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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소망 (요일2:28-3:3)

본문

I. 기독교인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를 뜻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는 삶이 참된 기독교인의 삶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그리스도가 행하신 대로 행하는 자입니다. (요일2:6) 말씀을 보면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행하시는대로 행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사는 자들을 말합니다. 개는 개와 같이 행동을 하기 때문에 개라고 합니다. 개가 사람과 같이 행동을 하면 그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고양이는 고양이와 같이 행동을 합니다. 그래서 고양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같이 행동을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 인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같은 행동을 하면 그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그럼 그리스도와 같은 삶은 어떤 삶입니까 여러가지로 말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마디로 하라면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삶입니다. 부끄러움이 없이 사는 삶입니다.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서는 삶이 바로 깨끗 한 삶, 그리스도를 닮은 삶입니다.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와 같기 때문에 그 앞에 부끄럼이 없이 서게 됩니다. 만약 그리스도와 다른 삶을 살았다면 부끄러워서 그 앞에 서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깨끗한 삶으로 나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를 닮기 위하여 노력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온전하신 것과 같이 온전해 지려 고 나아가는 자들입니다. 이것을 성화의 삶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 속에는 원죄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같이 행하려고 해도 자꾸만 잘 못된 길로 갑니다. 성령님이 와 서 바로 잡아 주셔도 자꾸만 잘못된 길로 갑니다.
왜냐하면 우리 속에 원 죄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 한 교회에 시계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그 시계는 시간이 맞지 않았다. 어떤 때는 빨리 가고, 어떤 때는 늦게 갔다. 아무리 그 시계를고치려고 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시계를 버리려고 하는데, 목사님이 버리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는 그 밑에 이런 유명한 글을 써 놓았다. "시계바늘들을 나무라지 마세요. 문제는 더 깊은 곳에 있습니다."(Don't blame the hands-the trouble lies deeper) 시계 바늘이 잘 못 된 것이 아니라, 속에서 고장이 났기 때문에 시계 바늘은 자동적으로 잘 못 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 시계는 유명해 졌다. 사람도 마찮가지 이다. 인간 깊은 곳에는 원죄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고처 놓아도 자꾸만잘 못 된다.
그런데 처음에는 이렇게 작은 차이가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점점 더 그 차이가 커집니다. 처음에는 시간이 비슷하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전혀 시간이 맞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처음에는 조금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과 아 무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점점 달라 집니다. 그러다가 후에는 전혀 기독교인 같지가 않습니다. 완전히 세상 사람들과 같아 집니다. 작은 차이가 이렇게 후에는 큰 차이를 가져다 줍니다. 자동차에 있는 기화기(Carburetor)에 작은 찌꺼기들이 쌓입니다. 그러 다가 어느날 그 찌꺼기들이 기름구멍을 막습니다. 그러면 가장 힘이 있는 트럭도 세웁니다. 그 작은 먼지들이 그렇게 큰 트럭들도 가지 못하게 세웁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아주 작으나 아주 중요합니다. 인간의 작은 죄도 마찬가지 입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것 같지만 그러나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 그 능력 있는 성령님의 능려도 멈추게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닮은 깨끗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뭔가가 필요합니다. 사도 요한은 더러운 죄악으로 부터 더러워지는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도구로 소망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절에서 "주를 향 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소망은 무슨 소망입니까 요한 사도의 소망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이였습니다. 요한 사도는 그리스도는 재림하시며, 그때 그 재 림의 주님 앞에 부끄럼 없이 서야하며, 부끄럼 없이 서기 위해서는 자기 자 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의 재림을 마음에 깊이 두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요14:1-3) 말씀을 보면 요한 사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다 가 다시 부활 하셔서 하늘나라에 승천하시고, 거기서 우리을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시고, 처소를 다 예비하시면 우리를 영접하러 오신다고 하신 약속을 믿고 기록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을 요한계시록 기록했으며 그는 그의 글을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하고 맺었습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이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희망이 그의 삶을 깨끗하게 했습니다. 저는 이 시간에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도 요한이 깨끗한 삶을 산 이유를 3 가지로 살펴 보며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예수님의 재림 때에 부끄럽지 않게 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의심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은 가장 확실합니다. 예수님의 재림 보다 더 확실한 진리는 이 땅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요14:1-3)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 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 라"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 가시지만 다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예수님이 예비해 놓으신 천국으로 데려 가시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한번도 거짓말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하신 약속도 진실 됨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천사들도 약속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하셔 서 이 땅에 40일간 계신 후에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리워 가셨읍니다. 그때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처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서서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 라"(행1:11)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예수님의 재림을 약속하셨습니다. 인간들은 거짓 약 속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하늘의 천사들이 거짓 약속을 하겠습니까 사도 바울도 예수님의 재림을 약속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살전 4:16-18)에서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 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 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의 재림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재림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재림의 시간은 언제인 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생각지 않은 때에 재림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24:44)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오 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재림은 이 땅위에 순식간에 이루어 집니다. 어느 한 쪽 부터 오시는 것이 아니라, 일 순간에 이 땅에 오십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5:51)에서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 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재림의 변화는 순식간에 일어 납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순식간에 일어 납니다. 예수님은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 함도 그러하리라"(마24:27)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우리가 알 수 없는 때에 순식간에 오시기 때문에 그 예수님을 맞는 자들의 모습은 천태만상입니다. 어떤 사람은 부끄러움 가운데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도저히 예수님 앞에 얼굴을 들고 설 수 없는 부끄러움 가운데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디베랴 바닷가에서 고기잡던 베드로는 예수님이 오셨을 때 옷을 벗고 있 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발견하고는 부끄러워서 옷을 두르고는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죄악의 행동에 사롭잡힌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죄악의 행동을 하는데 예수님이 그 앞에 나타 나십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에 악한 생각이 가득 찬 가운데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을 다 아 십니다. 내 마음 속에 악한 생각이 예수님게 다 드러 난다고 생각해 보십 시요.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재림의 주님의 마음을 슬프게하고,아프게 하는 말을 하 다가 예수님을 만자게 됩니다. 내가 예수님이 들으시면 몹씨 슬프고, 괴 로운 그 말을 하실 때 내 앞에 갑자기 나타 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얼 마나 부끄럽고 죄송하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이 예수님이 오실 때 조금부 부끄럽지 않게 주님을 맞기 위하여 깨끗하게 살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둠의 세상 속에 살 고 있습니다. 그러나 빛으로 오실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 예수님이 오실 때 우리는 부끄러움 없이 주님 앞에 서기 위하여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노르웨이에 있는 트롬소(Tromso, Norway)에 가을이 오면 "모에르케티데" (Moerketiden) 혹은 "어두운 시간"(murky time)이라고 하는 긴 겨울 밤이 시작 된다. 몇 달 동안 낮이 없이 밤만 계속 된다. 어둠이 지구의 먼 북 극점에 있는 이 도시를 엄습한다. 트롬소에 있는 아스카드 정신 병원(Asgard Mental Hospital)의 간부 의 사 중 하나인 헤랄드 레페스가드(Herald Reppesgard) 박사는 이 트롬소에서 겨울 밤이 계속될 때 생기는 현상을 이렇게 말했다. 여름철에는 밤이 없이 낮만 계속 되는데, 그때에는 육신과 정신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큰 문제가 안된다. 그러나 24 시간 밤이 계속 되는 겨울이 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머키 타임(murky time)은 우울증 의 감각과 느낌을 알리는 소리며, 음울하고 울적하고 힘든 한해의 계절 의 명칭이다. 트롬소는 북극권에서 약 200 마일(약 320 km) 북쪽에 놓여 있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다른 도시의 사람들이 타락과 음습 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 은 방법으로 빛의 의식(light conscious)을 가지고 있다. 이 겨울 동안에는 불면증과 고혈압과 두 려움과 정신적인 우울증의 환자들이 급증을 한다. 지금 우리는 천계법적으로 어두운 밤의 시대에 살고 있다. 노르웨이의 겨울과 같이 밤이 계속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혼들이 우울증에 걸리고, 불명증에 걸리고, 고혈압에 걸 리고 갖가지 영적인 병에 걸려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 어떤 자들은 (사21:11)에 나오는 말씀과 같이 "파수군이여 밤이 어떻게 되 었느뇨 밤이 얼나나 지났느냐 새벽이 되려면 얼마나 남았느냐 "하고 묻는다. 하나님의 확실한 예언의 말씀이 이 끈질기 질문에 대답을 준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13:12) 이 어두움이 영원히 계속 될 것 같지만 곧 빛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빛 앞에 완전히 벌거 벗은 채 서야 합니다. 우리는그때가 언제 인지 알 수 없지만, 언제 주님이 우리 앞에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주님 앞에 부끄럽지 않고, 건강하게 서기 위하여 항상 우리 자신 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2. 요한은 자기의 지위에 감사하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이 쓴 요한 복음에 보면 말로다는 표현할 수 없는 은혜가 있읍니다.
첫째는 (요3:16)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 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하나님은 우리를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주셨 습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에서, 우리의 몸은 영원히 타지도 않고, 뜨 거운 불에 우리의 몸이 닿는 그 고통의 순간이 영원히 계속 되어야 하는 이 불행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 입니다.
둘째는 (요일3:1)에 나오는 죄인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사랑입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요일3:1) 죄인으로 죽어야만 할 우리들을 살리신 것만도 감사한데, 우리를 하나님 의 자녀 삼으셨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은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던 요한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자녀 로 받아 주셨습니다. 요한 사도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것을 감사했읍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기로 원했 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하나님의 자녀 답게 살기로 했습니다. 그 삶이 바로 자기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깨끗하게 사는 삶입니다. 아 무 가치가없는 우리를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서 매우 가치 있는 존 귀한 자로 우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니 그 은혜에 감사하고, 그 하나님의 자녀에 맞게, 그 가치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헨리 워스워드 롱펠로(Henry Wadsworth Longfellow)가 시상이 떠올라서 휴지를 집어들어 얼른 떠오른 시상을 적은 것이 있는데, 그러면 그 휴지가 수천달러가 되었다. 휴지에 위대한 문학성이 더해진 값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재능이라고 부른다.(talent) 죤 야곱 아스토가 종이조각에 자기 이름을 서명하고 큰 대형빌딩을 샀다. 우리는 그것을 자본금이라고 한다.(capital) 미국 재무성이 특별한 종이와 특별한 잉크를 가지고 특별한 금속판에 그것을 넣고 찍으면 그것이 100달러짜리 지폐가 된다. 우리는 그것을 돈이라고 부른다. 라이트 형제는 어떤 중고 자전차 부품과 줄과 세와 범포(canvas)로 비행 기를 만들었다. 우리는 그것을 천재성이라고 부른다. 미캘란젤로는 붓과 물감을 가지고 로마의 바티칸 궁전에 있는 로마 교황 의 예배당인 시스틴 성당(Sistine Chapel)의 천장에 걸작을 그렸다. 우리는 그것을 예술이라고 한다. 훌륭한 정비기술자는 우리의 고장난 중고자동차의 고장난 부속을 새로운 부속으로 교체하여 완전히 새로운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기술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가난하고, 가치없고, 지옥에 들어가야 할 폐인이 된 죄인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기시고, 그속에 성령님을 부어 주셔서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을 만드신다.(고후5:17) 그런 우리들을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 삼 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하나님의 자녀에 답게 깨끗하고 품위 있는 삶을 살아 야 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새로운 가치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난 날에는 가치가 없다고 막 살았지만 이제는 우리의 가치를 깨닫 고 그 가치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깨끗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3. 그는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을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vs.2-3) 우리가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우리 전체가 하나님 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직 그리스도의 자녀의 모습을 온 전히 가추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장차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않 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우리의 모습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가 나타나면 우리는 그리스도 와 같은 자가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때 예수님을 만나려면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와 같이 만들어 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하나님의 자녀 로서의 삶을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모습이 그리스도의 모습과 같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행복한 기쁨의 자리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자리가 됩니다. 자녀들이 많이 있는 가정은 큰 일이 있으면 많은 자녀들이 한 자리에 모 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다른 형제들 보다 못하게 사는 자들은 그 자리가 형제들을 만나는 기쁨의 자리가 아니라, 고통의 자리가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모습이 형제들의 모습과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날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그리스도의 모습과 같지 않으면 그 자리에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22장을 보면 예수님의 비유 중에 이런 비유가 있습니다. 어떤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청함을 받은 자들이 오기를 싫어하여 오 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어 점심을 잘 준비 했으니 와서 같이 들자고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싫다고 하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일하러가고, 하나는 상업차 출타를하고, 남아 있는 자들은 임금이 보낸 종들을 잡아서 능욕하고 죽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화가 나서 군대를 보내어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동네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리고는 종들에게 혼인잔치는 이미 열렸고,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않으 니, 그러니 너희는 사거리에 가서 만나는 사람들 마다 잔치자리에 데려 오 라고 했습니다. 종들은 사거리에 가서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데려 왔읍니다. 그래서 혼인집에 사람들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임금이 손님들을 보려 와서 둘러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예복을입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임금은 "어찌해서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 왔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유구무언이였읍니다. 임금은 종들에게 "그의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재림의 주님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만약 우리의 모습 이 주님의 모습과 같지 않으면주님은 우리를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질 것 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기쁨의 시간에 슬피 울며 이를 가는 불행한 자 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와 같이 만날때 부끄러움이 없기 위 하여 그리스도와 같아 지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소망 즉 그리스도를 만날 소망이 있는 자들 마다, 그리스도를 만날 때 챙피함과 버림을 받지 않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소망이 사도 요한을 깨끗하게 보전했습니다. 이 소망이 우리들의 삶도 깨끗하게 보전 할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에 대한 재림의 소망을 가 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소망으로 여러분의 살을 깨끗하게 보전하시 기 바랍니다.
III. 결론 그럼 어떻게 죄 많고, 실수 많은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요 요한 사도는 (요일1:9)에서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 쁘시고 의로우사 우리를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사도는 우리가 깨끗해야 할것을 말씀하시면서, 깨끗하게 되는 방 법도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를 자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우리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시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그러나 고백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의 죄가 깨끗해 지지 않습니다. 대학교 신입생이 더러운 옷을 세탁하기 위하여 더러운 옷을 스웨터 샤스 (sweatshirt 땀복-운동선수들이 보온을 위하여 경기 전후에 입는 헐렁한 스웨터)에 싸가지고기숙사에 있는 세탁소로 갔다.
그런데 그는 보따리 속에 들어 있는 자기 옷이 얼마나 더러운 가를 잘 알고 있었고, 보따리를 풀러 그 더러운 옷을 꺼내려다 그 옷을 보고는 당황 이 되었다. 그래서 옷 보따리를 풀지 않고, 그냥 세탁기에 집어 넣었다. 세탁이 끝난 후에 그 보따리를 그냥 꺼내서 짤순이 넣고 탈수를 했다. 그리고는 그 보따리를 그냥 자기 방으로 가지고 왔다. 그리고 보따리를 풀러 보았다. 그러자 옷이 하나도 세탁이 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옷이 분명이 세탁기 속에 들어가 물에 젖어고, 그리고 탈수 된 것을 보았다. 그러나 비니루 같은 땀복에 싸서 넣었기 때문에 때와 먼 지와 흙이 하나도 빠져 나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죄를 안전한 보따리 속 에 쌓아 두지 마십시오. 나는 여러분의 삶을 속까지 깨끗하게 하기를 원 합니다. 여러분의 삶의 모든 것들을 다 깨끗하게 하기를 원합니다. 그 러니 여러분의 죄의 보따리를 풀러서 세탁기 속에 넣으십시오." 이렇게 죄의 보따리를 풀러서 더러운 것을 꺼내는 것이 회개이다. 회개하지 않고 교회 나와 예배 드리는 것은 비니루 봉지에다 더러운 옷 을 넣고 세탁기에 넣어 세탁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고백과 회개가 없으 면 아무리 예배에 많이 참석해도 우리의 죄는 깨끗해 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을 만나기 전에 회개해야 합니다. 세수는 우리가 사람을 만나기 전에 해야 합니다. 이미 만나서 우리의 수치스러움을 보여 준 후 세수하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난 후에 우리의 수치스러움과 부끄러움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때에는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고, 사해주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부끄러움에 대한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림의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 재림의 예수님을 만나게 될 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매 순간마다 우리가 지은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여 항상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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