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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이기는 참빛 (요일2:8-10)

본문

성경말씀은 요한일서 2장 7절부터서 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이거니와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 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 라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하였음이니라' 우리가 지난 시간에 2장 8절 하다가 중간에 그쳤습니다. 2장 8절을 제가 한번 읽어 보겠 습니다., , . 오늘 할 부분은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이미 비췸이니라그 부분입니다. 여기서 사도 요한이 빛과 어두움을 대조 시킵니다.
그런데 이 빛과 어두움을 우리가 마치 날이 밝 고 밤이 어두운 그런 빛과 어두움이 아니라, 빛은 아직도 죄악 속에 있는 상태를 말 해주고 있습니다. 죄악된 상태에 있는 상태를 어두움이라 하고 빛은 우리가 들은 복음의 진리, 구원의 도리를 받음으로 오는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해서 깨끗해진 그리고 새로워진 빛이라고 교훈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냥 와 그냥 보통빛이 아니라 참 빛이라고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빛이 된 것은 빛이시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그의 영으로 우리 마음에 비취기 때문에 우리가 죄악 에서 깨끗함을 입고 하나님을 알게 됐습니다. 그는 여기서 참 빛이라고 표현하므로 사도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진리의 빛을 비치시므로 우리가 깨끗해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의 도가 우리 안에 점차 밝아지므로 우리가 죄악된 것을 벗어남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미 예수 믿었 으니 우리가 죄를 온전히 벗어버려야 하고 소위 완전주의자들의 어떤 방식에 소위 영지주 의자들의 주장에 대해서 사도 요한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가 완전히 없어 지고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 없이 사는 일은 날마다 그에게 우리의 죄를 고백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참 빛이 우리에게 비취므로, 참 빛이 우리를 비취므로 빛이, 여기 보니까 사라졌다. 완전 히 다 어두움이 지나가 버린 것이 아니라 어둠이 점점 물러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죄악과 싸워서 점점점 죄악과 싸워 승리하면 우리가 점점 그리스도의 빛에 더 가까이 살고 온전한 데 나아가므로 우리에게서 빛이 점점 획대해 비치고 어둠이 없어지는 것을 표시합니다.
그런데 완전히 지나갔다는 과거사를 쓰지 아니하고 또 현재 완료를 쓰지 아니하고 분명 히 현재형을 쓰고 있습니다. 현재 수동태를 쓰고 있습니다. 밝은 빛이 비 춰지므로 점점점 쫓겨가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길은 죄를 고백하고 죄와 싸 우는 일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계실 때마다 우리에게 나타나는 분명한 현상은 우리가 죄와 투쟁하는 삶입니다. 죄와의 투쟁이 우리 속에 없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상관 없는 자 들 입니다. 이미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죄와의 투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 인으로서 이미 문제가 있는 사람이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항상 여러분이 분명히, 여기서 지금 빛이 어두움이 점점 지나가고 있는 것 이지완전히 지나갔다 가 아니다. 그 말은 우리가 죄와의 투쟁을 항상 계속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항상 성화 생활을 말할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오해하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성화하는 일에 죄와 투쟁하는 일을 우리가 하면 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내가 기도 를 많이 한 것이 공로가 돼서 내가 이길 수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기독교 의 진리하고 배치되는 가르침 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노력이 우리의 힘이 죄를 이기 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가 단번에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 어둠이 점점점 물러 갑니다. 사적으로 우리가 죄와 투 쟁하는 일은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노력과 우리의 수고로 우리가 애 쓰고 우리가 안할려고 애 씁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우리의 힘을 발휘하므로 믿은 후에는 새 은혜가 왔으니 그걸로 그냥 우리의 옆에 은혜가 와서 도웁니다. 은혜가 우리를 도우니까 그 돕는 힘을 거쳐서 내가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므로 내가 거룩해지고 내가 온전하게 되는 줄 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기독교가 우리에게 있어서 성화의 생활에서도 나타나는 거는 마찬가지 입니다. 율법 아래서 애 쓸 때와 마찬가지로 성화 생활에 있어서 우리가 애 쓰면 애 쓸수록 절망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율법 아래 있던 사람이 율법으로 구원을 얻을려고 하면 절망 밖에 다른 길이 없듯이 그러니까 그리스도를 필요로 한 것처럼, 그리스도가 절망한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도 죄를 피하고 어둠을 벗어 버리는, 죄는 어두운 것 아닙니까! 여러분 백주에서는 죄 짓고 살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앞에 서는 죄 짓지 않습니다. 죄 지을 마음이 가득하지요. 그러니까 그것에 비추어서 지금 어두 움을 우리의 죄성과 연관 시키고 있습니다. 점점 물러가는데 우리가 투쟁하고 수고하고 노 력하므로 우리의 죄악이 단번에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투쟁하므로, 그때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필요로 합니다. 그때 성령님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니까 바로 다음에. 참 빛이 이미 벌써 비치고 있다.이미 라고 하는 말로는 분명히 과거사 동사를 써야 될 터인데 동사를 현재형으로 했습니다. 참 빛으로 참 진리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를 힘 입으므로 혹은 말을 바꾸면 성령님을 의지하고, 성령님의 다른 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힘 입니다. 그 힘을 의지하므로 우리가 죄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단번에 다 해결 해버린 것이 아닙니다. 점점점 죄악을 싸워 이겨 나아갑니다. 그리고 어디까지 이릅니까 어둠이 완전히 물러갈 때 참 빛이 완전히 비췬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빛에 더 가까이, 말을 바꾸면 우리의 신학적인 용어로 말하면 우리가 이 그리스도의 힘으로 성령님의 힘으로 성화를 통해서 우리의 죄와의 투쟁을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가까이 닮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말부터 시작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 이 본문에서 참 빛이 이미 비추었다. 어둠은 지나가고 참 빛이 왔다. 우리 속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므로 우리가 죄악을 투쟁하며 삽니다. 그리스도의 힘으로 죄악을 투쟁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나아가느냐 참 빛이신 그리스도에게 나아갑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죄악에서 완전히 죽 으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것입니다. 우리의 성화의 노력이 무엇입니까 참 빛이신 이 에게 가까이 간다. 어둠이 점점 지나가고 찹 빛에로 가까이 가는 것은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서 그리스도의 온전한 분량에까지 이르러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가르치고 있는 참 뜻입니다. 그러니까 어둠이 물러가는 것은 다른 것 때문에 물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참 빛이 비취기 때문입니다. 그냥 보통 참 빛이 아니라, 그냥 보통 빛이라면 그렇게 할 터인데 강조해서참 빛이 거기 임하는 유일한 참 빛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강조를 해서 그리스도는 참 빛이라. 그리스도의 그 밝은 빛에 의하여 우리가 죄악과 싸워 이긴다. 죄악에서 점점점 참 빛에로 그리스도에게로 가까이 나아가면 그의 형상을 닮는 것으로 말한다. 우리가 그렇게 죄와 투쟁하고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서 살므로 우리가 이룰 목표가 무엇이냐 그것은 그리스도를 바로 닮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분명히 여기서 말하는 것은 죽을 때 그 죄가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그렇게 써야 될텐데 그런 말이 없이 완전히 현재형으로 써 놨다. 우리가 어둠에서 나와 점점점 그리스도의 밝은 빛에로 점점 더 죄악에서 그리스도 의 형상에로 나아가지마는 그러나 우리가 죽을 때까지 죄와의 투쟁이 끝나지 않습니다. 죄와의 투쟁이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습니다. 죄와의 투쟁이 우리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죽을 때까지, 루터가 말한 대로 죽는 순간까지 우리는 옛 사람 의 무덤을 파는 것입니다. 루터가 말한 대로 우리가 죽는 순간까지 옛 사람의 무덤을 판다. 여러분들, 여러분들의 생활에 있어서 옛 사람의 무덤을 파고 있습니까 정말 여러분들은 옛 사람의 무덤을, 그러니까 무덤을 파가지고 다 묻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계속 해서 파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혼자서 속으로 완전히 그걸 벗어버리기 어렵지요. 그러나 외식하는 거 하고 그냥 조금씩 끌려가는 거 하고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외식하는, 사람 앞에서는 잘 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하면서 뒤로는 옛 사람 버릇 그대로, 형편따라 그러지 말고, 변명 다 해가며 다하고 또 육 욕을 다 죽이고 그러므로 그것은 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닙니다. 경건한 체 그렇게, 물 론 그렇게 해서 속일 수 있습니다. 상당기간 사람을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그렇게 사람을 속여도 끝까지는 못 속입니다. 사람도 못 속입니다. 여러분이 무디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서 바른 성경적인 설명을 알지 못 합니다. 왜 무디를 하나님께서 쓰셨느냐 아홉가지인가를 열거했습니다. 제가 기억력이 좋지 못해서 그때 들 은 무디를 하나님께서 쓰신 이야기를 다 기억하지 못 합니다.
그런데 몇 가지를 기억하는 가운데 한 가지가 무디는 참으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무디는 참으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 러면서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도 못 속이지만 사람도 속이지 못 합니다. 우리가 또 온전히 옛 사람을 묻어버리지 못 했습니다. 원리적으로는 묻어버렸지요. 바울 이 말한 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분명히 우리 옛 사람을 이미 우리 옛 사람을 함께 못 박았다. 바울이 말한 대로 그리스도의 장례에 우리도 동참해서 옛 사람을 묻어 버렸습니다. 원리적으로! 그러나 우리의 실제 성화생황에 있어서는 우리의 삶은 계속해서 옛 사람의 무 덤을 파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생활을 이 투쟁을 계속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그 죄가 더 이상 죄로 있지 아니하고 죄가 범연 해버리며는 여러분 벌써 크게 문제된 사람입니다. 벌써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그 생이 끝난 사람이지요. 여러분들에게 죄가 정말 심각하 게 죄가 문제 될 때에 여러분들은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고 그리스도인들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이 영광스러운 길에 서 있는 삶입니다. 바른 삶입니다. 여기 어둠이 계속해서 물 러가도록 여러분들이 죄와의 투쟁이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문제점은 여러분이 잘 아십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의 강점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여러분을 제일 그리스도인으로 바르고 합당하게 정말 마음껏 영이 역사하도록 못하게 하는 일, 그것은 여러분들 만이 알고 있는 비밀입니다. 여러분 만이 간직하고 있는 비밀입니다. 물론 어떻게 보면 옆에 사람도 눈치 챌 수 있지요. 그러나 많은 경우에는 여러분들 만의 비 밀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비밀을 바로 즐기며 그걸로 좋아하는 자리에서 벗어나 정말 마음 을 다하여 투쟁하고 수고하며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수고하며 애쓸지라도 나는 할 수 없다는 절망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때 영접해 들이고 의지할 때 도우시는 분 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바로 본문이 이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어둠이 지나가 고 참 빛이 이미 비취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빛이신 그리스도를 받아 들여야 할 것입니다. 자 그러지 아니하는 많은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들이 옛 사람과 좋아지내는 경 우가 어떤 경우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그 다음 9절, . 빛 안에 있다고 말하는 자 그러면서 그냥 연속, 여기 보면 사실 사도 요한이 유태인이 아니라면 여기에 를 쓰지 않 지요. 다른 말을 썼을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어법 그대로를 써서, 있다고 하면서도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 지금까지 빛 가운데 있다. 여러분들이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면서도 여러분 형제들을 미워하면, 그런데 여기서는 사도 요한이 주로 미워함에 대해서 그렇게 그렇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사도여서 사랑과 대조하니까 바 로 빛이 누구시냐 그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빛 안에 계신다는 분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바로 빛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가 사랑입니다. 그와 같은 사랑을 하 시며, 그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며 하나님 사랑의 실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사랑을 말하는 거는 그거는 성경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성경적인 하나님 사랑을 이야기는, 바로 하나님 사랑이 하나님의 심장이 예수 그리스도요.
그런데 그 빛 안에 있다고 다 말하면서도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아직까지도 어두움 가운데 있다. 아직까지도 죄악 가운데 있다. 아직도 빛의 자녀가 아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사실 감정이 많이 얽힌 경우가 많습니다. 그 감정들이 얼만큼 묻혔다가 또 되살아 납니다. 자기 에고가 다친 거를 얼만큼 덮어 두었다가 또 어려울 때라든지 옛 감 정이 이렇게 부각될 때는 또 미워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미워한다고 그럴 때에 적극적으로 미워하는 그것도 있지마는 적극적으로 사랑하지 못한 상태도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형제 를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은 미워하는 것이지요. 중립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와의 과거의 관계가 부드럽지 못하고 이렇게 감정이 상했을 경우에는 껄끄러 운 감정이 살아있을 경우에는 다시 우리가 미워하기 쉽습니다. 그런 사람은 , 이 문장의 배열이 참 재미 있어요. 를 맨 마지막에 갖다 놨어요. 본문 성경을 보면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움 가운데 있는 자요예, 거기도 강조되어 있습니다마는, 가 맨 마지막에지금까지 ,바로 이 시간까지어두움 가운데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아직도 죄악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아직까지도 미워할 생각이 많습니다.
참 미움이 우리 중에 많아요! 우리 한국 사람들은 미워하기를 잘 하는 민족이지요. 자기 발로 자기가 설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제 발로 서는 거를 용납할 수 없는 민족입니다. 복음이 들어와서 백 년이 되어도 자기가 자 기 발로 설 수 없다. 남이 제 발로 서는 것도 못 보고! 도저히 그걸 용납하지 못 합니다. 이조 5백년 역사가 다 무슨 역사입니까 나는 요새 사극을 보지 않으니까, 요새 이조 5 백년사 사극 중에 세종대왕에 관한 것이 훈민정음 만들 때에 한 두 번, 본 것 외에는 한 번 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무슨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줄을 모르겠어요. 그러나 세조 대왕 때 사대 사색 당파가 생기기 이전에 벌써 사색 당파가 일어날 수 있도록 조 선조 초기에 다 그와 같은 일이 벌써 있지요. 벌써 연산군 때, 중종 때, 사색 당파 할 수 있 도록 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이조 5백년 동안 사색 당쟁을 해온 그 조상들의 그 의식구조와 생리작용이 이 피 속에 흐르고 있습니다. 옛날 벼슬한 사람만 그런게 아니고 벼 슬하지 못한 백성들 속에도 그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한국 기독교가 우리 중에 와서 백년을 지나고 그 백년을 넘어설라고 하는 그와 같은 시대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민족은 제 발로 못 서고 각자가 제 발로 자기를 못 서고 그래서 남이 제 발로 서는 것을 봐 줄 수가 없어요. 그러니 깎아 내리지요. 깎아 내려요! 그리고 또 자기 전공을 자기 좋은 분야를 운용하고 바로 설 수 있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여러분들, 우리 민족은 이천년동안 매우 가난한 민족이었습니다. 거기다 불행하게 중국이 라고 하는 큰 대문화권 곁에 부착되어 있어서 늘 대륙에서 일어난 현상 그대로 한반도에 그냥 파급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역사의 시작부터서 한 번도 우리 독자적인 문화를 창 출 해내지 못하고 전부 다 이렇게 대륙에서 가져오는 그와 같은 민족이었습니다. 그래서 늘 나는 못하고 나는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민족이어서 아주 다른 사람을 우리 밖에 사람 높 이다가도 우리는 낮은 사람이라는 그와 같은 생각이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단체 같이 사는 사람들 중에 그래도 훌륭한 사람도 훌륭한 사람이 아니고 나와 관계하지 아니한 다른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은 훌륭하게 보는 외국 사람만 훌륭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런 습성이 우리에게 깊이 뿌리 박혀 있습니다. 그러니까 事大主義 사상이 외국 사람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소속되어 있는 단체에 있는 사람은 별것이 아니고 다른 단체에 속한 사람은 별로 볼 것이 없는데도 그와 같은 것이 있어 가지고 옆에 사람을 찍어 내리고 깎아 내리고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우리는 잘했던 잘못했던 인정 해주고 사람 들의 가치를 평가 해주는 것이 없습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말이 여러분들 그냥 이렇게 애정을 쏟는다는 그럴 뿐만 아니라 여러분 들 상대를 필요로 하는 그 사람에게 합당한 그 사람의 명예와 그 사람에게 합당한 평가를 해주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뭘 갖다주고 어디 다 따르고 그러기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못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사랑한다고 할 때에 그것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뭘 주고 항상 이런 식으로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사람됨에 합당한 그 사람의 명예를 인정 해주고 그 사람의 가치대로 평가 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그 사람에게 합당하게 사랑 해주는 것이지요. 여러분들이 사랑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바르게 합당하게 알아야 될 것입니다. 반대로 그 사람에게 합당한 명예와 그 사람의 가치를 합당하게 인정 해주지 못 하면 미 워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중에서 정말 우리 미워하고 살았다는 계명에 걸려 넘어지 지 않을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여러분들! 여러분들, 우리들은 미워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명예와 다른 사람의 가치를, 그 사람에게 필요한 그 사람에게 합당한 그 사람에게 의 당 소속된 사람의 가치를 합당하게 평가 해주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러지 못 하는 것 이 미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아셔야지요. 그리고 또 여러분들이 사랑한다고 해서 아첨을 많이 하는데 그 사람에게 합당하지 아니한 명예와 가치 를 과도하게 적용 해주는 것도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부 이지요.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우리들은 다 빛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나 존귀한 가 를, 여러분들의 가치가 참으로 존귀한 가치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왜요 여러분들이 주님 의 빛을 받은 자들 아닙니까!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 아닙니까! 여러분 의 가치를 인격적인 가치를 물론 지금 모든 것이 상품화 계산되어 있지마는 여러분들의 인 격적인 가치가 얼마나 귀중합니까! 그러며는 여러분들에게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먼저 여러분에게 합당한 평가를 해 주 도록 여러분 자신이 내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에게도 합당한 가치 평가를 해 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 지금은 다 모든 것이 상품화 돼서 돈으로 계산하는 세상이지만, 여러분들은 모 두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받은 사람들 입니다. 여러분들의 가치가 정말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여러분이 무엇하고 가치를 바꿀 수 있겠습니까 그 무엇과 여러분들의 성공과 여러분 들이 얻은 빛과 바꿀 수 있겠습니까 그런 것으로 여러분들의 가치를 바꿀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가치가 정말 돈으로 비교하고 환산할 수 없는 고귀한 말할 수 없는 가치를 가 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진리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들이 이렇게 미워 하지 아니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와 같이 훌륭한 존재인 줄 알 때 만이 여러분이 그 사람에게 합당한 명예와 가치를 인정 해줄 수가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형제를 미워하지 아니하고 사랑하기에 이르는 첫 계명이 사랑할려고 애 쓰는 데에도 물론 있지마는 어디에 있느냐 하면 바로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가치를 정말 귀 중한 것으로 아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오늘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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