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자 (요일3:11-18)
본문
제가 이런 제목을 가지고 설교를 할려고 하니까 부담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부담이 가지않을까 생각이 듭니다.그래서 어떻게 하면 우리들의 마음이 이 말씀을 담을수 있을까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설교를 합니다.이 설교는 굉장히 힘든 설교입니다.예수를 믿는 우리가 왜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않되는가그걸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살펴볼려고 합니다. 사랑은 해도 되고 않해도 되는게 아니고 반드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민느다고 하는 사람이면 반드시 해야한다 하는것이 사랑입니다.이 말씀은 처음듣는이야기가 아니고 그동안에도 얼마나 많이 들었지 않습니까 11절에 있는 말씀처럼 너희가 처음듣는 말씀이 아니고 오래전부터 들은 말씀이라고 했습니다.너무나 뻔하게 아는일을 왜 우리가 자꾸 들어야 하느냐 성경중에 요한일서는 굉장히 적은 책이지요그렇게 적은 책인데 사랑하라는 말은 제일 많이 들어있는책입니다.왜 똑 같은 말씀을 반복하고 있는것일까 하나님이 보실때는 반복할 이유가 충분히 있습니다 왜 그런고 하면예수 믿는 사람이 제일많이 실패하는 영역이 있다면 사랑입니다.그리고 사랑에 실패를 하면 믿음도 실패할수밖에 없다는걸 하나님이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귀기 따갑도록 들었다고 할지라도 실제로 사랑하지 못하면 또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언제까지요 사랑을 할수 있을때 까지 우리는 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그러면 왜 우리가 형제를 꼭 사랑해야 하느냐 하는 이유를 몇가지 말씀드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내용을 다 기억을 못하시드라도 중요한 대지들 만이라도 꼭 마음에 담으시기를 바랍니다.그리고 제가 성경에 근거를 두고 제시를하기때문에 성경에다가 표를 딱 해 놓고 아 이것때문에 저렇게 이야기를 하시는구나 하는것을 여러분 이 이해를 하시면 마음에 쉽게 간직을 할수 잇습니다. 왜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서 살랑하지 않으면 않되느냐왜 이 사랑하라는 말을 계속 반복해서 들어야 되느냐 제가 오늘 4가지 이유를 들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하나님이 명령하시는 사랑은 우리가 알고있는 사랑과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흔히 세상에서 사랑이라고 하는 그런 사랑이라면 우리 성도들에게는 별로 부담이 얺어요. 그렇지요 가족이니까 사랑한다 그런거야 우리가 다 하는것 아닙니까가까우니까 서로 사랑한 다 그거 우리가 다 하고 있습니다.또 우리가 주고받는것이 있으니까 사랑한다. 세상에서 그렇게 안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이정도의 사랑을 하라고 한다면 억지로 반복해서 들을 필요가 없어요 저나 여러분 모두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을 겁니다.우리가 미워하거나 해치지 않는것이면 사랑하는것이 나 다름이 없다고하는것이면 부담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앞에서 마음에 아품을 가지지 않아도 될겁니다.그정도야 다 하고 있는것 아닙니까 미워하지 않으면 사랑하는것이다 이렇게 정의를 해 버리면 뭐 우리가 특별히 미워하는것 없어요.보기 싫으면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 가까히 하지 않고 가까히 해서 손해를 볼 일이면 멀리두고 살면 되는것 아닙니까 이게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사랑이거든요 그런거라면 저나 여러분이나 다 실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앞에 가슴을 조아리고굉장히 부담스럽고 답답해 하는 이유가 뭐냐 함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어떤면에서는 우리가 도무지 할수없는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시니까우리들이 어려움을 느끼는 것입니다.그러면 어떤 사랑을 하나님이 하라고 하심니까 16절을 우리가 먼저 봅니다(요일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참 기가 막히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이본문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기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보여준 모댈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모댈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사랑이라는 것을 이 본문을 통해서 말씀을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독특한 사랑인가를 좀더 확실하게 우리 눈앞에 보여주기 위해서 대조적인 다런 모델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그 모델이 바로 가인에 대한 것입니다.(요일3:12)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이 둘을 대조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둑특한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여러분 우리는 가인 의 이야기를 하면 그야뭐 악한 사람이 아닌가 내가 아무리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살인까지 하지는 않찮느냐나는 가인하곤 거리가 멀어하고 안심을 할수도 있습니다.그렇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하나님께서 가인을 주님의 사랑과 비교를 하시는줄을 압니까그 이유가 있어요 가인에게 특징은 철저하게 이기주의라는 것입니다.자기중심적인 사랑이라는데 있습니다.가인같은 사람은 사랑을 해도 반드시 자기중심적인 사랑을 함니다.자기를 위해서 사랑하지 다런 사람을 위해서 사랑하는자가 아닙니다.그러니까 항상 자기 중심적인 사랑을 하려고 하니까 그 사랑에 만족을 할때가 어디에 있습니까누가 그 사랑을 만족시킬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그러니 상처를 입지요 상처를 입으니까 미움이 생기지요 미움이 지나치니까 나중에는 사람까지 죽여 버린다 말입니다. 그 뿌리를 보면 철저하게 이기주의적인 사람입니다. 현대인 치고 가인과 같은 기질을 가지고 있지 않는자가 누가 있습니까 오늘의 현대인을 한마디로 요약을 해서 말하라고 한다면 이기주의자다 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철저한 개인주의라고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많은 젊은 사람들이 왜 결혼을 하지 않습니까 왜 독신주의를 지향합니까 이유는 뻔하지요 혼자 사니까 편하기 때문입니다.미국에는 그의 남녀들이 반정도가 독신 생활을 하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삽니까 희생하기 싫다고 그럽니다.오늘날 자식들이 부모를 공경하는체 해도 전부 뭔가 반는것이 있기 때문에 공경하는체 하는것이 많다고 합니다.형제와 가까이 지네는 사람들도 가만히 보면 뭔가 오고 가는 것이 있을수 있는 관계니까 서로 사랑하는체 하는것이지 그중심을 깊이 들여다 보면 전부 개인 주의가 가인의 본성이 자라를 잡고 있어요 하니님께서는 그런 이기주의적인 마음을 가지고는 하나님이 원하는 사랑 예수님이 가르처주는 사랑은 가질수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저나 여러분은 정말로 이기주의적인 사랑을 벗어나서 희생적인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아무도 자신있게 말할 사람이 없어요 그러면 가인과 예수님을 비교할때 우리는 어떻게 말 할수 있느냐 이렇게 요약할수 있습니다. 가인은 자기륽 위해서 형제를 죽였습니다.그렇지요 예수님은 형제를 위해서 자기를 죽였습니다. 이렇게 이게 분명하게 대조가 되는 것입니다.자 따라합시다 가인은 자기를 위하여 형제를 죽였고 예수님은 형제를 위하여 자기를 죽였습니다. 흑과 백을 비교하는 것과 같은두 모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사랑을 요구하고 계십니까 예수님 처럼 살아가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보여주신 그 사랑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특징은 자기 희생입니다. 철저하게 자기를 희생할때 사랑한다고 말할수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16절 중간에 우리가 이로서 사랑을 알고 우리 예수믿는 사람은 예수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실을 다 알게 됩니다.그기에서 우리가 배운것이 무엇입니까 진짜 랑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면 배운것으로 끝났습니까 아니지요 그러면 뭐 하라고 합니까 배운대로 하라고 하지요 배운대로 하라고 하는데 마지막에 하시는 말 그대로 하는것이 뭐 하니라 마땅 하니라. 다시한번 마땅하니라. 이 말이 얼마나 강한 말인지 여러분이 잘 모르실겁니다. 얼마나 힘을 주어서 하는 말인지 구약시대는 빚쟁이가 빚을 지면 그 빚을 갚기 위해서는 자기 부인도 팔아야 되고 자기 자식도 팔아야되고 그래도 다 못갚으면 자기의 몸도 팔아야 합니다.그래서라도 빚을 갚아야 합니다.이것은 철저하게 책임을 저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이야기 할때 마땅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믿었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서 죽으신 걸 믿음의 눈으로 보고그 다음에 성경을 통해서 배웠습니까 아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죽으셨구나 그걸 알았습니까 그걸 알았다면그리고 그것을 믿는다면 그 다음은 너도 그대로 사랑을 실천 해라 어떻게 자기 휘생을 통해서 실천해라 그리고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이 백번을 죽어도 마땅하니라 하는 이야기 입니다.우리가 흔히 하듯이 가족이니까 사랑하고나를 위해 주니까 사랑하고 서로 주고 받는 것이 있으니까 사랑 하는 정도이면 하나님은 그걸 사랑이라고 그러질 않아요.예수님께서 마 5:46절에 분명히 말씀하셨어요(마5: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이말은 그정도의 사랑은 아무 가치가 없다는 말 아닙니까. 그정도의 사랑이라면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세리가 누구예요 그당시 제일 사람의 대우를 못받는 사람이 세리 아닙니까 세리 하면 양심도 없고 이격도 없는 짐승처럼 취급을 해버린 참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악하고 그렇게 사람들에게 짖밞히는 사람들 속에 들어가도 자기를 사랑하는사라들끼리 사랑하는 일은 다 있느니라. 그정도의 사랑을 가지고 NO6. 너희가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마라. 하나님앞에 가서는 그런 사랑 가지고는 칭찬을 듣지 못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덧붙혀서 말씀합니다, 너희가 참 사랑을 할려고 한다면 하늘에 계신 너희아버지의 온전 하심과 같이 너희도온전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사랑하는데 온전하심같이 너희도 온전한 사라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그 사랑이 뭣임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십자가의 사랑같은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메 여러분저도 못하고 여러분도 못하는 일을 지금 설교 합니다. 그렇지만 이 본문을 너무 과대하게 해석을 하면 않됩니다. 이 지구 역사상에 예수님처럼 형제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으리고 아무리 믿음이 좋고 지금까지 성자의 소리를 듣는 사람도 형제를 위해서 자기 생명을 내어 놓은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이 본문 말씀을 액면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서 형제를 위하여 생명을 초게같이 버린 일이 기끔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도 가끔은 있을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볼때 옛수 잘 믿느다고 해서 형제를 위하여 죽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 그말입니다.자식을 위해서도 죽지 못하는 판국에 형제를 위해서 누가 죽느냐 그말입니다. 아무도 없어요 도무지 실천 불가능한 이야기기때문에 우리가 이대로 실천 해야 한다고 액면 그대로 해석을 하면 이건 구름잡는 이야기 밖에 되질 않습니다. 누구던지 자기손 이 미치지 못할많큼 높이 있는것은 얼굴을 돌리고 관심을 같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실천을 할려고 해도 너무너무 까마득한 이야기기 때문에 우리가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야 된다고 할때에는우리는 얼굴을 돌리고 말겁니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들도 그럴 것입니다. 실천하지 못할 예기 아무리 해봐야 무슨 소용 입니까 우리가 이렇게 잘못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 17절18에서 이 본문의 진짜 의미가 어디에 있다는 것을 가르처 줍니다. 자기 NO7. 희생을 해야 사랑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면그 희생이라는 것은 예수님처럼 꼭 죽어야 돤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17절을 보면 누가 재믈을가지고 돈이 있는데 그말이지요 형제가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즉 도와주지 않는 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 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다같이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것이 곧 십자가에서 우리가 배우는 자기 사랑이다 그말입니다. 그것은 아주 작은 대서부터 출발할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것입니까 가난한자가 옆에 있으니까그들에게 필요하다면 내가 먹던것을 나누워 주어야 한다 그말입니다그게 자기 희생이지요.옷이 없어서 떨고 있는자가 있습니까 내가조금 춥고 좀 떨더라도 내 이웃을 위해서 벗어주는것이 아랑이요 십자가에서 배우는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오늘의 우리에게는 이런건 사실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나 여러분이 니만큼 살면 배고푼 샤ㅏ람 옆에 있으면 나누워서 주는 것 뭐 대단 한 겁니까 그렇지요 요즈음 옷이 낡아서 내 버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안습니까 입기싫고 실증이나서 내 버리는 상황인데 그뭐 옆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갔다가 준다고 해서 그게 뭐 그리 대단한 희생입니까 이런건 사실 우리에게는 별로 흥미가 없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기록할 당시 상황에서는굉장한 이야기 입니다.그 당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다 가난한 사람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느정도로 가난하냐 고대시에 가난하다 하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 입니다. 그러니까 끼니를 떼우고 넘어 간다고 하는것은 기적이지요 입에 풀칠을 하고 넘어가도 행복이라고 할 정도의 시대입니다.
그런데 갑자기교회를 같이 다니는 형제 중에서 끼니를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합시다 내가 다 먹어도 배가 부 NO8. 르지 않는데 그걸 나누워 준다 그거야말로 굉장한 희생이였습니다.그렇지요 요사이처럼 옷이 많았습니까 아니요 옷한벌 가지고 평생을 사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형제가 헐벗고 있다고 해서 자기가 아끼고 아끼던 옷 하나를 그 형제에게 준다 이건 살을 찢고 뼈를 깍는 희생이 없이는 할수 없는 일이 였습니다. 그당시 그렇게 가난한 교인들을 향해서도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너희들이 가진것도 나누지 못하면서 사랑사랑 하지 말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랑은 자기 희생을 수반하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먹던 밥을 나누워서 자기를 희생할때사랑을 한다고 말하라 그말 입니다.하나님이 원하는 사랑은 바로 그런 사랑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먹던 밥을 나누워서 먹는 사랑이라고 한다면 오늘의 우리는굉장한 사랑을 나누워 주어야만이 대등한 사랑을 할수 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원하는 사랑입니다. 여러분 요즈음 지존파의 이야기가 귀가 아프도록 메스콤을 통해서 나왓습니다. 지존이라는 말은 하나님에게만 붙이는 말인데 건방진것들이 어떻게 그말을 사람죽이는 사람끼리 모이는 기기다가 지존이라고 감히 붙혔는지 모르겠지만 어쩼던 지존파라고 그러니까 지존파인데 그 악마와 같은 젊은 이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그게 바로 하나같이 사랑을 받아본 일이 없다는 겁니다. 전부가 사랑같은 사랑을 받아 본 일이 없어요 그러니까 악마가 되 버렸어요, 만일 그 젊은 이들이 어린 시절을 보내던 마을에 교회가 있었다면 그리고 그 교회에 시무하는 목산님과 성도들이 그 마을에 사는 이 가난한 집안의 자녀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두고 뭔가 희생을 하면서 그들을 돌보며하나님의 사랑앞으로 그들을 인도 했다면 오늘의 그 악마같은 지존파가 탄생 할수 있을까요 믿는 사람들이 자기들 끼리만 모여서 예배보고 자기들 끼리만 모여서 친목회하고 자기들 끼리만 모여서 좋아 하다가 가슴에 응어리를 안고 자라나는 어린 생명 들에게 관심을 가자지 않았기 때문에ㅐ일어나는 상황 아니겠어요 어찌 그 마을에서 자라나는 교회의 책임만이 겟습니까 오늘 솔직히 말씀하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저나 여러분이나 똑같아요 사람을 찿아가도 비슷한 사람을 찿아가지나보다 형편없이 낯은자리에 있는 사람은 잘 찿아가지 않아요, 우리는 교육수준도 비슷비슷한 사람과 만나기를 좋아하지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 참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까히 하지를 못해요 이게 오늘 우리들 주변의 현실이 아닙니까 그러면 왜 우리가 이처럼 살아야 하는냐
그 이유는 간단해요 우리는 희생하기를 꺼리는 것입니다. 마음에 없는 사람 가까히 하는것도 희생아닙니까 없는 사람 가까히 하다가 돈을 손해 보는것도 희생아닙니까 여러분 가정에 오래 참아야 될 식구가 있습니까 바로 참는 그것이 희생입니다. 여러분 가정에 이리저리 손해만 주는 식구가 있습니까 그식구때문에 하나님앞에 기도하면서 어려움을 격는다면 여러분 그게 바로 희생입니다, 그런 희생을 통해서 사랑은 꽃을 피울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랑은 바로 이런 사랑입니다. 우리교회는 바로 눈앞에 마을 에 연세가 높으신 어런들을 모실 계획을 세우고 초청장을 쓰서 보내면서 사랑을 표현 합니다. 그걸 일일이 성도들이 돌리고 하는일 또 카렌다를 사가지고 집집이 다니면서 나누워주는 일을 계획하고 진행주입니다만 여러분 이게 남을 위해서는 손가락하나 까딱하지 않을려고하는 이시대에는 굉장한 희생입니다 이건요 내가 해 보니까 알겟어요 저는 이걸 해보면서 힘이 드는걸 경험했거던요 거거 보통 정성이 아니고 힘도 많이 들더라고요 그뿐 아니라 전에 고아원을 방문하면서 어린 고아들에게 정성을 솥아 봤는데 그거 보통 힘든것이 아니데요 패지를 수집하고 고물들을 보이는 쪽쪽 모으고 비가오면 덮고 눈이오면 덮고 또 고물상에까지 가지고 가서 내리고 달고 하면서 얻은 것을 물건을 살때도 고아원의 아이들 수를 남아가 몉명인가 여아가 몇명인가 그들이 먹고싶어 하는것은 뭔가 일일이 체크를 해서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서 가지고 가는것 어찌 먼 발치에서 보면 간단한것같아도 힘든 자기 희생이 아니고는 못합니다. 우리 선교부에서도 이일을 년말을 기해서 의동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나눌 계획까지 세우는 모양인데 쉬운일은 아닙니다/.그러니 우리가 사랑을 한다고 하면 적은데서부터 큰것까지 진짜 사랑이 없이는 표현 할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원하는 사랑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 내가 비록 형제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 죽는 일은 못할지라도 작은데서 부터 큰것까지 주어진 형편에서 희생으로 사랑을하라고 주님은 명령을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실천ㅇ들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듣고 또 들어야 하고 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 2우리가 사랑하라는 말을 계속 들어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미워하는 감정 자체도 살인이라고 못박아 말씀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5절을 봅니다. (요일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자 보세요 해도 너무하지요 그형제를 ㅁ니워하는자마다 살인하는자라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떤 면에서 과격한 말씀을 하시는지 아십니까 이 세상에 가인의 후예들 이 세상에서 사람죽이는데 앞장섯던 가인의 후예인 수많은 살인자들의 마음바닥에는 공통적인것이 하나 있습니다 미움이라는 것이였습니다, 하나님이 그걸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미움을 갖는다는것은 벌써 살인의 시초라는 것을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에 자기 자녀들이 마음에 미움을 가지고 있는것을 용납하실수가 없는 것입니다.너 누구 미워하니 넌 벌써 살인한거다. 여러분 이런 말씀을 앞에 놓고 우리 스스로가 떨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나 자신에게 조그만한 감정을 살하게 헤도 전혀 미움의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는 사람 손을 한번 들어보세요, 나를향헤 미워하고 욕하는사람 절대 미워하지 않는다는 사람 손한번 들어 보세요. 아무도 없잖아요 아무도 없어 그러니 우리가 살인을 하루에 몇번을 범합니까 하나님께서 이런정도의 사랑을 요구하시니까 사랑하라는 말을 듣고 또들어도 끝이 없다 그말입니다.
3. 왜 우리가 또 들어야 하느냐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믿는 것하고 사랑하는 것하고 같은 비중을 두고 다루고 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 미기만 하면 될것같은데하나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합니다.하나님은 믿으면 반드시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사랑하지 아니하면 그 믿음을 인정할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이상하게 들립니까 아상해요 자 오늘 우리가 읽지 않은 본문입니다만은 23절을 한번 보세요(요일3: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여기에 이렇게 두가지를 똑같이 놓고 다루고 있습니다 믿으라 사랑하라 믿으라 사랑하라 다런것이 있다고 하면 순서가 틀릴 뿐입니다. 사랑하고 믿으라가 아니고 믿으면 사랑하라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사랑할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미는 사람이 하니님이 어떤분인지 십자가에서 배운 다음에라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에 믿음이 먼저입니다.믿으라 믿엇느냐 그다음에는 사랑하라 입니다.둘을 똑 같이 놓고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구원의 조건은 믿음입니다.믿음의 열매는 사랑입니다.우리가 구원받기를 원하면 믿어야 합니다.그리고 그구원을 확실히 보장할수있는 믿음은 반드시 사랑이라는 열매를 가저야 합니다. 만일 믿노라 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쭉정이에 지나지 않는 죽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어느정도 수긍이 가십니까 (갈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하나님이 인정하는 믿음이 있어요 그 믿음이 뭐냐 하면 사랑을 통해서 그 자체를 인정할수 있는것이 믿음이다 하는 겁니다. 사랑을 가지고 이 믿음이 진짜 믿음이다라는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그 믿음은엉터리 일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우리에게 긴장을 주는 말씀입니까나는 믿기만 하면 되는줄 알았는데 천국갈수있는줄로만 알았는데 믿는것 만으로는 신용할수가 없다 진짜 네 믿음이 바런 믿음이냐 그러면 네가 사랑을 가지고 그 믿음을 증명하라는 겁니다.사랑이 믿음의 열매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 믿음은 쭉정이다 하는 것입니다.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사랑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겠습니까 믿음믿음 믿습니다 믿습니다 한도 해서 될줄 압니까 천만의 말씀이다 교회선,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고는 집에 가서는 싸움이나하고 원수가 되 가지고 아우성입니다. 교회만 오면 믿습니다 아무리 해봐요 백번을 해도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무리 믿습니다 해도 이웃이 저사람 날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지 남을 위해서 내어놓는거나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것도 하나 없이 자기만 안다 이건 안된다는 이야깁니다, 오늘 한국에 신자가 천만이라고 하는데 천만이 신자 NO13. 가운데 제가 판단할때는 반수 이상은 그래도 제대로 사는 사람들 입니다. 이상하게 예수믿는 사람들이 잘 살아요 잘 산다구요 하나님이 축복을 하시느것이 분명한것같아요.무론 그 가운데 인천에 어떤 사람처럼 끌어 모운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잔아요, 잘 살아요 부지런 하니까
그런데 이렇게 잘 사는 예수믿는 사람들이 좀더희생을 하면서가진것을 내어 놓는다면 이 사회가 이렇게 악마의 소굴로 바뀌지는 않겠지요. 우리는 믿는다 믿음 믿음만 강조를 햇지 그것과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랑을 강조하지 못했다. 이것이 오늘 한국 교회가 맞을 잊어버린 원인이 아닌가 저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 말씀 앞에서 어떻게 긴장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믿음이 있습니까 사랑하세요 사랑을 가지고 여러분의 믿음을 증명하지 못하면 그 믿음을 버리세요 그 믿음은 진짜가 아니라고 합니다. 끝으로 왜 우리가 사랑을 반복해서 들어야 하는냐 사랑하지 아니하면 구원의 확신을 가질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이것은 대단히 오해하기 쉬운 소지를 가지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실임니다 (요일3:14)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 이번 주간에 우리가 함께 묵상하면서 외워야합니다 야 정말 대단한 말씀이지요 보세요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어디에서 사망에서 옮기어 저서생명으로 들어갈것입니까 아니면 들어갓습니까들어 갔습니다. 삼ㅇ에서 나와 생명으로 들어갔다 쉽게 말하면 구원받았다 그 말이지요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므로 구원 받은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자는 어디에 그대로 있어요 사망에 그대로 있다 다시말하면 구원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 본문을 보면 오히려 형제를 사랑하므로 대신에 예수를 믿음으로 하는 말을 넣는 것이 교리적으로 타당하고 더 성경적으로 일치하는 말씀일것 같습니다. 그렇잖아요 우리가 얘ㅖ수를 믿음으로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삼장에 거하느니라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래야 될것 같은데 예수를 믿으면 하는 말 대신에 형제를 사랑한다는 말을 넣었습니다.그리고 형제를 사랑하므로 네가 구원 받앗다는것을 확신 할수 있고 형제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내가 절대로 구원받앗다는 확신을 할수 없습니다.여러분 오해 하지 마세요 이 말씀은 구원을 받으려면 사랑해야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형제를 예수님이 보여 주신대로 희생하면서 사랑한 그 공로로 구원 받는다는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조건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무엇입니까 예수의 공로입니다.예수의 의 입니다.예수의 피입니다,.오직 그분의 공로로 우리는 구원받지 내가아무리 생묘을 백번 희생을해서형제를 사랑햇다 할지라도 그 사랑한 어떤 공로로도 구원받지를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형제를 사랑해야 구원받는다는 말이 아닙니다.이본에서 중요한것은 안다는 겁니다 안다.여러분 다시 보세요 안다가 어디에 있습니까 안다가 어디에 있어요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애ㅔ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줄을 안다 뭐한다안다 이 안다가 중요한 겁니다. 사실 내가 구원을 받았는지 않받았는지 사실 확신 하기는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구원의 확신을 하기 위해서는 사실 성경 공부도 많이 해서 성경도 좀 알아야 되고 어떤 면에는 체험적인 은혜도 있어야 되고 그다음에 믿음도 좀 좋아저야 야 나는 예수믿고 분명히 죄 사함을 받았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구나 구원 받앗구나 하는 확신이 마음에 생기지요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않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꼭 필요한 한가지 NO15. 조건이 있다고 합니다. 네가 예수믿고나서 예수님처럼 사랑을 한다면 그 사랑은 바로 네가 구원받았다는것을 즈명해주는 가장 정확한 표라고 말을 합니다. 꺼꾸로 말하면 사랑하지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떠들어도그가 정말 구원을 받았는지 확신하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왜 이렇게 말 할수 잇을까요 구원 받는 참 믿음은 사랑의 열매가 바드시 따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되엇다 구원 받았다 하는 것에 확신을 원합니까
그렇다면 사랑 하십시요 사랑하면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의 자녀되고구원 받은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뭐 그까짖거 확신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여러분 그런 생각을 할지 모릅니다. 천만에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확신을 가진다는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압니까 그건요 확신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않은 사람과 무엇으로 비교할수 있을까요 바다를 건너갈때 큰 철선을 타고가는 사람과 잃옆편주의 조각배를 타고 가는 사람과 비교할수 잇음니다. 큰 철선을 타고 가는 사람은 파도가 밀려와도 걱정하지 아니하고 마음놓고 잠도 잘수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항구에 무사히 도착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여행을 즐길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엽편주에 몸을 담고 가는사람은 조그만ㄹ한 바람만 불어도 떨어야 되고 정말로 이러다가 저 항구로 정말 들어갈수 아을런지 아니면 ㅅ고기밥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것입니다.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중에 이런 두 부류에 사람들이 있습니다.하나는 큰 배를 타고 가는 사람처럼 확신을 가지고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조각배를 탄것처럼 오들오들 떨면서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잇어요 어느쪽이 더 행복합니까 많은 사람은 구원에 확신이 없기 때문에 천국도 기웃하고 세상도 기웃합니다. 확신이 없기 때문에 마귀에게 쉽게 끌러 갑니다. 여러분 무슨 돌을 하나 쓰겠다고 큰 돌 NO16. 을 하나 구하러 나갔다가 마음에 드는 돌을 발견 햇습니다. 그러면 먼저 흔들어 봅니다 흔들리면 두세번 더 흔듭니다. 그리고는 그놈을 무슨수를쓰서라도 그걸 들고 옵니다. 그러나 어떤돌은 아무리 흔들어도 꼼짝을 않합니다.그럴때 여러분은 어떻게 합니까 들고 올걸 포기해 바리지요 기권을 합니다.마귀가 돌아다니면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시험합니다. 툭툭 치면서 건드려 보고 덜렁덜렁 거리면 야 요것봐라 하면서 좋은 돌을 쉽게 구햇다고 얼마든지 끌고 가요
왜냐하면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은 이렇게 흔들리거든요 그러나 한번 처 봐도 꿈적도 안해 또한번더 힘차게 흔들어 봐도 꿈적도 않해요 그러면 있는힘을 다해서 매달려서 땅을 파보기도하고 지렛대를 이용도 하고 해봐도 꿈적도 않해요 그러면 탐은 나지만 아아고 그만 놔도라 괜히 손네 피만나고 못만 백였네 하고 포기를 해요 왜 이렇게 흔들리지 않습니까 확신이 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확신이라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런 확신을 가질수 있느냐 형제를 사랑하는자가 가질수 있다는 것입니다. 버리커라는 상담학자가 제미있는 자료를 하나 공개를 했습니다. 자기가 상담을 한 ㄴ 사람들 중에 구원에 학신 을 가지지 못한ㅇ 사람이 참 많았는데 왜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느냐 조사를 좀 해 봣더니 그 마음에 전부 화를 잘 내는 기질이 있고 그 다음에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원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화를잘내는 사람들은 예수를 믿어도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불안의 상태에' 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 을 잘 치료를해서 마음에 있는 분노라고하는 폭탄에 뇌관을 뽑아버리고 또 마음에 있는 원한의 폭탄에 뇌관을 뽑아 버렸더니 그다음에는 자연스럽게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되더라고 그는 기록하고 있음니다. 옭은 이야기 입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나는 구원받았다고 뜨드는 사람 NO16. 그 사람은 정신나간 사람이요 내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사랑하지 못하면서 나는 천국 갈것이다 그사람 정신 나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중요한 교훈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기를 원하면 사랑하라 그것입니다. 사랑해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사십시다 내 믿음이 진짜라는 것을 언제던지 장담을 해도 괜찮습니다. 본문이 그걸 이야기 합니다.4가지를 말씀드렷습니다. 왜 우리는 사랑이라는 것을 듣고 들어야 하느냐 1:하나님이 원하는 사랑은 우리가 아는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십자가에서 배운 자기 희생의 사랑을 원하기 때문에 그 사랑이 잘 않되잔아요. 그래서 듣고 또 등어야 됩니다 또 두번째의 이유가 뭡니까 미움이라는 감정을 살인이라고 다루시는 하나님이 시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 날마다 사랑의 문제를 듣고 들으면서 자기 교정을 해야 합니다.그렇지 아니하면 하루에도 수십번의 살인자가 될스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 세번쩨는 뭡니까 믿음과 사랑을 하나님은 동등하게 다루시고 게신다는 사실때문아니다. 난 믿기만 하면 되는줄 알았고 믿기만 하면 주를 기쁘시게 할줄로 알았는대하나님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네 믿음을 사랑으로 증명하라고 합니다.그,러니 사랑하지 않으면서 믿느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하나님을 기쁘게 할수 없잔아요 , 그다음엔 뭡니까 사랑을 해야 내가 구원 받은 자라는 확신을 할수 있기 때문에이 사랑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래서 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메 여러분 오늘의 사회 병패가 어디에 있습니까 생명정신의 풍조니 도덕성의 타락이니 갓가지 진단을 합니다만 제가 볼때는 희생을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NO17. 오늘 이 사회가 이렇게 되어 버렷다고 봅니다 . 그 말을 바꾸면 이기주의가 너무 팽대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모두가 이제는 하루빨리 주님의 뜻대로 한번 주나님의 명령대로 살아 봅시다. 희새을 좀 해 봅시다. 작은데서 부터 작은것에서부터 내것을 좀 떼서 사랑을 표현하는 일에 좀 정성을 기울려 봅시다.
그렇다면 사랑을 받는자도 이익이 크지만 내가 더 큰 은혜를 받습니다.하나니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뿌듯한 보람을 가지고우리는 살수 있습니다.오늘 이 사회가 요구하는 교회는 어떤 교회 일까요 희생하는 교회입니다. 따라합시다 사랑하지 아니하면 믿느자가 아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시한번 사랑이 없는 믿음은 쭉정이다우리 서로 속지 맙시다 속지 말자고요 성경을 똑 바로 보고 속지 않도록 합시다. 제가 가사를 불러줄태니까 함께 불러봅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귀기 따갑도록 들었다고 할지라도 실제로 사랑하지 못하면 또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언제까지요 사랑을 할수 있을때 까지 우리는 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그러면 왜 우리가 형제를 꼭 사랑해야 하느냐 하는 이유를 몇가지 말씀드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내용을 다 기억을 못하시드라도 중요한 대지들 만이라도 꼭 마음에 담으시기를 바랍니다.그리고 제가 성경에 근거를 두고 제시를하기때문에 성경에다가 표를 딱 해 놓고 아 이것때문에 저렇게 이야기를 하시는구나 하는것을 여러분 이 이해를 하시면 마음에 쉽게 간직을 할수 잇습니다. 왜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서 살랑하지 않으면 않되느냐왜 이 사랑하라는 말을 계속 반복해서 들어야 되느냐 제가 오늘 4가지 이유를 들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하나님이 명령하시는 사랑은 우리가 알고있는 사랑과 다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흔히 세상에서 사랑이라고 하는 그런 사랑이라면 우리 성도들에게는 별로 부담이 얺어요. 그렇지요 가족이니까 사랑한다 그런거야 우리가 다 하는것 아닙니까가까우니까 서로 사랑한 다 그거 우리가 다 하고 있습니다.또 우리가 주고받는것이 있으니까 사랑한다. 세상에서 그렇게 안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이정도의 사랑을 하라고 한다면 억지로 반복해서 들을 필요가 없어요 저나 여러분 모두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을 겁니다.우리가 미워하거나 해치지 않는것이면 사랑하는것이 나 다름이 없다고하는것이면 부담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앞에서 마음에 아품을 가지지 않아도 될겁니다.그정도야 다 하고 있는것 아닙니까 미워하지 않으면 사랑하는것이다 이렇게 정의를 해 버리면 뭐 우리가 특별히 미워하는것 없어요.보기 싫으면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 가까히 하지 않고 가까히 해서 손해를 볼 일이면 멀리두고 살면 되는것 아닙니까 이게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사랑이거든요 그런거라면 저나 여러분이나 다 실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앞에 가슴을 조아리고굉장히 부담스럽고 답답해 하는 이유가 뭐냐 함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어떤면에서는 우리가 도무지 할수없는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시니까우리들이 어려움을 느끼는 것입니다.그러면 어떤 사랑을 하나님이 하라고 하심니까 16절을 우리가 먼저 봅니다(요일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참 기가 막히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이본문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기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보여준 모댈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모댈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사랑이라는 것을 이 본문을 통해서 말씀을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독특한 사랑인가를 좀더 확실하게 우리 눈앞에 보여주기 위해서 대조적인 다런 모델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그 모델이 바로 가인에 대한 것입니다.(요일3:12)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이 둘을 대조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둑특한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여러분 우리는 가인 의 이야기를 하면 그야뭐 악한 사람이 아닌가 내가 아무리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살인까지 하지는 않찮느냐나는 가인하곤 거리가 멀어하고 안심을 할수도 있습니다.그렇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하나님께서 가인을 주님의 사랑과 비교를 하시는줄을 압니까그 이유가 있어요 가인에게 특징은 철저하게 이기주의라는 것입니다.자기중심적인 사랑이라는데 있습니다.가인같은 사람은 사랑을 해도 반드시 자기중심적인 사랑을 함니다.자기를 위해서 사랑하지 다런 사람을 위해서 사랑하는자가 아닙니다.그러니까 항상 자기 중심적인 사랑을 하려고 하니까 그 사랑에 만족을 할때가 어디에 있습니까누가 그 사랑을 만족시킬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그러니 상처를 입지요 상처를 입으니까 미움이 생기지요 미움이 지나치니까 나중에는 사람까지 죽여 버린다 말입니다. 그 뿌리를 보면 철저하게 이기주의적인 사람입니다. 현대인 치고 가인과 같은 기질을 가지고 있지 않는자가 누가 있습니까 오늘의 현대인을 한마디로 요약을 해서 말하라고 한다면 이기주의자다 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철저한 개인주의라고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많은 젊은 사람들이 왜 결혼을 하지 않습니까 왜 독신주의를 지향합니까 이유는 뻔하지요 혼자 사니까 편하기 때문입니다.미국에는 그의 남녀들이 반정도가 독신 생활을 하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삽니까 희생하기 싫다고 그럽니다.오늘날 자식들이 부모를 공경하는체 해도 전부 뭔가 반는것이 있기 때문에 공경하는체 하는것이 많다고 합니다.형제와 가까이 지네는 사람들도 가만히 보면 뭔가 오고 가는 것이 있을수 있는 관계니까 서로 사랑하는체 하는것이지 그중심을 깊이 들여다 보면 전부 개인 주의가 가인의 본성이 자라를 잡고 있어요 하니님께서는 그런 이기주의적인 마음을 가지고는 하나님이 원하는 사랑 예수님이 가르처주는 사랑은 가질수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저나 여러분은 정말로 이기주의적인 사랑을 벗어나서 희생적인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아무도 자신있게 말할 사람이 없어요 그러면 가인과 예수님을 비교할때 우리는 어떻게 말 할수 있느냐 이렇게 요약할수 있습니다. 가인은 자기륽 위해서 형제를 죽였습니다.그렇지요 예수님은 형제를 위해서 자기를 죽였습니다. 이렇게 이게 분명하게 대조가 되는 것입니다.자 따라합시다 가인은 자기를 위하여 형제를 죽였고 예수님은 형제를 위하여 자기를 죽였습니다. 흑과 백을 비교하는 것과 같은두 모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사랑을 요구하고 계십니까 예수님 처럼 살아가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보여주신 그 사랑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특징은 자기 희생입니다. 철저하게 자기를 희생할때 사랑한다고 말할수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16절 중간에 우리가 이로서 사랑을 알고 우리 예수믿는 사람은 예수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실을 다 알게 됩니다.그기에서 우리가 배운것이 무엇입니까 진짜 랑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면 배운것으로 끝났습니까 아니지요 그러면 뭐 하라고 합니까 배운대로 하라고 하지요 배운대로 하라고 하는데 마지막에 하시는 말 그대로 하는것이 뭐 하니라 마땅 하니라. 다시한번 마땅하니라. 이 말이 얼마나 강한 말인지 여러분이 잘 모르실겁니다. 얼마나 힘을 주어서 하는 말인지 구약시대는 빚쟁이가 빚을 지면 그 빚을 갚기 위해서는 자기 부인도 팔아야 되고 자기 자식도 팔아야되고 그래도 다 못갚으면 자기의 몸도 팔아야 합니다.그래서라도 빚을 갚아야 합니다.이것은 철저하게 책임을 저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이야기 할때 마땅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믿었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서 죽으신 걸 믿음의 눈으로 보고그 다음에 성경을 통해서 배웠습니까 아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죽으셨구나 그걸 알았습니까 그걸 알았다면그리고 그것을 믿는다면 그 다음은 너도 그대로 사랑을 실천 해라 어떻게 자기 휘생을 통해서 실천해라 그리고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이 백번을 죽어도 마땅하니라 하는 이야기 입니다.우리가 흔히 하듯이 가족이니까 사랑하고나를 위해 주니까 사랑하고 서로 주고 받는 것이 있으니까 사랑 하는 정도이면 하나님은 그걸 사랑이라고 그러질 않아요.예수님께서 마 5:46절에 분명히 말씀하셨어요(마5: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이말은 그정도의 사랑은 아무 가치가 없다는 말 아닙니까. 그정도의 사랑이라면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세리가 누구예요 그당시 제일 사람의 대우를 못받는 사람이 세리 아닙니까 세리 하면 양심도 없고 이격도 없는 짐승처럼 취급을 해버린 참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악하고 그렇게 사람들에게 짖밞히는 사람들 속에 들어가도 자기를 사랑하는사라들끼리 사랑하는 일은 다 있느니라. 그정도의 사랑을 가지고 NO6. 너희가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마라. 하나님앞에 가서는 그런 사랑 가지고는 칭찬을 듣지 못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덧붙혀서 말씀합니다, 너희가 참 사랑을 할려고 한다면 하늘에 계신 너희아버지의 온전 하심과 같이 너희도온전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사랑하는데 온전하심같이 너희도 온전한 사라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그 사랑이 뭣임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십자가의 사랑같은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메 여러분저도 못하고 여러분도 못하는 일을 지금 설교 합니다. 그렇지만 이 본문을 너무 과대하게 해석을 하면 않됩니다. 이 지구 역사상에 예수님처럼 형제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으리고 아무리 믿음이 좋고 지금까지 성자의 소리를 듣는 사람도 형제를 위해서 자기 생명을 내어 놓은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이 본문 말씀을 액면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서 형제를 위하여 생명을 초게같이 버린 일이 기끔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도 가끔은 있을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볼때 옛수 잘 믿느다고 해서 형제를 위하여 죽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 그말입니다.자식을 위해서도 죽지 못하는 판국에 형제를 위해서 누가 죽느냐 그말입니다. 아무도 없어요 도무지 실천 불가능한 이야기기때문에 우리가 이대로 실천 해야 한다고 액면 그대로 해석을 하면 이건 구름잡는 이야기 밖에 되질 않습니다. 누구던지 자기손 이 미치지 못할많큼 높이 있는것은 얼굴을 돌리고 관심을 같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실천을 할려고 해도 너무너무 까마득한 이야기기 때문에 우리가 그 말씀을 그대로 받아야 된다고 할때에는우리는 얼굴을 돌리고 말겁니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들도 그럴 것입니다. 실천하지 못할 예기 아무리 해봐야 무슨 소용 입니까 우리가 이렇게 잘못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 17절18에서 이 본문의 진짜 의미가 어디에 있다는 것을 가르처 줍니다. 자기 NO7. 희생을 해야 사랑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면그 희생이라는 것은 예수님처럼 꼭 죽어야 돤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17절을 보면 누가 재믈을가지고 돈이 있는데 그말이지요 형제가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즉 도와주지 않는 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 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다같이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것이 곧 십자가에서 우리가 배우는 자기 사랑이다 그말입니다. 그것은 아주 작은 대서부터 출발할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것입니까 가난한자가 옆에 있으니까그들에게 필요하다면 내가 먹던것을 나누워 주어야 한다 그말입니다그게 자기 희생이지요.옷이 없어서 떨고 있는자가 있습니까 내가조금 춥고 좀 떨더라도 내 이웃을 위해서 벗어주는것이 아랑이요 십자가에서 배우는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오늘의 우리에게는 이런건 사실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나 여러분이 니만큼 살면 배고푼 샤ㅏ람 옆에 있으면 나누워서 주는 것 뭐 대단 한 겁니까 그렇지요 요즈음 옷이 낡아서 내 버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안습니까 입기싫고 실증이나서 내 버리는 상황인데 그뭐 옆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갔다가 준다고 해서 그게 뭐 그리 대단한 희생입니까 이런건 사실 우리에게는 별로 흥미가 없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기록할 당시 상황에서는굉장한 이야기 입니다.그 당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다 가난한 사람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느정도로 가난하냐 고대시에 가난하다 하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 입니다. 그러니까 끼니를 떼우고 넘어 간다고 하는것은 기적이지요 입에 풀칠을 하고 넘어가도 행복이라고 할 정도의 시대입니다.
그런데 갑자기교회를 같이 다니는 형제 중에서 끼니를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합시다 내가 다 먹어도 배가 부 NO8. 르지 않는데 그걸 나누워 준다 그거야말로 굉장한 희생이였습니다.그렇지요 요사이처럼 옷이 많았습니까 아니요 옷한벌 가지고 평생을 사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형제가 헐벗고 있다고 해서 자기가 아끼고 아끼던 옷 하나를 그 형제에게 준다 이건 살을 찢고 뼈를 깍는 희생이 없이는 할수 없는 일이 였습니다. 그당시 그렇게 가난한 교인들을 향해서도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너희들이 가진것도 나누지 못하면서 사랑사랑 하지 말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랑은 자기 희생을 수반하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먹던 밥을 나누워서 자기를 희생할때사랑을 한다고 말하라 그말 입니다.하나님이 원하는 사랑은 바로 그런 사랑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먹던 밥을 나누워서 먹는 사랑이라고 한다면 오늘의 우리는굉장한 사랑을 나누워 주어야만이 대등한 사랑을 할수 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원하는 사랑입니다. 여러분 요즈음 지존파의 이야기가 귀가 아프도록 메스콤을 통해서 나왓습니다. 지존이라는 말은 하나님에게만 붙이는 말인데 건방진것들이 어떻게 그말을 사람죽이는 사람끼리 모이는 기기다가 지존이라고 감히 붙혔는지 모르겠지만 어쩼던 지존파라고 그러니까 지존파인데 그 악마와 같은 젊은 이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그게 바로 하나같이 사랑을 받아본 일이 없다는 겁니다. 전부가 사랑같은 사랑을 받아 본 일이 없어요 그러니까 악마가 되 버렸어요, 만일 그 젊은 이들이 어린 시절을 보내던 마을에 교회가 있었다면 그리고 그 교회에 시무하는 목산님과 성도들이 그 마을에 사는 이 가난한 집안의 자녀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두고 뭔가 희생을 하면서 그들을 돌보며하나님의 사랑앞으로 그들을 인도 했다면 오늘의 그 악마같은 지존파가 탄생 할수 있을까요 믿는 사람들이 자기들 끼리만 모여서 예배보고 자기들 끼리만 모여서 친목회하고 자기들 끼리만 모여서 좋아 하다가 가슴에 응어리를 안고 자라나는 어린 생명 들에게 관심을 가자지 않았기 때문에ㅐ일어나는 상황 아니겠어요 어찌 그 마을에서 자라나는 교회의 책임만이 겟습니까 오늘 솔직히 말씀하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저나 여러분이나 똑같아요 사람을 찿아가도 비슷한 사람을 찿아가지나보다 형편없이 낯은자리에 있는 사람은 잘 찿아가지 않아요, 우리는 교육수준도 비슷비슷한 사람과 만나기를 좋아하지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 참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까히 하지를 못해요 이게 오늘 우리들 주변의 현실이 아닙니까 그러면 왜 우리가 이처럼 살아야 하는냐
그 이유는 간단해요 우리는 희생하기를 꺼리는 것입니다. 마음에 없는 사람 가까히 하는것도 희생아닙니까 없는 사람 가까히 하다가 돈을 손해 보는것도 희생아닙니까 여러분 가정에 오래 참아야 될 식구가 있습니까 바로 참는 그것이 희생입니다. 여러분 가정에 이리저리 손해만 주는 식구가 있습니까 그식구때문에 하나님앞에 기도하면서 어려움을 격는다면 여러분 그게 바로 희생입니다, 그런 희생을 통해서 사랑은 꽃을 피울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랑은 바로 이런 사랑입니다. 우리교회는 바로 눈앞에 마을 에 연세가 높으신 어런들을 모실 계획을 세우고 초청장을 쓰서 보내면서 사랑을 표현 합니다. 그걸 일일이 성도들이 돌리고 하는일 또 카렌다를 사가지고 집집이 다니면서 나누워주는 일을 계획하고 진행주입니다만 여러분 이게 남을 위해서는 손가락하나 까딱하지 않을려고하는 이시대에는 굉장한 희생입니다 이건요 내가 해 보니까 알겟어요 저는 이걸 해보면서 힘이 드는걸 경험했거던요 거거 보통 정성이 아니고 힘도 많이 들더라고요 그뿐 아니라 전에 고아원을 방문하면서 어린 고아들에게 정성을 솥아 봤는데 그거 보통 힘든것이 아니데요 패지를 수집하고 고물들을 보이는 쪽쪽 모으고 비가오면 덮고 눈이오면 덮고 또 고물상에까지 가지고 가서 내리고 달고 하면서 얻은 것을 물건을 살때도 고아원의 아이들 수를 남아가 몉명인가 여아가 몇명인가 그들이 먹고싶어 하는것은 뭔가 일일이 체크를 해서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서 가지고 가는것 어찌 먼 발치에서 보면 간단한것같아도 힘든 자기 희생이 아니고는 못합니다. 우리 선교부에서도 이일을 년말을 기해서 의동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나눌 계획까지 세우는 모양인데 쉬운일은 아닙니다/.그러니 우리가 사랑을 한다고 하면 적은데서부터 큰것까지 진짜 사랑이 없이는 표현 할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원하는 사랑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 내가 비록 형제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 죽는 일은 못할지라도 작은데서 부터 큰것까지 주어진 형편에서 희생으로 사랑을하라고 주님은 명령을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실천ㅇ들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듣고 또 들어야 하고 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 2우리가 사랑하라는 말을 계속 들어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미워하는 감정 자체도 살인이라고 못박아 말씀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5절을 봅니다. (요일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자 보세요 해도 너무하지요 그형제를 ㅁ니워하는자마다 살인하는자라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떤 면에서 과격한 말씀을 하시는지 아십니까 이 세상에 가인의 후예들 이 세상에서 사람죽이는데 앞장섯던 가인의 후예인 수많은 살인자들의 마음바닥에는 공통적인것이 하나 있습니다 미움이라는 것이였습니다, 하나님이 그걸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미움을 갖는다는것은 벌써 살인의 시초라는 것을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에 자기 자녀들이 마음에 미움을 가지고 있는것을 용납하실수가 없는 것입니다.너 누구 미워하니 넌 벌써 살인한거다. 여러분 이런 말씀을 앞에 놓고 우리 스스로가 떨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나 자신에게 조그만한 감정을 살하게 헤도 전혀 미움의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는 사람 손을 한번 들어보세요, 나를향헤 미워하고 욕하는사람 절대 미워하지 않는다는 사람 손한번 들어 보세요. 아무도 없잖아요 아무도 없어 그러니 우리가 살인을 하루에 몇번을 범합니까 하나님께서 이런정도의 사랑을 요구하시니까 사랑하라는 말을 듣고 또들어도 끝이 없다 그말입니다.
3. 왜 우리가 또 들어야 하느냐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믿는 것하고 사랑하는 것하고 같은 비중을 두고 다루고 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 미기만 하면 될것같은데하나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합니다.하나님은 믿으면 반드시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사랑하지 아니하면 그 믿음을 인정할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이상하게 들립니까 아상해요 자 오늘 우리가 읽지 않은 본문입니다만은 23절을 한번 보세요(요일3: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여기에 이렇게 두가지를 똑같이 놓고 다루고 있습니다 믿으라 사랑하라 믿으라 사랑하라 다런것이 있다고 하면 순서가 틀릴 뿐입니다. 사랑하고 믿으라가 아니고 믿으면 사랑하라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사랑할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미는 사람이 하니님이 어떤분인지 십자가에서 배운 다음에라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에 믿음이 먼저입니다.믿으라 믿엇느냐 그다음에는 사랑하라 입니다.둘을 똑 같이 놓고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구원의 조건은 믿음입니다.믿음의 열매는 사랑입니다.우리가 구원받기를 원하면 믿어야 합니다.그리고 그구원을 확실히 보장할수있는 믿음은 반드시 사랑이라는 열매를 가저야 합니다. 만일 믿노라 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쭉정이에 지나지 않는 죽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어느정도 수긍이 가십니까 (갈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하나님이 인정하는 믿음이 있어요 그 믿음이 뭐냐 하면 사랑을 통해서 그 자체를 인정할수 있는것이 믿음이다 하는 겁니다. 사랑을 가지고 이 믿음이 진짜 믿음이다라는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그 믿음은엉터리 일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우리에게 긴장을 주는 말씀입니까나는 믿기만 하면 되는줄 알았는데 천국갈수있는줄로만 알았는데 믿는것 만으로는 신용할수가 없다 진짜 네 믿음이 바런 믿음이냐 그러면 네가 사랑을 가지고 그 믿음을 증명하라는 겁니다.사랑이 믿음의 열매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 믿음은 쭉정이다 하는 것입니다.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사랑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겠습니까 믿음믿음 믿습니다 믿습니다 한도 해서 될줄 압니까 천만의 말씀이다 교회선,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고는 집에 가서는 싸움이나하고 원수가 되 가지고 아우성입니다. 교회만 오면 믿습니다 아무리 해봐요 백번을 해도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무리 믿습니다 해도 이웃이 저사람 날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지 남을 위해서 내어놓는거나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것도 하나 없이 자기만 안다 이건 안된다는 이야깁니다, 오늘 한국에 신자가 천만이라고 하는데 천만이 신자 NO13. 가운데 제가 판단할때는 반수 이상은 그래도 제대로 사는 사람들 입니다. 이상하게 예수믿는 사람들이 잘 살아요 잘 산다구요 하나님이 축복을 하시느것이 분명한것같아요.무론 그 가운데 인천에 어떤 사람처럼 끌어 모운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잔아요, 잘 살아요 부지런 하니까
그런데 이렇게 잘 사는 예수믿는 사람들이 좀더희생을 하면서가진것을 내어 놓는다면 이 사회가 이렇게 악마의 소굴로 바뀌지는 않겠지요. 우리는 믿는다 믿음 믿음만 강조를 햇지 그것과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랑을 강조하지 못했다. 이것이 오늘 한국 교회가 맞을 잊어버린 원인이 아닌가 저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 말씀 앞에서 어떻게 긴장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믿음이 있습니까 사랑하세요 사랑을 가지고 여러분의 믿음을 증명하지 못하면 그 믿음을 버리세요 그 믿음은 진짜가 아니라고 합니다. 끝으로 왜 우리가 사랑을 반복해서 들어야 하는냐 사랑하지 아니하면 구원의 확신을 가질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이것은 대단히 오해하기 쉬운 소지를 가지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실임니다 (요일3:14)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 이번 주간에 우리가 함께 묵상하면서 외워야합니다 야 정말 대단한 말씀이지요 보세요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어디에서 사망에서 옮기어 저서생명으로 들어갈것입니까 아니면 들어갓습니까들어 갔습니다. 삼ㅇ에서 나와 생명으로 들어갔다 쉽게 말하면 구원받았다 그 말이지요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므로 구원 받은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자는 어디에 그대로 있어요 사망에 그대로 있다 다시말하면 구원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 본문을 보면 오히려 형제를 사랑하므로 대신에 예수를 믿음으로 하는 말을 넣는 것이 교리적으로 타당하고 더 성경적으로 일치하는 말씀일것 같습니다. 그렇잖아요 우리가 얘ㅖ수를 믿음으로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삼장에 거하느니라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래야 될것 같은데 예수를 믿으면 하는 말 대신에 형제를 사랑한다는 말을 넣었습니다.그리고 형제를 사랑하므로 네가 구원 받앗다는것을 확신 할수 있고 형제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내가 절대로 구원받앗다는 확신을 할수 없습니다.여러분 오해 하지 마세요 이 말씀은 구원을 받으려면 사랑해야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형제를 예수님이 보여 주신대로 희생하면서 사랑한 그 공로로 구원 받는다는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조건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무엇입니까 예수의 공로입니다.예수의 의 입니다.예수의 피입니다,.오직 그분의 공로로 우리는 구원받지 내가아무리 생묘을 백번 희생을해서형제를 사랑햇다 할지라도 그 사랑한 어떤 공로로도 구원받지를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형제를 사랑해야 구원받는다는 말이 아닙니다.이본에서 중요한것은 안다는 겁니다 안다.여러분 다시 보세요 안다가 어디에 있습니까 안다가 어디에 있어요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애ㅔ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줄을 안다 뭐한다안다 이 안다가 중요한 겁니다. 사실 내가 구원을 받았는지 않받았는지 사실 확신 하기는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구원의 확신을 하기 위해서는 사실 성경 공부도 많이 해서 성경도 좀 알아야 되고 어떤 면에는 체험적인 은혜도 있어야 되고 그다음에 믿음도 좀 좋아저야 야 나는 예수믿고 분명히 죄 사함을 받았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구나 구원 받앗구나 하는 확신이 마음에 생기지요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않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꼭 필요한 한가지 NO15. 조건이 있다고 합니다. 네가 예수믿고나서 예수님처럼 사랑을 한다면 그 사랑은 바로 네가 구원받았다는것을 즈명해주는 가장 정확한 표라고 말을 합니다. 꺼꾸로 말하면 사랑하지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떠들어도그가 정말 구원을 받았는지 확신하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왜 이렇게 말 할수 잇을까요 구원 받는 참 믿음은 사랑의 열매가 바드시 따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되엇다 구원 받았다 하는 것에 확신을 원합니까
그렇다면 사랑 하십시요 사랑하면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의 자녀되고구원 받은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뭐 그까짖거 확신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여러분 그런 생각을 할지 모릅니다. 천만에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확신을 가진다는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압니까 그건요 확신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않은 사람과 무엇으로 비교할수 있을까요 바다를 건너갈때 큰 철선을 타고가는 사람과 잃옆편주의 조각배를 타고 가는 사람과 비교할수 잇음니다. 큰 철선을 타고 가는 사람은 파도가 밀려와도 걱정하지 아니하고 마음놓고 잠도 잘수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항구에 무사히 도착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여행을 즐길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엽편주에 몸을 담고 가는사람은 조그만ㄹ한 바람만 불어도 떨어야 되고 정말로 이러다가 저 항구로 정말 들어갈수 아을런지 아니면 ㅅ고기밥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것입니다.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중에 이런 두 부류에 사람들이 있습니다.하나는 큰 배를 타고 가는 사람처럼 확신을 가지고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조각배를 탄것처럼 오들오들 떨면서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잇어요 어느쪽이 더 행복합니까 많은 사람은 구원에 확신이 없기 때문에 천국도 기웃하고 세상도 기웃합니다. 확신이 없기 때문에 마귀에게 쉽게 끌러 갑니다. 여러분 무슨 돌을 하나 쓰겠다고 큰 돌 NO16. 을 하나 구하러 나갔다가 마음에 드는 돌을 발견 햇습니다. 그러면 먼저 흔들어 봅니다 흔들리면 두세번 더 흔듭니다. 그리고는 그놈을 무슨수를쓰서라도 그걸 들고 옵니다. 그러나 어떤돌은 아무리 흔들어도 꼼짝을 않합니다.그럴때 여러분은 어떻게 합니까 들고 올걸 포기해 바리지요 기권을 합니다.마귀가 돌아다니면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시험합니다. 툭툭 치면서 건드려 보고 덜렁덜렁 거리면 야 요것봐라 하면서 좋은 돌을 쉽게 구햇다고 얼마든지 끌고 가요
왜냐하면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은 이렇게 흔들리거든요 그러나 한번 처 봐도 꿈적도 안해 또한번더 힘차게 흔들어 봐도 꿈적도 않해요 그러면 있는힘을 다해서 매달려서 땅을 파보기도하고 지렛대를 이용도 하고 해봐도 꿈적도 않해요 그러면 탐은 나지만 아아고 그만 놔도라 괜히 손네 피만나고 못만 백였네 하고 포기를 해요 왜 이렇게 흔들리지 않습니까 확신이 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확신이라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런 확신을 가질수 있느냐 형제를 사랑하는자가 가질수 있다는 것입니다. 버리커라는 상담학자가 제미있는 자료를 하나 공개를 했습니다. 자기가 상담을 한 ㄴ 사람들 중에 구원에 학신 을 가지지 못한ㅇ 사람이 참 많았는데 왜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느냐 조사를 좀 해 봣더니 그 마음에 전부 화를 잘 내는 기질이 있고 그 다음에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원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화를잘내는 사람들은 예수를 믿어도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불안의 상태에' 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 을 잘 치료를해서 마음에 있는 분노라고하는 폭탄에 뇌관을 뽑아버리고 또 마음에 있는 원한의 폭탄에 뇌관을 뽑아 버렸더니 그다음에는 자연스럽게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되더라고 그는 기록하고 있음니다. 옭은 이야기 입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나는 구원받았다고 뜨드는 사람 NO16. 그 사람은 정신나간 사람이요 내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사랑하지 못하면서 나는 천국 갈것이다 그사람 정신 나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중요한 교훈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기를 원하면 사랑하라 그것입니다. 사랑해서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사십시다 내 믿음이 진짜라는 것을 언제던지 장담을 해도 괜찮습니다. 본문이 그걸 이야기 합니다.4가지를 말씀드렷습니다. 왜 우리는 사랑이라는 것을 듣고 들어야 하느냐 1:하나님이 원하는 사랑은 우리가 아는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 십자가에서 배운 자기 희생의 사랑을 원하기 때문에 그 사랑이 잘 않되잔아요. 그래서 듣고 또 등어야 됩니다 또 두번째의 이유가 뭡니까 미움이라는 감정을 살인이라고 다루시는 하나님이 시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 날마다 사랑의 문제를 듣고 들으면서 자기 교정을 해야 합니다.그렇지 아니하면 하루에도 수십번의 살인자가 될스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 세번쩨는 뭡니까 믿음과 사랑을 하나님은 동등하게 다루시고 게신다는 사실때문아니다. 난 믿기만 하면 되는줄 알았고 믿기만 하면 주를 기쁘시게 할줄로 알았는대하나님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네 믿음을 사랑으로 증명하라고 합니다.그,러니 사랑하지 않으면서 믿느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하나님을 기쁘게 할수 없잔아요 , 그다음엔 뭡니까 사랑을 해야 내가 구원 받은 자라는 확신을 할수 있기 때문에이 사랑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래서 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메 여러분 오늘의 사회 병패가 어디에 있습니까 생명정신의 풍조니 도덕성의 타락이니 갓가지 진단을 합니다만 제가 볼때는 희생을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NO17. 오늘 이 사회가 이렇게 되어 버렷다고 봅니다 . 그 말을 바꾸면 이기주의가 너무 팽대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모두가 이제는 하루빨리 주님의 뜻대로 한번 주나님의 명령대로 살아 봅시다. 희새을 좀 해 봅시다. 작은데서 부터 작은것에서부터 내것을 좀 떼서 사랑을 표현하는 일에 좀 정성을 기울려 봅시다.
그렇다면 사랑을 받는자도 이익이 크지만 내가 더 큰 은혜를 받습니다.하나니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뿌듯한 보람을 가지고우리는 살수 있습니다.오늘 이 사회가 요구하는 교회는 어떤 교회 일까요 희생하는 교회입니다. 따라합시다 사랑하지 아니하면 믿느자가 아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시한번 사랑이 없는 믿음은 쭉정이다우리 서로 속지 맙시다 속지 말자고요 성경을 똑 바로 보고 속지 않도록 합시다. 제가 가사를 불러줄태니까 함께 불러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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