도 무슨 상관이 있느냐 다 은혜로 법으로 그저 교회를 화평하게 하는 것이 유익 하니까 좋으니까 그런 이름으로 전부다 죄악을 그냥 감춰버린다. 학교도 마찬가지 아니요 어떻게든지 다 그냥 은혜라는 것으로 다 해버리고 그게 좋은 것으로 안다. 그러니 기독교 학교에서 이 법이 안서요. 항상 결산하면 적자 보는데가 기독교 계통의 학교요. 다른데는 다 잘하는데 교회 계통 학교에만 은혜라는 명목으로 바로 되는게 없습니다.
진짜 복음이 바로 선포되고 가르쳐져서 복음을 알면 사람들이 변화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당연해요. 그 복음대로 변화되서 그대로 새롭게 행한다는 말 아닙니까! 여러분들이 복음을 가르침 받으며는 변화되고 새로워져야지! 아하! 못듣던 새소리 들었다. 나도 가서 그거 전해가지고 한번 인기를 얻어봐야지. 못듣던 소리 새소리 해보니 참 사람들이 귀가 번쩍하더라! 그래가 지고는 안됩니다. 여럽분들이 복음 안에서 변화되고 복음 안에 거하는 길은 사는 길은 변화 되지 않으면 안돼요. 옛사람으로는 못산다. 옛사람 옛법 그대로 그게 안되는 것이지요. 어째서 이 교회가 7계를 7계 뿐만 아니라 계명을 범해도 한 사람도 권징 못하느냐 복음이 선포되면 그러겠어요 복음이 가르쳐지면 그러겠습니까 문제는 다 복음의 전도자들 에게 소위 복음을 전한다는 자들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가르침 받아도 변화되고 새로워지지 않고 옛사람대로 그대로 하면서 설교만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그것도 여러분이 복음 밖에 있는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다. 경건 생활을 복음으로 사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많은 경우에! 복음이 가면 변화되고 새로워지는 것이 복음의 역사의 법이요. 여기 그때 여기 와서 설교했지요. 노르웨이에서 온 목사들이 여기서 설교하고 저 밖에 교 장실에 가서 이야기 했는데 그때 그분들 이야기가 그러지 않았어요! 임금님이 기독교로 개 종하고 무력으로 다 개종하라고 했다. 그래서 다 개종을 했는데 그렇게 놀라운 기독교 국가 가 됐다. 우리는 무력으로 하지 아니하고 절로 복음을 전해 천만이나 되어도 권징이 시행되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지금! 권징을 시행할 수 있는 용기있는 목사들이 어디 있으며 복음을 정말 용기있게 전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최근에 들은 이야기로 여기서 가르친 대로 설교하므로 쫓겨난 전도사들이 벌써 생겨났습니다. 성령님은 참되시고 거짓이 없으시기 때문에 그는 참을 가르치셨고 그 앞에 사는 길은 여러분들도 참되고 거짓이 없어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참으로 참되고 거짓이 없을 때만 여러분들이 복음 안에서 영의 일함을 따라 사는 줄을 아셔야 될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거짓 도 행하고 그저 은혜라는 명목으로 갚아버리고 덮어버리고 합리화 하면서 사는 것은 아직 영의 인도함 받아 사는 삶이 못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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